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동네 노인정이 있다. 오직 할아버지들만의 모임 장소다. 장기와 바둑으로 내기를 하시고, 막걸리와 소주를 반주 삼아 점심을 즐기시고, 그러다가 누구네집 개를 잡았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셔서 몸보신도 하신다. 이 할아버지들의 친목은 이럴 때 확인할 수 있다. 보신탕 한 그릇에 누굴 초대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서로간의 친밀도가 눈에 확 보인다. 그리고 어김없이 초대받지 못한 할아버지들의 서운하다는 말싸움으로 이어진다. 에이~ 그까짓 보신탕, 안 먹고 만다! 노인정에서 걸어서 1분만 더 가면, 동네의 오래된 미용실이 있다. 거긴 할머니들의 모임 장소다. 뽀글뽀글 파마와 커트만이 유일한 헤어스타일, 미용실인데 점심 제공이 되는 식당 같은 미용실이다. 파마를 다 했다고 해서 그냥 일어나시지는 않는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나 돼지 이야기로 시작해서, 뒷집의 순이네 아버지가 바람이 났는데~ 앞집의 며느리는 싸가지가 바가지라는데~(내가 몇 번 들어봤는데, 며느리 욕이 제일 많아!) 한 여름 더위에 고추 따러 밭에 갔다가 숨이 막혀 죽을 뻔했다는 둥~ 무릎 관절이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할 일(고추 말리기나 김장까지) 다 해놓고 가야 해서 미뤘다고... 우리 동네의 거의 모든 이야기(보통은 소문이라 부르는)는 이곳 미용실에서 나온다. 거기에 한군데 더 보태면 동네 의원(병원)이다. 매일같이 논일 밭일 하시고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하시면서 한 시간에 한 대나 다닐까말까 하는 버스를 타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나오신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오고 가시면서, 병원 물리치료실에 나란히 누워계시면서, 처방전을 들고 마지막으로 들르는 약국에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구수하고 찰 지게 충청도 사투리로 듣고 있다 보니,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든 어르신들의 생활모습이나 대화의 내용,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싶다. 경제를 살리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사람을 뽑겠다며 빠지지 않고 투표를 하고, 한겨울에도 언 손으로 굴을 따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테니 바다로 나가고, 잘 먹고 잘 살라며 큰 도시로 보낸 자식들을 여전히 걱정하고, 내년에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나이를 많이 드셔서) 옆집 동무를 바라보는 마음이 시큰하다.
생활터전이자 생계의 장소에서 불어오는 소소한 바람이, 이 어르신들의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로 들려온다. 사소한 일에 웃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 능청스러운 웃음 속에 신세한탄이 있고, 허허~ 하는 웃음으로 털어내는 일상이 이어진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듯이. 말 그대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아니, 특별한 것 있구나. 빡빡하게 돌아가고 숨이 차게 달리기를 해야만 하는 도심 속에서는 느껴보지 못할 특별한 치료제 같은 일상일 것이다. 깨를 볶네 기름을 짜네 옥신각신 방앗간, 면도칼을 들고 흥분해서도 깔끔한 마무리를 하는 이발관, 죽을 자리 알고 물똥을 싸는 닭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장 한복판,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말이 고픈 시골길의 버스정류장...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그 많은 장소들에서 웃음꽃이 피고, 고단한 삶의 해학이 묻어난다.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고 난 후, 평균연령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의 대화 속에서 살아가는 자세와 지혜를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다.
“야, 시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똑 떨어지는 벱은 절대루 읎는 겨. 사램이 뭔 일을 하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 새끼를 친대니께? 빨래헐라구 벗으믄 새끼 쳐서 목간허구, 푸지게 먹으믄 새끼 쳐서 설사허구 허는 거지. 그라니께 빨래허믄서 허이구 언제 목간허냐 걱정헐 것두 읎구, 먹으믄서 언제 싸냐 계산할 것두 읎다 이 말이여 내 말은!” (206페이지)
『충청도의 힘』 이 책의 제목에서처럼 그 힘은 이 어르신들이 겪어온 모진 세월에서, 한 여름 더위에 고추를 따는 밭에서, 추운 날 물질도 마다하지 않은 집념에서, 엄청난 부를 쌓기 위해서가 아닌 소소한 오늘의 행복을 위한 삶에서 나온다. 솔직하게 뱉어내는 말들, 그 솔직함이 때로는 거침없어 보여도 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말들은 이 어르신들이 지나온 시간만큼의 삶의 지혜와 연륜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부딪히고 화해하고, 그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드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이어가는 끈이기도 했다. 능청스럽다고 표현하는, 별것 없을 사소함이 쌓여 만들어낸 인생 미학!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게 바로 충청도의 힘이고 울 동네 어르신들의 힘일 게다.
읽으면서 실컷 웃다 보니 어느 순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질펀하게 늘어놓은 농담 같은 말들 앞에서 깔깔대며 웃다가도, 새벽 찬바람 맞으면서 바닷가로 나가시는 모습에서는 짠하다. 우리네 부모님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게, 우리를 대하는 마음이 그렇다는 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다는 게 그대로 전해져 온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과 어르신들이 이 책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만 같아서 애잔하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어르신들이 세상을 겪고 바라보는 마음과 자세, 그리고 간절함을 담은 작은 바램들이 내 가슴에 켜켜이 쌓인다. 웃음 나게 해서 가슴이 뻥 터지게 하더니, 눈물 나게 해서 그리움을 가슴에 담게 한다. 더불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진리를 한 번 더 들려준다.
아, 삶이란...!
|
|
충청도 아저씨, 효진이 아빠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다. 이 책을 산 건 순전히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였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물설고 사람 선 경상도 땅에서 살아 온 부모님은 시장에서 혹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혹시 고향이 어디에요?” 물으시곤 했다. 혹시나 하는 물음에 “충청도 어딘데요~” 대답을 들으면 고향 친구 만난 것처럼 좋아하시곤 했다. 두 분에게는 늘 고향 충청도가 그 자체로 그리움이었던가 보다. 그렇게 오며 가며 알게 된 동향의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기도 하셨다. 회사에서도 ‘충청향우회’ 총무, 회장을 두루 역임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을 따라 가면 흔하게 듣던 사투리가 충청도 사투리였다. 경상도에서도 억양이 걸걸하고 드센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가 고향인 나는 집에서 늘 듣는 부모님의 충청도 사투리 영향으로 학교 친구들과는 좀 다른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그런데 부모님을 따라 가는 ‘충청향우회’ 모임에서 듣는 충청도 사투리는 부모님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부모님은 충북 단양이 고향이신데, 그 지역은 충북 이남과 충남 지역 사투리와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강원도 태백과 정선 사투리와 유사하다. 그래서 집에서 늘 듣던 부모님의 충청도 억양과 다른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충청향우회’모임이 어린 내게도 재미있었다. 효진이 아빠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를 다니시고 ‘충청향우회’ 초창기 멤버이자 지금은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시는, 충남 논산이 고향인 분이다. 딸 이름이 효진이라 효진이 아빠라 불린다. 효진이 엄마도 충남 조치원이 고향인 분이다. 아버지와 효진이 아빠는 많이 다르다.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도 완전히 다르고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는 온통 산으로 둘러진 충북 단양이 고향이시라 그런지 급하고 뾰족하신 반면 효진이 아빠는 느리고 둥글둥글 하시다. 아버지는 효진이 아빠를 늘 나무라신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버럭! 하시는 터라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효진이 아빠는 늘 ‘허허~ 그렇지 뭐~어~, 알았어~ 님자 말이 맞어~ 허허~.’ 워낙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얼큰하게 취하시면 나와 동생을 불러다 ‘이놈~ 받어~ 맛있는고 사 묵고 공부 열심히 혀고, 아부지 어무니 말씀 잘 듣고 햐~’ 만 원짜리 한 장씩 찔러주시고는 했다. 그런 효진이 아빠가 작년 초 숭한(흉한) 암진단을 받으셨다. 뭐 그런 것 까지 급하게 먼저 하시려고 했는지 내 아버지는 4년째 암과 싸우고 계시고, 효진이 아빠는 굳이 안 따라오셔도 되는데 아버지의 급한 걸음을 따라 가셨다. 효진이 아저씨의 쾌유를 빈다.
충청도의 뜬금포 - 너무 웃기고 너무 슬픈
유명하게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충청도 시골의 외딴 2차선 국도를 가던 서울 운전자 앞에 규정 속도에 한참 미치지 않는 속도로 느릿느릿 가는 앞차. 상향등을 총을 쏘듯 발사하고 클락션을 아무리 눌러대도 앞차는 여전히 느릿느릿 가는 둥 마는 둥. 한참을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 드디어 앞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 운전자가 내리고 뒤차로 느릿느릿 걸어와서 운전석 옆에 서더니 손가락을 까딱까딱 창을 내리라고 했다. 너무 심하게 해서 화가 났나 싶은 서울 운전자는 약간 무서운 심정으로 살짝 창문을 내린다. 앞차 운전자 왈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 뜬금포 발사!!
“심판 읎는 소리! 갸가 달아 준다니께 허지 말라믄 섭섭헐게 비 내비 뒀는디, 배람박에 달린 거 드러누워서 치다볼라믄 댈꾸(자꾸) 목에 심이 들어가니께. 아침에 인나믄 목이 안 돌아가서 죽겄어 아주. 시엄니 모가지 뿌러지라구 그런 걸 달구 갔나 싶구, 심란허다니께!” (p.69)
이 책 「충청도의 힘」을 읽기가 힘들었다. 부모님이 충청도 분이시지만 부모님이 구사하시는 사투리와는 전혀 다른 사투리가 그대로 책에 쓰여 있다. 충남 보령, 대천. 진짜 충청도 사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도 충청도 특유의 뜬금포가 기상천외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반응과 어투, 표정이 그대로 그려진다. 시골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조금 더 큰 화면으로 조금 더 선명한 화질로 6시 내고향부터 9시 뉴스까지 보시라고 고급 평면TV를 벽걸이형으로 설치해 드렸는데, 고맙고 자랑하지 싶은 마음을 은근히 메누리(며느리) 숭(흉)보는 투로 뜬금포를 발사하시는 충청도 할머니. 흐흐흐. ‘시엄니 모가지 뿌러지라구 그런 걸 달구 갔나 싶구’ 에구~ 할머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르신을 사랑하십니다.”
충청도 시골 중에서도 시골 심심하고 지루한 버스 정류장에 시골 교회 전도사가 충청도 할아버지께 전도를 시도 한다.
“얼래? 돌아가신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랴? 쌩판 모르는 양반이! 별일이네.” (p.151)
이 부분을 읽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최근 가장 크게 웃었다.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야? 생판 모르는 양반이!’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하실 수 있을까 싶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가 충청도를 온 몸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흔적. 갈래갈래 갈라진 그분들의 손가락처럼, 가뭄 든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진 그분들의 뒷목 주금처럼 살아내지 않으면 도무지 흉내 내지도 못할 그 자욱들을 고스란히 옮기고 싶었다고 했다. 데굴빡에 피도 마르지 않아 보이는 젊은 전도사 냥반이 일정시대의 고약함과 동란의 처절함을 알아낼 수 있을까? “됐어요.” 차갑게 돌아서거나 아예 못 들은 척 지나가는 차도할(차가운 도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의 냉점한과는 차원이 다른 것일 테다.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어김없이 뜬금포를 장전해 발사하신다!! 하하하하
“워째유?” “백발이 성성한 약사가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왔냐’는 말을 단 세 마디로 끝낸다.” (p.28)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이 뜬금포와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워째유?’ 어디가 어떻게 아프셔서 오셨어요? 라는 4음절, 14단어를 단 3단어로 압축하여 발사하신다. 워째유~~. 책에는 충청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질펀한 농담과 진담이 가득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유와 속담(?), 은유로 가득하다. 기상천외하고 뜬금없지만 재밌다. 입 꼬리를 씰룩씰룩 올리며 웃다가 빵빵 터지게 웃다가 방바닥을 뒹굴기 일쑤다. 경상도 사람 둘이 대화를 하는 걸 보고 서울 사람들이 싸우는 걸로 오해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 담긴 충청도 할아버지 할머니에 비하면 약과다. 저주와 욕설과 비아냥거림과 몽땅 지워내고 싶은 과거사를 또 들추어낸다. 그런데 불편하지 않다. 눈살도 전혀 찌푸려지지 않는다. ‘아~ 이분은 이렇게 살아오셨구나~’ 싶다. 웃지만 슬프다. 웃프다.
노인들 때문에?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
“쓰나미 선금은 뭐여?” “접때 일본 눔들 바닷물이 넘쳐 갖구서 욕본 적 있잖여? 시 노인회에서 십시일반으로 보태자구 혀서 우덜두 낸 겨. 일정 때 당헌 거 생각허믄 아직꺼정 심쟁이 바들바들허는디 울구불구허는 거 보니께 참말루 딱허드라구.” (p.224)
충청도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덜(우리들)보다 낫다. 이 어르신들은 일정을 겪으셨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왜놈 말은 말이 듣고 책도 읽고 화면으로도 보기는 했지만 일정 때가 어땠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도 일정 때에 대해 들어본 바 없다. 굳이 아프고 힘든 얘기를 손주놈에게 꺼내고 싶지는 않으셨을 거다. ‘아직꺼정 생각만 혀도 심쟁이 바들바들 헐정도인디’ 그것은 그것이고, 딱헌 사람들 돕는 그분들의 마음씀이 감사하다. 삼십년을 훌쩍 살아 왔지만 여전히 이것저것 재는 내 모습을 돌아본다. ‘무슨 의도가 있을까? 무슨 이면의 뜻이 있을까?’ 직접 당해보지 않은 고통에도 무분별한 의심과 불만을 쏟아내는 내가 부끄럽다.
“근디, 그 귓구녕이 이조 오백 년만 조져 먹구 말 구녕은 아닌가 벼. 대통령 선거? 우덜은 시답지 않은 짓거리여 그것이. 우덜이 시방까정 한번두 안 까먹구 꼬박 꼬박 이눔 저눔 가믄서 찍었는디, 다 그 구녕이 그 구녕이지 뭐 밸반 안 달브드라니께. 특별히, 니 맴 다 안다구 설레발치는 눔들은 종국에 가서는 더 지랄 발광으루다가 읎는 눔들을 조지드라니께?” (p.244)
노인들 때문이라고? 작년 대선이 끝나고 원하는 결과를 받아 들지 못한 젊은이들은 특정 노인들을 향해 비수를 쏟아냈다. ‘노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연금, 내지 말자.’, ‘버스나 지하철 타면 자리 양보 하지 말자.’, ‘큰 선거가 있으면 노인들 단체로 해외여행 보내자.’ 말이 말을 낳고 비수가 비수를 낳는다. 허탈을 이기지 못한 잠깐의 젊은 객기였겠거니 싶다가도 나도 그것에서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니 시내 한복판에 벌거벗고 있는 것 마냥 정신이 온통 오그라든다.
“뭔 눔의 세상이 우덜 때보덤 살기가 더 심들어 도대체가? 아, 가르치질 못혔어, 전셋집을 못 얻어 줬어! 근디 맨날 빚 타령에 직장 타령에... 아주 기냥 서울서 전화 오믄 가심이 떨려서 반갑지두 앉다니께!” (p.166)
새벽같이 밭으로, 논으로 나가셔서 9시 뉴스가 시작하기도 무섭게 잠드시는 충청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서울전화’가 얼마나 반가울까? 자식들 손주들 목소리 한 번 듣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노년의 쓸쓸함을 달래는 것이 유일한 낙일텐데, 그 ‘서울전화’조차 반갑지 않은 요즘이라니... 괜스레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 일정 때와 동란, 보릿고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오랜만에 걸려 온 ‘서울전화’ 라니. 허리가 직각으로 꺾일 만큼 애를 쓰고 피땀을 흘려 뒷바라지를 했는데, 여전히 자식 걱정에 편안할 날이 없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 충청도 어르신들은 ‘나 죽는다. 나 죽는다.’가 아니시다. 동네 친구와 성님 동상과 서로 누가 더 속상하고 걱정이 많나 내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토해내듯 쏟아내시며 한바탕 웃어버리신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사는 게 팍팍하고 고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내는 것이 인생이고 ‘별 거 아닌 하루’라 생각 된다. 그것이 충청도의 힘일 테다.
“심연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고유한 무게로 자리 잡아 갈 때 비로소 사람은 정갈해진다.” (p.7)
|
|
웃고 있어도 눈물 나는 우리들 이야기 감춰질 것이 없는 세상처럼 보인다. 소위 인터넷이라고 하는 도구에 의해 사람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세상이다. 다만, 언제쯤 드러나는가 하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역으로 감추고자 하는 욕망이 거세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너도 나도 적당한 포장술로 자신을 감추고 산다.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운 세상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회 지도층이라고 자위하는 사람이거나 정치인들일수록 그런 경향은 짙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SNS공간에서나 일상의 삶에서나 사회적 불의 앞에 타협을 모르는 거리현장에서 만나는 그의 모습은 투명해 보인다. 물론, 그 역시 적당한 포장술에 의해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겠지만 그것 자체로도 투명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저절로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남덕현, 그의 첫 번째 책이 ‘충청도의 힘’이다.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리는 부제를 달았다. 이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살만큼 살아온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꾸미지 않고도 웃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았다. 인생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하니 그에 비길만한 내용으로 채워졌으리라 기대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삐질삐질 웃음이 베어난다. 참고 있기가 버거울 정도로 수시로 넘친다. 하지만 그냥 웃음이 아니다. 웃는 게 마냥 웃는 것만은 아님을 확실하게 일러주고 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보통의 입담들이 아니다. 굳이 인생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월전리 노인회장이자 뼛속까지 충청도스러운 장인어른, 서울살이를 마치고 내려와 처가살이를 자처한 머슴 사위가 펼치는 한판 승부에다 충청도에서 살아가는 방앗간 사장님, 시장 상인들, 버스에서 만난 노인들, 고물상, 이발소, 버스 정류장 등이 이야기의 배경이자 이야기를 구성하는 핵심인물들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만나는 생생함이 드러난다. 굳이 왜? 제목이 ‘충청도의 힘’일까? 충청도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저자 남덕현의 처가살이가 그곳이어서 붙은 이름이지만 내용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포괄하기엔 부족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인생 별거 있간디?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지" 이 말이 가진 의미를 아는 모든 사람이 읽고 웃으며 눈물 흘릴 이야기들이다. 그의 두 번째 책, 슬픔을 권함을 먼저 접했다. 진솔함이 무기인 이야기 속에 흠뻑빠지며 단숨에 읽었는데 그의 글이 가진 힘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일상의 삶이 그데로 드러나는 현장에서 발로 가슴으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기에 글의 진정성이 확보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웃다보면 웃음 속에 깃든 슬픔까지 알게 된다. 착함을 선해야 한다는 것을, 삶의 지혜를 굳이 강요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진정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해학, 남덕현의 글이 가지는 힘이다.
|
|
얼마 전 추석에 형제들이 모여 아내들의 고향을 확인했다. 우리는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났고 아내들은 한 명만 빼놓고 모두 충청도가 고향이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 충청도였다. 그것도 충청남도가 우세했다.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의 만남, 충청도끼리의 혼인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명절은 시끌벅적하지 않다. 형제들이 여럿이고 아이들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소란스러울지언정 오고가는 말이 많지 않다. 외려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뒤 별 말이 없는 집안이다. 충청도 사내들의 무거운 입이라니! 충청도 사내들의 입이 무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문구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문구 소설은 문학적 장치를 통해 듣는 우리 시대 이전의 이야기들이다. 아무래도 현실감은 조금 멀리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 책은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를 중계하듯 들려준다. 노인들의 이야기나 대화가 그대로 글로 옮겨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 충청도 노인들의 구성진 사투리 만담을 통해 웃다 울다 보면 삶의 진경을 볼 수 있으며 가슴 한 쪽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대전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면서 24년 동안 그 언저리에서 살았다.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시골살이를 꿈꿨다. 드디어 작년에 처가의 터전, 달밭골에 집을 짓고 정착하였다. 달밭골에는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장인어른이 살고 계신다. 장인어른은 월전리 노인회장이자 뼛속까지 충청도스러운 어른이다. 젊은 것들이랑 함께 산다고 눈치를 본다고 하지만 정작 사위에게 처가살이의 불편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일 못한다고 구박하는가 하면, 때로 사위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실상 저자가 ‘충청도의 힘’을 처음 발견한 데는 장인어른일 것이다. 장인어른의 백발처럼 하얀 눈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야, 시상(세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똑 떨어지는 벱(법)은 절대루 읎는 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반드시) 새끼를 친대니께? 빨래헐라구 벗으믄 새끼 쳐서 목간허구, 푸지게 먹으믄 새끼 쳐서 설사허구 허는 거지. 따루 빨래허구 목간허구 먹구 싸는 거 절대루 아녀 야. 그라니께 빨래허믄서 허이구 언제 목간허냐 걱정헐 것두 읎구, 먹으믄서 언제 싸냐 계산할 것두 읎다 이 말이여 내 말은” - 「야코죽지 말어」(206쪽) 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 뒤에 장인어른이 사위에게 한 말이다. 저자는 장인어른 같은 충청도 어른들의 구성진 사투리 만담을 통해 당대 노인들 삶의 진경을 보여준다. 장가 못 간 아들이 인형을 안고 잔다는 이야기는 농촌 현실을 드러내고(「고독이 몸부림칠 때」), 월남에 남편의 발과 팔 하나씩을 묻었다는 시장 닭집 주인의 삶의 자세(「추워두 참구, 졸려두 참구, 배고퍼두 참구」)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삶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굶주림과 전쟁 같은 시련 속에서도 참고 참고 참으며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온 것이다. 그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웃고 울며 삶의 진리 한 자락을 얻게 된다. |
|
'충청도의 힘'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이 책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충청도의 힘으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의 나이가 된, 충청의 모든 것이 아니던가?^^ 지금의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나는 고향의 품 속에서 주욱 살아왔다. 이 곳에서 충청도 토박이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들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가르친 곳이다. 넓은 평야와 낮은 등선이 펼쳐진 이 곳은 잔잔하고 소박한, 인품과 너그러움이 가득한 열려진 고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줏대없고 말도 느린 충청도 사람들을 '답답이'라고 한다. 혹은 '양반'이라고 높여주기도 한다. 다른 고향들처럼 강한 향토애와 지역성을 세력화하는 면에서 약화고 다들 '좋은 게 좋은거여유'하는 마음의 넉넉함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충청도에 대한 오해와 충청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그런 행복이 느껴지는 책이다. 고향은 운명이라고 그랬던가? 천천히 하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다하고 이웃과의 소중한 나눔과 배려과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유있는 충청도의 모습을 잔잔한 우리 이웃을 통해 그려준다. 나중에 나의 사위나 며느리감이 인사를 오면 난 슬그머니 이 책을 내밀지도 모르겠다. "저어기~우리 집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이 될거유. 한 번 읽어보슈." 하고 말이다. |
|
모처럼 책다운 책을 읽었다는 기분이 든다. "위대함은 사소함으로만 유지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읽으면 TV 드라마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회화적이며, 도시의 삶, 현대의 삶은 대부분 가식적인 것이 많으며 쓸데없이 복잡하다. 단순하고 짧지만 인생을 온 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고 가난하고 배운 것 없어서 모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시골 사람들, "... 워쩌겄냐, 목구멍에 거미줄 안 칠라믄 사람 매가지(목) 치는 것만 빼구선 뭘 못 치겄냐, |
|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07/27/11782786.html?cloc=olink|article|default 평소 즐겨 읽는 조재숙 기자님의 책 소개글을 읽고 구입해서 읽은 책. 시시콜콜 인생 잡사를 세밀하게 채록한 목소리는 기쁨과 슬픔이 정답게 포개고 있다. 팔순의 장인어른에게 ‘이제 슬픈 일들은 잊으시고 즐겁게 사시라’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 사투리를 따라 한 줄 두 줄 읽다 보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
|
오랜 연륜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옛 말을 들을라치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는 생활형 말들 잔치다. 그것이 때론 억하심정으로 어깃장을 놓고 싶어도 이치에 딱 들어맞을라치면 속담도 아닌것이 어째 그리도 내 속 맘을 요리 잘 들여다보는 듯한 말들만 하시는지, 어떤 때는 도둑이 제발 저리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도시 생활을 접고 겉 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는 안한다는 말을 뿌리치고 처가가 있는 충남 보령 월전리에 터를 박고 살아가는 귀농민(?)이다.
평균 연세가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들을 곁에서 뵈면서 느끼고 보고 살아가는 삶의 체험을 토대로 페이스 북에 올린 짧은 글들이 입소문으로 번지자 에세이를 내게 된 책이다.
충청도 특유의 느긋하고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말 속에 연신 기가 넘어가면서 읽게되는 이 책은 고진 삶의 인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평범하면서도 크나큰 욕심 없이 그저 입에 풀칠하는 정도와 서울 살이를 하는 자식들의 무사안녕을 비는 어느 부모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못 먹고 못 배우고 살아 온 한이 큰 , 충청도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말 속 하나하나에 웃으면서도 연신 가슴이 애잔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삶이 팍팍한 세상에서 오로지 내가 남을 제치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 사회에서 충청도 어른들의 한 숨 쉬고 넘어가는 말들 속엔 그런 삶의 지혜가 깃들어있다.
""워째유"? 이 단 한마디로 병의증세를 물어보는 단답형의 물음이 있다면 나와보시라~
누런 코 반, 멀건 코 반인 상태로 약 조제를 받으러 간 약국에서 약을 처방 받고 나오는데, 어르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누런 코허구 멀건 코가 반반이랴, 반반." "반반이 뭐여, 반반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두 아니구." "그러니께 지 코두 지가 모르믄 워쩌자는 겨."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르신을 사랑하십니다." "얼래? 돌아가신 우덜 아버지두 나라믄 아주 진절머리를 치셨는디 워쩐 일이랴? 쌩판 모르는 양반이! 별일이네." 전도사인지 목사인지, 남자는 기가 질린 듯 얼굴이 굳어 버렸다. "절에 다니세요?" "아녀유" "그러면 아무 데도 안 다니세요?" "얼러려? 지가 빙신이유? 사지 멀쩡헌디 워찌케 아무 데도 안 댕기구 산대유 사램이? 밭에두 댕기구, 밥 먹으루두 댕기구, 똥 누구두 댕기구, 아직꺼정은 노상 싸돌아댕겨유." ----------------------------------------------------------------------------
사투리 일색이라 읽기엔 처음엔 좀 갑갑하고 어색하고, 시간이 좀 걸리지만 어르신들의 인생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개그맨 중에서도 충청도 출신들이 많다. 유난히 능청스럽고 촌각을 다투지않으면서 적재적소의 유머를 날려주는 센스를 가진 것을 보면 팍팍한 삶에 그나마 이런 유머라도 없다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것이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에 그저 순리대로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웃을 날도 오지 싶지않겠냐는 철학적인 위안과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여러가지 느낌을 동시다발적으로 받는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 야, 시상(세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뚝 떨어지는 벱(법)은 절대루 읎는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반드시) 새끼를 친대니께? 빨래헐라구 벗으믄 새끼 쳐서 목간허구, 푸지게 먹으믄 새끼쳐서 설사허구 허는 거지. 따루 빨래허구 목간허구 먹구 싸는 거 절대루 아녀 야. 그라니께 빨래하믄서 허이구 언제 목건허냐 걱정할 것도 읎구, 먹으믄서 언제 싸냐 계산할 것두 읎다 이 말이여 내 말은. -p.209 <야코죽지 말어> 중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나오던 날 장인이 사위인 저자에게 던진 말 한마디를 읽고 있노라면 그러니께 시상살이가 그렇단 말이지유~ 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철철히 일찍 굴을 따다 파는 일에서부터 고추 농사, 농한기에 관광버스 대절해 여행가는 이야기, 친한 친구들 하나 둘씩 옆자리가 휑하니 비어가는 현실 속에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그저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죽마고우들의 일상생활인 충청도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휘황찬란한 전문적인 어휘가 섞인 것도 아니요, 철학적인 전문용어가 쓰인 것도 아닌 일상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또 하나의 삶의 인생을 배워나가게 되는 책이다. |
|
1판 2쇄 발행 2013년 8월 16일
부제: 능청 백단들의 감칠맛 나는 인생 이야기
아는 것이 심이여! (한 번도 본 적없는 소를 못 맞춰서 학교 시험에 떨어진 노인 VS 맞춘 장인) "소는 못 봤어두 '소 닭 보듯 한다'는 속담은 알았어! 노상 어른들이 입에 달구 사는 말 아녀?" "그르니께 내가 그 사램 보구 답답하다구 허는 겨! 아는 기 읎으믄 눈치래도 있으야지. 소 닭 보듯 헌다고 했으니께 닭 옆이 있으믄 당연히 소 새끼지, 안 그려? 지나 내나 소 새끼 못 본 것이야 한통속이지만서두 사램이 머리를 쓸 줄 알으야지!" (시험 떨어진 노인이 장인보러 배운양반이라 했다고 전하자) "그려? 알긴 아네. 그르니께 갸가 여태껏 노인 회장 한번 못 해 본겨! 갸도 그 눈치루다가 핑생 사느라구 참 욕봤어. 에구 딱혀 참마루." "아는 것이 심(힘)이여!"
<하하하하핫^^ 이거 읽다가 완전히 웃다가 넘어가는 줄 알았다. 사투리도 사투리고 어르신들의 어린아이 같은 대화들이...무엇보다 영화에 나오는 거친 사투리와는 다르게 온화한 듯, 비꼬는 듯, 푸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사투리라는 것을 새롭게 접했다. 책 절반의 초반 중 1/3은 정말 웃다가 넘어가는 줄 알았다. 중반은 인생을 다루다보니 약간은 어둡지만 전반적으로 사투리가 그 어둠보다 더 깊게 구수하게 이야기를 풀어준다.>
읎는 놈들은 눈치래두 있어야지 어르신1 "금년에두 댕겨온 겨?"
어르신2 "뭣이냐...... 사램이 죽으믄 거기서 딱 끝장이믄 좋으디 낭중에 천국두 가구 지옥두 간대니께 혹시나 혀서 나두 속셈을 허구 댕기는 겨."
어르신1 "딸랑 야수(예수) 생일날 하루, 꼴랑 일 년에 오만 원 부조하구선 천국을 노리는 겨 시방? 허이구! 니는 참말루 염치두 읎다!" 어르신2 "그라믄 워쪈댜? 읎는 눔이 염치마저 읎으니께 눈치래두 잘 부리믄서 댕겨야지. '하느님 아부지, 지는 주일마다 몇만 원썩 갖다 바칠 행편(형편)은 못 되니께, 기냥 하루 날 잡아 갖구선 일 년치 헌금, 목돈으루 바치구 넘 눈치 안 보믄서 원 읎이 빌구 갈 테니께 잘 봐 주슈! ' 허믄서 냅다 눈 깜구선 기도허구 오는 수밖에 읎지, 안 그려? 읎는 놈들은 눈치래두 있으야 천국 간대니께!" "니두 내년엔 같이 가 볼 겨?"
어르신1 "염병허네! 구정물은 알어두 시상 물정 모르는 건 니여 니! 물건두 안 받구선 삵 먼저 치르는 등신이 워딨댜? 천국이구 지옥이구 떡하니 내 눈깔에다가 들이밀구 나서 이짝은 월매구 저짝은 월매다 삯을 흥정혀야 정상이지, 있다구 믿구선 삯 먼저 치르믄 되는 겨 안 되는 겨? 그런 도둑눔의 심보가 워딨댜? 안 그려?" 어르신2 "원래 그 집구석은 일단 믿구 봐야 쓰는 건디...... 말반죽(말본새)이 그 모냥으루 개반죽이믄 니는 영원히 해당 사항이 시마이(끝)인 겨!"
어르신1 "허이구! 일 년에 한 번 댕기는 출신치구는 믿음이 참말루 신실두 허다. 신실두 혀! 그란디, 그런 출신이 초파일에 절은 왜 갔댜 "
어르신2 "나는 역마살이 ~ 천국이 암만 좋아두 가끔은 극락으로 마실 댕기구 혀야지! 안 그려? 우리 동네 국회의원들은 야당, 여당 번가랑 댕기믄서 월급 처받구 노는디, 나는 내 돈 내구선 왔다리 갔다리 허갔다는디 그거 안 된다구 허믄 안 되지. 안 그려? 히히히."
<완전 빵 터졌다. 하하하핫^^ 그저 어르신들 심심풀이 교회가시는 그건 거라 생각했는데 이분 절도 가신단다~ 하하하핫^^ 예수는 일단 믿구 봐야 천국가고, 부처는 믿어야 극락으로 갈 수 있고, 어르신1은 물건 안 받고 값을 먼저 냈다도 야단치고 하하하핫^^ 두 분의 대화에 웃다가 넘어갈 뻔 했다. 그때 왔다갔다 하는 어르신2는 철새 국회의원을 빗대어 자신은 자신의 돈을 내고 가는 정당함을 어필한다. 그야말로 종교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우리나라 철새를 콕 집어 묘사했다. 누가 시켜서 했겠는가~ 어르신들의 연륜이고 혜안이라고 생각된다. 그 분들의 삶이 고단하여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고집이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툭툭 던지는 한 마디의 말 속에 노자나 공자의 말처럼 깊이가 서려 있다고 느껴졌다. 어느 종교든 믿어야 그 믿음이 보이지 않던가- 어느 누구의 삶이든 어떤 선택을 한 삶이든 그것을 누가 왈가왈부 할 수 있단 말인가...>
장인어른 잠옷사다 사위 "세탁기로 돌리시지 왜 손으로?" 장인 "후우...... 너두 늙어 봐! 희안허게 젊은것들 빨래허구 내 속옷허구 섞이는 게 눈치 뵌다니께? 별것두 아닌디 하여간 그려....... 유행병(전염병) 앓는 것두 아닌디 니들헌티 병 옮기는 기분이 드니께 찜찜허구....... 니들 이사 와서 한가지루 사는 것이야 두말허믄 입 아픈 이치루다가 좋은디, 나헌티는 그런 애로 사항두 있는 겨......."
<그럴꺼 같다. 처음엔 아기는 연약하기에 어른 옷과 같이 빨면 안 된다며 따로 빨다가 어느순간 작은 세탁기가 나왔고, 양말은 냄새 난다며 따로 빨라고 세탁기가 나왔고, 이제는 속옷은 겉옷과 같이 빨지 말라며 전용 세탁기가 나왔고, 그러다본 이제 빨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돌리는 것이 아니다. 레고처럼 전부 분해해서 다~ 따로 따로 빨아야 한다. 아직은 어른과 아이로 나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곧 여자, 남자, 연령대별로 상세히 진행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다보니 어르신의 생각이 이해가 간다. 나이가 들면서 왜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부분도 본인들은 신경이 쓰이리라 생각도 된다. 젊은 사람들이 화장품 냄새, 담배 냄새, 다양한 냄새를 안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듯 한데 또 다른가보다.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완전히 이해가 되기에는 아직은 나의 밥그릇 수가 부족하다. 아~ 어렵다>
야코죽지 말어 하나의 색으로 합칠 수는 없는 일이지. 세상은 그렇게 무채색은 아닌 거지. 섞는 게 아니지, 다만 서서히 물들어 갈 뿐. 노을처럼......
*노란 표지가 조금은 촌스럽지 않나 싶을만큼 샛노랗고 우측 제목과 좌측 구부정한 듯 한 할아버지. 뒷면에 춤추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거기서 거기'에 불과한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해주는 글들. 그러나 읽고 느낀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작가는 봉황의 피똥에서 인생도 나만 조진 게 아니라서 조진 사람들끼리 허물없이 살아가는 힘. 충청도의 힘. 이라고 글을 맺는다. 사투리를 들어도 그것이 어디 사투리인지 잘 구분 못하는 나로써는 지역색을 언론이 조작한다고 믿기에 사투리에 그닥 신경써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사투리가 보존되어야 한다는 어느 분의 말처럼 정말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다. 표준어가 나타낼 수 없는 그 복잡 미묘한 표현을 사투리는 해낸다. 그것이 결코 표준어가 사투리를 내 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
충청도의 힘-남덕현 <충청도에서 배운 것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단 한 순간도 나의 의지대로 멈추지 못하고 쉼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과 같이 흘러가는 우리에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그리고 괴로운 일. 어느 한 가지만을 선택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네 분류의 일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 이듯이 사람은 태어나서 흙으로 되돌아 가는 것도 그 순리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 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인생)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정도는 결정 할 수 있다. 나는 이번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엿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 외에도 두 가지 정도를 얻었다. 하나는 내가 당연하고 필요하다고 여긴 것(사고, 물건)들이 그분들의 삶이야기를 통해 들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집착이고 욕심이었다는 점. 또 하나는 글(미디어, 한정된 환경 속 생활)로 본 세상과 체험을 통해 겪은 세상의 간극을 알았다. p93 어르신들 말씀이 틀린 것 하나도 없는 것이다. 돈 없고, 백 없는 출신들은 담배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어미의 젖을 빨 듯, 자근자근 세상의 온갖 설움을 씹어 돌리듯, 그렇게 필터를 빨고 씹으며 한 세상 기구 절창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 이만한 물건이 세상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