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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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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며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   - 한하운, 「파랑새」             파랑새는 희망을 노래하는 새이다. 극복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마음속 파랑새를 떠올린다. 마음에 파랑새를 간직하고 있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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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며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

   - 한하운, 「파랑새」

 

  

 

 

  

 

파랑새는 희망을 노래하는 새이다. 극복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마음속 파랑새를 떠올린다. 마음에 파랑새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이 세상에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누구나 절망을 한다. 중요한 것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마음이다. 시인은 파랑새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그 희망을 본다. 그런데, 한하운은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라는 시구를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다. 죽어서 파랑새가 되는 걸 과연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죽음을 희망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죽어서 파랑새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지금 이 현실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시인은 현실 너머에서 파랑새를 본다. 파랑새가 없는 현실은 잿빛으로 펼쳐진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가리고 있는 진실을 시인은 죽어 파랑새가 되는 상황으로 드러낸다.

 

죽어 파랑새가 된 영혼은 푸른 하늘과 푸른 들을 날아다닌다. 푸른 하늘과 푸른 들은 저쪽에 있다. 파랑새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새라는 말이다. 이쪽에서 시인은 인간으로 살았다. 인간으로 살면서 그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지도 못했고, 푸른 들을 마음껏 달리지도 못했다. 인간이라는 운명에 갇혀 그는 마음속 파랑새를 꿈꾸기만 했다. 시인만큼 파랑새를 꿈꾸는 이가 어디에 있을까? ‘저주받은 시인이라는 말에 나타나는바, 시인은 태생적으로 저쪽에 있는 파랑새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존재이다. 이쪽에 발을 디딘 사람이 어떻게 저쪽으로 갈 수 있을까?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는 분명하다. 경계를 넘지 않는 한, 저쪽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막혀 있다고 봐야 한다. 죽어서야 파랑새가 되는 이야기는 이리 보면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죽지 않으면 누구도 파랑새가 될 수 없다. 파랑새는 경계를 넘어 날아가는 새를 의미하는 셈이다.

 

경계를 넘으면 푸른 하늘이 보이고 푸른 들이 보인다. “푸른이라는 시어가 눈에 띈다. “푸른 노래푸른 울음까지 보태면, 이 시에는 푸른이라는 시어가 네 번이나 나온다. “파랑새까지 계산에 넣으면 이 시는 온통 푸른색 계열의 시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색채 이미지에서 푸른색은 생명력이 움트는 모습과 연관된다. 파랑새에 담긴 희망과 자유의 의미 또한 푸른색에 스민 이미지로부터 뻗어 나온다. 묘한 건, 한하운이 이 시에서 푸른색을 죽음 이후에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죽어서야 비로소 푸른 하늘을 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서 인간은 늘 육체에 매여 있지 않은가? 꼭이 육체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하늘을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니까. 문둥병으로 고생한 한하운의 전기를 고려한다면, 죽어 파랑새가 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새삼 알 수 있을 것이다.

 

푸른 하늘과 푸른 들이 맞붙은 곳에서 파랑새가 된 시인은 푸른 노래를 부르고, “푸른 울음을 운다. 시각과 청각이 어울린 공감각으로 시인은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세상을 감각적으로 노래한다. 시인은 죽어서 다시 파랑새로 태어난다. 죽음을 또 다른 생으로 이음으로써 시인은 삶과 죽음 사이에 걸친 경계를 허문다. 요컨대 시인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잿빛으로 펼쳐진 생을 넘어서면 푸른 하늘과 푸른 들이 맞붙은 새로운 생이 나타난다. 시인은 생과 생을 연결하는 고리로 죽음을 설정하는 셈이다. 죽음을 노래하는 이 시에 시인이 파랑새라는 제목을 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인은 죽음을 통해 생을 노래한다.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생을 이야기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나 할까? 시인은 죽음을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생을 상상하는 힘을 얻는다. 파랑새는 죽음에서 희망을 보()는 시인의 이 마음을 정말로 간절하게 표현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o*****s 2019.01.02. 신고 공감 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