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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아주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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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막말'이 있느냐고 분노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히틀러는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했고,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지난 10일 <한겨레> 토요판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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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막말'이 있느냐고 분노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히틀러는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했고,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지난 10일 <한겨레> 토요판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 중' 기사에서 미국은 "19세기 말까지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300여만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필리핀 독립전쟁이었던 필리핀-아메리카전쟁(1899~1902년)에서 100만명 웃도는 필리핀 시민을 학살했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

두세 사람이 살해 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들은 이를 집중보도하고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은 질타 받는다. 그런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자살폭탄이 터져 수십 명이 죽어도 짧게 보도될 때가 많다.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아직 진행되고 있지만, 600만 명을 학살한 것에 비하면 약하다. 미국이 자신들 학살에 대한 책임을 졌던 적이 있었는가? 없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라는 스탈린 말을 무조건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남 탓할 처지가 아니다.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 제주 4·3사건, 거창사건, 노근리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등. 그나마 이들 사건은 잘 알려진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건도 많다.

기사 관련 사진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 사계절

 

한국전쟁의 정치사회학을 시도하며 민중의 체험으로 전쟁의 의미를 캐물은 <전쟁과 사회>를 썼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쓴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독한 인간성 말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그답게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것을 '통계'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점을,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같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양심'을 가진 학자와 지성인으로서 호소한다.

"학살이나 국가폭력은 마치 암세포와 같이 그것과 전혀 무관한 구성원들의 정치·사회 의식과 도덕적 기반을 좀먹어 들어간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사회에 복귀시키고, 그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7쪽)

"학살과 국가폭력은 암세포"

그는 "'기억의 정치'는 한 국가나 사회의 헤게모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자 사회의 질서, 법과 도덕의 기본"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국가를 만드는 일과 맞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바로잡는 일이 나라를 세우는 일과 맞먹는다는 말은 국가 권력이 인간존엄성을 결코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자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위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록 '누더기'로 출발하자 군·경 출신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끝자락이었던 2008년 1월 30일에는 뉴라이트연합 등 90개 단체가 연합해 만든 '국정협'(대한민국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이 "6·25전쟁 중에 발생한 양민 희생자 사건을 왜곡하면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반국가 행위자를 두둔한 점을 바로 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국군, 경찰을 학살자로 모독한 사진 전시회 즉각 철회", "과거사위 발표 민간인 희생사건은 왜곡 날조된 엉터리다", "좌파정권 산물 과거사정리위 정리하라"고 외쳤다.

노무현 "국가가 자행한 폭력" 사과... 수구세력 "왜곡날조"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한 달 앞둔 2008년 1월 24일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된 행위를 '국가'를 대표해 사과했다. 이에 앞서 제주4·3사건에 대해서도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과 수구세력 중 누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했을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국가는 그 어떤 행위로도 국민의 존엄성을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기 학살은 인간존엄성을 훼손한 것이다. 당연히 국가 이름으로 사과해야 한다.

예로든 헌법이 1987년 개정 헌법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럼 제헌헌법을 보자.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고,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아이까지 학살... 대한민국 헌법 부정

'문경 석달동 학살사건'이란 
문경 학살 사건은 1949년 12월24일 정오, 공비 토벌 명목으로 수색 정찰 중이던 국군 제2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원 70여명이 경북 문경군 산북면 산간 마을 석달동을 지나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마을 주민 전원을 불러내 사냥 연습하듯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다. 당시 학살로 마을 주민 136명 중 어린이 9명과 여성 44명을 포함해 모두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09.27 <시사인> "어린아이도 사냥 연습하듯 학살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학살은 헌법을 무시했다. 1950년 11월 8일 전북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주민 70명은 국군에게 총과 칼로 학살당했다. 그들은 "무학이거나 국졸이었으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벽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아이들이 학살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김동춘은 경북 문경 석달동 학살 사건 추모비에 이런 시를 남겼다.

 

"산 넘어 넓은 세상 머물 곳 찾아/구천 떠도는 어매 아배 기다리며/석달 마을 산 모퉁이에/ 이름 없는 아기 혼들 울고 있네//아가들아 아가들아/ 이름 없는 아가들아/ 피 묻은 아베 조바위 쓰고/ 눈물 젖은 아베 고무신 신고 놀지/ 그 옛날 이야기 말해주렴/ 지나가는 길손이 발 멈추거든// 아가들아 아가들아 오늘 밤은/ 어매 품에 안겨 아베 등에 업혀/ 백토로 사라지기 전 그 옛날처럼/ 좋은 세상 꿈꾸며 잠들어라 - <이름 없는 아기 혼들>'석달동 양민 학살에 때 참살된 아기들을 생각하며'"(129쪽)

기사 관련 사진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 사진들. 위 왼쪽 차량적재함에 '논산읍' 글자가 보인다. 대전형무소 정치범들이 끌어내려지고 있다. 위 오른쪽 길게 파놓은 구덩이 둔덕 위 재소자들을 엎드리게 하고 등 뒤에서 헌병들이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 민간 청년단원들이 구덩이의 시신들을 정리하고 있다.
ⓒ 사계절

 


아이들을 학살한 것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이들을 학살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 군경을 모독한 것이 되는가. 오히려 아이들을 학살한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 군과 경찰을 모독한 일이다.

김동춘은 "과거 청산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죽음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삶은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그것은 과거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생명의 가능성을 묻는다"고 했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제대로 조사하고, 사과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중간에는 한국전쟁기 학살 현장과 유골 발굴을 담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 7월-8월 대구 형무소 재소자와 경산·청도 지역보도연맹원 집단학살사건, 1950영 7월 청주경찰서와 청주형무소 등에 구금된 청주·청원 지역보도연맹원 학살사건, 1951년 2-3월 경남 산청 외공리 학살사건 등등이다.

죽은 자보다 산 자가 더 고통스러웠던 지난 60년

특히 1950년 6월 28일경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최소 1800여 명 이상의 보도연맹원과 재소자 등이 헌병대와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숨진 대전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사건을 담은 사진 3장에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이게 대한민국 군과 경찰이 자행한 학살이었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도 빨갱이였고, 아니 죽은 이보다 더한 '산송장'이었다. 

"한국전쟁기에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폭도' 혹은 '빨갱이'였고, 살아남은 가족도 '빨갱이'였다. 지난 60여년 동안 피학살자들의 가족들과 기적적인 생존자들은 '산송장'이었다. 우리 사회는 산송장이 이웃에 널려 있는데 그 존재를 외면하면서 살고 있다. 도대체 그런 국가나 사회는 어떤 곳일까?"(59쪽)

김동춘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좌익 관련 피학살자들과 가족들을 세 번이나 죽였다고 주장한다. "학살 자체가 첫 번째이고, 1960년 당시 진상규명 요구를 폭력으로 틀어막은 것이 두 번째이며 그 유가족과 자식들을 모두 '빨갱이'로 취급하여 1980년대까지 연좌제로 묶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세 번째"라고. 이 말 앞에서 "난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학살

이어진 그의 글 "특히 세 번째 학살은 정부가 단독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언론, 사회, 이웃 사람들의 협력과 공모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침묵했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은 빨갱이였으니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자신의 묵인과 방관을 정당화했다"는 말에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는 군경과 수구기득권만 학살에 책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책임에 나 자신도 포함됨을 비로소 알았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제주도의 서늘한 풍광 아래에서 검은 핏자국을 남기며 사라져간 사람들, 토벌작전·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하게 살해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반추"하고 "국가와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억압되어 있던 학살의 비밀을 끄집어내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고자"한다. 그러기에 불편하다. 왜 난 그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수구세력처럼 "전쟁통에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인민군들도 양민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과 비통한 슬픔을 남긴 전쟁의 실체와 진실"을 밝힐 수 있고, "원통한 죽음은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므로.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지난 60년을 되풀이 할 것이다. 학살을 제대로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지금도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아주 부드럽게.

"국가권력, 민주화 이후 부드러운 학살 자행"

"나는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안 기관의 위법과 권력 남용, 도시 재개발 철거 현장에 난무하는 폭력과 노동 현장의 구사대 폭력, 빨갱이라고 덧칠을 해서 특정인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나는 학살은 전쟁기에 나타나는 매우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폭력으로 정치적 저항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하거나 제거하는 권력 행사의 한 특수한 형태라고 보았다."(30쪽)

쌍용자동차 노동자 23명은 더 이상 살아있는 자들과 호흡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 최병승·천의봉씨는 290여일 동안 저 높은 하늘에서 싸웠다. 갑을 관계는 또 어떤가?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김동춘 표현처럼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김동춘이 던지는 마지막 호소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기억하자.

"새롭게 발굴되고 해석된 역사는 죽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구조의 기원을 고발해주는 문서다. 이 성과가 단순히 피해 당사자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 시민의 것이 되고 또 인류의 것이 될 때, 우리는 인권과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446쪽)

k****e 2013.08.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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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참혹함, 떨쳐낼 수 없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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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다. 전쟁을 쉬고 있는 중이다. ing다. 그로 인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어져 있는 허리는 언제 접붙여 질지 기약도 없다. 대통령께서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희대의 명문장을 말씀하셨지만 그 “대박”이 언제 날지는 부연해 주시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횡행하는 나라다. 참여정부 시절 국보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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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다. 전쟁을 쉬고 있는 중이다. ing다. 그로 인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어져 있는 허리는 언제 접붙여 질지 기약도 없다. 대통령께서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희대의 명문장을 말씀하셨지만 그 “대박”이 언제 날지는 부연해 주시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횡행하는 나라다. 참여정부 시절 국보법을 철폐하려고 했지만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집권당에서도 밀어붙이지 못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북한, 종북, 빨갱이, 좌익 이라는 말이 주홍글씨처럼 찍혀 버리는 곳이다. 북한이라는 말이 붙으면 겁부터 집어먹는 곳이다. 한국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오랜 세월 운동권 진영 중 일부는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는 설을 신봉했다. 그래서 현대 한국사의 거의 모든 부분을 무시하고 일부 외국의 한국전쟁 전문가의 수정주의 같은 주장을 신봉했다. 휴전 후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구)소련, 중국(당시 중공), 미국의 기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한국전쟁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해제된 기밀보다 아직 해제되지 않은 기밀이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한국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땅에서 벌어졌지만 국제전이었던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이 국제전의 당사국에 더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돈도 되지 않고 큰 성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연구에 뛰어드는 학자는 많지 않다. 그것도 러시아, 중국, 미국의 기록물에 접근하는 것에서부터 당시 각 국가의 군대 편제와 구조, 시대적 상황과 정치·경제·지리·문화적 차이까지 감안해야 하고, 번역을 해야 한다. 군사 기록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한 줄에서 맥락을 읽어야 하는 시각도 있어야 한다. 이 일을 누가 하나? 국가에서 발 벗고 나서서 연구비를 지원하고 국가 대 국가 간의 협력으로 개인 연구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든지 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기억의 문제다.

 

“여당과 언론에서 과거사위원회들의 활동을 말할 때는 거의 부정 일변도였기 때문에 상당수 국민들은 오직 할 일 없이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조직, 운동권 실업자들 먹여 살리자고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는 조직 정도로 알고 있고, 시작도 끝도 성과도 한계도 알 수 없고 정치적 의도로 만든 구 민주 정권의 유물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p.9)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위원회가 여러모로 파행을 겪게 되었는데” (p.245)

 

한국의 역사 중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반민특위 실패>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는 실패했다. 반민특위 위원들이 일을 제대로 못했거나 돈이 없었거나 반민족행위자가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공격으로 반민특위는 와해되었고 실패했다. 우리 힘으로 우리 민족과 국가, 국민을 배신한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단하지 못했다. 반민족행위를 했던 자, 그것에 영합했던 자, 그런 놈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자들로 인해 우리 손으로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이 역사는 지금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게 일본에 영합했던 자들이 해방 후 들어선 미군정에 영합하고 이후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다시 기득권을 잡았다. 오랜 군사독재 정권은 그들의 안위를 보호하고 부와 명예와 힘을 안겨 줬다. 가진 재산을 다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고, 온 가족이 조선 땅을 떠나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후손들은 해방 된 조국에서 끔찍한 삶을 이제까지 이어가고 있고, 기회주의자로 평생을 산 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자기 조상이 친일파로 정확하게 밝혀졌음에도 국가가 환수해 간 조상의 땅을 반환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민주정부 10년, 어린 나이였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두 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두 분이 대통령인 것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두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었다. 해방 후, 휴전 후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지 못한 과오를 인정하고 일부 사죄하는 모습이 좋았다. 이름만으로도 긴 여러 가지 ‘과거가위원회’가 만들어져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수십 년 전 실패한 반민특위가 비로소 21세기가 되어서야 부활 해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는 줄 알고 좋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돌아보니 그렇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에 관련된 책을 쓰고 직접 과거사위원회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드문 학자다. 그의 전작 「전쟁과 사회」를 읽으면서 ‘어? 한국에도 한국전쟁 전문가가 있네?’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책은 여러 권 나왔지만 학술적이면서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은 많지 않았다. 박명림교수와 서중석교수의 책은 일단 제목만으로도 갑갑하다. 책을 펼치면 더 답답하고. 김동춘의 책은 이전까지 한국전쟁에 관한 한 가장 저명한 책으로 생각되었던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견줄 정도였다. 한국인의 눈에서 본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 특히 그 책에서는 한 챕터로 다루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김동춘의 일기? 내지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실패하고 유야무야 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취지, 과정과 한계를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책이다.

 

 

“제도적 청산보다는 인적 청산에 강조점을 두는 한국 사회의 그간의 관행은 극복되어야 한다. 인적 청산은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고, 제도적 청산은 과거의 공권력 범죄를 가능케 했던 법·제도 등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도덕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대중들에게 가시화할 수 있는 인적 청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p.203)

“진실화해위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법적으로 강력한 조사 권한이 확보되어야 하며, 자료를 소지한 행정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p.256)

 

세월호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제대로 활동 하지 못하고 있다. 몇 달 후면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은 지 1년이 되는데, 아무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십 년 전의 반민특위와 민주정부 시절의 각종 과거사위원회들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위원회의 활동에 제약이 있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권한 자체에 있었다. 강력한 조사 권한조차 없었으니, 한국전쟁 때 쓰던 칼빈 소총을 들고 지금 전쟁이 일어난 곳에 뛰어든 것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정권을 바뀌었지만 군과 경찰의 논리는 변하지 않았고 각종 정보당국의 협조는 참여정부 말엽에 이르면서 노골적으로 비협조적이었다고 한다. 강력한 조사 권한과 수사 권한까지 더해졌다면 뭘 해도 했겠지. 그래서 세월호 유족들이 그렇게 조사위원회의 조사권과 수사권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양쪽 날개를 다 잃은 상태니 역사는 역시 반복되는 건가 보다.

일반 국민들과 유족들이 보는 관점의 차이도 컸다고 한다. 단순히 관련자 몇 명 처벌하고 국가가 배·보상을 하는 것이 마치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명예가 복권되며 그로 인해 수십 년 고통을 받아 온 유족들의 삶이 회복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괴리를 잘 이용하는 것이 또 수구기회주의기득권세력이다. “봐라~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지겹다고 한다. 뭘 더 얼마나 국가가 사과를 하고 돈을 줘야 하는 것이냐고!” 씨발.

 

 

사건 이후 목격자의 산 체험을 침묵시킨 문화적 폭력은 유대인 학살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했다.” (p.62)

“난생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증언을 하는 그들은 대단한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유족들의 말문이 트이게 하는 일” (p.112)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대다수의 죄목은 좌익, 간첩, 빨갱이 혹은 그들의 협력자였다는 것이다. 이거 말고는 다른 게 없다. 쌀 주고 밀가루 준다고 가입시킨 보도연맹이 대표적인 사례다. 너나 할 거 없이 가입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족쇄가 되어 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군용트럭에 싣고 와 야산이나 깊은 계곡에서 그대로 총살해 버렸다. 이승만의 하야와 4.19이후 거창의 유족들이 대표적으로 국가에 대한 항의를 하고 그들 나름대로 조직을 만들어 오랜 기간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 “쟤네 아빠, 빨갱이래. 그래서 죽었대.”라는 말이 들리면 마을을 떠나야 했다. 제대로 취직도 할 수 없고, 평생을 빨갱이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다. 혹시 출세해 번듯한 사회인으로 산다 할지라도 본인의 가족사는 철저히 함구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죽은 듯이.

모두가 공범이다. 누군가 나서서 떠들어 주고, 식자들이 나서서 진실을 밝혀주고, 국가가 나서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하는 일은 정상적인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침묵의 문화적 폭력에 동조했다. 나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죽어지낸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조사 위원들에게는 고통이었지만(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조사 위원도 있었다고 한다) 유족들에게는 해방감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가족과 친지들도 쉬쉬 하던 문제를 이제야 말할 수 있다는 억울함과 시원함.

 

 

“조사관이 그 분야를 처음부터 공부하면서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의 학계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를 매일매일 뼈저리게 느꼈다.” (p.299)

“잘못된 역사를 의도적으로 묻어버리고, 체험자들의 체험을 왜곡하고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p.47)

 

앞서 언급했듯이 제대로 된 조사권이 없던 위원회의 활동은 활발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저자도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하듯이 결국 위원회 활동의 가장 큰 의의는 기록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유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전하고 교육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처럼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결과가 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려 학교에서 교육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부분을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위원회 설립 이전 이런 문제들까지 고려했다면 이후 세대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객관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국전쟁, 특히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은 한국전쟁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상태다. 없어도 너무 없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에 의한 폭격을 주제로 한 연구로 유명해진 김태우의 책「폭격」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저자가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미공군역사연구실(AFHRA)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 약 10만여 장을 수집·분석했고, 당대의 러시아, 중국, 남북한 문서와의 교차분석을 통해 전쟁기 유엔 측과 공산 측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했다. 그 책을 보면 전쟁 당시 미공군 조종사의 일일임무보고서 단위의 하급문서까지 세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한 학자의 노고를 그대로 느끼면서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런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 누가 하나? 한국전쟁 연구를.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고,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우리 후손들의 목을 죄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어릴 적에 들었던 ‘골로 간다’라는 말에는 우리 현대사의 비밀이 담겨 있다.” (p.54)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골로 간다’라는 말.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쓴다. TV에서도 숱하게 쓰인다. 국군과 헌병, 아군인 미군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은 ‘골로 끌려갔다.’ 골에서 죽었다. 이 침묵의 공포는 답습된다. 실제로 마을에서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옆 동네, 옆 옆 동네, 옆 옆 옆 동네도 소문은 알았을 것이다. ‘거기 거기 00골에서 또 30명이 총살당했대’, ‘아이구 어쩌나~’ 부모와 아줌마, 아저씨가 하는 수군거림을 들었을 것이다. 00골. 그들에게 ‘골로 간다’라는 말은 가공할만한 폭력이다.

 

 

“권력은 확실히 조작과 망각과 은폐를 먹고 산다. 과거 국가폭력의 은폐는 오늘과 미래의 부정의와 권력 남용, 결국 대중들의 비인간화와 비참함의 씨앗이 된다.” (p.394)

“권력은 자신의 범죄를, 질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다.” (p.434)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이란 바로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밀란 쿤데라 (p.437)

l****h 2015.02.1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기억의 전쟁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기억의 전쟁" 내용보기
전쟁은 죽음과 결합되어 있다. 단순히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은 바   로 죽음으로 만들어져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자연과   의 투쟁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들끼리의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개개인의 투쟁은   집단으로 사회로 그리고 국가로 규모를 확대하면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리고 그 과정에서도 자연과의 투쟁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기억의 전쟁" 내용보기

  전쟁은 죽음과 결합되어 있다. 단순히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은 바

 

로 죽음으로 만들어져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자연과

 

의 투쟁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들끼리의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개개인의 투쟁은

 

집단으로 사회로 그리고 국가로 규모를 확대하면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리고 그 과정에서도 자연과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인류는 그렇게 자신

 

들의 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공간 자체와 싸우는 무엇인가 이율배반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이고 그런 인간의 역사이기에 전쟁은 너무나 가까운

 

이야기다.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의 절반은 바로 그 전쟁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절

 

반의 절반은 전쟁까지 가지도 않고 한쪽이 일방적인 우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이

 

루어지는 지배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는 인

 

류의 역사이기에 전쟁은 익숙하다 못해서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비극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전쟁 속에

 

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게 우리의 바로 옆에

 

서 숨 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전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 그 전쟁의 지배

 

를 받고 살아간다. 이 책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

 

다.


  전쟁은 죽음을 동반한다. 아니 전쟁은 바로 죽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의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터라는 것을 없애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

 

고 있다. 이제는 어느 한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를 모두 전

 

쟁터로 만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전장이 확대된 전쟁은 결국은 과거보

 

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현대의 전쟁의 상처를

 

우리는 바로 옆에서 보고 있고,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우리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그 모든 비극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할 것을 강요 받고 있

 

기 때문이다. 그 전쟁과 전장이 따로 없는 전쟁의 상황이 만들어낸 학살의 기억은 공

 

포가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이 책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

 

다는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총칼을 들고 하는 전쟁이 아닌 잊혀진 혹은 잊으

 

라 강요 받은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애써 누

 

군가는 잊으려 했고, 누군가는 잊으라 하고, 누군가는 외면한 전쟁과 학살의 이야기

 

를 이 책은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너무나 아프게 우리의 마음에 남는

 

다. 잊지 않아야 한다는 그 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아니 20세기의 전쟁은 학살을 동반한다. 과거의 전쟁에도 물론 학살

 

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 학살과 지금의 학살이 다른 것은 전쟁이 끝났다고 혹은 우리

 

가 생각하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학살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다. 단순히 목숨을 끊는 학살에서, 침묵을 강요 받고, 진실에 눈을 감는 것에서 시작

 

되는 정신의 학살을 우리는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이 책은 이야기 한다.

 

일어났음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야기 되는 그 많은 일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그 학

 

살의 기억과 그 학살을 자행한 이들을 기억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

 

부터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과거

 

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거는 모두 덮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만들고, 그 잘못된 과거에서

 

이익을 얻은 이들이 그 과거를 덮자고 말하고, 여전히 정신적인 학살을 저지르는 우리

 

의 경우에는 과거를 그대로 덮어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학살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잊어버리면 끝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지금을 만든 그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정신적인 학살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그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기억을 도와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d 2013.1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