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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아이들만 문제일까? 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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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초등학교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교폭력 문제 때문이다. 오랫동안 놀림과 따돌림을 받아온 아이의 부모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가해 학생을 신고하면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피해자, 가해자 뿐만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이 모두 관련자로 학폭위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파장은 더 커졌다. 학폭위에 불려가게 된 아이들은 불안증세와 두려움을 보였다. 이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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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초등학교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교폭력 문제 때문이다. 오랫동안 놀림과 따돌림을 받아온 아이의 부모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가해 학생을 신고하면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피해자, 가해자 뿐만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이 모두 관련자로 학폭위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파장은 더 커졌다. 학폭위에 불려가게 된 아이들은 불안증세와 두려움을 보였다.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할 학부모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간의 갈등 문제는 대체로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의 기저에 있는 아이의 내면을 헤아리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처벌받아야 마땅한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학교폭력 문제, 특히 초등학교 학교폭력 문제는 아이들이 또래집단에서 겪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갈등의 한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성장통' 같은게 아닐까. 대단히 격렬하게 표출될수도 있고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나름대로는 다 이유가 있을게다.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인내심이다. 더디더라도 아이가 겪는 문제를 아이 스스로 힘으로 해결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부모로서 안타까운 나머지 아이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섣부른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혼자 해결하려하기보다는 교사, 학부모와 소통하고 의논해가면서 학교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함께 길을 찾아가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학폭위'가 열리면 갈등을 조절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다양한 노력들은 진행하기 어렵게 된다. 아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관계망의 가운데 위치해 있던 아이들의 존재 대신 '모월 모일 모시'에 벌어졌던 '사건'만이 부각된다. 부딪침과 물러섬, 소통과 접근, 극복과 치유 등 갈등 해결의 동학은 사라지고 '학폭위'라는 절차의 블랙홀에 삽시간에 빨려들어갔다.(현행 학폭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밝히겠다.)

 

학교는 학교폭력을 해결하지 못한다

 

한국의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소폭 하락하고 있지만 10대 청소년 자살률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민국 교실은 행복하지 않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아프다. '학교'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학교폭력 문제에 올바로 접근할 수 없다.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대부분의 관계망이 형성되는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책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에서 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것도 '학교폭력을 말하려면 학교를 먼저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학교폭력근절대책'이라고 내놓는 해법들은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며 어른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학교폭력을 아이들간의 다툼으로만 국한했던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은 문제아를 솎아내는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이름의 대책들의 기저에는 문제의 소지를 제거함으로써 학교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썩은 사과'를 제거하는 방식이 올바른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썩은 사과를 제거한다고 해서 나머지 사과들은 괜찮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문제는 썩은 사과 몇 개가 아니라 '썩은 사과 상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교사와 학생간, 교사와 교사간, 학생과 학생간, 교사와 행정직원간의 위계적 질서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차별과 폭력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유독 학생간의 폭력만을 '학교폭력'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발상이다. 학교현장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휘두르는 폭력, 심지어 학생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나는 이런 폭력교사들이 '학폭위'에 제소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은 실수도 할 수 있고 사고도 칠 수 있다.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거나 반대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당황한 나머지 어리석게 대처할지도 모른다. 아이 못지 않게 힘겨워하다가 끝내 문제의 본질에 이르지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흘려보낼 수도 있다. 학교공동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든든한 연대와 지지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 사건이다.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에만 국한된 접근은 피상적이다. 폭력을 치유하는 과정에는 공동체의 성찰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인격적인 존재로 건강하게 성장해나가기 위해 교실은, 학교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물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학교폭력의 인식론적 회로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는 시선과 언어가 마련되다. 그리하여 '일상의 재조직'이라는 묵직한 화두가 설정된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함께 흔들리고 치유의 과정을 헤쳐가는 동료와 이웃의 존재다...(중략)...이러한 소공동체 형성이 문제 해결의 관건일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곧장 혼내거나 징벌 체제 속으로 밀어넣지 않고 이 문제를 차분하게 한번 응시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아이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알 때까지 어떤 집행을 유예하는 것, 그리고 집행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의 종용을 버텨 보는 것, 나는 이것이 학교폭력의 현실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은 거기서 이해받고 위로받은 기운으로 아이 스스로 또래집단의 관계망속에서 풀어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4쪽)

 

어른들의 폭력이 만든 세상에서

 

최근 종영한 드라마 <라이브>(극본 노희경)에서는 경찰을 린치한 촉법소년 만용을 체포하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만용과 그 패거리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당한 경관은 퇴직을 불과 한 달 앞둔 늙은 경찰이다. 동료들과 함께 추적끝에 만용을 붙잡아 연행하고, 그 아버지가 경찰서에 불려온다. 평소 아들에게 무관심하고 툭하면 폭력을 썼던 아버지는 조사실에 앉아있는 만용을 보자 마자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그는 잘나가는 기업 회장에 지방선거 출마를 앞둔 공직후보자다. 만용에게 린치를 당한 경관은 곧 있으면 퇴직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만용이를 끝까지 처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애를 강력히 처벌하라 요구할겁니다. 만용 아버님은 부탁하건대, 만용이를 위해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와 우리 경찰들과 끝까지 싸워주시기 바랍니다. 만용이가 담배피던 현장에서 아버지한테만큼은 말하지 말아달라고 나한테 부탁했을 때 만용이는 절박했을텐데 나는 그걸 무시했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무자비하게 폭력을 쓰는 아버지도, 절박한 자기를 도와주지 않은 이 경찰도, 이 세상 모든 어른이 만용이는 싫었을 겁니다. 그래도 난 악랄하게 끝까지 만용이를 처벌받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만용이도 알아야하니까요. 하지만 만용 아버님은 부디 만용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처벌을 덜 받게 놈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놈이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경찰도 절박한 자기를 도와주지 못했지만, 제 아버지만큼은 제 편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이 폭행을 가한 경찰관의 말을 들으며 만용은 눈물을 쏟는다. 만용이 그 아버지에게 끌려 돌아간 뒤 읊조리듯 내뱉는 지구대장의 대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애들은 늘 잘못이 없어. 어른들이 문제지. 어른들이 애들을 망쳐놓고 그 애가 사고를 치고 벌을 받고 애가 어른이 되서 다시 애들을 망치고..."

 

교실의 갈등, 해결을 넘어 성장으로

 

자율과 존중대신 위계와 통제로 아이들을 키우려는 사회는 불행하다. 폭력을 잉태한 환경과 구조를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대부분의 폭력은 상처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학교폭력은 '힘들다' '아프다'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아우성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징벌적 조치보다는 연민과 공감이 먼저다.

 

물론 폭력은 범죄다. 어른들은 마땅히 타인에 대한 폭력은 절대로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사회가 변해야 하고 학교가 변해야 한다. 폭력을 예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의 근원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학교폭력은 폭력만 베어 내어 삭제할 수 없다. 설혹 그렇게 할 수 있다한들, 학교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과 구조는 그대로 존재한다. 결국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학교는 지금의 학교가 가진 여러 모순들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재능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는 학교, 사람의 존재를 반토막이 아니라 온전히 긍정하는 학교, 그래서 사람들이 폭력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대하고 감정을 엮어 감정적 연대를 할 수 있는 학교,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물리적 구조, 그리고 제도를 갖춘 학교. 어쩌면 그것이 학교폭력의 대안일지도."(311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8.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