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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팍팍한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야하는 길의 목적지를 잃고서 그저 흘러간다. 이런 때일수록 삶의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침반을 찾아 나선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아내었던 사상가들의 저작인 동양고전도 우리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난세라고 불리던 그 시대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창과 칼이 돈이라 불리는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가 삶의 방향을 제대로 알려줄까?
동양고전을 읽다보면 많은 사상가들과 만난다. 제자백가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는 누구에게서 지혜를 구할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고, 어떤 지혜를 구하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들의 사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따라서 나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은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설사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다 해도 우리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의 우리가 만나는 것은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진 전공자들의 해설서를 통해서이다. 그 책들을 읽어가면서 자신만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나침반으로 삼는 것은 오롯이 읽는 자의 몫이다.
[장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고전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를 가장 많이 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이는 많은 이들이 [장자]의 일부분만을 취사선택하여 자기계발서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장자]를 배우면서 유가의 관점에서만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장자]를 읽으면서 알게 된 지식들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이해한다 할지라도 삶의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기에 많은 이들이 [장자]에 대해 글을 쓰고, 우리는 여러 사람이 쓴 책을 찾아 읽는 것 일게다.
이 책 [그림으로 읽는 장자]는 [장자]라는 텍스트를 해설해주는 책이 아니다. 이 말은 [장자]에 나와 있는 글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해석하거나, 혹은 다른 사상가들과 비교분석하여 학문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장자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다른 제자백가들의 사상과 논쟁하면서 그들이 살았던 전국시대라는 한계를 어떻게 넘어섰고,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던 전국시대 장자가 추구한 것은 자유와 행복이었고, 그 자유와 행복을 위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조건을 찾아가는 생각의 단초를 중국과 조선의 화가나 문인들이 그린 옛 그림에서 찾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그림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 중에서도 많은 시간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김홍도의 <수차도>였다.
수차란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발로 발판을 밟아 바퀴를 돌리는 기계로, 모내기를 위해 논에 물이 부족하면 심지어 하루 종일 수차위에서 발판을 밟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그림을 통해 전국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끔찍한 전쟁이 일상이었던 전국시대 백성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되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 또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쁘게 살아가기만 한다. 장자는 이러한 삶이 과연 살아있는 삶인가 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그림을 통해 장자의 물음을 제시하고 장자의 답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자유와 행복의 조건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면 먼저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장자는 이에 대해 붕(鵬)의 큰 시야를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장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소요유(逍遙遊)와 호접몽(胡蝶夢)이 아닐까 싶다. 소요유의 첫 장면에 나오는 붕의 이야기는 고정관념의 족쇄를 끊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로운 정신을 상징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자유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붕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스스로 날개 짓을 해야 하고 부단히 바람을 치며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주변조건과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로 편안함과 안정이라는 관념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장자는 이름과 명예를 추구하거나 혹은 집착하는 유가와 묵가를 비판하고, 형식보다는 내용이 우선임을 강조하며, 욕망에 따라 출렁이는 감정을 경계하였다. 다름을 옳고 그름으로 분리하고 이를 감정으로 연결시킨 호불호(好不好)는 집착을 낳게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에 따른 호불호를 넘어서라는 말은 현대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인지도 모른다.
김홍도의 <수차도>가 보여주듯 우리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그런 삶이 아니라 자연의 본성에 순응하는 삶을 역설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인위(人爲)는 우리 자신을 억압할 뿐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쓸모와 쓸모없음은 현대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즉 금전적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욕망을 쫓아 오늘의 삶에 집착하다 보면 행복은 언제나 내일로 밀려난다. 장자는 그러한 삶이 우리의 행복으로 연결되는지를 묻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라고 받아들인다면 이는 장자를 심하게 오독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연의 원리는 타인의 자율적인 삶의 방식을 인정할 때 자신 역시 자유와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보전하며, 세상의 변화에 스스로 참여할 때 우리는 자연이 본래 갖고 있는 원리와 법칙대로 사는 무위(無爲)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장자는 말하고 있다.
쓸모와 쓸모없음, 옳음과 그름, 이것과 저것, 주체와 객체 모두는 우리의 분별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상반된 성격을 갖는 대조 쌍을 만들고 한쪽에는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고 다른 쪽에는 부정적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경계를 구분하라고 우리에게 강요한다. 인간은 항상 주체가 되고, 또 나는 항상 주체여야만 한다. 호접몽에서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되었는지는 꿈을 깨어서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장자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내가 주체여야 한다는 기계적인 구별이 아니라 사물의 변화 속에서 구별을 찾아야 하고, 그것은 경계에 서 있을 때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별하는 사고방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밝은 지혜, 즉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방향을 잃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가 자유와 행복을 내팽개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힐링이나 자기계발이라는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해법을 찾아 나선다. 그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타인과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쳇바퀴를 돈다. 이런 우리에게 [장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자유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인위와 무위 사이에서 불안과 고단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오늘의 행복을 결코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한다. [장자]를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을 알게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