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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낙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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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재미나게? 읽히는 책이다. 갖가지 모험과 사건들이 파란만장하게 기다리고 있다. 황당하리만치 튀어나오고 전개되는 암울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이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다보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미있고 재미가 있으면서도 작가의 사상이 담겨있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읽다보면 어느새 다 읽어버리는 책이다. 반면 당시 시대상에 대한 냉소적이고도
"음울한 낙관론." 내용보기
이 책은 참 재미나게? 읽히는 책이다. 갖가지 모험과 사건들이 파란만장하게 기다리고 있다. 황당하리만치 튀어나오고 전개되는 암울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이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다보면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미있고 재미가 있으면서도 작가의 사상이 담겨있고 이를 파악하기 위해 읽다보면 어느새 다 읽어버리는 책이다. 반면 당시 시대상에 대한 냉소적이고도 맹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소설이면서도 소설이라기보다 작가 볼테르의 현실 비방 내지는 부패한 성직자나 자신의 필적등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비판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면장면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 마다 가시 돋치지 않은 것이 없다. 한편 이 세상은 과연 최선의 결과물인가 하는 스피노자 식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데, 책의 줄거리나 전개로 보아 최선의 것이나 행복은 결코 권력이나 돈에서 오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책의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암울하고 불행하고 탐욕스러우며 비참하기까지 하다. 이상향인 엘도라도를 제외하고는. 당시 적이 많았고 항상 싸움에 열을 올렸다는 볼테르의 눈에 사람들이 곱게 보였을리 만무하다. 팡글로스의 철학에 그는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던 일단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말이 안되는 듯 하면서도 과격하게 인간상과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
s******1 2003.09.1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캉디드의 인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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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정확히는 캉디드와 낙관주의)는 쉽게 읽히는 책이다. 나도 책을 펼쳐들고 단숨에 읽어버렸으니 쉽게 읽히는 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단순한 우화 한편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굉장한 여행을 하고 온 듯 지친다. 낙관주의자 가정교사(팡글로스)에게서 세상은 최선의 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교육만을 받고, 아름다운 성에서 아름다운 남작의 딸을 사랑하게 되지만 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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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정확히는 캉디드와 낙관주의)는 쉽게 읽히는 책이다. 나도 책을 펼쳐들고 단숨에 읽어버렸으니 쉽게 읽히는 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단순한 우화 한편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굉장한 여행을 하고 온 듯 지친다. 낙관주의자 가정교사(팡글로스)에게서 세상은 최선의 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교육만을 받고, 아름다운 성에서 아름다운 남작의 딸을 사랑하게 되지만 신분차이 때문에 캉디드는 성 밖의 세상속으로 던져진다. 그러면서 그가 겪게되는 온갖 신분제도의 불합리와 사기, 전쟁들, 종교의 부조리, 지진등등은 정말 끔직하다못해 처참하기까지 하지만 캉디드는 여전히 이름 그대로 천진하다. 그래도 세상은 최선의 선으로 이루어졌다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그러다 앨도라도를 알게되고 앨도라도에서 다시 세상속으로 나왔을때 마주치는 끔찍한 인간상에 드디어 낙관주의를 버리게 된다. "오! 팡글로스! 당신도 이런 비참한 경우는 짐작 못하셨죠. 자 이제 결국 나는 당신의 낙관주의를 버릴 수 밖에 없군요." "낙관주의가 뭐지요?" 카캉보의 물음에 캉디드가 대답했다. "오! 인간이 불행할 때도 모든것이 잘되어있다고 우기는 일종의 광기라네." 캉디드는 앨도라도에서 가지고 나온 보물과 재화에 의지해 사기를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한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캉디드는 사랑했고 존경했던 이들과 재회하긴 하지만 그는 이미 천진하게 절대 선을 믿는 낙관주의자는 아니다. 사랑했던 이들은 추해졌고 더이상 그에게는 의미가 없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마지막에 함축적으로 그가 그동안 깨달은 것을 얘기한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볼테르는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 까지 한-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재회하는 일이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이 소설에서 정말 신랄하게 그당시 사회부조리들을 꼬집는다. 또 낙관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과장된 사건들과 불행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알리고 있다. 계몽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 볼테르가 이런 소설을 쓴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요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매우 비슷하다. 그 때문인지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되었고 그래서 머리가 이렇게 지끈거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4 2002.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비판 정신 가득한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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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불문학 입문 수업시간에 이 책이 교재로 선정되었다. 카뮈 , 사르트르 , 플로베르 , 그리고 볼테르의 를 다뤘었는데, 가장 쉽게 읽힌 작품이 이 였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뭐랄까... 한편의 동화나 우화를 본 듯했다. 실제로 현재의 감각으로, 또는 소설의 구성을 중점적으로 본다면 이 소설은 헛점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몇번이나 죽은 줄 알았던 등장 인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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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불문학 입문 수업시간에 이 책이 교재로 선정되었다. 카뮈 <적지와 왕국="">, 사르트르 <벽>,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를 다뤘었는데, 가장 쉽게 읽힌 작품이 이 <캉디드>였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뭐랄까... 한편의 동화나 우화를 본 듯했다. 실제로 현재의 감각으로, 또는 소설의 구성을 중점적으로 본다면 이 소설은 헛점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몇번이나 죽은 줄 알았던 등장 인물들이 살아나서 주인공 캉디드를 만나곤 한다, 이유도 제대로 납득되지 않는 채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소설의 관점에서만 해석해서는, 그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캉디드>는 사상가 볼테르가 당대에 퍼져있던 라이프니츠류의 낙관주의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택하고 있는 '철학소설' 혹은 '철학콩트'다. 그 점에 초점을 두고 본다면은, 이 작품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더군다나 볼테르는 '계몽' 철학가의 대표적 인물 아닌가.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살아오며, 혁명의 정신을 고취하는 데 주력한 이 사상가에게 '세상은 언제나 최선으로 되어있다'는,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는 분명 타파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실 말이지, 팡글로스의 말에 따르자면 우리가 세상에서 바꾸어낼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의 논리에 따르자면 진보는, 그리고 혁명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더불어, 이 때에 근대적 소설이라는 장르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볼테르는 그야말로 세상에 대한 낙관주의를 공박하고, 자신의 사상을 역설하기 위해 한 수단으로 '철학소설'이란 형태를 빌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테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현대 소설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성취하고 있다는 점 또한 <캉디드>를 읽으며 재미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우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비판적'이라는 접두어가 붙어야 할 것이다. 보통의 우화와는 확실히 다른, 세상에 대한 비판 정신이 이 책엔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볼테르의 얘기 방식은 현실을 무시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그는 작품에서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이론들을 경멸하고 있으며, 당시 유럽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현실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서도, 볼테르는 라이프니츠류의 낙관주의를 정면으로 논박하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구체적 현실이지, 형이상학적 추상의 세계가 아니었던 셈이다. 팡글로스의 말 중 '코는 안경을 걸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다리는 바지를 꿰어 입게끔 만들어졌지요. 그래서 우리는 바지를 이렇게 입고 있지요. 돌은 다듬어서 성을 지으라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은 볼테르 작품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은 최선으로 되어있다'는 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허구적 합리성을, 볼테르는 이렇게 간단한 예로 파헤쳐내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쉽게 읽어나가며 세상의 추함과 비합리성을 단적으로 파헤쳐낸다는 그 점, <캉디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토론하지 않을 때에는 사는 것이 너무나 지루하여, 하루는 노파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나는 도대체 어떤 것이 더 불행한 삶인지 알고 싶어요. 검둥이 해적한들한테 1백 번이나 겁탈당하는 것, 엉덩이 한 쪽을 잘리는 것, 불가리아인들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것, 종교화형식에서 죽도록 매맞은 다음 교수형을 당하는 것, 교수형당한 후 다시 해부당하는 것, 그리고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것-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겪은 이 모든 고난에 비해 아무 할 일 없이 이곳에서 지내는 일이 더 행복한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군요." "정말 생각해볼 문제로군요." 하고 캉디드가 말했다.
b********g 2001.08.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