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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동엽 시인은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거두지 않았던 이른바 ‘참여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대학 시절 그의 시집을 손에 들고 탐독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이 책은 '신동엽 문학기행'이란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 신동엽의 삶과 역정과 작품 세계를 아울러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남 부여 출신의 시인으로서 독재와 억압에 맞서 참다운 문학의 정신을 노래한 시인, 신동엽. 장편 서사시 <금강>을 통해 '갑오농민혁명'으로부터 '4.19'에 이르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노래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치며, 남과 북의 통일된 조국을 꿈꾸웠던 시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문학도로서, 한동안 손에 잡지 못했던 신동엽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 책의 저자들의 글을 통해서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불과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0년도 더 지났지만, 신동엽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토록 기억되는 시인이라고 하겠다. 그의 고향인 부여에는 ‘신동엽문학관’이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곳에 가보지는 못했다. 이 책을 읽은 김에, 이번 가을에는 부여를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신동엽문학관’도 들러보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11명의 필자들이 참여한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고향인 부여에서의 생활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부여시대’, 결혼을 해서 비로소 생활인으로서 정착하게 된 서울 생활을 소개한 ‘서울시대’, 그리고 그의 제주도 여행기와 문학관 등에 관한 내용의 ‘제주도와 문학관’이라는 항목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가운데 고향인 부여에서의 생활을 작품과 함께 그려보는 '부여시대'가 맨 앞에 놓여있다. 5명의 필자가 ‘생가’와 ‘금강’, ‘낙화암’과 ‘백마강가’, 그리고 ‘공주 우금치, 부여 곰나루’라는 제목으로 그의 작품에 나타난 각각의 장소에 대한 이미지와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시인이 죽은 후 오랫동안 부친이 살았던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하니, 부여에 갈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장소라고 하겠다. 특히 이 장소들은 그의 작품들이 탄생된 주요 배경이기에, 글들에는 적지 않은 시인의 작품들이 인용되고 있다. 지인들의 말과 각종 기록들을 통해서 신동엽이 역사와 현실에 관심이 깊었고, 독재로 치닫는 당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부인인 시인 인병선과 결혼을 한 후 시작된 서울에서의 생활을 '서울시대'라는 두번째 항목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의 신혼 생활의 흔적이 깃든 ‘돈암동’과 한때 교직에 몸담았던 ‘명성여고’, 그의 첫 시집의 출판기념회가 열렷던 ‘시울시청 부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시 <종로5가>의 배경인 ‘종로5가’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명성여고’ 교사 시절의 흔적을 찾는 과정 가운데 등장하는 가곡창 예능보유자인 조순자 선생의 이름을 발견하여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10여년 전 국악방송국에서 조순자 명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내가 매주 고정 게스트로 한동안 출연해서, 시조와 가객들에 대해 대담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연으로 한동안 가곡창을 배우기도 했고, 이후에도 간간이 소식을 주고 받는 사이이기도 하다. 국어 선생님으로서 신동엽 시인을 기억하고 회고하면서, 중요한 진술을 남겨 연구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에는 시인의 제주도 여행 기록과 문학관 건립 등에 관한 장소와 흔적들을 좇아 '제주도와 문학관'이라는 항목에서는 모두 4명의 필진이 참여하였다. ‘신동엽이 본 공사장’과 ‘제주도’, ‘신동엽 시비와 묘지’와 ‘다시 생가와 문학관’이라는 제목으로 4명의 필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상으로 모두 13개의 글을 통해서, 각 저자들이 소개하는 신동엽의 삶과 작품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여전히 서가에 꽂혀있는 그의 시집과 전집들을 조만간 다시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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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신동엽은 곧 '금강'이다. 오래 전(1990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금강' 시가 좋아서 전체를 옮겨 써 본 적이 있다. 그때의 뭉클했던 감동은 지금도 살아서 그 시집의 무게만큼이나 나를 기분좋게 울려 준다. 이 책을 보면서 갖고 있는 금강(창작과비평사, 1989)의 시집도 다시 살펴보았다. 책장들이 많이 바래서 애틋하기도 하고 그 덕에 판화 그림은 더욱 생생하게 돋보이는 듯도 했다. 몰랐거나 그때는 알았어도 이후 잊었을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길지 않은 생애를. 나 혼자 착각하고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이 책으로 깔끔하게 시인에 대한 정보를 바꿔 놓았다. 앞으로 기억이 안 나거나 헷갈릴 때면 이 책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는 믿음도 얻었다. 시인의 가족들이 시인과 관련된 자료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는 게 독자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또한 그 모든 자료를 찾아다니고 다시 모아서 새로운 자료집으로 만들어 내기까지 한 분들의 노고가 짐작되어 흐뭇한 마음이 절로 일었다. 예술가의 생애를 따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예술가와 어떤 운명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얼마나 사모하고 존경하면 그 일로 자신의 삶을 짓게 되기도 하는 걸까. 그가 태어났던 집, 그가 다녔던 학교와 거리들, 그가 몰두했던 공부와 일들, 그의 성장과 연애와 결혼과 직장과 마침내 운명을 다하는 날까지의 궤적, 그리고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추모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낱낱의 작품과 생을 이어 가며 글을 쓰는 일. 때로 고단했을지라도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이 벅차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행복한 기분을 평온한 상태에서의 독서로 나누어 받을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이 다음 말을 적어야 한다는 게 나로서는 많이 조심스럽고 또 부담스러웠다. 서평단으로 신청해서 받은 책이라 고민이 된 탓이다.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책의 모든 게 기대만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신동엽의 시와 자취를 따르면서 그의 생애를 취재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여 글로 모은 모음집이다. 모두 11분의 작가. 다들 신동엽 전문가쯤 될 것이다. 신동엽의 시, 산문, 평론 등 그의 글이라면 읽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정통했을 분들. 그래서 나는 더욱 아쉬웠다. 이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글을 쓰게 해 놓고, 담아 놓은 책의 편집 형태가 이럴 수밖에 없었나 싶어서. 시인의 작품과 시인에 얽힌 일화들이 작가에 따라 겹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저마다 따로 울리는 듯한 조화롭지 못한 느낌마저 받으면서 신동엽 시인을 그리는 행복한 기분을 못내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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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이라는 시의 고향을 생각하다 - 고명철 외,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이 책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신동엽 시인의 발자취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부여시대’ ‘서울시대’ ‘제주도와 문학관’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고향’이라는 말을 핵심으로 삼아 신동엽이 걸어온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신동엽 생가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금강 곁에는 그의 시비가 있다. 시비에 새겨진 「산에 언덕에」를 먼저 살펴본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산에 언덕에」
신동엽이 지은 「산에 언덕에」는 4·19 영령들을 추모하는 시로 알려져 있다. 추모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애도하는 것이다. 한 맺혀 죽은 이들을 애도함으로써 죽은 자는 제 갈 길로 가고, 산 자는 이곳에 남는다. 시인은 “그리운 그의 얼굴”을 산에서, 언덕에서 만난다. 그리운 사람은 산에 언덕에 꽃으로 피어난다. 죽은 자는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죽어서 꽃으로 피어난 존재는 이승에서 맺힌 한을 푼 것일까? “화사한 그의 꽃”이라는 시구로 시인은 죽은 자들을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화사한”이라는 수식어는 ‘꽃’이라는 대상과 잘 어울린다. 그 꽃에서 시인은 4·19 때 죽은 ‘그’를 본다. 올해 핀 꽃은 작년에 핀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돌려 말하면 꽃은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꽃을 피운다. 죽음을 넘어서서 피어난 꽃이 아닌가? 죽음의 시대와 맞서 싸운 4·19 영령들을 이보다 알맞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산에 언덕에 피어난 꽃은 2연에서는 ‘노래’로 변주된다.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에 나타나듯 시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분명히 알고 있다. 아무리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죽은 이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4·19 영령들이 없는 건 아니다. 4·19 영령들은 이 땅 어딘가에서 여전히 “맑은 그 숨결”을 내쉬며 살고 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있을까? 죽은 자가 숨을 쉬는 게 아니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숨을 대신 쉰다. 죽은 자는 산 자를 통해 숨을 쉬고, 산 자는 죽은 자를 통해 4·19라는 ‘거대한 사건’을 기억한다. 산 자는 왜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가?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자는 왜 산 자와 더불어 숨을 쉬는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래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을 부르고 있다. 산에 언덕에 꽃이 피어났지만 그곳을 거니는 행인은 여전히 쓸쓸하다. 들에 숲속에 퍼진 “맑은 그 숨결”로도 이 쓸쓸함을 메우기는 힘들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지만,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꽃으로, 숨결로 우리는 다만 ‘그’를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이 현실처럼 다가오면 우리는 어느 순간 희열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 사실만은 변할 리 없다. 꽃은 꽃이고 숨결은 숨결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죽은 이를 향한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어찌해야 할까?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비다’와 ‘담다’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비다’가 따로 있고 ‘담다’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눈길이 비면 바람이 곧바로 그곳에 담긴다. 당신이 죽어 ‘빈’ 자리에 꽃이 피고, 꽃이 져서 ‘빈’ 자리에 다시 꽃이 핀다.
눈길이 비면 바람을 담고, 바람이 비면 인정을 담는 세상을 시인은 꽃으로, 숨결로 피어나는 4·19 영령들로 묘사한다. 눈길-바람-인정은 비우면서 담기는 역설적 상황을 구성한다. 그러니 죽은 자들이 비운 자리를 산 자들이 채우는 거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죽은 자들이 비운 자리를 꽃이, 숨결이 채우는 거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인은 시를 쓴다. 그 시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섬세한 언어가 담겨 있다.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을 더듬는 그 마음으로 시인은 4·19 영령들이 비운 자리에 무언가를 하나하나 담는다. 꽃이라고 해도 좋고, 숨결이라고 해도 좋다. 언어라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눈길이 비면 어떻고, 인정이 비면 어떤가? 빈자리는 어김없이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죽은 자를 위한 애도는 이렇게 산 자들을 위한 애도로 돌아오는 셈이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라는 상황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죽은 자가 살아날 수는 없다. 하지만 “울고 간 그의 영혼”이라면 어떨까? 시인은 울고 간 그의 영혼을 산에서 언덕에서 보고 있다. 영혼이 있느냐 하는 논의는 여기서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울고 간 그의 영혼”을 시인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시적 사실이다. 그리움이란 결국 이런 마음이 아니던가! 그리워만 하는데 왜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픈가? 들에 언덕에 핀 저 꽃들을 보면 왜 가슴이 미어지는가? 저들이 간 자리를 다른 걸로 채우지 못한 ‘쓸쓸한 행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뻗어 나온다.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이다. 부재하는 대상을 그리워하는 자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죽은 이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죽은 이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죽은 자를 향한 산 자들의 애도는 이토록 질긴 것이다.
신동엽의 ‘서울시대’를 대변하는 시인 「종로5가」도 주목할 만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눈동자”와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을 하나로 묶고 있다. 노동으로 지친 가슴으로 시인은 하염없이 비를 맞는다. 시인이 보고 있는 저 가난한 소년은 이 세상을 사는 노동자의 아들을 대표한다.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묻는 소년을 보며 시인은 노동자로서 사는 삶의 비애를 느낀다. 노동자가 게을러서 이런 비애를 느끼는 건 아니다. 비애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게 대륙이든, 섬나라든, 새로운 은행국이든 시인은 노동자들의 삶을 억누르는 외부적 상황들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다.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는 서글픈 서정이 무엇보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도 비극적 현실과 마주하는 의지적인 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비애의 서정 뒤편에서 시인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본다. 신동엽은 바로 그 서정으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의 본질을 시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고향’이라는 시어 역시 어찌 보면 이러한 서정으로 다가가는 길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10명의 지은이들이 신동엽(의 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 그의 시심이 어떻게 살아남아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음 인용문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겠다.
신동엽은 시대의 모순을 바르게 보고 그 원인을 작품에 담아낸 예언자를 닮은 시인이다. 그는 당시의 문학적인 과정을 정확히 인식했고, 그 내용에 맞는 적절한 장르를 선택했던 1960년대의 실험적이고 신중한 중요한 시인이다. 신동엽이 그려낸 소년은 전태일 나이 또래의 아이였고, 사창가 여인의 동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곁에는 누가 있는가. 사창가의 여인과 대화하고 싶다며 “나도 귀를 기울이고 싶”다던 15세의 자이니치 소년 서경식은 이제 육십 대의 작가가 되어 그 마음 변치 않고 소수자 곁에서 그들의 고통을 대언(代言)하고 있다. ‘종삼’ 근처에 사는 낮은 자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썼던 시인 신동엽의 마음은 이렇게 자이니치 작가 서경식에게로 이어진다. 그들은 아픔 ‘곁으로’ 다가가라고 권하고 있다. 아픔에 연대하는 마음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확실히 희미하고 가느다랗게 연결되어 있다. (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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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 신동엽. 이 이름을 언제 들었던가? 고등학교?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어렴풋하나마 기억나는 건 대학교 1학년 때, 해적판 시집을 통해 신동엽 시인을 만났다는 것이다. 창작과비평사(현 창비)에서 간행한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당시에 판매금지 상태여서 신동엽의 시를 접할 길이 그 길뿐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서슬 푸르던 군부 독재의 시절이었다.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는 ‘신동엽 문학 기행’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기획한 이는 서문에서 이 책이 ‘신동엽 문학의 중심이 되는 삶과 사유를 새롭게 해석하고 보여주는 인문교양 지리지’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1명의 필자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2. 이 책은 신동엽의 삶의 행적을 중심으로 ‘부여시대’, ‘서울시대’, 그리고 ‘제주도와 문학관’의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부여는 신동엽의 고향이고, 서울은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먼저 ‘부여시대’ 편을 살펴보면, ‘생가’(김지윤), ‘금강’(김지윤), ‘낙화암’(박은미), ‘백마강가’(이지호), ‘공주 우금치, 부여 곰나라’(김응교), 이상 5편의 글이 실려 있다.
‘생가’(김지윤)에서는 신동엽이 태어나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초가 소개, 그리고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는 격동의 시절 속에서 가난했던 삶, 그런 와중에도 집안일을 돕는 다정하고 착한 아들, 독서를 즐기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소년으로 자라난 신동엽을 소개한다. 아울러 신동엽이 어떻게 전경인(全耕人), 곧 대지에 뿌리 내린 욕심 없는 인간을 지향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전경인은 신동엽 철학이 집약된 용어이다. 신동엽은 「시인정신론」(1962)에서 “잔잔한 해변을 원수성 세계라 부르자 하면, 파도가 공중에 일어 솟구치는 물방울의 세계는 차수성 세계가 된다고 하고, 다시 물결이 숨자 제자리로 쏟아져 돌아오는 물방울의 운명은 귀수성 세계이고 땅에 누워 있는 씨앗의 마음은 원수성의 세계이다. 무성한 가지 끝마다 열린 잎의 세계는 차수성 세계이고 열매 여물어 땅에 떨어져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은 귀수성 세계이다.”라고 한 후, 인류가 되돌아가야 할 곳이 ‘귀수성의 세계’라고 강조했다. 신동엽이 시인으로 활동하던 시기는 성장만능주의, 배금주의가 팽배해있었고 권력과 돈이 결탁하여 정치는 부정 부패했다. 시인은 그런 세상을 ‘차수성의 세계’로 보고, 우리 사회에 생명력을 되살릴 힘을 ‘귀수성의 세계’에서 얻고자 했는데, 신동엽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옛 고향의 이미지가 ‘귀수성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촉매제이자 연결고리가 되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금강’(김지윤)에서는, 4,673행의 장편 서사시 「금강」의 무대로서의 금강을 다루고 있다. 필자는 신동엽 시 「금강」에서 금강을 1894년 동학혁명, 1919년 3.1운동, 1960년 4월 혁명을 연결하는 민중혁명의 줄기를 발견할 수 있는 곳, 곧 민족의 역사를 포용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신동엽 문학의 원류를 이루는 공간으로 보고 있다. ‘낙화암’(박은미)에서는 백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고, 장편 서사시 「금강」의 무대가 된 장소인 낙화암을 중심으로 신동엽의 전경인 사상과 백제 정신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신동엽과 그 부인 인병선 여사의 만남과 데이트, 결혼, 신동엽의 건강으로 인한 잠깐의 이별 등도 전해주고 있다. 이 둘의 러브스토리를 알고 나니 서사시 「금강」의 두 인물 ‘신하늬와 인진아의 사랑’이 ‘신동엽과 인병선의 사랑’으로 겹쳐짐을 막을 수 없었다. ‘백마강가’(이지호), ‘공주 우금치, 부여 곰나라’(김응교). 이 두 글도 앞에서 살펴본 글들과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하다. 신동엽의 고향이자, 신동엽의 시 무대로서의 백마강과 공주 우금치, 부여 곰나루를 조명하면서, 그 장소들이 신동엽 시에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아울러 신동엽의 학창 시절과 연애, 신동엽 시비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요약하면, ‘부여시대’ 편에 실린 5편의 글들은 모두 신동엽의 시의 무대가 된 신동엽의 고향을 중심으로 신동엽 시에 담긴 전경인 사상과 백제 정신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3. 다음으로 ‘서울시대’ 편을 살펴보면, ‘돈암동’(맹문재), ‘명성여고’(이대성), ‘서울시청 부근’(김진희), ‘종로5가’(김응교), 이 네 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서울은 신동엽이 부여를 떠나와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신동엽은 인병선 여사와 1956년 10월에 결혼했는데, 생활이 어려운 데다 신동엽의 건강이 좋지 않아(전염성이 있는 폐결핵), 신동엽이 아내와 자녀를 아내의 친정이 있는 서울 돈암동으로 보낸다. 이후 건강도 어느 정보 회복된 데다 1959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한 것을 계기로 신동엽은 1959년 봄 돈암동에 셋방을 얻어 살림을 차리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1960년에는 잡지사 취직, 자신의 시가 실린 시집 출간, 1961년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취직, 시론 및 평론 발표 등 매우 의욕적인 서울 생활을 한다. 1962년에는 장모의 도움을 받아 성북구 동선동으로 집을 장만해 이사하여 1969년 4월 간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살게 된다. 이 시기 신동엽 시인의 활동은 굉장히 왕성했다. 1963년 첫 개인시집 「아사녀」 출간, 1964년 3월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 입학(1학기만 다님), 7월 목포를 거쳐 제주도 여행 1965년 한일협정 비준 반대문인 서명운동 동참 1966년 시극‘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국립극장에서 상연 1967년은 특히 왕성한 활동을 펼쳐서 많은 시를 창작 발표하고, ‘중앙일보’의 월평 담당. 12월에 장편 서사시 금강 발표 1968년에도 이런 활동을 의욕적으로 이어가지만 1969년 간암으로 별세.
이 시기 신동엽의 시는 김수영 시인의 참여시 정신을 계승하여, 1970년대 들어 민중시로 확대되는 기틀을 다졌다는 게 필자(맹문재) 주장의 골조이다.
‘명성여고’(이대성)는 시인이 서울에서 가장 오랜 시간(8년)을 보낸 직장인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 시절에 대해 알아보는 글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신동엽이 학교에서 편집 지도를 맡았던 교지와 문예반 활동, 그리고 1968년에 명성여고 학생들이 배우로 출연한 오페레타 <석가탑> 공연 등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와 명성여고(현 동국대부속여고) 현직교사의 노력, 그리고 몇몇 제자들의 기억 등을 통해 명성여고 교사 시절을 되살려내려 노력 중이라고 한다.
서울시청 부근’(김진희)은 신동엽의 첫 시집 「아사녀」 출판기념회와 그게 열린 장소인 서울시청 프라자호텔 앞 중식당 이야기와 함께 이 장소의 상징성을 알아보고 나서, 신동엽 시의 ‘귀수성의 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종로5가’(김응교)는 신동엽 시의 다양한 주제 가운데에서 사회적인 주제를 담은 시를 다루고 있다. 신동엽의 시 「종로5가」를 종삼(종로3가, 종묘 앞에 있던 집창촌)이라는 장소의 상징적 의미와 연계시켜 신동엽 시인이 도시 빈민의 아픔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4. 끝으로 ‘제주도와 문학관’ 편을 살펴보면, ‘신동엽이 본 공사장’(최종천), ‘제주도’(고명철), ‘신동엽 시비와 묘지’(신좌섭), ‘다시 생가와 문학관’(김형수), 이 네 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신동엽이 본 공사장’(최종천)에서는 신동엽 시를 기독교 텍스트인 성서와 관련시켜 신동엽의 시를 분석하고 있다. 신동엽은 신의 창조에서와 같이 노동하는 인간을 보편타당한 인간이라 하고 노동 착취로부터 가능한 문명, 문화적 인간을 보편부당한 인간이라고 본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제주도’(고명철)에서는 1964년 한여름 신동엽이 제주 여행길에 나서서 기록한 열흘 분량의 일기를 중심으로 신동엽의 산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당시에는 금기였던 4.3사건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제주 여행길에서 발견된 아시아와 대지의 상상력을 통한 귀수성의 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신동엽 시비와 묘지’(신좌섭)는 필자(신동엽의 장남)가 아버지의 묘소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신동엽의 유해는 1969년 아무 연고도 없는 파주군 금촌면 월롱산 기슭 공원묘원에 마련했다가, 1993년에 현 위치(부여읍 능산리)로 이장하게 되는데 거기에 얽힌 사연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망 당시 군사 정권의 눈치를 본 부여 시민들이 신동엽 시인의 묘소를 부여에 마련하는 것을 꺼렸다는 내용은 씁쓸하기까지 했다.
5.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는 신동엽을, 신동엽의 시를, 신동엽의 시 정신을 좋아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10명이 넘는 필자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다루는 작품이 겹치는 것도 있고, 시에 대한 접근법도 비슷한 것도 많다. 그것은 여기에 글을 게재한 사람들이 신동엽에 대해, 신동엽의 시에 대해 평가하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신동엽 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신동엽 시에 바탕에 깔린 정신이 어떠한지, 그가 어떤 정신으로 삶에 임했는지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해 준 책이다. 다시 신동엽 시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구했던 해적판을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다행히.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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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갈등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보인다면, 신동엽 시인은 자신을 대하면서 더욱 냉철하고 담담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자신의 태도를 성찰하고 한편으로 연민을 가진다면, 신동엽 시인은 전후와 독재의 현실에서 자신이 어떤 시인으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성찰한다.(184)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냥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질 때가 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알맹이가 뭔지도 모르면서 왠지 그냥 비장하게 껍데기는 가라,를 외치듯이 시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신동엽 문학기행인 이 책을 읽기 전에 금강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시집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의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문학기행이라는 것은 허공에 뜬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글은 조금은 술렁거리며 문학해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신동엽 시인의 삶과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신동엽 시인에 대한 자료는 꽤 많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아내인 인병선 여사의 꼼꼼한 성격덕분이라고 한다. 더구나 그녀는 이화양장점을 운영하며 생활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여러명의 작가가 글을 써서 그런지 조금은 중복되어 보이는 글의 느낌이 나지만 전체적으로 시기별로 신동엽시인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사실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제주여행에 대한 글이었다. 신동엽 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가 제주여행을 하고 제주를 가슴메어지는 땅, 구제받아야 할 곳이라 표현했다는 것에, 제주를 단순한 관광지로 여기면 안된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울컥해진다. 제주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의 그런 역사인식이 곧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 4.19 혁명의 맥락을 이어가는 서사시 금강을 탄생시켰다는 생각을 하면 저항시인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문학관에 대해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대서사시 금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여, 백마강을 한번쯤은 바라보며 그 역사의 시간을 되돌아봐야할 것 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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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영원히 산다. 시인은 시로써 영원히 산다. 시인의 숨결은 생가나 약력에 있지 않고 시에 있다.(p123) 그의 시 하나를 옮겨보았다. 자본이 벨을 누르면 중앙청 정승 대감들이 맨발로 달려와 머리 조아리고. 다음날 그들 은행실 벼슬아치들은 호남평야 원주민의 쌀값을 대폭 인하. (P45) 신동엽 시인의 대서사시 <금강> 제6장 부분이다. 오랫동안 수탈에 시달려온 농민들의 고통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여 준 것이다. 놀랍다. 농민뿐만 아니라 민중도. 아주 오래전부터 일제, 근대, 현대도 그대로 표현하는 시구가 아닐까 싶다. 신동엽의 금강은 시인이 "냇물 구비치는 싱싱한 마음밭"으로 삼았던 그의 문학의 원류를 이루는 공간이다. <금강>은 4,673행의 장편서사시로, 1894년 동학혁명, 1919년 3.1운동, 1960년 4월 혁명을 연결하는 민중의 혁명 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재해석하여 현재를 비판하고 미래의 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P35, P79) 사실 시 분야는 의미 파악이 되지 않으면 난해해서 그동안 쉽게 접근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신동엽 시인도 몰랐다. 아마도 아래 단락의 이유로 낙인찍힌 시인이라 노출되지 못했던 것 같다. 이과 출신의 문학 무식자로 부끄럽지만, 다행히 문학기행은 좋아해서 알지도 못했던 시인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부여 기반의 문학기행을 보면서 아는 만큼 기행의 무게가 다르다는 걸 한 번 더 느꼈다. "신동엽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빨치산도 아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며, 니힐리스트였다. 그는 '세련된 사회주의'를 꿈꾸던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p178) <신동엽 문학기행>은 부여시대와 서울시대로 나뉘어 시인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작품을 접하니 그의 사상과 시정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서사시 <금강> 시집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시인의 서울시대는 자료가 미비하여 신동엽학회에서 그의 행적을 따라 작품과 궤적을 찾아냈다. 그 과정에 나온 시와 배경을 살펴보면 시의 의미가 저절로 쉽게 스며든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시인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시를 생각하고 썼구나. 그런데 39세 나이로 단명하다니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가 시인을 영원히 살게 하고 있다. 그의 고향 부여에 꼭 찾아 가보고 싶다. 이런 개안 과정에 희열을 느낀다. 일일우일신(日日又日新)의 기쁨이다. 감사합니다. 현재 중학교 국어책에 등재된 시,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많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은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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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음력 윤 6월 10일, 동남리 294번지 궁남지 인근에서 그는 농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곳은 동남리 501-3 초가집으로 ,1985년 유족과 문인에 의해 복원,보존되었으며 2007년 7월 3일부터는 부여군에 의해 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고 부여군수 명의의 글이 신동엽 가옥터에 적혀 있다.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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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이 죽은 지 50년도 더 지났으므로, 그의 자취는 거의 사라졌겠고, 오직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정신과 사상을 반추해 보며, 그를 그리워해 봅니다.
이 책은 신동엽시인을 아는 11인의 지인들 -시인이거나 문학 평론가 등-이 시인의 삶과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고 설명해 주는 인문교양 지리지입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시인의 고향 등의 이야기인 부여시대, 시인이 국어 교사로 재직했고 작품 활동을 했던 서울시대, 제주도 여행과 그의 노동관과 세계관, 시비와 묘비에 대한 내용인 제주도와 문학관으로 대별하였습니다.
그는 30세 때인 1959년도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라는 작품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출품하여 입선하여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 4월 7일 서른아홉의 나이에 타계했으므로, 그의 문학 활동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를 기리는 시비가 전국에 다섯 곳에 세워질 정도로 문인으로서의 향기와 자취는 결코 희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더욱 아쉬워하는가 봅니다.
그의 고향이 금강 물줄기인 부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백제의 운명을 주관화시켰으며, 그 뒤 일어난 민중의 란인 동학란과 4.19와 5.16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빠르게 미국과 일본에 종속되는 격동기를 살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시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으며, 항상 저항과 도전의 정신으로 일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좌파시인이라는 혐의를 받았음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시, ‘껍데기는 가라’가 지금도 큰 울림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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