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도 성별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있음은 알고 있었다. 과거의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파헤친 적이 없기에, 예일대학의 사례를 비롯하여 당대 여성 인권 실태를 파헤친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어보고 싶었다.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이라는 카피를 보니, 더더욱 그랬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대학원의 과제물 주제를 고르다가 작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구어체로 쓰인 논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세한 사실 조차 놓치지 않고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뒤에 수록된 논문의 개수와 인터뷰이를 보면 이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카피와 같이 예일대학은 200년이 넘도록 여학생을 뽑지않았다. 예일대의 수재들은 사회적 리더가 되기 마련인데, 여성은 리더십을 보여줄 수 없어 예일대에 들이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차별이 곳곳에 만연해있음을 시사한다. 성 인식에 관련한 심각한 문제가 당시에는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그 시대에 빠르게 문제를 인식하고 나선 이들에게도 감사했다. 다양한 인물들이 예일대의 여학생 입학과 생활의 개선을 위해 힘썼다. 셜리 대니얼스, 코니 로이스터, 베티 스판, 로리 미플린, 키트 매클루어. 예일대학에서의 여성 인권을 위한 다섯명의 여성들이다. 성희롱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에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써 온 다섯명의 여성들. 여성이 다수였다고 해도 힘들었을지 모를 경험들을, 연대하며 헤쳐나갔던 여성들에게 그저 경외감이 들 뿐이다.
남성들은 가해자로도, 연대자로도 등장한다. 여학생들이 예일대에 들어오기 전, 데릭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데릭은 훌륭한 여동생과 어머니를 보며 왜 여성들이 예일대에 들어올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그 의문과 함께 총장을 향한 강경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토록 여학생들의 인권을 위한 남학생들의 활동도 있었던 반면, 여성들의 삶에 위해를 가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각종 성범죄와 일상의 수많은 차별까지. 위의 여성들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후반부에 작가는 50년이 흐른 지금을 분석한다. 현재는 예일대의 여학생 비율이 49%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종신 교수직은 26%에 불과하다고. 또, 여전히 임금에서의 차별과 온갖 성범죄(20%의 성폭행 발생률)에 노출되어 있다고. 현재의 개선된 상황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더 고쳐나가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의 역사책들이 대개 시사하듯, 과거를 알아야 현대에서 벌어지는 왜곡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역사의 순방향을 잡는 우리가 되길.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앤 가디너 퍼킨스 ☞ 이런 분들께 추천 ☜ 1. 미국 여성들의 여성 교육권 발달에 대해 흥미가 있으신 분 2. 미국대학에 대해 궁금하신분 3. 미국 여성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4. 교육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 여성교육 뿐만 아니라 교육이라는 부문에 있어서도 미국은 앞서가고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여성이 정당한 교육을 받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미국의 전통있는 명문대학인 예일은 여자들의 입학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사실 총장이 적극적인 추진을 한 게 아닌 남여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대학교에 와서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수업을 받게 된 학생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여학생들의 입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사실 사회의 흐름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타대학의 여학생 입학 비율도 늘어나면서 예일도 그러한 현상에 발맞추어 나아가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총장 브루스터는 전통적으로 남자만을 받아들이던 학교에 여학생들을 입학식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사회의 지휘권을 휘두르는 것은 남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서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 내듯이 남녀가 함께 공부하고 다른 입장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며 학술의 장은 더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죠. 지금은 이러한 생각이 당연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갖은 어려움끝에 예일대에 여학생을 받아들이게 되고 나서도 그들은 교내에서의 많은 차별과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어요.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르는데 그러한 과정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 책은 보여주고 있어요. 사실 그냥 그런 교육사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책이지만 시대에 맞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내려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두근두근 가슴이 뛰기도 했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차별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타올랐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남녀가 더 나은 방향성과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로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해 사회와 경제도 더 나은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고요. 교육이나 여성권에 관한 관심과 궁금증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어요 !
"소심한 여학생을 뽑아서 이런 환경에 밀어넣은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미국에서 여성의 역사가 인종 문제보다 더 뒤쳐져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역사에서 디폴트인 남성들은 인종 문제 뒤에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투표권 뿐만 아닌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미국 일류대학교인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가 타대학보다 여성들에게 입학 허가가 늦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남자들만의 터전이었던 예일대학교에서 첫 여자 입학생으로 들어와 자신의 길을 가기까지 고군분투했던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먼저 예일대 총장인 킹먼 브루스터 총장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그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인종문제에 있어서도 흑인에 우호적이며 진보적이던 명망있는 브루스터 총장이건만 여성 입학에 대해서는 극도의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부각된다. 젠더 이슈에 관해서는 다른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그의 정책은 예일대학교에서 능력 있는 여교수들의 극히 드문 현실 또한 무관하지 않았다. 여학생 입학에 부정적인 예일대학교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입학의 문을 열기로 결정하며 예일대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그려진다. 여학생 기숙사, 화장실, 보건소, 성상담소 등등을 구비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다. 여성들에게 학업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차이가 나는 남녀성비, 여성이 같은 급우라는 개념보다 성(sex)적인 부분에서만 관심있는 구태의연한 남학생들의 개념,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클럽 등등 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혀있다. 심지어 학교 응원단까지도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 최초 여학생들이 처음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였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단지 최고의 대학에 공부하고 싶었던 학생들일 뿐이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슈퍼우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지만 그녀들은 10대 여학생일 뿐이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여학생들이 장애물 앞에서 굴복하느냐 또는 뛰어넘느냐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뛰어넘는 것을 택했고 투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페미니스트로 변모해갔다. 저자는 이 여학생들의 투쟁 과정에서도 여학생 입학을 주도하며 입장을 대변해 온 올가 교수와 투쟁 방식에 있어서도 이견이 있음을 말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학생의 입장을 총장에게 강조하지만 어른이자 학교 교직원으로 강경한 입장보다는 온건파에 속했던 올가 교수에 비해 여학생들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때론 정학 위기도 있었지만 투쟁을 수정해가며 여성 입학생 비율을 확대해 나가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고 느리게 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느리게 진보해가는 이 역사 속에 저자는 헤비스터와 같은 일부 남학생들의 협조와 도움이 함께 했음을 말한다. 언젠가 조남주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좋아지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계속 진보하고 있음을 말하는 작가의 글이 비록 더디지만 예일대에서 터전을 힘들게 다지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 역사 속에 함께 동참하는 남학생들과 함께 이 힘든 산을 들어올리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 한국의 페미니즘이 더욱 넓혀지기 위해서 남성들에게 이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에게 국한된 이론이 아님을 알리는 일이 시급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이 사회는 변할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히 소수일 뿐이다. 남녀 모두에게 확대될 때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큰 바위이지만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이 들었던 핀잔과 장애물들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에 막막함을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한다면 우리는 장애물들을 인정하게 된다. 예일대 여학생들이 끝까지 장애물을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듯이 우리에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
|
|
예일대 구경하러 가게 되면 읽어봐야 할 책 268년간의 금녀의 대학이었던 예일대학에 1969년 여학생 입학이라는 역사적 큰 획을 그었지만, 그것은 많은 일에 시작에 불과했다. 남녀평등, 인종문제, 베트남전쟁 등 큰 이슈들과 함께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성차별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가운데 그해 11월 페미니즘을 <타임>에서 언급하며 "투지가 넘치는 여성"들의 전국적인 활동을 보도했다. 아직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란 용어가 없던 때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게 심각하다고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당시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세상이었다. 성평등에 이어 성혁명의 시대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혼전섹스, 낙태, 동성애 문제까지 시대와 사회적 금기에서 이해로, 허용으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였다. 이 책은 이런 변혁기에 예일대의 남녀공학 4년간 분투기다. 예일대 남녀공학 정책의 주축은 브루스터 총장과 남녀공학위원회 특임비서 엘가, 첫해 입학 편입한 여학생 575명이다. 엘가는 인내심을 발휘해 대학 총장이 내두르는 수많은 우선권을 인정하며 절대, 결코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운신의 폭이 넓지 못했다.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한 줌도 안되는 소수로 남아 열두 개 기숙사 곳곳으로 흩어졌다. '남성 지도자 1000명 결사 반대' 여학생 단체가 외치는 구호였다. 고정되어 있는 남학생 졸업생 할당제에 대해 재단회의 때마다 남녀성비를 조절하라고 했던 건의는 누누이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리고 대학 내 모리스 클럽이라는 남성 전용 식당이 악명높았다. 그곳에서는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성은 입장 불가였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패킷 시위로 로스쿨, 경제학과 순서로 거래를 끊게 되는 서서히 변화를 가져온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방정부도 보건교육복지부, 교육노동위원회가 나서 법안을 만들어 대학내 성차별에 대해 강경하게 조치를 요구했지만, 오랜 관행과 관습이 쉽게 바뀌지 않는 역사를 보면서 변화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끌었고 기피했던 문제가 남녀 성비 불균형으로 여학생들이 학내 적응 시 희생양이 되는데, 예일 대학에서의 삶이 '정상'을 되찾으려면 균형 잡힌 성비가 시급하다는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1년, 2년 지나 활력이 떨어지며 싸움에 지쳐 갔지만, 남녀공학 3년차 시기에 인간성생활위원회 멤버인 엄친아 남학생 헤버스틱이 나서서 남녀 학생 할당제를 없애는 활동을 조직하면서 재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예일대 목사 코핀이 합세하여 교회 설교단에서 "정의라는 도덕률은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율을 50대50으로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p343)라고 표명하자 '성차별없는 입학' 전쟁이 재차 발발했다. 그리고 조용히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 남녀공학 4년차에 할당제를 완전폐지에 이르렀다. 남녀공학 첫해 입학했던 여학생, 남학생, 엘가, 브루스터 총장 등 관련 인물과의 인터뷰와 대학도서관의 상세한 자료를 모아 기록한 예일대학 여성사였다. 초기 페미니스트 활동의 기록이라는 면이 주목되는 내용이었고, 근래 한국에서 한창 진행 중인 미투, 페미 현상을 지켜보는데 앞으로는 수긍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톱픽,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지세요. 이곳에서 위안을 구하는가? 아니면 변화를 구하는가?" (p297)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
|
모두 알다시피 예전에 고등교육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성만이 받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명문대학들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대체로) 나는 운 좋게도 교육의 평등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 교육 받았기 때문에 고등교육 기관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때를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고등교육기관의 전환기를 예일이라는 한 대학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 역시 예일대 출신으로, 쉰두 살에 박사 학위를 따기로 하면서 수강한 고등교육의 역사 강의 과제물 주제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다녔던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예일대 기록 보관소를 여러 번 드나들며 수많은 자료와 문서를 읽고, 마흔두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끝에 이 책이 탄생했다. 268년 동안 남학생에게만 문을 열었던 예일 대학은1969년이 되어서야 여학생에게도 문을 (그것도 조금) 연다. 예일 대학과 함께 명문대학으로 꼽혔던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몇 대학에서는 여학생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명문대들이 여학생의 입학을 불허했다. 그리고 많은 예일대 남학생들은 주말에만 여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여학생을 받자고 외쳤고, 당시 예일대 총장이었던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는 우수한 남학생은 인종, 종교, 계층과 상관없이 입학을 허용하라며 진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음에도 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어서 예일대를 남자들만의 섬으로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런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가 태도를 바꾸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연애가 고팠던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하는 욕망이었다. 예일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많은 수의 남학생들이 예일 대학에 여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하버드와 같은 다른 대학을 선택했고, 프린스턴 대학도 남녀공학을 실시한다고 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예일대는 말 그대로 급하게 남녀공학으로 바뀌게 되었고, 10개월 만에 여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고집 부리던 예일대가 여학생들에게 문을 열게 된 이유가 평등을 위한 것도 아니요, 여학생이 남학생과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었고, 전략적인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일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예일 대학이 남녀공학으로 바뀐 첫해에 575명의 여학생들이 등록했는데 남학생들의 지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여학생은 적게 모집했기 때문에 남학생 대 여학생 비율이 7 대 1이었다. 게다가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 총장은 ‘현 상태를 최대한 깨뜨리지 않으며’ 여학생을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최초로 예일대에 다니게 된 여학생들은 소수자이자 개척자로서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남학생이었더라면 당연하게 주어졌을 것들을 위해 투쟁하며 대학을 바꿔나갔다. (...) 예일 대학은 여학생에게 숙소와 수업 등록 자격은 주었지만 운동선수나 고적대원처럼 명망 높은 학생 활동은 여전히 남성들 차지로 두었다. 로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웃기시네, 절대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로리는 필드하키를 하는 다른 여학생을 만났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이 지난 뒤 손으로 쓴 전단지가 밴더빌트 홀 출입문에 나붙었다. “필드하키 하고 싶은 사람? 밴더빌트 홀 23호 제인 커티스나 밴더빌트 홀 53호 로리 미플린에게 알려주세요.” (...) 미국 필드하키의 개척자 콘스턴스 애플비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 교훈을 로리는 이미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p.87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575명의 여학생들 중 셜리 대니얼스, 키트 매클루어, 코니 로이스터, 베티 스판, 그리고 로리 미플린, 이 다섯 명의 여학생들에게 집중한다. 키트 매클루어는 그녀의 부모가 여자애는 트롬본이 아니라 플루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피아노를 치라고 했지만 혼자서 트롬본을 부는 방법을 배워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트롬본을 부는 유일한 여학생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베티 스판은 룸메이트가 장난으로 예일대 지원서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예일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일대에서 베티 스판의 룸메이트가 된 코니 로이스터는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협회 뉴헤이븐 지부의 공동 창립자인 할머니와 미국 최초 흑인 연방 판사로 임명된 고모를 두고 있었고, 또 그녀의 집안은 전부터 예일 대학의 사교 클럽에서 일했기 때문에 예일 대학과 인연이 있었다. 셜리 대니얼스는 아프로아메리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로 편입했으며, 로리 미플린은 키트 매클루어가 여자를 받지 않겠다는 예일대 고적대에 결국 들어간 것처럼 여학생의 운동 활동에 제한을 둔 예일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필드하키 팀을 만들기로 하는 당찬 학생이었다. 이렇게 예일대 여학생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똑똑할 뿐만 아니라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는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 여러 면에서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은 575개 집단인 듯 서로 달랐다.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여학생들은 모두 똑똑했다. 남학생보다 똑똑했다. 그건 첫 학기 성적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굳셌다. 적어도 이건 지원서에서 주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p.77 (...) 게다가 엘가와 촌시는 최초 여학생들에게서 남학생에게는 별로 요구하지 않은 자질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성적을 훑어본 다음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 남자 형제가 넷인 여학생, 규모가 큰 고등학교에 다닌 여학생, 1년 동안 일을 한 여학생, 해외에 살아본 여학생, 운동을 한 여학생, 힘든 경험을 이겨낸 여학생, 이들이 엘가와 촌시가 바란 여학생이었다. 예일 대학이 맞이한 최초 여학생들은 자신 앞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엘가와 촌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촌시는 이렇게 말했다. “소심한 여학생을 뽑아서 이런 환경에 밀어넣은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요.” p.79 예일 대학의 여성 관리자로서 고군분투한 엘가 와서먼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남편 해리와 같은 하버드 대학 화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성에게는 연구 조교 자리 정도만 주어졌기 때문에 남편은 예일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된 반면에 엘가는 연구 조교로 커리어를 시작해야 했지만,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엘가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예일대 대학원 과학 담당 부학과장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엘가는 예일대 남녀공학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여성을 관리직으로 고용하는 일이 드물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몇몇 남성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예일 대학 부학장이 아닌 여성교육 총장 특임비서라는 단어 뭉치를 직함으로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남녀공학 임무에서 엘가는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발휘하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일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비록 남성만 앉던 자리였지만. 엘가는 대학원 부학과장을 하다가 옮겨왔으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예일 대학 부학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브루스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몇 남성 학장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며, 여성이 그런 직함을 달면 그들에게 모욕감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엘가는 ‘특임비서’가 되었다. 예일 대학의 위계질서를 헤치지 않는 직위였다. 엘가와 같은 수많은 여성이 감내하는 이런 모욕이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일 대학에서 엘가의 지위가 내려갈 때마다 이제 막 예일 대학에서 짐을 푸는 젊은 여학생을 옹호할 힘도 줄어들었다. p.75 이들의 모습은 책 앞쪽에 있는 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는데, 처음에 책을 펼쳐서 앞의 사진 자료를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책에 담긴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것이 훅 느껴져서 뭉클했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서 지금의 대학이 있기까지 여성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게 되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지금도 단톡방 성희롱이나 불법촬영 등 대학 내 여성들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나도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 전의 이야기에서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수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도 비슷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더욱.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 영화 <세상을바꾼 변호인>과 <모나리자 스마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는 1969년보다 이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단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과 명문 여대를 다니는 여학생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군분투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반대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나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면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도 감명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lalilu 책의 표지는 제목 아래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이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은 1969년 처음으로 여학생들의 입학을 허락한 명문 대학 예일 대학교에서 일어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실 페미니즘이라기 보다는 여성의 잃어버린 인권과 존재의 의미를 예일 대학교에서 회복한 과정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유 민주주의의 롤모델인 미국 그것도 최고의 명문대학교인 예일에서 어떻게 이토록 남성 우월주의적 제도가 학교전반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분노하게 된다. 특히 공부를 잘하는 엘리트 남자 학생들이 이토록 이기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며 여자의 존재를 무시하고 조롱할 수 있었는지 충격적인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많은 부분에서 남녀차별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는 존재로 존중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예일 대학은 남자들만 다닌 학교였다. 그러던 가운데 마케팅 차원에서 할 수 없이 여자 학생들의 입학을 허락하였지만 성비는 남자 7명당 여자 1명이었다고 한다. 남학생이 87퍼센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조직이 남학생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 속에서 여학생들은 엄청난 차별을 받아야 했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역사 가운데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차별과 조롱과 무시를 당했는지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점점 여성의 존재 가치에 대해 바르고 정당하게 인정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인식은 엄청난 죄악을 만들어내는 씨앗이라는 것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 귀하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차별해서도 안 되고 우습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오늘도 삶의 현장 가운데 고통 가운데 눈물 흘리는 우리의 소중한 이웃을 기억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는 고난과 슬픔 가운데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 책 읽기 시간이 되었다. |
|
누군가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현대 사회는 여전히 바뀌어야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진다. 어느덧 2020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여성들의 위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 여성의 권리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다만 이러한 발언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나 또한 이전과 다르게 여성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앞으로도 나아가야할 길은 멀다. 이 책은 1969년 예일 대학에 들어온 여학생 575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놀란 점이 예일대에 여학생이 입학하기 시작한게 생각보다 얼마 안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을 보다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외국 여성들은 투쟁으로 본인의 몫을 받아내야했던 게 꽤나 많다. 나는 다만 이런 것이 투표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부분에서 많이 노력을 필요로 했다. 이전에 페미니즘 이론 수업을 들었을 때 교차성이론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단지 한 부분에 그치지 않고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여러 초점에서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 또한 그 부분의 일환일 것이다. 단지 여성의 권리신장에만 그치지 않고 여성, 노인, 아이 등 인류가 모두를 포용해 좀 더 평등해지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한 단계 더 나아가야할 방향일 것이다. |
|
예일대 신입생으로 교정을 밟은 해는 1977년. 예일대학이 1969년 처음 여학생을 받고 나서 8년이 흐른 뒤다. 1969년은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막 기지개를 키던 해. 작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예일대 졸업생으로, 예일대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써보기로 했고, 42명의 여성을 인터뷰한다. "이 여성들이 앞서 나아가며 목소리를 낸 덕분에 우리 모두 더 나은 세상을 빚어 낼 수 있었다." 예일대학 뿐 만 아니라 1968년 당시 여학생 입학을 불허하는 미국 대학 명단에는 명문대학이 전부 속해 있었다. 여성이 남성과 함께 할 수 없도록 동등한 자격을 주지 않았고, 이는 마치 남성만 받는 교육은 곧 "일류" 교육이란 의미로 인식하게 한 것과 같다. 하지만 견고한 예일대학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변 대학과 예일대학을 포함. 인종차별, 정치권, 성평등의 시위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 미국인은 교육과 고용과 법에서 여성이 얼마나 차별을 겪는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989년 부터 2009년 사이 미국 대통령이 모두 예일대 출신이기 때문에 어차피 여성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사상이 팽배했다. 때문에 오히려 남성에게 돌아가야 하는 한정된 자리를 여성이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예일대 학생으로 총장까지 오른 부르스터가 강조한 말에서 예일대의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예일대학에서 남학생들이 "그래서 여학생은 어디에?" 남녀 공학을 부르짓는다. 예일대 남학생이 데이트라도 할라 치면, 차로 두 시간 거리의 여대로 가야 했던 이유도 한 몫 했다. 결국, 남녀 공학은 투표로 붙여졌고 투표결과는 200대 1. 거의 만장일치였다. 단지 남성들이 바꾼 것이 남녀공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회에서 이미 성차별에 관한 움직임은 있었다. 다만 예일대학이라는 특수성이 남성들의 판단에서 움직였음으로 시작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1명의 반대표는 1922년 17세에 신입생 자격으로 들어와 46년간 예일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층에서 일어난 인식으로 예일대에도 여학생이 입학하게 된다. page45 예일대 총장 브루스터가 서둘러 조직한 남녀공학위원회는 가능한 현 상태를 최대한 깨뜨리지 않으며 "여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래서 반드시 깨뜨려야 할 것을 깨뜨리는 일은 예일대학에 처음 발을 디딘 여학생들 몫이 되었다.
표지의 흑백 이미지 속 여성들은 모두 예일대 출신이다. 트럼펫을 불고 있는 키트 매클루어에게 최상급 음악당이 있는 예일대는 키트가 그리던 꿈의 대학이었고, 이미 시먼스 대학을 다니고 있던 편입생 셜리 대니얼스도, 아프로아메리카학과(흑인역사연구) 가 개설된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코니도 편입을 계획한다. 코니의 집안은 예일대학교에서 요리사 혹은 관리자로 일했다. 코니네 가족의 오랜 인여네 관한 자부심, 르네상스 여성이 되는데 도움을 주는 전공을 선택할 폭이 높은 예일대의 지원은 당연했다. 재미있는 사례도 존재한다. 베티 스판의 이야기가 그런데, 친구 캐럴라인이 베티 대신 장난삼아 보낸 예일대학 지원서에 덜컥 붙어 버린 것이다. 예일대학은 미국의 양대산맥이었다. 베티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서류를 추가 첨부해 자료를 더 넣어 보낸다. 예일대학에서 여학생을 신입생으로 받는다는 소식에 똑똑한 여성들은 모두 지원서를 작성했다. 한 고등학교에서 예일대학에 지원한 학생 가운데 남, 녀 학생 통틀어 합격자가 1명 배출되는게 전부일 정도로 예일대의 문턱은 높았다. 하지만, 여학생의 합격비율이 1명인데 반해 남학생은 7명 정도 합격자가 배출된다. 예일대가 여학생이 절반인 학교를 원하지 않았고, 후에 남녀학생 할당제는 문제가 된다. page66 예일대학은 최소 2년을 다니지 않은 학생에게 학사학위를 주지 않았다. 신입 여학생의 분포도 대체로 남자 동기의 인종적, 민족적 다야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다시 말해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다. 여학생의 90%가 백인이었다. 몇 백 년 간 남성을 유지해온 예일대는, 성차별이라는 벽을 가까스로 넘긴 듯 했지만, 인종 차별의 문 앞에서 또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일 대학이 아니라 백인 대학에 온 기분이었다는 한 흑인 여학생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입 여학생들은 대체로 자신의 주변에서 인종차별을 몰아내는데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page .111 예일 대학에서 남녀공학을 실시한 바로 그때, 전국의 흑인 학생들은 인종적 연대, 문화적 긍지. 자기결정권 이라는 흑인권력운동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흑인으로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지키기 위해 우리는 내부로 눈을 돌렸다." 흑인 학생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서로를 찾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이 예일흑인학생동맹에 가입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예일대에 여학생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성문제에 대한 성상담소도 예일대학에서 문을 연다. 예일대 4학년 남학생들이 특히 최악이라고 평가한 백인 여학생은 고학년 남학생들이 여자와 자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고, 4학년 남학생들은 학생 명부를 구해와 자신과 잠자리를 한 여학생의 이름에 차례차례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혼전 임신, 성관계에 대한 고민들 또한 여학생들이 뚫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page 295 코네티컷 주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까지 코네티컷 주에서 낙태법 논의는 하나 같이 남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판사도 남성, 입법의원과 변호사, 전문 감정인도 남성이었다. 유력 남성이 하는 클럽 식사에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관행, 강간당하는 예일( 가슴 빵빵한 여자) , 1학년과 2학년, 돈독히 우정을 쌓을 수 없는 기숙사의 구조, 남녀 학생 할당제를 남녀공학 확대촉구로, 코네티컷 주의 낙태금지법, 노조의 임금인상과 부가수당 확대요구 등 예일대학의 관행과 오래된 정서와 자각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예일대 최초 여학생들의 고군분투는 끝나지 않았다. 한 집단에서의 오래된 관습이 바뀌면, 사회 전체로 영향을 발휘해 평등을 만든다. 남녀 공학을 도입한 1969년 4년간 지속되온 남녀학생 할당제가 폐지되고, 그 뒤 예일대의 여학생 비율은 46% 로 두 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성차별을 뚫고, 평등을 외쳤던 똑똑한 예일의 여성들, 예일은 여자가 필요했다. 이는 현 사회와 비단 다르지 않다.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고투한 이들의 노력은 오늘날 까지 울려 퍼지며, 용기에 대한 영감을 줄 것이다. . |
![]()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들어가는 말" -수십 년이 지나서 나는 예일 대학에 처음 들어온 여학생들에 대해 알려줄 만한 책을 찾았다. 하지만 이 여학생들은 그 시대 예일 대학 역사에서 빗겨나 있었다. 책에서는 여학생 입학을 허용한 결정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양. 오히려 내가 궁금한 내용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268년 동안 남학생만 다니던 대학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역사학자 마거릿 내시는 이런 순간을 역사의 '발화점'이라고 일컬었다. -1969년 미국에서는 여성운동이 막 기지개를 켰다. 흑인권력운동으로 인종을 바라보는 미국인이 관점이 바뀌고 있었다. 이 역사의 순간 속으로 예일 대학이 맞이한 첫 여학생들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이 여성들이 앞서 나아가며 목소리를 낸 덕분에 우리 모두 더 나은 세상을 빚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자주 묻혀버린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
![]()
"남성만의 성역, 268년" -하버드나 브라운 대학같은 몇몇 대학은 자매 대학을 세워서 여학생을 가까이 두었지만 그들에게 남학생과 동등한 자격을 주지 않았으며, 이들 중 어느 대학도 남학생이 다니는 교정에서 여학생을 받지 않았따. <에듀케이셔널 레코드>가 밝힌 바로는 "많은 이들 마음속에 '남학생만 받는' 교육은 곧 '일류' 교육이란 의미였다." "슈퍼우먼" -1969년 예일 대학에 들어온 여학생 575명은 서해안과 동해안 사이에 있는 각지에서 왔다. 큰 도시에서도 교외에서도, 또 저기 외떨어진 시골에서도 왔다. 인종도 민족도 제각각이었으며 숙소와 식사와 수업료로 예일 대학에 내야 하는 3600달러를 가족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의 무게도 다 달랐다. ...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여학생은 모두 똑똑했다. 남학생보다 똑똑했다. 그건 첫 학기 성적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굳셌다. 적어도 이건 지원서에서 주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가 미국 명문대라고 알고 있는 예일이 1969년 전까지는 오로지 남자만 지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리 먼 일도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그 전까지 여자는 입학할 수도, 지원할 수도 없는 대학교였다. 그리고 예일만이 아니라 다른 대학교들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처음으로 남자 학교를 남녀공학으로 바꾼,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을 치열한 투쟁 속에서 쟁취한 소중함이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에 담겨 있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반대 속에 시작한 여학생들의 입학은 예일대 남성 졸업자 1,000명에서 고작 남성 850명과 여성 250명 정도로 바꿔나갔으니까. 남성의 정원을 줄이는 것은 절대 안된다는 사투 속에서, 조금 덜 떨어진 남성 입학자 약 10%를 더 받는 한이 있어도 능력있고 스마트한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리겠다는 비합리적인 사투가 있었다. 그리고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화가 난 부분은 단순히 젠더의 입학여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입학하고 난 다음, 학생들의 생활이었다. 예상하겠지만 여학생들은 입학 후 수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서 관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교수님의 부적절한 스킨쉽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당연히 남학생들에게까지 전해져서 예일대 최초 여학생들은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까지 당했다. 샤워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10대 남성이 무단으로 침입한 사건도 있었다. 예일대 여학우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남자보다 아주 아주 아주 적은 인원수만이라도 좀 더 정원을 늘리는 것, 그리고 동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얻는 것. 이것도 역시 쉽지 않았다. 중간에 학교를 떠난 이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즈음에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반전시위, 흑인인권운동 등과도 맞물려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불편한 진실과 과거로 가득한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이지만, 우리에게는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같은 책이 꼭 필요하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보기 전까지는 나는 예일 대학교가 남학생들만 다녔던 학교인 줄 모르고 있었다. 1968년이 되어서야 여학생들의 입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미국은 좀 다른 줄 알았는데...미국 역시 예전에는 여성이 지도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여성의 입학을 받아들여 여성의 지도자를 만들려고 했을까? 여성도 수준 높은 교육의 기회를 받을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을까? 사실 예일이 여성의 입학을 받아들인건 경쟁 대학교에서 여성 입학을 받아들이자 많은 학생들을 경쟁 대학에 빼앗길끼봐 여성 입학을 허가 했다고 한다. 하지만 87퍼센트가 남성이었던 1969년 9월 '남성 지도자 1000명'이란 구호는 예일 대학 곳곳에 퍼졌다고 한다. 여성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인 학교, 이곳에서 여성이 살아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은 투쟁이 있었을까? 수세기동안 엘리트 교육은 남성만 받아왔었는데 이제 그런 교육을 여자가 받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최초에 예일 대학에 들어온 인종도 민족도 다르고,사는 곳도 달랐던..하지만 누구보다 똑똑했던 여성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시대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겪었던 많은 제약과 노력들을 주로 다섯명을 중심으로 인터뷰해 자료를 얻어 기록하고 있다. 다섯명의 여학생들은 부단히 주변 세상을 바꾸어 나갔고 변호사,교수,의사등등 전문직을 가진 여성으로 거듭났다. 졸업후에도 끊임없이 장벽을 깨뜨려 갔다. 처음에는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 없었으나 1977년 캐럴 스토리는 코낼 대학교 의학 전문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를 위해 여성만 싸워온건 아니었다. 예일 대학이 좀 더 공정한 대학으로 바뀌길 원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남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예일은 바뀌어 갔다. 수백건의 문서와 인터뷰 기록들을 바탕으로 예일 대학의 문을 두드린 여성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어 정말 유익했던 책이다. 지금의 여성들이 의심없이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누군가는 끊임없이 싸워서 여성들이 이런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싸워온 많은 여성들으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