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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건건록_청일전쟁 외교 비록(무쓰 무네미쓰, 논형, 2021, 초판 1쇄)
일본인의 관점에서 일본인이 일본인을 위해 남긴 글이다.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글을 읽었어야 함에도 나는 계속해서 저자의 논리적 비약을 찾아 비판하며 읽었다. 저자의 주장은 일본인에게는 충분히 공감될 수 있고, 그럴듯한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역시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청일전쟁이 일어나던 당시, 일본이 어떤 외교적 목적과 전략으로 행동했는지 당시 우리 조상들은 이해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을까.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내 생각대로 그들을 읽으려고 했다면 분명 외교적으로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일본인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일본혼(日本魂), 즉 ‘야마토다마시이’가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으며(435쪽), 무쓰 외교를 칭송하는 일본 정치인들이 그 사고방식과 외교 전략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쓰 외교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분석해야 한다. 그저 일본이 가까운 이웃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그들은 우리를 침략했고, 지배했던 역사적 기억을 하고 있다. 주인을 한 번이라도 문 개는 살려두지 않으려 한다. 과연 그들이 그와 같은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 우리를 동반자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들에 대해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들이 우리를 동반자로 바라봐주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조선을 멸시하던 무쓰의 생각을 계승한 정치인들은 지금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무쓰의 기록을 읽으면서 지금 한일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무쓰 외교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
우리 외교사에서 가장 손꼽는 인물은 ‘서희’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 교과서나 수능 출제 문제들을 보면, 서희가 외교를 통해서 강동 6주를 획득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영토의 획득만이 아니다. 외교는 그 당시의 정세를 읽고, 그것에 적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무쓰의 외교를 ‘리얼리즘’외교(436쪽)이라 칭송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당시 정세를 정확히 읽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대응 방식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외교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서희가 당시 송과 거란의 정세를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거란과의 외교 담판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희가 거란에 대한 사대 관계를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고만 한다. 마치 거란은 아무런 요구 사항 없이 강동 6주를 넘겨준 것처럼 말이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납득해서는 안된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으로 요동 반도를 빼앗긴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쓰와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고, 러시아의 간섭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요동 반도를 빼앗길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경우와 달리 자국민에게 비난받을 만한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 우리도 이렇게 외교를 바라보아야 한다. 단순한 성과나 업적만을 강조하고 칭송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준비하고 계획하였으며, 실행해 나갔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무쓰 외교를 읽으면서 또 놀랐던 부분은 외교와 전쟁(군대)을 같은 목적을 위해 활용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외교를 전쟁과 함께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이 근대 제국주의적 발상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무쓰가 국가와 국가 간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협상과 무력 시위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통일부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와 국방부에서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무쓰만큼 넓은 시야를 가지고 국가 간의 관계를 해결해 나가려는 인재가 없어서일까. 한 국가 안에 있는 정부 부처이지만, 서로 삐걱거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무쓰의 외교는 비록 군부의 입장을 고려하고 상의하고는 있지만,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실패한다는 생각으로 외교에 임하고 있다. 그만큼 무쓰의 외교는 더 큰 범주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외교를 평화로만 결부시키고, 무력은 폭력적이어서 지양해야 한다는 인식은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전략을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무쓰 외교에서는 ‘조선’이 외교 대상국이 아니었다.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에서도 결국 ‘청’은 외교 대상국이 아니었다. 무쓰는 조선이 근대적 개혁을 진행할 능력조차 없는 국가라 멸시했고, 청은 구미 열강에 기대어 스스로 외교를 할 수 없는 국가라 생각했다. 일본은 당시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국제 질서에 매우 민감했다. 국제 공법에 따른 전쟁 수행과 강화 협상을 수행하였으며, 이를 구미 각국이 지켜볼 수 있게 세심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청을 옭아매던 영사재판권을 자국 내에서 폐지하기 위해 조약 개정에 힘썼다. 일본은 강대국이 되기 위해 그들이 정해 놓은 질서에 맞는 외교를 했다. 이러한 외교를 제국주의 침략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도 외교 관계에서 윤리적 규범보다는 힘의 논리가 더욱 앞선다. 우리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종이 거중 조정 조항을 믿고 미국에 기대려했던 것보다 일본이 스스로 강대국의 질서에 맞게 자신을 바꾸려 노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무엇이 더 외교에 필요한 자세인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무쓰 외교의 한계’
그럼 이토록 배울 점이 많은 무쓰 외교의 한계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무쓰가 조선을 멸시한 것보다 더 큰 한계가 있었다. 바로 자국민을 우매한 존재로 멸시하고 있는 태도이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국민의 열정은 여러 가지 일들이 종종 주관적 판단에서만 나왔고 추호도 객관적 고찰을 용인하지 않았다.”(185쪽)
무쓰는 자신과 같은 고위 관료가 하는 일을 일반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우매한 국민이 제 일을 방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 고위 공직자가 국민을 개돼지라고 표현했던 것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생각이 지금 일본의 고위 공직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집행한 정책의 결과로 국민에게 심판받지 않는다. 즉, 주권자인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물론 대다수 일반 국민이 복잡한 외교 전반에 대해 알고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무쓰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정책을 수행하기에 앞서, 또는 정책을 집행한 이후에 국민에게 그것을 자세히 알리려고도 하지 않고,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주권의 원리에 반하는 행동이다. 지극히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에서 온 행동이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동의 없이 밀실에서 만들어진 정책이라면, 그 정책은 정당성이 없다. 그리고 그 정책의 결과에 대해 국민은 고위 공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청일전쟁으로 일본은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국제 위상이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청년은 무엇을 보상받을 수 있었을까. 승전의 광기 속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전쟁 반대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