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R.A. 토레이는 성령의 사람이다. 그는 토레이 가문의 인물이며 현재 예수원에서 사역하는 분이다. 그는 깊은 영성의 소유자이며 기도에 대한 여러 저서들을 발간했다.
현재는 스피드 시대이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찾지 못하는 시대이다. 잠깐의 시간에도 스마트폰, 미디어에 빠져들고자 하는 세대가 바로 우리들의 세대이다. 잠시의 쉼도 없는 바쁜 일상에 영적인 것은 잃고 있다. 메마른 땅에 메마른 심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본서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진 시대적 흐름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임을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속에서 배교를 하고 있다. 본서에서 우리는 시대를 바라보는 저자의 간절함이 보인다. 본서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적 의심과 다원주의에 빠져있는 현실속에서 어떻게 시대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담고 있음도 보여 준다.
시대적 혼란을 가졌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찾는 바로는 기도로 극복했음을 교회사에서 찾게 된 것이다. 교회사를 통해 찾게 된 기도 운동은 시대를 살렸고, 국가를 살렸다는 것이다. 다시금 영적 대각성 운동은 오로지 기도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기도의 부흥을 통해 놀라운 영적 각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서는 기도관련 책이지만 시대를 깨우고자 하는 몸부림이 담겨있음을 보게 된다. 교회와 성도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금 기도 회복을 통해 영적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본서의 간절함은 곳곳에 담겨있다.
기도란 무엇인가?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필요성을 찾지 못하는 시대에 두가지의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책이 본서일 것이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막연함과 번거로움 때문에 기도의 자리에서 벗어났다. 벗어난 기도의 자리에 다시금 불려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길은 그 부름에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결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본서는 다시금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고 있다. 기도를 통해 자신과 교회의 부흥뿐만 아니라 시대를 부흥시키는 영향력을 갖고 나누자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기도의 비밀은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하면서도 도전을 갖게 하는 책이 바로 본서이다.
본서는 기도의 권능을 왜 받아야 하나?, 기도의 권능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기도의 권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이다. 다시금 기도에 대한 동기부여를 통해 기도의 사람으로 이끄는 본서는 토레이의 가슴과 영적 사랑을 살필 수 있게 했다.
|
|
저자는 19세기에 세계적 전도자인 D.L. 무디와 함께 사역했던 기도의 사람이다. 저자는 기도의 사람이며, 그 기도의 능력을 일생동안 체험한 실제적 성령의 기도자라 할만한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오늘 기도한 내용이 오늘 응답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 현대의 우리는 순결한 자세, 회개의 자세를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싶다. 기도의 응답자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의 응답을 보면 그분은 성결하시며, 인격적이시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골방에서 매어달리는 하나님 백성의 기도를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때가 차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어느 복음성가처럼 '교회를 '교회답게'처럼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응답하시도록 우리는 그에 맞는 나는 믿는다. 기도 속에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
|
주님은 교회를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 새벽기도도 점점 형식화하고 있다. ‘40일 특별새벽기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평소에는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흥이 멈추고 교회가 세속화되고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은 ‘기도 부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기도의 무릎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말씀의 능력이 약화되고 성령 충만함이 약화되어 영적 나약함과 빈곤함이 찾아온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기도하지 않는 시대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교인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이론적으로도 믿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기도’라는 강력한 무기를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이 책은 무디성경학교의 초대 교장을 역임한 R.A. 토레이가 부흥과 관련하여 기도를 다룰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활동의 다양한 분야들과 관련된 기도를 다룬다. 저자가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할 때 전했던 기도에 대한 설교의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모두들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믿는 성도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한국교회가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말한다. 일부 학자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고도화에 따른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물질주의·세속주의 가치관의 범람에서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근본 위기는 한국교회의 기도가 줄었다는데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의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보편적이고 광범위하고 깊고 철저하고 진정한 부흥이다. 이런 부흥은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관계 및 해외선교에도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런 부흥은 하나님의 진정한 생명이 더욱 크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다시 교회를 통하여 사회 전반에 들어오는 것이다.”(p.265)라고 했다. 가장 복된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기 직전에 기도를 중단하여 결국 그 복을 놓칠때가 많다. 우리가 구한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우리에게 응답을 주실 시간이 다가온다. 절대로 낙심하거나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말라.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잠시 책을 덮고 기도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기도에 관한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도전을 받는다 해도 막상 기도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도의 권능을 ‘왜’ 받아야 하나? 기도의 권능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기도의 권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3장으로 된 글은 때로는 설교로 들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명령처럼 느껴진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 점점 적게 나타나고 인간의 조직과 기획이 점점 득세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교회가 기도에 전념하여 제대로 된 기도를 드려서 응답 받는다면, 기도는 과거에 이룬 놀라운 일을 현재에도 이룰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도의 권능’을 받고 싶은 성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
“기도의 권능을 받는 법”이라는 책을 통해 나는, 나의 기도생활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게 되었고, 기도의 잘못된 부분과 또 어떻게 간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우리 기도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현재 형편과 사정을 아뢰어 소원을 간구하는 부분이 주를 이룬다. 가끔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기도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많은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나의 안위와 정욕을 위한 기도였고, 또 기도자의 중심이 하나님앞에 바르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많은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먼저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성령안에서 자신의 뜻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자신의 열정과 노력이 아닌, 오직 성령의 임재를 구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간절함을 담아 기도할 때, 주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자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가 만일 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오랜시간 부르짖었다면, 그것은 기도라기보다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또 다른 강요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강한 부담감이다. 이 책의 내용을 빌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 붓는 기도, 즉 뜨겁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데, 이런 간절함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사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많은 기도가 차갑고 형식적이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정말 얻겠다는 뜨거운 갈망이 우리 속에 얼마나 있는가? 심지어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에도 우리의 마음은 냉랭하다...그러나 성령님의 통제에 따라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강력하게 부르짖는다. 그들은 기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간다. 때때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한다.” 이런 부담감이 우리에게 있는가? 나는 이런 영적 부담감을 다시금 내 안에 넣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 다시금 이 세대를 일깨워야 할 책임이 있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시대의 완악함과, 죄악을 회개해야 하고, 불신의 영혼들과 깨어있지 못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각성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먼저 믿는 성도들의 책임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진정한 부흥은 교회밖에서뿐 아니라, 교회안에서도 새롭게 일어나야 하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다시금 부르짖고 기도하는 그러한 때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요. 권리인데,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모르고, 또 그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 특별한 기도의 사명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이 땅위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우리가 먼저 간절히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바이다. |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요일 3:22 기도하는 것은 내겐 어려운 통과의례와 같았다. 부흥회에서도 옆에서 누군가는 쉴새없이 방언을 터뜨리고 속사포처럼 말하는 소리와 울부짖음 속에서 난 무엇을 말해야할 지 몰랐다. 오히려 기도할 때마다 들려오는 음악에 더 귀를 기울일 때가 많았다. 기도를 잘할려면 내가 말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면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줄로 알았다. 스스로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급흥분해서 흔들어대면 방언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기도에 대한 정립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인지 구하라고 하신다. 단, 우리가 그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기뻐하시는 것들을 행할 때에라야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행할 때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인데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라라" - 막 11:24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도굴에 들어가본 적도 없고 쉽게 중도에 그만두곤 했다. 기도해야 할 동기가 명확하지 않았고 이미 지은 죄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장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소통하지 않은 탓이 크리라. 수많은 기도응답을 받은 자들처럼 전심전력하지 않았고 마음 속으로 의심과 다른 생각들로 가득차 있어서 고해성사처럼 기도를 드리기만 했었다. <기도의 권능을 받는 법>을 읽는 동안 뜨끔했고 부끄러웠다.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고 사례들을 통해서 더욱 기도가 교회 부흥을 위해서 더 절실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 요일 5:14 성경에 기록된대로 주님께 구할 때는 크고 담대하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신다. 교회가 부흥할 때는 기도의 열기로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곳곳에서 방언이 터지고 성령의 임재하심 속에서 주님만 생각하고 절실하게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기도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허물고 진정으로 주님 앞으로 있는 그대로 나올 때 기도만이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
「기도의 권능을 받는 법」을 읽으면서 지금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안전하게 했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먼 옛날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호적에서 이름을 파야 했고 가정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것은 10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자 신앙이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안전하고 풍족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도망 다녀야 하고 핍박받아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어떤 곳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말씀보도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도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올라가 보라.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있는가?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말씀보고 기도 할 수 있는 축복받은 환경이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풍족함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진 이유는 다름 아닌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나님 모습조차도 희미해진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신앙이며, 우리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왜? 왜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무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모습이 사라졌을까? 답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가 없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가? 최근 매스컴을 통해서 차마 낯을 들지 못할 정도로 교회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결코 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교회에 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음을 고백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한다. 세상을 걱정하고 도와주어야 할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염려꺼리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희미해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해답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 마지막 명령이며 유언과도 같은 것이다. 교회와 개인은 늘 전도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전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시대이다. 교회는 전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과하고 결과는 신통치 않다. 많은 예산을 드려 전도용품을 사고 거리로 아파트로 나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우리는 잊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능력을 망각하고 인간의 기획력과 조직력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을 추진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뛰어난 기획력과 조직력,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따라오지 못할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기획력과 조직력,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많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목회자나 어떤 교회라도 부흥을 꿈꾼다. 부흥의 시작은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기도이다. 다른 것에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성령안에서 드리는 기도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