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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끝에서 마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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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지음 / 텍스트북  홍천에서 김소라 작가님을 뵙고 영월에 내려오자마자 책을 구입했다. 몽골! 듣기만 해도 마음이 떨리는 단어이다. 2006년 6월 철원으로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받은 월급을 탈탈 털어 갔던 곳이 바로 몽골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친구, 후배와 함께 한 달을 다녔어도 힘들었는데, 중1 아들과 함께 몽골이라니! 여행기 대신 감히 교육에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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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지음 / 텍스트북

 

홍천에서 김소라 작가님을 뵙고 영월에 내려오자마자 책을 구입했다. 몽골! 듣기만 해도 마음이 떨리는 단어이다. 20066월 철원으로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받은 월급을 탈탈 털어 갔던 곳이 바로 몽골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친구, 후배와 함께 한 달을 다녔어도 힘들었는데, 1 아들과 함께 몽골이라니! 여행기 대신 감히 교육에세이라 부를만 하다.

 

나는 몽골여행을 앞두고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 <유목민 이야기>, <칭기스칸 천년의 제국을 읽었는데, 작가님은 오츠카 유우조의 수호의 하얀 말과 바아 승수릉 벌러르마의 나의 집이렇게 두 권의 그림책을 읽고 가셨단다. 읽은 책에서부터 뭔가 여행하는 목적 자체가 다르게 보인다.

 

2006년 남자 네 명은 청주 공항에서 몽골 민항기인 몽골리안 에어라인에 올랐다. 직항인 줄 알았는데 중국 천진 공항에 잠시 들러 주유까지 해야 하는 작은 비행기였다. 왕복 50만원은 당시로도 엄청 저렴한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여행을 가기 전까지 몽골 사람들은 가난한 유목민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난 유목민 중에는 게르를 별장처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여행 중에 말린 치즈라고 받아서 먹은 적이 있는데 작가님 책을 통해서야 그게 아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장이 건강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몽골 음식을 거침없이 먹어치워서 껄걸 탱그리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다.

 

몽골여행을 하면서 러시안 지프를 빌렸는데 이 책에서는 그 차가 푸르공이라고 알려준다. 운전사 에케메가 자기 아내나라5살 아들 오토코도 함께 가도 되겠냐고 해서 엉겹결에 동행하게 되었다. 우리가 정한 코스는 고비 사막까지 내려갔다가 홉스굴을 거쳐 울란바라타르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식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이었다. 마트에서 생수를 잔뜩 사서 차에 실었는데 나중에 몽골 사람들이 물로 세수를 하고 발까지 씻은 후 밭에 알뜰살뜰 뿌리는 모습을 보고 약간의 죄책감까지 느꼈었다.

 

몽골에서 우리 차가 멈춰선 적은 없지만 함께 출발한 다른 차량이 고장 나서 사막에서 50분이나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서로 돕지 않으면 고장난 차에 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동행할 수 있게 해 준 덕분에 바얀작에 있는 나라의 친척 집에서 염소 고기를 대접받게 되었다. 염소 잡는데 보러 가겠냐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이미 심장이 가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목을 자른 후 목구멍에 손을 넣어서 잡고 있으란다. 그 사이 친척이라는 사람은 창자를 분리하고 여자들은 몸통에 남은 피를 바가지로 퍼서 다른 통에 옮겨 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몽골에서는 칭기스칸 시대부터 동물의 피를 초원에 뿌리지 않았단다. 동물이 최대한 고통을 느낄 수 없도록 빠른 시간 내에 죽이기 위해 심장을 꺼내 멈추게 한다는 것이었다. 작가님의 글을 보자 다시 그 때 목구멍에 손을 넣었던 촉감이 되살아났다.

 

몽골 서적을 읽고 그렇게 여행을 다녔는데도 작가님 책을 통해 칭기스칸의 네 번째 부인인 발해 여인 솔롱고스 훈을 처음 알게 되었다. ! 솔롱고스 훈은 몰랐는데 셀렝게에 있는 그 동상은 어딘지 눈에 익는다. 다음에 나도 아들 녀석과 몽골에 가게 되면 꼭 들러봐야겠다. 셀렝게에는 수흐바타르 박물관도 있단다. 울란바타르에서 자주 갔던 곳 중의 하나가 수흐바타르 광장이었다. 수흐바타르가 몽골의 독립을 선포했지만 완전한 주권 독립국으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우리는 제일 저렴한 숙소를 원했기 때문에 홉스굴 입구에 있는 게르에서 머무르려고 했는데 호수와 거리도 있고 너무 지저분해서 조금 더 들어가 요르크 산이 있는 게르에서 34일을 머물게 되었다. 더 들어가면 블루펄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가면 시설이 더 좋지만 비싸다고 했다. 그런데 몽골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바로 그 숙소였다. 주인 아저씨의 딸이 영어가 가능했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먹어보라며 먹거리를 들고 오셨기 때문이다. 샤가이 게임이란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부탁해서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샤가이 게임은 나중에 영월에 있는 코이카 월드프렌즈빌리지에 가서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자세한 설명은 처음 보았다. 작가님! 이거 월드프렌지빌리지에 크게 하나 출력해서 붙이시는 건 어때요?

 

몽골을 여행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는 게르 천장을 일일이 깁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몽골에서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책에서 몽골 초등학생들은 특별활동 시간에 게르 짓는 방법을 배운단다. 특별활동 시간에 한옥 짓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해봐라! 멋지지 않은가 

 

열한 살 아이 똘리공이 알려준 고비 베어라 불리는 마잘라이곰은 정말 충격이었다. 겨우 11살짜리 아이가 멸종위기 동물을 알고 있는 것도 놀랍지만 마잘라이곰을 돕기 위해 작가님께 메신저를 보냈다니 작가님의 마음이 요동칠만하다.

 

홉스굴에서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길은 내 인생 최악의 코스였다. 길이 너무 좋지 않아서 다들 허리가 나갈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게르에서 사용하려고 가져왔던 침낭을 의자에 깔고 앉아서 가야 했다. 충격이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차강소브라가라는 지명을 듣자마자 절벽을 뛰다시피 내려가던 사람이 기억난다. 보는 사람마저 조마조마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몽골의 한 아이였다. 30m 높이를 겁도 없이 뛰어다니는 저 녀석이야말로 칭기스칸의 후예라 부를 만 하구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대면한 욜링암은 경이 그 자체였다. 내 키만한 얼음층이 덮고 있는 계곡이 초원 한 가운데 있을 줄이야! 그런 욜링암의 빙하가 다 녹아버렸단다. 겨우 15년만에... 킬리만자로의 만년설도, 욜링암의 만년빙도 인류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몸서리쳐진다. 영하 40-50도까지 내려가는 몽골의 혹한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조드라는 자연재해이다. 눈이 와서 얼어 죽고, 눈이 안 오면 굶어 죽는 아주 역설적인 재난! 조드도 지구 온난화로 더 강력해지고 있단다. 그래서 초원을 버리고 울란바타르로 모여들어 게르촌을 형성하는데 다시 여기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청정국가 몽골의 수도의 공기질이 나쁘다는 것 역시 역설적이다.

 

한 때 육식의 종말을 보고 채식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나는 육식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작가님 말대로 육식 자체가 아니라 대량으로 육식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님이 제일 좋았다고 하는 쳉헤르 온천은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호르고 화산은 가봤는데 온천이 있을 줄이야! 이곳도 다음을 위해 저장! 간단 사원도 우리가 간 날 문을 닫아서 결국 가지 못했다. 이 곳 역시 저장!

 

마지막 부분은 이태준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도 우리가 다녀간 이후 세워진 듯 하다. 이태준은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이끌던 몽골의 어의였다. 작가님이 이렇게 남겨주신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사막과 홉스굴 뿐만 아니라 이태준 기념관도 다녀올 수 있게 될 것이다.

 

한 달의 여행은 어떻게든 끝이 났다. 여행을 마치고 나의 삶은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만사가 행복해진다. 그런 비밀을 일찍 알게 된 작가님 아들이 한 없이 부러워진다. 나도 아들이 조금 더 자라면 몽골에 한 번 가야겠다. 작가님! 삼척에 가시면서 영월에 한 번 들러주세요! 나눌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z*******2 2020.1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