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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소통의 중압감을 느낀다. 첨단 소통의 시대에 소통의 중압감이라니. 첨단이라는 게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한다는 걸 부인하지 못한다. 내 감정, 내 상태, 내 생활을 클릭 한 번으로 주변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그런데 외려 이 편리함이 사생활 침해와 지나친 노출로 이어지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온라인과 담쌓고 살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짊어지고 가야 할 불편함일 것이다. 온라인에 공개된 이상 나 혼자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기 때문이다. 깊게 엮이지 않으려 해도 어떻게든 말은 나오게 마련이고 그것이 점점 소통의 발목을 잡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으니 이런 부분이 자꾸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칩거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그래도 나는 내 신념에 따라 묵묵히 해 나가겠다 한다면 주변의 어떤 검은말의 풍파라도 개가 짖는구나 하고 견뎌내면 그뿐이고. 말이 좀 격한가. 그런데 나는 실제로 그런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 왜곡된 시선으로만 바라보려 하는 이들까지 모두 수용할 수는 없을뿐더러 일일이 항변할 일말의 가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즐거워야 한다. 소통은 진심으로 임해야 한다.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 통행이 전제될 때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스스로 선을 긋지 않았는데도 소통을 하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한번쯤, 진정한 소통에 대해 생각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시작부터 소통이라는 화두로 말문을 열었던 이유는 이 책의 저자 최춘영의 소통 방식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히게 하려고(물론 글쓰기는 순전히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블로그(예스24)를 시작으로 트위터, 페이스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게 여의치 않아질 때쯤 더욱 간편한 SNS로 눈 돌리게 됐고 그게 트위터와 페이스북이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르랴. 블로그나 포털에서는 꽤 알려진 그였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곳에서 그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자신의 글이 한 번이라도 읽히는 거라는 걸 뼈저리게 경험하게 됐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소통의 기초를 쌓아갔다. 찾아가고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그의 글을 찾는 이들도 점점 늘어갔다. 무엇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그의 글이 주는 최대의 강점이다. 페이스북에 420자 인문학이라는 미니 칼럼 형식의 글을 올리기 시작한 후부터 거의 매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하니 말이다. 이 책은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 등으로 불리고 있는 저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300편의 글 중 100편을 추려낸 일상의 기록이다. 만났던 사람들, 삶의 단편적인 단상, 겪었던 순간 등을 그날그날 공유한 글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글쓰기 기법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글이라는 게 항상 써도 써도 부끄럽고, 책의 제목이 곧 너,나 우리의 심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글쓰기 기법보다 더 가치 있는 내용이 산재해있는 책이라고 하면 될까. 살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콕 찍어 말할 순 없지만 삶에는 글쓰기 기법만을 다룬 책보다 더 중요한 사실들이 포진해있는 책이 무궁무진하다는 거. 물론 전적으로 글쓰기에만 목적을 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SNS에 올린 글이라는 게 얼핏 보면 분량도 짧아서 흔히 사람들이 범하는 오해인, 짧은 글은 가볍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 글이라는 건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나 혼자만 보는 글과 타인에게 공개되는 글, 이렇게 두 가진데 나 혼자만 보는 글이라면 욕설이 난무하건 비문과 오문이 작렬하건 그다지 대수로울 게 없다. 하지만 공개되는 순간, 글의 운명은 달라진다. 아니 운명뿐 아니라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부터 다를 테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현란한 글쓰기 기법, 문법, 기교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대신 진심을 다룬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최준영. 그는 누구인가. 노숙인, 죄수, 미혼모, 한부모 가정 같은 소외 계층에 있는 삶이 힘겨운 이들에게 인문학의 희망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거창한 학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희망을 설파하면서 밑바닥에서 고독과 투쟁하는 이들에게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우게 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삶의 지식인이다. 지식인이라는 게 뭐 별건가.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고 자신보다 그들을 위해 현장을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헌신하는 모습만으로도 나에게는 그 어떤 일류대를 졸업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보다 똑똑한 사람처럼 다가온다. 삶을 아름답게, 즐기며, 베풀며 사는 사람. 책상머리에 앉아 탁상공론만 하는 이들보다 몇 배는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건 그런 데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야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변변한 대학 졸업장 없는 그이지만 실속은 없이 똑똑한 척, 있는척 하는 거만한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책은 총 네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전국을 돌며 인문학 강좌를 함께했던 청중과 한국 최초의 클레멘트 코스(저소득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인 성프란시스대학 수강생들의 이야기, 일상과 텍스트에서 만난 단상, 저자가 글을 쓰는 자세 등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글쓰기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 마지막 챕터보다 인문학 강의를 통해 만났던 인간적인 사람들과의 소통 부분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힘겨운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지만 그들이 클레멘트 코스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지켜본 소감은 감동적이었다, 라고 해야겠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게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뜻깊고 위대하고 신성한 사명 아닐까. 인문학이라는 매개로 이어졌으나 이는 곧 사람 대 사람이 이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책 제목을 통해 가장 궁금해할 글쓰기에 대한 부분은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진심' 이것밖에 없다. 진심을 담아 쓰는 것. 성실하고 꾸준히 쓸 것. 글쓰기는 진심과 성실함이 담보된 노력 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물론 당장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바라면 안 된다. 점진적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 이 정도가 글쓰기를 하면서 위안 삼을 최고의 희망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은 모른다. 노력과 발전의 여부는 글을 읽는 타자만이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스스로 만족하고 자만하는 순간 더이상의 성과는 없을 거라는 것,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부단히 노력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서 글쓰기라는 게 더 어려운 것일 테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빠른 성장의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테고. 다만, 화려한 기교와 수사법으로 무장한 글보다 진심 어린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그 정도는 확신할 수 있다. 글은 진심으로 써야 하고 진심을 써야 한다. 쓰고 싶어서 써야 한다. 목적만 있고 순수성이 결여된 글은 비평가의 눈은 움직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다.
그가 시작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건 '진심'밖에 없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도 나를 '진심'으로 대할 거라 믿고 싶다. 내가 '진심'으로 쓰면 상대도 '진심'으로 읽어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진심'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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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이겨내는 글쓰기 최준영 이지북/2013. 7.31
글을 쓰는 것은 자기만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글을 쓴다고 하여 누구나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을 써놓고 나중에 읽어 보면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의 심리를 그대로 표현한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라는 책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저자는 어떤 것을 부끄럽게 여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부문)를 통해 등단. 2004년부터 SBS 라디오와 YTN 등에서 책 소개 코너와 <인문학 콘서트>를 진행 해 왔다. 저서로는 <결핍을 즐겨라>, <유쾌한 420자 인문학>, <최준영의 책고집> 등 다수가 있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알려지게 된 계기와 노숙인 강의에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엮었다. 야학으로 공부하면서 겪은 일과 삶의 경험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의 자리에 오게 되었나를 한 꼭지씩 풀어내고 있다. ‘부끄러움은 감추면 감출수록 자라나지만 그대로 드러내 놓으면 그 자리에 자신감이 자라난다.’는 저자는 전체 내용을 4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정리해 놓았다. 1장. 인문학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사람들, 2장. 일상에서 만난 생각들, 3장. 텍스트와의 만남과 단상들, 4장.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강의 하면서 깨달은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기 위해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진실한 위로는 따로 있습니다. ‘함께 비를 맞는’위로 말이지요. 노숙인 강의에 임할 때마다 가슴에 아로새겼던 말입니다.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로라고 생각했습니다.(p.18)”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진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저자의 철학이 잘 나타난 글이다.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그들을 위한다며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바라는 것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다. 함께 비를 맞으며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거리의 인문학자란 별명을 가진 저자의 노숙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노숙인의 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노숙인은 잠잘 곳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해마다 명절 때면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립니다. 한없이 꺼져 내려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에 의지해보지만 그럴수록 서러움만 쌓일 뿐입니다.(p.56)” 이처럼 그들의 삶속에 담겨있는 애환이 하나씩 일화에 담겨 책 곳곳에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편 저자는 글을 쓰는 것은 나만을 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을 위해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친숙한 언어로 어려운 것일수록 쉽게 풀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일수록 더 친숙한 언어, 더 용이한 소통 수단으로 설명하려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해될 수 있고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p.287)”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가 공감하며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쓰는 글의 내용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연구해야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도 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공감을 얻어야 한다. 공감은 함께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그것을 함께 찾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서 저자는 “비는 바람이 내미는 손일지 모릅니다. 비는 구름이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바람이 내민 손, 구름이 하는 말에 답하기 위해 나도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자분자분하게 나의 말을 이어갈 것입니다. 왜 쓰는가 물으면 이젠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떠나기 위해 씁니다. 못 떠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태 쓰고 있는 거라고요.(p.308)” 이처럼 글은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 남기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 또한 공감되는 말이다. 그래서 자연의 조그만 것들에까지 저자는 공감이라는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힘들지만 인생을 개척해 가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인생을 개척해 가는 저자의 삶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환경이나 처지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으면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자기만의 글을 쓰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쓰기 방법을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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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고 힘들다. 욕심을 내는 만큼 잘 써지지도 않는다. 사람들 앞에 내 놓기 미안할 정도 창피한 글인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하나다. 창피하다고 내 놓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올리는 게, 글을 쓰는 게 힘들어질 것 같은 내 나름의 생각 때문이다. 늘 내 글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조금씩... 매일 읽고 쓴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노력하고 싶다.
어제 쓴 글이 늘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오늘 쓰는 나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책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읽고 싶었고, 많이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일까?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의 에세이라고 했다. 그래서 거리의 인문학자답게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실생활에 가깝게 이야기 하는 줄 알았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인문학과는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지 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쓸 거라고 상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 야학으로 출발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사람. 그리고 거지 교수, 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리게 된 이야기를 너무 자주 거론한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 분명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쉽지 않은 인생에, 호락호락 하지 않았던 인생. 그 인생들 앞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고 지금의 모습을 지켜온 것은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지나친 반복은 좋은 충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으니 너도 너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인문학 강의로 지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소통했는지 그 부분을 글로 썼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글쓰기에 자신이 없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힘이 된다.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꾸준히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글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면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글쓰기 능력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묵묵하게 꾸준히 쓰는 것이야말로 글쓰기 실력을 쌓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박에 늘지 않습니다. 꾸준히 쓰면 조금씩 감각이 생기는데 그것도 아주 더디게 진행됩니다.” (256) 타고난 글쟁이가 아닌 이상,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들다. 아니 타고난 글쟁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 창의적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하고 책을 읽을지도 모른다. 몇몇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은 결국.. 꾸준히 쓰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 그 분야에서 노력했을 것이고 성실함을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엔 질투심은 위험한 것 같다.
끊임없이 왜 글을 쓰는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의문을 갖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내 글이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기에 새로운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책임감을 갖게 되고, 조심스러워진다. 오늘 내가 쓴 글이 책을 선택할 때 누군가에게는 어떤 잣대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 역시... 글을 쓴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계속해서 밑으로 내릴 수 있게 새로운 글을 쓰고 새로운 책을 읽는다. 언젠가는 기분 좋게 글을 쓸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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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인문학자로 알려지게 된 계기와 노숙인 강의에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인생의 단면들을 통해 어떻게 글을 읽고 썼으며 현재의 자리에 오게 되었나를 한 꼭지씩 풀어내고 있다. 물론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부끄러움은 감추면 감출수록 자라나지만 그대로 드러내놓으면 어느새 그 자리에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진심으로 쓴 글이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진실한 소통을 위한 글쓰기,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글쓰기의 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p.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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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청 1순위 강연가, '420자 칼럼' 페이스북 논객 최준영의 책을 만나 보았다.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교수'라고 불리는 최준영의 에세이이다. 이 시대 가장 낮은 곳에서 소통하는 인문학 실천가 최준영. 그의 첫 책 제목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삶에서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게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하여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상 이야기를 전하며 독자들과 소통하였다.
어쩌다 보니 순탄치 못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고교 과정은 야학에서 마쳐야 했고, 독학해서 대학에 진학했으며, 대학 시절엔 야학 교사 활동과 혼란한 시국에 휩쓸려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의 제적 끝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본격적인 고난의 시작이었지요. 대학 졸업장 없이 사회에 나선다는 건 무모한 일입니다. 아예 들어가지 않았으면 모를까, 들어가서 그냥 나왔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수시로 무시와 편견의 과녁이 되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남몰래 시름을 달래야 했지요. 그때 매달린 게 책이었습니다. 조건은 채우지 못했지만 내용이라도 알차게 다질 요량에서였어요. 활자로 된 모든 것을 읽자 했습니다. 신문, 잡지는 물론이고 단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 226쪽
평탄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노력으로 똘똘 뭉친 그의 진심과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강연 경험 스토리,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단상 등 '거지교수'라는 그의 타이틀에 어울리게 낮은 곳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들려 주며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어려운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아니 생각해 봐야 하는 것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좋아요"를 계속 눌러대고 있었다. 막연히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에 글쓰기 강좌도 기웃거려보고 이것저것 책 쓰기 관련 자료들도 들춰보지만 영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나..한 줄이라도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내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차곡차곡 모여 내 삶의 기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이 책을 읽으며 무언가 대단한 글쓰기의 방식을 배웠다기보다 글쓰기를 할 때의 마음 자세에서 더 나아간 궁극적인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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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일들을 글로 적고 그것을 남긴다는 것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일기도 그렇지만 하루의 글은 자기를 반성하기도 하고 내일을 위해 희망을 주는 좋은 글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매일 쓴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그들을 참 존경합니다. 내가 해보니 잘 안되고 자구 작심 3일이 되고 말기에 말입니다. 그러니 많이 쓰시는 분들이 나의 존경 상대 1위에 맞는 참 대단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의 저자인 최준영님은 이름 대신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교수'로 불리우는 이 시대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인문학을 매개체로 소통하는 인문학 실천가이다. 1년간 페이스북에 올린 300여 편의 글 중에서 100여 편을 간추려서 만든 책이랍니다. 잘 쓴 글, 좋은 글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성실하게 썼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저자의 성실함이 일상에서도 나타납니다. 글쓰기의 자세나 성실한 글쓰기의 미덕을 보여주는 책이랍니다. 저자는 글쓰기의 기교가 아니라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올릴 땐 매양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다음날 보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거다. 삭제해 버릴 수도 없는 게, 이미 ‘좋아요’나 ‘댓글’을 달아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운 글을 밑으로 내리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게 바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된 셈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저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요. 어쩌다 글 쓰면 창피해 다른 글을 스크랩해오던지 한 답니다. 그런데 저자님 글을 아주 좋은 글이라서 마음에 꼭 듭니다. 하나 씩 읽어가면서 간단한 글의 매력이 풍겨지니 말입니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저자님의 마음이 참 좋았답니다.
목차 1장, 인문학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사람들 2장,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 3장, 텍스트와의 만남과 단상들 4장,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이 주제를 가지고 여기에 100여 편의 글이 들어 있답니다. 하나씩 생각하고 저자를 알아가는 재미가 좋답니다. 아마 글을 읽는다면 다들 그리 생각할 것 같은데 잘 모르죠. 저만 그리 생각하는지요.
사람 냄새, 사람의 온기가 희망이다 김 씨를 행복하게 해준 건 사람의 온기였습니다. 흔히 인문학을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고도 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학문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김 씨를 만난 뒤 인문학에 대한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김 씨처럼 사람으로 인해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 사랑을 통해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그것 이상의 인문학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p34 노숙인 김 씨는 그래도 다행입니다. 죽기 전에 저자님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물론 저자님도 김 씨를 만나서 인문학이라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지신 것 같아서 참 흐뭇하네요. 며칠 전에 서울역 광장을 지나오는데 노숙인 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올 건데 걱정이네요. 여름에는 그래도 대행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앞으로 날씨가 이상기온이 더 심할 건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노숙 인들을 위해 인문학을 강의하는 저자님 더 대단히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수감자들 그리고 미혼모들도 수강하고 있네요. 그리고 책 으기 운동도 하고 이제는 제법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숙 인들에게 선입견이라는 것으로 무조건 차별하는 것 앞으로 걱정입니다. 그분들도 일하고 싶어도 아마 행색이 그래서 못할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세상이 오길 바란답니다. 글쓰기는 기고가 아니라 마음가짐입니다. “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꾸준히 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글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면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글쓰기 능력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묵묵히 꾸준히 쓰는 것이야말로 글쓰기 실력을 쌓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박에 늘지 않습니다. 꾸준히 쓰면 조금씩 감각이 생기는데, 그것도 아주 더디게 진행합니다.” p256 마지막 목차 부분인 4장,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또 쓴다. 에서는 주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가 페이스북을 하고 거기에 글을 올리면서 여러 가지 사연들이 나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공부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준답니다. 도서관에서 강의하던 내용, 팬사인회 이야기도 했고, 하루 두 시간씩 글쓰기, 예전에는 인터넷을 접하기가 하늘에 별 따는 것 보다 어려웠던 시절이 있지만 요즘은 워낙에 SNS도 발달하고 여러 매체들이 우리의 것을 보여줍니다. 힘든 시기에 저자는 글을 쓰면서 힘을 얻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려면 아마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네요. 끝까지 하려는 마음, 거기에 끝까지 하는 습관 말입니다. SNS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보니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이 댓글 달아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 분들 때문에 끝까지 노력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예의 한글 맞춤법이나 글에 대한 자신의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영어 공부에 ‘올인’ 해서 인 것 같다는 군요.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욱 책을 많이 읽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더 갈고 닦자는 저자의 글들이 나옵니다. 저자의 글속에 여러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저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블로그에 많이 의존하고 그리고 이웃님이나 친구들의 ‘ 좋아요’와 ‘댓글’ 달아준 것을 보면 힘이나니 말입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는 앞으로 더욱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긱이 듭니다. 사실 제가 블로그 처음 시작한 시기에 리뷰를 보면 지금에 와서는 그냥 웃음이 납니다. 물론 지금 내가 리뷰를 잘 쓴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고 쓰니 점점 늘어가는 저를 발견하게 되네요. 이런 저의 발견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오늘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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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인생은 없는 거 같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진정 행복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책을 꾸준히 읽고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저자 최준영씨는 거리의 인문학자이며 거지 교수라고 불리고 있다. 이런 저자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증을 갖게 한다.
내 자식이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아마 순간적으로 화도 나겠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고 어떻게 하든 학교만은 절대 그만두지 않게 타이를 거 같다. 남다른 이력을 가진 최준영씨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 모습은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힘들게 공부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가 결국 중도에 대학교를 그만두었을 때 뒷바라지를 못해 준 것이 미안해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저절로 연상이 된다. 허나 그는 대학을 나와 노숙자들을 비롯한 사회의 가장 낮은 층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문학 강의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책에는 그가 만난 사람들과 가족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이 거리의 인문학자와 거지 교수란 이름을 얻게 된 사연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의 입장이나 힘든 상황을 아내에게만 맡겨둔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여기에 책의 제목으로 붙어 있고 뒷부분에 나와 있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다. 나 역시도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는 편이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는 하지 않고 있다. 책을 읽고 글쓰기를 정리하면서 점점 향상 되어지는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자주 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충분히 느끼고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매일 조금의 시간이라도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며 그럼 점점 글이 나아질거라 믿는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멘토들이 갈수록 힘들고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라고 비슷비슷한 내용의 좋은 말만 적어 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일정부분 공감하는 면이 있다. 허나 분명 이런 책을 통해 힘을 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외수 작가님의 sns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는 블로그를 그만두고 sns로 넘어가면서 이제는 파급적인 대중 강연자 1순위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를 통해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나 나의 책읽기가 한쪽에 치중되어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책들을 읽을 필요성을 느꼈다.
현대 사회는 소통이 부족해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사회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인문학에 대해 올바른 글쓰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였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강연도 직접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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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자기만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글을 쓴다고 하여 누구나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을 써놓고 나중에 읽어 보면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의 심리를 그대로 표현한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라는 책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저자는 어떤 것을 부끄럽게 여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부문)를 통해 등단. 2004년부터 SBS 라디오와 YTN 등에서 책 소개 코너와 <인문학 콘서트>를 진행 해 왔다. 저서로는 <결핍을 즐겨라>, <유쾌한 420자 인문학>, <최준영의 책고집> 등 다수가 있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알려지게 된 계기와 노숙인 강의에 있었던 일화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엮었다. 야학으로 공부하면서 겪은 일과 삶의 경험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의 자리에 오게 되었나를 한 꼭지씩 풀어내고 있다. ‘부끄러움은 감추면 감출수록 자라나지만 그대로 드러내 놓으면 그 자리에 자신감이 자라난다.’는 저자는 전체 내용을 4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정리해 놓았다. 1장. 인문학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사람들, 2장. 일상에서 만난 생각들, 3장. 텍스트와의 만남과 단상들, 4장.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강의 하면서 깨달은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기 위해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진실한 위로는 따로 있습니다. ‘함께 비를 맞는’위로 말이지요. 노숙인 강의에 임할 때마다 가슴에 아로새겼던 말입니다.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로라고 생각했습니다.(p.18)”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진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저자의 철학이 잘 나타난 글이다.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그들을 위한다며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바라는 것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다. 함께 비를 맞으며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거리의 인문학자란 별명을 가진 저자의 노숙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노숙인의 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노숙인은 잠잘 곳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해마다 명절 때면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립니다. 한없이 꺼져 내려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에 의지해보지만 그럴수록 서러움만 쌓일 뿐입니다.(p.56)” 이처럼 그들의 삶속에 담겨있는 애환이 하나씩 일화에 담겨 책 곳곳에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편 저자는 글을 쓰는 것은 나만을 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을 위해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친숙한 언어로 어려운 것일수록 쉽게 풀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일수록 더 친숙한 언어, 더 용이한 소통 수단으로 설명하려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해될 수 있고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p.287)”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가 공감하며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쓰는 글의 내용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연구해야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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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교수라 불리고 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린다는 최준영 작가!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사실 인문학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져 선뜻 손에 들지 못하는데 분명 책 제목은 글쓰기에 관한 것인양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그런 책이 아니다. 어려울거 같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삶속에 녹아있는 인문학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다.
노숙인에 대한 선입견은 우선 그 초라하고 더러운 행색으로부터 거리감을 가지게 되는듯 한데 최준영 작가는 그런 노숙인들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고 그들로부터 오히려 인문학을 배우는듯 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정말 의아했던건 노숙인들이 인문학 강의를 듣고 인문학 강의를 통해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문학자 이름을 들먹이고 어려운 삶의 철학을 논하는 인문학 강의가 아닌 노숙인들이 듣고 즐거워할 수있는 혹은 저자 자신이 감동받았던,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가며 그들과 소통한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인문학으로 소통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진정 인문학으로 소통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책의 저자 최준영이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야학을 다니며 대학에 합격하지만 여러번 제적을 당한 끝에 결국 대학을 포기한 저자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영화를 만든다고 설레발을 치고 학원을 차려 빚더미에 올라 앉은 다음에야 돈 잘버는걸 포기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지난 삶을 절대 후회하지 않고 그것을 밑거름으로 글을 쓰고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자신의 비용을 들여가며 노숙인 인문학강의를 해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런 좌충우돌이 연속인 그의 삶때문에 아마도 더 거리에서 방황하고 세상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숙인이라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그들에게 자신을 아끼지 않고 삶의 희망을 잃지 않는 인문학 강의를 하러 다니는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전부 이해하고 그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주는것이 아니다. 그냥 사람이 곁에 없어 외로운 그사람들의 옆자리에서 두런 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면 되는것인데 그런 참된 소통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최준영이라는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그의 강의를 듣겠다고 초청하고 강의를 통해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우는듯 하다.
이제는 인문학을 가까이 끌어 당겨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을 모색해야겠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럽지만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는 최준영저자의 당당함을 빌어 나 또한 인문학에 한걸음 바짝 다가서보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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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저자 - 최준영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부제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저자는 그 외에도 ‘노숙인 인문학자’, ‘거지 교수’ 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별명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준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활동을 하는 구나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신춘문예에 당선자이며, 실천 인문학센터 운영위원, 교수 그리고 유명 강사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설명에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함은 많지만, 그의 모든 목표는 오직 한 가지를 향해 집중하고 있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과 삶의 의지를 알리는 것이다.
이 책은 에세이라는 부제처럼,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 일들에 대해 짧은 감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떨 때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질타를 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가 걸어온 삶을 얘기하면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조용하지만 그렇다고 힘이 없고 약한 게 아니라, 속에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 느낌이다.
노숙인들이나 여성 가장들처럼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과연 인문학 강의가 필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노숙인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조건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와 용기’라는 것이다.
이건 꼭 노숙인들이나 여성 가장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현실이 어렵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이다.
물론 꿈만 좇는 말같이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사는 것보다 긍정적으로 사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좋을 거라고 본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면, 앞이 암울하다고 인상만 쓰고 있으면 얼굴에 주름도 더 지고, 입술도 더 튀어나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느낌만 주고…….
1장과 2장에서는 저자가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3장과 4장은 저자가 접했던 인상 깊은 작품들에 대한 단상,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고 지금까지 어떤 생각으로 써왔는지에 대한 얘기들이 적혀있다.
특히 4장은 저자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4장의 소제목이 이 책의 제목인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이다. 저자는 소설이 허구를 다루고 있지만, 진실 되게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구를 다룬 소설이지만 진실 되어야 한다? 한참 생각해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은 알듯했다. 그런데 그걸 여기에서 풀어보려고 하니까, 뭐라고 말해야할 지 모르겠다. 무조건 허구를 다룬다고 해서 중심이 없다거나 개연성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될까?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알베르 카뮈가 했다는 ‘분명한 글에는 독자가 모이지만 불분명한 글에는 평론가만 꼬인다.’는 말이다. 이건 글뿐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p.87에 나오는 ‘실수에 대한 대응 실수’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반성을 하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앞만 보라고 강요한 것은 아닌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낙오자라고 생각하고 버려두진 않았는가. 이래저래 생각과 반성 그리고 후회와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게기가 되었던 책이었다.
개인의 실수에 대해 가혹하고 냉정한 사회적 대응이 빚은 결과가 바로 사회적 약자의 출현입니다. 우리 사회에 우승열패의 신화는 존재하지만 패자부활의 신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국가의 실수에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개인의 실수에는 때로 관대함을 보이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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