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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슬픔에 초점을 두고 '논어'를 재구성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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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기자의 ‘슬픈 공자’는 슬픔에 초점을 두고 ‘논어’를 해체적으로 읽어 새롭게 구성한 책이다. 지금껏 슬픔을 키워드로 ‘논어’를 읽은 책은 없는데 이런 해석이 기존의 읽기와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감추어진 슬픔을 본격적으로 건져올린 것일 뿐이다. 공자는 ‘논어’ 첫편인 ‘학이(學而)’편에서 그 유명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有朋) 자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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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기자의 ‘슬픈 공자’는 슬픔에 초점을 두고 ‘논어’를 해체적으로 읽어 새롭게 구성한 책이다. 지금껏 슬픔을 키워드로 ‘논어’를 읽은 책은 없는데 이런 해석이 기존의 읽기와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감추어진 슬픔을 본격적으로 건져올린 것일 뿐이다. 공자는 ‘논어’ 첫편인 ‘학이(學而)’편에서 그 유명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다음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란 뜻의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라는 말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스스로 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뜻의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라는 말을 했다.(‘논어’ ‘학이學而‘편)


같은 차원에서 공자는 자신이 자리에 있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자리에 가게 될 준비가 되었는지를 걱정하라는 뜻의 불환무위오(不患無位) 환소이립(患所以立) 불환막기지(不患莫己知) 구위가지야(求爲可知也)란 말을 했다.(‘논어‘ ’이인里仁‘편) 또한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의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환기무능야(患己無能也)란 말을 했다.(’논어‘ ’헌문‘편) 또한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병으로 여기고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히서는 아파하지 않는다는 뜻의 군자병무능언(君子病無能焉) 불병인지불기지야(不病人之不己知也)이란 말을 했다.(’논어‘ ’위령공衛靈公’편)


나는 이 말들에서 공자의 슬픔을 본다.(慍: 성낼 온, 번민할 온) 저자는 이런 말들이 공자가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시기를 보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말한다.(62 페이지) 알아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몇 차례나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 시이위지(是以謂之) 문(文) 야(也)”란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하는데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문자란 사람을 ‘문(文)’이라고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논어 ‘공야장公冶長’편)


공자는 열 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마을에도 자신만큼 충신한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신만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란 뜻의 십실지읍필유충여구자언(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란 말을 했다.(논어 ‘공야장公冶長’편) 불치하문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 말이다. 공자는 시(詩)에서 일어나고(흥어시興於詩) 예(禮)에서 서며(입어예立於禮) 악(樂)에서 이룬다(성어락成於樂)는 말을 했다.(‘논어’ ‘태백泰伯’편) 또한 시 300수를 한 마디 말로 생각함에 사특(邪慝)함이 없다고 표현했다.(시삼백詩三百,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왈 사무사曰思無邪: ‘논어’ ‘위정爲政’편)


공자는 나를 흥기시키는 자는 자하이구나 이제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다는 뜻의 기여자 상야(起予者商也) 시가여언시이의(始可與言詩已矣)란 말을 했다.(논어 ‘팔일八佾’편: 佾: 줄춤 일. 일무佾舞: 문묘文廟나 종묘 제례 때에, 여러 줄로 벌여 서서 추는 춤. 저자는 일佾이 춤추는 줄과 줄 서서 추는 춤으로 설명하며 팔일은 8줄짜리 춤이니 곧 가로 세로 8줄이기에 모두 64명이 추는 춤이라 말한다. 지위가 높을수록 많은 수의 춤과 관계있다.: 95 페이지) 공자는 오직 어진 사람만이 제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제대로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는 뜻의 유인자 능호인 능오인(惟仁者 能好人 能惡人)이란 말을 했다.(‘논어’ ‘이인里仁’편)


공자는 알듯 말듯 한 말을 한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제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는 말도 그렇고, 항심(恒心)이 없는 사람은 점칠 필요가 없다는 말도 그렇다. 항심 즉 변함 없이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이 있어야 잘못을 고칠 수 있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점괘(占卦) 즉 처방이 나와도 고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떻든 항심과 관련한 공자의 말을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맹자의 말과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싶다. 이는 좋은 마음(선심善心)만으로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공자는 정치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는 저자의 해설(69 페이지)을 보며 생각한 것이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말은 공자의 말 가운데서도 특히 유명한데 이를 형식과 실질을 다 갖추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바탕(질質)과 애씀(문文)이라고도 할 수 있는 듯 하다. 질(質)과 문(文)의 관계에 비견되는 것이 성(性) 즉 본성과 습(習) 즉 익히는 것의 관계이다.(‘논어’ ‘양화陽貨’편: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익히는 것에 의해 서로 멀어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제나라에 머물 때 소악(韶樂: 중국의 아악)을 듣고 석달 간 고기맛을 잊을 정도(부지육미不知肉味)였다고 한다.(‘논어’ ‘술이述而’편) 성어락(成於樂)을 생각해 볼 대목이다.(述: 지을 술, 펼칠 술)


공자는 서른 여섯에 고국 노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 임금이 마음에 들어 했지만 주변 신하들의 견제성 발언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상처가 컸으리라. 공자는 자신의 출세를 막은 안평중을 “사람들과 잘 사귀었으며 사이가 오래 되어도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로 극찬했다. 공자의 사십(四十) 불혹(不惑)은 바로 출세가 가로막힌 데 따른 좌절과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서 한 말이다.(106, 107 페이지)


공자는 후학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했다. 물론 이 말만 한 것이 아니라 후생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 40세나 50세가 되어도 성취된 바가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 또한 두려워할 일이 없다(사십 오십이무문언四十五十而無聞焉 사역부족외야이斯亦不足畏也已)는 말도 했다.(‘논어’ ‘자한子罕’편. 罕: 그물 한, 땅 이름 한) 물론 당시의 40, 50은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음을 알아야 한다. 공자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나이인 70을 넘겼다. 공자는 자신의 70세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즉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불혹(不惑)이란 지자(知者)를 하는 사람이고 이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지인(知人) 즉 사람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마흔 다섯을 넘긴 공자를 힘들게 한 것은 도가 무너져 버린 세상에서 은둔(隱遁)의 길을 택한 인물들이 경쟁적으로 그를 비아냥거린 것이다. 공자는 수기(修己) 후의 치인(治人)을 꿈으로 간직했다. 공자는 “짐승과는 함께 무리지어 살 수 없는 법(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이라는 말도 했다.(‘논어’ ‘미자微子‘편) 공자의 뜻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는데 나아가서 쓸 만한 자신의 포부를 갈고 닦지 못한다면 대장부라 할 수 없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공자를 오해하는 부분들 중 교언영색(巧言令色)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말을 아주 정교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교언영색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기에 좋은 의미의 것과 나쁜 의미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자는 모든 책임이 남이 아닌 자신에게 있다고 보았고 중도에 그만두게 되면 그간의 노력은 그나마 허사로 돌아간다고 가르쳤다. 공자는 열렬함<성誠/ 문文>이 없으면 다움<덕德>도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공자는 배움은 마치 내가 거기에 못 미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그것에 미쳤을 때는 그것을 잃으면 어떡하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뜻의 “학여불급(學如不及) 유공실지(猶恐失之)라는 말을 했다.(’논어‘ ’태백泰伯‘편)


이것이 바로 중용이다. 공자는 중용(中庸)은 간절함, 절절함, 열렬함, 애씀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中)하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적중한다는 말이고 용(庸)하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中: 가운데 중, 庸: 떳떳할 용. 여기에서 항심恒心이 변함 없이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공자는 부(富)라는 것이 구해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자의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지만 억지로 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와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의롭지 못한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겼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하기 쉽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고 가르쳤다.(’논어‘ ’위정爲政’편) 공자는 자(紫)색이 붉은 색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고(오자지탈주야惡紫之奪朱也) 정나라 음악이 아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정성지난아악야惡鄭聲之亂雅樂也) 말만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집는 것을 미워한다(오이구지복병가자惡利口之覆邦家者)고 말했다.(‘논어’ ‘양화陽貨‘편)


’자색이 붉은 색을 빼앗다‘란 제목의 김영민 교수의 책이 생각난다. 공자가 경계한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이 정색(正色)인 붉은 색(적赤)을 빼앗는 것을 김영민 교수는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책의 목차 중 ’순수주의는 더럽다‘는 장이 있음을 주의하자. 間色: 적색, 황색, 청색과 백색, 흑색 중 두 가지 이상을 섞은 색. 正色: 다른 색의 섞임이 없는 순수한 빛깔. 紫色: 빨강과 파랑의 중간 색깔)


공자는 어진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맑고 고요하다. 어진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오래간다는 뜻의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 인자수(仁者壽)”란 말을 했다.(’논어‘ ’옹야雍也’편) 주희(朱熹)는 아는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흐르고 정체하는 바가 없어 물과 비슷하기에 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진 사람은 원칙을 지키듯 제자리에 머물러 중후하고 옮기지 않기에 산과 비슷하므로 산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자가 좋아하는 물이 움직이는 것이란 사실은 지자는 움직임<동動>을 좋아한다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인자는 움직이지 않는 산을 좋아하고 또 그런 만큼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정靜>을 좋아하는 것이다. 공자는 지난 것을 정리하여 저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는 않았다는 의미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이란 말을 했다.(‘논어’ ‘술이述而‘편) 공자는 자신에게 몇 년의 수명이 더 주어진다면 쉰 살까지 ’주역‘을 공부해 큰 허물이 없게 될 텐데를 뜻하는 ’가아수년(加我數年) 오십이학역(五十以學易) 가이무대과의(可以無大過矣)란 말을 했다.(‘논어’ ‘술이述而‘편)


정약용 선생에 의하면 ’주역’의 내용은 회(悔: 뉘우치다. 허물을 고치는 것)와 인(吝: 인색하다. 허물을 거치지 않는 것)에 중점이 두어졌는데 공자는 역을 배우면 큰 허물이 없을 텐데란 말을 한 것이다. 공자는 예순 살에 귀가 순해졌다는 뜻의 이순(耳順)이란 말을 했다.(‘논어’ ‘위정爲政’편) 그 나이가 되면 노욕(老慾)이 커지는데 공자는 오히려 거슬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런 경지는 치열한 수양의 결과이다. 공자가 60세를 넘겼음에도 주유천하(周遊天下)한 것은 가르침의 전파 외에 변함 없이 자리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복음 9장 58절)란 말을 했다면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하늘 뿐(‘지아자기천호知我者其天乎‘)이라는 말을 했다.(’논어‘ ’헌문憲問‘편) ’논어‘의 첫 구절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인 데서 보듯 공자는 ‘논어’ 곳곳에서 배움을 좋아하는 면모를 드러냈다. 저자에 의하면 제자들도 중용을 오해했다. 저자는 공자가 그들을 보며 결국 자신의 가르침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픔과 두려움마저 느꼈을 것이 틀림 없다고 말한다.(282 페이지)


공자는 “중하고 용하는 것<중용中庸>이 다움<덕德>을 이루어냄이 지극하구나!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중용을 오래 지속하는 이가 드물다“는 뜻의 중용지위덕야(中庸之爲德也) 기지의호민선구의(其至矣乎民鮮矣)란 말을 했다.(‘논어’ ‘옹야雍也’편) 공자는 스스로 배웠기에 제자들에게 원칙적으로 스스로 공부하라고 독려(督勵)했다.(267 페이지) 배우려 하지 않고 요행에 기대려는 제자들을 보며 공자는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 안회(顔回) 또는 안연(顔淵) 외에 다른 제자들은 공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안회는 공자가 친아들처럼 여긴 제자 중의 제자였다. 안회는 공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서른 둘이라는 이른 나이였다. 공자가 71세때의 일이다.


안회의 죽음에 공자는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고 통탄했다.(희噫 천상여天喪予 천상여天喪予: ‘논어’ ‘선진先進‘편) ”안회가 일찍 죽는 바람에 공자는 자신이 평생 쌓은 공부인 문(文)을 제대로 전할 제자를 찾지 못했‘다.(345 페이지) 공자는 자로가 죽었을 때는 “하늘이 나를 끊었구나“(천축여天祝予: 공양고의 춘추풀이집인 ’공양전公羊傳’)라 탄식했다. ”안회를 먼저 보내기는 했지만 공자는 죽어서도 자공과 같은 제자가 있었기 때문에 불행한 스승은 아니었다.“(288 페이지) 자공은 뜻은 좋았으나 실행력이 부족했던 제자였다. 자공은 도를 따르기보다 정치와 부 축적에 더 관심이 많았던 제자였다.


”군자는 쓰임새가 한정된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뜻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논어‘ ’위정爲政‘편)는 바로 자공(子貢)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 할 수 있다.(311, 312 페이지) 한편 공자가 ”나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자공이 ”스승님께서 말씀을 안 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스승의 도를 배워 후대에 전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온갖 생물이 나고 자란다.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던가?“라 말한다. 공자의 안타까움과 슬픔 이전에 날카로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재아라는 제자 때문에 속이 꽤나 썩었던 것 같다. 스승을 함정에 빠지게 하는 질문을 하기도 한 재아는 공자의 탄식을 자아내는 데 일등이었다고 해야 한다. ’논어‘는 대화로 구성된 책이다. 출처를 확정할 수 없지만 그래서 제목이 ’논언(論言)‘이 아닌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평과 제자들 스스로 공자에 대해 자신들에 대해 물은 내용들,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 등을 접할 수 있는 인간적인 텍스트이다. 공자는 도(道)에 뜻을 두었고 덕(德)을 쌓았으며 인(仁)에 의지해 예(禮)에서 노닐었다는 뜻의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 의어인(依於仁) 유어예(遊於藝)란 말을 했다.(’논어‘ ’술이述而’편) 아름다운 말이다. 공자가 69세때 외아들 리(鯉)가 세상을 떠났다. 71세때는 안회가 세상을 떠났다. 72세때는 자로가 세상을 떠났다.


안회가 세상을 떠나자 안회의 아버지인 안로가 공자에게 공자의 수래를 팔아 아들의 겉 널<곽槨>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공자는 거절했다. 관(棺)은 속 널이고 곽(槨)은 겉 널이다. 운구(運柩)라는 말에서 구(柩)가 널 구, 관(棺) 구인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공자는 아들 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속 널은 해주었지만 겉 널은 해주지 못했다고 답했다. 슬프다. 그러나 공자 자신의 죽음 만큼 읽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슬프게도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됐구나! 아무도 나의 도를 믿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은 유언이 되었다. 그의 죽음 자체보다 더한 것은 그의 죽음이 좌절과 회한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다른 해설서를 읽을 차례이다.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가 좋을 것이다.

m******1 2016.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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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알아주지 않은 인류의 스승 - 슬픈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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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알아주지 않은 인류의 스승 - 슬픈 공자     시대가 위인을 만든다지만 그 시절에 위인을 이해한 사람이 진정 누가 있을까. 슬픈 공자는 아마도 그래서 탄생한 것 일게다.   2500여 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그 시절의 이야기다. 세상을 제패하고자 영웅들이 할거하던 시절이었기에 위대한 사상가들의 등장도 많았던 시절.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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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알아주지 않은 인류의 스승 - 슬픈 공자

 

 

시대가 위인을 만든다지만 그 시절에 위인을 이해한 사람이 진정 누가 있을까.

슬픈 공자는 아마도 그래서 탄생한 것 일게다.

 

2500여 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그 시절의 이야기다.

세상을 제패하고자 영웅들이 할거하던 시절이었기에 위대한 사상가들의 등장도 많았던 시절. 세상을 구할 지혜가 필요했던 그 시절에 탄생했던 인류의 스승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다.

 

제자들이 스승의 글을 남겨서 먼 훗날 유명해졌지만 그들이 살던 시절에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기에 답답한 비애를 느꼈을 것이다. 물론 공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자신의 말이 이 세상에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설득하느라 애썼을 노력들, 소통되지 않는 세상을 보면서 공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 슬픔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 공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가르침과 비애를 음미해 본다.

 

 

<논어>에는 말만 있다면, 공자의 삶에는 실제가 있다. 슬픔이 다름 아닌 말과 실제의 갭에서 생겨났다. 말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

실제로 공자가 가장 애태웠던 것도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것, 도리가 살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도리란 말이 말답고 행동이 행동답고, 그리하여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행해지지 않는 말은 말이 아니다. 올바른 생각과 말에서 나오지 않는 행동은 행동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말과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일 수 없다. 여기에 공자의 근원적인 슬픔이 있었다. (서문 중에서)

 

 

 

출생이 미천했던 공자는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을 받아들일 때도 출신 신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받아 들였다고 한다.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익히는 것에 의해 서로 멀어지게 된다. (본문 중에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게 태어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얼마나 배우려고 애쓰는 가에 따라 이루는 바가 다름을 공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큰 뜻을 두게 된다. 한 개인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구제할 공인이 되고자 결심한다. 스스로 익히고 배우고, 배운 것을 가르치고 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깨우쳐 간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뜻이 같은 벗이 있어 먼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진실로 즐겁지 않겠는가?

......

옛것을 배워 익히고 그리하여 새것을 알아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 중에서)

 

 

 

시경을 암송하여 그 뜻을 깨우치기를 원했던 공자는 배운 지식이 쓸모 있도록 힘쓰라고 제자들에게 설파한다.

30세에 세상을 향해 일어나고(而立), 40세에 더 이상 유혹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나(不惑)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을 알아 본 나이는 50(知天命)이었다.

 

만일 나를 등용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한 달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 것이고, 일 년이면 충분한 이루어짐이 있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공자가 30대 일 때, 제나라의 경공이 그를 등용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현실 정치에서는 자신을 알아주지 못했다. 일찍이 큰 뜻을 품고 학문의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했던 그가 세상과 소통되지 않음을 알고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소통부재의 세상, 그 혼탁한 세상을 보며 얼마나 비애를 느꼈을까.

 

힘이 지배하던 시대에 道로써, 윤리로써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공자.

권력 앞에서도 충언을 한 그였기에 군웅들이 받아들이기가 껄끄러웠던 걸까.

평소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기에 그가 이룬 교육관을 보면 여전히 위대한 인류의 스승임을  공감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공자의 진실을 알아주고 있을까.

지금 정치는 도덕적인가. 지금 사회는 충분히 윤리적인가.

그 해답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이 시공을 초월해서도 공자가 슬퍼하는 이유일 것이다.

a******7 2013.08.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