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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갔더니 처음 본 여고 한 해 선배는 어리숙한 후배 손을 이끌고 동아리 방으로 데려갔다. 선배 말 들어야 하는 거 알제? 함서. 그렇게 발을 들인 곳이 혜명이라는 불교 동아리였고, 생전 처음 불교를 접하며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그곳에서 5년 반을 보냈다. 선배의 죽비 소리에 맞춰 1,000배 절을 해도, 이른 아침에 홀로 동아리 방에 앉아 목탁을 칠 때도 나는 스스로 불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30대 후반 내 마음의 고민을 풀어내는 방식이, 세상을 보는 태도가 불교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때부터 나는 자신을 불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인연의 고리가 물리고 물리며 기후변화 씨네톡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자막을 맡게 되었다. 지금까지 스무 편 정도 자막을 만들었다. 대개 일은 그 일 자체가 막연히 좋기보다는,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일깨우고, 자극받고, 다시 나아가게 하고, 어떤 때는 견디고, 견뎌본 결과를 나중에 확인하고... 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일이 좋구나, 라고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이 그랬다. 기후 위기를 알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 문제를 고민하고, 생태계와의 조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자연에 경외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안의 어느 지점을 건드리며 아침마다 노트북 앞으로 나를 앉혔고, 하루 18시간 집중하며 몇 초씩 만지며 나아가게 했다. 그들의 말을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싶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붓다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고,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고, 내가 그림에서 표현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즐겁게 초 단위로 나를 집어넣는다. 붓다의 가르침을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행동할 것인가, 막연히나마 생각한다. 여전히 난 뭘 모르고, 엉성하며 온통 흐릿하다. 그저 살고, 하고, 본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한다. 이 시대에, 생태 문제와 여러 문제에 종교의 입장에서, 불교의 입장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행동할 것인지 고민해온,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nter-religious Climate and Ecology Network)의 민정희 사무총장이 에코다르마라는 불교 행동철학을 주장한 David Loy 박사의 책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을 번역해서 냈다. 맡은 직책이 부여하는 온갖 역할과 일들로 늘 바빠, 도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한 이분은 몇 년 만에 겨우 사흘이란 시간을 빼낸 휴가지에서 바다를 앞에 두고도 노트북을 열어 저 책을 번역했다. 그간 막연히 보고 듣는 불교와 우리가 제대로 마주해야 하는 불교는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