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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개신교인이라면 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대형교회일 확률이 매우 큽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일반적인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민중 신학자로서 바라보는 교회는 어떠한 모습일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저자의 글은 다채로운 그리스도교의 색깔 중에서 무엇을 나타낼지 궁금해집니다. 특별히 대형교회라는 모습과 그 안에서 발현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보수주의를 살펴봄에 있어서 말입니다.
목회자라면 예수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시대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와 더불어 알맞은 형태로의 전달(혹은 전도와 선교)이 필요합니다.
저자의 분석과 표현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대형교회는 1990년대 후반에 대형교회를 이룩한 ‘후발 대형교회’(대표적으로는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입니다. 그들의 대다수는 일명 ‘가나안 성도’라고 부르는 ‘수평이동 신자들’(저자는 이를 글에서 ‘주권신자’라는 표현으로 설명을 합니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강남권에 위치하며(강동, 강남, 분당으로 구성된), 이들은 중상위 계층의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한국 사회의 파워 엘리트 중 40% 정도가 개신교 신자라고 합니다. 이와 다르게 기존의 대형교회들은 (저자의 표현으로는 ‘선발 대형교회’ 대표적 예: 영락교회)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해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구성원들의 대다수는 월남한 실향민이거나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저소득층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엘리트적인 교육을 받기보단 부족한 교육과 자원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위에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저자는 199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하여 대형교회들의 구성원과 리더십의 차이를 분석하여 나가며 어떻게 교회를 대형화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정치와 사회의 관계를 분석하며, 교회 안으로 웰빙이라는 시대적 문화적 흐름과 보수주의가 결합하여 들어오게 된 부분들을 심층 분석하여 줍니다.
과거처럼(선발 대형교회의 상황) 재산의 증식을 위해서도,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서도, 세대주의적인 종말론 밖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은 강남에 사는 중상위 계층의 개신교인들은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고, 지금 현재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안내해줄 교회를 찾아다닌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여(캐릭터화 된 교회) 대형화 된 곳이 후발대형교회라고 필자는 계속해서 주장합니다.
교회의 대형화 자체로는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수주의라는 이념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안에 갇혀서 자신의 상태를 그리고 주변에 있는 타자들의 안녕을 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철옹성(크리스텐덤화)을 만들어가기에 (매우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으로)우려됩니다.
기존의 가치를 지켜나가고 유지한다는 것에 의의를 가질 수 있는 보수주의와 안정적이면서도 모두를 위해 행복함을 추구하는 가치인 웰빙은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능적 가치들을 오용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저자의 글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위에서 예시를 들은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이 책을 톨레 레게하기를 바라며 (보수와 진보의 가치는 함께 갈 때에 더욱 아름답기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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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 속에서 내가 기독교임을 밝히는 게 껄끄러울 때가 있다. 교회의 세습, 기독교 보수 단체의 혐오 조장, 정권유착의 정황이나 그릇된 성 문제까지 교회가 닿지 않은 곳이 없음을 언론을 통해 확인할 때 내가 마치 가해자가 된 듯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힌트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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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사회 변화에 맞물려 개신교의 초점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는 점이 유익했다. 그 흐름 속에서 한 시기를 꼽아보자면 한국전쟁 이후 개신교가 각종 지원을 차지하고 사회를 우익 성향(반공주의 조장)으로 전환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부분이었다. 이게 개신교가 주도한 첫 번째 혐오주의가 아니었나 싶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나는 신앙과 용서, 복음에 대해 생각하며 주인공들의 삶을 바라봤다. 그때 언뜻 한 개인의 사회적 진영 자체가 복음의 여부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진보주의, 보수주의 중 어느 쪽이냐로 신앙의 깊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시작은 권력과 탐욕 위에 반석을 세웠다는 의심이 거둬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우리나라 보수 정권 자체가 부패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로도 개신교의 부흥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소망교회 등을 통해 이어지게 되는데, 민주주의와 소비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외환 위기 등 대중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기독교적 리더십을 달리 설정하면서 입지를 다진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 학교, 부부 학교, 청년 영성 훈련 등에 참여한 적이 있는 나로써는 모든 설명이 내 역사와 맞물려 착착 이해가 됐다.
그중 놀라웠던 또 한 가지 방향성은 대안학교의 유행을 선두하는 모습이었다. 외환 위기 시대를 겪은 이후 목사가 학력과 스팩을 쌓아 교회를 기업화하는 과정은 어쩌면 경제 원리상 당연한 수순이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웰빙보수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나는 이 대안교육에 있다고 읽었다. 남과 다른 교육으로 신앙과 교양, 학력(나아가서는 사회적 지위)을 모두 잡겠다는 신앙인의 욕심이 결국 교육의 소비를 더 부추기게 된 것이다.
어떤 이는 기독교인이 물질과 명예를 신에게 구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한다. 신이 내린 축복의 일환이라면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그것을 베풀며 산다고, 그런 성경 속 인물도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말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주어지는 복과 내가 나서서 쫓는 복에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 기독교, 특히 보수 개신교의 탄생과 번영, 권위 유지를 위한 도발(이 책에 적힌 내용을 빌리자면 '전광훈 현상') 등의 일련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텍스트였지만 아쉬움은 있다.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라는 21세기형 개신교의 현주소보다 더 궁금한 부분은 '그래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또렷한 답을 얻지 못했다.
현재 나는 출석하는 교회가 딱히 없는 기독교 신자다. 성경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설교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출석하던 교회에서 진정한 회개와 복음, 신앙의 실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새로운 교회를 찾는 중이다. 그리고 아직까지(2년 정도 됐다) 교회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상태라서 안에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교회의 부조리를 이 책을 보며 더 무릎을 치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서 더 서글픈 책이기도 하다. 신앙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개신교 패러다임에 갇혀 어리석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개신교의 그릇됨을 전달하기에는 좋은 책이지만 신앙적 해석이 결여된 점은 끝내 아쉽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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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 김진호
이 책의 저자인 김진호 목사님은 예전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몇번 뵌적이 있다. 우리나라 민중신학을 이어오는 분으로 알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을 구입한게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SNS등을 통해서 저자의 글을 가끔 읽어보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한 경우가 참 많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 대형교회를 분석한 책을 출판했으니 관심이 갔고, 이번에 YES24에서 서평단을 받기에 신청했는데 선정되어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대형교회를 1995년을 기준으로 선발대형교회와 후발대형교회로 구분한다. 선발대형교회는 담임목사 1인의 카리스마로 교회가 급속히 성장했으며 새신자의 유입으로 대형교회가 되었다. 그에 비해 후발대형교회는 담임목사 1인의 카리스마보다는 사회의 발전에 힘입어 발전한 대중인 주권신자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교회가 제공함으로써 신자들의 수평적 이동을 통해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선발대형교회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영락교회를 꼽고 후발대형교회의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온누리교회와 사랑의 교회를 꼽는다.
사랑의교회는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신앙을 이성적으로 이끄는 제자훈련을 통해, 온누리교회는 성령운동을 통해 신앙의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귀족영성을 통해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다른 교회들이 두 교회를 롤모델로 삼고 성장을 시도했지만 많은 노력과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기에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후발대형교회의 성장동력을 저자는 웰빙보수주의라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신자들의 웰빙욕구를 채워주는 보수적인 성향이 특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대형교회들은 부를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았다는 청부론, 신자유주의적인 귀족교육, 청년에게 이어지는 인맥시장, 웰빙보수주의적 선교활동 등을 통해 계속 성장해간다.
선발대형교회는 담임목사 1인의 카리스마에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다면 후발대형교회는 담임목사와 당회 등 소수의 지도자층에게 힘이 집중되어 있다. 즉 교회를 움직히는 힘이 일부에 집중되어 있는것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또한 웰빙보수주의는 사회의 약자, 소수자에 대해서 책임을 그들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그들을 자연스럽게 배척하게 된다.
그리고 보론으로 한경직, 전광훈, 신천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 교회의 발전과 문제점들을 살펴본다. 이런점이 좋고, 저런점이 잘못되었다 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고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상당히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나라 대형교회의 발전을 큰 그림으로 훑어 볼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사회의 현상을 분석하는 이런 책들을 보면 그냥 하나의 해석일 뿐이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다보니 어떤 부분의 분석은 납득이 가는 반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다른 부분은 후발대형교회가 담임목사 1인의 카리스마가 아닌 주권신자들의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성장했다는 부분이다. 나는 여전히 후발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 1인의 카리스마가 강력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었던 온누리교회나 사랑의교회 모습을 보면 여전히 담임목사 1인에 의해 교회가 좌지우지 되는 것을 본다. 온누리교회의 이재훈목사의 창조과학 지지는 온누리교회의 열린 모습을 변화시켜버렸고, 사랑의교회 오정현목사의 퍼포먼스는 옥한흠목사의 제자훈련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성장은 계속 된다. 즉 주권신자의 욕구를 빠르게 캐치하고 충족시켜주는데 담임목사의 카리스마가 사용될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카리스마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 특유의 날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선발/후발대형교회로 나누고 그 성장 동력에 대한 분석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웰빙보수주의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은 매우 예리한 지적으로 보인다.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웰빙을 추구하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낮아지심, 사랑을 잊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낮아지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서는 돈 몇푼 쥐어주고 공동체에서는 배척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돌아본다.
1990년대, 2000년대를 통해 대형교회는 계속 생겼지만, 기독교 전체 신자수는 정체를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그 감소추세가 심상치 않다. 교회끼리도 사회처럼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해지는 양극화가 점점 커지고 있다. 몇몇 대형교회에서는 양극화를 줄이고 수평이동을 통한 성장을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그렇게 효과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교회가 커지는 것이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가 커지는 것을 막고자하는 노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약하고 소외되는 이들을 어떻게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생각한다. 어렵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되어야 하는 것이 그들을 우리의 공동체로 인정하고 함께 하는 일이다. 소외되고 차별받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고 배쳑하고 차별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돈 몇푼 쥐어주고 우리가 할 것을 다 했다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만이다. 예수님은 어려운 이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과 함께하셨다. 교회는, 기독교인들은 웰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헐벗음, 가난함을 추구해야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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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기독교의 보수적 근원 특히 대형교회, 전광훈이나 조용기와 같은 권위주의적 목사 중심의 교회가 보수주의의 첨병인 이유를 설명한다.
사실 기독교 자체가 라인홀트 니부어를 필두로 한 해방신학 시점을 제외한다면 진보적 위치를 차지한 적이 없긴 하다. 따라서 기독교가 보수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에 가깝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마틴 루터만 보더라도, 매우 혁신적인 개혁가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체제의 변호자였다. 루터가 독일 농민 봉기 시절 보여줬던 모습은 많은 비평가들에게 있어서도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지금까지도 그의 평가에 상당한 흠집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루터의 체제 변호적 모습을 비판했다.) 결국, 기독교는 애초에 그 기원부터가 체제에 보수주의적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 교회가 보수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초기 선교 단계에서 미국에서도 가장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선교단체가 평안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개신교 지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6.25를 기점으로 대다수의 근본주의 기독교 계열이 남한으로 내려옴에 따라 자연스레 진보적 이념에 대해 적대감을 넘어 혐오감 수준에 이르는 감정을 지니게 되었고, 이들이 그 유명한 반공 서북주의 단체들의 효시가 된다.
애초에 시작부터가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특징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 교회의 역사란 그야말로 체제 순응주의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정부 체제의 방향이 무엇을 향하는가에 따라 교회의 방향도 바뀌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교회는 가장 권위적인 목사의 힘을 빌려 성장했고, 개발도상국 답게 성장과 구원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점이 대형교회의 두가지 구분이다. 즉, 개발독재 시절의 권위주의형 대형 교회를 '선발 대형교회'라 지정하고, 민주주의 이후 성장한 대형교회를 '후발 대형교회'라 지칭하는데. 둘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선발 대형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자의 힘이 중요하다면. 후발 대형교회에서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교육받고 지식있는 소위 '주권신자'를 붙잡는 테마가 중요했다.
특히 개발독재 중심주의 시절 민중이 정부의 요구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호응 했던 것처럼, 선발 대형교회는 카리스마적 존재가 신도들을 이끌며 쭈욱 빨아들이고 성장하는 형태였다면. 후발 대형교회는 중산층에 자리 잡은 신도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곳을 찾기 위해 교회를 떠나면서,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와 관련한다. 따라서 후발 대형교회는 신자유주의의 원칙에 따라 '주권신자'를 붙잡기 위한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했고, 여기서 성공한 사례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후발 대형교회의 대한 이야기도 따지고보면, 사회체제에 순응하여 변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히 보여주는 것 같다. 즉,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요소들을 교회가 그대로 흡수하게 되었다. 특히 노무현 -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의 가치는 '웰빙'이란 단어로 자주 묘사되는데, 교회가 이 개념을 차용하여 자신의 신도를 그 사회에 순응하게끔 만든다.
이후 서술은 대부분 교회의 '웰빙'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족, 선교, 청년모임 등과 같이 대형교회의 세부조직들의 활동과 행태를 살펴가며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기독교가 보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사회 체제(혹은 정부의 지침)의 방향에 녹아들고 순응하면서 변화하는 모습과 관련한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는 사실 종교와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세속주의가 중심에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제목만 보면 굉장히 도발적인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지만 실상 내용은 그렇게까지 날카롭진 않다. 그저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한국 교회의 변천사를 보는 느낌이다.
오히려 본문 보다는, 이후에 서술되는 보론들 '전광훈 현상'이나 '신천지 현상'에 대한 서술에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과 시선이 번뜩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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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 리뷰입니다. 사실 좀 독특한 책이 추가된 케이스 입니다. 이 책에 관해서는 정말 사전 정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기니느 합니다만, 그래도 일단 리스트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한 이야기 이기는 해서 말이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개신교에 관해서 가장 기묘하게 다가오는 면은, 현대 사회에서 개신교는 상당히 우파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는 쪽으로 주로 이야기 되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틴 루터가 개신교를 만들면서 한 이야기는 간단했습니다. 기존에 가톨릭은 완전히 썩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비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관직을 거래 하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었고, 권력의 핵심에 서서 정치에 앞장서고 있었으며, 부정 부패를 넘어 내부에서 금기시 하는 여러 조항들을 스스로 신성성을 들어 가며 마구 어기고 있었던 겁니다. 개신교의 기본 탄생은 결국 기존의 가톨릭이 가졌던 여러 문제들을 이겨내고, 좀 더 근본적인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탐구 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과도한 금욕주의로 인해서 이야기가 초반에는 완성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리아를 배제한 식으로 유일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지금의 모습을 완성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신을 섬기는, 또 다른 종교가 된 것이죠. 사실상, 기존의 부패 새력이 된 존재를 이겨내기 위해서, 그리고 좀 더 신앙의 근본을 건드리기 위해서 탄생한 종교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특히나 한국과 미국의 개신교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겉으로 가장 많이 드러내고 활동하는 쪽은 소위 말 하는 보수이자 우파입니다. 사실상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종교적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 왜 종교가 그 자리에 머무르자고 말 하기 시작했는지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는 그 질문을 아무도 던지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사이비 내지는 이단 딱지를 붙이고 탄압하려 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죠. 그리고 가장 뉴스에 많이 나오는 목사는 극우의 전도사 역할까지 하고 말입니다. 이 책은 그 이유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종교가 정치의 한 축을 스스로 떠맡았는지, 게다가 양쪽 모두를 끌어안고 가는 대신 한쪽편을 극렬하게 들고 있는지에 관해서 그 이유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속에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그로 인한 부수적인 효과, 그리고 이 효과에 의한 소위 말 하는 ‘세속적 타락’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책에서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고, 세력화 라는 사회적인 표현을 쓰고 있죠. 이 책에서 내세우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이 모든 것들이 역사적인 배경에서 시작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역사에 관해서는 기독교가 굉장히 다시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역사이기도 하죠.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신앙으로 모이고,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이유는, 결국에는 세력 자랑으로서의 모습을 가져가고 있기도 한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형성한 세력이 국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와도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운동이 벌어진 곳이 하필 최대의 탄압이 벌어진 곳이라는 점 덕분에 당대 정부와 연대를 할 명분이 생긴 것이죠. 그리고 이 상황에서 종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확실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말 그대로 정권이 거대 교회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교회는 결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되죠. 그리고 그렇게 세력화된 교회는 현대 사회의 기득권이 필요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하나의 세력이 된 교회가, 그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하는 여러 일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말 그대로 종교적인 신념을 가장한, 사람들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숭고한 종교적인 신념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간 사람들의 인간적이 욕망에 관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은 비판을 일부러 밀어붙이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책에서 주로 쓰고 있는 것은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진행 되면서 나온 결과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죠. 우리 사회의 병폐라고, 이렇게 되었다고 바로 욕을 하기 보다는, 종교라는 이름 하에 왜 그렇게 기묘한 요소들이 서로 뒤섞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덕분에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꽤나 논리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으며, 일부러라도 한 번 생각 해볼만한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걱정되는 것이, 결국에는 이야기를 너무 학구적으로만 끌고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이 책에서 선을 긋는 것은 바로 그 학구적인 면입니다. 종교적인 면에 대한 연구라기 보다는, 그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그 와중에 사명감이 더해지면서 좀 더 쉽고 빠르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는 면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벌어지는 여러 일들에 괗나여 한 번쯤 직접 생각 해보게 해주는 면을 가져가게 되었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이야기를 한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말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더 힘들고 삭막한 삶이 될 거라고 봅니다. 인간에게 도덕적인 면을 다른 한 편으로 일깨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이 책은 그 존재가 어떻게 정치적인 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스스로가 권력으로서의 면모를 교묘하게 숨기고 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에 관해서 제대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