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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떠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단어의 쓰임새와 의미가 일정기간 힘을 발휘하고 그처럼 사용되는 나름의 이유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들에는 각기 고유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 단어에 불어넣은 편견이나 질곡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또한 단어의 의미를 변질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들은 단어 그 자체만을 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단어의 반의어로 봄에 따라 그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을 성스럽게 만들기도 혹은 추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퇴폐란 단어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우선 퇴폐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들은 끈적끈적하고, 욕망에 휩쓸리는 타락과 방종 같은 부정적인 내용으로 다가온다. 우리들은 퇴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단어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무엇인가 맑고 단아하며 순수한 정념의 반의어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퇴폐는 어느덧 불결하고 흠 많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퇴폐라는 단어에 대하여, 그 단어가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의미와, 전통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질곡을 거쳐, 우리에게 그러한 이미지들을 주게 되었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단어를 통한 우리사회의 굴곡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저자는 오늘날 퇴폐를 바라보는 일상은 이발소와 동격이며, 끈적거리는 형용사라고 말한다. 퇴폐는 퇴폐하다 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지만, 퇴폐적이라는 형용사가 되는 동안 온갖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의 틀로 고착화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퇴(退)와 폐(廢)는 쇠퇴와 무너짐, 부서짐과 사라짐의 의미군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쓰이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퇴와 폐 모두를 나란히 표기한 횟수가 204건이나 된다고 한다. 권력은 늘 교육적이었고, 국가는 항시 완벽한 윤리의 구현 주체이어야 했던 사회에서 평균 2-3년에 한 번 꼴로, 그것도 실록에 점잖지 못한 단어가 거론된 것이다. 조선시대, 이 단어가 사용된 경우를 추적해 보면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것에서부터 사회적 기강의 해이로 드러나는 자기역할의 방기나 만용, 게으름과 불결함, 그리고 인간관계의 말살 혹은 단절을 이끈 일탈적 행위 모두가 해당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명쾌한 분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늘 일정부분 추상성을 가지는 모호함과 동반되었고, 무너짐과 사라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퇴폐였던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견디다 못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물리적 괴멸과정뿐만 아니라, 망가지고 추락하는 정신현상 모두를 포함했고, 따라서 권력이 그것을 선도와 교화의 대상으로 몰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퇴폐는 정치권력의 언어이었고, 권력만이 전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통치의 명분만 움켜지고 단지 복종만이 미덕임을 강조한 권력, 그들에게 민중의 동요 역시 기강의 해이였으며, 그것이 곧 퇴폐이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저자는 그렇게 민중들을 퇴폐의 주역으로 몰며, 자신들의 죄과를 호도하던 권력의 행각이야말로 역사적 퇴폐가 아니었나 하고 반문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겪지 말았어야 할 역사의 트라우마이며, 산다는 것 자체보다 살아 남아야 한다는 주문의 절박함으로 예의나 염치 따위가 문제되지 않음을 학습시켜 주었다고 한다. 당시 이 땅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괴로운 식민지 상황과 처연하기만 한 자신의 처지를 달래기 위해, 하는 수없이 빠져 들은 자발적 함정이 바로 퇴폐였다. 문학은 시와 소설을 바탕으로 주눅들고 끓어 오르는 울분을 누르지 못하여 퇴폐의 그늘로 자처하였다. 이는 강점기 조선의 퇴폐가 19세기말 유럽에서 퍼졌던 병적인 감수성과 탐미적 경향, 전통을 부정하며 비 도덕성마저 가치의 중심에 두는 쾌락주의와 심미주의가 예술가들의 혼을 잡았던 데카당스(퇴폐주의)와 다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식민권력의 폭력적 압제를 향한 문화도발의 수단으로 인문학과 결합했던 당시의 퇴폐는 현상이자 상황이었고, 문화이자 출구였던 셈이다. 강점기의 퇴폐는 이렇듯 답답하며 오갈 데 없이 끓어 오르기만 하는 자조의 정서, 부끄러움을 다스리기 위한 도피와 자위의 방편으로 생겨났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해방은 저항의 대상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또 다른 외세의 억압은 역사적 못남과 정치적 무능을 의식한 자기조종적 부정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해방공간에서의 퇴폐는 사회적 독초로 변질되었다. 전쟁직후 몸 파는 여대생을 뜻하는 아프레걸과 자유부인으로 대표되는 타락상이 퇴폐로 규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5.16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퇴폐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역사적 퇴폐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퇴폐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고, 그들이 겨눌 타락과 부도덕의 현장은 생각보다 많았다. 위악과 자학의 도구였던 강점기의 퇴폐가, 이제는 성적타락으로 연결되어 주의를 호도하려는 명분상 도덕적 우월감과 남성권력의 자기중심성을 확장시키며, 단속과 억압의 대상으로 변한 것이다. 통제와 관리의 필요 앞에 폭력의 사슬을 대입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퇴폐는 그렇게 방종과 못마땅한 부산물 따위와 동의어가 되어 갔다. 해방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닥을 조지는 권력의 생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더 지독해졌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게다. 정화와 척결의 칼춤이 필요할 때마다 논리의 저변에는 어김없이 퇴폐가 깃들어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만만한 틈새와 너저분한 구석들은 항상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군사정권에서 제거해야 할 우선항목이었던 퇴폐가, 어느 날 목적이자 수단으로 등장하였다. 12.12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사람들의 감각과 말초를 건드려 정치적 관심을 말랑말랑하게 하고자 했다. 퇴폐와 이발소가 결합하고, 그 동안의 퇴폐가 사면이라도 받은 듯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들 모두는 한꺼번에 혐의자가 되고, 어쩔 수 없이 자기검열의 대상자가 되어갔다. 정치적 정통성의 빈곤을 박정희는 억압과 단속에서 찾았고, 전두환은 묵인과 조장에서 찾은 것이다. 이래저래 퇴폐는 고단한 세월을 보내면서 타락과 절망의 대명사로 전락해 버렸다. 퇴폐의 언어체계는 이 땅에서 언어적 의미의 지평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육체의 쾌락과 자본을 손쉽게 교환하려는 온갖 인위적인 수단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제 음란과 부패, 타락과 방종, 무질서와 탐닉, 불의와 범죄, 간통과 불륜, 그 어느 것에라도 쉽게 갖다 붙일 수 있는 언어가 된 것이다. 긴박함이나 역사의 암담함 속에서 항변의 도구까지 되었던 단어가 이제는 못된 형용사로 확대 재생산되었고,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상대적으로 순결해지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마법까지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언어란 사회상을 반영하고, 또 시대에 따라 그 의미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풀어가는 퇴폐의 역사는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고단함만큼이나 무너져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사라져간 것 같기만 하다. 그러기에 퇴폐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고찰은 오늘날 타락의 대명사로 전락한 퇴폐에 대한 변명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