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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읽고 못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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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 16일 일본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아십니까? 아신다고요, 그럼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아십니까?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이 될 박근혜를 아십니까? 당근 아신다고요, 그럼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물론 아시겠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냐고요? 저는 뒤끝이 긴 여자거든요.   2   강상중, 현무암 두 분의 공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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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 16일 일본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아십니까?

아신다고요, 그럼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아십니까?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이 될 박근혜를 아십니까?

당근 아신다고요, 그럼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물론 아시겠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냐고요? 저는 뒤끝이 긴 여자거든요.

 

2

 

강상중, 현무암 두 분의 공저인 이 책은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출간한 〈흥망의 세계사〉 시리즈의 하나인 <대일본·만주제국의 유산(2010)>의 완역본이다. 저자분들은 1932년~ 1945년까지 15년 동안 존재했던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을 통해 한일 양국의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쇼와의 요괴' 기시 노부스케와 '독재자' 박정희를 다룬다. 이분들은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국의 귀태(鬼胎)’라고 정의내린다. 하지만 두 인물의 비판으로만 연속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만주란 공간과 만주국의 역사, 만주국 인맥까지 조망하여 한일현대사와 한일 관계사까지 설명해 주는 책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1936년 만주 산업부 차관으로서 만주국의 산업진흥을 주도했고 1941년부터는 도조 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역임했다. 그가 만주국 시절에 이룬 경제개발정책이나 각종 국가 통제 시스템은 일본에서는 그의 후예 보수 정치인들에 의해서, 한국에서는 만주국 군인이었던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와 그 주변 만주 인맥에 의해서 계승된다. 일본 패망과 종전 뒤에 그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으나 한국전쟁과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필요에 의해 극적으로 풀려난다. 부활한 그는 1957년 일본 총리대신이 되어 일본의 고도 성장과 보수정치연합, 미일안보조약개정을 이끌었다. 또한 박정희와의 만주국 인연으로 한일 회담의 물밑작업을 도맡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때에는 일본측 특사가 되어 당시 다나카 수상에게 박정희 정부 측의 뒷돈을 건네는 것을 성사시켜 일본의 대한 경제원조를 유지하기도 했다. 1987년 여름 91세로 사망.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는 혈서를 써 바쳐 1940년 4월에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 즉 신경(新京) 2기로 입학하여 황국 군인의 꿈을 이룬다. 만주란 공간은 가난하고 나라 잃은 백성들이 살 곳을 찾아서 마지못해 혹은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만 향하던 곳은 아니다. 다카키 마사오처럼 야심과 출세욕에 찬 식민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간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만난 만주 인맥으로 박정희는 만주군 소위로 만주에서 항일세력 토벌하는 황군에 복무했던 과거를 지우고 해방 후 대한민국 소위가 된다. 또한 여순항쟁 때 남로당원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살아남는 행운을 누린다. 6.25로 군에 복귀한 그는 5.16 쿠데타로 집권하여 대통령이 되고 장기독재집권 끝에 1979년 살해된다. 집권 당시 그는 1930년대에서 패망까지 실시되었던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와 행동법칙에 따라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한마디로 다양한 전시 국가주의 동원정책과 교육정책을 사용하여 한국의 경제성장과 총력안보체제를 이끌어 간 것이다. 박정희가 실시했던 수많은 정책과 기구는 대부분 만주국에서 기시 노부스케가 시행한 것들의 카피본이었다. 1961년 기시 노부스케를 만난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어로 내가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떠올리며 구국의 일념에 불탔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조슈 세력의 후예이자 만주국의 관료였던 기시 노부스케는 이후 박정희와 더불어 한일관계를 이끌어 가게 된다. 둘 다 만주국의 귀태였기 때문이었다.


머리말과 제1,3장, 맺음말은 강선생님이, 2,4장은 현선생님이 맡아 집필하시고 전체적으로 강선생님께서 다시 손 보신 책이다. '귀태'가든가 사망을 '사거'로 표현하는 등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살린 번역이 조금 생경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찬찬히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나같이 뒤끝 긴 독자들에게 권한다. 

 

3

 

아베 신조는 일본의 전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 총리이자 아시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그의 작은 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며, 참의원 의원인 기시 노부오(岸信夫)가 그의 친동생이고 부인은 모리나가유업(森永乳業)의 창업자 모리나가 타이헤이(森永太平) 외손녀이다. (여기에서 같은 집안인데 성이 다른 이유는 일본 특유의 데릴사위, 양자 제도 때문임. 양자도 친가뿐 아니라 외가로도 감. 이런 이유로 일본 극우 정치인들, 성이 달라 다른 집안 사람들 같지만 알고보면 다 친척인 경우가 많음). 여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2차대전까지의 특권층이 현재도 정, 재계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 전범 세력 역시 종전 후 전범으로 처단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친일파처럼 미군정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기위해 극우 발언을 일삼아 대중적 인기와 기득권 유지, 권력획득을 꾀한다. 어떤가, 일제시대 친일 세력이 미국에 의해 구원받아 다시금 기득권층이 된 후에 자신들의 구린 과거를 가리기위해 반공과 안보,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불리하면 빨갱이 종북세력 발언을 일삼는 우리네 극보수 세력과 똑같지 않은가.  A급 전범의 외손자와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정권을 잡은 한일 양국의 마래는 어떠할 것 같은가?

 

내게는 미래를 내다볼 혜안이 없다. 단지 이 현상에 대해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강상중 선생님은 이렇게 명쾌히 말씀하셨다는 것을 밝힌다.

 

이렇듯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게는 애증이 공존하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마치 발 달린 망령처럼 되살아나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을 움직이고 있다. 두 사람의 관(棺)에 제대로 못질을 안 한 탓일까.

- 본문 10 ~ 11 쪽에서 인용.

 

* ‘귀태(鬼胎)’라는 표현은 관동군의 독주에서 패전에 이르는 시기를 일본역사의 “비연속적 시대”라고 규정했던 일본의 역사소설작가 시바 료타로가 만든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자궁내 융모막 조직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이상증식(異常增殖) 하는 ‘포상기태’를 뜻하지만, 이 책에서는 태아가 아닌 존재로 태어나서는 안 될, 불길한 존재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 아베 신조와 악수하는 박근혜의 사진이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 건 곳으로 가 보시길.

 이번 선거 유세 TV 광고 장면이다. "검증된 글로벌 리더십"이라나 뭐라나.

 

복사http://bigmoth.blog.me/80175822279



m******n 2012.12.23. 신고 공감 13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미완의 파시즘(未完のファシズム)
"미완의 파시즘(未完のファシズム)" 내용보기
재밌고 깊이있게 파고들어 역사를 알게해주어 점수를 높이주고 싶다. 2012 시바 료타로 수상작이란다.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좋은 내용에 최고점수를 주고싶다.  제목 파시즘 때문에 그저 그런거구나 하겠지만 정치 이론이 아니다. 일본 발음 정말 웃기지않나.파시즈무~ 칭다오(아오시마)전투-1차대전 중 드물게 동아시아가 전쟁터가 되었다. 중국에 있던 독일 점령지를 일본이 공격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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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깊이있게 파고들어 역사를 알게해주어 점수를 높이주고 싶다. 2012 시바 료타로 수상작이란다.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좋은 내용에 최고점수를 주고싶다.  제목 파시즘 때문에 그저 그런거구나 하겠지만 정치 이론이 아니다일본 발음 정말 웃기지않나.파시즈무~

칭다오(아오시마)전투-1차대전 중 드물게 동아시아가 전쟁터가 되었다. 중국에 있던 독일 점령지를 일본이 공격 승리 (2차대전 때문에 일본과 독일이 언제나 가까운줄 알았더니 아니다. 1차 대전 까지 적대국이었다.)1914년 일본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면서 영국군, 이탈리아군과 연합으로 중국 칭다오에 머물고 있던 독일을 1주일 만에 함락시킴. 1차 대전적인,총력전 시대의 개막

일본 육군의 옥새는 1942년 알류산 열도의 애투섬 수비대가 처음이었다.

옛날 방송에서 해주던 8.15 다큐 보면  궁금함이 일본이 어떻게 아시아 대부분 점령하고 미국과 전쟁 까지 벌이게 되었는지 의문이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약간 미움, 질투, 기술 수준과 상인정신의 부지런함 정직함 청결에 감탄과 더 나아가서는 일본 지식과 선진 문명 인정이다.

가장 악명은 군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가미가제 특공대, 그 충격은 말할수가 없었다. 사무라이의 할복과 가미가제가 대개 가장 이해할수 없는 일본이었다.

간단히 느낌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제대로 길을 찾아 기술 문명이 엄청나게  것은 대단하다. 지적 과학 기술 문명은 물론에 여기 책은 그중 군사 부분이다. 

청일,러일 전쟁 까지 승리할때는 와~대단하다. 그런데 왜 망했나?

그 이야기다.

그때까지가 메이지 유신 시대의 결과랄까?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했고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선진국가와 나란히 하고 싶었고 그러자면 세계 최강대국과 어느날 전쟁을 할지도 모르겠다.(제국주의 시대라서? 맨 뒤 사카이 고지의 생각이 이해된다. 신흥 민족이 한 단계 올라서는데 한번 전쟁으로 달성은 조건이 뒷바침 안되면 무리다.) 

그러려면....하고 여기서 일본군의 고민이 시작된다.  

전쟁 안하면 좋았는데 힘의 작용상 아시아 어디선가 부딪치지않을수 없다고 생각했다지.

청일,러일 전쟁을 10여년을 두고 잇따라 이겼을때는 일본은 이제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이고 유럽 선진국들과도 뒤지지 않구나 라고 스스로 고무되고 세계를 놀라게했다. (메이지 때 부터 유럽,미국에 영재들을 유학 보냈고 참....)

그러나 군 엘리트들은 다 분석하고 있었다. 국가역량이 모든 면에서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려면 전쟁이 언제 일어나야하고 어떻게 해야나?

일본은 19세기 말 부터 유럽에 견학 출장등으로 교류하고 있었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그 부지런함과 기민함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러일 전쟁 10 여년 뒤 1차 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일본이 운좋게 여유있게 주의깊게 관찰할수 있는 기회였고 정예 군인들은 프랑스,러시아 군인으로 참전,장군 옆에서 참모로 활약하며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는 메이지 시대가 바로 끝난 다이쇼 시대가 시작된 시기였다. 앞의 수십년 개화기 때 부터 부단히 노력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를 발전시켜 놓아 한숨 돌리고 그 성과가 나온 꿈 같은 짧은 시대가 다이쇼 시대는  였다고 한다.(본인은 일본 역사에 무지해서 이 한권으로 한번 읽어서 틀리면 말해주기바람.)

1차대전은 놀라운 전쟁이었다. 19세기 까지 있던 정확히는 러일 전쟁 까지와는 다른 전쟁이었다. 너무나 긴 기간, 너무나 많은 희생자,(한권 읽고 군사 전문가라도 된 양) 그때 까지 개발 연구한 과학의 시험장이었고 엄청난 물량 동원이었고 지면 나라가 망하는 전쟁시대가 열렸다.

이때 일본은 아....일본은 작은 섬나라(아시아는 말하지마라. 경쟁상대 없다!) 지하자원이 풍부하나, 경제 규모, 인구 등등 앞으로 주요 나라와 전쟁을 한다면 이기겠나? 우리 상대는 미국인데, 이렇게 되었다. 왜 미국이냐? 

지금 생각해도 저렇게 지리상으로도 떨어진 미국과 나라 규모가 상대도 안되는 미국과 싸워? 

그렇게 되어버린 흐름이 있었다.(P205이후 6장, 이야기는 옮길수 없다.6장에서 그들은 말도 안된다. 하지만 황도파나 통제파라는 이런 사상파들은 그래도 정치에 영향을 미칠수가 없었고 전쟁이 나서야 도조 히데키도 법과 시스템이 전쟁에 방해가 된다고 알았다고,그래서 독재를 하려다가 반대에 부딪치고 파쇼도 제대로 하지못했단다. 결국 파시즘의 실패, 미완의 파시즘이라고 6,7장을 다시 보자.) 

러일 전쟁 이후 결국 태평양 전쟁이(일본 당시 말로 대동아 전쟁) 일어날 때 까지 학자, 특히 청일, 러일 전쟁 참전한 노련하고 유럽에 공부했던 영민한 군의 인재들과 사상가들이 연구하고 고민했다.

지금 모든것이 끝난후 돌아보면 누가 그래도 잘 봤는지 알지만 그때도 미국과 전면전이라는 것은 있을수 없는 파멸 자초라고 봤으나 역사는 그리 흘러가지 않았다.

못가진 나라가 가진 나라와 전쟁을 하면 어떻게 해야나? 안하는게 옳고 그래도 피할수 없다면 아주 짧게해야 한다가 합리적인 이론이었다.

(1936년 2.26 쿠테타로 황도파 몰락, 통제파가 육군 장악, 그후 군과 정부는 독점 자본과의 유착, 군비 확충, 국민 탄압을 강화하여 일본 파시즘 득세, 1928년 즈음 단기결전과 포위 섬멸전론은 군 교의가 되었다. 처음 부터 무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정신력을 특히 강조하게 되었다. 그때도 지식인들이나 국민들중에는 잘못되었다고 알고있어도 미약했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덤비면 다 죽고 이기자가 되었다.....이것을 사상 흐름, 그 시대 흐름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기지못한다고 알고있었지만 광기를 가진 신앙으로 키워나갔다.

나는 일본 역사에 관심이 별로 없다.이 책만으로도 메이지 시대 사람들이 선택을 참 잘했구나 그리고 20세기 초 특이하게도 엘리트 군의 한면을 보게 되어서 재밌다.

앞은 재밌어서 빠르게 보다가 중간에 사상적인 배경 설명에서 투전경 등등이 좀 지루하다가 뒷부분이 재밌고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사카이 고지", 천재도 천재거니와 화려한 경력도 경력이지만 잘생겨서 물론 이 책 외에 찾지않아서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미남 천재다.

이런 합리적인 사람이 주요 세력이 못되고 그리고 메이지 헌법이 국가 총동원 체제를 막고 있었는데도 군의 주요 세력은 총동원하는 전쟁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합리적인 지성인들이 있는가하면 죽을 때 까지 싸우자가 대세로됨이 안어울린다. (지금도 헌법을 바꿔서 자위대하지말와 비슷한가?)

용감하게 싸우다가 항복해도 치욕은 아니라는게 군인의 기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이겨도 죽어야하고 전장에 나가는 아들보고 죽어서 돌아오라, 무조건 죽을때 까지 싸우라, 기가 질리게 해서 적들이 먼저 화해 무드로 나오게해서 유리한 입장이 되어 받아들이자.(많이 듣던 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담 장군,당신이 나가서 싸우지?)

일본은 미국을 잘못보았구나. 상대도 상대 나름이다.결국 1930년대를 거쳐 40년대 패망 까지 오게되었다.

2차대전에서 일본은 1차 대전 때 값진 행운을 잊고 신들린 구시대적이고 극단적인 정신주의로 갔다. 1차 대전은 전 국민적인 체험도 아니었고 전장도 너무나 먼곳의 먼 이야기였기도 했다.

얼마전 까지 원폭 투하 미군 전투기 조종사 중 최후 생존자가 있었다. 그들중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희생자들을 안타까워 했으나 그 실행을 후회 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미군들 생각이다.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옥쇄를 외치니까 멸망하게 된것이다. 도죠 히데키등 전범들,,참 2차대전 후 전범 처리는 잘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 안할것이다.

2012년 시바 료타로 수상작이라고 일본인들은 이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나는 일본이 과거와 같은 그 태양 국기를(욱일기(旭日旗)- 일본국기(태양)에 퍼져나가는 햇살을 그린 깃발. the rising sun, 나치의 만장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기와 함께 ‘전범기(戰犯旗)’로 취급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앞세우고 전진하는 파시즘 국가로 돌아가진 않을것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이런 책에 뭐라고 말할수 있을까... 했으나 쓰다보니 길게 뜻밖이다. 워낙 재밌다. 

그런데 읽고 저자 후기나 옮긴이 말 보면 간단히 정리가 된다. 난 뭐냐? 

이렇게 긴책에서 오타가 거의 없다. 번역도 아주 잘되었다에도 최고 점수인데 내 발견하기로 125페이지에서 Alfred von Schlieffen 1883년이 아니라 1833년이다. 126 페이지에선 나폴레옹.....문장에서 있다로  끝인데 시제가 틀렸다. 있었다이다.

P212 1914->1941

이런 조그만 것을 발견하지 못하기 쉬운데 내용에 50년이나 젊은 사람이 그럴리가 없어서 또 뒤 페이지에 사진이 나오는데 늙었는데 오타가 거의 이것 하나 뿐이다.

책 소개 보니 잘 나와있다.

6,7장과 1941년의 생사관 장을 집중해서 봐야한다. 마코토나 마고고토 이런 말 까지 알아야할 필요는 없자않을까. 처음부터 어느중간 까지는 술술 읽히다가 방대해서 어느듯 길을 잃기쉽다. 사카이 고지를 맨 뒤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가 이것을 결론으로 말하고 있는것으로 이해한다.

못가진 일본이 가진 나라에 대항해서 발돋움이 무리였다. 온힘을 다해 전쟁하는 근대전인데 그것도 당시 자원 국력에서 메이지 헌법에서 조차 힘들었다. 어중간한 일본이 오판했다. 크게 올라섰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깨졌을 때 고통과 상처는 더 크기에 국력이 뒷바침 안되면 경거망동말지어다가 결론이다.

k***9 2014.08.0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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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편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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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정, 현무암/이목/책과함께/2012 요즘은 잘 읽지도 않는 종이신문의 정치면 기사를 읽는 것 같은 목 뻐근해지는 불편함에 시달리면서도 마침내 이 책의 종장을 덮게 되었습니다.   이게 나라라고 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만주 괴뢰국에서 이들이 겪은 것이 바로 전후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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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정, 현무암/이목/책과함께/2012

 

요즘은 잘 읽지도 않는

종이신문의 정치면 기사를 읽는 것 같은

목 뻐근해지는 불편함에 시달리면서도

마침내 이 책의 종장을 덮게 되었습니다.

 

이게 나라라고 할 수나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만주 괴뢰국에서

이들이 겪은 것이

바로 전후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자리잡음으로서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중심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야 일본인이니만큼

박정희만큼 제가 관심있게 읽지는 않게 되거든요.

 

젊잖게 말하면 공과가 다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저자의 표현은 만주괴뢰국이 만든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이태, 귀태라는 표현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그리 바뀌지 않았는데요

무엇보다 크게 출세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

교사직을 버리고 군인으로, 죄익세력으로 마침내 전쟁 영웅으로 출세를 한뒤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잡았고

그리고 끝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한 이야기로 들리더군요.

그런 기회의 배가 왔을 때 그 배에 오를 수 있는 사람과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른 이상은 별반 큰 차이가 있겠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뭔가 씁쓸하긴 한데, 그만큼 권력욕은 강한 것이니까요.

 

이 책이 저에게 준 자산이라면 만주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입니다.

거기에서 활동한 애국지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이

딱딱한 인용체에도 불구하고 느껴졌거든요.

 

자.. 이제 좀 편안한 책을 읽으러 가 볼까...

 

 

 

 

r*******n 2013.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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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고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고" 내용보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둘간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커넥션, 음모가 있었을까? 박정희는 마음의 고향인 일본, 거기의 (일본식 표현으로 하면 막후 실력자인) 기시 노부스케에게 무언가 빚진 것이 있었을까 와 같은, 타블로이드 찌라시 수준의 내용이 있나 싶은 마음을 조금은 안고 이 책을 들었다.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은 바 있어서, 강교수님의 스타일이 타블로이드 수준으로 글을 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읽고" 내용보기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둘간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커넥션, 음모가 있었을까? 박정희는 마음의 고향인 일본, 거기의 (일본식 표현으로 하면 막후 실력자인) 기시 노부스케에게 무언가 빚진 것이 있었을까 와 같은, 타블로이드 찌라시 수준의 내용이 있나 싶은 마음을 조금은 안고 이 책을 들었다.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은 바 있어서, 강교수님의 스타일이 타블로이드 수준으로 글을 쓰지 않음을 충분히 알았으면서도...적다 보니 스스로 조금 창피한 마음마저 들려고 한다.


(그 누구의 말처럼) 어느 나라건 근대화는 폭력이 수반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식민지의 통치를, 그리고 이후 (현대 개념의) 전쟁, 장기 독재와 군부 독재로 그 폭력은 지독히도 이어져왔다.박정희라는 사람은, 그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 그 사람의 논의, 잘함과 자잘못은 아직도 논의가 끝나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박정희라는 사람의 삶의 궤적을, 기시 노부스케라는 요괴와 짝지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식민-피식민 속에서의 폭력, 지식인의 출세욕, 미국과 세계 최종의 결승 전쟁을 준비하는 꼼꼼하지만 미쳐버린 정신병자, 동족을 팔고 매질해서 한자리 하려는 앞잡이가 각각 똬리 틀면서 자기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책의 두 명도 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한 세상을 정말 풍미했다. 그 속에서, 아무리 초짜 정치인이라지만, 식민 통치국가에 가서 식민지 어로 그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정치 한수를 구하고자 하는 그 정신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그자가 쓴 혈서는 정말 그의 진심에서 나온 거였는지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국의 귀태라고 불리는 일본의 2차 대전 주역들이 나타난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의 교차점으로 괴뢰국이라 불리는 만주국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문관으로 자기의 수완을 부리고 인정받기 시작한 곳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식민지인으로 철저히 스스로를 바꾸고 일본 군인으로서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곳이다. 또한 박정희의 만주 인맥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나중에 사형 구형도 살려 준다.

책을 보면, 오늘날 정치권에서 말해지는 것 중에 그 기원이 일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슬픈 마음이 막 끓어오르려 한다. 1925년 치안 유지법 등 사상 통제의 내용을 보면 초등학교 시절에 많이 나왔던 말이 생각난다. [구미의 사조와 가치관이 가져온 시민의 자유를 요구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위기를, 천황의 조서는 공덕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며, 충효의용의 미와 질실강건의 기풍을 높이고 황조황종의 유훈에 따라 국가의 훙륭과 민족의 안영을 도모하여 국민정신을 떨쳐 일으키으로써 극복하자. 기강을 바로 잡고 국가주의를 철저하게 하자고 다그쳤다]

이 번에는 두 사람의 슬픈 공통점이다. 이들은 패자부활전으로 살아남아 그들이 갖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차원에서의 윤리-도덕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 보인다.[두 사람은 기사회생으로 부활하여 전후 일본과 해방 후 한국에서 저마다 최고 권력자로 떠올라, 각각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역사의 우연 치고는 너무나도 유사한 공통점이 거기에 보인다. 우선 첫째로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 전쟁 종결은 전쟁 자체의 종결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미소 대립이라는 거대한 파워 쉬프트는 제국의 귀태들이 새로운 승리자(미국) 아래에서 소생할 무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욕으로 뒤범벅이 된 과거의 경력을 지워 없애고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이런 의미에서 정치가가 성공하는 데는 자신의 힘이랄까, 그런 것보다는 운이 7할입니다.라고 했던 기시의 입버릇이 꼭 과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기시는 그 기회와 운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틀어쥐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시대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민감한 관찰인이었던 것이다.] 기시는 정말 요괴 맞나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냉전이라는 호기를 자신들의 권세확대로 이어나가는 데 만주 인맥이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넷째로 지적되는 것은, 기시도 박정희도 만주국 건국을 포함해서 전쟁 전의 역사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 박정희라는 사람의 경제 모델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위해 기시가 무엇을 했는지 살펴 보자. [기시는 이미 자유당 의원이 된 첫해, 침체에 허덕이는 일본 경제의 실태를 놓고 중점 산업부문으로의 자원 배분에 의한 자본 축적과, 중공업 진흥에 의한 수출 산업의 육성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는 한편, 중소영세기업의 보호육성, 사회 보장과 사회 정책의 충실화를 통한 민생의 향상을 주장하고 있었다기본 발상은 만주국의 경사생산 방식에 의한 중공업 진흥과 사회정책의 실험에 있었다박정희 정권은 만주국과 마찬가지로 몇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서 한국의 산업 구조를 수입대체형에서 수출주도형으로 바꾸고, 나아가 중화학공업화로 발전시켜 나갔다. 다만 박정희의 한국이 국책으로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노동집약 산업을 발전시킨 것은 만주국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나 그것도 군수산업을 타깃으로 한 중화학공업화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고, 자주국방을 지향한 중화학 공업화라는 점에서 만주국과 공통점이 있다 ]


무조건 박정희 정권이 기시를 따라했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그들도 고민했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잘했다고 말을 듣는 많은 부분은 그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통찰력이나 분석의 눈을 가졌다고 평가해줄 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느끼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그들에게는 큰 성장판이 아니었을까? [정권 초기의 경제 정책은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으로 특징지을 수 있겠는데, 경제를 담당할 사람이 부족한 군부 세력이 처음부터 그런 명확한 전망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정책은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간섭이라는 대외 압력과 국내 재계의 요구라는 대내 조건 속에서 수정되며 시행착오를 거쳐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제 박정희 정권의 철학의 하나인 근대화를 힘껏 파보자.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 논리로서 효율화된 동원과 노동, 근검 절약, 집단주의, 욕망의 절제 등을 국민에게 요구했다. 천리마 운동을 통해 자력 갱생과 혁명의식을 붇돋움으로써 사회의 조직화가 침투되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정신 혁명은 빠뜨릴 수 없었다. 이러한 의식혁명운동의 중심 존재로 유신체제를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떠받친 인물이 전전에 만주에서 활동한 이선근이다. 이선근은 만주에 모든 것을 걸었고, 전후에는 서울대 교수가 되었으며, 이승만 정권에서는 문교부 장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박정희 정권에서도 권력층을 향한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등 여러모로 중용된 인물이다. 와세다 대학에서 게무야마 센타로나 쓰다 소키치의 영향 아래 역사학을 공부한 이선근은 전후에 자신이 경영하던 신문에 화랑도 연구라는 글을 연재했는데,그것이 건국 이념을 요구하는 당시의 정세 속에서 평판을 얻어 국방부의 정훈국장으로 초빙된다. 화랑은 신라시대에 청년들의 수양과 훈련을 맡은 조직으로, 전시에는 전투부대로서 국가통일을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는 사실에서 이선근은 화랑도를 국가 이념과 연결시켰던 것이다. 화랑도에서 민족정신의 기원을 찾는 신라중심사관은 북한과 대치하며 민족사관을 정립해서 이데올로기 면에서 국내체제를 다잡으려는 박정희 정권에게 유용했다. 이선근은 박대통령에게 국사를 진강하고 또 국무위원 일동에게도 국사를 강론하여 민족 주체사관에 입각한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국책수립에 적극 찬동하고,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새로운 국가관과 유신정권의 구현을 위해서 칠순의 노구를 돌보지 않고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강연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철학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서 만주국의 잔재가 얼마나 스며들어왔는지를 보면서 한심함과 놀라움을 같이 느꼈다. […만주국에서의 비합리 정신주의가 한국사회에도 만연하게 된다…1분간 묵념, 행진, 시국강연 청강, 선전영화 시청, 포스터 작성, 학생웅변대회, 집회와 대운동회 참가 등의 국가의례이러한 것들은 원래 1930년대 만주국의 국가행사재건체조라고 해서 시작한 라디오 체조의 모델은 만주국의 건국체조반공대회나 멸공대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국에서 수없이 열린 반공대회건국정신 함양을 위해 만주국 교육청이 주최한 학생웅변대회는 수십년 후 한국에서 실시되는 학생웅변대회의 원형가정의례준칙은 낭비나 허례의식을 삼가는 협화식 결혼식을 상정하고전국 각지에 세워지는 동상 역시 만주국에서 제사지낸 공자나 관우의 재래일 따름만주국에서 행해진 규율화의 방법을 엄밀하게 반복할 수 있는 국가는 박정희 정권기의 한국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새마을 운동에는 온갖 규율화의 방법이 동원오후 6시에 사이렌이 울리는 국기하강식에서는 길을 가는 사람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서서 황국 신민의 서사에 해당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


마지막으로 박정희의 평가를 들여다보자. [박정희의 돌격 근대화는 바로 국가에 의해 지도된 변혁과 위로부터의 고도성장을 의미했다. 그것은 최빈국으로 허덕이던 해방 후의 구식민지를 신흥 산업국가로 변모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위로부터의 변혁은 민주주의 이념을 산 제물로 바침으로써 가능했다. 한국의 현대사는 그러한 이념을 국민 스스로가 정의하고 쟁취해가는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그리고 독재자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고 한국은 민주화라는 목표에 도달하면서 독재의 시대는 과거가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박정희 정권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이제 과거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습관처럼 과거, 아니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렇다면 이미 끝나버린지 30년이 지난, 그 정권의 시절을 보면서 무척 나아졌어야 할 지금을 느껴야 하는게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왜 일까 

s*****s 2016.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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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リ-ズ日本近現代史(4)大正デモクラ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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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제국으로 떠오른 메이지 일본이 예전 구조로는 댕응할수 없어서 출발한 운동의 총쳬를 말함, 다양한 계층에 의해 기존 사회 구조와 질서에 대항하여 전개된 운동. 재밌어요! 일본 근대역사가 어쩜 이리 재밌는지요.오다 노부나가 이하 두 인물 시대 보다 메이지 이후 일본 근현대사가 아주 재밌네요. 오래걸릴줄 알았는데 금방 넘어갈 정도로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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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제국으로 떠오른 메이지 일본이 예전 구조로는 댕응할수 없어서 출발한 운동의 총쳬를 말함, 다양한 계층에 의해 기존 사회 구조와 질서에 대항하여 전개된 운동.

재밌어요! 일본 근대역사가 어쩜 이리 재밌는지요.오다 노부나가 이하 두 인물 시대 보다 메이지 이후 일본 근현대사가 아주 재밌네요.

오래걸릴줄 알았는데 금방 넘어갈 정도로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한페이지 글자수도 적당하고 필요한 글에 최소한 꼭 한자를 표기해서 그것도 참 좋습니다.

주제어를 뽑아놓아서 핵심 파악도 좋고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내용은 더 재미있지요. 이런책을 보면 19세기는 너무 멀어서 생각하기 어렵고 20세기 초만해도 100년전 사람들을 알수있을정도라서 시간의 신비다.

일본성이라고 아는 조용하고 예의바르고....오래전 처음 일본에 갔을때 출근시간 꽉찬 지하철안이 너무나 조용했어요.우리나라와 참 다르다..바로 느꼈지요.

그래서 무언가에 반항하는 것과는 먼 성격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이쇼 시대(1912~26년)인 이때는 그리 알려진 성격과는 참 다르네요. 다양한 사회운동이 있었다는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어요.

제 나름으로 생각해보면 1910,20년대는 세계적으로 변화가 무척 빠르고 19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가 열린 세계적인 시대 흐름도 있지않을까?싶네요.

다이쇼는 대정大正時代 (たいしょうじだい)이라고 쇼와 일본왕의 아버지이고 메이지 왕의 아들이었던 다이쇼 왕의 통치 시대요. 

같은 시대인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나 조선의 고종, 순종 시대와 다이쇼, 쇼와 시대를 생각하면 국운에 따라 개인적인 인생으로도 너무나 차이가 나서 구슬퍼질정돕니다. 왕도 그랬는데 국민들은 어땠을지요. 나라가 없는데 왕이 어딨습니까.

사진이 너무 너무 조그만한게 불만, 알아볼수있게 조금 커야지.

상당히 시간 흐름에서 요약이 잘 되어있어요.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러일전쟁 이후 1905년~1931 만주사변 전야까지 약 25년이다. 일본제국의 전개와 그 기저에서 사회운동, 대중사회화의 진행이다.그때 사회 실상과 20세기 초 제국주의-내셔널리즘-식민지주의-모더니즘과 관련해서 고찰한다.

 

シリ-ズ日本近現代史(4)大正デモクラシ-シリ-ズ日本近現代史(4)大正デモクラシ-

19세기 중반의 외국 함선 내항으로부터, 21세기의 현재까지, 대략 150년. 근현대의 일본은 무엇을 요구해 어떠한 걸음을 진행시켜 왔는가. 그리고 지금부터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일까. 통사를 그린 집필자 9명이, 각 시대의 일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물음을 내걸어 거기에 대답하면서 총정리를 행한다.
다채로운 언론과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정당내각의 성립으로도 결실한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대. 그것은 식민지 지배가 전개한 시대이기도 했다. 제국의 자본인 갻민중갽의 움직임은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품고 있는가. 히비야 방화(볷붶묳?뫥궭)사건에서부터 다이쇼정변, 쌀소동, 보통선거의 실시, 그리고 만주사변 전후에 이르는 25년의 발자취를 갻사회갽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린다.

岩波新書 수입 

成田龍一 저 | 岩波書店


*단나슈~旦那주인들,도시 중소 상점주, 중소 공장주,중소 상공업자

20세기 초 도시에서는 각종 소요가 빈발, 1905년 러일전쟁 강화조약에 반대해서 도쿄 히비야 공원에 집결하여 집회,방화 사건, 도시에서는 질서를 바꾸려는 에너지가 충만했고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발화점이되었다.

k***9 2014.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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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괴벨스의 사상과제도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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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뒤에서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2차대전당시 일본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뒤에서 거액을 챙긴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비리를 다룬 책일줄 알았지만 다른 방향에서 내가 건지고 싶은 만큼의 정보를 얻은 것 같다.   러일전쟁부터 일본은 잘못된 전쟁관과 국가관에 매료되었고 해서는 안되는 광기의 전쟁인 미국과의 전쟁   도화선을 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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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뒤에서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2차대전당시 일본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뒤에서 거액을 챙긴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비리를 다룬 책일줄 알았지만 다른 방향에서 내가 건지고 싶은 만큼의 정보를 얻은 것 같다.

 

러일전쟁부터 일본은 잘못된 전쟁관과 국가관에 매료되었고 해서는 안되는 광기의 전쟁인 미국과의 전쟁

 

도화선을 당기게 된 배경을 짚어보았다. 페이지 170에 요약되어 있다.

 

특히 페이지252에서 254까지에  이 책의 핵심인일본의 파시즘이 미완인 까닭이 자세히 나온다.

 

러일전쟁은 게임이 되지않는 전쟁이었지만 기마로 측면을 격파하고 물량이 부족했기에 정신력으로 무장

 

군인들이 무조건 돌격을 했기에 승리한 이상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빚이 산더미 같이 쌓였고 미

 

국이 대공황때 루즈벨트의 뉴딜정책보다 2차대전이란 축복이 있었기에 살아났든 일본도 1차대전이란

 

강건너불구경이 일본의 경제를 살렸다.

 

이 책에선 못가진나라 일본을 정신무장시켜 싸우면 초반에 포위섬멸할 수 있다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

 

했는데  갖지못한 나라는 생각지못한 방향에서 기동성있게 기습하지 않으면 이길수 없다 야마모토 이소

 

로쿠의 진주만 공격도 결국 그런 생각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수십번 연거푸 이길순없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갖지못한국가

 

의 전쟁은 즉시 끝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논리를 무시했다.

 

전의와 행운이 최고일때만을 생각하고 그외의 부분은  그 다음으로 미루었기에 독일이 히틀러의 레토릭

 

에 국가전체가 넘어간 것처럼 일본도 군국주의를 만든 사람들의 법치에 놀아났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도 숨을쉬며 일본정치인들을 움직이고 있기에 지금도

 

정치인들의 망언을 계속 유발하고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정치나 사회, 경제의 역사에는 부조리한 것 같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되는 일들

 

이 참으로 많다.

 

내 생각이다 심리학자들의 말씀이 지금부터 1시간이 지나면 지금있었던 일의 90%는 기억에서 편집되어

 

지워진다고 한다. 그럼 일주일 한달이지나면 지금의 일이 얼마나 머릿속에 남아있을까

 

군국주의 물론 맞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지금 한국인들은 고구려의 양만춘이나 귀주대첩을

 

자손대대로  전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지금의 일본우익은1790년 러시아의 남하에 두려움을 느낀 논객들이 만들어낸 사상이다.

 

그런 일본이 세계최고의 군대인 러시아와 천년이상 두려워하던 중국을  단숨에 무찔렀다.

 

그럼 자부심은 어느 정도일까 그것도 1000년 2000년전의 일이 아닌 현대와 맞닿아 있는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자부심은 엄청날 것이다.

 

3.1절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할까 영원히 100년후 1000년후까지 ...

 

야마토다마시는 일본인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며 여기서도 일본의 고대어인 야마토시대의 단어란 표현이

 

있다.

 

야마토에서 야마란 한국고대어로 산, 하늘, 신령한이고 토는 터전할때의 터 마을 밑이란 뜻이다. 고로 야

 

마토란 하늘밑 신령한 마을 즉 고령가야의 수도인 경북 고령을 가르키는 말이다

 

2천년전의 일이고 그 시대에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야마토란 말의 뜻만을 우리는 해석해냈다.

 

군국주의와 일본우익 자부심가질 일도 했고 다른 나라에 해를 끼친 일도 했다  천년후와 2천년후의 시간

 

은 온다. 그럼 그 시절 우리가 현재 야마토란 말만 기억하듯 군국주의를 기억할까 지금의 수상 시장 경제

 

실권자 누가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

 

서울의 시장이 조선시대엔 한성판윤이었고 동경 즉 에도의 시장도 수십명 있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람중 그시대 시장 한명만 대보라면 누굴 기억할 수 있을까

 

한발짝 물러나서 세상을 보면 어떨까 영화나 드라마 재미있다 스크린을 본다 아 이거 민족주의나 정권

 

선전영화란걸 금새 알 수가 있다.

 

꼭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히틀러처럼 아니면 팍스주의자들처럼 국민을 세뇌해서

 

고통의 길로 내몰필요는 있을까.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아버지가 정치계핵심이다 경제계 종교계 의료계 법조계핵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울타리안에서 특권을 누린다 언제까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정기간은 누릴수도 있겠다 그리고

 

우리는 공급자에서 소비자의 입장으로 바뀐다 그리고 일이 터지면 생각한다 아니 왜 이런 관행이 존재

 

하는 것이야 우리는 권력자의 입장에 있을때는 혜택을 보며 남의 아픔엔 관심이 없지만 양지가 음지된다

 

고 소비자의 입장이 되었을때 자신에게 혜택을 주던 관행이 도리어 자신에게 올가미가 된다면 예를

 

들어 의료인들과 법조인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했기에 법은 그들에게 유리하게끔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원한 권세없다고 그들의 후손들도 영원히 의료인이나 법조인이 되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의료사고나 법조사고를 그 후손들이 당했다면 그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제도 때문에

 

후손들은 고통을 당할것이다.  먼미래까지 볼 수는없는것일까  일본의 메이지시대법치와 만주사변을

 

일으키거나  군국주의 사상을 만든 사람들 그들 때문에 자손들이 고통을 받는것도 생각했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6 2014.07.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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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 태어나서는 안될 존재)' 발언 논란으로 '귀태'라는 단어와 이 책에 대해 관심이 생킨 데다가 페이스북에서 이정희 대표가 소개하여 읽게 되었다.

괴물 같은 독재자로 최후를 마친 마사오 다카키, 즉 박정희한테서는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쇼와의 요괴'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권세의 정치가로 불렸던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라는 어두운 과거가 지워지지 않는다.
국가의 재건과 총력안보라는 외형적 '돌격적 근대화'를 달성한 박정희는 한국의 노년층과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도 '민족중흥의 기수'로 변함없이 살아 있다.
끝없이 권력을 추구한 마키아밸리스트 기시 노부스케야말로 전쟁 전에는 국가개조의 핵심관료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고, 전후에는 보수합동을 낳은 주인공으로서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의 틀을 만들고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주도했다.

이처럼 두 사람에게는 반대의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며, 두 사람은 많은 부분 공통점을 보이기도 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일제가 전쟁에서 패망하고 해방이 이루어진 후 68년이 지난 후, 박정희의 딸이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가 일본 수상이 된 2013년에 두드러진다. '독재자와 요괴의 자식들'로...

그렇다면 두 사람, 그리고 두 가계의 공통점은 뿌리는 무엇일까?
저자는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가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뿌리를 만주국에서 찾는다. 일제가 대륙을 침략하면서 괴뢰국으로 세운 만주제국. 박정희를 '군인'으로 변신시킨 것도, 기시 노부스케를 '정치가'로 단련시킨 것도 훗날의 '독재자'와 '요괴'의 요람의 땅이었던 만주였다.

만주괴뢰국, 만주제국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게 어떤 경험이었고 그들은 어떻게 연결되었나? 왜 그들은 '귀태'라 불리우는가?
이 책은 이 두 가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젊은 시절의 박정희의 맨얼굴, 지금까지 이름 이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기시 노부스케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와 조선인들에게 만주가 어떤 땅이었고, 일제가 만주땅을 어떻게 강점하고 어떤 방식으로 괴뢰국을 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두 사람은 모두 냉전이라는 조건에서 미군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고 복권되었고, 한국전쟁 후 미군의 필요에 의해 집권한 후 만주제국의 경험을 자국에서 실험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박정희의 통치방식, 근대화 방식과 기시 노부스케의 전후 일본 재건 방식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통점은 만주제국에 뿌리를 두고 만주인맥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계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재발해서는 안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의 표현 그리고 홍익표 의원의 주장처럼 그들은 '귀태'가 맞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의 주제는 '귀태'가 아니라 '만주제국'이다. '귀태'는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 대한 조사와 설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책 속에 단 한 번인가 나올 뿐이다. 홍익표 의원 역시 저자처럼 기본적인 한국현대사 속에서 일반적인 인식을 문장 속에 표현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홍 의원의 표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와 새누리당, 극우보수언론은 쌩난리를 첬고 민주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정치권을 주도하는 인라들의 역사인식이 초라한 것을 떠나 전근대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기득권자들이 귀태를 귀태라 주장하지 못하고, 친일파를 친일파로 부르지 못하고, 다까끼 마사오를 다까끼 마사오로 부르지 못하고, 쿠테타를 쿠테라라 부르지 못하고, 친미사대주의를 친미사대주의로 부르지 못하고, 작전권이 없음을 굴욕으로 느끼지 못하고, 경제 예속을 예속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문화 종속을 종속으로 느끼지 못하고, 학문 식민지화를 식민지화로 느끼지 못하고, 분단과 정전체제를 전쟁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극우세력 콤플렉스를 '국민의 눈높이'로 생각하고, 반북 세뇌를 보편 상식이라 느끼고, 재벌의 착취를 착취로 느끼지 못하고, 비정규직화를 분열책과 노예화로 느끼지 못하면, 우리 사회와 민족은 대를 이어서도 친일파가 득세하여 식민사관이 국사를 대체하는 것을 멍청하게 지켜보게 되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해외에서는 미국의 식민지라 손가락질 하는데 독립국가로 자위하고, 극우파시즘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북의 '위협'이라는 공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NLL과 같은 종북공세에 끌려다니고, 하루 4~5만원 벌어 재벌과 극우세력에게 5~6만원을 갖다 바치고, 알량한 기득권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성공과
출세를 향해 질주할 것이다. 어차피 저 성공과 출세의 꼭대기 자리는 1%로 제한되어 있음에도...
2013년 9월 1일 현재 한국인들은 '귀태'를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고 있다. 부정선거와 유신회귀와 정치공작으로...

참고로, 박정희(다까끼 마사오)가 귀태(鬼胎)인 이유 중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내용과 페이스북 친구분의 글을 일부 인용한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 만주군관학교 지원서류에서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쓴 혈서에 첨부되었던 박정희의 각오 내용

"박정희는 1940년 4월 만주신경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고, 2년만에 수석 졸업, 일본 육사 57기에 3학년으로 편입하고 1944년 4월 졸업한다. 이 후 1944년 7월 만주군 보병 제 8사단에 배속되었고, 12월 23일 정식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박정희의 보병 제8사단은 중국 항일 팔로군부대와의 전투가 주 임무였다."

"해방 후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 단기과정을 마치고 한국군에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군인생활을 시작한다.
1948년에는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중 여수 순천 사건이 발발하고 한국군 내의 남조선로동당 조직책이었던 박정희도 체포되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심에서 징역10년으로 감형됨과 동시에 형 집행정지 선고를 받고 강제 예편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박정희는 다시 현역 소령으로 복귀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 선배 인맥의 지원에 힘입어 군부 내에서 인맥을 확보하였던 박정희는 1961년 5.16일 군부 쿠테타를 일으켜 장면정부를 무너뜨리고 군사정부를 수립하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은 박정희가 군부쿠테타를 일으킨 직후 본격적인 군사정부수립 이후 설립하였던 비밀정보조직인 중앙정보부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3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급기야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해 기존 헌법을 전면 중단 폐기하고 대통령 명령에 의한 초법적 긴급조치권, 국회의원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할 권리, 대통령 간선제 및 6년 연임제 등을 포함하는 유신헌법을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무력화되고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은 금지된다."

[ 2013년 9월 01일 ]

 

c****n 2013.09.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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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괴뢰국이라는 나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곳에서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자리잡음으로서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거 같다.  크게 출세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교사직을 버리고 군인으로,죄익세력으로마침내 전쟁 영웅으로 출세를 한뒤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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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괴뢰국이라는 나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곳에서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자리잡음으로서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거 같다.

  

크게 출세를 하고 싶었던 한 남자가

교사직을 버리고 군인으로,

죄익세력으로

마침내 전쟁 영웅으로 출세를 한뒤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잡았고

그리고 끝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 이야기,


마지막으로 남기고싶은 말은 책을 좀 더 쉽게 쓸 생각은 없었던건지..

오래전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져 읽는데 고전을 면치 못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9 2017.10.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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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7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글 책과함께 펴냄, 2012.9.20. 17000원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이가 민주 아닌 독재를 휘두른다면, 이들은 정치만 독재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독재정권은 군대를 비롯해서 공공기관하고 학교도 독재로 휘두르려고 해요. 어느 곳에나 계급이나 신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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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7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

―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글

 책과함께 펴냄, 2012.9.20. 17000원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서는 이가 민주 아닌 독재를 휘두른다면, 이들은 정치만 독재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독재정권은 군대를 비롯해서 공공기관하고 학교도 독재로 휘두르려고 해요. 어느 곳에나 계급이나 신분으로 틀을 지으려 하지요. 이러면서 사람들이 독재정권을 우러르도록 교과서를 바꾸려 해요.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온통 ‘독재자 섬기기’로 갈아치우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독재가 아닌 민주라고 하지만, 정치 우두머리는 역사 교과서를 그들 멋대로 주무르려고 합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춤이나 노래로 문화와 예술을 밝히려고 하는 이들까지 멋대로 휘두르려고 해요. 이른바 ‘국정 역사교과서’나 ‘문단 블랙리스트’는 독재정권이 보여주는 숱한 몸짓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박정희는 “모든 조건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 “일사봉공 박정희(一死奉公 朴正熙)”라고 반지(半紙)에 혈서를 써서 동봉한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를 만주국 치안군 군정사 정모과로 보냈던 것이다. 거기서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은 결심”을 피력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충성을 다할 각오”를 표명했다. (121쪽)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2012)는 강상중·현무암 두 분이 글을 써서 지은 책입니다. 일본 사회를 제국주의와 반민주와 반평화로 이끄는 데에 앞장선 ‘만주국 권력자’라는 기시 노부스케하고, 전쟁과 쿠테타로 독재를 누리면서 사회를 윽박지른 ‘만주군 장교’ 박정희를 서로 맞대면서 역사라는 흐름에서 두 ‘독재자’가 어떤 몸짓으로 어떤 일을 꾀했는가를 찬찬히 짚습니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가 외할아버지라고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을 앞둔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버지라고 하지요. 두 사람과 두 사람, 모두 네 사람은 서로 어떻게 닮았을까요. 이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를 어떻게 주무르려는 마음일까요.



여순봉기로 숙군의 태풍이 몰아치며 극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궁지에서 그를 구해 준 사람은 백선엽과 정일권이라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의 ‘선배’들이었다. 그 후 군부 내에서 진급이나 군사쿠테타 계획에서도 박정희의 만주 인맥은 숨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189쪽)



  ‘만주군 장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에 붙어서 살아남는 길을 걸었습니다. 해방이 된 곳에서는 갈 곳이 없을 뿐더러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으나 이 나라에 전쟁이 터집니다. 일제강점기 만주국은 ‘만주군 장교’를 키웠고, 이이는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서 친일파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을 찾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이어진 이승만 독재를 사람들이 드디어 갈아엎었는데, 갈아엎기는 했어도 정권을 잡은 정치인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어요. 이 틈에 ‘만주군 장교’는 옛 ‘만주군 선배’와 하나가 되어 군사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이러고서 스무 해 가까이 이 나라에 군사독재를 속속들이 심어 놓습니다.



소련 혹은 북한과 대치하는 방공(防共) 국가, 집권적인 군부독재, 반공적인 국민통합 이념, 국방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화, 관료 주도에 의한 계획경제적인 자본주의산업의 구축 등 만주국과 박정희의 한국 사이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유사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18쪽)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에 ‘재건체조’라고 해서 시작한 라디오체조의 모델은 만주국의 건국체조였다.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개최된 반공대회나 멸공대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만주국에서 수없이 열린 반공대회에 가 닿는다. (270쪽)



  군사독재로 사회가 억눌리던 때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무렵 이루었다는 경제발전은 재벌 주머니에 돈이 들어갔어요. 수많은 어린 노동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70년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외마디소리를 남기고 몸을 불사른 젊은 넋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더 무서운 유신독재로 억누르려고 했어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이러한 사회 흐름을 ‘만주국’에서 뿌리를 찾으려 합니다. ‘만주군 장교’로 친일부역을 했던 독재자는 만주국에서 배운 대로 한국에서 독재를 펼쳤고, 만주국에서 함께 친일부역을 하던 선배를 비롯해서 ‘만주국 소속 조선인 친일 관리’가 바로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버티는 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주의 친일조선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만주국 소속 조선인 관리들이다. 만주국에서 근무한 조선인 관료는 대략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 만주국 최대의 친일조적인 협화회에는 만주국의 조선인 관리나 유력자들이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 최대의 어용학자였던 이선근이 협화회 간부 출신이었다 … (정일권은) 1960년대에 박정희가 한일회담을 진행할 때는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일제로부터 독립했다는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만주군 장교 출신이니, 한일 국교 정상화(한일회담)가 과연 정상으로 되었겠는가. (304, 305, 306쪽)



  한국이 ‘민주’ 나라이거나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참말로 민주스럽고 독립한 나라다운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독재자를 추켜세우는 국정교과서는 하루빨리 걷어치워야 할 테고,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 넋을 달래려는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앞뿐 아니라 청와대 앞에 얼마든지 세울 수 있어야지요. 아니, 일본 총리실 앞에도 소녀상을 세운다거나 도쿄 한복판에도 소녀상을 세워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난날 저지른 일을 되새기면서 돌아보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나라라 한다면 어용학자가 발을 붙일 수 없어야 해요. 이 나라가 독립한 나라라 한다면 전쟁무기와 군대는 이제 멈추고 남북녘이 평화로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거듭날 수 있어야겠지요.



“경험도 없는 우리한테는 그저 맨주먹으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욕에 왕성합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오카모토 미노루 중위 즉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이 발언을 (1961년 11월 11일 일본 수상 관저) 오찬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까? (19쪽)



  식민지·전쟁·쿠테타·독재를 누린 ‘만주군 장교’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역사에서 이 ‘만주군 장교’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식민지가 키우고 전쟁이 먹여살리고 쿠테타로 총칼을 거머쥐고 독재로 평화·민주를 짓밟은 ‘만주군 장교’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이제부터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와 평화여야 할 테지요. 아직도 군사독재 얼거리가 단단한 터라 부정부패와 불평등이 판치고 말 테지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은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 ‘만주군 장교’ 뿌리를 잘라내고 몸통도 잘라내면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밝히지 싶습니다. 대통령 탄핵부터 비롯해서 모든 썩은 몸통을 내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2017.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7.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어떻게 억지는 상식을 이기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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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20세기 초반 아시아 지역에서 한창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왜 2차세계대전의 추축국의 일원으로 뛰어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고 몰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살피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였던 일본은, 엄밀히 말해 전쟁에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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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책은 20세기 초반 아시아 지역에서 한창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왜 2차세계대전의 추축국의 일원으로 뛰어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고 몰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살피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였던 일본은, 엄밀히 말해 전쟁에 직접 참여한 당사국이라기엔 모자란다. 물론 독일이 중국에 가지고 있던 조차지에 대한 공격으로 실전을 경험해 본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지전에 해당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 총력전화 되면서 필요한 막대한 군수물품을 생산함으로써 일본은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일본이 얻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전에 참여하면서 일본 군부는 전쟁의 양상이 기존의 보병중심의 돌격전에서 포병중심의 과학전, 현대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 일본은 앞서 언급한 중국내 독일 조차지에 대한 전투인 칭다오 전투에서 이런 깨달음을 십분 살려 최신식 전투 기법을 시험해 보았고, 그 효과는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 총력전 양상의 현대전에서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후방자원이 중요해진다. 이건 단지 예비군 같은 병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화약과 고무, 유리, 철과 같은 진짜 자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일본은 영국, 미국과 같은 국가에 비해 그런 자원의 절대 양도, 질도 역부족인 상황. 과연 이 ‘못 가진 나라’가 ‘가진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뭐 그렇다면 강대국과의 전쟁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으련만, 그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나보다.(뭐 그리고 전쟁이란 건 언제 누구와도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결국 무형의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쉽게 말해 정신력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책은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는 여러 일본 내 사상가들의 입장과 그 근원을 추적해낸다. 옥쇄니 가미가제니 하는 비이성적인 태도들에 대한 찬미는 이런 사상들에 기원한 것. 하지만 처음부터 허무맹랑한 기초 위에 세워진 전략은 결국 2차대전에서의 몰락을 초래하고 말았다.



2. 감상평    


     저자는 일본의 파시즘을 ‘미완의 파시즘’이라고 진단한다. 파시즘은 일종의 독재주의를 가리키는데, 일본의 경우는 독재적 체제를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그 결과 국가를 총력전 체제로 전환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전쟁에 패배해버렸다는 이해다. 일차적으로는 일본 내에 파시즘적 시도에 대한 반대하는 이성적인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또 일본의 정치 체제 자체가 특정한 세력이 전권을 장악하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그래도 2차 세계대전 때는 군부의 독주가 대단하긴 했다).


     저자는 일본 내에서 일어났던 이 과격하고 비이성적인 입장이 왜, 어떤 과정을 통해 나타나고 발전해 왔는지를 매우 훌륭하게 밝히고 있다. 그저 일본의 국민성이 이상해서, 혹은 몇몇 정신병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국민들을 선동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일본이 세계의 최종적인 통치자가 되었을 대 진정한 평화와 번영이 있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자민족 우월주의,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자신들이 (그게 역사건, 신이건 누구 혹은 무엇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주의에서 시작되었다.(비슷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 단지 이방인들을 무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이 비전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전쟁을 선택했고, 실제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이기기 위해 그들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력을 강화하다보니 옥쇄 같은 헛소리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일본 우익의 전형적인 언사들이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 그래도 꼴에 극우라고 끼리끼리는 통한다는 건지, 자파(自派)의 이익에 반대되는 집단은 온갖 색깔론부터 근거 없는 의혹제기로 매장시켜버리고 주장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나와도 모르쇠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저급한 정치인들과 그 주변에 썩은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초파리 같은 인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위험한 생각을 퍼뜨리기 위해 ‘국격’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멋대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위해 국민들은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자기들의 망상에 빠져 세계대전까지 뛰어들었다가 수많은 일본 국민들을 희생시킨 전례를 따라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


     좋은 세상에 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세상의 조건 중 중요한 하나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자꾸만 억지를 부리는 인간들은 중요한 위치를 맡으면 안 되는 거고, 거짓말이 익숙한 인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이젠 거짓말을 해 놓고 억지까지 부리면서도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니..

 

     억지 앞에 상식은 종종 힘을 잃기 마련이다. 결국 일본은 상식이 억지 앞에서 무너진 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든 어디에서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깨어있어야 하는데, 뭐 현대의 민주주의라는 게 상식에 의해서보다는 선동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더 강하니..



이달의 사락 p*********n 2014.03.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