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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전공자이자 소통전문가 오채원님의 신간 ≪안녕 아빠≫를 읽었다. 책 표지에 쓰여진 “울고 싶어도 울 틈이 없는 맏딸의 애도 일기”가 알려주듯이, 이 책은 부친에 대한 깊은 애도를 담고 있다. 갑작스런 부친의 장례를 치르면서 겪은 일들, 그리고 부친의 부재 속에서 생긴 일들을 통하여 그의 사유를 펼쳐 놓은 에세이이다. “사람은 뒷꼭지가 예뻐야 한다.”, 그의 대학 은사님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그의 진정한 노력이 부친과 영원한 이별을 하는 과정 속에 녹진히 녹아 있다. 그는 소통전문가로서 강연과 강의에 활약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이런저런 연유로 부친과 편하게 교감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친의 죽음과 이후의 애도의 과정 중에서, 맏이, 딸, 비혼 여성, 지식 노동자로서 겪은 일들과 부친을 떠나 보내면서 부친에 대한 본인의 솔직한 생각과 속마음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아버지에게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본인의 남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그의 진솔한 애도 일기를 읽어 나가면서,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아무런 준비없이 맞닥뜨린 아버지의 죽음, 애도의 과정은 고사하고 허둥지둥 치루어버린 장례, 그리고 홀로 남아서 외로이 살아오신 어머니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본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에 제대로 슬퍼해본 적이 없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는 시간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해보련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그림처럼. 하지만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이 바로 곁에 존재함을 잊고 산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부고를 접하면 잠시나마 죽음을 생각하지만 이내 또 잊어버린다. 그런 반복을 이제는 깨트려야겠다. 죽음이 늘 내 곁에 있음을 각인하면서, 나를 둘러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꾸어갈 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봐야겠다. 작가 정채봉님의 말씀,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들의 이웃이고 싶다.”를 떠올리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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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부친 보내드리고 2년이나 지나서 그때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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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하늘이 나는 참 좋다. 더없이 맑고 투명한 하늘과 탐스러운 구름의 경이로운 조화를 볼 때마다 감탄사를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내 코끝이 시큰해지고 목구멍이 따가워진다. ‘우리 아빠가 떠나가신 그 날도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이었는데…….’ 이 책은 아빠 생각이 더 많이 나는 9월, 내 시선을 사로잡은 신간이다. 제목만 봐도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아빠의 장례기간 내내 나는 참 많이도 울었었다. 서른다섯 해를 사는 동안 그렇게까지 오열했던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가족이 곁에 있어주어서 큰 힘이 되었다. 특히, 큰 언니가 너무나 든든했다. 언니는 엄마를, 두 동생들을 살뜰히도 챙겼다. 그리고 담담함을 잃지 않았다. 아빠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에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나의 언니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맏딸’이라는 간판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 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울고 싶은 만큼 울고, 슬퍼하고 싶은 만큼 슬퍼했던 철부지 막내로서는. 왜 맏이는 그래야 하는 걸까? 맏이에게나 막내에게나 아빠와 이별을 했다는 사실은 똑같거늘. 이 책을 읽으면서 애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다. 애도…… 사전에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함’이라고 되어 있다. 사람은 사는 동안 누군가의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한 애도를 경험하게 된다. 과연 다들 그것을 괜찮게 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릇된 애도를 무심코 범하고도 있다. “네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엄마 잘 모셔야 한다.”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 앞에서는 눈물마저 참고 있는데, 다들 나만 채찍질한다. …(중략)… 그들에 의하면 나보다 엄마가 더 슬프다. 감정을, 슬픔을 비교한다. 슬픔이라는 것에 절댓값을 매길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것은 다 같은데, 누구는 10만큼 슬프고 또 누구는 3만큼 슬플까? 슬픔의 종류나 내용은 다를 수 있되, 정도를 계측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 141쪽? 저자는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는 내내 둘은 서로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지 못했다. 미움도, 사랑도 제대로 표현해본 기억도 없다. 하지만 문득 문득 차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당황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아버지가 떠났지만 여전히 마음은 분노와 비탄 사이를 오갔다. 거기에 타인의 그릇된 애도까지 겹쳐져 저자는 더욱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나는 느껴본 적 없는 그런 감정에 괴로워하는 저자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옆에 있으면 손을 잡아주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다행히 저자는 그 혼란을 빠져나오기로 했다. 아빠를 보내고 1년간 일기 쓰듯 속마음을 적어 내렸고, 비로소 아빠에게 제대로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 안녕’이라고. 이제 그녀는 ‘삶’을 더욱 열심히 일구고, 남아 있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기로 결심했고, 매일 그 길을 가고 있다. 나의 아빠는 내게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 덕분에 나는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삶의 방향도 선명해졌다. 이 책의 저자도 아빠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P.S. 이 책은 ‘초짜 상주’를 위한 훌륭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갑자기 상주가 되면 당황스럽고, 뜻하지 않은 사건들을 겪게 마련이다. 저자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고도 생생하게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