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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화 <감기>를 보는데, 여주인공을 맡은 수애의 캐릭터가 너무 비 호감이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신의 아이에게 무한정 베푸는 그 모성애라는 것이, 지나치게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만 괜찮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라는 식의 무한 이기주의적 모성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기가 어렵다. 평범한 어머니가,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맹목적인 모성애를 발휘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안타깝게 보이겠지만, 처음부터 자신과 자신의 가족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로 그려지고 있으니, 이후에 벌어진 그 대참사 속에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전혀 공감도, 감동도 되지 않더라. 진부한 대화가 좀 더 이어진다. 이런 대화는 장려되어야 한다. 남들과 달라지려고 애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평범하고 진부한 말로도 쓸데없는 걱정을 충분히 덜 수 있는 경우에도 굳이 참신한 표현을 만들어낸다. 매리언이 내가 우윳값을 가로챘다는 비난을 하고 싶어 한다면, 내가 실제로 우윳값을 가로채길 백 번 잘했다. 왜 <진저맨>과 전혀 상관없는 영화 얘기로 시작했느냐 하면, 영화도, 소설도 마찬가지로 주요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나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다 목에 걸린 것처럼 자꾸만 스토리 진행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툭툭 튀어나와 나를 멈칫 거리게 만든다는 얘기이다. <진저맨>이라는 작품은 그 문학적 가치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읽는 게 전혀 수월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작품이 처음 쓰여 졌을 때, 30여 군데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던 이유 중 하나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술이 때로는 당혹스럽고 난삽해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주인공 캐릭터에 공감하기가 어려워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뭐 이런 xxx 같은 캐릭터가 다 있어. 싶은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끝까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잠깐 조니뎁 이야기를 해보자. 조니뎁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는 이 작품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반해 있는 책을 영화화해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 그게 바로 진저맨이다>라고, 대체 어떤 책이길래 이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재미있게도 정말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인공 캐릭터가 조니뎁 그 자체였다.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조니뎁의 이미지를 보자면, 불온하고, 반항적이고,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 자신이 하고 싶은 괴팍한 작품에만 출연해온 괴짜 배우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말하자면, 이 작품의 주인공 "시배스천 데인저필드"가 딱 그렇다. 무기력하고, 불량스럽고, 책임감도 없고, 변덕스럽고, 자기 멋대로이지만 그럼에도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상한 캐릭터. 언젠가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절대 '조니뎁' 외에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어울리는 캐릭터이다. 진정한 선을 알기 위해서는 악당이 되어 죄를 지어봐야 해요. 어린애가 순결하게 태어나서 순결하게 살다가 순결하게 죽는 게 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얄팍하고 하얀 불모지의 어디에 신의 은총이 있었죠? 설마 그런 걸 바라지는 않겠지요. 아니, 바닥까지 내려가세요. 바닥까지. 극단적인 하얀색은 오히려 검은색을 띠게 마련이에요. 고결하고 정의로운 체하는 자들은 어차피 비열한 무리였어요. 법대생인 시배스천 데인저필드. 무기력하고 불량한 스물일곱 청년이다. 아이와 아내는 내버려둔 채 술과 여자에만 빠져서 사는 그에게 책임감이나 배려 따윈 전혀 없다. 다른 여자와의 섹스에 대해서도 전혀 죄책감이 없고, 오로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변변치 못하고, 구제할 길 없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마도 그는 지금 세상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어린 아이처럼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기분 좋은 상상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폭발해버릴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마구 되는 대로 사는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무서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눈만 가리면, 그것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팬처럼 보이기도 한다. 돈리비는 <외설은 이 소설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했는데, 음란한 내용들은 1950년대 출간 당시에는 논란이 되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읽기에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음란하고 직설적인 표현들이 난무해서 당황스럽게 만들기는 한다. 그러니 이런 부분들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은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팬의 '성인 버전'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작품이 쓰여진 배경을 보자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이다. 그 당시 더블린에 사는 학생들과 그 주변의 궁핍과 비참함이 집요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의 친구인 케네스 오키프라 하겠다. 오죽하면 그를 묘사한 대목 중에 이런 부분도 있다. <갑자기 출구에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형체가 나타났다. 붉은 수염을 기른 턱, 떠날 때 입었던 초록색 셔츠와 바지. 어깨에 맨 배낭 끈...> 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분위기인지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데인저필드와 오키프라는 이 비정상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 것도 감추려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데인저필드는 기어코 아내 매리언이 집을 나가게 만들고, 다른 여자와 연애하고, 아내가 떠난 집에서 여자들과 섹스를 즐기지만... 그 어떤 것도 감추지 않는다. 펼쳐놓은 책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누구라도 다 소문으로 알 수 있도록 거리낌이 없다는 얘기이다. 대부분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행동들은 모두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의 의지 때문에 더욱 어둡고 음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에 거리낌이 없을 경우에, 즉 죄책감이 없을 경우에는 그걸 숨기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데인저필드도 마찬가지이다. 평범한 내 입장에서 보자면 구제할 길 없는, 최악의 인간이긴 하지만, 그의 행동과 사고를 가만히 따라 가다 보면 세계대전 이후 불안했던 시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허무와 방황을 대표하는 하나의 인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내가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 자체의 캐릭터로 '인정'은 된 다고 나 할까. 그래서, 데인저필드를 좋아하든 경멸하든, 그건 내 자유이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조금은 그를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 중에 <위대한 '개츠비'와 달려라 토끼의 '래빗' 사이>라는 항목이 있었기에, 그래서 결국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를 구입하고 말았다. 정신적인 공허감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데인저필드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책을 끝까지 읽는데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해하고픈>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걸 보면, 이 작품이 현재의 나에게 뭔가 던져주긴 한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해주는 작품이 진정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저맨>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럼 아마도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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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맨" 그리고 돈리비...아일랜드계 미국인.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현대의 고전" 여러가지 찬사가 덧붙여진 소설...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펼치지는 한 남자의 청춘기를 묘사한 소설이다. 그러나 왜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시기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작가 내면을 이해하지 못해서 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신경써서 읽은 적이 없는것 같다. 소설에서도 무언가 의미를 찾고 싶고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심리적 문제점, 사회적 문제등을 비롯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부분을 찾고 싶어지는데 그 의미를 찾기가 아주 힘들었던 소설이다. 물론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대치와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얻고 싶은 무엇인가를 찾아야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는데 어떤 의미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어렵게 생활하면서 메리언과 결혼해 딸아이를 가진 한 가정의 가장의 역활에서도 주인공은 낙제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다고 청춘기의 방황을 묘사했다고 보기에도 부족한 점이 있는것 같다. 청춘기의 방황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해결함에 어려움을 느낄때 절망하게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무언가 폭력적이고 심리적으로 방황을 하게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보통은 이러한 방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모두가 한번은 거쳐가는 인생에 있어 겪어야만 하는 순간이기에 모두들 그런 상황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기도 하고 좌절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다는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주위 상황과의 소통에 의해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청춘에 있어 성적 호기심이나 성에 관한 내용은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본 진저맨에서도 이러한 성적 묘사와 남녀간의 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있는데 그렇게 큰 의미는 두지 않은듯하다. 또한 이러한 성적 묘사가 소설의 진행 상황에 있어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관계의 형성에 있어 부가적인 부분으로 도입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소설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다. 방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과 함께 가족에대한 배려가 없는점,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본인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내면에 내포되어있는 인간의 폭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인간의 심리는 이를 빨리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에 대한 심리적 폭력과 더불어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심리가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 전개 방향에 있어서는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클라이맥스가 보이지 않고 힘든 상황을 탈피와 일탈로 이어지는 전개는 나에게는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어찌보면 진저맨을 읽은 나는 그렇게 큰 감명이나 영감을 얻지 못했더라도 이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 다른 독자들에게는 더 많은 감동을 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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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맨=The Ginger Man 진저의 뜻이 무엇인지 검색해 보았다. 생강이다. 전저맨의 뜻은 "생강색 머리의 남자" 라는 뜻이란다. 표지의 색도 생강을 연상 시키는 노란색이긴 하다. 1955년 프랑스에서 첫출판 되었다고 하니 한참지난 고전이라는 느낌이 난다. 이책의 두깨감 더하기 고전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엄청 어려운 책이겠거니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진저맨을 읽기전 출판사 서평과 함께 다른이들의 찬사들이 왜 쏟아졌는지 알게되었다.
주인공 시배스천 데인저필드는 법대생이다 하지만 법대생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처자식은 내팽개친 채 술과 여자에만 빠져 사는 그의 사잔엔 눈치나 배려, 신뢰, 책임감 따위는 없다. 그의 삶은 오로지 여인의 육체를 탐하는 기쁨, 섹스의 기쁨, 술의 기쁨, 우정의 기쁨 등 몇가지 쾌락을 중심으로 돌아갈 뿐이다. 법대생이지만 법을 어기고 어떻게든 거짓말과 술수로 모면하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책을 읽어보면 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대부분의 책들은 주인공들이 착했던 것 같다. 약간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도 호감이 가는 주인공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책의 주인공 시배스천 데인저필드는 다르다. 완전 찌질이도 그런 상찌질이가 없다. 그런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와 이야기가 그의 중심으로 돌아간다. 불편한 마음으로 그의 입장에서 그가 하는 짓을 고스란히 나도 생각해야하고, 그의 관점에서 사건들을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그의 천박하고 비겁한 짓거리가 화가 났다. 또 이책을 읽으면서 나쁜남자의 거짓말과 이기적으로 무장한 내면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되었다. 능수능란한 거짓말의 주인공이 옆에 있었다면 이단옆차기를 날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책의 주인공은 소설속 인물이긴 하지만 문제는 현실에서도 이런 남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여자를 꼬시고, 일말의 책임감과 도덕성은 밥말아 먹은 자들 말이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깊은 나머지 돈도 없는 찌질이 주제에 한턱 거나하게 쏘는 무개념의 나쁜남자.... 진정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에게 거짓으로 미끼를 던지고 위선으로 여자를 우롱하며 더럽고 천박한 몸뚱이를 들이대며 사랑이라는 거창한 포장으로 여자의 몸을 탐닉하는 나쁜남자....
당신은 개새끼고 앞으로도 계속 개새끼일 거야. 죽을 때까지 평생. 맞다. 죽을때 까지 개새끼인 시배스천..... 하지만 이책은 읽으수록 재미있었다. 그는 나쁜남자이다. 끝까지... 전혀 호감가지 않은 개새끼인 시배스천의 이야기는 다른 책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독특하다. 그런점이 이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시배스천과 같은 남자를 만날까봐 두려웠다. 모든남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보는 시선은 문제가 있겠지만, 간혹 좋은 남자로 위장해 여자의 몸을 탐닉후 임신까지 시켜놓고 나몰라라 하는 남자들에 대한 경각심은 특히 어린여자들은 가지고 있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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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너무나 낯선 작가인 J.P 돈리비 (제임스 패트릭 돈리비). 이렇게 낯선 작가를 만날때면 설레임과 주저함이 동시에 생긴다. 내게 이름만으로도 믿고 보게 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읽었음에도 실망감을 주기도 하는 것은 아마도 읽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깃들기 때문이리라. 「"진저맨" 은 1955년에 간행되자마자 '50년대의 대표적 작품'이라는 격찬까지 받고, 당시 무명의 아안랜드계 미국 청년이었던 제임스 패트릭 돈리비는 하룻밤 사이에 '같은 세대의 어떤 작가보다 뛰어난' 존재로 평가받게 되었다. p.504」 어떤 작가이건 호불호가 갈리듯 J.P 돈리비 또한 마찬가지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왠지 대단한 문학상을 수상했다거나 굉장한 작품이라고 하면 내용의 재미보다는 수상경력만 두드러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선입견 없이 읽을 수 있어 더 편했다. 작품의 주요 인물인 시배스천 데인저필드. 데인저필드의 행동이며 대화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가난한 삶에 허덕이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실업이라든가 고용불안정 등이 떠올라 애처로웠으나, 스물 일곱의 나이에 처자식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보이는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아이에 대한 태도는 아기를 키우는 내게는 화를 불러일으켰다. 「아이의 머리 밑에서 베개를 빼내더니, 비명을 지르는 아이의 입에다 힘껏 눌러댔다. p.35」 부부싸움으로 아기가 놀라 울어대자 데인저필드가 아기에게 한 행동은 가정적이지 못할 수는 있다고 생각은 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저런 행동은 아닌데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화가 난 내 기분으로 "진저맨"에 대한 나의 느낌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져버린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데인저필드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중요시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자신의 젊음이 중요해서 성욕이 그대로 드러날 뿐 아니라, 생활비로 써야할 수표책을 상의도 없이 빼앗아 가버리는 그런 모습에서는 너무나 철없음이 느껴셔 데인저필드의 아이가 너무나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주위에 있을지도 모를 무책임한 아버지의 모습인것만같아 기분이 씁쓸하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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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장을 읽다가 "이 인간 미친거 아냐?" 라는 생각을 했다. 읽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란 책이 떠올랐다. 머리맡에 참마를 두고 자는 정신없는 부부와 사실은 나무상자안에 든것은 참마가 아니라 폭탄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전쟁이라는 것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이상해지지 않으면 불안함 때문에 하루를 버티기 힘든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두 이야기의 맥락은 다르지만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어디서 폭탄이 터져도 테러가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구나 싶은 느낌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이 비슷하다.
오키프와 데인저필드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시껄렁한 혹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의 연속들이다. 두사람은 오로지 먹는 것과 여자에 주목하고 있다. "뭘 마실래?" "돈은 누가 낼 건데?" "전기난로를 전당포에 맡기고 온 참이야." (6쪽) 어떻게 보면 전기난로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온 데인저필드 시배스천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심각함을 벗어나 있다.
"들어와, 케네스." "대단한 곳이군. 이 집이 내세우는 게 뭔가?" "신뢰." (8쪽) 짧지만 두사람의 대화는 읽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두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이런식이다. 술과 여자와 돈, 그 중에서도 술과 여자 돈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법대생인 27살 그다지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시배스천은 그렇다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시고 여자를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시배스천은 여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말이다. 시배스천은 매우 무책임하다. 대학을 다니고 있긴 하지만 그의 전공은 술과 여자다. 온통 대부분이 여자랑 바람난 이야기나 외설적인 내용들이다. 중간중간에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매우 궁핍한 상황과 그런 상황들속에서도 전혀 쭈그러들지 않는 시배스천이 있을 뿐이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도 돈을 찾을때도, 수많은 외상을 할때도 그는 매우 당당하다. 결혼을 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메리언의 매력에 빠져들기도 했었던 모양이다. 시배스천의 아버지는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부자인 모양이다. 그런 아버지의 유산을 바라고 있다.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배스천은 여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섹스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인 모양이다. 때로는 음식앞에서 추접합을 보이고 돈을 어떻게 빌려볼까 궁리를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언변술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의 말솜씨때문에 웃겨서 쓰러지겠다. 거침없이 솔직하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자유연애로 세계를 주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시배스천의 절친 오키프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태어났을때부터 가난했던 오키프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배스천은 매우 낙관적이다. 가난은 오래가지 않는다며 친구를 위로해준다. 그럴만한 상황은 전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가난에 힘겨운 친구에게도 서슴치 않는 말솜씨로 돈을 빌려낸다. 대단한 친구다. 두사람이 서로에 대한 평가는 직설적이다. 절대 법관이 될 수 없는 시배스천과 구렁텅이 같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키프다. 시배스천의 부인과의 싸움은 정말 시끄럽다. 막말에 폭력까지 쓰는 남자다. 두 사람의 실감난 대화가 무대위에 올려진다. 갑작스럽게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희극 대사에 거기에 배경으로는 명화가 펼쳐진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뮤지컬의 음악까지도 말이다.
그런 부분이 요소요소에 숨겨져 있다. 중요한 것은 외설스럽기도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독백이라든지, 집주인과의 장문의 편지와 숨박꼭질은 읽는 사람을 쓰러지게 만든다. 집주인과의 숨박꼭질에서 도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 하다. 술집에서 도주 장면도 그랬다. 무성영화를 보는듯 했다. 진저맨은 매사가 심각하지 않다. 우스꽝스럽다. 심지어 친구가 가난에 찌들어서 변기를 내다 팔았다고 할때도 말이다. 하여튼 좀 피곤하긴 하다. 시배스천은 맘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종 악몽을 꾸곤한다. 그다지 편하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무언가의 압박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책임함 속에서도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처음에 죽었다던 친구가 끝날 무렵에 멋지게 나타나서 시배스천에게 크게 한턱 쏜다. 마냥 좋아할것만 같았던 그였는데 약간은 울렁증이 나는 것 처럼 보였다. 부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렸다던 그의 말이 울림을 가졌다. 작가의 말처럼 '외설은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워낙 그런 분량이 꽤 되었기에 좀 지겹기도 했지만 황당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이 책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때로는 정신없기도 하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술처럼 한꺼번에 마구 솟아 오른다. 막판까지 도달하면 낭떠러지에 푹하고 떨어질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는 그럴것 같지 않다.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다. 보통은 심각한 상황에서 그런 행동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정신 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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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그 위기를 이용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일이고 나머지는 위기를 핑계로 주저앉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경우라면 어떤 쪽에 속하는가? 물론 위기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J.P. 돈리비의 <진저맨>의 주인공 데인저필드는 후자에 속한 인물이 분명하다. 2차 세계 대전 후 불황의 시대를 사는 모든 청년이 그처럼 방탕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우리의 주인공 데인저필드는 스물일곱 살의 아일랜드 더블린의 법대생이며 결혼해 아내와 딸을 두었다. 결혼을 했으니 어엿한 가장이며 법을 공부하고 있으니 뭔가 거대한 비전을 있을 거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그는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고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탐하는 책임감은 전혀 없는 청년이다. 변기가 막히고 먹을 게 떨어져도 나 몰라 하며 자신만의 쾌락에 빠져 지낸다. 그런 남편을 믿고 살 아내는 없다는 걸 증명하듯 아내 매리언은 집을 나가 시부모의 도움으로 집을 구해 생활한다. 데인저필드는 매리언에게 용서를 구하고 슬그머니 그 집에 들어간다. 변한 건 없다. 역시나 폭음은 계속되고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며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매리언이 다시 떠나자 데인저필드는 집에 세 들어 사는 미스 프로스트를 유혹하며 함께 영국으로 떠나자고 말한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관계를 갖은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소설에서 그를 제외한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데인저필드의 유혹에 넘어간 세탁소 여직원 크리스,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로 떠난 친구 케네스, 이쯤 되면 모두가 궁금하다. 데인저필드는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타고난 귀족인 것 같아. 아직 우리 시대가 오지 않았는데 이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났어. 눈과 입으로 바깥세상 사람들한테 핍박받으려고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케네스, 나 같은 사람은 온갖 부류의 사람들한테 직장直腸으로 학대당하지. 전문적인 부류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도 사실 이 부류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들은 나를 비웃고 쫓아내고 싶어 해.” 314쪽
그의 말처럼 그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전후라는 시대적 불안이 그가 눈부신 청춘의 시간을 허비하는 방종한 삶을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심 그곳에서 변화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작가는 철저하게 나의 바람을 무시했다. 돈 많은 아버지를 둔 탓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데인저필드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그가 느끼는 권태와 절망은 현재를 사는 치열한 청춘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이런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데인저필드도 그저 아픈 청춘에 불과한 것인가? 아, 정말 어지러운 소설이다.
“나는 종종 쉰세 살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때로는 스무 살로 돌아간 기분도 들어요. 요일과 마찬가지에요. 화요일인데 꼭 토요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아니면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요즘 나는 줄곧 일흔 살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하지만 서른네 살은 멋진 나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스 프로스트, 한 잔 더 마셔도 괜찮겠습니까?”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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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난감, 방탕한 소설 한권을 봤습니다.
일단 소설이 해석하기가 난해해서 주인공을 쉽게 연상해보자면, 조니뎁이 딱 떠오르네요^^.
그리고, 정말 신기했던 건 읽기 전, 책 뒷면의 띠지에 적힌 서평을 보게 됐는데, 거기에 조니뎁의 서평이 있었습니다.
진짜 주인공을 조니뎁으로 캐스팅해 영화화 한다면 싱크로율 100%의 캐스팅이 될 것 같은 책인데요.
캐리비안의 해적 잭스페로우를 뛰어넘어 그의 두번째 신화가 될 것 같이! 완벽히 조니뎁을 위한 캐릭터인 듯합니다.
책을 불온전하게(?) 읽었기에 꼭 좋은 해석의 영화로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제가 이 책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와 달려라 토키의 "래빗" 사이에 또 하나의 문제적 인물이란 책 소개 때문이었습니다.
개츠비 마니아라고 얘기할만큼 빠져있어서 '얼마나 대단한 남자길래?' 라는 생각으로 한껏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죠. 멋진 주인공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책은 20세기 100대 영문학으로 선정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임에도 국내에는 올해 초역으로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또 세계 최고의 문제작이라는 소개까지... 물음표인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책장을 넘기자 모든 의문점이 풀렸습니다.
- 진정한 선을 알기 위해서는 악당이 되어 죄를 지어봐야 해요. 어린애가 순결하게 태어나서 순결하게 살다가 순결하게 죽는 게 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 얄팍하고 하얀 불모지의 어디에 신의 은총이 있었죠? 설마 그런 걸 바라지는 않겠지요. 아니, 바닥까지 내려가세요. 바닥까지. 극단적인 하얀색은 오히려 검은색을 띠게 마련이에요. 고결하고 정의로운 체하는 자들은 어차피 비열한 무리였어요.
책 군데 군데에는 타락에 대해 정당화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많아요. 제가 갓 스무살이 넘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이 부도덕하고, 난잡하기만한 주인공을 보며 불쾌하고 더럽다고 느꼈을 텐데... 불쾌하지 않고, 더럽지 않았어요.....
진저맨은 일반적인 소설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간택(?)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된 사회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공허함을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주인공의 배경과 설정을 보았을 때, 이 책의 저자 J.P 돈비리는 시배스천 데인저필드를 통해 자신이 탐익했던 삶을 그렸던 것 같아요. 왠지 저도 그 당시의 저자로 살았다면,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며, 탐욕적인 생활을 하는 주인공을 창조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정말 웃긴 게, 이 책이 제 정서에 잘 맞았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세상에서 금기시하는 중독이란 중독은 다 걸려서 방종한 생활을 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스물일곱의 청년.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이런 주인공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들은 단지 쓰레기에 불과했는데요.
그런데 성공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영화, 드라마 등 허구의 작품들에서는 진저맨같은 주인공들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제가 주인공같은 배경으로 살아보진 못 했고, 성별까지 달라 50%로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로서 실패한 자기계발서 한편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그 마음이 진저맨에게 향하네요.
아무튼, 진저맨은 앞서 설명했 듯이, 지금 이 시대에 초역될 수 밖에 없는 타락하고 문제적인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이었습니다.
이 남자가 제게 남긴 메세지는 한번 더 읽고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네요^^
꼭 영화화되길 바라며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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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맨(진저맨, ‘생강색 머리의 남자’라는 뜻)
본론으로 들어가서, 시배스천 데인저 필드라는 주인공이면 보통 주인공과는 달리, 무기력하고 불량스러운 27살의 청년이면 와이프와 자식은 내팽겨치며, 술,섹스에 미친 쾌락주의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가정에 대한 책임감등은 상당히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주인공 본인은 내면의 평온함을 추구했을 뿐이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아버지 유산을 상속받기에 이르른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기에 이르른다. 그래서 여전히 그런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결국은 그의 곁을 하나 둘씩 떠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생활을 추구하며, 내면의 평온함을 추구한다는 논리를 고수한다. 중간에 별다른 반전은 없었으며, 끝에 방종한 진저맨에게 신의 자비가 있기를 이라는 구절로 마치는데, 인생 그 자체가 불쌍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읽고나니 진저맨이라고 일컬어지는 주인공인 시배스천 상당히 비정상적인 유형의 본능을 추구하는 자(외설스럽다)이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런 캐릭터가 감정이입을 하기에 쉽지 않고, 오히려 불쾌한 감정과 유쾌한 감정이 뒤섞인 오묘한 감정이 드는 소설이었다.
1955년에 프랑스에서 최초로 출간 된 이 소설은, 1958년 곧이어 미국에서 재출간되었으나 아일랜드/미국에서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되었다. 50년이 훨씬 지난 현재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20세기 영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가인 j.p돈리비는 진저맨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대부분은 독특한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연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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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홍보문구에 마음이 끌렸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의 캐릭터의 중간 지점이라고 둘을 잇는 캐릭터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20살때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무엇이 사랑일까라는 질문과 개츠비의 쓸쓸함에 젖었었다. <달려라 토끼>를 읽으면서는 나이듦에 대한 회한과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중점이라니? 미국 문학의 교두보적인 역할이라는 건 알겠는데 단숨에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떠한 지점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게되었다. 두 작품의 캐릭터 모두 소설에서 캐릭터에 의존하는 지점이 많다. 단점이라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그만큼 살아있고 강력하다는 뜻이다. 이 소설의 캐릭터 역시 매력적이다. 뛰어난 두뇌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모습, 선천적 섹시함으로 쉽게 여성들을 유혹하지만 지속되지 못하는 사랑. 어떻게 보면 굉장히 키치적인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한 번 쯤 저런 남성으로 살아가보고 싶은 욕망을 같는다. 아침에 일어나 그냥 눈만 비비는데도 섹시함이 철철 넘치는 매력남. 그런 캐릭터가 자신을 망가뜨리는 과정 그리고 회복하는 과정 일련의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이 책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건드린다. 한 번쯤 멋진 사람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한 번쯤 타인의 기대가 아닌 온전히 나의 기대로 내일을 생각하지않고 지금 이 순간 나의 감정이 가는데로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그런 욕망. 이 책은 그런 욕망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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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남을 깔보고 헐뜯는 말을 들어보세요. 상스럽고 역겨운 농담을 들어보세요. 나는 이 나라가 싫어요. p.105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제법 두꺼운 두께에 놀랐고 깔끔한 편집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책을 읽는 내내 편집이 잘 되어 있어 가독성이 뛰어나 술술 잘 읽혔다. 책은 총 3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면 전환과 호흡이 굉장히 빨랐다. 주인공 데인저필드는 가정이 있고 친구도 있지만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술과 여자 그리고 섹스이다. 전반적으로 섹스나 성적인 묘사가 정말 많았다. 외설적이라 여겼지만 책의 분위기 자체가 허무하고, 무기력하고, 쉽게 말해 주인공이 참 찌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욕과 식욕과 수면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에 자연스러운 주인공의 모습이 작가의 독특한 기법으로 효과적으로 묘사된 것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과 흡사한 특성을 느꼈다. 편집은 좋았지만 등장인물들의 과한 독백과 죽죽 늘어지는 지루함이 단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