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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불멸』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작품이다. 우리에게 문학과 예술이 어째서 필요한지에 대해 그 어느 명작들보다도 절실하게 전한다.
이정은 작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설 쓰기일 것이다. 그에게 소설 쓰기란 현재에 머물지 않고 사유와 인식의 매체를 거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존재를 만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에게 소설 쓰기란 일상과 익숙한 존재와의 결별이기도 하다. 친숙한 일상 안에 머물렀을 때와는 달리,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전혀 다른 긴장과 집중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런 낯선 세계에의 탐험이 실상은 낯선 곳이 아니라 익숙한 자신의 일상과 과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지금의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하며, 문제는 존재와 세계를 느끼고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라는 것을 터득한다.
이정은 작가에게 소설 쓰기란 굳어진 감각과 인식에서 벗어나 존재와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며,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을 통해 삶을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예술가의 눈을 확보하는 것인데, 소설 『불멸』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정은 『불멸』은 2018년 『피에타』 출간 이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중단편소설 7편을 엮은 것으로, ‘불멸’이라는 주제에 집중해서 불멸의 의미를 진중하고도 새롭게 그려 보인다.
표제작 중편소설 「불멸」은 주인공이자 소설가인 설정주가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면서 불멸을 꿈꾸는 이야기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물론 예술에 대한 남다른 집념을 독특한 구성을 통해서 불멸을 향한 인간의 집념을 들춰낸다. 설정주는 소설을 쓰기 위한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혼자서 살며 모든 노력을 글쓰기에만 기울인다. 이 작품에서 설정주 못지않게 주목을 끄는 것은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기문의 소설 쓰기에 대한 집념과 그 변화 과정이다. 남기문은 설정주에게 맹목적으로 구애를 한다. 설정주에게 모욕을 당하고 좌절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남기문은 설정주가 소설가로서 훌륭한 작품을 쓰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소설을 공부해서 책을 펴내고 그 속에서 영속적인 삶을 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책을 펴내지 못한 채 암으로 죽음을 맞는다. 설정주는 그의 죽음 앞에서 과거의 오만함을 반성하고 죽은 그에게 사랑과 연민의 정을 보내며, 자기 역시 문학에서 영속적인 삶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 속에서 사건의 주체와 객체가 다 함께 공통된 주제를 구체화한 예술 작품에서 삶의 자국을 남기려고 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것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드물다. 훌륭한 소설 쓰기에 대한 투철한 작가의식과 그것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글쓰기라는 두 개의 축이 완전히 합일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는 나를 사랑했고 소설을 사랑했고 불멸을 꿈꾸었다. 참 잘 쓰셨네요! 그녀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한 그였다. 등단작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려고 바라보던 시선, 혹 칭찬의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말없이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묵살한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섭섭했을 것이다. 왜 한 부분이라도 괜찮다고 말해 주지 못했을까. ‘아, 너는 모질고 인색했다.’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불멸」, 107쪽)
그 남자를 상상해 본다. 그는 이마를 양 무릎 사이에 처박고 십자가 앞에 몸을 움츠린 채 엎드려 있다. 그는 무슨 기도를 드리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기도를 했는가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것은 알 수 있다. 불멸. 그는 이 말을 원했다. (「불멸」, 116쪽)
이정은 소설 『불멸』은 일상의 공간과 개인의 평범한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은 이렇게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사소하고 권태로울 수 있는 일상이야말로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정은 『불멸』은 작가가 지금까지 소설 쓰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정은은 과거의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특유의 다정한 시선으로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간에 담긴 의미를 찾아낸다. 잊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그려온 궤적에는 그렇게 그려져야 할 이유가 있다고, 그래야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정은이 한결같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긍정하는 메시지들이다.
이정은 작가의 소설은 가슴으로 읽어야 그 의미가 진정으로 다가온다. 『불멸』은 치열한 작가의식과 그것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서술 방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불멸을 꿈꾸는 열망이 오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이정은이 동시대 독자들에게 소중한 작가로 평가받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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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매력적인 책.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마음에 쿵하고 와 닿는 그런 느낌을 준다. 디테일한 묘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도 대단히 리얼하고 리얼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훔치고 싶은 책이 한 두 권쯤은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책도둑」 은 소설가인 주인공이 만나게 된 한 애서가(bibliophile)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 속의 모든 사건은 '책' 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어느 날 소설의 화자인 '나'는 소설가들의 모임에서 처음 만난 신준식이 유명 월북 작가의 침필원고를 훔치는 것을 목격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그에 대해 점점 알아가게 된다. 그들은 책을 통해 수렴되는 서로의 관심사와 공통점을 중심으로 엮어 친밀감을 느낀다.
책을 훔치는 신준식은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엽색가처럼, 책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욕망은 늘 채워지지 못한다. 그는 구하기 힘든 책들을 몰래 훔쳐다가 자신의 장서표(藏書票)를 찍어 서재에 진열해둔다. 그러나 그의 욕망은 정확히 책을 읽기 위한 욕망이라기보다는 책을 수집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서재가 책들로 가득 차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내면은 고독하며 공허하다.
이러한 그의 끊임없는 결핍은 그가 늘 '다른 책'들만을 가졌지, '자신의 책'을 갖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신준식은 소설가인 주인공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는 자기의 소설을 꼭 갖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을 채울 한 권의 책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늘 외부의 책들을 도칙된 방식으로 욕구한다.
이 소설은 사람들이 갖는 욕망과 그에 대한 결핍감을 '책' 이라는 소재를 들러싼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책에 대한 욕망과 그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자 하는 신준식의 희망을 상징하고 있고, 그것은 '불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책 도둑- 책을 훔치는 남자의 이야기. 특별하고 독특한 이야기.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게 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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