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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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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그저 쉬는 날로만 알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음에도 몸이 찌뿌둥하였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목적지 없이 떠돌기를 수차례. 운이 좋은 건지 그 무렵에 북한산 둘레길이 개통됐다. 순차적으로 하나둘씩 코스를 돌았고, 마침내 완주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 덕에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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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그저 쉬는 날로만 알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음에도 몸이 찌뿌둥하였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목적지 없이 떠돌기를 수차례. 운이 좋은 건지 그 무렵에 북한산 둘레길이 개통됐다. 순차적으로 하나둘씩 코스를 돌았고, 마침내 완주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 덕에 같은 길을 걸어도 결코 질리지가 않았다. 지금은 서울 둘레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걷기 시작했으므로 걷는 내내 내리 겨울이었다. 북한산 둘레길과 마찬가지로 서울 둘레길 또한 완주 후에도 반복해 걷게 될 거 같다. 둘레길의 매력을 묻는다면 수월함을 꼽고 싶다. 등산에 익숙한 이들이라면야 껌 씹는 것 이상으로 쉽다 말하겠지만 사실 산에 오르는 일은 적잖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혹 관절이 좋지 않은 경우라면 도전 의지보다 큰 통증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둘레길은 큰 부담없이 남녀노소에게 열려 있다. 마치 동네 산보하듯 운동화를 신고 걸어도 되는 부분도 꽤 된다. 그러면서도 적당히 산의 맛도 느낄 수 있다. 숲길에 접어들었을 때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우거진 나무의 모습을 보며 감동할 수 있으며, 마을을 지나칠 때면 집집마다 깃들어 있을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가 있다. 길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잠들어 있어 질리지가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룬 건 산이다. 그것도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빠지지 아니 할 국립공원들이 이 책에 포함됐다. 높은 산에 오른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도 산들의 이름은 아주 익숙했다. 국립공원이 으레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우리의 삶이 산과 밀접하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끊임없이 자연의 소중함을 설파하는 재원 삼촌이라는 분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고, 아마도 여러 차례 산에 오르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인 듯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조카와 함께 산에 올랐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겠지만 조카의 삶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기에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내는 게 살아남은 자의 역할이었다. 삶이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사실은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퍼야 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마음 깊은 곳으로 슬픔을 억눌러가며 애써 웃음 지어야 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계기가 필요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장막을 치고 산 상황이었으므로 모든 게 어색했다. 그 와중에 삼촌을 따라 산을 오르게 됐다.

모든 산에는 이야기가 존재했다. 가장 돋보였던 건 장소를 옮길 때마다 만날 수 있었던 마의태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하면서 마의태자는 떠돌이신세로 전락했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그가 곳곳에 머물며 남긴 이야기들은 그를 향한 민중들의 애틋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굳이 세심한 시선을 갖고 살펴보자면 연도가 맞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픈 마음이 드는 까닭은 우리의 인생이 마의태자의 인생과 닮은꼴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듯한 삶이지만 매순간 무언가를 꿈꾸고 그리워하고 있는 우리다. 지금 당장은 우리의 발자국이 찍히는 장소로부터 아무런 의미를 읽어낼 수 없을지라도 시간은 허투루 흐르는 법이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없기에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공감이 덜 했다. 한 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단 감정을 느껴보았더라면, 아픈 다리와 묵직한 몸을 다독이며 산에 오르는 저자의 모습에 내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아름답다는 사실에 만큼은 자신있게 동의할 수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점점 더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있고, 이는 꼭 높거나 유명한 산이 아니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름다움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삶. 내 안에 존재하는 숱한 번민도 아름다움과 한데 어우러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달의 사락 q*****2 2015.03.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