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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 버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버리기 위해 쓴다 / 쓰게 되면 버릴 것들이 생기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여 / 나는 사랑해서 너를 썼나 / 너를 쓰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 나의 사랑하는 자여 / 나에게 언제나 순서가 문제였지만 / 순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오늘의 안식은 어제의 기념 / 계절은 바뀔 것이나 / 기념은 계속될 것이다 어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날이므로 / 어제를 쓰기 위해 / 오늘은 계속 버려질 것이므로
사랑의 창조자여 / 네가 일요일과 월요일 중 어느 쪽이 한 주의 시작인가에 대해 골몰할 때 오늘은 지나가고 / 오늘이 지나면 / 내일이 올 것처럼 / 오늘이 온다
가끔 너는 / 버리기 위해 너를 썼냐고 물을 수 있다 그거 내가 너를 쓴 의도와 다른 것이지만 너는 그럴 수 있고 / 너는 물을 수 있지만 나는 / 대답해줄 수 없다
나를 창조한 나의 피조물이여 / 나의 사랑하는 비분이여 / 너를 내가 썼다
내가 너를 썼다고 쓸 수도 있다 / 그럼에도 내 사랑하는 자여 / 문장에는 / 순서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 포기하고 싶다면 ]
아 너는 새지 너는 날수가 있지, 라고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는 것을 잊고 / 살아있다 너무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는 나에게 전화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해줄 때 고마웠다 삶은 어디에나 있다 / 삶은 어디에나 삶은 어디에 / 삶은 어디 삶은 / 동생이 비둘기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해줄 때 느꼈던 감격이 때때로 / 그에게 힘이 되기를 기도했다 하나도 안 슬퍼 / 생각했던 장면에서 울게 되었다 그런 장면은 이제 슬프다 / 그러나 어떤 장면은 여전히 슬퍼하지 못한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은 / 미안한 마음만 이런 삶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 어디에서든 삶은 / 포기하고 싶다면 나는 너를 잊었다 나는 너를 잊었다 / 중얼거리다가 / 잊었다고도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 형 ]
형이 흘리는 눈물과 / 동생이 흘리는 눈물의 / 모양이 다르고 형은 형을 살고 / 동생은 동생을 살고 누구나 무엇을 모르는 채로 / 무엇을 살잖아 노를 젓는 동생들은 / 이제 안다 섬을 위한 노래는 / 섬과 섬 사이 / 바닷길을 위해 불러야 한다는 것을 / 이제 알지만 아무리 다시 불러도 노래는 자꾸 끝나고 / 형 / 형 누군가 나를 형일고 부를 때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아는 사람 ] 가로등은 아래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것을 / 가로등의 관여라고 말해도 좋을 지 / 모르겠습니다 가로등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주가 느껴질 때 힘들어 / 당신이 말했습니다 그것이 느낌뿐일 수도 있지만, / 이라고도 했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 /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 가로등의 빛보다는 방향이 선명해질 때 나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가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이 말뿐이라고 느껴질 때 힘들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 비는 어느 방향으로 내리고 있었습니까 알면서도 묻게 되는 밤이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젖고 있었습니다 / 양말까지 젖을 때까지 양말이 젖는 방향이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그쳐서 힘들구나 당신이 말했고 나는 모르는 사람과 걸을 때 아는 사람이 생각나서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 자장 ]
가사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이 노래는 편지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아침이라는 것을 강렬하고 느끼게 했던 꼭 말해주고 싶었단 햇살에 대한 노래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기원이야 바람이지 속히 편안한 잠에 들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하기보다는 / 기도에 가까운 후회 같은 것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 당신 꿈속의 풍경을 / 기원하는 노래야 들은 적 있었습니다 풍경을 / 듣는다는 말은 참 웃기지만요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는 것 / 같다는 말은 참 애석하지만요 밤새 자장 자장 / 노래를 불러준 적 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꿈속에서 기다리는 있다는 / 설원으로 당신은 / 우리는 실패했던 거지요 도저히 / 햇살이 눈을 때릴 때 / 나는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 주기 ]
보이지 않는 것도 때때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에 가보고 싶다고 했었지달이 크게 보여도 유독 밝아다 보이는 거 같아도 골목을 다 걸어야 한다
달에 살자 어떤 빛들이 달의 모양을 바꿔도 문 앞에 섰던 마음은 잊지 말자 우리는 달의 뒷면에 숨어 살자
[ 심호흡 ] 당연한 것들이 뒤집어지는 순간에 대해 / 이야기하고 싶어 / 감정적으로
소리가 빛보다 빨라지는 순간 같은 / 비명과 절규가 / 미칠 수 있는 범위에서 모든 감각을 압도하는 순간처럼
진리는 만장일치겠지 / 만장일치가 가능하다면 / 손이 발이 되도록 박수를 칠게
모든 지문이 다 사라질 때까지 / 소리를 지르면서 / 이해하는 척하면서 만장일치를
나와 너가 좋아 물 한 방울이 더 좋아 흩어진 채로 우리는 뭉칠수록 위험해지니까 휩쓸거나 휩쓸리지 말자
아직도 홍수가 심판이라고 생각해?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물속에서는 비명을 지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물속에서는 비명을 목격했다는 비문이 가능해지잖아
간절하게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 거울을 보고 슬퍼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거울을 보다가 / 눈이 마주쳤으면 좋겠다 지문이 생기면 눈이 마주쳤을 때 느낌을 오래 간직하리 / 라고 다짐해야지
[ 모르는 사람 ]
모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군요
두렵습니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없구요
[ 고향 ] 너는 거기 있다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에는 고양이가 산다 고양이를 보면 왜 아는 사람들을 생각하는지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넣고, 라고 쓰려다 잊지도 않을, 이라고 쓰고 있었네
고양이였다면 상처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기침을 하자 자리로 돌아갑니다 뒷모습과 돌아가는 길을 오래 바라보았지
고양이를 만졌던 오른손을 바라보며 / 다음에는 빈손으로 / 오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다음에는 빈손으로도 / 오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 거목 ] 할머니는 기도하셨다 마음속으로 / 빌고 빌었다 큰 나무 앞에서 지나치게 큰 나무들은 주로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쳐먹고 저렇게 커졌을까 끈질지기도 하다 / 중얼거렸다 마음속으로 할머니와 나는 마음속으로 그랬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기도할 때 할머니 할머니 / 부르지 못했다 어린 나에게도 기도가 / 간절해 보였기 때문에 자라면서 할머니 할머니 / 부르는 것이 어려워졌다 간절해 보였기 때문에 할머니 / 보고 싶은 할머니 어릴 적 미워하던 큰 나무 앞에서 할머니 / 불러보았다 혼자 있는 거 같았지만 큰 나무에는 벌레가 많았고 기어다니는 것들이 많았다 살고 있는 것이 많았다 / 유독 그늘이 큰 나무였다 나무는 나이를 들어도 계속 자라는데 / 할머니 나무가 크니까 낙엽이 더 많이 떨어진다고 / 낙엽을 치우는 사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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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토로
이 시집에 대한 칭찬과 극찬을 하도 많이 들어서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시집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신형철의 다음과 같은 문장 때문이었다. “성경적 상상력을 어떠한 현학도 없이 담백하게 활용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는 시”. 한국의 기독교 문학은 현재로서는 이승우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소설도 아닌 시에서 그걸 구현한다는 게 가능할까 늘 궁금했었기에, 이 문장을 읽자마자 이 시집이 읽고 싶어졌다. 시인들의 첫 시집을 읽는 일은 항상 설레는 일이지만, 이 시집의 경우 유독 기대가 컸던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II. 간밤에는 정말 미안한 일이 많았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대체로 다 좋았지만, 시인의 등단작이자 이 시집의 첫 시로 수록된 「월요일」이 가장 맘에 든다. 「안국역」 역시 좋다. 마종기 시인이나 곽재구 시인의 경우도 그랬지만, 내가 외국에 살아서 그런지 구체적인 한국의 지역이나 지명이 들어간 시들이 더 와닿는다. (물론 「안국역」 은 예외가 될 수도 있겠다. 엄밀히 말해 이 시의 제목은 무엇이든 상관없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구체성을 띤 제목이 상기시키는 어떠한 감정이나 추억들이 떠올랐는데, 그런 것들에서 연상되는 많은 것들이 향수를 자극한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이 시집엔 유독 '요일'을 제목으로 한 시들이 많다. 1부에는 시인의 등단작인 「월요일」을 비롯해 「화요일」, 「토요일」이라는 제목을 단 시들이 있다면, 2부엔 「목요일」과 「금요일」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참고로 「화요일」의 주제는 '철거'였는데, 2부에도 부제가 있는 시가 있다. 「하지」라는 시인데, 이 시의 부제는 '불안한 신체의 일부 혹은 이 계절의 전부'이다. 이 시를 오랫동안 읽었다. 사유하듯 산책하듯, 사유하며 산책하듯.
참고로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마다 제목이 달렸다.
III. 내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3부의 제목은 '내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이다. 3부에도 요일이 제목인 시가 두 편 있다. 「화요일: 조성」, 「수요일: 환절기」. 앞에서 언급한 신형철의 문장은 감안하자면, 시인이 요일에 천착하는 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든 엿새와 그 이후의 안식을 떠올리게 한다. 태초의 천지창조가 성경적 세계관의 시작이자 기독교적 세계관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서, '요일'을 제목에 붙인 시들을 주목해서 읽는다면, 현재 시인이 궁구하고 사유하는 시 세계를 좀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IV. 내가 썼던 문장들이 나 때문에 거짓말이 되었다
이 시집의 첫 시 제목이 「월요일」이고, 이 시로 시인이 등단한 걸 알게 되었을 때 만약 「일요일」이라는 제목의 시가 나온다면, 그 시가 시인의 대표시가 아닐까 추측을 했었다. “성경적 상상력을 어떠한 현학도 없이 담백하게 활용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는 시”라는 신형철의 평가나, 그 이후 등장하는 다른 요일을 제목으로 붙인 시들을 읽으며 그러한 심증은 더욱 굳어졌는데, 드디어 4부에 '일요일'이라는 제목의 시가 등장한다.
이 시는 성경의 아가서를 연상케 하면서, 한편으로는 창세기를 떠올리게 한다. 조물주로서의 창조주가 시를 쓴다면 이런 시가 될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분명 이것은 아가서의 시들만큼이나 사랑시임에 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맨 처음 짐작했던 대로 이 시를 이 시집의 대표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혹시라도 궁금한 분을 위해 이 시의 전문을 링크로 걸어둔다.)
V. 나는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기록되었다
이 시집의 제목은 4부의 「중보」라는 시의 시구에서 따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엄마는
- 홍지호, 「중보」 부분
어순이 잘못됐거나 비문인 것 같은 저 문장 속의 슬픔이 느껴져서 가만 가만, 거듭 거듭 생각하며 곰곰히 '중보'의 의미를 사색하게 된다.
처음에 이 시집을 훑어볼 때 해설의 제목이 '슬픔의 기원'이어서 왜일까 궁금했는데(실은 그 생각을 줄곧 하며 시들을 읽었다), 이 시를 읽으면 비로소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 가끔은 해설이 필요없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시집의 경우는 해설이 디저트의 역할을 한다. 완벽한 식사의 완벽한 마무리 같은 역할. 그러니 해설까지 꼭 읽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