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강의 / 강신주, 고미숙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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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란 책은 신선하지 않다. 아마도 오래 전에 저술된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 혹은 많은 이들이 읽어서일지 모르고,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대한 폐단을 담은 한국사 책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되고 있는 유학, 혹은 성리학에 대한 인식이 팽배한 오늘날, 아무리 논어에 대한 가치가 강조되어도 어딘지 모를 장벽이 생긴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만큼 논어와 공자의 이야기는 너무 먼 것만 같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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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과 결혼했다. 그리고 내 동생은 논어를 읽더니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공자님이랑 결혼했어." 라고.. 내가 그 생각을 한건 고등학생 때이고, 내 동생은 현재 고등학생이니까, 우리 자매는 부모허락도 없이 참 빨리도 결혼했다. (물론, 앞으로 결혼 안하겠단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하며, 공부하고 살겠단 말이다.)
이굴위신. 이 책을 읽으니 생각이 났다. 이 책은 내편과 외편으로 나뉜다. 내편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다뤘고, 외편은 국내외를 막론한 재미있고 유익한 문사철이다. 고전의 글은 생각하면 어렵다. 특히, 해석된 글을 또다시 다른 작가가 개인의 판단으로 해석한 글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해석된 제시문을 참조하여 현대적인 시각으로 제2의 해석을 해놓은 책이다. 물론 모두 그런 내용이라면, 난 아마 이 책을 읽다가 덮어버리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가미하고 있다. 그래서 고전도서로 읽을 만 했다.
또 하나의 고전도서의 복병은 왠지 머릿말 부터 읽으면서 문제가 있다. (나는 항상 책의 머릿말은 꼭 읽는다. 왜냐하면, 그 작가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어떤맘으로 썼는지, 어떤 식으로 읽어나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맹자, 공자, 그리스로마신화, 삼국지, 열국지 등을 이미 통달하고 있어야 할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읽는다고 용을 써보지만, 왠만한 글들은 초반부터 어렵다. 허나 이 책은 현재적인 시각으로 써서 다른 인용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책에 잘 안쓰는 "(?)"이것 (글을 쓸 때 문맥에 맞는말인지, 실제로 있는 말인지 긴가민가 할 때쓰는..) 이 많다. 그래서 네이버 지식in읽듯이 훌훌 넘어가는 장점이 있는 책이었다. 물론, (?) 이것때문에 약간의 신빙성은 잃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쓰는 와중의 의견은 모두 작가의 맘이니까 읽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장이 없다. (물론, 제시문이 더러 인터넷에 나온 내용도 인용하고 있다.)
읽다보니, 글쓴이와 내가 약간의 닮은 점도 눈에 띈다. 그래서 그런지 고전적인 내용의 도서임에도 쉽게 읽혀서 좋다. 첫 몇 페이지를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다. " 사람은 책을 가리지만, 책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뒤를 이어 ...
라면서 독자에게 '싸움의 기술'을 요구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래! 책을 자주읽는 나에게 있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요즘의 맞춤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 이미 2500년 전의 공자님께서 제자들을 가리칠 때 맞춤식 교육을 하였다고 소개하며 일화를 들었다. 역시 고전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묘미란 고전 서적의 일화를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작가는 훌륭한 스승은 죽기전엔 풍자의 왕 죽어서는 진실된 왕이라 했는데, 이런 훌륭한 스승이 있어 우리에게 전달된 것은 그에 따른 훌륭한 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아이들은 태어나면 누군가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새로운 것을 익혀 나간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제자가 된 것이고 또한, 가르치는 쪽은 스승님이 된 것이지만, 그들을 모두 훌륭한 스승이라 할 수도 없고, 그 아이들이 훌륭한 제자라 할 수도 없다. 반면에 옛 성인들이 훌륭한 스승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자들이 무조건 적은 하이퍼그라피아(글쓰기 중독증)이란다. 나도 작가님처럼 기회가 된다면 훌륭한 스승에게 배워 하이퍼그라피아로서의 삶을 살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
외편의 첫 내용은 옛기록을 읽을 때의 주의점이 나와있었다. 이는 앞으로 고전을 읽으려는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다. 또한 외편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국지적이지 않다. 국내외 이야기들, 일화들이 여러 비슷한 이야기들로 가미되었다. 그 중에 외편의 앞부분에 나왔던 장자의 우화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또 우리들이 흔히 아는 심청이, 바리공주이야기 등.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빌어 주역과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였고,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책을 읽어보았다.(물론, 그리스신화랑 관련이 많아 출생에 대해서 이해하기 까다로웠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이 이야기에 관한 인용된 책도 읽고 싶단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 그리고 옛것이지만, 새로운 지혜를 많이 배우게 해주는 것이 고전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고전의 원본인 소학, 논어, 대학, 중용 등 마치 옛 선비인 양 고전 책들을 읽고, 나름 대로의 해석도 붙여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쓴 유명한 스승님에 대한 책들도 읽어봐야 겠다. (특히, 내 동생이 결혼했다던 공자의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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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고전을 재조명하고 있는 책들을 근자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굴위신(以屈爲伸)이란 책 제목부터 고전서의 색깔이 농후하다. 이굴위신의 뜻은 굽힘이 없으면 폄이 없고, 폄이 없으면 굽힘이 없다는 뜻이다. 굽힘과 폄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서로 반대인 것 같으나 한 가지만은 존재하지 않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이 책은 내편과 외편으로 나뉘어져 있고 내편에서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 이야기를 외편에서는 노장과 저자가 선택한 여러 문장에 대해서 다루어지고 있다.
내편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 안회와 자로는 서로 상반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회를 주워온 자식, 자로는 데려온 자식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공자는 안회가 하는 일마다 칭찬을 하고 편애를 하는 듯 보인다. 반대로 자로에게는 꾸지람이 일색이다. 이리 대했던 까닭은 각자에게 필요한 방법으로 제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 보고 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고요한 인품인 안회에겐 칭찬이 필요했기에 그리 대했고, 공자의 젊은 시절을 닮은 자로에게는 자신의 실패를 따를까 염려하여 꾸짖어 가르쳤던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때도 자식의 성품을 봐서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처럼 공자도 안회와 자로에게 그리 대했던 것이다.
외편의 '나의 운세' 부분에선 주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 두었다.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속에서 사사로이 일신의 길흉화복을 겁도 없이 남발하는 세태를 꾸짖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무릇 하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감히 점을 치지 않는데 저는 지금 하늘을 섬긴다 하더라도 점을 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이런 뜻에 매우 엄격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주역」이란 주나라 사람들의 예법이 들어 있는 것이어서 유자(儒者)라면 그 깊이 있는 말과 오묘한 뜻을 발휘하여 밝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209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세상 사는 지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일 것이다. 현대는 과거와 달리 빠르게 변화를 추구하고 여러면에서의 사회구조는 다르지만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도에 대한 이상적인 푯대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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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변하는 속도가 다른 이 시대에 왠 고전이냐 할 수도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더 고전을 음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질문하고 그게 모든게 답인 줄 아는 현대인들에게는 한 문제 만으로도 몇 날 몇 일을 고민하게끔 하는 즐거움을 모른다. 뭐든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기다리게 되면 짜증부터 낸다. 물론 저 빨리빨리의 성향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발전하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과의 교류는 너무나도 팍팍해 졌다 오죽하면 가족끼리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각자 방에서 카톡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이다 힐링이 요즘 유행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에게 위로 받고 싶은거다. 너무나 팍팍한 이 현실에서 사람냄새나는 과거가 그립고 느림이 그립고 아날로그가 그리운거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스마트한 세상 스마트하게 살아야겠지만 뭐든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된다면 그것만큼 불균형한 삶이 없다 공자가 안회과 자로에게서 균형을 찾고 싶어한것 처럼 빠르디 빠른 디지털 세상에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고전이 고리 타분하다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고전을 사람들이 계속 찾는 이유는 그 고리타분 함 안에 仁 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 仁이 사람들의 상처 받은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고전을 더욱더 그리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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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편의상 내편과 외편으로 나뉘어져"있다. 내편은 공맹사상에 대해 오늘날을 살고 있는 저자가 나름의 생각으로 해석하고 개인적 소회를 풀어놓은 글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외편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노장(사상)을 비롯, 국내외를 막론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문사철의 세계를 두루 편력한 것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내편은 저자가 한문공부와 병행한 것으로 보이는 동양고전강독시에, 특히『논어』와 『맹자』를 읽고나서 드는 생각의 단편들을 기술한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외편은 그것이 그 외 여러 글이 그 대상이 된 것 뿐이다. 내편과 외편이라 분류한 것은 고전냄새를 풍기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사실상 <논어>와 <맹자>에 대한 글이 많아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뿐이다. 모든 글의 개연성은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그것은 바로 독해에 관한 '저자의 의식' - 이는 종종 책에서 '싸움의 기술'로 표현됨 - 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이나 몇몇 책을 새롭게 조명하는 해설서라기보단, 《장정일의 공부》와 같은 독서일기랄 수 있겠다. - 여기에 수록된 글은 모두 저자인 양선규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는 '인문학 수프 시리즈'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한다. 외부에 드러내놓은 자신의 공간에서 써나간 글 답게, 대화체이지만 혼자 길고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개인적인 의식이 이 책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
내편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렇다. 공자-안회-자로의 관계와 상징을 살피기도 하고, 공자의 시론(詩論)을 새로이 해석해보기도 하고, 위대한 스승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 외에 유가의 4가지 인물 유형, 『논어』해석의 어려움, 아는것·좋아하는 것·즐기는 것을 서열을 매기는 기존의 해석방식, 식자(識者)들의 인정투쟁, 공간의 변화를 생각해보기, '확장-맥락-해석'의 독법, 글쓰기 공부에 있어서 유념한 것들, 未知生 焉知死(미지생 언지사)의 풀이, 『맹자』의 義와 『논어』의 仁, 『맹자』속 '부자유친'과 관련한 문장들의 의미 재해석 - 이문열의 소설『시인』을 함께 살펴봄,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게 되는 '뻘'스러운 이들, 도제식 교육, 不仁한 자들, 유기견을 보며 드는 생각, 舜임금의 大孝와 고구려 호동왕자의 효·불효 딜레마 등을 이야기하며 본인의 단상을 풀어놓는다.
외편은 노자 『도덕경』의 '功成而不居', 『장자』의 輪扁造輪와 庖丁解牛, 『순자』의 莫神一好를 비롯하여, 정재서의 『동양적인 것의 슬픔』에 나온 入火自燒,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본인이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 고전소설『흥부전』과 『심청전』,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에서 읽은 강희맹의 <도자설>,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에서 읽은 박지원의 <관재기>, 나관중『삼국지연의』에 수록되어 더욱 잘 알려진 제갈공명의 <출사표>, 이형근『삼국지 죽이기』에서 재미있게 본 '읍참마속'의 대목, 강효백의 『협객의 나라, 중국』에서 나온 중국협객과 피터 루이스의 『무도의 전설과 신화』의 일본 무사, 사마천의『사기』「열전」, 중국 진나라의 간웅 조고 - 김길형 편저 『本 초한지』와 Daum검색을 통해 살펴봄-, 정재서 엮음『산해경』 과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유협의 『문심조룡』(역시 위 정재서의 『동양적인 것의 슬픔』에서 발췌독), 이탁오의 『분서』(채운 해설서), 성백효 역주 『논어집주』등을 읽은 뒤 드는 감상 등을 풀어간다.
읽어나가며 수시로 만나는 저자의 독창적 견해(?)에 딱히 반론을 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읽으며 음미하였다. 생각도 이리저리 그네타듯 왔다가기에 메스를 대고 읽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 저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선에서 읽어나갔던 듯 하다. 그런 이유도 있기에 이 책의 내용이 딱히 전체적으로 연결지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파편화되어 기억에 남은 저자의 글 가운데, 책을 읽으며 저자가 들었던 생각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저자의 글쓰기론(p.105 이하) 정도만이 인상에 남았을 뿐. 고전의 원전보다 주로 해설서를 통해 생각을 이어나간 것도 인상에 남았다. 고전을 어렵게 느끼지말고, 경로가 어찌됐든 또 어떻게든 자기 나름대로 읽고 이해하며 즐기는 선에서 고전의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로 쓸 수 있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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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위신 : 굽히지 않고는 펼 수 없다. 내편, 외편을 나눠 내편에서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외편에서는 노장을 비롯하여 유익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저자의 말이 있었다. 작가처럼 한자라면 어려워서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제목에서부터 어렵게 느껴졌다. 찬찬히 읽으면 나아질까...굽히지 않고는 펼 수 없다. 라는 뜻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논어의 첫 장을 몇 번 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장 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했다. 여기에서도 대못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읽지 못하는 나약함이 내게는 대못이다.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자꾸 빗나간다. 한자와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그러면서 나는 아직 인문학 책읽기 준비가 안되었나? 하는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들어 결국은 “너 하는 대로 복이 따라 온다.”라는 생활의 지혜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게 나를 거의 무지에 가까운 상태로구나 라는 의식을 하게 만든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공자를 존경했지만 공자에게 어떤 존경할만한 점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다. 읽으면서 사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간간히 나오는 예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어 다행이며 이 책을 마지막까지 집중하게 했다. 책들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즐거운 책읽기를 한다. 인문학이라는 분야는 어렵게만 느껴지면서도 가끔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대견함에 뿌듯하다. 이런 느낌 덕분에 책읽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입에 맞는 책만이 아닌 다양한 책들을 접하면서 나 자신을 키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채워나가는 책읽기를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