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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에 가니 2013년 올해의 책 24권이 와 있었다. 어느 책부터 읽을까 한 권, 한 권 살펴보는데 비닐포장에 쌓여 있는 책이 한 권 눈에 뛴다. 그 책이 [설국열차]였다. 이 책이 만화인지도 비닐을 뜯은 후에야 알았고, 더욱이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는 소식은 띠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무리 영화에 관심이 없기로서니 900만이 넘는 관객이 관람하였다는 영화도 모르고 있다니.. 쩝~ 그러니,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만의 책 읽기가 될 수밖에 없다. 만화라고 쉽게 읽기, 아니 보기 시작하였는데 내용은 무겁기 한이 없다.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기후무기의 작동으로 인해 세계는 재앙을 맞는다. 지구는 백색 눈으로 뒤덮인 사막이 되었고, 재앙이 오기 전 유람열차였던 1001량의 설국열차만이 생존자들을 싣고 재앙이 미치지 않는 곳을 향해 탈출하고 있다. 그러나 눈과 추위는 언제나 열차보다 앞서 가고 있었고, 따라서 문명의 마지막 보루인 설국열차는 멈추지 않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재앙을 피해 달리는 설국열차 안, 마지막 생존자들만이 살아가는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권력과 그것을 지키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열차의 각 량은 생활공간에서부터 농사, 식품가공, 군사, 감옥까지 용도별로 이용되고 있으며, 기관차와 가까운 맨 앞칸은 황금 칸으로 열차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은 꼬리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설국열차]는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탐욕이 결국 파국을 불러오지만 멈출 줄을 모른다.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결코 주지 않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있지만, 황금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탐욕 앞에선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열차가 미세하게 느려지는 것을 눈치챈 그들은 오히려 꼬리 칸을 떼어내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들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그들 자신의 삶을 위한 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온갖 위기가 우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런 위협에 맞서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국가나 사람들은 없다. 자신들의 부와 명예만을 다들 탐욕스럽게 갈구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는다. 진실을 은폐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자신들만의 이득을 추구하는 현실세계 지배집단의 행태는 정확하게 [설국열차] 안의 풍경과 일치한다. 만화책이기에 쉽게 읽히리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책이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며,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동서냉전이 끝난 지 한참이나 흘렀지만,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기들이 속출하는 행성에서, 우리는 절망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설국열차]는 그런 희망이 없음을, 절망만이 있음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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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흥행기세가 무섭다. 개봉 12일만에 600만을 돌파하는 등, 관람 후 해석과 재관람열풍 등까지 뜨겁고. 그 작품의 원작이 프랑스 원작만화인걸 다들 아실테고, 그래서 접해보았다. 역시나 들린대로,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읽고, 기본적인 설정만 어느정도 따오고, 완전히 '자신만의 열차'로 재창조한게 맞았다. 원작만화를 읽으면서, 간혹 영화 <설국열차>를 떠올리는 부분은 있었으나,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대부분은 완전히 판이했다. 그래서 원작 <설국열차 Le Transperceneige>는 원작대로 보는맛이 쏠쏠했다.
원작 <설국열차>는 모두 3 파트로 나눠져있다. <탈주자><선발대><횡단>. 확실히 기본설정은 어느정도 비슷했다. 무한히 달리는 '노아의 방주'같은 설국열차가 있고, 그 안은 '꼬리칸'부터 황금칸 등까지로 나눠져있다. '하나의 국가적인 설정'까지 영화와 비슷했다. 그리고, 한 등장인물이 '꼬리칸'에서부터 올라와, 최상위층까지 와서 자리를 차지하게되는 등도 비슷비슷. 하지만, 정리해놓고 말해놔서 비슷한것 같지 막상보면, 프랑스만화다운 거칠지만 섬세한 그림체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면묘사나 대사, 정치, 종교 등까지 얽힌 부분 등에서 확실히 원작만화다움만의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희망이 없는 자들의,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이야기.. 시작은 비슷하지만, 결말이 다르다. 이야기의 전개도 영화와 달라, '꼬리칸'에서부터의 한 남자로부터 시작은 되지만, <탈주자-선발대-횡단>으로 갈수록, 제1설국열차, 제2설국열차가 나오고, 영화완 다른 결말까지 매우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는. 원작의 결말은 음.. 영화의 결말이 좀 더 희망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역시 봉테일 감독님, 확실히 다른 끝의 느낌을 주셨군요. 영화는 영화나름대로, 원작은 원작나름대로의 '매력'이 가득넘치는 <설국열차>였다고 할 수 있겠다.영화는, 영상부터 배우, 볼거리까지 시각적으로 즐거웠으며 마지막엔 나름의 메시지까지 깊게 전해주었다. 원작만화는, 영화에게 소스를 전해준만큼, 다소 어둡고 좀 더 정치적이고 종교적이고 그러한 부분들이 많지만, 전체적인 얼개와 설정등은 엇비슷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설국열차>를 보셨다면, 필히 거쳐가야할 원작만화의 매력.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또 다른 쌍둥이형제같은 작품 <설국열차>.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들이시라면, 이 원작만화도 찾아보시어 흥미롭게 '또 다른 설국열차의 세계'로 빠져보시길 바란다. 비교하는 재미와 함께, 원작다운 세계관에 또 빠져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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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각색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원작을 보아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꽤 걸었던 영화 <설국열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뻔한 전개와 다소 촌스러운 결말을 보여준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영화 곳곳에 서린 치밀한 계획과 제작 여건에 관한 뒷 이야기를 보고 봉 감독을 비롯한 다수의 제작진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설국의 열차에 관한 미래전설을 가공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웰메이드라며 영화에 대한 의견을 긍정적인 편에 옮겨두게 되면서도, 봉 감독의 각색력에 대한 부분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원작을 읽었다. 결론은 봉 감독 만세! 원작의 스토리는 정리가 덜 되어 있는 느낌이다. 영하 90도의 얼어 붙은 지구를 무한에 가까운 동력으로 돌고 도는 열차에 대해 영화보다 디테일한 설명은 없었다. 캐릭터들도 뚜렷하게 개성을 드러낸다고 보기는 어렵고, 전체적으로 소설만큼의 디테일을 보여줄 수 없는 그래픽노블임을 감안해야하지만 영화를 생각하고 본다면 무척 어수선하다. 설국열차 시리즈는 꼬리칸부터 황금칸으로 탈주를 하는 1편과 쇄빙열차로 옮겨탄 사람들의 권력 다툼을 다루는 2편, 이들이 희망을 갖고 달리다 좌절하고 마는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 감독은 원작만화의 기본적인 배경과 1편의 스토리라인, 2편에 드러난 권력욕을 토대로 거의 새로운 이야기를 통째로 만든 셈이다.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요소들의 기원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동시에 봉 감독이 자신의 새로운 스토리에 맞추어 적확하게 발전시켰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었다. 원작의 상상력과 그 근간을 이루는 통찰력 있는 철학이 우선 멋지기는 했지만, 봉준호 감독이 그 모든 것을 알아보고 그만의 것으로 더 멋지게 각색해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봉 감독의 결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모든 것은 원작에서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되지만, 완벽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원작의 스토리가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너무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기보다는 인류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을 봉 감독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착한 영화가 되어버린 것 또한 사실이니까 말이다. 원작의 느낌으로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면 극장을 나오며 팔다리의 무게를 이겨내기 어려웠을 테지만, 최소한 대량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각성만큼은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을까. 젠장, 여긴 도대체 어떤 세상이지? 지금이 언제요? 내가 꿈을 꾸는 거요? 시간을 벗어나버린 기분이오! (71쪽) '인류'는 영원히 돌고 돌게 되리라. (180쪽) 열차 안에 다른 열차가 감추어져 있듯, 사람 안에도 또 다른 사람이 들어 있다. (2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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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 탈주자 영하 87도의 기온으로 모든 것이 다 얼어붙은 시대. 유일하게 남은 인류는 1001량의 열차속의 사람들뿐이다. 얼어붙은 눈을 헤치며 끝없이 달리는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탈출해 복도의 유리를 깨부순 남자가 잡힌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자 프롤로프가 열차의 유리를 깬 이유는 꼬리칸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것이었다. 잡혀있던 프롤로프에게 꼬리칸 사람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아들린이 찾아온다. 군인들은 아들린마저 강압적으로 프롤로프와 함께 구금한다. 함께 열차칸에 갇혀 있는 사이 프롤로프와 아들린은 서로에게 이끌린다. 꼬리칸의 평등을 주장하며 혁명을 지지하는 아들린의 적극적인 태도와는 달리 프롤로프의 행동은 미약해 보인다. 열차의 최고권력인 회장이 이들을 면담하길 원하고 프롤로프와 아들린은 열차의 최상류층이 머무는 황금칸에 다다르게 된다. 꼬리칸을 앞으로 이주시킬 생각이라며 프롤로프를 회유하던 회장의 속셈이 골치아픈 2등칸의 자유주의자들을 꼬리칸으로 보내 한꺼번에 제거할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프롤로프는 이를 저지하려 하지만 결국 유혈사태와 함께 수포로 돌아가고 아들린마저 잃게 된다. 인간적인 삶으로 귀환하고 싶었던 프롤로프의 종착지는 인간이 아닌 기계의 곁을 영원히 지켜야 하는 엔진실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 선발대 첫 번째 이야기 속의 설국열차인 제 1의 설국열차 이후인 제 2의 설국열차의 이야기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제 1의 설국열차와는 달리 제 2의 설국열차는 가끔 정차를 하고 선발대라는 훈련된 정예 인원을 통해 얼어붙어 있는 세상을 탐사한다. 첫 번째 정지훈련이 있던 날, 퓌이그는 선발대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후 퓌이그 역시 선발대가 되는데 선발대가 하는 일이란 공적으로는 탐사였지만 실상은 설국열차의 상류층들을 위해 그들의 공간을 장식할 기념품을 찾는 것이었다. 앞 편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열차 내의 계급적인 부분이 좀 더 세분화 되어 그려진다. 앞으로 갈 수록 상류층들의 공허하고 향락적인 삶이 도드라진다. 열차는 군인과 사제등의 권력층이 장악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퓌위그는 서랍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최고위원인 케넬위원의 딸인 발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와 케넬의원 통해 설국열차의 비밀을 알게 되고 비밀을 공유함과 더불어 비밀을 지킬 의무를 떠안게 된다. 푸위그는 발과 결혼하고 최고 여섯 위원중 하나가 된다. 세 번째 이야기 - 횡단 제 1의 설국열차와 충돌의 위험이 있다는 위협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며 권력을 누리는 권력구조와 별도로 외부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 속에서 열차가 아니라 우주를 날고 있는 우주선이라고 주장하는 교도가 생겨나고 그 교도로 인해 열차의 중간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자 지도부는 폭발이 일어난 중간 뒤쪽의 열차를 끊어버리려고 한다.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무참히 살육을 감행하려는 지도부를 저지하고 상황을 살펴보러 간 퓌이그는 그를 사살하라는 은밀한 명령을 받은 부하들에게서 죽을뻔 한 고비를 넘긴다. 다시 돌아와 딕슨 사제를 비롯해 살육하려던 지도부를 제압한 퓌이그는 또 다른 인류의 신호를 감지하고 새로운 노선으로 횡단을 하게 된다.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생존자들을 향한 여정은 추위와 배고픔의 힘겨움이었으나 다다른 곳에서 그를 맞이하는 것은 기대를 무너뜨리는 결과였다. 그래픽노블 설국열차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봉준호감독의 설국열차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어찌보면 영화의 모티브정도로 여겨질만큼 다른 부분이 많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를 싣고 끊임없이 달려야하는 열차안에서의 계급사회와 사회체제의 모습을 두고 볼때 원작을 벗어났다거나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영화 설국열차는 차치하고 원작 설국열차만을 놓고 보아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속의 여러 모습들은 예를 들어 핵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이후라던가 멸망한 지구를 탈출한 우주선같은 형태로 여러 영화에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그려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폐쇄적인 한계를 두고 이끌어지는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또 작가들은 길지 않은 세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혁명의 역사와 무력과 음모, 종교적인 권력등 현실속의 여러 부당함을 그려내고 있다. 길지 않은 세 편의 에피소드들 중 첫 번째에 등장하는 프롤로프는 최초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유혈사태 이후 사랑하던 여자마저 잃고 프롤로프가 다다른 곳이 결국엔 고립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엔진칸인 것은 구소련의 공산체제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혁명적 인물은 첫 번째의 에피소드에서의 꼬리칸에서 탈출한 최하층계급이 아닌 중간계층의 위치를 갖고 있다. 또 이름도 프랑스 이름에 가깝다. 사회적인 사상과 철학이 발전한 프랑스에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난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맹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몰락을 연상하게 되는데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얼어붙고 유일하게 설국열차안의 사람들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제한된 식량자원과 공간을 나누고 권력을 장악하는 계급과 시스템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설국열차의 운명은 화석자원에 의존한채 피폐해지는 지구의 모습과 또 다름이 아니다. 정지훈련을 빌미삼아 선발대로 하여금 영하 90도의 한파속에서 인류의 기념품을 챙겨오라는 지도부의 예술품 선호는 문화적인 안목이 아닌 소수의 과시적인 자기 만족일 뿐이다. 많은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안목을 위해 약소국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강탈해 갔는지가 중첩된다. 한 군인이 모두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수행하던 중에 작은 그림 하나에 깊은 매력을 느껴 소중한 나머지 없애지 못하는 모습은 단지 자신의 공간일부에 쳐박아 두기 위한 기념품을 원하던 상류층과 크게 대비된다. 설국열차에서 주인공(문제의 발단이 되는 인물들)은 모두 인간성을 유지하기 힘든 환경에서 탈출하고자 하지만 그들의 종착지는 끊임없이 달리는 설국열차와는 달리 막막함에 부딪히고 매몰되거나 기존의 체제에 동화되어 간다. 많은 사람들이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좁은 세상에 갇힌 것처럼 자신들의 안위와 향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함께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더 많은 삶이 유지된다. 영화를 먼저 본 터라 가장 궁금했던 것은 어찌되었던지 이 책의 결말이었다. 영화와는 달리 희망적이지만은 않지만 생각만큼 무겁지는 않았고 다른 많은 그래픽노블과 달리 생각만큼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어린 아이들이 보고 이해할 만한 책은 아니니(초, 중학생들이 쉽게 접하는 일본만화의 폭력묘사와 비교해서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세계관을 담고 있으므로) 단순한 만화로 생각하고 연령불문하고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궁금한 것 하나 : 발의 아버지는 최고위원인 케넬위원인데 왜 엄마는 등장하지 않는걸까? 궁금한 것 둘 : 에피소드 세 편중에 유색인종은 한 명도 발견 못했음 작가들의 가치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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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국열차-양장 합본 개정판 LA TRANSPERCENEIGE, 1984, 1999, 2000 지음 : 자크 로브, 뱅자맹 르그랑 그림 : 장 마르크 로셰트 올김 : 이세진 펴냄 : 세미콜론 작성 : 2013.08.29.
“얼어붙은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즉흥 감상-
예상치 않은 재미를 느껴버린 영화에 대해, 원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부작을 한 권으로 묶어 책이 다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꼬리 칸에서 앞 칸으로 탈출(?)한 남자와 그런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는 기계실을 향해 움직이는 그와 함께,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설국열차의 모습이 한 칸 한 칸 드러나게 된다는 [탈주자], 앞선 이야기에서의 설국열차는 전설이 되어있었고, 혹여나 그 잔해와 충돌할 것을 두려워하며 얼어붙은 세상을 가로지르는 열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소녀가 이야기의 바통을 잡으며 15년의 시간이 흐르는데요. ‘정차훈련’을 통해 발견되는 진실을 두고 발생하는 갈등을 보여주는 [선발대], 드러난 ‘설국열차’의 진실에 이어, 작은 희망이라도 잡기위해 계속해서 달려 나가는 [횡단]과 같은 이야기가 진지하게 펼쳐지고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영화이고 원작은 원작일 뿐입니다. 비교적 첫 번째 이야기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아 보이지만, 원작에서는 남궁민수는 물론 커티스나 길리엄, 심지어 모든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기억하는 ‘CW-7’도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마침 놀러온 친구가 ‘뭐가 이래?’라고 하기에 저는 ‘30년 전의 작품이다. 이해해줘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만큼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느낌의 질감이 달랐다고만 속삭여보는군요.
네? 아아.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3부작을 한 권에 모아둔 책입니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개봉할 경우 이렇게 세트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요. 영화와 함께 웹툰 형식의 프리퀼도 만들어졌겠다, 제대로 시동이 걸린다면 다양한 형태로 설국열차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다른 건 일단 그렇다 치고 작가에 대해 알려달라구요? 음~ 혹시 글쓴이와 그린이의 관계를 궁금해 하시는 건가요? 결론적으로, 그린 이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글쓴이가 두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1부와 2, 3부가 그림이 달라, 글쓴이 한 사람에 그린이가 둘인 줄 알았는데요. 15년의 공백을 두고 이어진 이야기였다 보니 그동안 그림체가 많이 변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첫 번째 이야기의 글쓴이가 1990년에 세상을 떠난 후, 다른 사람에 의해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가 분들께 도움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저 생존중인 두 작가가 영화에 특별출연했다는 사실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군요! 크핫핫핫핫핫핫!!
감상문을 마치기 전에 원제목의 의미를 알려달라구요? 으흠. 그렇군요. 영화에서는 ‘Snowpiercer’라고 되어있는데, 원작에서는 ‘Le Transperceneige’라고 되어있었군요. 아무튼, 조사해보니 ‘눈꽃을 뚫고서’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프랑스어를 영어로 고치는 과정에서 저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저 대신 답해주실 분 있으시면 손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책으로 한정 출판된 코믹 ‘남아돌아, 2013’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데요. 일단은 진도가 거북이 속도인 소설 ‘발리스 Valis, 1981’를 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TEXT No. 2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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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원작만화가 있다길래 한번 찾아봤다. 일단 이 만화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큰 줄거리는 있으나 에피소드간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일단 설국열차 설정에 대한 발상은 기발한 것 같다. 어쨌거나 구성은 기대이하인데, 어떻게 영화화되었길래 현재 기준 800만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보통은 소설이든 만화든,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의 매력에 빠진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데 예외도 있는 법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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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아 읽는다 지난번 "남쪽으로 튀어"에 이어 두번째다 영화를 보면서 원작이 읽고 싶어지는 경우는 참 드물다 왜냐하면 원작과 영화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원작의 방대함을 영화라는 틀에 맞추면 그 감이 떨어지고 원작에서 오는 감동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대부분 원작과 영화는 별개의 독립된 상태로 기억에 남길 바란다
그러나 영화를 보기전에 원작을 전혀 접하지 못한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갑자기 원작이 궁금해진다 원작에서는 어떻게 전개가 되었는지 알고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영화를 보고 원작을 찾게된다 결국 원작을 접하지 못하고 영화를 먼저 보게되는 경우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설국열차 사실 영화는 예고편에 비해 본편이 그저 그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편이듯이 그러나 원작을 읽으면서 감독의 고민을 어렴풋이 알게되고 영화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진 것 같아 영화를 본 당시에 느꼈던 실망감이 사라진다
이 책은 구상단계부터 곡절이 많다 출판사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면 처음 구상을 시나리오작가와 그림작가는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마치 이 책의 완결편에 나오는 허망함을 미리 예견하는 것처럼 원작이 총 3권으로 구성된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한권으로 묶어서 번역을 하였다
열차라는 외부와 단절된 독특한 공간에서 그 열차가 다니는 궤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반복이듯이 이미 출발할 때부터 정해진 길을 그저 가고 또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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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된 <설국열차>는 누적 관객수 약 93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 영화의 원작인 만화를 읽게 되었다. 큰 줄거리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게 된 <설국열차>는 책 속에 아무런 소개글이 없기에 읽는 도중에 약간의 당혹감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 탈주자, 2. 선발대, 3. 횡단. 그런데, 1부와 2부, 3부의 화풍이 다르다. 탈주자가 날카로운 선으로 그려졌다면 선발대와 횡단은 그림은 목탄이나 파스텔로 그린듯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가 선이 아닌 손으로 문질른 듯한 느낌을 준다. 원래 2부와 3부는 컬러로 그려졌지만 이 책에서는 흑백으로 처리되었다. (설국열차 1, 설국열차 2,3 - 2004년판) 물론, 내용도 1부에서는 설국열차가, 그리고 2부에는 설국열차의 선발대인 쇄빙열차가 운행된다. 그러니 그 열차에 타고 있는 주인공들이 다르지만 두 열차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장면들은 지구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자행된다. 우리에게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유명해진 만화이지만, 실은 이 작품은 1984년에 1권이 출간된다. 원작인 <설국열차>는 1970년대부터 자그 로브(시나리오)와 알렉시스(그림)으로 구상이 되었지만 1977년에 알렉시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장마르크 로셰트가 뒤를 이어 이 작품을 1984년에 출간한다. 그러니까 처음 출간된 <설국열차>는 자그 로브 (시나리오), 장마르크 로셰트 (그림)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후 장마르크 로셰트가 1990년에 죽게되자 자그로브는 뱅자맹 르그랑 (그림)과 함께 1999년에 <설국열차2>를, 2000년에는 <설국열차3>를 내놓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설국열차1>, <설국열차2,3>이 각각 출간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계기로 이 두 권의 책이 합본되어 < 설국열차>로 재발행된다. ![]() 이런 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도중에 갑자기 바뀌는 화풍때문에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1부와 2부,3부의 그림의 비교) 또한 나는 영화 <설국열차>를 보지 않았기에 이 책의 내용인 설국열차와 쇄빙열차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면, <설국열차>의 시대적 배경은 동서 냉전시대이다. " 어느날 오후, 갑자기 눈이 내렸다. 7월이었는데 얼음장 같은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생명도. 문명도 몇 시간 만에 " ( 책 속에서) 군비경쟁 속에서 기후무기가 등장하면서 지구는 갑자기 영하 87도의 동토의 땅으로 변한다. 이 무시무시한 지구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추운 겨울에도 달릴 수 있도록 고안된 초호화 유람열차. 이 설국열차는 1001량을 달고 지구를 끝없이 달린다. 멈추면 안된다. 계속 달려야만 살 수 있다. 사람들은 재앙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 (...) 1001량의 설국열차, 문명의 마지막 보루 (...) 열차는 이 세상을, 마지막 생존자들을 품에 안고 달린다. 백색 죽음에서 영원한 여행을 선고받은 자들을 " (p. 19)
열차 밖은 모든 생명이 사라졌다. 황폐한 얼음 천지의 세상. 1001량의 설국열차에는 황금칸, 식당칸, 식물칸, 육류칸 등. 이 열차 속에는 그들이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칸에서부터 부유하고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타고 있는 황금칸에 이르기까지 등급이 나뉘어져 있다.
열차 속에 존재하는 계급, 관리, 군인, 그리고 사제에 이르기까지 타고 있는 열차는 같으나, 그들이 가고자 하는 종착역은 같으나 열차칸에는 등급이 매겨져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탄 꼬리칸. 그곳은 지옥칸이다. " 지옥이 존재한다면 꼬리칸이 바로 지옥이야 ! 사방에 시체가 나뒹글고 시체 섞는 냄새가 진동하지. 아직 굶어 죽지 않는 자들은 시체라도 먹어야 해 ! " (p. 81)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다음 칸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그런 꼬리칸을 탈주한 프롤로프와 그를 구하려는 제3열차 원조기구 소속의 아들린 벨로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설국열차를 파헤치는 것이 1부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기 마련이겠지만 생명을 건 탈출 열차인 설국열차에서 벌어지는 만행은 더욱 치열하다. 설국열차의 속도가 느려지자 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꼬리칸을 떼어버리고 운행을 하자는 것.... " 어김없이 떠나야 할 여행. 모두의 목적지는 한 곳,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미 도착했으니 그 종착역의 이름은 영원이로다. " (p. 105) 2부에서는 이런 설국열차와 같은 열차가 또 하나 있다. 최첨단 기술과 초호화 설비를 갖춘 설국열차. 이 열차에서 첫 번째 정차훈련이 있었던 15년 후의 이야기가 픽그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 그래. 첫 번째 정차 훈련... 단순한 훈련이 아니었어. 제1설국열차를 포획했던거야. 내가 거기 있었다네. 멈춰선 두 열차 사이에서 기중기 운반 작업을 몇 시간에 걸쳐 진행했지. 그 당시의 선발대원들은 거의 다 그곳에 있었어 ! " (p. 179)
설국열차나 쇄빙열차나 모두 지금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을 휘두르고, 부유한 계층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간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는 비천한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세상... " 하지만 쇄빙열차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 (p. 119) 그러나 그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런 구조적 모순들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그들은 열차의 비밀을 찾아내고자 한다. 설국열차는 대서양 너머 들려오는 작은 음악 소리를 듣게 되고 그곳에는 희망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곳을 찾아간다. 그들이 들은 포레의 레퀴엠,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들이 과연 태양의 빛을 어슴프레하게나마 보기는 본 것일까? 가장 마지막 페이지의 '역경(易經)'의 '지천태'의 괘를 설명한 글을 보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 평화... 세 번째 자리의 9가 의미하는 바는 이러하니, 언덕과 이어지지 않는 평원은 없고 돌아옴이 없는 나아감은 없으며 언제나 경계하며 사는 자는 책망 받을 일이 없으니 이 같은 진리를 유감스러워하지 말지어다. 아직 네게 있는 복을 마음껏 누릴지어다. " (p. 250) ![]()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이렇게 아비규환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주에는 각 한 쌍의 생명체만이 탈 수 있었으니, 인간의 군상이 없었으니까.
![]()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오버랩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에서도 우주범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난 마지막 지구인들, 그들에게서도 설국열차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이건, 어느 때인건 간에 이런 반목과 갈등과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설국열차>가 동서냉전시대를 겨냥한 작품임을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 돌아라, 설국열차여. 돌아라, 쉬지말고. 돌아라, 회전목마처럼, 얼어붙은 우리의 지구에서 " (p. 182) ![]() 이 책은 많은 은유가 담겨 있는 책이기에 만화라고 가볍게 읽기 보다는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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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를 보았고, 이미 책으로 출간된 그래픽 노블 <설국열차>도 읽었다. Perfect~!! 주제도 인상깊었고, 세계관 역시 대단했다. 디스토피아 문학의 걸작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고. 프랑스 소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의 상당수가 인생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 여운이 남는 장면과 페이지도 많았던 것 같다.
1. 그래픽 노블의 내용을 모티브로 하여 재창조된 영화 <설국열차> - 약간의 스포일 포함^^-
만화책으로 먼저 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은 아니다. 책에서는 꼬리칸에서 탈출한 프롤로프와 그를 구하려다 함께 엮이게 된 NGO 소속의 아들린의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영화에서는 혁명군 커티스와 꼬리칸의 영적 지도자 길리엄, 그리고 에드가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열차의 앞칸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영화에서는 전투 과정을 통해서, 앞칸의 여총리를 인질로 하고 있지만, 책에서는 프롤로프와 아들린이 죄수가 되어 앞칸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 외에도 영화에서 표현된 양갱이는 책에서는 마마로 또 그외에 다양한 대상물들이 교차되고 변경되어 영화와 되었음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래픽노블에서 등장한 다양한 배경과 소재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새로운 시각과 전개를 통해 다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래픽 노블에서는 1,2,3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물론 영화의 결말과는 다르다는 걸 염두해 두고 말이다.
2. 영화 <설국열차>의 내용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설국열차 분석기가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국열차>의 내용과 그 상징물들에 대해 이해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를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건 - 단언컨대 - 사람마다 다르므로 정답을 찾는 건 무의미할 것이다.
각각의 열차칸을 지나면서 보여주는 세상의 계급과 사회구조,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가져온 열차칸 안에서의 생활과 전투씬은 우리들에게 현실과 역사의 안타까움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는데, 커티스의 독백과 윌포드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인구구조의 적정 유지, 적당한 혁명, 그리고 통제된 균형이라는 내용과 맞물려 그 암울함을 극대화 한 것 같다. 다행이도 디스토피아로 끝나는 그래픽 노블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또다른 희망, 그리고 송강호가 말한 이 문(기존 세계의 틀에서)이 아닌 저 문(외부, 새로움)을 열자는 새로움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 오버랩되는 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이 책은 지구의 상태가 점점 안좋아지자, 부유한 기업가가 우주를 향해가는 거대한 잠자리 모양의 우주선을 지어 새로운 인류의 여행을 보여주는 책인데, 아담과 이브의 장면을 책의 맨 마지막에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원통형의 자연환경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점점 옛 지구에서의 인간들이 범했던 실수들. 종교 갈등, 폭력과 강간, 카니발, 법의 제정과 권력의 생성, 혁명, 전쟁, 파벌, 그리고 생존 가능한 환경의 축소와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영화 <설국열차>가 공간속에서 열차의 이동에 따라 인류 역사의 부조리함과 죽음, 그리고 탄생을 보여주고 있다면 소설 <파피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선 안 사람들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인류 역사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같이 보게 된다면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3. 마지막으로...
영화에 소개되었던 단백질 블럭이 양갱이로 이슈가 되고, 또 원작자의 <설국열차>에 대한 극찬, 그리고 국내 관람객 700만 돌파 등은 당분간 영화 <설국열차>의 인기가 지속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영화를 통해 즐기고, 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속에 숨겨진 장치들, 그리고 작가와 감독이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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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원작을 만나다
현재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중 하나가 바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은 어느 프랑스 만화가의 작품이 원작입니다. 아직 저는 영화는 보진 않았는데 호기심이 완전 발동해서 원작부터 좀 사서 봤습니다.
이 책은 우선 만화입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구요. 이야기의 흐름으로 나누어 보자면 1부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이며 2,3부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작가가 두 명인데 1부를 한 사람이 쓰고 2부와 3부를 다른 한 사람이 썻어요.
제 1부 '탈주자'
1부 '탈주자' 부터 좀 살펴볼게요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냉전기의 양쪽 진영이 대립하던 중, 전쟁이 막 터지던 때 사용한 기상 재해 무기에 의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옵니다. 사고일 수도 있고, 무기의 위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을 수도 있습니다. 밀려드는 엄청난 추위 속에 살아 남은 사람들은 유람용으로 만들어진 초호화 열차를 타고 재난을 피하게 되지만 얼어붙은 지구에 열차가 정차할 곳은 없고, 열차는 영원히 지구를 달리게 됩니다.
무려 1001칸으로 구성된 이 설국열차는 굉장히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열차는 하나의 크고 온전한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데요, 열차 내의 사람들이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식량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정치부터 종교, 군대, 매춘까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이 열차는 하나의 고립되고 폐쇄된 공동체 공간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열차는 제일 앞 황금칸부터 뒤로갈수록 타고있는 사람들의 계층이 점차 낮아집니다. 앞쪽에는 정치인과 고위 관료, 종교인 등이 타고 있으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있는 반면에 뒤로 갈수록 점차 계층이 낮아지면서 각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채워 집니다. 이야기는 꼬리칸에서 그 앞칸으로 창문을 깨고 넘어 와서 발각되었다가 상부 지시에 의해 점차 열차 앞쪽으로 이송되는 사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립니다.
우리의 사회을 꼭닮은 열차
우선 1부 '탈주자'는 꼬리칸으로부터 나온 사내가 열차 앞쪽으로 가기위해 벌이는 활극을 보여주진 않아요. 억지로 앞으로 가기 위해서 무력을 쓰거나 그러진 않거든요. 상부의 지시에 의해서 열차 앞으로 연행되는 것이니 굳이 힘을 쓸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런 것보다 일종의 열차 앞쪽으로 이동하는 여정을 보여주면서 열차의 여기저기를 보여주면서 소개하는 장으로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이 폐쇄되어 고립된 열차 속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이 열차의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을 1부는 주된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입니다. 세상에 퍼져있는 부정과 부패, 부의 쏠림과 자원의 편중, 빈부 격차에서 오는 차별과 불공정, 정치와 종교의 기만과 왜곡, 인간의 탐욕과 타락으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은 이 곳, 마지막 남은 인류가 타고 있는 이 열차에서도 여전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세상은, 새로운 공간에 갖다 놓아도 여전히 기존의 것이 가졌던 문제를 그대로 답습 하고 있었던 겁니다.
엿같은 열차는 계속 달린다
이제 사건이 터지려 합니다. 열차의 노후화 때문인지는 모르겟으나 점차 느려지는 열차의 속도 때문에 정치인 들은 가장 마지막 꼬리칸을 떼어내려 합니다. 동시에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세력도 꼬리칸에 함께 넣고 떼어 버리려고 하죠. 꼬리칸에서 나온 사나이의 여정도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계속해서 앞쪽으로 향합니다. 가장 앞쪽의 기관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인지...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나요? 뭐, 놀랍고 기막힌 반전의 그 무엇은 아니지만 이 열차가 영원히 달릴 것이란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 엿같은 열차가 계속 달린단 말입니다.
제 2부 '선발대' : 왜곡과 은폐를 그리다
제 2부 '선발대'는 1부와는 좀 작화가 달라집니다. 분명 작가나 화가가 달라 졌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어요. 이야기는 1부에서 보여주던 설국열차와는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른 분위기의 어느 열차 속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정차 훈련이란 것이 있구요. 열차가 잠시 정차한 순간을 이용해서 선발대원이 열차 밖으로 나가 여러가지 작업을 합니다. 열차 속 사람 들은 가상현실 기기에 열광하죠. 그런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는 추첨이 사람들의 유혹합니다. 선발대원 중 동료를 죽게 했다는 누명을 쓰고 진실을 알리지 못하도록 입막음 당한 채 자살부대로 이용되는 남자는 다시 살아 돌아와 열차의 영웅이 됩니다. 제 2열차 불리는 이 열차 속 사람들은 같은 선로를 돌고 있을 또다른 설국 열차와의 충돌을 두려워하며 살지만, 그런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후반부에서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철저히 왜곡되고 은폐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열차의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작가가 던지는 한마디는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은 두툼한 장막 뒤에 진실을 감추는 경향이 있으니.'
제 3부 '횡단' : 어둠과 절망 앞에 무릎꿇어라
3부는 2부의 제 2열차를 배경으로 계속해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바다 건너 어디선가 날아오는 전파 가 잡힌 후 그 곳에 생존자가 있다고 추측하면서, 몇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열차는 바다를 건너 전파가 나오는 곳으로 가 보아야 한다는 편과 이대로 있는 것이 낫다는 편으로 나뉘게 되고, 지도부의 반란과 함께 양측 같의 무력 충돌이 발생합니다. 동시에 열차는 폭발사고로 인해 식량생산 칸을 잃게 되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열차의 지도부는 바다를 건너 전파의 근원지 로 가 보기로 결정하지만 가는 길이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결국 전파의 진원지를 확인한 후 열차와 독자 모두를 덮치는 어둠과 절망의 공포는 아주 잔인하고도 철저하게 기대와 희망을 꺾어 버립니다. 조금의 포장과 치장도 없이 아주 적나라하게 어두운 미래와 디스토피아를 그려냅니다.
원작으로 봐도 좋은 작품
굉장히 독톡한 설정과 함께 놀라운 상상력의 소산일 이 설국열차는 꼭 봉준호 감독이 아니어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사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 보면 봉준호 감독님이 따 온 것은 이 설국열차에 대한 구조와 설정인 듯 하네요. 이러한 설정과 함께 작품에서 보이는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메세지 역시 상당히 강렬합니다. 작품을 통해 통렬 하면서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래서는 안된다를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작가 입장에서는 계속 이래서는 안된다는 메세지와 함께 이따위로 하다가는 앞으로 골로 갈 거란 음울한 예언적 메세지까지 같이 날리고 있다는 점을 독자가 깨닫길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를 일입니다.
원작과 영화 둘 다 끌린다면
화제의 영화의 원작이라는 점에서도 한번 읽어볼만 합니다. 작품성도 훌륭하구요 그냥 어린 애들이나 보는 만화 따위로 치부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멋진 영화의 원작의 숨결을 한번 찾아 느껴 보는것도 꽤 멋있는 일일겁니다. 다만 아마도 영화와 원작은 설정만 공유할 뿐 다른 작품이라도 봐도 좋을 듯 하니 둘 다 보는게 낫겠다 생각이 많이 듭니다. 원작을 보고나면 영화를 보고싶고, 영화를 보고나면 원작도 보고싶고 뭐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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