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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아무 생각 없이 한국사를 준비할 때였다. 워낙 유명한 ebs강의였기에 아무 의심없이 그 길고 긴 고급 한국사 편을 선택해서 들었다. 사실 무료 강의고, 수업도 잘하시기에 선택했는데, 왠걸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든다. 수업 시작 전 이상한 농담하시는 것도, 그러면서 멋쩍어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것도, 겁나 멋진 수업도, 그리고 수업 중간 중간 예상치 못한 감동도. 그 모든 게 최고였다. 내가 기억하는 역사 수업은 선생님은 교탁 의자에 앉아 몇 쪽, 몇 째줄 줄 그어라. 이게 이래서 이랬던 거야. 다음~. 이런 수업이었다. 선생님 얼굴을 볼 이유도 없고, 졸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내가 아는 역사 수업을 뒤집어 주신 분이 큰별쌤이었다.
저자 강의의 특징은 쉽고 재밌지만 뼈가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책도 전부 그렇다.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유도하다가 마지막에 핵심을 드러낸다. 굉장한 건, 그 예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다 생각이 났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셨는지도. 잠시 기억 속에 묻어 두고 살았다고 할 정도로 다 생각이 났다. 그만큼 영향력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신다. 그리고 그 핵심 내용을 결코 잊지 못하게 만드신다.
많은 이들이 역사, 특히 국사 공부에 필요를 못 느낀다. 심지어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되었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임용고시를 위해 필수 항목이 되었을 때도 그 무쓸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사만큼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분야가 없지 않을까 한다. (아무 이유 없이 한국사 자격증 딴 사람..)
저자는 제목처럼 명확히 역사가 왜 필요한지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책 전체에서 끊임없이 그에 부합한 내용들로 가득가득하다. 과거의 일에서 우리가 어떤 점을 본받을 수 있는지,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떤 점을 공부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살게 해주는지. 다양한 이야기들로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이야기 한다. 크게 3가지를 들어보자.
1.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한다.
-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예요. (6)
인문학 열풍이 불었던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그 어떤 점보다 인간 자체를 연구하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열망 아니었던가? 문학에서, 역사에서, 철학에서 인간이 가는 길을 탐구하고 근본이 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모두 열망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질문은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였고 말이다. 저자가 이 부분을 놓칠리가 없다.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큼직 큼직한 이정표를 알려주는 느낌이다.
2. 그렇다면 그 길을 잘 가고 있는가
-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104)
나를 돌아보게 하는 능력이다. 많은 이들이 먼저 걸어갔던 그 길에 어쩌면 똑같이 서 있을지도 모를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미 걸었던 그 길을 살펴보며, 내 길과 비슷한지, 혹은 내가 생각한 그 길이 맞는지, 그 길이 맞다면 잘 가고 있는지. 너무 많은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를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3.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상상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아니라 그 속내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139)
소통과 공감은 대인관계에서 몹시 중요한 단어들이다. 그리고 대인관계,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타인과 세상을 어떻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필수다. 이 또한 역사 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지만, 역사 속 인물들의 미래는 볼 수 있다. 각 결정이 내려진 뒷 이야기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타인이 상황을 알게 되고,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사고를 반복하면서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정말 멋진 사람들을 찾았다.
- 이원인의 생활은 가난했을지언정 그는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236)
-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 궤적은 같아요.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이 길을 걸어 나갔던 사람들이거든요. (240)
지조 있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들. 정말 멋있다. 나 자신에게 항상 자신감이 없고, 이리 저리 가을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마냥 나풀거리는 내 입장에서 저렇게 지조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얼마나 깊이 있는 사고를 하면, 얼마나 바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기에 우리가 위인으로 부르고 배우고자 한다.
내가 이 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선생님이 가진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내 강의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듣는 무료 강의가 아니라 돈이 있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무료 강의로 만들겠다’는 제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거든요. (294)
학교를 그만두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안도했다. 학교라는 교육권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꿈의 크기에 비해 제한되어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틀 안에서가 아니라 더 큰 세상에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유명한 온라인 강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모든 강의가 무료이다. 유튜브로 여러 영상도 제작하시고, 여러 방송에도 나가고 계신다. 계속해서 집필 작업도 하신다. 이 모든 것이 많은 이들에게 역사를 쉽지만 제대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자 하시는 거라 믿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존경하는 큰별쌤이다.
- ‘아,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구나.’ 내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낄 때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얻습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이죠. (214)
자신이 역사를 통해 배운 점을 그대로 행하시는, 배움과 말과 생각과 행동 모두가 일치하시는 분이다. 어찌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꽃] : 이육사 선생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9) (무척 마음에 들었던 시)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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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다보니 아무래도 역사책을 좀 많이 읽었다. 초짜 선생일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르치기도 했다. 7시간 넘게 내가 아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 때면 아이들도 '역사적 사실'을 받아적기 바빠서 질문 한 번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한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역사는 배워서 어디에 써 먹어요?" 난감했다. 뭐라고 대답해주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흔한대답은 해주나 마나다.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어디쯤에 있는 길인지 언제나 끝이 날지도 알지 못하는 길인데 뭐라고 설명을 해주냔 말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성적에 도움이 되지. 대학 안 갈거야?"라며 면박주듯 답을 하고 말았다. 진심은 '나도 모르니 쓸모 없는 질문 따위는 하지 마라'는 거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답변을 해주고 난 뒤에 수많은 '심적고통'에 시달렸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역사를 왜 가르치나?', '나는 역사를 왜 좋아했나?', '나는 왜 역사책을 읽으면 즐거워 하나?'...내 스스로 던지는 그 어떤 질문에도 적절한 답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들 수업을 위해 <유관순 위인전>을 읽을 때였다. 몹시 부끄러웠다. 나는 열일곱, 열여덟에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으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그 나이에 뭘 하고 살았나?' 아니 '나는 지금이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큰 뜻을 품고 독립만세를 목놓아 부를 수 있을까?'...아니 못 할 것 같았다. 유관순은 일제를 향해서도 당당히 대꾸했다. "나는 내 나라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라"...이 말에 몹시 부끄러웠다. 왜냐면 나는 '친일파'들을 욕하면서도 그들의 변명에 따져 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픈 시대'에 태어난 죄밖에 없으니 살려고 거짓부렁을 했을 뿐이다...그 시절에는 다들 그랬다.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는 묻고 밝은 미래를 건설하자...이런 변명을 늘어놓는데도, 따끔하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라서 자기 이익을 위해선 때론 '비겁'해질 수도 있는 법이라는...그런 이해 말이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는 달랐다. 아니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다 그랬다. 비겁하게 사는 것보다 당당히 죽음을 택하는 삶이 더욱 값지다면서 말이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아무개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제 한 목숨을 산산히 부서지도록 내던진 것처럼 말이다. 친일파들은 이런 아무개들을 '개죽음'에 비유하며 조롱하지만 비겁하게 살아남아서 내뱉는 변명일 뿐이다. 그러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고 말이다. 이렇게 '정리'가 되고 나니, 역사를 왜 배우는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역사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까닭도 답을 찾게 되었다. 그 답은 바로 '내가 본받을 삶을 찾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만약 홀로 살아간다면 정말 막막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동안 배운다. '먼저 살다간 사람의 발자취'를 살펴보며 살아간다. 흔한 드라마 소재 중에 "난,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라면서 집을 박차고 나간 딸이 20년 뒤에 '엄마'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것들이 많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엄마'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란 바로 이런 '딸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바로 '역사'인 셈이다. 역사를 가르치다보면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는 선조들의 반복적인 모습을 'DNA'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우리는 반만년이나 이 땅을 지켜오며 다른 민족에게 결코 굴하지 않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한무제의 공격을 1년 넘게 막아내고, 수나라 당나라의 공격을 거듭해서 막아내며, 거란의 침입과 몽골의 침입, 왜적의 침입 등등 몽땅 다 막아내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분란을 일으키지만 않고, 단결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넘볼 수 없으니 '자긍심'을 가지라고 말이다. 너희들의 몸 속에 그런 'DNA'가 있다고 말이다. 이런 두루뭉술한 표현을 좀 더 확실히 하면 '우리 선조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 <역사의 쓸모>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성적을 위해서, 대입을 위해서 외우고 또 외웠던 '역사적 사실'을 달달 외우는 것에는 아무런 쓸모를 느낄 수 없으니 진정한 역사를 배운다는 건 '역사적 인물의 삶'을 참고해서 '내 삶의 목표'로 삼아도 좋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쓸모'라고 말이다. 읽자마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의 쓸모'는 [역사 바로 읽기]에도 유용하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이다. 특히, 이순신은 23전 23승, 무패 신화를 작성하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거든 장군이기에 모두들 존경하길 마지 않는다. 그런데 이순신과 같이 싸웠던 '원균'은 어떤가? 그도 '조선의 장수'였으며 전장에 나가서는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다. 물론 원균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비판할 때는 '정확한 근거'를 들어서 해야 한다. 아무런 까닭도 없이 무조건 미워한다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된다. '원균의 잘못'은 동료 장수인 이순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런 감정을 자신의 입신양명의 기회로 삼은 것에 있다. 이런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이순신과 늘 '전공'을 다퉜고, 더구나 적의 계략에 빠져 이순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다. 더구나 '칠천량 해전'에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기지도 못할 전투에 나서서 애써 키운 '조선 수군'을 한순간에 궤멸시켜버린 점에 있다. 이렇게 '비판'을 하고 나서 '이런 잘못된 삶'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점을 깨우친다면, 역사를 바르게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역사의 쓸모'를 잘못 활용하고 있었다. 바로 '일제의 역사왜곡'으로 말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순신전>은 '춘원 이광수'와 '단재 신채호'가 각각 썼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검열'은 춘원의 책은 널리 읽히도록 했고, 단재의 책은 금서로 읽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춘원의 책은 조선 민중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지 못하고 갈라지게 하며, 단원의 책은 조선 민중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춘원의 책을 읽으면 이순신이 충성을 바친 조국(선조)을 미워하게 하고 같이 싸운 장수(원균)마저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제는 이를 통해서 춘원의 책을 널리 읽혀서 '이순신 같은 영웅조차 죽음으로 내몬 선조와 원균을 증오하는 마음'이 들게 해서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앗아가버린 셈이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일제는 '이순신은 참 훌륭하다. 일본에 이런 영웅이 있다면 성웅으로 떠받들 것이다'라는 뉘앙스를 풍겨서 너도나도 친일을 하도록 유도했다. 반면에 단재의 책은 비록 선조와 원균의 잘못된 판단으로 위기를 겪기는 하였으나 우리 민족은 그런 위기조차 슬기롭게 이겨내어 끝끝내 이순신과 같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조선민중들이여, 우리 모두 이순신과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나라를 구하자는 내용을 심어주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처럼 일제는 '역사 왜곡'을 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그 '쓸모'를 이용한 셈이다.
이처럼 역사는 쓸모가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인생 메뉴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의 삶을 본받을 것인가를 추천할 것도 없다. 이사람, 저사람의 '삶'을 엿보다보면 저절로 내가 살고 싶은, 본받고 싶은, 존경하는 분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역사'다. '개인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힘들고 괴로울 때 이유도 없이 '역사책'을 꺼내 읽었던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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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말은 나에겐 머나먼 당신과 동의어이지 싶다. 때로는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처럼 다가오지만, 지금까지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제대로 해본적은 없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말 일 게다. 어려서는 지적 허영심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 책 저 책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철학하면 생각나는 것은 진부한 얘기 혹은 어려운 얘기, 둘 중의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합리론, 경험론에 이르기까지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혹은 당연한 소리를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념론에 이어 구조주의나 현상학 등 현대철학에 이르러서는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은 물론 급기야는 내가 꼭 이것을 알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슬슬 기피하기 시작한 것 같다. 간혹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책을 만나면 다시금 의욕에 솟다 가도 이내 도로아미타불 격이다. 그나마 동양의 사상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이 넓고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철학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정신승리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처음 제목을 보면서 철학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목이 풍기는 느낌도 그렇고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도구’라는 부제 역시 철학입문서라기 보다는 자기계발서의 인상을 풍기고 있다. 철학책도 그렇지만 자기계발서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서 본다면 쉽게 읽겠다고 선택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럼에도 선뜻 책을 읽은 이유는 적의 적은 친구 혹은 부정과 부정이 만나면 긍정이 될 수도 있다는 어찌 보면 변증법적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삶의 무기로서의 철학을 논하기 전에 이 책이 어떤 의도로 쓰여진 책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결코 철학입문서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그는, 그 이유를 철학의 역사를 편집의 축으로 삼지 않았고, 철학사상의 중요성보다는 현실에서의 유용성을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철학이란 자신들의 철학과 사상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주장하는 것이었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시사와 통찰을 주는지에 대한 관점의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철학을 전공으로 삼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은 철학책을 읽다가 대부분 좌절하고 만다는 말이 ‘그럼 이 책은?’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오늘날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기업과 조직은 혁신을 이야기하고 개인에게는 무한한 창의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혁신이나 창의력 혹은 변화라는 것이 그저 말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모두들 상식을 의심하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라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리더가 철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말한다. 철학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갖게 해주며,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고, 어젠다의 설정이 가능하게 만들며, 똑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바로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철학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가 삶의 무기로서 철학적 소양을 갖고 싶지만 대부분이 좌절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그림의 떡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먼저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은 궁극적으로 두가지 물음, 즉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철학자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자들이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사고방법과 문제설정방법, 그리고 최종적으로 제안하는 해답이나 주장을 통해 통찰력과 시사점을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간과한 채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철학자들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일반인들은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모른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어떠했으며, 그래서 결론이 이렇다는 설명이 필요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 철학자들의 사상을 우리의 삶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의 사상이 우리의 삶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그들이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에 대해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조직은 왜 쉽게 바뀌지 않는지, 사회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지에 대해 저자는 고대의 철학자로부터 현대의 철학자들은 물론 경제학, 심리학, 문화인류학자들의 사상과 문제제기과정을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로 만들어 준다. 이처럼 사람, 조직, 사회, 사고라는 네 가지 컨셉으로 구분하여 저자는 철학이 우리의 일과 삶의 문제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해주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 저자는 그래서 철학자들이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사고과정과 문제제기과정을 대하는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삶속에서 부딪치는 문제의 대부분은 저자가 구분한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범주안에 들어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각자도생을 부추긴다. 우리는 이러한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철학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내 삶의 무기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긍정하고 있는지 보다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83쪽/존 로크의 타불라 라사 중에서)
‘경력이나 인생의 전환기는 무언가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일이 끝나는 시기다.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가 끝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새로운 시작’에만 주목해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끝’에 관한 물음에 진지하게 맞서지 못한다.’(152쪽/쿠르트 레빈의 변화과정 중에서)
‘공평이나 공정과 정반대에 있는 차별이 이질성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차별이나 격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반대로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247쪽/세르주 모스코비치의 격차 중에서)
‘쉽게 아는 것은 과거의 지각 틀을 그대로 늘려가는 효과밖에 가져다 줄 수 없다. 정말로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려면 안이하게 알았다고 생각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271쪽/소크라테스의 無知의 知 중에서) 철학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용어에 대한 정의이다. 르상티망, 페르소나, 예정설, 앙가주망, 소외, 격차, 무지, 시니피앙, 시니피에 등.. 어떤 용어는 쉽게 그 개념이 머리속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또 어떤 용어는 철학을 어렵다고 느끼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학을 내 삶의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 용어에 대한 공부 역시 필요한 것 같다. ‘이들 용어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 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297쪽/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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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난 역사 점수가 꽤 높은 학생이었다. 수업도 정말 열심히 들었고, 암기해서 정답 찾는 것도 잘 했으니까. 하지만, 역사적 사건, 역사 속 인물을 현재에 적용하여 고민해 본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감사한 분들 혹은 나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여겼었다. 학교 졸업 후에는 더더욱 역사에 대한 관심은 낮아졌고, 한 번씩 TV에 나오는 얘기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정도이다.
최태성 선생님의 신간 <역사의 쓸모>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역사는 '쓸모'있는 것이라고, 지금 현재에도 유용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올해 초 <백범일지>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또 다시 솟아 올랐다. 몇몇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편하지만 그른 길과 험난해도 바른 길 앞에 서 있을 때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를, 역사의 무서움을 기억한다면 바른 선택이 가능할까? 최태성 선생님은 그런 역사의 힘을 기억하라고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역사에 남은 이들 존경받는 이들은 기어이 그런 길을 선택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회영'이었다. p.225 편히 살 수 있는 신분을 버리고, 재산을 바치고, 인생을 내던지며 오로지 독립 하나만을 바라보았던 이회영은 30대 청춘의 나이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 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그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야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예순여섯 해의 '일생'으로 답했던 것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역사를 공부할 때 바라보아야할 시각에 대해서도 일깨줘 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p.221 독립투쟁단체들의 이동 경로를 외우려고 하지 말고 한번 머릿속에 그려봅시다. 그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움직였습니다. 낮에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 밤에 다녔을 거예요. 평지로 편하게 다녔을까요? 아닐 겁니다. 역시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험한 산을 행군했을 겁니다. 만주가 얼마나 추운 곳입니까? 그 추운 땅에서 칼바람을 맞으면서 다닌 그 길이 화살표로 그려져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 화살표를 그냥 화살표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그들의 발자국을 봐야 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지금 직면한 어려움에 자포자기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는 힘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받았다.
pp.75~76
정약용은 자신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형조에 있는 죄목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하여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글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생략) 교과서를 한번 펼쳐보세요. 정약용이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까? 죄인 정약용? 아닙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외에도, 신라의 구진천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이익보다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있는 그 신념에 감탄했다. 또 서희의 협상 실력에도 무릎을 쳤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시간들이었다. 흥미에 더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되돌아 보게하는 의미있는 독서 시간이 되었다. <역사의 쓸모>를 읽을 수 있어 참 감사했다. 선물해 준 책 친구에게도 고맙고, 함께 읽고 있을 책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더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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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왜 읽는가
역사는 과거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재에 살아 있는 것이다. 전통을 우리가 흔히 말하길 ‘오늘에 되살릴 가치가 있는 옛 것’이라고 한다. 역사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역사는 죽은 학문이 아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역사다. 저자는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서 역사를 가져오고 있다. 그들을 통해 현실 속에서 잃은 길을 되찾고 있다. 여기에 그 통찰의 지혜가 담긴 내용들이 들어 있다. 글의 내용들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글은 크게 4장으로 나누어 전개해 나간다. 전체적으로 22개의 통찰의 내용이 들어 있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4개의 제목에 각기 다른 소제목을 붙인 내용으로 역사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오늘의 삶 속에 가질 수 있는 멘토로 역사를 가져온 것이다. 관계성에 주의하면서 읽어나가는 과정 속에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잘 보여 진다. 내용이 명쾌하고, 자료가 분명하다.
이 책에서 무엇을 읽는가
저자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고라 칭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재생해 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당대에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 삼국유사고, 그것이 오늘에는 숱한 이야기의 연원이 되고 있다고 본다. 현재 지자제에서 이 이야기들을 재생해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고도 한다. <연오랑 세오녀> <단군신화> 등을 예로 제시하고 있다.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만난다.
역사를 통해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새날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 이야기를 갑신정변 개화파에서 가져왔다. 그들이 비록 3일 천하로 끝이 났지만 신분제 철폐, 새로운 정부 수립 등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동학혁명이 농민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일어났고, 갑오개혁에는 이 희망이 많은 부분 수용이 되었다. 결국 오늘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는 자유민주주의가 희망의 결과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가? 지난 날 그들이 그런 희망을 지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말이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정조 때 정약용이 소재가 되어 있다. 정조는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 똑똑한 사람들을 규장각이라는 공간에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훈육시키며 미래를 대비했다. 그런 가운데 정약용은 으뜸이 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약용은 정조와 서로 긴밀한 사랑을 나눌 정도로 가까웠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정약용을 정조가 총애한 것이다. 그런데 정약용에겐 하나의 아킬레스가 있었다. 바로 종교다. 신하들의 거센 반발로 정조는 정약용에게 물러나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는 언질을 주고 물리친다. 정약용은 물러나서 왕의 서신을 가다린다. 정조는 서신을 통해 정치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다산이 정조의 편지를 받고 정조가 불러주기로 약속한 날 하루 전에 정조가 죽는다. 그 후로 신유박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약용은 유배를 가게 된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그냥 하소연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고 저작에 몰두한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펴낸 학자로 매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지혜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역사를 통해 과신과 도취는 자신과 나라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잉카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바로 군사가 많다는 과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잉카의 마지막 왕 아타우알파는 군사 180을 이끈 스페인의 피사로에게 낭패를 당한다. 피사로가 출중한 무기를 앞세워 군사의 숫자로 자만에 빠진 아타우알파를 놀라게 한다. 군사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고 적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된 게다. 즉 과신이 문제가 되어 왕은 잡히고 죽임을 당하며 나라가 망하게 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연개소문의 경우도 예로 들고 있다. 신라의 존재에 대한 과신이 결국 자신이 죽고 난 뒤 나라가 분열되고 결국 패망의 길로 가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맹신은 실수를 하게 된다. 늘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서희의 외교술을 얘기한다. 그를 통해 협상의 대가는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낸다. 거란이 80만을 주장하며 고려의 국경을 넘어와 땅을 내어줄 것을 요구한다. 고려 조정에서는 거란의 말을 들어주자는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야 백성들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희가 일어나 말한다. 한 번 그들을 만나보지도 않고 굴복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후세 역사가 뭐라고 하겠는가 서희는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을 한다. 그런데 거란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송나라를 쳐야 하는데 뒤가 걱정이 되어 고려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서희는 윈윈하는 얘기를 꺼낸다. 여진 때문에 우리가 거란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으니 강동6주를 우리가 다스릴 수 있도록 해주면 거란과 통교를 하겠다는 얘기를 한다. 거란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돌아간다. 원종의 외교도 주목하고 있다. 원종은 세자 때 원에 항복하기 위해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아버지도 죽고, 항복해야 하는 원의 수장도 죽었다. 그때 세자는 기막힌 결단을 내린다. 당시 원의 황위 계승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보를 통해 가장 유망한 사람을 고르고 그를 만난다. 바로 쿠빌라이다. 그는 쿠빌라이에게 항복은 하지만 속국은 되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세조구제>를 해준 대가를 요구한다. 쿠빌라이(세조)는 그 요구를 들어준다. 그리고 나중 원의 황제가 된다. 그 후 고려가 원과 불리한 관계가 될 때, 이 세조구제를 들먹이면서 속국이 되는 것은 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원종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체면과 실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 경우를 보여준다. 실리를 선택한 인물로 장수왕을 제시하는데, 장수왕은 고구려 시대 동북아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가졌던 왕이다. 그는 유화적인 자세로 위진남북조 시대였던 중국 쪽과 관계를 이어갔다. 그 관계는 조공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고구려와 관련이 있었던 나라는 북위, 북연, 송나라 등이다. 서로 앙숙이었던 나라들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는 몸을 낮추는데 있었다. 고구려도 싸움을 하면지지 않을 수 있는 군사력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고, 피해를 줄이면서 강국으로 남는 길은 저자세 외교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북위에 쫓겨 북연의 왕이 망명을 요청했을 때 북위를 달랜 것, 북연의 왕이 고구려에서 행패를 주리다가 사형을 당했을 때 송에 대한 태도 등은 장수왕의 정치력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반면 조선 인조와 중신들은 당시 청의 세력이 큰 데도 불구하고 명과의 우호를 내세우며 청을 배척하다가 병자호란을 당한다. 만약 당시 청에 동조하고, 약간의 마음을 내어줬더라면 청과 나란히 강국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된다. 그랬다면 뒤에 박지연이 청에 들어가 보고 그들의 문화에 놀라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정도전의 삶을 그리면서 멘토를 생각해 보고 있다. 정도전은 고려말 대학자다. 하지만 출신이 좋지 않아 늘 희생을 당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골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신분이 그렇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여말 이인임이 정권을 잡았을 때 원나라 사신을 접대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친명파였는데 원의 사신을 접대하라니 당치도 않았다. 그래서 거부했고 유배를 가게 된다. 이후 다른 출신이 좋은 사람들은 빨리 회복이 되는데, 그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그는 원도 싫고 고려도 싫어 이름처럼 도전의 길을 택했다. 그런 그의 눈에 실력자 이성계가 보여 지고, 그에게 역성혁명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이성계도 신분상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결국 역성혁명은 성공하고 정도전은 조선의 근간을 세우는 일을 한다. 선택과 노력, 성취의 멘토로 그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푸른 바다를 보고 꿈을 키우고 그것을 이루어낸 장보고를 그리고 있다. 장보고는 골품제의 신라에서 평민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몰래 바다를 건넜고 당에서 당시 이민족 모병제가 있어 군대에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승승장구한다. 권력도 얻고 능력도 인정받는다. 그러다 난들이 진압되고 나자 위기감을 느낀다. 언제 군이 해산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장보고는 장사를 하게 되고 수완을 발휘한다.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여 산둥 반도에 법화원이라는 곳을 설립하여 신라 사람들과 연계해 힘을 비축한다. 어떤 경우라도 이겨나갈 수 있게. 그러다 다시 도전을 선택하게 되는데 신라로 돌아오는 일이다. 신라로 돌아와 신라왕에게 요구한다. 바다에 설치는 해적들을 다스리겠다고. 왕이 하락하고 그 후부터는 해상에 도적들이 흔적을 감춘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장보고가 중앙권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왕족 한 명과 결탁을 한다. 그리고 왕을 세우는데 힘을 보탠다. 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권력의 마수에 당하는 인물이다. 이 장보고를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의 멘토로 삼으면 어떨까 바다를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방법을 찾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 저자는 말한다. 서울역에서 아이들이 프랑스 파리행 기차에 오르는 상상. 이런 것을 이루어 주고 싶다고. 물론 빈부 격차 해소, 환경 문제 교육 문제 인간답게 사는 문제 등 많은 시대적 과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인가? 독립투사였던 이회영 선생 일가를 제시한다. 일제치하가 되었을 때 그들은 가족회의를 거쳐 그 부유했던 재산을 모두 팔아 압록강을 건너기로 한다. 그리고 만주에 가서 독립 단체를 결성하고 학교를 세운다. 그들의 재산 현 시세로 하더라도 600억이 넘는 거액이다. 그 돈은 3년 만에 없어진다. 독립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후 가족들이 강냉이 죽으로 연명까지 했다고 한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 꿈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선의 백성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망. 그리고 이회영 선생이 예순 여섯의 나이에 상해에서 잡히기까지 독립 투쟁에 매진한다.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미투 운동에 대한 소고를 전하고 있다. 오늘날 들불처럼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남성들이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나에 모든 남성을 싸잡아 범좌자로 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편한 마음까지 사회를 달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이루어졌는지 역사를 통해 생각해 본다. 고려 시대에는 남녀가 재산 상속에도 동일한 조건이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이 조선에 와서 변한다. 성종 때 어우동 사건이 있다. 유교로 고착화된 사회가 성문제에 있어선 여자들에겐 기혹하고 남성들에겐 너그럽게 나타났다. 어우동은 양반가의 딸이고 대군에게 시집간다. 하지만 대군이 기생에게 빠지고 이혼을 원한다. 성종은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대군은 그녀를 친가로 보내버린다. 그 후 장안에 큰 섹스 스캔들이 터진다. 어우동이 17명의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이를 들은 성종은 어우동에게 사형을 명한다. 하지만 같이 놀았던 남자들에겐 그리 중벌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읽는 우리들에게 많은 말을 한다. <남성본위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근대에 와서 나혜석의 사랑도 여성에게만 질타를 한다. 이런 것들이 반대급부로 오늘의 미투가 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말한다. 그 이전은 황제가 보살피는 백성이었는데 이후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국민이 된 것이라고. 이는 확실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나라의 근간이 바뀌는 일이었으니까? 제국에서 민국으로 변한 이 시기, 지금 북한은 실질적으론 그렇지도 않지만 남한은 이 때부터 민주주의 국가의 원형이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그것이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 오다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이란 말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고, 지금 우리가 어떤 자세로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하는가를 살필 수가 있다. 3,1 운동 때 목숨을 걸고 만세를 불렀던 민의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역사는 말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만났고, 이렇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보면 된다. 그러면 그들의 고통이 보이고 그들의 지혜가 보인다. 그들의 의기가 보이고 그들이 만든 일의 결과가 보인다. 이 책은 역사 속에 들어가 본 저자의 기록이다. 저자는 그 역사 속에 들어가 마음껏 역사를 탐방하고 그것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확신으로 들려준다. 그들이 만들어 낸 과정과 결과가 우리들의 삶을 안내한다고. 이 글에서는 저자의 22개의 통찰을 다 넣지는 못했다. 분량이 너무 많아서다. 이 정도의 내용이면 충분히 리뷰를 읽는 사람들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왜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하며,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분별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으로 인생에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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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일손을 놓은 나에게 작은 화단이 하나 다가온다. 시간은 봄이다. 그 화단에 꽃씨를 심는다. 그 꽃씨는 싹이 돋아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하나씩 들어주면서 그와 친구가 되어 간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받침대를 세워주고 그가 외파에 손상을 입지 않게 보호한다. 그는 잘 자라고 꽃을 피운다. 그러면서 나에게 찬사를 보낸다. 나는 최대의 찬사를 그에게서 받는다. 나의 삶은 그렇게 다시 환하게 펴진다. 삶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멋진 삶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 큰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는 멋진 삶을 찾을 수 있다. 멋진 삶을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구하는 학습, 철학이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란 문제로 많이 고민한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힘겹게 살았다. 그러면서 그 고뇌를 우리에게 전해 주기도 하고, 더러는 고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우리가 인지하는 부분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아주 작은 흔적이다. 그런데 그런 흔적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삶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다는 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에는 발견의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이 삶의 씨앗이 된다. 씨앗은 터전을 만나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우리는 그 터전을 가꾸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 터전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전체적으론 몰라도 개인적으론 행복을 느끼는, 기쁨을 만나는 삶이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 가는가의 문제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걷는 길에 항존 한다. 어떻게 만나고 찾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것은 철학 속에 있다. 철학은 그것을 하는 학문이다.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고 참된 가치를 찾아가게 한다.
이런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은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속성 속에서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특성 속에서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들은 공히 철학이라는 것이 무기가 되어 더욱 멋진 인생이 만들어 진다. 철학은 늘 바른 방향을 가리킨다. 길을 걸어가는데 멋지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건강함이다. 도둑질을 한 사람보다 도둑맞은 사람이 평안한 법이다.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두려움이 적은 법이다. 철학은 삶의 방향성에서 어느 편에 서있어야 할 것인가를 우리들에게 일깨운다. 그것은 평안과 두려움이 없는 쪽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 행복함을 찾아나가게 한다.
책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서두에서 4가지로 제시한다. 철학이 어떻게 삶을 이끌어 가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철학을 하면 삶의 방향성을 볼 수가 있다. 그 방향성은 아래와 같은 문제들을 이해하면서 이루어진다.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을 것이고, 지난 삶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지혜로 가질 수 있다. 이 지혜는 삶에 유용하게 적용될 것이고, 우리의 삶을 안내한다. 웃음과 그 웃음이 만들어내는 참된 길로 나가게 한다. 그 참된 길은 바로 철학이 가져다 준 삶의 보배로운 모습이리라.
우리는 이런 철학적인 생각들의 가치를 잘 안다. 비록 역사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결론을 얻지 못했을 지라도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치가 다른 가치와 충돌을 일으키면 그 사이에 절충점이 생긴다. 그러면서 그 절충 부분에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고 보편화 되어 간다. 그 사이에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방향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윤리적으로, 발전적으로 사고하면서 문제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기에 철학이 해결력까지 지니는 것이다. 이런 해결력을 이 책에선 무기라 지칭하고, 그 무기를 우리에게 3장으로 나눠 5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을 쉽게 교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양이 없는 지식인은 세상을 당혹케 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본다. 히틀러가 그랬고, 빈 라덴이 그랬다. 그들은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공포의 자리로 만들어 갔고, 그들도 고통의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는 철학이 없었다.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 나가는 열쇠가 없었다. 이 열쇠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사상이 되리라.
책은 사람과 조직, 사회와 사고를 핵심적인 콘셉트로 하여 말한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말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표현을 해나가는 방법이 제미가 있다. 한 가지를 소개하면
문답법을 사용해 철학자들과 철학을 등장시킨다. 그것은 삶을 통찰하게 만든다. 바른 길을 안내하게 만들고, 그 길에 대해서 서술적으로 보여준다. 이상적인 사회의 추구 운동이 본래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치즘, 스탈리니즘, 문화대혁명, 폴 포트, 옴진리교 등, 그것들은 모두 비참한 결말을 보였다는 것을 일깨우며 그들이 걸은 길속에 철학이 배제된 독선과 기만을 찾아내고 있다.
책은 철학과 함께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철학에 어떻게 다가가는가 하는 문제다. 이제까지 역사학적으로 다가간 철학을 현실론적으로 찾고 있다. 오늘에 철학은 어떻게 유용하게 만날 수 있을까가 키워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기존의 찾음 패턴을 바꾸고 있다.
모든 문야에서 발견과 견문을 원용하면서 인류와 사회, 세상의 온갖 현상에 대해 자유자재로 통찰을 담아낸 학문이 철학이다. 그렇기에 철학만 치중하면 폐해가 클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저자가 다른 학문에도 관심을 가진 이유가 될 듯하다. 이처럼 철학을 현실과 밀착되게 하여 그 윤리성과 유용성을 담아낸 것이 책이 가지는 가치라 여길 수 있다.
자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전투력, 사상을 몇 가지만 제시해 보면
생활 속에서 철학이 어떠한 결과로 다가오는가를 바라보고 있는 내용들의 예시다. 책은 많은 부분을 이런 무기에 할애하고 있다. 철학자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제시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 모든 내용이 철학이라는 그 본질적인 기반, 윤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삶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가장 중심에 비도덕성이 있다. 이것들이 철학이라는 무기로 극복될 수 있으리라. 저자는 그렇게 보고 있다. 그것은 사실인 듯하다. 아직 무엇이 온전하단 결말은 없지만, 그래도 그 과정을 바르게 일깨워 주는 것은 지금까지 무수한 질문에 답해온 선인들의 견해일 듯하다.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 질문들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을 하고 있는 책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주관적인 요인은 각자가 살면서 찾아야 할 몫이지만, 그 기준이 되는 답을 이 책에서 비교적 많이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보여 진다. 도덕성, 진실성, 유용성, 가치성 등이 이 책이 담고 있는 기저가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는 이런 사고가 바탕이 되어, 우리의 삶을 이끌어나갈 때 우리의 삶이 행복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난 것은 미미하나나 찾아가는 삶이다. 화단을 가꾸고 그 속에서 꽃들의 아름다움을 가지며, 열매의 꿈을 꾸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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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철학을 배우는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옛 철학자들의 주장 그 자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그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철학자가 어떤 이유로 그런 주장을 했고, 당시 사회에서는 그의 주장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살펴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기까지는 철학보다는 철학의 역사에 가깝다. 하지만, 철학자가 자신의 주장을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에 담겨있는 철학적 사고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마 저자도 그런 생각을 했기에 철학을 배우는 이유로 아래의 네 가지를 열거한 것이 아닐까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과제]를 제대로 설정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철학과 경영을 연결하기
역사가 사실(史實)을 단순히 암기하는 과목으로 인식되어 있듯이, 철학도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사고를 논하는 과목으로 기억되고 있다. 즉, 철학을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상아탑의 유희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 저자는 철학, 아니 철학적 사고법이 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장 강력한 지적 무기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주장만 하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한 철학·사상 중 50개를 엄선하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담았다. 즉, 철학과 경영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철학책이나 철학사에 대한 책과 다른 점이 보인다. 첫째, 다른 경영관련 책처럼 핵심만 쏙쏙 뽑아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비딩(Bidding, 입찰)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보는 듯했다. 둘째, 철학사나 하나의 주제에 대한 철학책과 달리 펼쳐서 나오는 어느 챕터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형식적으로는 사람, 조직, 사회, 사고로 분류해서 철학자들의 사유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홀로 생존할 수 없기에 조직 혹은 사회와 필연적으로 얽히게 되기 때문이다. 아, 물론 현생인류가 ‘슬기슬기 사람[Homo sapiens sapiens]인 것은 다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만의 철학적 사고 만들기
저명한 철학자의 사고흐름을 낱낱이 풀어놓고 그것대로 따라간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과 같은 수준의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의 기업에서 아주 성공적이었던 경영전략을 도입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의 말을 그대로 읊는 앵무새가 될 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 생각하는 보통 사람보다 못할 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들은 나만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나만의 철학적 사고를 만드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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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의 역사에서 나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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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_018
지은이: 최태성 출판사: 다산초당
들어가며~
나는 반성한다. 역알못이라는 말 조차 당당하게 했던 그 시절의 나를~~ 역사를 잘 모른다고 말하던 지난 시간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진심 역사를 잘 모르고, 학생때는 외워도 외워도 점수(?)도 잘 나오지 않았던 국사, 세계사는 제겐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모른다고 말해와도 부끄러운줄 몰랐습니다.
그런 제가 올해 서평단 책을 통해 [최태성의 만화 한국사]를 읽고 [매국노 고종]을 읽으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이라는것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역사의 쓸모]를 통해서는 역사안의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고뇌와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점에서 또 서평단 활동이 제겐 하나의 역사와 같은 계기를 마련해 준듯 합니다. 서평단 아니었으면 사실 관심을 갖고 구입하거나 하지 않았을 책인데 말이죠...
아직 역사의 개괄만, 흐름만 머릿속에 넣은 상태이고, 학생때 배우면서 어려워 손 놓았던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다시금 만나고 바라보며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 볼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한편, 저처럼 역사가 어렵고 힘들다는 분은 [최태성의 만화 한국사]와 같이 한국사 전반을 만화로 쉽게 접하고 이해하고 난 후 본 책인 [역사의 쓸모]를 읽는다면 좀더 역사를 바라보는 눈과 마음의 넓이가 넓어지고 좀더 깊어질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책속으로~
저자인 최태성 선생님은 역사는 삶의 해설서와 같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제집을 풀다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해설을 찾아보는것 처럼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죠.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역사 속 인물들은 이미 그런 경험을 했고 그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어떤 길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될것이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라고 합니다.
역사의 쓸모를 발견하고 역사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기록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 #새날을 꿈꾸게 만드는 실체 있는 희망 #품위 있는 삶을 만드는 선택의 힘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하여
제목이 참 많은것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어려서도 그렇고 성인이 된 저도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쓸데 없는 짓 하지 마라고, 쓸데 없이 뭘 그렇게 알려고 해, 쓸데 없이 왜 시간낭비하고 그래'라는 생각과 말을 참 많이 해온듯 합니다.
역사의 인물들과 그들의 고민, 선택, 행동을 쓸데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잘못된 선택 안에서, 무모한 선택 안에서, 옳은 선택 안에서 배우게 되는것입니다. 그분들의 인생을(선택을) 통해 배우는것이지요. 역사의 인물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후손인 저희는(나는) 그런 똑같은 상황이 놓여 진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쓸데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tvN에서 방영한 [철인왕후]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과거의 저는 워낙 역사의 관심이 없었기에 사실 드라마를 봐도 사극이나 시대극은 보지 않았거든요. 이번에 역사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철인왕후도 보게 되었는데.. 물론 시대배경은 조선후기 왕권이 약해지고, 세도정치와 부패한 권력가들에 의해 백성들의 고통은 극심해져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었구요. 저는 이 드라마안에서 나오는 동학(동비라고 불러요)농민운동의 내용도 대사안에서 나옵니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여서 이 책을 읽으면서 1장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동학농민운동부분이 맘에 많이 닿았습니다.
농민군들은 총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죽창하나만 들고 싸운 사람들인데 총을 들고 있는 관군, 일본군앞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런 농민군들 옷속에 부적을 붙였답니다. 왜냐면요... 부적을 붙이면 총알이 피해간다고 믿었다네요.
저도 정말 부적을 붙이고 싸웠던 농민들이 떠올랐습니다. 근데... 드라마를 봐서 도움이 된것도 있어요그 시대의 인물, 동학농민들을 떠올리고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더라구요). 그렇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던 새로운 세상, 희망찬 내일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농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부끄럽지만... 저는 (과거의 저) 고등학교 시절에 동학농민운동은 외워야 할 글자와 숫자에 불과했었답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거나 마음에 남아있지 않았던것이구요.
이렇게 저는 과거의 저를 반성하고 역사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도 막.. 죽창을 들고, 부적을 붙이고 뛰어나가야 할것 같은 상상을 하는데... 자꾸 [철인왕후]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너무나 익숙한 궁궐... 아마도 저는 전생에 왕비였을거라는 ㅋㅋㅋ 농담...
아.. 좋은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적고 싶을만큼... 이지만 1장은 여기까지
2장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성찰: 태양의 나라 잉카제국은 왜 멸망했는가 #창조: 세상을 바꾸는 생각의 조건 #협상: 하나를 내어주고 둘을 얻는 협상의 달인들 #공감: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 #합리: 체면과 실속 중 무엇을 챙겨야 할까 #소통: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법
2장의 키워드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한다.
정말 하나하나 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이 너무~~~ 재밌고, 감동이고, 통괘하고,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위기상황에서 기회를 만들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사안에서 볼수있지요.
나의 삶안에서도 내가 처한 상황이 앞이 안보일 만큼 깜깜하고 어떠한 선택도, 판단도 하지 못할 때가 올 때도 있지요.
목표를 정하는것, 그 첫걸음을 뗄 수있는 힘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힘과 용기를 역사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참 감사한 시간입니다.
3장 한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김육: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 #장보고: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힘 #박상진: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이회영: 시대의 과제를 마주하는 자세
동시대 인물이 아니라 역사에서 롤모델을 찾아보라는 저자 최태성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장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삶 전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있는 걸까요? 아마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더 크게 다가오고, 머리를, 가슴을 쿵하고 건드리는 부분이 다 다를거라 생각합니다.
평생을 대동법에 인생을 걸었던 김육이라는 분은 죽기 전까지 백성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호남에도 빨리 대동법을 시행해달라고 상소를 올리며,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며 자신의 길을 걸었던 김육의 인생을 통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일생을 통해 답했던, 삶을 던진다는 것에 대해 저 또한 삶의 목표와 내 삶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독립운동가였던 이회영 일가의 이야기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사실 독립운동과 관련한 내용은 학생때 배웠던 내용으로 기억에 남는것은 없습니다.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 들어왔던 독립운동, 독립운동가의 다큐를 통해서 더 많이 접했던것 같습니다.
온 재산을 팔아 독립을 위해 일생을 살아온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안위와 나의 자유민주주의와 나의 주권과, 나의 경제적 기반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너무나 오랜 시간 저는 이 소중한 유산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태어났더니 일제시대, 전쟁, 빈곤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내게 주어진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4장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본다면 #지금 나의 온도는 적정한가 #시민이라는 말의 무게 #오늘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아.. 사실 나는 이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 부끄럽고 많이 찔렸다. 내가 그동안 행사한 권리, 부끄럽지만 투표를 할때 어떤 기준과 어떤 눈으로 후보자를, 정당을 지지하고, 평가했었는가?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난... 단 한마디도 못할 것 같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 선거... 선거는 내게 있어 그저 빨간날, 하루 쉬는 날인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후보들이 다 그사람이 그사람이고, 누가 되고 똑같이 말아먹을텐데.. 나라가 이꼴인데 뭐 누구라도 다르겠어... 하는 마음은 없었던가 반성해봅니다.
나가며~~
제게 역사는 외워야 할게 많은 과목으로 존재했었습니다.
역사를 모른다고 말하는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제서야 시작하는, 역사를 공부하려는 저의 작은 발걸음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제 스스로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한 시민임을 생각하고, 나에게 국가를, 자유를, 민주주의를, 경제적 기반을, 공부할 수 있는 이런 환경을 만들어준 생명을 다 바쳐 투쟁하고 지켜온 역사의 인물들의 그 일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내 후손(비록 진짜 후손은 없지만 ㅠ.ㅠ)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전해야 하는 사명으로 역사의 한 장을 살아가야 할것을 다짐해 봅니다.
독서습관캠페인 참여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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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년 전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을 읽고 나서, 나의 독서 편식 상황을 깨닫고 경계를 넘는 책읽기를 시도해보고자 독서 목록을 정비하며 새로운 기분으로 들떴던 적이 있다. 우선은 경제 관련 서적과 동기부여에 관한 책으로 시작해서 좀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에 관한 책으로 넓혀가야지 했지만 쉽고 빨리 읽히는 책에 손이 가는 바람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서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나마 가끔 열리는 리뷰 대회를 통해서 평소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어 매번 감사한 마음이 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니! 제목 또한 강렬하고 좀 어렵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는데 서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철학에 대한 편견을 깨끗하게 환기시키며 기대감으로 고조되었다. 그동안 철학에 대한 접근이 지적 호기심과 폼을 잡고 싶은 허영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지적 충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맨 먼저 칸트가 떠오른다. 어김없이 오후 3시면 산책을 해서 마을 주민들은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는.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그리스 철학자들. 몇 해 전 플라톤의『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책의 서문을 접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얼마만큼 대답을 해 줄 수 있는가,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 야마구치 슈는 바로 이러한 우리 앞에 닥친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인들이 철학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으로 이 책을 기획했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제’의 계기로 로버트 허친스 교수의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들어 왜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지 네 가지의 이점을 들어 들려준다.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를 정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이다. 1부는 무기가 되는 철학으로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그동안 왜 우리가 철학 앞에서 좌절해야 했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2부는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 · 사상으로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이다”(P28)라고 지적했다는데 이것을 미처 몰랐더라도 우리는 가정을 넘어 조직이라는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인간관계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에서 다룬 주제의 핵심이 더욱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에 이 책을 쓴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동안 철학에 관심을 갖고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리스의 철학자를 시작으로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 순으로 방대하게 이어지는 철학자와 무거운 주제에 압도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의 사상이고 현실과 호환이 안 되거나 동떨어진 내용인 경우도 있어서 어렵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자는 여타의 철학 입문서와 달리 시간 축으로 구성하지 않았으며 현실의 쓸모에 기초하며 철학 이외의 영역도 다루었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런 신선한 의도를 접하면서 어떻게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니체의 르상티망부터 시작하는데 학창시절 철학자와 사상가의 명제를 암기하여 시험을 치르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세상에, 어떻게 철학자에 대한 사상을 그렇게 배우게 되었을까 싶다. 그러니 졸업하고 나선 철학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옛날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한 명의 어린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온 마을이 달려들었다는 시대가 아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익을 주었으나 마음은 고독한 시대이다. 개인적인 삶의 모습이 버튼 하나만 터치하면 눈앞에 나타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너무나도 쉽게 느끼는 시절이다. 점점 소외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서로의 마음을 모르게 되고 그런 환경으로 쉽게 변화해 간다. 아무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일을 모의하고 그것이 터져야만 내막을 알게 되는 사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시기심과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 포함한 폭넓은 개념으로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든다. 어렵게 느껴졌던 철학 용어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자주 언급되는 이솝우화의 「여우과 신 포도」이야기 속 여우의 심리와 고급 브랜드 상품을 구입하며 르상티망을 해소하고 있다는 철학적 견해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준다. 이렇게 타인의 시기심을 이용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철학을 왜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반면 좀 놀라운 부분도 있었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개인은 나약한 존재다. 열심히 살고 노력을 하면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대부분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장 칼뱅의 예정설을 접하고 놀라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수긍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선행을 쌓느냐 못 쌓느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P76) 이 주장은 기원은 『신약성서』의 「로마서」8장 30절에 “신은 미리 정해진 자들을 부르고, 부른 자들을 의로 삼으며 의로 삼은 자들에게 영광을 내렸다”는 말에서 ‘미리 결정되었다’는 키워드로 도출된다는데. 오늘날 조직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인사고과에서 밀려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핵심 내용은 뒤에서 공정한 세상 가설을 설파한 멜빈 러너(Melvin Lerner)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로 연결되어 혼란스런 마음을 부추긴다.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의 1만 시간의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얼마나 많은 책에서 다룬 내용이었던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고 싶은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결국은 이루게 된다는 희망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세 개의 명제를 들어 풀이하는데. 명제1 : 천재 모차르트는 노력했다. 명제2 : 노력하면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 명제3 : 노력 없이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P260)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여기 예를 든 명제는 논리 전개에서 흔히 발생하는 초보적인 실수로 사실은 전혀 명제의 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이나 악기, 종목, 과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바람과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지 않고 맹목적인 믿음일 때는 위험한 주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히면 사회나 조직을 도리어 원망하게 될 수 있다는 사례는 정말 헛헛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우리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고.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의무라는 것을 명심하자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힘없는 개인이 살아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소박한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작은 희망에도 일어설 수 있는 존재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는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몰두했다. ‘앙가주망(engagement)’ 은 ‘참여(commit)’를 의미한다. 이 ‘참여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이 세계에 대한 ‘책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여기에는 자유가 따른다. 또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 했는데 바로 그 예가 전쟁이란다. 흔히 전쟁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전운동이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받아들인 것은 선택했다는 것이고 결국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리정연하고 냉정한 지적에 섬뜩해진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진정한 의미로도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넘치는 자유 때문에 괴롭기도 한 존재인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세상 가설’과 ‘예정설’을 실체를 알았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사르트르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 소개했다는 현대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은 ‘우리는 세계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공동으로 관여하는 아티스트’이기에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희망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해 내야만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금까지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고 삶에 임한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거대하게 시스템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매뉴얼화 된 시스템이란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물이 흐르는 듯한 일처리를 보장한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유 중 네 번째의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언급을 상기시키는 부분을 만났다. 바로 20세기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데 필수 아이콘이 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된다. 수많은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극도로 세분화되고 시스템화 된 우리의 현실은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가기에 쉬운 상황이 아닐까 섬뜩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P100)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처리’하기 위한 계획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었고, 작년에 읽었던 맨부커상 수상작인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했다.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대위 고타가 천황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을 연마하고 그 과정을 부하인 나카무라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 무섭고 떨리지 두 번 세 번의 연습을 거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다. 극도로 세분화된 시스템 속에서는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다. 애매하고 교묘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악에서 빠져나가려는 발버둥에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인명은 왜냐고 묻지도 못한 채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더불어 시스템화 된 조직에서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게 하는지 일침을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 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모여서 조직이 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각각의 주제를 컨셉트로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물론 좀 어렵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철학 용어만큼은 암기식 공부가 도움은 되었던지(?) 학창시절의 기억을 금세 소환해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직, 사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면 개인이 삶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 속에 흘러가는 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우리 앞에 있다. 흔히 ‘지금을 살아라’, ‘현재를 살아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 속에 젖어서 살며 오지 미래를 걱정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과 같은 세상이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앨런 케이(Alan Curtis Kay)의 말을 만나게 된다. 감동과 더불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가 1972년에 저술한 논문 「모든 연령대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A Personal Computer for Children of All Ages」)를 사례로 들어 미래의 ‘예측’과 ‘실현’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미래 예측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원하는 것을 구상하는 과정에서의 간절함이 결국 실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노력에 힘을 싣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철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심리학, 과학, 문화인류학 등 50명의 철학자, 사상가의 50개의 생각이 들어있다. 분명히 읽기 전보다는 생각을 키워 주었으며 교양이 듬뿍 쌓인 듯 느껴진다.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 고정관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한 마음이 되기도 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상기할 때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즐겁고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1위 경영 · 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이자 히토쓰바시 대학교 경영관리 연구과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내공이 담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을 효율적인 삶으로 이끄는 철학적 소신을 안겨 줄 것이라 믿는다. 또 멀어졌던 철학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용기와 도전의 마음을 심어준 유익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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