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는 노인네인지라 많이 얻어 마시지는 못했지만 암호랑이 백무후는 상당히 감별력이 뛰어난 미주 애호가였다. 술 마신 경력만이 어언 이백 년. 이젠 어지간한 술로는 그녀의 예민하고 섬세한 미각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백무후는 어떻게 술을 마실까? 이 고고한 산의 여황은 놀랍게도 인간이 마시는 잔보다 큰 잔을 오른 앞 발등에 올려놓고 기술 좋게 마신다. 마치 인간처럼.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술이 항상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구책을 강구해서 자기가 마실 술은 스스로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무후의 섬뜩한 아가리에 물려 있는 것은 최고급 비단으로 감싸인 '달의 이슬' 두 병이었다. 백무후는 지금 저 술창고에서 걸어나오게 된 것이고 연비는 그런 백호를 향해 검은 우산을 움켜쥔 채 달려들고 있었다. 검은 우산이 검은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뻑! "꾸에에에엑! 꺄울~!" 괴이한 비명이 강호란도의 밤하늘로 낭랑히 울려 퍼졌다. 그것은 어째 좀 인간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삼백 년 살다 보면 인간의 말을 알아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말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
| 상대의 흐름에 휘말리는 것은 어떤 경우든 좋지 않았다. 의호 하우스의 손에는 파랗게 날이 선 소도가 들려 있었다. 하우스가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 비록 하우수의 소도가 날카롭고 재빨랐지만 윤미의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기민했다. 윤미가 익힌 칠매검은 화산파의 유명한 검법인 매화이십사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보다 좀 더 압축된 검로였다. 윤미는 전심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허공중에 매화가 피어오르며 은은한 매화향이 감돌기 시작했다. 매화가 바람에 휘돌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꽃잎들이 걷혔다. 그러자 의호 하우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얼굴 곳곳이 울긋불긋했다. 그리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고 눈동자도 게슴츠레하게 풀려 있었다. 하우스는 모든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쭉쭉 빠져나가는 증세가 있었다. 윤미의 승리였다. 두 번째로 나선 사람은 연비였다. 연비의 상대는 의료미숙조의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호원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시합 개시라는 선언이 울려 퍼지자 호원이 장침 세 개를 빼 들며 달려들려 했으나 연비가 더 빨랐다. 즉시 손을 치켜든 연비가 외쳤다. "기권합니다!" 막 달려들려던 호원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반면 연비의 얼굴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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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정확히 뛰어들면 대난원이 있는 수중 동굴로 갈 수 있다고 장홍이 말했다. 매섭게 소용돌이치는 강물을 바라보며 장홍이 제일 먼저 뛰어들자 장홍의 신형이 꼬리를 그리며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물에 빠져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라도 하듯이 비류연이 조용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 있던 모용휘와 남궁상도 덩달아 정중한 태도로 합장을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눈을 감고 합장한 채 비류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안녕, 아저씨. 앞으로도 영원히 아저씨의 희생을 잊지 않을게." 그러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때, 그의 중지 끄트머리가 뒤로 살짝 당겨졌다. "칫, 살아 있었네." 장홍의 발목에 재빨리 감아두었던 뇌령사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것은 장홍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고 저 소용돌이 밑에 정말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였다. 비류연이 "하아, 그렇다면 가볼 수 밖에 없지. 안그래?"라고 말하면서 남궁상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남궁상이 뛰어내렸고, 그 뒤엔 떨떠름한 얼굴로 모용휘가 뛰어내렸다. 비류연이 마지막으로 "장인어른, 제가 갑니다!"라면서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대난원! 깊고 은밀한 동굴 속.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대난원'이라 불리는 이 적막한 피신처 깊숙한 곳에서 나백천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마천각주의 공격은 나백천의 검을 지나 가슴을 베었다. 조금만 깊었어도 그 상처는 갈비뼈를 자르고 심장을 갈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백천을 더 동요시키는 것은 그 기술의 존재 그 자체였다. 나백천은 운기요상법을 시전해 흉근을 움직여 상처를 닫았다. 벌어졌던 상처가 한순간에 닫히며 피가 멎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의 앞가슴에 난 가느다란 상처가 다시금 벌어지면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주룩주룩, 사선으로 갈라진 가느다란 상처로부터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 주위에서는 기의 흐름이 끊어지기라도 한 듯 제대로 기가 흐르지 않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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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의 하늘을 받치는 일곱 기둥, 칠주! 열세 개의 기둥 중 백년 전 싸움으로 전멸한 여섯 개의 기둥은 빼고 남은 일곱 기둥, 이들은 크나큰 대전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강했지만 같이 생존한 서로에 비해 뛰어나게 월등히 강하지는 못했다. 한 곳이 특출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명령은 들으려는 척도 하지 않았다. 흑천맹 내에서 그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무신마의 피를 이은 갈중천뿐. 현역에선 물러났지만 태상맹주로 암중에 군림하고 있는 무신마 갈중혁의 후광은 아직도 흑도 전체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허락 없이 정식으로 새 맹주가 뽑힐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어차피 그는 공식적으로는 은퇴한 입장이다. 특히 범인이 나백천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상 아무리 흑도의 거인이라 해도 자식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말릴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격론을 펼치고 있는 일곱 명의 원로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들의 맹주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마천각주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의실에 있던 일곱 명의 원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천각주는 흑천맹의 상담역이자 고문이자 태상원로였다. 무림의 법은 강자존, 칙은 약자멸이다. 원로 중의 한 사람이 "이번 맹주님 암살의 범인인 정천맹주 나백천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묻자 상좌에 앉은 마천각주가 "피는 피로 갚는 게 흑도의 법칙이지, 피에는 피로, 맹주에는 맹주, 그 목숨 이외의 대가는 생각할 수 없군." 대답했다. 원로들이 정천맹을 쳐야 한다. 정천맹이 먼저 불가침조약을 깬 이상 이제 전면 전쟁뿐이라고 하자 마천각주가 "십천군을 움직이지. 정천맹이란 이름 석 자를 이 강호에서 지우기 위해서는 십천군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라고 말했다. 그들은 흑천맹이 지닌 최대의 전력이자 흑천맹의 무력 그 자체를 나타내는 열 개의 부대였다. 꼬리를 감춘 나백천의 추적에는 칠성좌를 수색 추적으로 돌리도록 하고 십천 중 제삼천인 굉천을 움직여 정천맹을 치겠다는 마천각주이자 임시 흑천맹주의 명령이 떨어졌다. 백 년 만의 대전쟁, 지금 강호에 피의 강이 흐르려 하고 있었다. "독보군림! 흑천영세!" 원로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배례하며 일제히 외쳤다. 흑천맹주 갈중천을 살해한 암술자가 마천각주인 듯한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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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린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금침이 말뚝처럼 자신의 요혈 곳곳에 박혀있어 기의 흐름을 완전히 봉쇄한 서른여섯 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진다는 홀황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자신을 속박하는 주박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녀의 의지는 충분히 금침에 닿아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완전 제어 상태였다. 금침의 주위에 있는 근육들에 명령을 내려 의지를 움직이자 즉각 근육들이 금침을 움켜잡고 조금씩 위로 밀어 올리면서 금침이 몸에서 빠져나와 툭하고 떨어졌다. 나예린은 옷고름에 강기를 주입하여 간수들의 급소를 때려 기절시킨 후 감옥을 빠져나오다 간수들이 번을 서고 있던 곳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애검 '빙루'를 발견하곤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녀가 갇혀 있던 감옥의 유일한 출구는 온통 쌀포대와 마른 나물과 각종 먹을 것들과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광과 연결되어 있었다. 은발의 남자 무명은 간부급만 이용하는 일번대 특별 식량 창고를 지나게 되면서 이곳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나예린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의 본능이 눈앞의 이 사내는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렸다.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예린이 먼저 공격을 했다. 나예린이 스승 검후로부터 전수받은 최고의 검기인 '해상비조천참절'을 펼치자 무명도 검을 뽑으니 그녀의 검기가 신기루처럼 일순간에 사라졌다. 최후의 한 수까지 소모한 나예린에게는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무리하게 진기를 모두 소진한 그녀의 의식은 끊어졌다. 무명은 부대장 소옥과 함께 의식불명인 나예린을 안고 사번대로 향했다. 현운과 비류연 일행은 중상을 입은 남궁산산을 치료하기 위해 불락구척 사번대 대장에게 도착해 있었다. 현운은 남궁산산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블락구척 사번대 대장의 요구대로 만독과 해독의 임상실험대상이 되기로 했다. 만독을 먹은 현운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에서 왈칵 검은 피를 토해내며 기침을 하다가 자신의 목을 움켜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완전 중독 상태가 되어 입가에선 검은 피와 침이 뒤섞여 독액 같은 액체가 흘러나와 온몸이 피부 구석구석까지 검게 물들어가면서 길게 늘어져 버린 현운은 결국 숨을 멈추었다. 장홍이 기겁하며 불락구척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빨리 손을 쓰라고 외쳤다. 불락구척은 아직 죽은 게 아니고 가사상태에 빠진 완전 중독 상태이니 소란을 떨지 말라면서 해약을 꺼내 먹였다. 불락구척은 현운과의 약속대로 지금부터 치료를 개시한다면서 남궁산산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릿 속에 꽉 들어찬 블락구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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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각 육번대 대장 무명이 시도 때도 없이 게으름을 피우려 할 때마다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 바로 육번대 부대장인 장소옥이 대대로 맡아온 본분이었다. 무명이 "부대장, 졸린데 우린 그냥 돌아가서 잠이나 더 자는게 어떨까?"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장소옥을 돌아보았다. 마천십삼대에서 가장 불행한 부대장으로 불리는 장소옥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침입자가 마천각내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지금 잠이 오십니까?"라고 말하면서 '끄응' 하고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무명도 열심히 자신이 누구였을까? 자신의 이름은 뭐였을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질문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자 서서히 그런 질문은 소멸되어 갔다. 비상소집 같은 것은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총대장의 명령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 '어떤 녀석들일까?' 그가 안주하고 있던 세계가 불시의 침입자에 의해 약간 흔들렸다. 이런 일은 수십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겁령의 대공세 같은 것도, 백도의 총공격도 아니다. 상대는 아직 어린애들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 부분이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대체 어떤 아이들일까? 무엇을 하고자 하는 걸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약간 궁금해졌다. 알아봤자 곧 잊어버리겠지만 시간 때우기로는 딱 좋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잠을 자지 않고도 자신의 따분함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찾아가 볼까?" 무명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는 것을 보며 부대장인 장소옥이 물었다. "어딜 말입니까, 대장님?" 무명이 "아, 당연히 침입자들을 찾아가는 거지. 방금 그렇게 명령받지 않았나?"라고 말하니 장소옥이 불신의 눈빛으로 "대장님께서 명령받은 그대로 하신다고요? 그 말 진심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럼 침입자들을 구경하러 출발!" 오른손을 힘차게 치켜올리며 무명이 외쳤다. 천무학관 주작단 일행들과 마천각 육번대 대장 무명이 만날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정체성도 기억나지 않는 무공의 고수인 무명의 정체가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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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상흔이 독무에 당해 쓰러졌고 나예린은 납치당했다. 나예린의 납치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비류연 개인의 힘만으로는 벅찼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류연은 이 사태를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힘과 인맥을 총동원해야 했다. 그동안 조용히 축적해 놓았던 자신의 저력을 끌어내 보일때라면 '연비'라는 모습은 방해였다. 예린을 찾으려면 원래의 모습인 비류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는 주작단원들을 찾은 다음 곧바로 장홍과 효룡을 찾았다. 추적술에 대해서만은 장홍이 자신보다 우수했다. 칠상흔의 정체는 무림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무신마 갈중혁의 첫째 제자였고 효룡의 대사형이었다. 그런 대단한 신분에 있는 인물이 투기장에서 검투노예 같은 걸 하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마천각에서 배로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엎어지면 코 닿는 이곳 강호란도에서 칠 년동안 아무도 칠상흔의 진짜 정제를 밝혀낸 사람은 없었다. 연비와 싸움에서 그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칠상흔의 정체는 여전히 세인들 사이에 비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직 의문점은 남아 있었고 칠상흔이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느냐 하는 것이다. 칠상흔이 모습을 감춘 것은 '피의 밤' 이후였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자 효룡은 마음이 칼로 찢기는 듯 아파왔다. 유년 시절 벌어졌던 그 일은 그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였다. 칠상흔은 효룡의 형 갈효봉의 돌연한 광태로 발생한 '피의 밤' 사건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 칠상흔 그가 비록 무신마의 대제자라고는 하지만 무신마의 적통을 이은 갈효봉은 그에게 커다란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마천각 내에서는 칠상흔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칠상흔이 모습을 감춘 것도 그렇게 중첩되어 가는 의혹이 그를 압박해 들어왔기 때문이 컸다. 그러나 효룡은 아직도 그를 믿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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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저연대의 대장은 나예린이었다. 나예린조의 윤미는 '의료미숙'조에서 가장 강한 자인 의호 하우수와 맞붙게 되었다. 의호 하우수가 진지한 어조로 "아가씨, 어디 아픈 곳은 없소?"라고 묻자 윤미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면서 "어, 없는데요! 없습니다. 절대로 없어요! 절대로. 맹세해요."라고 치료의공포에 떨고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윤미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연비는 쯧쯧 혀를 찼다. 상대의 흐름에 휘말리는 것은 어떤 경우든 좋지 않았다. 의호 하우스의 손에는 파랗게 날이 선 소도가 들려 있었다. 하우스가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 비록 하우수의 소도가 날카롭고 재빨랐지만 윤미의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기민했다. 윤미가 익힌 칠매검은 화산파의 유명한 검법인 매화이십사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보다 좀 더 압축된 검로였다. 윤미는 전심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허공중에 매화가 피어오르며 은은한 매화향이 감돌기 시작했다. 매화가 바람에 휘돌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꽃잎들이 걷혔다. 그러자 의호 하우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얼굴 곳곳이 울긋불긋했다. 그리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고 눈동자도 게슴츠레하게 풀려 있었다. 하우스는 모든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쭉쭉 빠져나가는 증세가 있었다. 윤미의 승리였다. 두 번째로 나선 사람은 연비였다. 연비의 상대는 의료미숙조의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호원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시합 개시라는 선언이 울려 퍼지자 호원이 장침 세 개를 빼 들며 달려들려 했으나 연비가 더 빨랐다. 즉시 손을 치켜든 연비가 외쳤다. "기권합니다!" 막 달려들려던 호원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반면 연비의 얼굴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연비는 곧장 몸을 홱 돌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나예린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석을 향해 걸어갔다. 나예린은 의료미숙조의 마지막 남은 사람인 문진 채이수와 대결하기 위해 투기장 한가운데 섰다. 나예린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 어린 시선들 때문에 그녀는 이 장소에서 오래 서 있고 싶지 않아서 "삼 초 안에 끝내겠어요. 그러니 너무 원망하기 마세요." 싸늘한 섬광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검에 당황한 채이수가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예린의 두번 째 검이 휘둘러졌다.검각 비홍검의 한 초식인 물 위를 나는 기러기의 움직임을 본딴 검초였다. 채이수가 쓰고 있던 하얀 복면이 반 토막되어 떨어졌다. 나예린의 검끝은 이미 채이수의 코끝에서 멈춰 있었다. 채이수가 "져, 졌소."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미소저연대와 칠상흔과의 대결이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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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만 냥 투기제의 본선 개막식을 내려다보고 있는 붉은 비단 청삼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뜻하지 않은 기회를 얻어 그자를 자신의 영역인 강호란도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는데 게다가 선물까지 덤으로 함께 발을 들여놓았다. 청삼 사내는 자신의 형인 백도 무림맹주 나백천의 가슴속에 영영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뚫고 싶었다. 청삼 사내의 붉은 눈이 한 검객의 호위를 받고 있는 아름다운 중년 여인을 향했다. "형수, 여전히 아름다우시구려! 크크! 그런데 어쩌지요? 이 아제는 당신을 잃은 형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말이오." 그녀는 그의 형 나백천을 불행하게 만드는 최고의 재료였다. 청삼 사내가 "흑사! 손님을 한 분 모셔와야겠다. 빙월선자 예청! 현 무림맹주의 아내시지. 귀하신 몸이다. 정중히 모시도록 해라. 인원은 마음대로 동원해도 좋다. 방법은 묻지 않겠다."라고 명하자 짧게 "예, 주군. 존명!" 답하고 흑사는 사라졌다. 오십만 냥 투기제의 예선에는 백 개가 넘는 참가 조가 출전했고 이 중에서 본선에 올라갈 수 있는 조는 오직 열여섯 개 조뿐이었다. 열여섯 개의 본선 조에 나예린과 연비(비류연), 윤미(윤준호가 여장)조도 당연히 올라왔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올라온 열여섯 개의 조에서 우승한 사람이 혈염제 칠상흔과 맞붙게 된다. 나예린 때문에 그녀의 부모인 나백천과 예청이 강호란도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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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의 현역 여황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백무후는 힘도 세지만 코도 무척 좋았다. 특히 술냄새를 맡는 데는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그것은 예전에 먹이 사냥이랍시고 달려든 암호랑이를 단숨에 제압한 다음 거의 애완동물 취급한 비류연 사부의 영향임이 분명했다. 암호랑이는 지난 세월동안 때때로 노인의 대작 상대였던 것이다. 술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는 노인네인지라 많이 얻어 마시지는 못했지만 암호랑이 백무후는 상당히 감별력이 뛰어난 미주 애호가였다. 술 마신 경력만이 어언 이백 년. 이젠 어지간한 술로는 그녀의 예민하고 섬세한 미각을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백무후는 어떻게 술을 마실까? 이 고고한 산의 여황은 놀랍게도 인간이 마시는 잔보다 큰 잔을 오른 앞 발등에 올려놓고 기술 좋게 마신다. 마치 인간처럼.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술이 항상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구책을 강구해서 자기가 마실 술은 스스로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무후의 섬뜩한 아가리에 물려 있는 것은 최고급 비단으로 감싸인 '달의 이슬' 두 병이었다. 백무후는 지금 저 술창고에서 걸어나오게 된 것이고 연비는 그런 백호를 향해 검은 우산을 움켜쥔 채 달려들고 있었다. 검은 우산이 검은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뻑! "꾸에에에엑! 꺄울~!" 괴이한 비명이 강호란도의 밤하늘로 낭랑히 울려 퍼졌다. 그것은 어째 좀 인간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삼백 년 살다 보면 인간의 말을 알아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말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연비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검은 우산의 첨단을 앞으로 내밀며 연비가 말했다. "얌전히 물고 있는 술을 내려놓은 게 어떨까" 물어볼 것도 있고." 연비는 백무후를 제압하여 백무후의 등을 타고 신라각 객점의 후원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백무후는 경공씩이나 배운 영물이라 그런지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연비의 신형은 누각 안으로 사라졌다. 연비(비류연)의 사부인 노인은 연비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무쇠 화로의 양쪽을 잡아 무쇠화로를 주물럭거리면서 적당한 크기의 굵고 단단해 보이는 쇠몽둥이 하나를 만들었다. 쇠몽둥이의 끝 부분에 손가락으로 '타격각성 정신봉'이라고 적어 넣었다. 노인은 쇠몽둥이를 돌바닥에 끌며 저벅저벅 연비의 앞으로 걸어갔다. 제자의 잘못을 계도하는 것이 사부된 자의 도리! 무시무시한 사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