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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밝히자면, 이 책을 쓴 김용민 저자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나꼼수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을 때는 약간 싫어했다. 메시지에는 동감하나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경박했고, 별로 웃기지도 않는 대목에서 낄낄거리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았다. 무엇보다 당시 진보신당을 지지했던 나인지라, 기존 진보정당을 들러리에서 모자라 쭈구리로 만들어버린 점이 불편했다. 그뒤로 싫어하는 감정은 없어졌는데, 바로 낙선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호되게 당한 뒤 그는 민주당에서 탈당하면서 짧았던 정계 생활을 은퇴했다. 정치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정계 은퇴 소식이 반가웠다. 김용민은 잃을 곳 없는 곳에서 풍자와 해학으로 부조리와 싸우면 된다. 정치판은 잃을 게 너무나 많은 곳이다. 그러니 이 책은 저자를 향한 호불호 없이 택한 것이다. 이 책을 보려고 작정한 건 저자가 아니라 제목 때문이었다. 학부 전공이 종교학이고, 종교 현상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나,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 니체가 발광 직전, 자신이야말로 유일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사실은 매우 굉장히 종교적인 인간이나 특정 종교의 신도는 아니라는 드립을 쳐본다. 책과 관계 없을 수도 있지만 종교관을 밝히자면 이렇다. 종교는 허구고, 종교사는 허구가 진실이 된 역사다. 그렇다고 여기서 종교가 거짓이라고는 볼 수 없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나 할까. 종교를 절대신념체계라고 한다. 보통 많은 종교가 그들이 말하는 교리만이 유일하게 진리라고 말한다. 이런 진리는 교주가 최초이자 최후로 발견했다고 덧붙이는데, 사실이 아니다. 고전 종교에서부터 신흥 종교까지, 스튜어트 홀이 '혼종성'라고 말하는 게 종교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많은 종교가 그들만의 독자성, 순수성을 주장하나 어떤 종교든 할 것 없이 상부구조 차원에서는 다른 종교, 철학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부토대 차원에서는 정치구조, 경제력, 지지층 등 복합적인 요인에 대응하며 만들어졌다. 리처드 도킨슨이 '만들어진 신'이라고 표현했지만, 모든 종교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종교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푸코가 근대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권력, 담론, 훈육 체계 등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근대성은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말하진 않았지 않나. 종교도 기본적으로 권력이고, 이 권력은 태초부터 존재한 게 아니라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자. 이러한 이유에서 책에 관심이 갔다. 한국 종교는 왜 어떤 식으로 허구를 사실로 만들었을까, 하는 지적 호기심. 책 제목만 보고, 한국 종교 비판서인 줄 알았다. 그래서 서문을 찬찬히 읽고도 본문을 읽으면서 잠시 헷갈렸다. 이건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자꾸 읽다 보니 픽션이라는 감이 오더라. 표지를 보니 그때서야 '나비효과'라는 네 글자가 띄던데 (분명히 서문에 있기는 했다), 김용민이 만든 라디오 드라마라고 하네? 그제서야 서문에서 성우에게 감사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이런... 어쨌든. 내용은 간단하다. 화자인 육재준은 거대교회의 담임목사인 육봉기 목사의 아들로 난봉꾼이다. 이야기는 감옥에 갇힌 육재준이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시작부터 걸죽하다. --- 이런 젠장. 감옥의 하루는 더럽게 길다. (중략) 감옥에 없는 건 너무나 많지만 웬만한 건 다 참을 수 있다. 딱 한 가지, 내 묵직한 아랫도리의 볼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여자가 없다는 사실이 내 심신을 피로하게 한다. 딸딸이도 하루 이틀이다. 교도소의 반인권적 처우에 대해 나는 하나님 앞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을 보고 짐승처럼 되지 말라 하는데 최소한 짐승의 대우를 해줘야 그 다음 인간으로 갈지 짐승으로 갈지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단언하건대 성욕의 충족은 인간과 짐승의 구분을 떠나 움직이는 몸뚱어리를 가진 것의 가장 기본 권리요, 의무다. 이것은 내 아버지 육봉기 목사님의 누구보다 동의해줄 것이다. (18~19쪽) --- 그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육봉기 목사의 추잡한 성스캔들과 육재준의 그리 아름답지 않은 여성 편력이다. 육봉기 목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미혼, 기혼 여부에 상관 없이 숱한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교회에서 이를 무마해준다. 아들도 만만치 않아서 결혼을 하지만 한 여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람 피는 데 모든 힘을 쏟는다. 한국 종교의 구조적 모순에 관한 글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막장 드라마가 계속되자 책을 덮을 만도 한데. 재밌어서 단번에 끝까지 봤다. 이게 바로 막장 드라마의 힘인가 보다. 한국 교회와 관련된 사람이 본다면 기분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점을 염두에 뒀는지 저자는 서문에 분명히 밝혀뒀다. --- 마지막은 첨언이다. 이 책의 파급력을 걱정할 수 있을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있을까. 아마도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예수교는 노예근성의 소유자들, 나약한 자들, 그리고 무능한 자들에게만 적합할 뿐이다"라는 말을 실증하는 자들이리라. 그들에게 쏜다. 지옥에나 가라, 이 나쁜 놈들아. (18쪽) --- 2장 '현대사와 개신교회사 간의 역한관계 리포트'와 3장 '대한민국 대표 목사와 목사 아들 돼지의 종교 배틀'은 드라마가 단행본으로 나오며 추가된 장일 텐데, 본편보다 덜하긴 하지만 재미는 있다. 저자가 한국 교회를 진단하는 대목은 크게 2부분에서 나온다. 서문과 2장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 기독교가 맛 간 배경 (8~9쪽) 1. 39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국교로 기독교를 공인. 기독교가 권력으로 군림 2. 아우구스티누스, '정의로운 전쟁' 드립. 평화의 왕으로 온 예수를 전쟁의 발화점으로 만들어버림. 3. 칼빈 예정론.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치된다는 드립. 공통점 : 예수와 성서의 원리에서 크게 이탈 * 한국 교회의 부흥 (201~215) 지금까지 크게 네 번의 부흥운동 존재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목사 견해 인용) ㄱ.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 군대해산과 외교권 및 경비권 박탈, 러일전쟁 ㄴ. 1920~1930년 - 3.1 독립운동 좌절 ㄷ. 1950~1960년대 - 한국전쟁 ㄹ. 1970년대 1970년대 부흥운동은 성장과 불안이 대부흥의 자양분. 군사정권의 '발전'과 밀접. 군사 정권의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성장 신학은 유물론으로 귀결. 시장주의, 하면 된다, 잘 살아보자, 경쟁, 배제의 논리, 카리스마 리더십 등. (박정신 숭실대 교수 인용) 그건 그렇고.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 공동체에서는 평신도가 아닌 성직자에게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하는데 이건 왜일까. 뭐 이유야 복합적이겠지만, 연애 문제라기보다는 재생산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피임 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전근대에는 성적 방종이 많은 자녀로 연결될 텐데. 이러다 보면 식솔이 많은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성직자의 경우에는 부득이한 방법으로 재화를 획득하려는 사태로 귀결될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종교 공동체는 성직자에게 성적 절제를 강요한 게 아닐까. 뭐 물론 이 가설에서 걸리는 점은, 가족의 발견이 근대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전근대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았다고 한들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약했을 거라는. 이상,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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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 표지부터 좀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작가의 트위터에서 보니 작년 모신문의 1면을 패러디하여 한방 날린 것이라던데^^
기발한 책 표지만큼이나 속 내용 역시 속 시원했다. 기독교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부패와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이를 나꼼수 답게, 김용민 답게 시원스레 빅엿을 날리는 내용. 간만에 아주 재미있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을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