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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마치 천 년이나 남아 있는 것처럼 살지 마라 모든 사람의 실체는 썩어 없어지도록 예정되어 있다. 물과 흙과 뼈와 악취로 썩을 것이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대리석은 땅이 응고된 것이며, 우리들이 갖고 있는 금과 은도 땅의 침전물에 불과하다. 우리의 옷은 한 줌의 털로 짠 것이고, 자색 빛깔도 물고기의 피에서 나온 것이며, 다른 모든 사물들도 다 이런 식이다. 우리들 생명의 호흡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화한다. 당신의 생이 마치 천 년이나 남아 있는 것처럼 살지 마라. 죽음은 늘 당신의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힘이 남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하는 데 힘써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현우•이현준 역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서 ) 삶과 죽음에 대한 위해한 통찰!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철인 왕 아우렐리우스의 사색적 기록! 2천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생의 필독서로 읽히는 이유는 [명상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다.<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명상록]은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군 시절에 처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접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이라 경험과 연륜이 적어서 인지 고리타분한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박 겉핱기 식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 불혹의 나이에 명상록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었다. 물론 원전은 아니다. 불혹이라는 시간이 되기까지 인생의 단맛과 쓴 맛을 경험한 후에 접하는 명상록은 살아있는 고전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한자명 안돈(安敦). 121년 로마에서 출생하였다. 5현제(賢帝)의 마지막 황제로, 후기 스토아파(派)의 철학자이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양자가 된 후 140년 로마의 콘술(집정관)이 되었고, 145년 안토니누스의 딸(사촌누이)과 결혼, 161년 안토니누스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로 즉위하였다. 당시의 로마제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변방에는 외적의 침입이 잦았으며, 특히 도나우강(江) 쪽에서는 마르코만니족 및 쿠아디족이 자주 침입하여 그 방비에 힘썼다. 그동안 페스트가 유행하여 제국은 피폐하고, 게르만족과의 전쟁에 시달리면서 발칸 북방의 시리아 및 이집트 등의 진영(陣營)에서 병을 얻어 도나우 강변의 진중에서 죽었다. 유명한 《명상록(冥想錄)》은 이 진중에서 쓴 것으로 스토아적 철인의 정관(靜觀)과 황제의 격무라는 모순에 고민하는 인간의 애조(哀調)가 담겨 있다. Meditation(명상록)으로 널리 알려진 이 수필집은 원래 To Himself(자신에게)라는 제목으로 아우렐리우스가 진중에서 그리스어로 쓴 글을 모은 일종의 수기이다. 사실 아우렐리우스는 이 책을 출판할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이 책이 어떻게 [명상록]이라는 제목으로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이 책을 접한 후대 사람들이 단지 한 개인의 사적인 기록으로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명상록]이라는 제목을 붙여 이를 보존하고 출판함으로써 이후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명상록]은 전체가 12개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지만 각 테마별로 어떤 논리적인 체계를 따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 그것을 지배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신, 그리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갖가지 삶의 소소한 일들을 그가 평생 연구하고 심취했던 스토아 철학의 바탕 위에서 조명함으로써 이 책에 일관된 흐름을 부여하고, 내용상으로는 하나의 체계를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자연의 본성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스토아학파의 신념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불멸의 고전으로 손꼽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목적에 따라 모든 사물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내면의 움직임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라. 내 영혼의 속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나를 지배하는 이성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내라 타인의 가식적인 찬사에 영혼이 병들게 하지 말라. 내 안의 동력 장치는 육체가 아닌 내면에 숨겨져 있다.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에 동요되지 마라 내 영혼의 능력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 자문하라. 행동을 할 때 그 목적에 대해 자문하는 습관을 들여라 나를 괴롭히는 고민의 대부분은 내가 빚어낸 것들이다. 가지지 못한 것들 대신 내가 가진 축복들을 헤아려보라 사람들의 찬사와 비난은 칼의 양날과 같음을 알아라. 마음을 움직이는 한 구절 한 구절이 명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에게 큰 감동을 주는 명언이 있었다.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지인들의 장점을 떠올려라. 당신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기 원한다면 주위 사람들의 장점들을 생각해보라. 예컨대 아무개는 능력이 출중하고, 아무개는 희생정신이 강하며, 또 누구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마음속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개성에 나타난 각기 다른 장점들을 풍부하게 떠올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언제나 당신 눈앞을 떠나지 않게 하라. 참으로 주옥같은 명상록이다. 그의 글을 접한 사람들이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서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책으로 냈다. 고전으로 이제는 전 세계인들이 읽는다. 1세기에 쓴 그의 명상록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라는 자리에서 자신만을 생각했다면 명상록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했다. 나와 이웃을 사랑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명상록을 통해 개인주의적으로 변질된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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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과서와 TV에서 얼핏 들어봤던 이름 아우렐리우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살아오다가 뒤늦게 독서에 빠져서 책을 읽다보니 아우렐리우스가 상당히 많이 그리고 자주 언급되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인문서적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구절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18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의 에세이가 오늘 날까지 회자되며 깨달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의 글 속에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통찰이 담겨있어서일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이자 5현제의 마지막 황제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그가 남긴 시대의 명저 명상록은 본래 출판할 의도가 없었기에 어떻게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다만 이 책을 접한 후대의 사람들이 개인의 기록으로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명상록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존하고 출판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1장 나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책은 위와 같이 6가지 주제에 해당하는 다양한 문구와 통찰이 담긴 칼럼들로 구성되어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 자연의 섭리를 인지하고 순응하는 깨달음, 자아인식과 내면과의 소통을 통한 마음의 안정, 도덕적 통찰과 분별력에 관한 조언, 고통과 역경, 위기에 대처하는 마음가짐, 용서와 화해의 가치, 진정한 선행의 가치와 방법 등 인간의 본질적인 통찰과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철학적 통찰을 통해서 풀어냈다.
솔직히 이 책에 담긴 아우렐리우스의 통찰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동안 많은 책들과 수많은 미디어에서 그의 통찰을 간접적으로 접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사유하고 깨닫는 과정을 진지하게 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눈과 머리로 한번 훑어봤을 뿐이다. 뒤늦게 이 책을 통해서 각 구절의 의미와 가치를 곱씹어보며 명상록이 불멸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씩 실감해가고 있다. 몇 가지 이야기들은 내가 갖고 있는 신념과 조금 벗어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여러 번 곱씹어볼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다. 뒤늦게 삶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깨닫기 이전에 명상록을 통해 통찰해간다면 남은 삶을 보다 올바르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데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런 면에서 명상록은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곱씹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조만간 재구성되지 않은 명상록도 다시 접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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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옮김 : 이현우, 이현준 출판사 : 소울메이트 역사 속 로마에는 오현제(五賢帝)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다섯명의 현명한 황제가 다스렸던 시기이며 로마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로마사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를 통해 접했다. 물론 그전에 여러 역사책을 통해 대략의 흐름은 읽어 본적이 있지만 로마사 전체를 관통하면서 로마라는 제국이 서양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직접적으로 생각해본 계기는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로마가 제국의 틀을 세워가던 카이사르편과 제국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콤모두스편을 주위 깊게 봤었다. 게다가 콤모두스의 경우 우리에게 영화 글레디에디터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영화가 역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로마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역사 속에서 로마가 가장 풍요로웠다고 일컬어 지는 오현제의 시대에는 양자를 통해 왕위를 계승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 전통은 국가를 다스리는데 객관성을 부여한다. 즉,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국가의 아버지 칭호가 부끄럽지 않게 느껴져야 비로소 진정한 황제로 불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전통이 깨진 것이 바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자신의 아들인 콤모두스를 공동 황제로 임명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때부터 로마는 종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역사에서 볼 때 폭군중의 폭군으로 등장하는 콤모두스의 아버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본인 스스로가 철학적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그런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식이 어떻게 세상에 둘도 없는 폭군으로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때문에 이 부분에 관심이 많았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할 내용은 아닌 듯 하고 이 책의 주인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로 돌아가 보자 프랑스 고대 철학자 피에르 하돗(Pierre Hadot)은 철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했다. 하나는 담론이론이고 하나는 삶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담론이론이라는 것은 철학자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철학적 저작을 남겼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삶의 형식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 자체가 철학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경우 일생 동안 어떤 저작도 남기지 않았으며 체계적인 이론도 없었지만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철학자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 자체가 철학적 삶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피에르 하돗의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명상록을 썼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그가 황제로서 어쩔 수 없이 정치를 했지만 그가 살아온 삶이 담긴 명상록에 의하면 그는 충분히 철학자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철인(哲人) 황제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그가 쓴 <명상록>을 들여다 보면 지금으로부터 1,900년 전에 저렇게 깊이 있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탄복할 때가 있다. 그래서 몇 번을 읽었던 이 책을 결국 소장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원래 명상록 텍스트의 12개 테마를 6개의 테마로 재 분류하고 핵심적인 내용만 뽑아 77개의 칼럼으로 새롭게 정리했다고 저자들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인지 기존에 분명히 읽었던 글이 틀림없음에도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보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너무 간추린 느낌도 받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이외에도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할 수 있는 주옥 같은 글들이 많이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명상록은 그 자체가 마르쿠스의 개인 기록이다. 이것을 당시에는 ‘메모’라는 장르로 분류했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마르쿠스는 후기 스토아 학파로 그의 글 전반에 스토아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또한 명상록은 대략 4가지 정도의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자기 자신을 ‘너’로 바꾸어 대화하는 형식의 독백문을 취한다. 둘째, 소크라테스의 자기검토 사상에 입각한 철학적 자기 검열 전통이 담겨있다. 셋째, 자신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심리치료적 글쓰기 전통을 이어 받았다. 이것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으로 불린다. 넷째, 깊은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찌르는 언어로 표현하는 스타일을 취한다. 흔히 아포리즘(aphorism)이라 불린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명상록에는 보다 깊이 있는 스토아 철학의 향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금 책의 텍스트가 많지 않음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 실려 있는 문장 하나 하나는 충분히 곱씹어 보면서 생각을 해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살면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삶이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반드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게 되어 있다. 물론 생각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은 이런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 또한 상당히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보다 많은 사람이 지금으로부터 1,900년전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황제가 왜 스스로를 들여다 보면서 이 글을 썼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희망해 본다. 오늘 나에게 임종의 순간이 다가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간주하라. 그러면 앞으로 주어질 시간들은 계약서에도 없는 특별 보너스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그 보너스를 가지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라. – p55 노래하는 멘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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