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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에 디자인 시장에서 급 부상한 키워드는 아마 '착한 디자인'과 '에코 디자인'이 아닐까. 지난 5월 나는 CA컨퍼런스에서 <착한 디자인의 매뉴얼>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장작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컨퍼런스가 끝나고 느꼈던 감정은 공허함.. 비슷한 것이었다. 이제 막 새로운 개념(착한 디자인)에 대한 존재만 알게된 나는 그 개념에 대한 자세하고 좀 더 개념적인 설명에 대한 갈증이 생겼던 것 같다. 이제 막 그 개념에 대해 겉핥기를 시작한 내게 이 책은 좀 더 자세하게 착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가볍고 한 손에 쉽게 잡히는 이 책은 출퇴근 하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불편함 없이 보기에 '착한' 북 디자인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런데 표지 디자인은 무언가 꺼림칙하다. 이모티콘이 웃고 있긴 한데 입 주위가 찢어진 듯한 형상으로 거칠게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책 안의 내용이 오롯이 '착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집중 되어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표지 디자인이 내게 주었던 그 어렴풋한 느낌은 책을 읽으면서 확신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과연 착하다라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것에 있었다. 착한 디자인이라는 네이밍이 주는 이미지는 참 좋다. 뭔가 올 곧은 느낌이고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어쩌면 무조건적으로 착한 디자인을 지향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착한 디자인이서 '디자인'을 빼고 요즘 '착하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요즘 '착하다'라는 의미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착하다..라는 문장은 뭔가 미련해 보이고 손해 보는 이미지가 있다. 물론 착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말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와 문헌 연구를 통해 '시장 경제에서 '착하다'는 표현은 한시적으로 불안한 가치'라고 말한다. 누구를 위한 착함인가.. 약자를 위한 착함. 약자는 누가 정의는가. 약자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강자로서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은 꽤나 흥미로웠다. 약자를 위해 착한 디자인의 명분을 만드는 요즈음의 시장의 논리는 어떻게 보면 영악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비판적인 태도 없이 특정한 가치의 유행에 편승하는 것은 현실의 감각을 무디게 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착한 디자인'의 필요성과 이제 너네(디자이너)도 조금 손해 보더라도 이런식으로 해라-라고 강요하는 언론의 목소리에 반항할 수 있는 의견이다.
저자는 맺음말을 통해 자신이 앞서 말했던 착한 디자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는 비판적인 측면이 부각 된 것에 대해 독자들이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착한 디자인은 필요하다. 하지만 착하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면죄부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착한 디자인'이 유행이고 붐이다. 혹은 트렌드다. 비판적인 사고 없이 다수가 그것을 지지한다고 해서 편승하지 않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착한 디자인'에 대해 다른 측면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 좋았다.
판형도 작고 몇 페이지 안되는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자의 대단한 노고가 엿보였다. 엄청난 양의 각주들을 통해 얼마나 많이 착한 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고 고심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난 여러 권의 추천 도서들을 얻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숙제가 엄청 나게 쌓인다. '진짜'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책에 이미지가 별로 없는 게 아쉬웠다. 페이지 수가 좀 많아지더라도 리퍼런스 컷이 있었다면 공부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이 됬었을텐데.. 나중에 혹여라도 다시 이 책이 리뉴얼되어 나오게 된다면 꼭 소장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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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착한 디자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조금은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는내내 심오함 가득함과, 디자이너로서의 본질적인 문제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움에 괜시리 마음이 찔렸다.
이 책에서는 전반적으로 '착한 디자인'의 정의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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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쯤 보면, 일본에서 일어난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혹자는 그것이 밸브의 디자인 문제때문이라 하고, 혹자는 시스템 상의 문제라는 이야기 때문에 대립된다고 하는데, UX분야에서 권위있는 도널드 노먼이 '밸브 디자인의 문제'라고 언급하면서 더욱 크게 거론되고 있다.
짧은 소견으로는 밸브 디자인 만의 문제는 아니라 생각된다. 사람의 실수도 당연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를 디자인의 탓만으로 돌리기엔 디자이너의 역할이 너무나 가중된 것이 아닐까? 뒤쪽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야근이 난무하고 상업성이 중요시되고 디자이너가 창의성과 책임감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박탈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디자인만의 탓을 하는 건 아닌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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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도 꽤 흥미로웠다. 지역에 맞는 효율적인 기술을 언급하며, 슈마허가 "우리에게는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이 있다"라고 말한 부분. 주어진 환경과 기술을 이용하여 적정한 기술을 이용한 디자인이 어쩌면 착한 디자인이 아닐까, 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얼마전 다른 세미나에서 들었던 '에티오피아의 햇빛 영화관' 이야기가 떠올랐다.
MYSC와 함께 한 에티오피아의 햇빛 영화관. 문화생활에 대한 니즈가 그들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 니즈에 대한 해결책을, 에티오피아의 가장 큰 강점인 햇빛 태양광을 이용했다. 낮 중에 충전해두었다가 이를 기반으로 영화상영을 하는 사소하지만 적정기술을 이용한 적당한 형태.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영화관이지만, 그들은 굉장히 행복해하고 만족해 한다고 한다. 이런 부분도 착한 디자인의 일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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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어떨까? 애니 레너드는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행동이나 잘못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망가진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며 '취하고-만들고-버리는' 치명적인 시스템에 대해 비판했다. 이 부분을 읽는데 머리를 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마트에서 주는 비닐봉지를 예로 들어보자. 비닐봉지를 아예 안팔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 다시 가져오면 100원을 준다는 보상심리를 이용하기 보다는, 아예 안팔아본다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기 마련이다. 아예 비닐봉지가 없다면, 집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지 않을까? 착한 디자인이라면, 아예 그런 시스템 구조나 근본적인 문제부터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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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덮으면서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착한 디자인'에 대해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책이 얇은 것에 비해 깊게 파고드는 부분도 있었고, 읽는 내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그런가. 그래도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과연 내가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책에서는 말한다. 착한 일이란, 우러나는 내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안, 다른사람들의 시각도 중요하다고. 아무리 내 의도가 착했어도, 받아들이는 이가 그렇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아마도 세상이 발전하고 상업성이 증가하는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되는 착한 디자인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며 굉장히 어려운 사안이라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지는 이 책, 한번 읽어볼만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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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말이 얼마나 폭넓은 의미를 가진 말이 되었는가. 어쨌든간에 '좋은'의미를 가진 수식어로 무한정 어디에도 붙일 수 있는 형용사가 되었다. '착한'이라는 형용사가 주는 호감이 얼마나 컸던지, 나도 <'착한'디자인>이라는 말에 끌려 단번에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을 읽은 지 좀 되어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기대했던 윤리적인 그린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보다 포괄적으로 제목 그대로 '착하다' 라는 말에 냉철하게 접근하고 폭넓게 바라본 책으로 기억한다. 책 이름처럼 이 책은 '착하다'는 말 자체에 계속 집착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간에 착한 디자인을 하고자 한다면 조금이라도 착해지고 싶고 착한 일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때때로 꺼내보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보면 좋은 책이다. 너 정말 착한거 맞아? 착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해? _ 일단 하기로 했다면 자문하는 것은 재활용아트를 하기 위해 야쿠르트병을 무의식적으로 사는 것을 아는지 묻는 만큼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 기억해놓고 싶은 부분들을 표시해놓았는데, 어쩌면 착한디자인은 오늘의 복잡한 문제와 불만을 간편하게 해소하려는 방편과 같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과 같은 거다. 원자력발전소의 근원적인 위험성이 문제인가 그것을 관리하는 안전성의 문제인가 그것들이 문제가 아니라면 결국 원자력 사고의 원인은 디자인을 더 잘 하지 못한 것에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조와 제도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디자인과정에서의 문제와 해법을 찾고 있다. 그것이 도덕으로 귀결되어 디자인은 착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p.27) 환경과 디자인을 소비주의라는 토대에서 풀어나간 이들도 있다. 조너선 채프먼은 "해체 가능한 디자인, 재활용 가능한 디자인, 재활용 및 자연 분해할 수 있는 재질 등 우리의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생산과 소비 모델의 전략적인 대안은 지난 몇 년 동안 여기저기서 개발되어왔지만, 그 중 대부분은 낭비적인 생산과 소비의 흔적을 지우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고 하면서 소비문제에서 원인을 찾고자 했다. (p.34) - 흔히 '착하다'는 말과는 어울리지않게 초반 책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착한디자인을 하고 있는 기업의 대표 인터뷰도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워밍업으로 여기서부터 읽고 흥미를 가지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 착한디자인은 어찌보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옛 사상가들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좋은 노동과 연결짓기도 한다. 그리고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착해야만 하는지 철학적으로 풀고 있다. "우리 문화는 다른 형태의 거짓 자아를 생산해냈다.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타주의자다."(p.107) 착한디자인이라는 표현은 한 분야의 사회적 역할이라기보다는 디자이너 개인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p.107) '착한'이라는 수식어는 기업이든 소비자든 현재의 소비주의를 긍정하는 입장을 전제로 한다.... 기업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 (p.108) - 뒤로 갈수록 소개에 버릴 수 없는 문장들이 많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목차를 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책을 읽어야 확실히 알 수 있는 책이기에 꼭 목차를 넘어 페이지를 펼쳐보기를 권하지만 단지 책의 흐름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든 목차를 보기를 권한다. -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마주하기 두려워 어쩌면 감추고 있었을지 모를 문제를 꺼내 놓았던 것인데, 어쩌면 이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가장 큰 부분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한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빨랭이'라 한다.(돔 헬더 카마라 주교) (p.67) 스티븐 헬러는 이 점에 대해서 "가치중립적인 디자인의 이상은 위험한 신화이다. 결국 모든 디자인 솔루션들은 드러나든 함축적이든 일정한 편견이 반영된다. 정직한 디자인일수록 편향성을 숨김없이 알리지, 괜한 보편적 '진리'와 순수함을 내세워 수용자들을 기만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p.158) 사실 디자인과 다른 예술분야도 한 시대와 역사를 대변해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기업의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디자이너에게 모든 짐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또 그런 디자이너라도? 디자인에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착한 디자인을 넘어 디자이너의 자세까지 알려주는 책. 다시 들춰보니 이래선 안되겠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한다는 책의 부름이 강력하게 다가오는데? 오바일지도 모르겠지만 착한 디자인과 관련하여 이 책을 처음 접했다면 이 책을 하나의 맵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삼아도 좋을 법하다. 좋은 디자인만 하지말고 좋은 일을 하라. (데이비드 버먼) (p.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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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 손보다 한두마디 더 큰 이 책은,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온 착하다는 개념과 디자인이라는 단어, 그리고 그 둘의 조합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기초과목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은 '디자인은 비즈니스'라고 하셨다. 그 말이 멋있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되뇌였다. 'Design is Business'. 그런데 착한디자인 앞에 붙는 저 '착한'이라는 말과 비즈니스는 참 다른 것 같다. 세상을 구해야 할 것 같고, 한없이 퍼줘야 할 것 같고, 왠지 돈을 버는 것과는 인연이 참 없어보이기도 한다. 반면 '착한디자인' 하나만으로 사회의 구조와 제도의 모순을 간편하게 뒤집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도 하게 한다. 최근 건축 전공 대학생들이 잠자리를 만들 수 있는 종이박스를 노숙자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사례를 이 책에서 보았는데 이 또한 표면적으로는 잠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착한' 시도가 될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결방안보다는 디자인이라는 껍질로 미시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아이티와 동일본 대지진 떄 난민들에게 임시 주거지를 제공힌 사례도 인상깊었다. 디자인이 모든 문제의 답이 될 수는 없지만 디자인이 공동체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공헌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지 싶다. '기업이 착해진다는것' 챕터도 생각할 여지를 주었는데 '탐욕스러운 기업상'과 '경제정의기업대상'을 같은 업체(삼성SDI)가 받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사실 언뜻 보면 사업내용상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기업이 문화활동 지원이나 봉사활동 등으로 이미지를 착하게 잡는 경우가 많다. KT&G의 예를 들자면 이들도 조PD를 광고에 내세우며 젊은 이미지로 탈바꿈하더니(상당히 오래전 이야기인것 같다 ㅠ) 상상마당 같은 문화시설이나 예술가들, 디자이너들을 후원하며 문화를 선도하는 바람직한 기업의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담배는 기호식품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유해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에 본인과 같은 비흡연자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좋은'과 '나쁜'으로 분류하자면 담배를 생산하는 기업은 '나쁜'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KT&G는 문화사업등 좋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착한' 기업의 느낌이 물씬 난다. 착한디자인 하면 머리에 처음으로 떠오르는 '에코디자인' 혹은 '재활용디자인'도 잘 짚어봐야 하는데 일례로 알루미늄은 재활용률이 높지만 이것의 채굴로 인하여 일어나는 엄청난 환경파괴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재활용은 물론 친환경적이지만 오늘날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쓰레기양을 생각해보면 소비를 줄이는 것이 폐기된 물품을 재활용하는 것보다는 우선적인것 같다. 이 책의 187페이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보다는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역할의 무게는 선생님이나 마트주인이나 경찰관(혹은 기타 여러 직업 등등)이 우리네 세상에서의 중요한 만큼보다 무겁지는 않을 게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개인으로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착한디자인'은 개인적인 실천, 혹은 이미지메이킹/이슈메이킹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서로의 상황을 보다 이해하고 일상 속에서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나가는 활동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