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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無化)...' 존재의 소멸, 그건 예정된 운명이다. 모든 존재가 언제고 한 번은 반드시 다다르게 되는 종착지.
하지만, '네, 데려다 주세요.'하고 가만히 있는 승객은 없다. 어떻게든 그 정해진 궤도로 부터 이탈하고 싶어한다. 가게 될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가고 싶지는 않다는 몸부림. 사람의 실존이란 어쩌면 그 무화로 부터 벗어나고픈 몸부림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류소영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 '개미, 내 가여운 개미'를 읽었다. 12년만에 내어놓는 단편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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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표지에 커다랗게 부각된 녹고 있는 하드. 그 꼭대기로 열심히 기어 올라가는 개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표지 자체가 우리 몸부림의 허망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개미는 열심히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지만 그 보람도 없이 그가 걸어 온 세계는 이제 곧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신화 속에 시지프스가 그랬듯이 개미가 그렇게 걸음으로 해서 얻고자 했던 의미 역시 더불어 허공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시지프스의 허무를 이야기하면서 알베르 카뮈는 삶이 이러할진데 왜 우리는 자살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다. 같은 질문을 류소영 작가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흔적도 없이 지워질 삶이라면 이렇게 바둥거리고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설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 '왜'이거나 혹은 그에 대한 대답들이다.
첫 단편, '물소리'가 그 '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서 주인공인 여성은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뒤늦게 역사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온 만학도이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 일하면서 매일 소멸속으로 마모되어가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뭔가 자신만의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대학원으로 왔던 것이다. 한 마디로 무화에서 벗어나고픈 몸부림, 개미가 첫 걸음을 뗀 것이다. 하지만 변화엔 언제나 치뤄야만하는 대가가 있다. 그녀도 그랬다. 안정된 세계에서 뛰쳐나와 불안정한 세계로 접어들자 자기 책임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져서인지 삶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무거워진 것이다. 우리에서 풀려나온 동물이 이제 스스로 세 끼의 밥과 안전한 잠자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곤혹스러워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녀에게 삶은 이제 아주 '시리고 또 시린' 것. 봄이 와도 '음산하게 흐린' 것만 느껴질 뿐이 된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운,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녀이기에 어느날 찾아온 사랑마저도 꼬깃 접어버리게 만든다.
'물소리'는 그런 그녀의 어느 봄날 하게 된 여행을 담고 있다. 그녀는 지도 교수의 제안으로 수몰예정지구로 가고 있다. 이제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 땅으로. 그것은 표지의 녹고 있는 하드를 연상시킨다. 또한 그것은 그대로 그녀의 불안과도 닮아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했는데 이 선택 또한 무의미해버리면 어떡하지?'. '수몰예정'은 그런 불안의 다른 말인 것이다.
과연 거기서 그녀가 보는 것은 '무화'의 범람이다. 이제 곧 수장되어 사라질 것으로 가득한 세상. 그 오랜 시간에 걸쳐온 일상과 기억이 '무연한 과거'가 되어 사라질 찰라에 놓여있었다. 지도 교수는 그 하나하나를 똑똑히 눈에 박아두라고 한다. 그 소멸의 과정을 '목격'이라는 형태로 기록하면서 그녀가 듣게 되는 건 물소리이다. 모든 존재를 무화로 만드는 서서히 차오르는 찰박찰박한 물소리, 쿨렁쿨렁한 물소리. 삶이란 어쩌면 그런 물소리를 늘 들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소리'는 그와 같은 목격으로 끝이 나는데, 이것의 의미심장한 것은 나머지 단편들이 결국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목격이기 때문이다. 즉 '개미, 내 가여운 개미'의 단편들은 '수몰 예정'인 존재들이 단편 '물소리'에서 수몰 예정 지구의 노인들이 거기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과도 같이 그래도 이대로 수몰되지 않겠다는 몸부림을 하나하나 포착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건 표제작 '개미, 내 가여운 개미'처럼 '폭식증'일 수도 있고 '또 밤이 오면'처럼 결국은 그렇고 그런 일상으로 부머랭처럼 돌아오겠지만 한 때의 가출일 수도 있다. 혹은 '옷 잘 입는 여자'에서처럼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고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사는 것일수도 있고 '기록'처럼 아무리 하잘 것 없는 것이라 해도 그래도 남들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일수도 있다. 이런 목격이다. 그런 기록이다. '물소리'의 주인공이 하는 일을 고려하자면 '개미, 내 가여운 개미'의 단편들은 결국 녹아버릴 하드 위를 그래도 열심히 걸어왔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묶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철저히 무색무취하고자 했으며, 언제나 자기 속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녀는 한 마리 개미처럼 느껴졌다.(단편 '개미, 내 가여운 개미' p.59)
말하자면 이런 개미들의 역사. 그러니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왜 계속 걸어야 하는 것일까? 그 두려운 예감을 안고서?'
아마도 그건 설사 속절없이 수장된다고 하더라도 그냥 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집의 단편들이 주로 목격이나 기록의 형태가 된 것이 그 때문인 것 같다. 사라지는 무언가는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긴다는 것. 그 흔적은 목격이나 기억의 형태가 되어 남들에게로 이어진다는 것. 그렇게 전적으로 무화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물소리'의 교수는 수몰되는 모든 것을 똑똑히 눈에 박아두라고 말한다. 그 교수가 그 지역에 얽힌 개인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언제고 다시 그 자취를 기억의 형태로 떠올리기 위해서다.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죽어버린 폭식증을 겪고 있었던 형수의 여동생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또 밤이 오면'은 가출한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옷 잘입는 여자'는 옷 잘입는 여자를 지켜보았던 한 남자의 입장에서 기록되고 있다.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단편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기록'이다. '윤미와 춤을'에서 이야기되는 윤미도 오빠와 그 친구 입장에서 이야기되고 있고 '꽃마차는 달려갑니다'와 마지막 '기억할만한 마주침'도 모두 회상과 목격의 형태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렇게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존재의 잔여를 추적하고 결국 그 모두는 수몰되거가 곧 될 예정이지만 이야기 자체로 결코 망각되지 않을 존재의 함량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그러니 이야기되는 형식 자체가 바로 우리 걸음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생각해보면 이 소설들에서도 정작 이야기되는 그 대상 자체는 그가 그렇게 남겨질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혹은 그녀의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기억되며 이야기되었다. 무화가 정말 두려운 것이 이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있다면 이것으로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는 셈이다. 우리가 지금 내딛는 걸음 자체가 비록 곧 바람에 그 흔적이 지워질 사막 위라 하더라도 결국엔 나의 예정된 '무화'를 막는 시도이며 예상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의 걸음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 더운 날, 시원한 하드 위를 걸었던 개미는 비록 자신이 걸어왔던 하드는 녹고 없어졌을지라도 여섯 개의 발에 와 닿았던 시원한 감촉만은 분명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촉이 그 걸어왔던 장대한 거리를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결국 익사당하지 않으려면 몸부림을 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나를 건져올릴 유일한 구원인 것이다.
그렇게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오늘의 몸부림을, 오늘 내 딛는 한 걸음을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이야기였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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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내 가여운 개미'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은 왠지 아련함과 안타까움 입니다 . 소설집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책의 표지에는 녹아들어가는 아이스바 위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개미 한마리가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제목과 연관된 표지려니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 멍하니 표지를 보다 이제는 개미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네요.
너무나 거대하고 달콤한 아이스바에 황홀해 할지 아니면 발을 빼고 싶은데 점점 녹아들어가는 아이스바에 갇혀 발버둥을 치고 있을지 말이에요. 아마도 아이스바를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황홀했을 것이고 차츰 그 달콤함이라는 유혹에 빠져 녹아가는 아이스바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 같아요.
책속의 인물들도 각자의 삶속에서 혹은 황활함에 빠져있거나 혹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거나 하는 상태입니다. 그들 각자는 사회라는 틀속에 속해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문제거리를 가지고 자신만의 소외된 감정속에서 힘겹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책속의 등장인물이 내뱉은 말중에서 기억에 나는 부분들이 몇부분이 있습니다. 인상깊게 읽었던 물소리에서는 "사는게 신맛이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입니다.
혀끝에 와닿는 신맛은 상큼하기도 하고 강렬한 신맛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기하는 맛인데요.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그러한 신맛에도 적응을 하게 되어 처음과 같은 강렬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맛 그게 바로 물소리의 주인공이 삶에 대해 느끼는 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미, 내 가여운 개미에서는 일상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이나 상처를 보여주는데요.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화성인처럼 보여질수도 있는 비밀이라는 것 그것은 바로 삶이 무서워 생긴 삶의 비애이면서 투쟁의 흔적이 아닐까요?
개미, 내 가여운 개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결핍이나 부재, 삶의 비애 그리고 불완전함을 일깨워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불안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데요. 깊이 있는 눈으로 인생을 통찰하고 있는 작가의 시각에 놀라게 되네요.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소설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일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류소영씨의 소설집 '개미, 내 가여운 개미'속에는 균형을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균형은 이책을 통해 삶의 과정속에서 가지게 되는 상처의 치유와 이해입니다.
인간의 욕망이란 결핍에서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그때는 그 말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개미, 내가여운 개미'라는 소설집을 읽게 되고 많은 소설속 등장인물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니 그말이 이해가 됩니다. 결핍을 느끼는 것은 삶의 열망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일깨워준 개미, 내가운 개미가 주는 감동은 오래도록 마음의 상념으로 남아있을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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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내 가여운 개미..란 제목을 보니 항상 열심히, 바삐 움직이며 일하는 개미가 떠오르면서 그런 개미와 참 많이 닮은 우리 엄마가 떠오릅니다.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엄마, 내 가여운 우리 엄마..
자식들 걱정이 끊이질 않고 자식들에게 뭐든 막 주시고 싶은 착하고 착한 우리엄마..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안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보일 듯 말듯 어쩌면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추억을 꺼내 보듯 정감있고 아쉬우면서도 힘을 내자고 스스로에게 응원하고 다독이며 다시금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동기를 주는 애틋함이 서려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까지 가야하는 지 막막하지만 걸어온 길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 지는 배워 가며 한 발 한 발 떼게 되지요.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속 이야기들은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계속 이어질 이야기가 더 몹시도 궁금해지고.. 계속 가야할 것 같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앞으로가 더 몹시 궁금하고 그래서 멈추지 않고 힘을 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보지 않고는 그 속을.. 그 깊이를 알 수 없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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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하고 애잔한 느낌이 물씬 드는 책이다. 처음 봤을 땐 그저 표지 빛깔이 즉석사진의 그것처럼 느껴져 색감이 예쁘고 상큼하다 여겨졌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바랜듯한 빛깔과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의 형태가 어쩐지 마음 쓰인다.
조용하고 서늘한 느낌의 단편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글이라고 눈에 새겨달라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거나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듣건 혹은 듣지 않고 있건 그저 자신은 이렇다고 혼잣말을 하듯 지나가듯 툭 던지듯 이야기 하나를 자리에 남겨두는 식이다. 누가 두고 간 이미 다 지나버린 이야기를 줍듯이 쓸어보듯이 읽게 되는 책.
표제작인 '개미, 내 가여운 개미'와 '옷 잘 입는 여자'도 그렇고 '윤미와 춤을'도 어느 부분 상처, 상실 어쩌면 결핍이나 결여로 표현될 수 있는 삶의 모서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놓은 것 같았다. 내 삶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다보면 어디서 불쑥 모서리 하나가 솟아오르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모서리를 죄 깎고 갈아엎어 없던 것처럼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모서리 근처에도 가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그런데 류소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저 속절없이 그 모서리에 긁히고 걸려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모서리를, 모른척하기에도 너무 심약한 인물들. 애틋하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어 읽다보면 마음 한구석이 허하다가도 한장한장 책장이 그 구석에 찬찬히 쌓여가는 느낌을 준다. 책을 읽고 나서 [없는 듯하지만 주변에 꼭 하나씩 있는 '희미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개 문구를 보면서 그 희미함을 떠올려보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정말로 희미해 그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희미한 탓이리라. 나에게 이런 애틋함을 향한 애정이 없었던 것일까 바로 그들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처음엔 표지에 놓여진 개미를 보고 나도 모르게 지긋이 손으로 눌러 없애려 생각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그 개미를 보고 있자니 그 위에 침을 조금 묻힌 검지 손가락을 올려 찍어 다시 입으로 가져가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마치 내 마음 속에도 어딘가 모서리가 있어 그 곳에 '개미, 내 가여운 개미'를 보내고 싶은 것처럼.
늦여름을 앞둔 날 자신을 쉬게 해주고 싶을 때 천천한 호흡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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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소중했던 사람들이 있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할 수 없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훗날 선명한 기억을 찾을 수 없다. 존재가 부재의 증거였던 사람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류소영의 소설집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선명보다는 희미하게 존재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표제작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화자의 사돈인 신주연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얼만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던 그녀는 학원강사를 하며 폭식증을 앓고 있었다. 한 밤에 음식을 먹는 모습을 화자에게 들키고 난 후 둘은 전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다. 폭식의 원인으로 심리적인 처방을 받은 그녀는 어린 시절 개미를 먹는 모습에 화를 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살아온 그녀에게 무엇을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누구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건 전부였을 것이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철저히 무색무취하고자 했으며, 언제나 묵묵하게 자기 속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녀는 한 마리 개미처럼 느껴졌다.’ (「개미, 내 가여운 개미」, 59쪽)
묵묵하게 자기만의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한 마리의 작은 개미가 겹쳐진다. 류소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그러하다.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나의 삶을 들려준다. 친구와 화자의 대화로만 구성된「윤미와 춤을」에서 주인공은 윤미다. 화자는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여동생이 혼자 달리기를 하고 춤을 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착각을 한다. 다 안다고 믿는 것이다.
「옷 잘 입는 여자」는 화자가 직장동료인 윤세연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화자는 저녁 일곱시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일하는 직장에 다닌다. 윤세연은 사내에서 옷 잘 입는 여자다. 말이 많거나 웃음이 많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화자는 우연히 윤세연과 대화 중 그녀에게 아픈 어머니가 있다는 걸 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직장을 떠난다는 상상은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삶이 존재한다. 현실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일 못해 구박받지도, 그렇다고 일을 잘해 칭찬받지도 않는 것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세연 씨 실은 오래전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라고 말하여 나를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고, 그렇다고 또 누군가가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나한테 다시는 말도 붙이지 마” 하며 소리를 버럭 지르지도 않는 것이다. (중략) 자주 그 모든 관계들의 공허와 관계들의 폭력과 관계들의 피로에 지치고, 또 자주는 극도의 무기력과 극도의 자기 비하를 오가는 ‘홀로 있음’ 에 지친다. 정말이지 두 손을 들고 싶어진다.’ (「옷 잘 입는 여자」, 106~107쪽)
우리는 곁에 존재하지만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쉽게 잊는다. 하여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다. 취업준비생 화자가 ‘입안에 빨래 많이 꽂아 넣기’ 란 이상한 대회에 참석한 이야기「기록」이나 갑자기 가출한 시어머니로 인해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가족 간의 관계를 점검하는 「또 밤이 오면」이 그렇다. 반면, 우리는 부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사진처럼 기억을 동원한다. 댐이 들어서 수몰 예정인 마을에서 남겨진 것들을 눈으로 보고 그것의 존재를 기억하려는 「물소리」, 바뀐 전화번호로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예전의 사용자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어떤 안간힘이 전해져 서글프다.
기억이 생성되고 소멸하듯 존재도 그러하다. 사랑이 아닌 결혼을 선택한 세 쌍의 신혼부부의 이야기 「꽃마차는 달려갑니다」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과거란 존재를 잊는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현재일 뿐이다. 한때 선명했던 누군가는 점점 희미해진다. 어쩌면 우리 삶이 그럴지도 모른다. 하여, 희미하게 존재하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눈 감고 있는 ‘수’ 의 얼굴을 바라본다. 한문 책에 코를 박고 틀어박혀 있을 때 ‘수’ 아버지의 표정이 저런 것이 아닐까. 잠도 몰두해서 자는 듯이 눈썹 선이 긴장되어 있고, 무엇인가에 토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입꼬리가 내려가 있다. 직장 생활에 파묻혀 지내는,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최악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내 또래의 샐러리맨들을 연민하듯이, 그런 연민의 눈으로 견디고, 아이가 태어나면 내 어미, 내 어미의 어미, 또 더 더 아득한 어미들이 그랬듯 아이의 생모로서 견디고, 혹시 이 기계성의, 아니 아니, 이 식물성의 남자가 작으나마 따뜻함을 보여준다면 놀라며 감동하며 견디며…… 그렇게 세월이 흐를 것이다.’ (「꽃마차는 달려갑니다」, 19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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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이즈의 책에 녹은 듯한 아이스바에 쓰여진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여기서의 개미는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으로 대체 가능할지 모르겠다. 책의 두께로 봐서는 장편소설일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복잡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일상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보통의 사람들일수록 머릿속에 담아둔 고민과 사회 생활에서의 갈등, 가정에서의 사소한 문제점들이 더 많고 더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 하루의 삶속에서 하나의 행동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내일은 그 사람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어제 부모님께 짜증스럽게 날렸던 말들을 내일은 어떻게 되돌려놓을까?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짜증나는 일로 말다툼한것을 후회하고 내일은 사과해야지..... 라든가 모든 것이 어찌보면 사소한 일상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누구에게나 이런 상황과 생각은 언제든지 만들어지고 닥쳐오는 이야기지만 에이 그냥 넘겨버리지라고 마음을 잡고서도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차는 일상.. 이런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 부모, 형제, 아들, 친구와 동료의 관계속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일상이 아닐까? 류소영의 두번째 소설집은 일상 생활속에서도 나타나는 일들을 묶어서 전달하기에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것 같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단순함속에서 찾아보는 우리들의 고민과 연민, 사랑을 통해 나에게도 이런일이 있었지....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게된다. 단순함속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를 가볍게 터치하는 붓놀림이 좋았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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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 보면 모두 있는 듯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나도 또한 타인들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존재로 여겨질 것이고 다른 이들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무관심일지 모르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결여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 가고 있는지 모른다.요즘 누구나 하고 있는 SNS활동이며 블로그 활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쉽게 맺은 인연은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그만큼 자신 외의 타인에게 관심이 오래도록 유지 된다는 것은 힘든 세상인듯 하다. 어느 날 무척 오랜시간동안 친구로 지냈던 친구에게 사소한 오해로 인해 갑자기 친구해지가 되었다면 어떠할까? 그것이 다른 이유가 아닌 SNS의 활동을 보고 여인네들의 샘 혹은 질투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며 부담백배의 일이기도 하다. 관심을 받고 있으니 행동의 제약이 오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하는 부담이 병행하기도 하는가 하면 하나 잘못하면 전체를 잘못으로 몰고 가는 일도 있다. 저자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쉬운듯 하면서도 약간은 어려운 점도 있다.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감이 없다' 그런 인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며 밑그림이 그려지고 그녀에 의해 확연히 모습을 갖추게 된다. 존재감이 살아나게 되는데 우리 곁에도 이런 이가 있다. 혹은 살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이 있을까? 그녀가 스케치를 하며 살려내도 그 존재는 '가엽다' 라고 할 수 있다. 눈물겨운 가여움으로 인해 존재가 다시 흐려지는 듯 하다.
<물소리>,어느 수몰지역에 박교수와 함께 그이 제자들이 그곳을 찾는다. 왜 박교수는 그곳을 일부러 찾으려 할까? 수몰지역은 그야말로 수마가 할퀴고 간 것처럼 처참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땅이 제 가치를 잃은지 오래니 곳,사람도 자연도 모두 버린 곳처럼 존재 가지가 없어진 땅이다. 그곳은 박교수의 외가댁이 있었던 곳으로 어린시절의 추억 한자락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유물이나 보물을 찾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한 켠에 자리한 그 곳을 눈에 담기 위한 발걸음인데 그곳에서 아직 담기지 않은 물소리가 '찰방찰방' 나는 듯 하다. 얼마전에 수몰될 지역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환경적 가치를 따지기 보다는 국가는 국가차원의 공사만 강행하고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아 댐공사가 강행되다가 잠시 중단된 곳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이미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 한발을 걸치고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와 산다고 예전의 마을이 될 수는 없다.존재 가치를 잃은 곳이다. 그 땅의 존재가치를 국가도 주민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개미,내 가여운 개미>, 그녀가 죽었다.그것도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에 무언가 먹고 있었을까 아닐까? 폭식증에 걸린 그녀 신주연,그녀는 사돈이며 그가 맘에 두고 있던 여자였다. 남들 앞에서는 조금 밖에 먹지 않는데 남이 없는 자리에서 그녀는 폭식을 아니 흡입하듯 먹는다. 일명 폭식증환자다. 그녀의 외모는 거구에 별다르게 튀지 않는 그야말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조용조용하다. 그런 그녀가 왜 폭식증 환자가 되어야 했나? 어린시절 개미를 먹다가 엄마에게 들켜 매를 맺고 들어야 했던 말들이 트라우마처럼 그녀의 인생을 옥죄고 있다.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죽음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조카가 다시 그녀처럼 개미를 집어 입에 넣고 있다. 그녀가 흘려 버린 페르몬이 조카에게 옮겨간 것일까? 죽음 이후에 그녀가 부활하듯 그녀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결코 행복한 존재가 아니다.
<또 밤이 오면> 육십사세 그녀가 집을 나갔다. 그녀는 시어머니다. 왜 그녀가 가출을 그 나이에 했을까? 도무지 식구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며느리의 눈을 통해 그녀의 지난난 삶이 그려진다. 시골에서 살다 서울에 올라와 힘들게 살고 학교까지 마친 그녀,나이에 굴하지 않고 서예며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던 그녀가 왜 갑자기 가출을 결행했을까. 출산휴가로 아직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이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녀가 가출을 했으니 망설여진다. 시어머니이며 한 집안의 어머니인 그녀지만 그녀는 여자다. 그녀의 삶을 '엄마 혹은 어머니'로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았을까? 여자로 혹은 그녀만의 삶을 한번이라도 살았다면 가출을 했을까?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좋은 곳에 여행을 잘 하고 있으리라,아니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가 받을 수 있기를 고대하는 그녀.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화를 받으려고 뛰며 끊어지길 바란다. 무슨 맘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어머니와 며느리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병이라도 있어 그녀가 잠적한 것일까.
<옷 잘 입는 여자> 모두에게 그녀는 '옷 잘 입는 여자' 그야말로 유행을 따라가며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여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그녀의 겉모습만 판단하던 친구와 회사직원들 그녀가 옷 잘 입는 여자가 되어야만 했던 지난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병원에 다니셔야 하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의 배움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하며 옷도 잘 입는 여자.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미스다. 어느 누구든 함께 부딪혀 보고 속을 보아야 그사람이 품고 있는 진주를 발견하게 되지 겉모습으로는 진주의 가치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니 진주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그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친구로 받아 들여진다. 모두가 그녀 투성이다.
위의 단편들 말고도 집안에서 혹은 여자친구네 집에서조차 그의 존재 가치가 없는 남자가 십여일 동안 가출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입이 크다는 이유로 입에 빨대 많이 넣기 기네스에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우승을 했을 경우 어디 한 켠에라도 자신의 사진이 실린다면 어떻게 될까? 기네스 시작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이 살던 때와 기네스에 도전하게 됨으로 인해 존재 가치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여자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고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처음 시작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 수면으로 띄우고 싶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면 또 받게 되는 후광을 두려워 하는 우리 인간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8편의 이야기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혹은 죽음이나 가출 그외 이유로 부재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을 다시금 수면 위로 존재를 드러내 놓는다. 그녀가 그리지 않았다면 잊혀질 존재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하는가.<개미,내 가여운 개미>에서 처럼 신주연이 폭식증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주 작고 가여운 '개미'라는 존재에 의해서다. 누가 그런 존재를 의식이나 하겠는가.아니 그런 존재로 인해 한 인간이 무너질 줄을 알았겠는가? 댐에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리 듯 아주 사소하고 작은 존재들이 아니 그런 무수한 삶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도 그런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모두가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존재 가치는 분명히 있다. 가볍게 읽은 소설이지만 무언가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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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소설집은 읽자마자 어떤 느낌이 있었습니다. 마치 오 분짜리 단편 드라마 일곱개를 모아놓은 느낌이랄까요? 혹은 소설책이 아니라 사진첩을 넘겨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 곧 수몰되어 사라질 마을을 보러가는 사람들, 교통사고로 죽은 거식증 아가씨, 집나간 시어머니, 옷 잘입는 여자, 어느 휴양지에서의 세쌍의 신혼부부 이야기. 이 소설이 그리는 등장인물들입니다. 이야기마다 독특하거나 신기한 등장인물 이 있거나, 어떤 깜짝놀랄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있음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담담하게 읊어주는 느낌입니다.
- 그렇다고 해서 우울한거나 비관적인 기색을 보이진 않습니다. 작가는 나직하면서도 정감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마치 오랫만에 방문한 고향집 에서 어머니께 동네 사람 이야기 듣는 느낌이랄까요. 누가 결혼을 했네, 어느 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네, 그 집이 다른 동네에 집을 지어서 이사를 갔네, 뭐 이런 이야기 있잖아요. 야단법석에 사건만 가득한 요즘 인기소설 보다는 이 소란스럽지 않은 나직함을 가진 단편 소설집이 저는 마음에 듭니다.
- 읽고나서 다시한번 단편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왠지 모르게 나중에 다시 생각날 것 같고, 한번 더 찾아 읽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이 책이 가진 '편안함' 혹은 '친근함' 이 가진 힘일 겁니다. 등장 인물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결여 나 단점, 걱정, 고민들은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것만 같고 독자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점이 되는 거죠.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에서 느끼는 일상성은 책을 읽는 이들 에게서 더 쉽게 동감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 개인적으로 이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냥그런 단편집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제가 완전 잘못 예측했네요. 솔직히 말하 자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던 책이었습니다. 어느 까페 한구석에 박혀서 커피 한잔과 함께하면 참 괜찮은 책이지 않을까, 복잡한 나날들에 지쳐 조용한 시간에 함께하면 좋은 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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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읽을까'를 고민해보진 않았었다. 그런데 '책읽기에 대한 책'의 소나기를 맞으며 조금 멍해져버린 나는 언제부턴가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방법에 대한 책을 오래전부터 장바구니에 담아두고는 아직 주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 소설을 손에 들면 말도 안되는 '바르게 읽기' 강박에 오래도록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멋대로 읽기'가 되어버리지만 말이다.
서론아닌 서론이 길어져버렸다. 어쨋든 이 소설집, 멋대로 읽어버렸고 책읽기를 마치고 공연히 표지 위의 개미를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아.. 우린 모두 가엽구나..' 이러면서 말이다. 섣부른 희망을 제시하지 않지만 작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 혹은 사물들에 대한 연민이 넘치는 책이었기에. 결국 무엇이든 사라지고 말지 않는가. '어느날 문득'이거나 '조금씩' 흐려지거나. 작가는 여덟편의 단편을 통해서 그런 사라지는 것들, 언젠가 잊혀지고 말 것들에 대한 사소한 흔적과 그것들의 쓸쓸함을 나누어준다.
그 중, 몇 편을 들여다보자.
<물소리> 모호한 계절, 폐허가 약속된 마을인 수몰예정지구로 떠나는 세사람. 방문목적도 모호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쓸쓸한 풍경과 마음을 황폐하게하는 뒷얘기들만 가득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곧 무연한 과거형에 묻힐 사물들을 천천히 눈 속에 마음 속에 새겨넣는다. 귓볼엔 쿨렁쿨렁 물소리...
<개미, 내 가여운 개미> "그녀가 어제 새벽에 죽었다" 첫문장이다. 그녀는 '없다' 나는 이목구비가 흐리지만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었던, 폭식증을 앓던 사돈처녀, 그녀를 추억한다. 그녀와 부쩍 가까워졌던 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처저히 무색무취했으며, 언제나 묵묵하게 자기 속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녀가 한마리 개미처럼 느껴졌었다. 결국 그녀를 폭식증으로 몰고갔을지 모를 '이런저런 계기'도, 그녀의 삶도 화장터 불꽃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과거 한 시절 속에 묻혀버렸다.
<옷 잘입는 여자> 유행에 민감한 여자, 세연. 하지만 결국 가장 흔한 스타일의 여인이 되고마는 그녀다. 그녀와 내가 다니는 직장은 오후 일곱시 출근, 오전 다섯시 퇴근. 우리들은 텔레비젼을, 친구를, 연인을 잊어가고 끝내는 가족과도 서먹해져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나마 평화로운 현재, 가까스로 찾은 안정된 현재가 뒤로 밀려가 과거가 되는게 두렵다. 밤시간 근무와 매일 물리치료를 받는 디스크 환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익숙한 평화. 그래서 다른 미래를 꿈꾸지 않는 그녀의 안간힘이 안타까운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소설이었다.
<꽃마차는 달려갑니다> 신혼여행 온 세 커플은 지금 아열대의 휴양지에 있다. 가장 아름답고 빛나야할 허니문에서의 이야기이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진열장 속의 무엇이 아니라 길거리 좌판에 놓인 그 무엇처럼 보인다. 비슷비슷한 물건 들 속에 끼워진 하나. 하지만 다른 것들과 완전히 같지만은 않은 그 무엇 말이다. 시내에서의 짧은 자유시간이 끝나고 조악한 조화가 달린 꽃마차를 타고 이들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호텔로 돌아간다. 누구나 겪어내야할 일달러짜리 이벤트가 기다리고 잇는 호텔. 허니문의 하루 "해가 지고있는데도 끈적이는 더위는"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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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보았을 때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위의 개미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그럴것이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개미에 책에 올라가 있는게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개미는 그 곳에서 무엇을 하는걸까? 괜시리 개미만 노려보게 되는 나를 발견하다 책을 펼쳤다. 책을 읽으면서 빠져들어서인지 내 마음 속 우울한 기분이 샘솟는 듯 했다. 마치 아이스크림 속을 허우적 거리는 개미가 된듯한 기분이랄까.
「그 오후에, 저어, 나이, 어린, 사람, 하고는, 연애, 안, 합니까....... 라고 그는 말했고 나는 그저 얼어 붙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무관심했다면 상황은 단순했으리라. p.28 '물소리' 중에서」 전라북도 J군, 수몰예정지역으로 답사를 가게 된 나와 박교수 그리고 최.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나.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공부를 한다며 주위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해 공부를 시작하여 알게 된 최는 팀내 엘리트로 나와는 반대였다. 그런 그가 어리숙하게 했던 그 말. 나는 최를 좋아했기에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그녀를 삼킬때, 나는 몇 십여 년간 그래왔듯이, 우적우적 내 몫이라 하기에는 아무래도 과한 '먹을거리'를 감흥없이 삼켰던 것이다. p.40 '개미, 내 가여운 개미' 중에서」 형수와 너무도 닮은 신주연,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를 더 많이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결혼한 형집에 얹혀 살면서 사돈지간이던 신주연과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나 낯을 가리는 듯 보이던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들킨후에야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였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철저히 무색무취하고자 했으며, 언제나 묵묵하게 자기 속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녀는 한 마리 개미처럼 느껴졌다. p.59」 그녀의 비밀, 그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그녀가 개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의 비밀은 가족들과 나만이 아는 숨기고픈 일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를 화장했노라며 내게는 더 좋을것이라고 얘기하는 형. 형은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내 엄아. 엄마도 그저 이유 없이 사는 게 꽉 막힌 것 같았을 때가 있었구나. p.86 '또 밤이 오면' 중에서」 갑작스런 시어머니의 가출은 평범하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남편은 나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보라며 얘기했고 시아버지는 돌아왔을때 아무런 걱정없이 보이는 것에 대해서 맘이 쓰였는지 식사도 조금 하시고 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무심한게 지나치기만 했는데 나의 엄마도 어머님과 같은 선택을 하고 픈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를 기다리면 휴대폰을 항상 옆에 두고 행여 연락이 올까 깊은 잠에 빠지지도 못하는 나. 그녀가 없음에도, 잠잠하던 내 인생을 흔들어 놓았음에도 밤은 오고 있다. 「세연 씨, 세여언, 윤세연, 세연 씨이. 미친 듯이 계속 불렀고, 사람들은, 그녀가 아닌 그 모든 사람들은 의아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돌아보는 사람마다 세연이 아니었다. 그러곤 곧 돌아보는 사람마다 세연이었다. 이럴 수가. 그라, 순간 모두 다 그녀, 세연이었다. 언제나 저들 속에 편안하게 묻힐 수 있기를 바랐던 그녀 말이다. p.122 ~ 123 '옷 잘 입는 여자' 중에서」 무역회사라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일과 자체가 다른 사람들. 남들 기분좋게 퇴근하는 시간에 차려입고 출근을 하고 출근 전쟁인 지하철속에서 퇴근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세연은 패션에 민감한듯 하면서도 둔한거같다. 젤 먼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스타일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에 보면 세연 혼자 끝까지 그 패션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는듯 하면서도 뒤쳐지는 느낌에 자주 쇼핑을 가지만 매번 반복인 그녀의 삶. 그런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는 퇴근하고 빈둥거리는 모습이 싫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다른 일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내 입도, 이 웃긴 대화도, 이 잘난 모멸감도, ......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p.145 '기록' 중에서」 취업준비를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그는 엄마의 사소한 얘기에 싸움까지 가게 되고 치기어린 마음에 가출까지 감행한다. 그러나 가진 돈으로 놀고 먹기에는 아르바이트 했던 고생이 생각났는지 쉽게 돈을 벌고자 참여한 이벤트에서 자신의 입이 크다고 광고라도 하듯 빨대를 하나씩 입에 집어넣고 있다. 그 기록이 무엇이길래, 그 아무것도 아닌 기록에 매달리는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여동생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오빠. 그런 오빠이기에 자신의 동생에 대한 탐구를 친구를 통해서 하려고 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시켜준다면서 나누는 허황된 대화들의 향연. 윤미는 어떤 사람일까? 「사랑이 색이 바래는 것, 아니 아니, 색만 바래면 쓸쓸한 미소를 교환한 채 서로 위안하는 힘으로 살겠지만, 사랑이 때때로 정반대의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 것,그리고 감옥이 되는 것이. 뻔한 얘기다. 뻔해서 지겹고 뻔해서 슬픈 얘기다. p.178 '꽃마차는 달려갑니다' 중에서」 매맞는 엄마와 변심한 애인앞에 손목을 그은 언니를 본 '뷰'는 선량한 눈빛의 소유자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런 '뷰'앞에 나타난 '부'는 자신을 웃게 만든 그와 결혼했다. '수' 와 '슈'는 두달전에 만나 결혼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지탱해주던 이가 아닌 서로의 부모가 알고 지내면서 소개를해서 결혼한 '슈'. 서로 다른 사랑. 그 사랑의 결말은 어떠할까? 사랑은 얼마나 견고할 수 있을까? 「강미현에게로 또 나에게로, 너는 호출받지 못하는 존재야,라는 쓸쓸한 호출을. p.206 '기억할 만한 지나침'」 휴대폰 번호가 바뀌면서 걸려온 강미현을 찾는 전화와 음성메시지, 그리고 강미현이 가입했던 곳에서 오는 문자들.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면서도 바꾸지 않아서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나의 기록이나 정보들이 흘러 들어간다. 처음에는 귀찮다가 그 귀찮음이 호기심으로 바뀌어 점차 강미현이라는 여자가 궁금해지다 결국에는 자신도 그 번호를 버리고 만다. 우리의 정보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채, 그리고 알면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 남들처럼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기도 하면서 뒷바라지 한다. 다 큰 아이를 결혼시키고 손주를 보게 되고 그렇게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 너무나 평범해서 그 평범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넓게 보면 자신이 가진 부의 정도나 경험의 정도가 다를 뿐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의 인생이 남들보다 더 멋지고 화려하기를 바라지만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남들 인생에서 화려한 빛에 가려진 그림자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생각에서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가여운 것은 개미가 아니라 내 인생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 탓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