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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변화의 급박함을 기록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인데, 또 한 가지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내가 여태 해온 거리 사진이 앞으로는 절대 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태가 3년이 다 돼간다. 코로나가 인간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위험을 증명했을 때, 전 세계는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자국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넓게는 특정 국가와 교류를 끊고 좁게는 한 지역을 봉쇄하는 등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각자 도생의 시대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꺼져가는 불빛 속에 상냥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별빛이 떠난 거리>는 그런 사람들을 기록한 에세이다. 책 속에 실린 흑백 사진은 마치 별빛이 떠난 거리의 색채를 옮겨놓은 것처럼 무채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풍경이 된 인물의 얼굴에서 따뜻한 결연함을 찾을 수 있다. 책의 저자 빌 헤이스는 사진기를 들고 그들의 장면 속으로 뛰어들어 기꺼이 함께한다.
“우울증에 대해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우울증을 ‘하나의 우울함’으로, 마치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인 것으로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코로나가 가져온 거리 두기는 개인화 가속화에 불을 붙였다. 개개인의 삶, 나의 삶은 위태로운 팬데믹 시대에 폭풍 앞에 놓인 촛불처럼 너무도 연약했다. 그래서 모두가 각자도생으로, 홀로 심지를 불태우기로 결심했다. 우리들이 고고하게 홀로 서있는 동안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을 묵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가는 저마다 다른 열기를 품은 수많은 촛불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망라하여 그들의 입맛에 맞게 규격화했다. 규격화된 집단은 외부의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천사에서 악마로 타락시킬 수 있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악마로 규정된 집단에 ‘나’가 속해 있지 않으면 될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존중받을 수 없다. 국가도, 집단도, 심지어 개인마저도 짓밟아 버리는 가치를 누가 존중해 준단 말인가.
“벌써 몇 년째 집에서 일을 해온 내 입장에서 상상하기에는, 집에 머물고 집에서 일해야 한다는 명령에 따르는 게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 더 쉬운 일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 또한 도움이 된다.”
“마크는 훌륭한 음악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중 몇 곡을 자신의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마크는 그 리스트를 “팬데믹 시대의 플레이리스트”라고 불렀는데,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옛날 R&B 곡들이었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잡단으로 생각하여 풀어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는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흑백 사진과도 같다. 하지만 저자 빌 헤이스가 담은 흑백 사진 속 풍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각 챕터마다 나열된 흑백 사진은 빠르게 변화하는 팬데믹 시대에서 개인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포착했다. 뉴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한 날갯짓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류의 보편화된 정서를 공유하고 있어 우리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내 생각에, 우린 모두 일종의 PTSD를 겪게 될 거 같아. 난 벌써 겪고 있는 거 같고. 결국엔 우리 모두가 이걸 통해 연결돼 있잖아. 그리고 지금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조심성과 자각, 이런 게 너무 자랑스럽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
거리 두기로 인한 사회적 단절은 마스크 규제가 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재하고 있다. 2020년에 우리에게 찾아온 위협은 한 번도 겪지 못한 유형이어서 범지구적으로 PTSD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생존에 특화된 뇌는 한 번 내재된 공포를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한다. 즉, 우리는 앞으로 평생 팬데믹과 관련된 PTSD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전 세계인들 모두가 단절과 상실에 관한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에서 두터운 벽을 부서 주는 열쇠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멈춰버린 흑백 풍경 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자. 그곳에서 마주친 아픔과 고독을 외면하지 않고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다면 사회가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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