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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책, 전통적이면서 최첨단스러운 보따리
"민주적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책, 전통적이면서 최첨단스러운 보따리" 내용보기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책에서 두 명의 아티스트를 만납니다. ‘민주적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책을 만드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전통적이면서 최첨단스러운’ 보따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김수자가 그들입니다. 책에서 맨 먼저 등장하는 아티스트는 책을 예술 작품처럼 만드는 슈타이들입니다. 유명한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책으로 출간하다보니 아티스트의 아티스트가 됩니
"민주적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책, 전통적이면서 최첨단스러운 보따리" 내용보기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책에서 두 명의 아티스트를 만납니다. ‘민주적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책을 만드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전통적이면서 최첨단스러운보따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김수자가 그들입니다.

책에서 맨 먼저 등장하는 아티스트는 책을 예술 작품처럼 만드는 슈타이들입니다. 유명한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책으로 출간하다보니 아티스트의 아티스트가 됩니다. ‘세계 최강 아티스트들의 히어로인 슈타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목표는 아티스트들이 원하는 대로 내가 가진 기술을 활용하는 겁니다. 내가 만드는 건 슈타이들의 영혼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영혼이 담긴 책이죠.

내가 좋아하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슈타이들은 책 만드는 일을 10대 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7세에 자신을 이름을 건 출판 사도 차렸습니다. 독일의 작은 도시 괴팅겐에서 나고 자란 슈타이들은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답니다. 슈타이들은 이곳에서 미국 예술계 대부의 아트북을 만들고 샤넬 카탈로그나 초청장을 만들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만듭니다. 명품 브랜드 책을 만드는 슈타이들 덕분에 작은 마을은 일명 슈타이들빌레가 됩니다. 이곳으로 수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찾아듭니다. 그리하여 현대미술과 예술의 요람이자 도서관이 된슈타이들빌레는 작은 도시의 활력이 되니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슈타이들의 회사 직원은 건강하고 맛있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가정식 백반과 커피를 제공해 주는 전속 요리사를 포함한 50여 명이라고 합니다. 30여 명은 독일의 여러 지방으로부터 왔고, 나머지 20여 명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라고 합니다. 슈타이들은 자신의 직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사실 이 색감은 독일의 북쪽 지방에서 온 어느 직원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또 다른 예로, 스웨덴에서 온 이미지 오퍼레이터는 사진을 보는 눈이 다른 나라 직원들과 다릅니다. 각 나라별로 빛이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난 항상 다양한 나라에서 온 직원들을 찾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다채로운 재능을 존중해 주는 슈타이들 출판사는 마법의 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예술계의 두 거장 에드 루샤와 짐 다인이 말한 슈타이들에 대한 찬사를 차례대로 옮겨봅니다.

 

슈타이들에 어울릴 만한 단어를 마침내 알아냈어요. 바로 마법사! 우리는 마법의 세계에 살고 있죠. 그리고 그 세계의 시계처럼 그저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어요.”

 

슈타이들은 내게 항상 경험하지 못한 기쁨을 줍니다. 그가 만든 책을 보면 정말 이건 만들기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지금도 나는 일 년 중 몇 달간은 괴팅겐에서 슈타이들의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슈타이들빌레가 내게는 일종의 창조적 센터인 셈이죠. 슈타이들은 책을 만드는 거장입니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나로서도 큰 영광이에요

 

슈타이들빌레가 아티스트들의 아지트가 된 것은 슈타이들이 자신의 명예나 이익보다 아티스트들을 돋보이게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슈타이들과 마찬가지로 아티스트를 널리 알려야 하는 에디터인 저자는 그래서 그를 책의 맨 앞에 포진시켰을까요? 저자는 슈타이들이 63세이던 2013년 서울을 방문했던 당시에 일어났던 슈타이들 신드롬에 관해서 들려줍니다.

 

우리가 만드는 책은 무한 생산할 수 있는 민주적인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는 그를,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라는 캐나다 건축 사진작가 로버트 폴리도리의 말을 좋아한다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민주적이라는 말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제도이든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인데 말입니다. 고대 민주정이 왜 중세에 이어지지 못했을까? 21세기 현재에 왜 독재 국가는 버젓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간혹 갖게 됩니다.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서로 달라서 재미난 세상, 다채로워서 지루할 새가 없는 세상이 억눌러 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슈타이들은 책이 무한 생산할 수 있는 민주적인 예술품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대량 공급할 필요는 없다는 경영 방침에 대한 언급도 합니다. 옮겨봅니다.

 

책은 대량생산의 아이템이 아니라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소 로맨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예술작품이,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있어야 우리 출판사도 존재할 수 있어요.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슈타이들은 책을 예술품으로 만들기 위해, 혹은 시장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출판사를 지켜 직원들의 생계유지를 책임지고자 한정 수량 출판을 기획했을까요? 슈타이들이 만든 에드 루샤의 온 더 로드on the Road>은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2009300권 한정 출판한 책은 2013년에 무려 천만 원을 호가하는 책이 되었다고 합니다. 2021년 현재 중고 가격은 얼마일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고가의 책 덕분에 슈타이들빌레의 활기가 유지될지는 흔쾌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전자책이 만연해지고 인공지능이 득세하고 있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 그럴수록 예술적 가치는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1년에 400여 권의 책을 만드는 슈타이들을 책에 미친 남자혹은 책과 연애하는 로맨티스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슈타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까요? 슈타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밤에 맥주 마시러 가지도 않고 파티에 참석하지 않아요. 흡연도 음주도 안 하죠. 거의 채식주의자이고,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들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마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을 거예요. 그러나 동시에 난 자유를 굉장히 즐겨요. 내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일이 돌아가게끔 모든 계획을 면밀히 짜기 때문이죠.

 

슈타이들은 오로지 일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사람 같습니다. 책 만들기에 중독된 듯 사는 그가 있는 한 그가 만든 책의 애독자도 중독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슈타이들은 벌써 예견합니다. 기분 좋은 중독을 상상하며, 절제된 중독을 바라며 슈타이들의 말을 옮겨봅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당신과 책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단한 사건이에요. 책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는 일종의 명상 과정은 매우 흥분되죠.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의 느낌, 당신에게 지적 쾌감을 선사할 도서관을 지을 때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게 중독이죠.

 

어쩐지 완벽과 예술을 연결하기는 꺼려집니다. 완벽주의자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타격의 여파가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자 슈타이들의 모습 위로 에디터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는 저자 윤혜정이 겹쳐 보입니다. 주말을 바쳐 가면서까지 카페에서 에디터 일을 할 때가 있다니 말입니다. 다소 덜 완벽하더라도 덜 세련되더라도 신명 바쳐 일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예술이 탄생할 수는 없는 걸까요? 덜 완벽해서 생긴 흠결에서 인간적인 예술을 기대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트집일까요 

 

주변에 완벽한 엄마, 완벽한 딸, 완벽한 직장인으로 살고자하는 어떤 그녀가 있습니다. 몸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한 척합니다. 오래전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길들여 져셔 놓여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칭찬이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독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제 그녀의 몸은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나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댑니다. 더 오래 더 많이 자신의 일과 가족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녀가 완벽주의나 인정욕에서 서서히 벗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칭찬받는 이들이 안쓰러운 것은 제가 나이 들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간혹은 완벽하지 않은 줄 알면서도 일을 접고 마무리를 짓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배려이자 너그러움일 수 있습니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불완전에서 완전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깨닫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완전무결의 고지에 올라섰을 때 그 쾌감이 엄청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성취감과 비견될 수 있는 다사롭고 평화로운 마음의 파장과 선율도 감미로울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술가의 처절한 완벽이 바쳐진 작품 덕분에 우리들의 영혼은 때때로 정화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슈타이들에 이어 책에서 두 번째로 거론하는 아티스트는 김수자입니다. 슈타이들이 완벽으로 예술에 다가갔다면 김수자는 연민으로 삶과 작업을 대합니다. 대구에서 출생한 김수자는 고향이나 조국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뉴욕 파리 베를린을 비롯해 온 세계의 도시를 넘나들며 작업을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보따리 싸기는 일상일 듯합니다. 김수자는 각양각색의 보따리를 전시하는 일명 보따리 작가로 통합니다. 타국 도시들에 대한 이끌림에 대해 김수자는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뉴욕은 내가 죽고 싶은 마지막 도시라고 늘 느낍니다. 어쩌다 프랑스는 내게 가장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작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내가 떠도는 여러 도시 중 특히 파리에 실존적 밀착감을 느낍니다. 이 도시와의 밀착감은 어느 도시보다도 나를 나로서 존재하고 사유하게끔 만들어요.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에게서 흔하게 들었던 말 중에 살아온 한평생을 책으로 썼으면 열두 권이 넘을 거라는 말과 열두 번도 더 보따리를 싸고 싶었지만 자식 땜에 참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르신 그녀들이 쌌음직한 보따리는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전시된 김수자의 보따리는 공 모양에 가까울 정도로 둥그렇게 싸매진 것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어떤 것은 사랑스럽기 까지 합니다. 어쩌면 저리도 예쁘게 정성껏 싸맸을까,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아마 손이 아프도록 싸매고 또 싸맸을 터이지만 전시된 보따리에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보이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 보따리의 주인은 도망자가 아니라 도전자이기에 그럴까요? ‘슬픔과 희망을 관조적으로 사유하는김수자의 보따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높이 높이 떠오를 보름달처럼 은은한 꿈을 한가득 품고 있을 듯한 보따리로 보이니 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보따리는 육면체 사각 보따리입니다. 여인이 되기 전 소녀 적 언니의 책 보따리와 도시락 보따리가 그것입니다. 그 보따리에는 야무진 학구열과 반듯한 정성이 함께 싸매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김수자의 보따리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각자 보따리에 얽힌 기억과 경험을 떠올릴게 분명합니다. 전시장을 거닐며 직접 그 보따리들을 보았더라면 연상되는 사건들과 꽤 오랫동안 노닐었을 법합니다. 그런데 과연 도대체 김수자는 보따리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김수자의 보따리는 끌어안음이라고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기억과 경험, 인간과 자연, 세상과 일상, 예술과 미학 등을 모두 끌어안는 보따리의 존재는 김수자 언어의 핵심이 된다.

 

끌어안음보듬어 안음입니다. 보따리는 기쁘고 아팠던 추억들을, 동물이기도 인간이기도 한 우리들의 이중적 면모를,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연과 일상을, 선량함과 아름다움을 도모하지만 때로는 비정할 수도 있는 해내야만 하는 일들을, 모두 모두 껴안도록 김수자는 보따리로 이야기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보따리로 풀어낼 사유를 한 김수자는 천생 아티스트입니다. 보따리는 김수자가 창제한 언어인 셈입니다.

 

보따리 작가로 오랜 세월 작업을 했기 때문일까요? 껴안기의 달인이 되었을 법한 김수자의 포옹은 본 받고 싶을 정도입니다. 60대 아티스트 김수자가 40대 에디터인 저자를 포옹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옮겨봅니다.

 

지난 2018년 겨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수자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포옹으로 인사했다. 그때 김수자가 나를 천으로 귀한 무언가를 싼 보따리처럼 완전히 감싸 안았는데 그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두 팔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로 나의 영혼과 몸 그리고 실존 자체를 끌어안는 느낌. 작가가 길 위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고민해 얻었을 삶의 에너지가, 발끝까지 도사리던 나의 한기를 순식간에 거둬갔다. 김수자의 눈빛은 꿰뚫는 동시에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특유의 낮은 목소리는 다정하면서도 단호했다. 일견 비정한 이론으로 무장한 미술 세계에서, 그렇게 김수자는 내게 통찰과 연민의 관계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수자의 보따리는 공처럼 둥근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둥글둥글 소담스럽던 보따리가 어째서 변하고 말았을까요? 납작하게 평평해진 것도 있고 꽉꽉 눌러 포개지면서 제멋대로 일그러진 것도 있습니다. 트럭이 주저앉을 듯이 짐칸이 터져나갈 듯이 한가득 실려 있는 보따리들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습니다. 한 치의 움직임도 흔들림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티끌 만한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버릴 수도 없는 짐이기에 더 무거워 보입니다. 트럭에다가 보따리를 저렇게 실을 수 있다니 김수자의 사유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트럭의 보따리들은 밧줄에 살이 패이더라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보루인 듯합니다. 사생결단하듯 온 힘을 다한 꽁꽁 묶음에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둥켜안고 있는 보따리들이 보입니다. 끌어안아야 살 수 있다는 듯이, 끌어안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보따리 트럭은 생명가진 것들에 대한 먹먹한 연민이 되어 다가옵니다.

 

김수자는 보따리를 끌고서 군중이 있는 거리로 나섭니다. 보따리가 한가득한 짐칸 위에 앉은 김수자를 실은 트럭은 파리의 외곽에서 중심부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김수자가 누비는 곳곳마다 전시장이 되고 미술관이 됩니다. 김수자는 그 트럭을 예배당에도 출몰시키고 각국의 전시장에도 설치합니다. 김수자가 생사의 한 가운데 있는 난민의 처지나 유랑자의 고단한 삶을 보따리로 피력한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김수자는 연민이 충만한 여자이면서 동시에 용기가 넘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김수자는 보따리 작가일뿐만 아니라 바늘 여인이기도 합니다. 긴 생머리를 뒤로 묶은 채 보따리와 함께 했던 퍼포먼스는 바늘 여인이 되어서도 이어집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김수자의 말을 옮겨봅니다.

 

바늘 여인퍼포먼스로 세계 여덟 개 도시를 돌아다닐 때 부의 불평등을 비롯해 정치, 사회, 경제, 종교 갈등으로 파괴, 분열되는 세계의 모습을 목격했어요. 예술가로서 무력감을 느낄 정도로 착잡한 심정입니다. 다만 함께 보고 나눔으로써 바로 여기, 지금을 지각하고자 하며 누군가에 영감을 주면서 더 나은 사회를 꿈꾸고 싶어요.

 

바늘은 붓을 대신하고 손과 몸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도구였어요. 결국 바느질은 관계 짓기예요. 세상에 관계 지어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특히 인터넷 시대에는 모든 일상이 바느질하기이기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바느질의 망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죠.

 

김수자가 바늘 여인이 된 사연은 초월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옮겨봅니다.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이 가진 에너지가 바늘을 통해 우주와 연결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김수자는 천-바늘의 관계를, 우주-내 몸의 관계와 연결 짓는 바늘여인이었다.

 

바늘 여인 김수자는 바느질을 하기 위해 머물지 않습니다. 현대적인 첨단 대도시와 내전의 아픔을 겪는 도시를 가리지 않고 넘나듭니다. 그러면서 예술과 일상을 연결하는 바느질을 합니다. “ 예술가란 일상의 예술적 속성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김수자는 여자의 일상과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냅니다. 삶과 예술의 통합을 바느질로 보여주는 김수자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은 미술 개념과 형식뿐 아니라 삶고 인간에 대한 탐구로 점철되어 있다. 김수자는 내게 삶과 미술이 결코 분리된 대상이 아님을 매 순간 일깨운다.

김수자는 1990년대 초 바느질, 빨래, 청소, 요리, 다리미질, 다듬질, 장보기 등 현대미술이 도외시한 일상적 가사 노동 행위를 미술 언어로 개념화하고 예술 행위로 재정립했다.

 

김수자는 예술과 철학을 함께 바느질합니다. 동양과 서양, 첨단과 전통도 이어붙이는 바느질을 합니다. 그 바느질 작업에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 두 그녀들로부터 흡수한 정서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듯합니다. 그 정서에 다가가 동감하는 기분이 되어 옮겨봅니다.

 

내게 모시, 삼베, 홑이불 같은 천이나 마당에 핀 무궁화, 담장을 뒤덮은 찔레꽃은 할머니의 현전이었고, 깊은 초록색과 붉은 색이 대비된 낡고 부드러운 비단 누비이불의 질감과 촉감은 어머니의 그것이었어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불 호청을 빨아 다듬을 때, 나는 방망이로 리드미컬하게 두들겨 촉촉하게 길이 든 하얀 면 이불 호청을 주시하곤 했죠. 물먹은 천의 촉감, 천의 접힘과 펼쳐짐의 향연, 그것의 기하학적 변환... 커다란 호청을 접어 가며 마음을 맞추던 퍼포머티브한 행위들에도 매료되었어요. 또 선의, 인내심, 믿음, 누구도 차별하는 법 없던 어머니의 성품에 늘 감동받곤 했죠. 그래서이지 내가 세상에서 겪은 상반된 경험들은 종종 상처가 되었고, 불의, 차별, 거짓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김수자의 인터뷰 한 장면을 남기며 책맛보기를 접고자 합니다.

 

왜 예술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인생처럼 예술에도 정답이 없어요. 그렇지만 나름의 입장에서 최선의 경지라 여기는 삶과 작품의 방식이 있지요. 내가 추구하는 건 명성이 아니라 진실되고 정직한 가치입니다.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거짓된 예술계의 행태는 개인과 사회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나는 이를 예의주시할 겁니다. 예술하는 행위자체로 영혼의, 사회의 등대가 될 수 잇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요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FUxypoC51RU

i*****e 2021.12.03. 신고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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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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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 예술가들 라인업이 굉장히 좋다평소 흠모하던 이들의 인터뷰를 연달아 읽을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인터뷰 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름에도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그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인터뷰라는 게 만만해 보여도누가 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다른데윤혜정 에디터의 인터뷰는 늘 신뢰하고 있다 *좋은 대화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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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 예술가들 라인업이 굉장히 좋다

평소 흠모하던 이들의 인터뷰를 연달아 읽을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인터뷰 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그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인터뷰라는 게 만만해 보여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깊이가 다른데

윤혜정 에디터의 인터뷰는 늘 신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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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화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네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2020.10.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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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책을 보내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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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고는 있는데 안 구겨진 재고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인터뷰와 내용은 상당히 좋아요. 틸다스윈튼의 인터뷰부터 읽었는데 잡지나 매체가 아닌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컨텐츠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만큼 개인적으로는 질문과 대화가 조금더 치열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하루에 한명씩 만나는 느낌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단점을 꼽자면 인터뷰 앞뒤로 너무 할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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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고는 있는데 안 구겨진 재고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터뷰와 내용은 상당히 좋아요. 틸다스윈튼의 인터뷰부터 읽었는데 잡지나 매체가 아닌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컨텐츠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만큼 개인적으로는 질문과 대화가 조금더 치열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하루에 한명씩 만나는 느낌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단점을 꼽자면 인터뷰 앞뒤로 너무 할말이 길어 이것때문에 책이 두꺼워졌나 싶긴 하네요.



YES마니아 : 로얄 r*****i 2020.09.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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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예술로 디터 람스, 수동성을 초대한 우고 론디노네, 무결점이 결점인 틸다 스윈턴
"일상을 예술로 디터 람스, 수동성을 초대한 우고 론디노네, 무결점이 결점인 틸다 스윈턴" 내용보기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책에서 이번에 만나 볼 아티스트는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배우 틸다 스윈턴입니다. 이번 책에 대해 비판적 읽기가 전혀 이뤄질 수 없는 이유는 예술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섭렵하는 데에 급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술 전반에 대한 기초지식을 아주 얕게나마 훑어보는 재미를 누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독일 출신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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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책에서 이번에 만나 볼 아티스트는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배우 틸다 스윈턴입니다. 이번 책에 대해 비판적 읽기가 전혀 이뤄질 수 없는 이유는 예술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섭렵하는 데에 급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술 전반에 대한 기초지식을 아주 얕게나마 훑어보는 재미를 누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독일 출신 디터 람스는 애플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조너선 아이브의 롤모델입니다. 20세기 일상용품의 디자인을 견인해 온 거장이면서 21세기 애플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디터 람스를 통해 깨달은 바를 저자는 한 줄로 전합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음악과 좋은 디자인은 결국 다르지 않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에는 세계 대전 후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대량생산해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바우하우스 정신도 스며있다고 책은 넌지시 알려줍니다. 그런데 정작 일반시민들은 그의 디자인을 왜 가까이 할 수 없는 걸까요? 저자 윤혜정과 디터 람스의 인터뷰 한 장면을 옮겨봅니다.

 

당신에게 특히 지대한 영향을 준 사상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바우하우스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물론 언젠가부터 의도와는 달리 특정한 엘리트층을 위해서만 공유되었지만요. 또한 동양의 선불교, 젠 스타일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의 디자인을 한마디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나는 와비사비(wabi-sabi)‘라고 답합니다. 두 개의 단어가 모여서 평온함, 간결함, 균형을 의미하는 동시에 왠지 생동감이 느껴져서 특히 좋아하거든요. 또 누군가가 어떻게 디자인을 공부해야 하냐고 물을 때마다 옛날 철학자들이 했던 말을 기억하라고 충고해요. 이를테면 바로 괴테가 독일의 건축가나 예술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그런 존재일 거예요. 괴테는 너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곤 했는데, 나도 늘 이 질문을 되뇌곤 해요.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20세기의 일상 용품들이 21세기에 이르러 각광받는 예술 작품이 됩니다. 이 말은 다수의 서민들은 도저히 소유할 수 없는 일상용품이라는 사실을 시사 합니다. 20세기에도 그가 디자인한 진품은 아마 중상층 이상에서 사용한 일상 용품이었을 듯합니다. 진품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변형시킨 아류 제품들이 숱하게 생산되면서 마침내 다수의 서민이 사용하는 제품 어딘 가에도 그 흔적이 남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선두주자 진품 디자이너의 공로는 인정되어야 마땅합니다. 20세기 중상류층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했을 제품들이 21세기에 당당하게 예술 작품으로 등극한 사실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온갖 경매 사이트를 뒤져서라도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물건들을 갖고 싶다는 물욕이 요동친다. 당시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오늘날 매우 값비싼 빈티지 아이템으로 각광 받으며 거래되고 있거나 종종 인터넷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금 생산되는 그 어떤 오디오나 주전자, 면도기나 커피메이커보다도 훨씬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라는 평가를 수시로 받는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한 번도 디자인만을 위한 디자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디터 람스는 자기 자신을 디자인 공학자라 일컫는데, 그것은 제품의 본질이 모든 디자인의 출발이자 목표임을, 기능과 목적에 맞는 정직한 디자인을 고집하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 공학자 디터 람스는 제품의 쓰임새를 최우선시하는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움도 고려한다는 사실이 그의 디자인 10계명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좋은 디자인을 위해 덜함(Less)‘더함(Better)‘을 두고 왔다갔다하며(More) 고민한 결과 탄생시켰을 법한 디자인 10계명을 책은 다음과 같이 소개해줍니다.

 

치열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디자이너로서의 경험과 사유, 고민과 질문이 녹아든 이 법칙.

1.혁신적일 것

2.제품을 유용하게 할 것

3.아름다울 것

4.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할 것

5.정직할 것

6.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을 것

7.오래 지속될 것

8.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할 것

9.환경 친화적일 것

10.가능한 한 최소한일 것

 

이러한 디자인 10계명의 원칙 사이에서 디터 람스는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10계명을 지키느라 긴장하고 견제하면서 만들어냈을 그가 디자인한 제품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기능적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디터 람스의 제품들은 단순함을 장식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엄격한 디자인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우아하고, 알기 쉬우면서도 아름다우며, 사용하는 재미가 있으면서 제품의 본질을 꿰뚫고, 이 모든 요소의 절묘한 균형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1932년생인 디터 람스는 일상 용품을 생산하는 독일 브라운 사에서 40여 년 동안 일해 왔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회사에 속해 브라운이라는 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책임졌던 디터 람스에 대해 저자 윤혜정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평생 동안 평범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온 노신사, 디터 람스는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로 회자되기 전부터 이미 전설의 디자이너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던 사람이었다. 장장 10여 년 동안 수정을 거듭해 완성한 디자인 10계명은 그를 예술 역사 한가운데에 세울만하다.

 

90세에 이른 디터 람스가 생활용품을 충실하게 디자인해온 세월은 자기스스로를 디자인해온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했던 작업과 함께 디자인 되어 왔을 아티스트 디터 람스의 노년을 상상해 봅니다. 제품 디자인을 위한 10계명을 보면서 저 자신을 디자인할 코믹한 10계명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습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아티스트는 야심만만하되 선하고, 꿈꾸되 욕망하지 않는다는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 입니다.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은 원시성을 현대성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명상할 수 있는 느린 시간을 부여합니다. 돌 나무 구름 등 자연을 연상시키는 낭만주의와 자신의 예술을 연결하는 우고 론디노네와 저자의 견해를 나란히 옮겨봅니다.

 

나의 모든 작업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에서 시작합니다. 나의 모든 전시와 작품은 자연과 낭만주의, 두 가지 키워드로 귀결되죠. 풍경화를 그리는 순간, 나 스스로 존재하던 그 상황이 내게는 명상하듯 영적인 시간이었던 셈이죠.

내가 하는 예술이라는 건 생산적이거나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내 작업의 논리는 수동성, 고립, 평온과 관련된 동시에 꿈같은 겁니다.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 거죠. 그냥 음악을 듣듯이.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행위는 열린 해석을 가져올 수 없게 만들어요.

 

낭만주의는 세기말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파생된 합리성의 논리에 대항하고 인간 정신을 고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당시 아티스트들은 길들여지지 않는 혹은 합리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연 요소에 심취했고, 감정이나 꿈같은 인간적 가치를 지켜 내고자 했다. 스스로를 낭만주의의 후예라 자처하는 우고 론디노네는 풍경화를 그리고, 별을 그리고, 구름을 만들고, 무지개를 만들고, 돌을 쌓아 올림으로써 오래된 사조를 현대에 실천하고 이런 가치가 수백 년 지난 지금도 유효함을 피력한다.

 

원시인에게 익숙했을 돌 나무 구름 등 자연을 현대인에게 상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을 잊은 채 생산적인 일에만 매달려 바쁘게 사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하려는 의도일까요? 책은 느림과 수동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해 줍니다.

 

그의 작품 속 느림은 속도 혹은 시간의 문제가 아닌 동시에 감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동성은 느림의 가치를 만든다. 그의 작품 속 느림 공간에 있다보면 이상한 무력감이 엄습한다. 활동성과 생산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통용한 세상의 시간 개념은 잊어야 하는 데서 오는 당혹스러움 같은 거다.

 

2019년 코펜하겐 아르켄 근현대미술관에서그의 전시를 본 적 있다. 광대들이 행동의 대역을 맡아 구성한 24시간. 어쨌든 제 본분을 잊은 채 하릴없이 앉아 있는 광대들이 슬프거나 지쳐보일 법했지만, 실은 그 자체로 존재함이 그려 낸 멜랑콜리하고도 초현실적인 수동의 풍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광경은 우고 론디노네에게 수동성이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무한의 상태이자 빈 공간임을 의미했다. 광대들은 수동성을 통해 실존을 증명했고, 관객들은 이들을 통해 인간 본성을 통찰했다. 기억해 보면,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상도 광대들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한참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세상의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초월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은 온갖 이론과 상업성으로 무장한 미술 현장에서는 좀체 느낄 수 없는 자유의 순간으로 해방구로 나를 이끈다. 사회적 이슈들이 다 차단되는 순간에 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리는 수동적이다.

 

우고 론디노네는 수동성의 가치를 일깨워준 아티스트로 기억될 듯합니다. 그것은 곧 입다뭄, 말없음, 나없음, 침묵, 무아 등과 같은 가치를 상기하는 것입니다. 능동성과 자발성 못지않은 수동성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충고 조언 주장 신념 고집을 거두고 젊은이들의 의견에 공손히 귀 기울여 주고 묵묵히 지켜봐 줄 나이가 된 것입니다. 내 수동성의 자리에 타인의 능동성이 깃들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이 들수록 내 한 켠에 간직해야 할 수동성의 가치를 우고 론디노네의 예술이 일깨워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만나볼 아티스트는 61세에 이른 배우 틸다 스윈턴입니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옥자][설국열차]에 출연했습니다. 저자 윤혜정은 35년 전에 처음 출연하여 영화 비즈니스 세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오랜 세월 배역을 맡고 있는 틸다 스윈턴을 예찬합니다. ‘모방 불가 비교불가 규정불가 예측불가의 유일무이한 배우로 시작하여 한 명의 배우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완전체에 이를 정도로 찬사의 언어가 화려합니다. 저자 윤혜정이 틸다 스윈턴에게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은 문장이 대변해 줍니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나는 신기할 정도로 틸다 스윈턴이 선택한 작품이라면 무작정 신뢰하게 된다.

-세상에 훌륭한 배우는 많지만 틸다 스윈턴과 비교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

-틸다 스윈턴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으로서의 여배우다.

-종종 그녀는 초월적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녀의 연기론은 차라리 인간론에 가깝다.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는 많지만, 늘 옳다 믿는 여배우는 그녀가 유일하다.

 

저자에게 틸다 스윈턴은 혁명적이면서 주체적인 예술가로 마치 숭배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저자가 틸다 스윈턴을 위해 혹은 그녀를 알리기 위해, 그녀를 두고 내린 정의들을 모아봅니다. 그 정의들을 통해 왜 그토록 그녀를 좋아하는지 짐작해보려고 합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뜨리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혁명적 예술가.

-그녀만큼 우아하면서도 공고한 이미지를 구축한 배우도 없지만, 그런 자신의 이미지를 파괴하길 즐기는 배우.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흐리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

-지난 60년 동안 맡아 온 자신의 역할, 바로 틸다 스윈턴이 된다는 것에 가장 충실한 사람.

-나이, 성별, () 등 세속의 경계를 지워버린 주체적인 광대이자 예술가.

 

그렇습니다. 틸다 스윈턴만큼 배우다운 배우를 찾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지나치게 완벽해서 질릴 정도입니다. 어쩌면 완전무결한 것이 틸다 스윈턴의 결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결점이 결점인 것입니다. 그녀는 배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천부적인 소질을 유감없이 과시합니다. 저자가 신의 영역이나 도취라는 단어를 거론하면서까지 틸다 스윈턴의 연기를 추켜세웁니다. 옮겨봅니다.

 

양성성은 그녀를 희귀한 배우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는데, 이는 신의 영역이기도 했다. 틸다 스윈턴이 증명한 건 어떤 역할이라도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맡지 못할 역할이 없다는 거였다. 공고한 자기 이미지를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 알기를 작정한 사람처럼 흥미로운 역할을 하는 데 도취되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틸다 스윈턴과의 인터뷰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나봅니다. 영화 [옥자] 홍보차 했던 인터뷰에서 틸다 스윈턴의 언어에 감탄했는지 온전한 삶의 격언 혹은 야생의 꽃과 숲의 향기를 품은 답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 인터뷰의 한 장면을 남기면서 책맛보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성공한 배우로 인정하고, 또한 그렇게 인식합니다. 성공한 배우라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난 그저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진실을 말하면서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곳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기도 하고요. 내게 성공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sV1gUmfs2RE

i*****e 2021.1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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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스럽지만 일본을 뛰어넘는 만화이면서 화집같은
"일본스럽지만 일본을 뛰어넘는 만화이면서 화집같은" 내용보기
저자 윤혜정은 다니구치 지로와 그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자기 작품을 쓰면서도 종종 울 것 같은 남자. 나는 이런 어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가, 그의 작품에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건 바로 어른들의 표정이다. 의지보다는 관조가 넘치는 선한 눈빛.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만화에서 사람과 동물의 해맑은 표정을 볼 때면 눈을 뗄 수가 없게 됩니다. 다
"일본스럽지만 일본을 뛰어넘는 만화이면서 화집같은" 내용보기

저자 윤혜정은 다니구치 지로와 그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자기 작품을 쓰면서도 종종 울 것 같은 남자. 나는 이런 어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가, 그의 작품에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건 바로 어른들의 표정이다. 의지보다는 관조가 넘치는 선한 눈빛.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만화에서 사람과 동물의 해맑은 표정을 볼 때면 눈을 뗄 수가 없게 됩니다. 다니구치 지로는 표정뿐만 아니라 배경이나 풍경까지도 선량하게 그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듯합니다. 선량함이 이보다 더 잘 그려진 만화가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추천할 때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진정한 즐거움을 만끽하곤 했다.

 

다니구치 지로는 [고독한 미식가]를 그린 만화가입니다. 책은 [고독한 미식가]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만화가의 소신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진정한 미식은 호화로운 레스토랑이나 맛집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삶이 녹아든 단순하고 깊은 맛을 음미하는 데 있다는 진리를 피력한다.

 

[고독한 미식가] 만화는 이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덴마크나 폴란드에서도 출판했다고 합니다. 중국 본토까지 진출했다고 하니 거의 전 세계인에게고독한 미식가의 존재를 알린 셈입니다. 일상의 고단함을 맛있는 음식으로 달랠 수 있다는 보편적 진리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일본 특유의 것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일본을 뛰어넘으면서 일본스러운 정서가 전세계에 퍼져나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입니다. 다니구치 지로가 들려주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옮겨봅니다.

 

30년 전 일본만화 특유의 스타일과는 다른 걸 고민하다 우연히 프랑스만화를 발견했고, 한동안 고서점에서 살다시피했어요. 캐릭터의 얼굴, 풍경 표현 등 당시 일본만화에는 없던 것들이 거기 있었고, 난 매일 그걸 따라 그렸지요.

 

[고독한 미식가]는 평범한 사람도 우아하고 고상한 미식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합니다. 대중의 품격을 상향시키는 데에 기여했을 듯합니다. 보통 사람이 음식을 어떻게 즐기고 먹는가,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말입니다. 고독한 미식가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제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밥벌이라는 것은 만만찮습니다. 그 밥벌이를 위해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 밥을 맛있게 먹는 비법을 알고 있는 자가 고독한 미식가입니다. 그는 일단 밥 먹는 현장을 둘레둘레 음미합니다. 마음속으로 장소와 분위기랑 대화를 나눕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마음의 맥락을 충분히 조성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허겁지겁 먹는 적이 없습니다. 맛나다고 냠냠 쩝쩝 소리내지도 않습니다. 열심히 일한 다음 허기진 사람에게 그건 참으로 쉽지 않은 행위입니다.

배고픈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의 풍모에서 일본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합니다. 일본의 보통 남자가 식사하는 모습은 일본의 품격을 전하는 문화가 되어 전 세계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세계는 일본 음식은 물론이고 일본 사람과 일본 사물에 대해서도 어느새 친숙하게 여기게 되리라 싶습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또 다른 걸작 [도련님의 시대][에도 산책][고독한 미식가] 만큼 세계인으로부터 보편성을 획득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들에게 일본 특유의 자부심을 고양시켜 줄 듯합니다. 일본인에게 일본 본연의 감성과 정신 그리고 멋을 일깨우는 데에 일조하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국정 역사 교과서의 역할을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화로써 우리네 서민의 품격과 일본 문화를 세계에 알린 다니구치 지로는 20177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저자 윤혜정이 30대 초반이었을 때 한국에서 처음으로 다니구치 지로를 인터뷰합니다. 그때 다니구치 지로는 10년 후가 되면 자신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터뷰 당시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질문하자 다니구치 지로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삼대와 이들이 대를 이어 기르던 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인간과 개가 함께 산 집의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저는 집도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는 터라 오래된 집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가족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지켜주는, 살아 있는 집말이에요.

 

다니구치 지로가 품었던 구상은 영영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후에 동물과 사람이 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이 어우러져 사는 집, 그 집에 깃든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화하기를 원했지만 그의 노후는 예상만큼 길지 못했고 그는 죽음을 맞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동물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면서 그들을 만화에 등장시켰습니다. 늑대개 조와 함께 살면서 실종된 사냥개를 찾아주는 탐정이야기 [사냥개 탐정]이나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 탐과 보로의 죽음을 다룬 [개를 기르다]와 같은 작품이 그것입니다. [사냥개 탐정]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가 원만한 죽음을 맞았을 것을 상상하도록 해줍니다.

 

개는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아. 계속 해서 개를 기르다보면, 여러 개들의 생과 사를 지켜보고 이별을 겪게 되지. 사람은 개의 빛나는 생명과 피하기 힘든 종언을 자신의 인생에 비춰 보면서 살게 되지. 사람은 개의 생과 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아.

 

다니구치 지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이유가 그들의 죽음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다큐멘터리에서 언급했다고 합니다. 저자 윤혜정은 그 다큐멘터리를 본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다니구치 지로는 죽고 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인간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 동물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동물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위안을 줍니다. 많은 것을 받고 사는 내가 살아 있는 한은 언젠간 죽을 그들의 죽음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이들보다 내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 미안하고, 또 두려워요

그가 카메라의 시선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면을 보는 나의 명치끝이 아파 왔다.

 

특히 만화 [개를 기르다]에서는 동물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기르던 개와 고양이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 바로 그 경험을 만화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제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강력한 주장을, 아니 간곡한 부탁을 만화로 섬세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탐과 보로의 이야기를 할 때 눈가가 축축해지기도 했다는 당시의 인터뷰 장면을 옮겨봅니다.

 

당신의 작품에는 늘 삶과 죽음이 공기처럼 부유하고 그 가운데 가족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 그림 철학책 같아요.

 

죽음, 가족, ... 나는 그저 경험하고 느낀 대로 그릴 뿐입니다. [개를 기르다] 작품도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니까, 정말이지 각오하고 키우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서 그린 거예요. 나는 어떤 이야기든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 감정이 흐르는 대로 놓아둡니다. 그렇게 닿는 결론이 진짜 결론이에요. 어차피 내 만화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나쁜 것도 없으니까요. 그것이 또 사람 사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자 윤혜정이 인터뷰를 한 장소는 다니구치 지로가 15년간 만화를 그려왔던 작업실입니다. 그 작업실은 다니구치 지로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웅변과 주장을 만화로 차분하게 녹인 장소입니다. 세밀화 같은 한 컷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며칠을 공들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선량한 표정과 풍경을 그리면서 스스로 흐뭇해하기도 했을 듯한 자리입니다. 공간과 그 공간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함께 에너지가 점차 바뀌어 갔을 듯합니다. 다니구치 지로는 12년 동안 [도련님의 시대] 5부작을 꾸준히 그려오면서 변화된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만화를 통해서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삶을 그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에요. 12년 동안 작업을 지속했더니 그걸 그린 후부터 그림체가 지금처럼 얌전해졌어요.

 

어떤 환경을 자신에게 지긋이 한결같이 부여하느냐의 중요성을 다니구치 지로로부터 새삼 배웁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업실에는 그의 정서가 되어 배여 있을 것입니다. 책으로 가득 찬 서재같은 작업실을 본 저자 윤혜정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다니구치 지로의 도쿄 작업실은 오래된 빌라였다. 전 세계에서 수집해 온 듯한 다채로운 책 덕분에 무척 비좁은 서재는 그 자체로 온갖 생명체로부터 기운을 받고 있는 고요한 호수였다.

사진집, 영화의 이미지북, 각종 동물기와 그림책이 쌓여 있었다. 1980년대 이전부터 사용해 온 듯한 카세트 라디오와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클래식 음반이 자리했다. 내 시선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집에 가닿았다. 알려진 바대로 에드워드 호퍼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그리는 화가다. 호텔방이든, 극장이든, 거리에서든 진공의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호퍼의 사람들처럼, 다니구치 지로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이 공간에서 그저 그릴 뿐이다.

 

저자는 혼자 작업하는 다니구치 지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일상에 스며있는 고독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을 연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나구치 지로 자신이 그린 만화 [도련님의 시대] 의 주인공 나쓰메 소세키와 닮아 보였습니다. 아마 서재의 많은 책과 수염 때문인 듯합니다.

 

저자는 다니구치 지로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가 더 좋아졌다며 인터뷰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그를 만난 후 더욱 열렬한 팬이 되었다. ‘만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직접 그를 만나보니 이럴 수밖에 없겠다 싶다. 세상이 왜 그를 두고 만화의 길을 걸은 구도자라 표현하는지도 알 것 같다.

이 남자의 눈에는 천성이 우직하고 착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점퍼와 면바지 차림으로도 촬영이 괜찮겠느냐며 부끄러워했다. 순간 그의 만화를 읽고 있을 때처럼 어디선가 선량한 자들을 위한 소나타가 울려 퍼졌다.

 

저자가 일본 만화가 중에서 다니구치 지로를 최고로 뽑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예술가 다니구치 지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립니다.

 

다니구치 지로는 단순한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예술가다. 그의 만화가 새로운 경지라 할 수 있다면 기존의 만화가 놓친 문학성, 문학이 간과한 밀도, 영화가 도외시한 여운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니구치 지로의 독자적인 경지를 읽어내는 저자 윤혜정의 식견이 놀랍습니다. 이렇게 읽혀지도록 작업해 온다니구치 지로도 놀랍습니다. 다니구치 지로는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화를 대해왔는지를 밝힙니다. 그는 만화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만화는 문학과 영화를 모두 포용합니다. 영화를 찍는 것처럼 그릴 수도 있고, 문학처럼 쓸 수도 있어요. 게다가 만화는 어려운 것도 쉽게, 과장되지 않게 작가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표현법이기도 해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동안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는 만화에 대해 비호감을 피력한 적이 많습니다. 쉬운 만화에 길들여지면 매사에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류의 만화들이 넘치고 있는 것은 주시해야 할 듯합니다.

 

매주 염치없이 책맛보기를 하는 저에게 다니구치 지로는 선배들의 충고를 전해줍니다. 그 충고를 옮기면서 책맛보기를 접습니다.

 

작가의 부끄러운 부분이나 싫어하는 것, 무능함, 무식함 등 부족한 점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부끄러워하면서 만화를 그리면 안 된다고,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내는 마음으로 그리라고 선배들이 충고하더군요.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B9diiBMJ7VY

i*****e 2021.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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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지만 만만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계몽하지 않는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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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19인의 인터뷰를 담은 그러면서 저자 자신의 고백 같은’ 이 책의 저자는 윤혜정입니다. 46세인 저자는 20여 년 동안 500여 명을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책날개에서 저자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20년 넘도록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 거장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철학을 명징한 글로 전달해 온 에디터.   국적 불문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만나서 스스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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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19인의 인터뷰를 담은 그러면서 저자 자신의 고백 같은이 책의 저자는 윤혜정입니다. 46세인 저자는 20여 년 동안 500여 명을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책날개에서 저자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20년 넘도록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 거장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철학을 명징한 글로 전달해 온 에디터.

 

국적 불문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만나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저자를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유창한 언어 실력과 그 도도한 배포에 유혹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국제갤러리 이사로 재직 중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저는 비평가도, 평론가도, 학자도 컬렉터도 아닙니다. 어쩌다 예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예술가를 관찰하며 이를 글에 담는 사람일뿐이지요. 물론 국내 최고의 상업갤러리에서 일하는 지금도 스스로를 내부인이라 여긴 적 없습니다.

 

저자는 겸손하지만 녹록하지 않은 카리스마도 지닌 듯 보입니다. 자신을 일개 에디터일 뿐이라고 합니다만 저처럼 예술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자는 [보그][바자] 같은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고 하니, 그러한 패션지들과 친하지 않은 어수룩한 저같은 사람에게 저자의 인터뷰집이 어떻게 다가올지도 미지수입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흥분되고 설렙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계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그 대화들을 글로 변환하여 편집하는 일을 하며 청춘을 치열하게 보낸 듯합니다. 그러니 이번 책은 20대부터 지금까지 에디터로서 활동해온 젊은 날의 총결산인 셈입니다. 저자는 그동안 만난 수많은 아티스트 중에 19인만 각별하게 선정했습니다. 그들을 첫 저서의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 중 일부만을 천신만고 끝에 선택할 때 얼마나 심사숙고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술가의 유명세나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싶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소 의아할지언정 저의 편견과 주관을 적용하는 편이 더 흥미로울 거라 믿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실로 유의미한 세계를 구축해 온 예술가, 강력한 유명세 덕에 실체보다 거대한 이미지에 둘러싸인 예술가, 아끼는 친구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예술가, 누가 뭐라 해도 그냥 좋은 예술가???. 이런저런 기준으로 모아 놓고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생기더군요. ‘나의 예술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작 저자 자신의 제1의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책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0년에 작고함으로써 영영 인터뷰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아쉬움은 컸을 듯합니다. 저자의 제1의 예술가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신동아> 20108월호에 게재된 허문명이 썼던 글을 발췌 변용합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를 예술의 세계로 이끈 것은 상처와 증오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작품에서 용서와 포용, 애정과 감사가 뭉클한 화해의 물꼬를 튼다. 그녀가 이렇게 세상을 끌어안자 세상은 그녀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남자에 대한 증오에서 시작됐지만, 훗날 그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연민의 존재라는 자각으로 발전한다. 여성은 연약하며 상처를 받기 쉬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반대로 강한 남성도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을 보는 작가의 눈은 나아가 여성은 남성성을, 남성은 여성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남녀는 적이 아니라 상생의 관계임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경지에 이른다. 양면성 혹은 이중성은 루이즈 부르주아의 예술 세계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특성이다. 즉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 그리고 내부와 외부라는 이원적 카테고리는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결합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기에 상처는 모든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이 있지만, 루이즈 부르주아를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야말로 이다. 루이즈 부르주아에게 예술은 그녀가 경험한 상처, 증오, 연민을 표현하는 방편이었고 카타르시스였다.

그녀에게 그림과 조각은 단순한 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치유책이었다. 그녀로서는 두려움으로부터 힘을 얻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 돌을 쪼고 나무를 깎고 천을 바늘로 이어붙이면서 감정의 균형을 찾았고 용서와 관용에 도달했다.

 

아흔이 넘은 나이인데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갈수록 나는 우리가 얼마나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한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녀의 예술세계가 오랜 기간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던진 용서와 화해, 그리고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애정과 감사 때문이었다. 그때껏 억압으로만 여겨오던 여성의 삶을 남자와 비교해 열등하거나 주눅 든 존재가 아니라고 깨달으면서 그녀의 작품은 새로워졌다.

그녀는 작품을 단지 남이 보기 좋아하는 형태로 만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며 그것을 마치 이야기처럼 남에게 풀어내는 인문학적 방식을 취했다. 이는 워낙 난해해서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여겨지던 현대미술이 삶과 분리되지 않은 것임을 보여줬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그녀의 삶 그 자체로 딸과 어머니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꽤 다른 여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듯합니다. 어머니 편에만 섰던 딸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지만, 몸을 찢어 자식을 낳고 마음을 졸이며 그 자식이 자립할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경험이 더해 졌을 때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식이 살아갈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미의 심정으로 바라보니 저절로 포용심과 연민이 우러났을 듯합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젊은 날의 신념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억지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세계가 달라진 대로 변한대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빚을 뿐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즘에도 자신을 옭아매지 않는 자유로움이 저자에게 제1의 예술가로 다가가게 했을까요? 저로서는 아직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저 저자 그녀와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 두 그녀가 서로 돈독한 사이가 되어 열띤 대화를 주고받는 인터뷰 현장을 상상해 볼 뿐입니다. 저자는 20071014일자 가디언지에 실렸던 루이즈 부르주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술이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예술의 효용에 대한 차분한 확신이 그 말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옮겨봅니다.

 

예술은 복원이다. 그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삶에 가해진 손상을 복구하고, 공포와 불안으로 조각난 것을 어떤 전체로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에디터로서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예술가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예술의 효용을 일상에서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사적인 예술가가 우리 모두에게도 사적인 예술가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출간 했을 듯합니다. 자신이 실감하고 있는 예술의 효용을 우리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계몽적 의도가 전혀 풍기지 않는데도 이심전심 저자의 마음을 전해 받아 이제부터라도 예술의 가치를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우선 마음의 여백부터 챙겨보고 싶어집니다. 이런 마음 상태로 이끌어준 저자의 말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단해도 주저앉지 말고 주어진 삶을 용케 살아내서 죽음까지 완성하는 생명이 되라는 듯이, 그 길에 예술이 함께 하면 삶과 죽음이 조금은 더 견딜 만하다는 듯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저에게는, 우리에게는 나의 예술가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저자는 에디터로서 예술가를 인터뷰합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쓰고 싶은 에디터의 욕망과 예술가의 고뇌 찬 창작욕은 맞닿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하루하루를 종종거리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도 에디터나 예술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살길을 항상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사람도 세상도 세월도 변해가니 살아가는 방식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살아낼 수 있습니다. 낯설다고 힘들다고 두렵다고 맥을 놓지 않고 자신이 창작한 자신만의 생존방식으로 하루의 일상을 완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예술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끝끝내 완성하고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극복하면서 마침내 전시를 하고 발표하는 사람이 예술가라면 말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방식과 수준에 걸맞은 삶을 살아갑니다. 공동체도 살아내야 하고 각자 목숨도 부지해야 하는 일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생존은 이토록 절박합니다. 생명가진 모든 존재는 어쩌면 절체절명의 순간을 항상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보통 사람들에게 음악, 미술, 만화,영화, 문학, 사진 등과 같은 예술은 영혼의 양식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한 영혼의 양식을 만들어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이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혼의 양식에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가닿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 에디터이니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자가 하는 에디터 일은 맨 먼저 인터뷰라는 거사를 치러야 합니다. 프롤로그의 서두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저자만의 작은 의식에 대해 적고 있는데, 프로다운 저자의 면모를 한껏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와 같은 프로페셔널리즘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토양에서도 길러지고 발휘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스쳐지나갑니다. 사회주의를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서 괜스레 궁금해집니다.

저자는 20여 년 동안 해왔던 에디터 일을 노년에도 여전히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질문지의 글자 포인트를 14로 키울 정도로 노안이 되었을 때도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니 말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아끼고 존중하는지를 저절로 와닿게 하는 저자만의 작은 의식에 대해 옮겨봅니다.

 

지금도 인터뷰를 앞두고는 웬만하면 끼니를 거릅니다. 그냥 차를 돌리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요. 그래서 저만의 방식으로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단 여러 날 준비한 질문지를 A4용지 4분의 1 크기로 인쇄합니다. 우측 페이지에 질문지를 붙이고, 좌측 페이지에는 추가 질문이나 주관적 단상을 빼곡히 적어 둡니다. 그 노트를 인터뷰 시작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들여다봅니다. 입술이 마르면 초조해지는 편이라 립밤도 꼭 챙깁니다. 저조차 애지중지 치르는 이 과정의 의미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글쎄요. 타인의 추상적 예술 영역에 제 몸과 사유를 진입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독려하는 최소의 방편이라 해 두죠. 질문지의 글자 크기를 자그마치 14포인트로 키워야 할 때까지도 지속되길 희망하는, 저만의 작은 의식이라 해도 좋습니다.

마침내 예술가를 대면하고, 인사를 나누고, 착석한 후에는 예의 노트를 덮습니다. 끝날 때까지 아예 펴 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질문지가 독백이라면 인터뷰는 대화이기에, 같은 언어임에도 그 메커니즘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까 인터뷰란 제가 고안한 질문을 아예 잊거나 다시 쓰는 작업이라는 역설도 성립하겠네요. 그렇게 한두 시간 동안 예술가가 평생 구축해 온 진실 안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아 깊숙한 지점까지 갔다 나오면 롤러코스터에서 갓 내렸을 때 마냥 온몸에서 피가 힘차게 돕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질의와 응답이 제 안에서 요동치고, 예술을 떠나 삶의 한 조각을 나눈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이 아찔한 개운함에 중독되어 남의 말나의 글로 전하는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지요. 설사 하나의 단어만 기억한다 해도, 예술가와 헤어진 후 만나는 세상이 인터뷰 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저의 시간은 누군가를 인터뷰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저자만의 작은 의식에서 구도자의 정성을 보는 듯합니다. 철두철미한 만반의 태세는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기 위한 지극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마 인터뷰가 예술 그 자체가 된 어떤 날은 쾌재를 부른 날도 있었나 봅니다. 그 성취감을 기억하는 저자의 몸과 마음이 노후까지 줄곧 고양되어 갈 듯하여 저자가 노년에 쓴 인터뷰집도 신뢰하고 고대하게 만듭니다.

저자만의 작은 의식은 40대까지는 흔들림 없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몸의 변화를 알리는 50대가 되면 저자만의 의식에도 변화가 오리라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뷰의 질이 하향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연륜이 더해져 오묘해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 60대가 되면 관조하듯 표표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일과 사랑하는 가족을 함께 지켜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두 가지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일과 가족을 함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면 여자든 남자든 모두 공감하리라 싶습니다. 그 공감의 연장선상에서 저자의 소탈한 격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문장 두 개를 프롤로그에서 골라봅니다.

 

주말마다 카페에 틀어박혀 뭔지 모를 것을 쓴다던, 다른 엄마들과는 다른, 엄마를 이해해 주는 딸 하윤과 아들 지원을 비롯해 영원한 응원군인 남편과 부모님에게 고맙다고 쓰고 싶다면, 많이 촌스러울까요 

 

예술보다 더 중한 일이 많음을 알아 버린 지금도, 느끼고 좋아하고 공부하고 기록하는 등 기본에 충실히 산다는 게 무의미한 짓만은 아니라는 걸 일깨웁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마치면서 김부식이 백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문장을 독자들에게 선물하듯이 내밉니다. 옮겨봅니다.

 

너무 근사한 문장이라 나눕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 사치스럽지 않다이멋진 문장을 독자 여러분과 기쁜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일과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며 생을 이끌어 온 예술가들이 제게 선사한 영감의 핵심이자 제가 일구고 싶은 삶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겨우 책의 프롤로그를 책맛보기 했을 따름입니다. ‘겸손하지만 만만하지 않고, 공유하면서 계몽하지 않는저자의 프롤로그에 권위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다음 주에는 책의 본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예술가를 만나게 되리라 싶습니다. 벌써 설레고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겨 봅니다.

 

감수성이 타자와 세상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실천할 수 있는 숨은 힘이라면, 예술 감수성은 예술 앞에서 내 심신의 세포를 활짝 열어 둘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다른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짜릿한 일이다. 요즘을 살면서 무언가를 마음껏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매일 깨닫고 있다.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https://youtu.be/0xxWc1e1Cro

 

i*****e 2021.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