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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 스쿨 사건 이후 아버지는 큰 비극은 필연적으로 천천히 펼쳐지고, 돌연한 폭력과 비탄에 휩싸여 절정에 다다르며, 그 치명적인 힘을 버텨낸 모든 이의 뇌리에 영원히 남게 된다고 믿었다. 물론 그 충격을 버텨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재판이 벌어질 당시 발행된 신문 사진 속에 아직도 갇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채텀 스쿨 교장실 책상에 놓여 있던 사진. 마치 신이 특별한 재능을 부여해준 것만 같은 그런 작가가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 말이다. 토마스 H. 쿡은, 만약 작가로 태어나게 된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만큼 유려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가슴을 건드리는 단어들은, 행간에 숨겨진 의미들로 인해 처연하고 슬프다. 그가 발표했던 작품들의 장르가 모두 미스터리, 범죄 소설 분야라는 걸 감안한다면, 이러한 감상이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느꼈겠지만, 소재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것들로 문장과 단락을 만들어서 빚어내는 분위기 자체가 더 매혹적이라는 말이다. 분명 살인이 일어나고,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극적인 긴장감이 충분히 조성이 되는데,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독자들은 사건보다는 인물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무엇보다 캐릭터의 내면적인 부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탁월하다. 세상을 떠돌다 채텀 스쿨이라는 보수적인 공간으로 오게 된 천성이 자유로운 여자, 채닝 선생님. 가족과 자신을 속박하고 얽매는 것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배를 만드는 남자, 리드 선생님. 따분하고 활기 없는 아버지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했던 아이, 헨리. 채텀 스쿨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이라, 졸업 후에도 부모가 갈고 닦은 길을 묵묵히 살아간다. 거창하게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하거나, 열정을 불태우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고, 그저 안락하고, 평화롭게. 정해진 코스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이다. 채텀 스쿨의 교장이었던 헨리의 아버지에게는 당연하고 바람직한 삶이었던 그것이 어린 헨리에게는 늘 못마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아프리카에서 마치 바람처럼 채닝 선생님이 그의 삶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단 한번도, 어느 선생님한테, 그 무엇으로도 칭찬받아본 적 없던 이 소년은 그녀로부터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게 된다. 네 그림엔 감정이 듬뿍 담겨 있다고. 평범한 풍경밖에 없지만, 넌 그림에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불어넣었다고. 그 동안은 다들 자신을 대할때 교장의 아들이기에 함부로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치켜세워준 적도 없었다. 헨리는 자유라는 동경과 자신이 가진 특별함을 알아봐주는 채닝 선생님에게 매혹된다. "스케치북을 가져오지 않았구나, 헨리."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저...."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그리라고 했잖니." 채닝 선생님이 말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훗날 내가 파슨스 씨에게 고스란히 들려줘야 했던 말을 꺼냈다. "미술은 사랑이야.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왜 그렇지 않겠는가. 채텀 스쿨의 아이들 모두와 교장인 그의 아버지가 바라는 모범 시민적인 올바른 삶은 그에겐 활력도 없고, 창의성도 전혀 없는 구태의연한 삶이었다. 그런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녀가 자신을 알아봐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 속에 등장하는 리드 선생님이 있다. 채닝 선생님과 리드 선생님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질투심에 그를 경계하기도 했었지만.. 그와 함께 배를 만드는 시간이 지속될 수록 헨리는 점차 두 사람의 사랑을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어서 빨리 배가 완성되어서 두 사람이 서로를 구속하는 삶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헨리의 아버지는 항상 해야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 등 규칙만을 강조했지만, 리드 선생님은 그에게 삶을 선택하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인생이나 진로나 사랑에 대해서 결정을 할 때는, 절대 성급히 결정하지 말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플롯은 사실 매우 단순하다. 제목 그대로 '채텀 스쿨에서 벌어진 불륜사건'과 그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 대한 기억이 스토리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치정극일까? 하지만 토마스 H. 쿡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게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사건의 한 복판에 있었던 소년 헨리와 수 십 년이 지나도록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고 혼자 늙어온 변호사 헨리. 소년이었던 헨리와 노인이 된 헨리는 각각의 시점으로, 당시의 시간 속에서 한 조각씩 퍼즐을 맞추듯 우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순간은 자주 반복이 되면서 극에 긴장감을 더해주고, 대체 당시에 채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증은 서서히 증폭된다. 물위로 돌을 던져 잔잔히 파동이 이는 듯한 기분이랄까. 서정적인 묘사와 의미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적확한 표현들은 잔잔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그 어떤 파도보다 더한 감정의 물결을 선사한다. 채닝 선생님과 리드 선생님의 불륜 사건은 전체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유부남이 아이와 부인을 놔두고 바람을 피운다는 닳고 닳은 설정과 신성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치정극이라는 도덕적인 문제 제기에 대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깔끔하고 절제되어, 조용하게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첫사랑, 옛 추억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헨리는 그렇게 담담하고 나직하게,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웠던 그 과거를 현재로 불러온다. 오래된 상자를 열어 밑바닥에 넣어둔 낡은 사진을 꺼내어 보듯이 그렇게.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종종 더 중요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별장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한 편의 요란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 머릿속과 달리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어떤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별장의 먼지 덮인 창유리가 심하게 덜거덕거렸다. 앙상한 가지들이 유리를 긁어내며 내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뒷문으로 나갔다>, < 강철 난간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피처럼 붉은 하늘에 우뚝 솟은 불구의 실루엣> 이런 문장들은 단어 자체보다는 그 행간으로, 말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만들어내는 분위기에서 보여지는 침묵으로 이야기를 한다. 이 어둡고 신비로운 작품에 내재된 것은 토마스 H. 쿡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꼭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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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토머스 H. 쿡(Thoma H. Cook)"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채텀 스쿨 어페어(Chatham School Affair)"입니다. 이 작품은 1997년 "에드거 상"을 수상하고 "배리 상"과 "매커비티 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었습니다. 명실공히 이 작품 "채텀 스쿨 어페어"는 작가 "토마스 H. 쿡"의 대표작이자 걸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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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토머스 쿡 <채텀 스쿨 어페어> ‘어페어(affair)'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일‘, ’용무‘, ’사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는 커다란 사건을 뜻할 때도 있다. 동시에, 자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어페어’에는 ‘정사(情事)’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때의 ‘어페어’는 혼외정사, 부적절한 관계를 의미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까 ‘채텀 스쿨 어페어’를 번역하면 ‘채텀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또는 ‘채텀 학교에서 일어난 정사’가 된다. 하긴 작은 동네에서 이런 정사가 생기면 그것은 사건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토머스 쿡의 1996년 작품 <채텀 스쿨 어페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부적절한 관계가 생겼고, 그것이 심각한 사건으로 발전한 것이다. 작은 마을에 나타난 한 여교사 작품의 무대는 1926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채텀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였고, 작은 마을이니만큼 그만큼 보수적이기도 한 무대다. 주인공은 채텀 스쿨에 다니는 한 남학생이다. 이 마을로 ‘채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혼의 젊은 여교사가 부임해온다. 채닝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전세계를 여행했고,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채텀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담당과목은 미술. 주인공인 남학생도 그녀에게서 미술을 배우게 된다. 작은 마을은 어느정도 폐쇄적이기 마련이다. 1920년대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마을에 나타난 채닝도 주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 관심은 좋은 쪽일 수도 있고 짓궂은 쪽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관심이 이성적인 호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 호감이 진전된다면 ‘사건’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채텀 스쿨 어페어>에서 그 대상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한 남자교사다. 문제는 그 교사가 아내와 자식을 가진 유부남이라는 것. 그런데도 이 두 남녀는 서로에게 빠져들고 그것은 잔인한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인공인 남학생의 인생까지 바꾸어놓게 된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미국 마을의 모습 작가는 1920년대 미국 작은 마을의 모습도 함께 그리고 있다. 작품에서 묘사하는 채텀은 전형적인 미국의 작은 마을이다. 상점들이 늘어선 도로 하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 그곳에는 만물상이 있고 약국이 있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절이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국 안쪽 방에 모여서 불법 증류주를 마시곤 한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한가로운 마을이다. 그곳의 주민들도 한가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창하게 로맨틱한 삶은 꿈꾸지도 않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열정을 불태우지도 못했다. 그저 한없이 따분한 일에 집착하고, 거기에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이런 삶은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하나의 코스를 따라야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따분한 삶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당연한 삶에 한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처럼. 작가가 묘사하는 1920년대의 풍경도 흥미롭지만 그보다는 젊은 여교사와 주인공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이 ‘정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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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밤을 꼬박 지새며 책을 읽었다. 소설 속 채닝 선생님이 그저 받아들이는 운명의 시간들이 잔혹하여서 멈출 수가 없었고, 이를 근거리에서 바라보며 자신의 농후한 어리석음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는 헨리의 어리숙함이 아슬아슬해서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런 것을 황홀한 독서라고 불러야 할까. 간혹 소름이 돋고, 한숨이 터지고, 온 정신을 뒤척거리면서 책을 읽었다. “... 나는 내 방식대로 딸을 교육시키기로 했다. 어떤 목적으로? 나는 내 딸이 특정 도시나 나라의 제한적 영향과 관습, 이념 그리고 혈통의 그릇된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를 바랐다.” (p.62) 나의 아버지는 채텀 스쿨이라는 기숙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다. 여자 학생은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고지식한 분위기의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아들로 학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어느날 이십 대의 여성 미술 교사인 채닝 선생님이 나타난다. 나는 채닝 선생님의 아버지가 쓴 《창밖 풍경》이란 책 그리고 이를 구현한 모습의 채닝 선생님을 보면서 내부에 있는 자유에로의 갈망의 구체화를 경험한다. “나는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사라 생각을 다시 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후로는 사라 생각을 많이 했따. 그날 밤 내가 사라의 방에 조금만 더 머물렀다면 검은 연못 사건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떨리는 손으로 사라의 잠옷 리본을 천천히 풀었더라면, 그렇게 첫 경험의 힘을 우리가 알게 되었더라면 그리고 그 후로도 지속적인 사랑을 나눴더라면. 그날 밤 사라가 나를 받아주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 후로 나는 사라만을 쫓아다녔을 것이다. 보트 창고나 밀포드 별장을 습관처럼 드나드는 대신. 가까이에서 원 없이 사랑을 체험했을 것이고, 봄을 잔인한 속임수로, 또 겨울을 끔찍한 진실로 여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p.149) 그 사이 채닝 선생님은 학교에서 만난 리드 선생님과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나는 채닝 선생님이 있는 밀포드 별장 그리고 리드 선생님의 보트 창고를 오고가며 두 사람 모두와 친하게 지낸다. 다만 문제인 것인 리드 선생님에게는 어린 딸과 리드 부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지만, 아직 청소년인 1인칭 주인공 헨리의 시야 안에서 확인 가능한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 “저분들은 비겁한 게 아니야, 헨리.” 사라의 음성에서 단호함이 묻어났다. “그럼 대체 왜 훌훌 털고 여길 뜨지 못하는 거지?”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먼 훗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라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열의를 다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인생의 덧없음과 필요의 깊이와 격정의 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영광을 안겨줄 유일한 자격은 선량함이다. 그리고 선량함은 우리가 아닌 다른 것들을 향한 불가해한 헌신 속에 있다.』 (p.261) 독자의 입장에서 놀라운 것은 결국 도래할 파국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의 정도가 하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십대인 나의 시선이 갖는 어리숙함, 그 어리숙함이 만드는 절묘한 미진함이 이유일 수도 있겠고, 오래된 윤리와 더욱 오래된 욕망 사이에서 오가는 묵직한 호흡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하나의 여린 몸 안으로 빨아들이고 그대로 폭발시켜 버린 채팅 선생님이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 나는 시선을 채닝 선생님이 그린 아버지의 초상화 쪽으로 돌렸다. 멀리서 매혹적으로 어른거리는 파란 호수를 바라보는 그림 속 아버지는 당시 내가 무척이나 경멸했던 교장이 아닌, 가슴속에 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들뜬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채닝 선생님은 단순히 아버지를 그린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자신의 심정을 투영한 것이었다. 어쩌면 모순된 사랑에 고통 받고 격정과 권태, 황홀과 절망, 우리가 꿈꾸는 삶과 감당할 수 없는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 모두의 심정을 그림에 담은 것인지도 몰랐다.” (p.340) 소설에는 세 번 ‘어차피 인생이란 어리석음의 변두리에 걸쳐진 것이기에.’ 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리드의 부인이 죽고, 사라 도일이 죽었고, 리드 선생님이 죽었으며, 채닝 선생님 또한 죽었다. 이 많은 죽음의 트리거일 수 있는 나의 마지막 행동은 나에게만 남아 살아 있고, 리드 가족의 어린 딸 메리는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살아 남았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이 두 사람이 채운다. 이 모든 것을 흡수한 아름다운 밤에... 토마스 H. 쿡 Thomas H. Cook / 최필원 역 / 채텀 스쿨 어페어 (The Chatham School Affair) / 알에이치코리아 / 346쪽 / 2013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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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이루어진 그 일련의 증거가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가공할 거짓말이 돼버렸다. -p176
소년은 답답했다. 규칙과 질서만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학교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피도 잡을 수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채텀이 싫고 훌쩍 떠나고만 싶었으나 그의 길은 정해져 있을 터였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가 지금 그런 것처럼 소년의 삶도 채텀에서 시작되어 채텀에서 끝날 것이다. 어쩌면 소년을 못 견디게 만들었던 것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비난하고 멸시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언젠가는 자신의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아니었을까. 그 곳에 그녀가 찾아든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새장 속의 새처럼 이 곳 채텀에서 따분한 삶을 이어갈 엘리자베스 채닝이. 자기계발서가 아닌데도 색연필을 들고 밑줄 그어가며 읽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그 어떤 고전에 등장하는 문장보다 가슴에 깊이 들어와 그 의미를 자꾸만 곱씹어보게 만드는 작품. [붉은 낙엽] 이후 토머스 H. 쿡은 내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몇 장 남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그 끝을 향해 쉴 새 없이 질주하게 만드는. 결국에는 다 읽어낸 책을 옆에 끼고 모두 잠든 밤 거실 한 가운데를 서성이게 만드는. 그는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소년 헨리는 즐거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그 동안의 방황을 끝낼 목표가 생겼으니까. 그가 원한 것은 자유로운 삶이었다. 엘리자베스 채닝의 아버지가 그의 딸에게 주고 싶었던 의미 있는 인생. 그리하여 채닝 선생이 얻을 수 있었던 무엇에도 구속당하지 않았던 삶. 미술에서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소년은 그녀의 조언이 기뻤고 그리하여 소년의 동경은 시작되었다. 그의 동경에 한층 불을 지펴준 것은 리드 선생이었다. 그는 질서와 규칙이 아닌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과 선택의 신중함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해준 유일한 존재였다. 아버지도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런 리드 선생과 채닝 선생이 서로를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헨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당연하다 여겼으리라. 그들은 헨리에게 있어 자유의 상징, 앞으로 그가 누리게 될 미래의 희망을 의미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그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곧 자신이 이제 막 품기 시작한 밝은 미래의 파멸을 의미했으므로. 헨리의 소년시절과 노년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닥칠 비극 속으로 우리를 조심스레 이끈다.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그 사건으로 그의 소년시절이 끝나게 될 것임을. 그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인물의 내면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불륜사건은 작가의 손에서 단순한 소동이 아닌 핏빛 비극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게, 절제된 언어의 감각 속에서, 그럼에도 가슴을 뒤흔드는 문장들로. 그의 작품은 범죄소설임에도 ‘범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원불멸할 것 같은 영웅도, 극악하기만한 흉포한 범죄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안에는 벌레가 한 마리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어가 사랑하는 상대를 의심하게 만들고(붉은 낙엽), 판단 착오로 인해 비극을 만들어낼 단어를 속삭이는 벌레가. 그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너져가는 사람의 심리와 그로 인해 변화해가는 분위기를 깊이 있게 묘사한다는 데 있다. 마치 소설의 표지를 한 철학책 같기도 하다. 리드 선생은 소년 헨리에게 선택의 신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헨리의 앞날을 예견한 것이었을까. 일이 벌어지고 모든 진실이 알려졌을 때는 이미 끝났다. 돌이킬 수 없다. 그로 인한 죄책감과 마지막 남은 진실은 오롯이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가 되었다. 바람처럼, 비처럼 때때로 그의 귓가를 울리는 채닝 선생의, 리드 선생의, 아버지의 음성. 그리고 떠오르는 검은 연못에서의 기억. 그 모든 것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 귓가에도 내 망막에도 선명히 다가왔다. [붉은 낙엽] 이후에도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나는 오늘 또 중얼거린다. [채텀 스쿨 어페어]같은 작품을 또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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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생이란 어리석음의 변두리에 걸쳐진 것이기에" - P.66 -
"사람은 매사에 조심해야 해. 그러면 악도 겁을 내고 물러나버리니까." 새학년이 시작되면 전교생을 모아놓고 헨리의 아버지가 했다는 그 말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이 아니라 열다섯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헨리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자리잡았던 채닝 선생님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체험했던 신비하리만큼 풍요로왔던 유년시절의 격정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이 학교에 와서야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채텀은 신세계로 비쳤을 것이다. 당시의 호기심은 훗날 검은 연못에서 일어난 비극과 어떻게 연결될지는 꿈에도 몰랐겠지만 채닝 선생님의 내면에는 무엇인지 모를 불길하고 위험스런 파멸의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는 주위의 증언들은 시간은 그냥 흐를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어리석고 무분별한 만용일지도 모른다는 회한으로 남는다.
경외심에 찬 순진한 마음은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헨리가 채닝 선생님에게 매료된 것은 사춘기 소년의 이성적 호기심도 아니요, 제한적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가르침의 영향때문이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교육방침은 일탈을 자제하고 품위를 강요받으며 창의를 억누르고 노예적 숭배와 도덕률에 지배받아야 했던 규칙이라는 틀이었다. 그에 반해 한 없이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이 채닝 선생님을 통해 비로소 눈뜨게 되었으니 그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노년에 접어들어 그 시절을 돌아보면 감성이 이성을 가리고 자아를 정립하지 못한 질풍노도의 시절이었나 보다. 한 편으로는 아름다웠지만 슬프도록 잔인한 진실이 감추어진 검은 연못에서의 비극으로 인해 안타까운 파편처럼 산산조각날 운명이었다.
헨리의 자유에 대한 동경이 경멸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계기는 순수한 애정이 인습이라는 틀에 저항받고 좌절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릴랜드 리드 선생님과 채닝 선생님과의 관계, 그 사이를 연결하는 헨리까지 세 사람의 관계가 파멸로 치닫게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오해에서 비롯되고 만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아니 오해라고 믿고 싶어진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나서도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의 모호함에 머리 속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런만큼 결코 만만하게 읽혀지지 않는 문장의 내공은 초반을 어떻게 끈기를 가지고 돌파하느냐가 중요하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울타리를 과감히 허물고 이웃사촌처럼 지내는 토머스 H. 쿡의 솜씨에는 이번에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진실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구조적 배치와 문학적 은유가 듬뿍 담긴 이야기의 힘에서 장르문학을 저급하다고 편하하는 독자들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고급스러운 취향의 절정을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 사람이라는 깊은 우물에 또아릴 틀고 있는 원죄의식과 불편한 연민들이 시적인 감각과 만나면 이렇게나 황홀한 이야기로 재탄생하기에 대중적인 지지까진 아니지만 정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마력이 있는 것이다. 후반부에 가서 몇차례 진실이라는 껍질까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속살은 다시 한 번 고결한 인품은 싼티나고 천박한 집단적 이데올로기가 감히 범접하지 못 할 영원한 갈망이라는 갈증을 가득 남겨서 괴롭고 음울하다. "아름다운 고통의 산사태가 천천히 몰려오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는 표현이 책의 뒷면 표지에 리뷰가 담겨 있는데 과연 그랬다.
모순이라는 고통, 감당할 수 없는 절망, 시간을 되돌릴 방법을 찾고 싶은 진실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토록 가슴을 뒤흔드는 결말이라니... 읽어 본 사람만이 공감하게 되는 실로 대단한 작품이다. 아직도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결말에 대한 기억이라는 강렬한 잔상에서 언제쯤이면 해방될 수 있을까?
미스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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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 스쿨 어페어"는 토머스 H. 쿡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범죄물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범죄물의 재미에다가, 옛날 연못가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을 배경으로 하는 서정적인 묘사가 잘 조화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목만 보면 꼭 채텀 스쿨이라는 학교에서 고등학생 쯤 되는 아이들간에 서로 범죄가 일어 난다거나 무서운 일이 생겨나는 일을 다루는 이야기로 오해할 수도 있을 법 한데, 전혀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대신에 채텀 스쿨이라는 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들과 채텀 스쿨 교사가 주요 등장 인물로 나옵니다. 우선 이 이야기의 개성으로 단연 눈에 뜨이는 것은 역시 요즘 유행하는 범죄 소설 답지 않게, 차분한 묘사가 차지 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초반에 이런 느낌은 더 강했습니다. 끔찍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난리를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마을 풍경과 그 목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삶의 모습들을 차분히 표현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그러면서도 그러다가 무슨 일이 언젠가 터진다는 암시, 이 모든 것이 갑자기 뒤바뀐다는 이야기를 꼬박꼬박 곁들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릿느릿한 교외의 삶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런 내용을 읽는데도, 충분한 호기심을 갖고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있도록 글을 펼쳐 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들여 찬찬히 분위기를 잡아 온 내용은 절정과 결말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문제의 사건으로 연결 됩니다. 이 사건은 특별히 과장되어 있는 무시무시한 살육극이 아닙니다. 억지를 써서 괜히 거창하게 들이미는 "악마가 저지른 범죄" 같은 것도 아닙니다. 딱 이런 배경의 무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뿐 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시종일관 잘 쌓아 놓은 인물과 배경이 거기에 얽히기 때문에 그 사건이 그만큼 더 생생하고 진하게 와닿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과 심경도 더 강렬하고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런 덕분으로 책 결말은 충분히 설득력 있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깊게 잔상을 남기는 충격적인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시간을 끌어 가며 조금씩 깔아 놓은 불길한 소재와 복선들과도 무리 없이 자연히 연결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진 서정성 있는 묘사가 애잔한 느낌도 잘 남기고 있어서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이야기 구성을 좀 더 파헤쳐 보자면, 구식 고딕 소설 같은 느낌도 어느 정도는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낯선 집에 호기심 많은 여자 주인공이 찾아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숨겨진 음습한 비밀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구성은 쓸쓸한 저택에 여자 주인공이 찾아 오며 시작하는 고딕 로맨스 소설과 출발이 비슷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감상적인 풍경 묘사 대목에서는 그런 느낌이 충분히 들었습니다. 약간 차이는 있습니다만, 소설 도중에 "폭풍의 언덕" 같다는 말이 아예 나오기도 했습니다. 돌아 보면, 이 책은 그런 분위기와 재미를 느끼기에도 충분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정형화된 소설과는 또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점도 뚜렷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비슷한 이야기에서 서술하는 시점을 여자 주인공에 집중시켜 두는 것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화자를 당시 사춘기 언저리의 남자로 하고 있었습니다. 낭만적으로 신비롭게 묘사된 인물들과 일상적이고 현실감 있게 묘사된 인물들이 잘 섞이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게 자연스럽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그만큼 더 실감이 났다는 점도 훌륭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속도가 약간 느린 편인 초중반 서술 속에서 어두운 숲이 있고, 파도가 치는 외로워 보이는 바닷가가 있고, 서늘한 바람이 서서히 피어 오르는 신비로운 연못 길이 있는 채텀 스쿨 주위의 마을이 정말로 거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입체적인 인물이면서도 독자가 서서히 애착을 갖게 만드는 조연격 인물 사라를 이용해서 감정을 짜는 기술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라는 갈등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끼여 있지는 않은 인물인 작은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물의 처지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극중 인물에 독자들이 빠져 들게 만들고, 저절로 극중인물의 감정을 따라 독자도 고조되기도 하고 또 허무하게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덕택에 다른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까지 저절로 공감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좋은 범죄물이냐고 한다면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고 굉장히 기묘한 범죄를 다룬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빨려 들고 재밌는 책이냐고 한다면 역시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고 싸움과 추격이 계속되는 이야기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그것도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진부한 애정 행각에 집중하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돌아 보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냐고 한다면 그런 점도 좋은 책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또 애들끼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소위 "학원물"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만큼 여러가지 면에서 재미가 있는 책이었고, 진기한 형식의 글이라기 보다는 여러 재미가 다양하게 다 있는 정통파 소설로서 잘 쓴 노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종합적인 면 자체가 개성이 되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국내에도 번역 소개 되어 있는 작가의 다른 책인 "줄리언 웰즈의 죄"와 비교하며 둘 다 읽어 보기에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둘이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느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에 비중을 어느 정도 준다는 점, 평화로운 이야기 속에 어두운 사연이 곧 드러날 것 같은 음침한 느낌을 살린 다는 점, 과거를 회상하며 잊혀진 사연을 돌아 보는 형식이라는 점, 죄의식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일치 했습니다. "줄리언 웰즈의 죄"가 남미의 이국적인 감흥을 배경으로 살린다면, 이 책 "채텀 스쿨 어페어"는 교외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을 배경으로 잘 살린다는 점도 견주어 볼만 합니다. 저는 이 책 "채텀 스쿨 어페어"가 "줄리언 웰즈의 죄" 보다도 더 재밌었습니다. 초반 시작은 힘이 덜 하고 미적지근 합니다만, 그런대신 절정의 힘이 강렬했고, 결말은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였고 여운도 더 깊었습니다. 인생을 돌아 보는 화자의 시선에서 조용한 마을 풍경과 범죄를 동시에 이야기 하는데, 그냥 재미로 범죄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범죄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인 "언제 사람은 자기 목숨과 인생이 걸만한 행동을 하는가", "어떤 감정이 인생을 뒤바꾸는 사건을 일으키는가"와 같은 문제와 잘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꼭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마을 분위기를 떠올리며 한번 감상에 푹 젖어 볼 수 있는 책이었다고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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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줄의 홍보카피 외엔 책을 읽기 전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다른 독자의 서평을 보지 않는 편이라 처음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연쇄살인 또는 학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지레 짐작한 게 사실입니다. ‘붉은 낙엽’이나 ‘심문’ 등 귀에 익은 작품들은 몇 편 있지만 토머스 H. 쿡을 만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보니 그의 작품 세계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에 들어간 ‘스쿨’과 “죄의식의 저울 건너편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잔혹한 진실”이란 홍보카피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었는데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채텀 스쿨 어페어’는 1926년 8월에서 1927년 8월에 이르는 1년여의 시간 동안 보스턴 인근 조그마한 소도시 채텀에서 벌어진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치정과 파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비밀을 잔뜩 끌어안고 있거나 또는 불발탄처럼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채텀스쿨 미술교사로 부임한 미모의 엘리자베스 채닝, 그녀로 인해 새로운 세계와 자유를 열망하게 된 고등학생 헨리, 그녀와의 치정으로 인해 여러 인물의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유부남 교사 리드, 그녀로 인해 가족의 붕괴를 목전에 둔 히스테릭한 리드 부인, 그리고 그녀를 채텀스쿨로 초빙한 장본인이자 헨리의 아버지이며 보수적 교육자인 아서 등이 그들입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 ? 보수적인 소도시에서 벌어진 두 남녀의 불륜의 비극적 결말 ? 에 그칠 수도 있는 소재지만, 토마스 H. 쿡의 필력은 주조연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의 배경인 채텀의 분위기를 잘 버무림으로써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과 기대감을 놓치지 않는 중량급 서사로 만들어냈습니다.
먹구름과 광풍, 안개로 가득한 잉글랜드의 황무지를 연상시키는 해변가 소도시 채텀의 1920년대 풍경은 인물들을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가 연상되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띕니다. 음울하고 불길한 분위기에 휩싸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행보를 미묘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 대목이 겹쳐 보인 탓입니다. 또 장르소설이라기 보다는 순문학에 가깝다는 인상도 자주 받게 됩니다. “자신의 시적, 문학적 재능을 선보이는”, “장르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드러냄으로서 ‘슬픔의 미학’을 느낄 수 있게 한” 등 인터넷서점의 작가 소개글 역시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특이했던 점은 다양한 시간적 배경입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헨리가 살고 있는 1960년대 후반, 헨리의 10대 시절이자 채텀스쿨의 비극이 벌어졌던 1926~1927년, 그리고 잠깐이지만 중년의 헨리가 등장하는 수년 전 등 다양한 시간적 배경이 등장합니다. 이럴 경우 보통 챕터별로 시간이 분류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비해 ‘채텀 스쿨 어페어’는 때론 문장 단위로 시간적 배경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읽으면서 집중하지 않으면 이 인물이 존재하는 시점을 놓치기 쉬울 정도입니다. 1920년대에 있는 건지 1960년대에 있는 건지, 사고가 난 그날의 이야기인지 그 전후의 이야기인지, 채닝이 채텀에 온 시점의 이야기인지 리드가 채텀에 온 시점의 이야기인지 등 수시로 앞뒤 맥락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읽는 중에는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다 읽은 후엔 그런 시간적 구성이 이야기의 밀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이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훨씬 좋은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스쿨 어페어’라는 제목이 주는 묘한 기대감으로 이 작품을 접한 독자에겐 좀 지루하거나 심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순문학적인 특징 때문이겠지만, 마지막에 드러난 사건의 실체가 그리 강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을뿐더러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의 개운치 못한 느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토마스 H. 쿡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붉은 낙엽’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유괴를 소재로 했다는데, 과연 어떤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냈는지, 일반적인 유괴 미스터리와 어떤 식으로 다른 서사를 구축했는지 궁금합니다. 고백하자면 제 취향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작가 같지만 호기심을 버리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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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의 탈출을 꿈꾸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그 곳이 채텀처럼 조용하고 쓸쓸하며 누가 누군지 다 아는 곳에서 살았다면 더더욱이나 날 모르는 사람들과의 낯선 만남과 이별, 그리고 다시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더 바라게 될 것이다. '붉은 낙엽'으로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게 사실은 행복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토머스 h.쿡은 '채텀 스쿨 어페어'에서는 평화롭게 보이는 일상과 우리의 이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삶의 기준을 정해놓아 생기게 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쓸쓸한 노년의 나이가 된 헨리가 자신이 소년이였을때 바라본 채텀이란 공간과 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나 더 만족해보이는 아버지의 모범적인 일상이나 늘상 똑같이 들려오는 규칙에 염증을 내던 자신을 보여주며 그러다 만난 채닝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리라는 희망을 키우던 헨리는 무조건적으로 옳게만 받아들였던 어른들의 세상이 그다지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을만큼 자란 아이가 바라 본 세상은 어떤지, 그리고 그렇기에 자신과는 다르게 많은 여행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여겨지는 새로 오신 채닝 선생님에게 당연히 호감을 갖게 되는 자신의 기억 순간 순간을 보여준다.
내가 헨리였대도 그녀가 꺼내 놓은 여행 기억으로 시작된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 맛 볼 자유의 바람을 미리 느껴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 시간동안 자신의 꿈을 그려갔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을 잘 따르는 학생이라는 관계는 헨리가 채닝 선생님이 리드 선생님과 친해지는, 그리고 사랑에 빠진걸 알게됐다고 믿을만큼 친하게 되면서 살짝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채텀에서의 일상은 별반 다르지 않게 지나가게 된다. 더 자주 만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들이 사랑을 이루기위해 이 곳을 떠나기라도했으면 하는 소년의 바람이 커지는 것말고는 말이다. 하지만 채텀에서의 일들은 금방 소문이 되고, 그렇지않아도 배신의 기억에 사로잡힌 리드 부인이 이상해지면서 '그렇고 그런'이란 관계는 무조건 안된다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채텀에 비극이 생겨나게된다.
"그 세상에서 중요한 건 로맨스가 아니라, 한층 깊고 오래 지속되는 결과와 관계였다" -214 인생은 한번 뿐이고 다음 기회는 없다는 이야기를 남기는 리드선생님, 인생은 원래 부당한 것이며 우리가 가장 후하게 주거나 받을 수 있는 건 신뢰라는 아버지, 그리고 나중에서야 깨달았다며 갈망은 우리의 운명이며 그 끔찍한 고통을 달래기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게 믿음이라는 헨리등 모두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느끼고 믿었던 대로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삶이란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옅은 후회를, 그리고 안타까움을 주게된다.
토머스 h.쿡은 사건을 삼켜버리고 조용해진 채텀의 검은 연못처럼 평온해보이는 우리의 일상안에는 감출것도 말하지 못한 것도 많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가며 뭔가 일어날것같은 불안불안함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사건이나 꼬임, 반전을 말하지는 않지만 일상을 적어나간 줄 알았던 일들이 책이 넘어갈수록 '이제 사건이 벌어지는 걸까.' 싶은 작지만 뭔가 께름직한 불안이나 오랜 세월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우연히 드러내는 몰랐던 속 이야기들이 되어가며 어쩌면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인생은 한번뿐이기에 탈출을 꿈꾸지만 머물수밖에 없어 괴로워하던 리드 선생님이나 딸이 자유롭게 자라게 하기 위해 많은 걸 희생했을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진 채닝 선생님, 자신의 조용한 삶을 평생 불안하지만 맞다고 살아온 헨리 어머니, 믿음과 선량함 신뢰가 살아가는 동안의 아름다움이라고 믿는 헨리 아버지 등 모두에게서 내 마음 조금씩을 볼 수 있기에 제각각의 방향에 서 있는 그들 모두를 이해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평범한 이웃이였던 이들의 조용하고 은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대로 사건이 모양을 만들어가며 부풀어 오르기에, 이제껏 내가 보고 들었기에 진실이라고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었던 일들이 과연 진짜였을까 싶다. 난 내 소신대로 살아가는 동안 애정이라며 다른 이들의 삶속에 너무 끼여들어 문제를 만든 적은 없었을까... 슬슬 걱정이 된다.
"그들은 황무지를 만들어놓고 그걸 평화라고 불렀다."-2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