| 자치통감 206권, 당나라시대 22, 통치력을 확보하는 방법들. 폐하의 수명이 꽉 찬 800세에 머리카락의 흰 것이 다시 검게 되고 빠진 이가 다시 나신 꿈을 꿨습니다 하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고 승진시키면서도... 조카(무승사, 무삼사)에게 계승할 것인가 아들에게 계승할 것인가 고민 끝에 결국 여릉왕 이철을 불러들여 황태자로 삼고 이름을 현으로 회복(고종 2년 이름을 철로 바꾼지 11년 만에 원래 이름이 됨)시킵니다. |
| 도서출판 삼화에서 나온 사마광이 지은 중국 최고의 편년체 역사서 자치통감 206권입니다. 한국어로 그동안 나오지 않다가 권중달 교수님이 일생을 걸고 이렇게 번역해 주셔서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당나라의 유일한 여제인 측천무후의 정치를 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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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의 치세도 이제 후반기입니다. 기간은 697~700 3년여라 그리 길지 않지만 눈에 띄는 일들은 적지 않군요. 초반에는 외적으로는 이전부터 이어지는 거란의 반란에 더해 돌궐의 침입이 일어납니다. 무후의 치세가 많은 전통사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내치에서는 안정되었다는 평이지만 군사와 외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 한편 발해 건국도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지만 여기서는 거론되지 않는군요. 조정 내에서는 악명높은 내준신이 숙청되고,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무후의 총신으로 잘 알려진 장역지 장창종 형제도 이 무렵 등장합니다. 이전부터 논란이 되던 후사 문제가 여기서 정리됩니다. 같은 성이지만 조카인 무씨 형제보다는 성이 달라도 아들이 더 믿을 만하다는 적인걸 등의 조언이 반영되어 후계 구도가 결정되고 황사 이단(예종)의 양보로 유배되었던 이철(중종)이 황태자로 복귀합니다. 한편 밖에서는 토번(티베트)의 실권자였던 가르친링이 숙청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