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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관객수가 지난 19일 기준으로 1500만명을 돌파했다. 성웅 이순신의 인기에 힘입어 서점가에는 이순신 장군 풍년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남다른 리더십과 전략으로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이 책은, 해전의 승리를 연대순으로 나열한 것이 아닌 이순신 본인이 남긴 기록인 「난중일기」를 통해 바라본 정도의 원칙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이순신, 그의 가족환경 및 그가 받은 평가들에 대해 분석했다. 분량이 1백여 페이지에도 못 미치는데다가 어려운 내용을 다룬 것도 아니어서 1시간만 투자하면 읽을 수 있는 여유가 된다.
![]() 장군 이순신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실한(?) 뜬소문 두가지를 일소에 제거했다. 이백록이 기묘사화 당시 사약을 받고 죽어 이순신이 역적의 집안에서 자랐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근거없는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이순신의 할아버지인 이백록은 기묘사화(1519.11~1520.5) 당시 사약을 마시거나 죽은 일이 전혀 없고 이순신 집안이 역적이 되었다거나 처벌 받은 일도 없다. 왜냐하면 기묘사화가 15년이나 지난 시점인 1534년 8월 18일자에 이백록은 「중종실록」에 성균관 생원을 지내고 있었고 중종에게 쌀 1백 석을 내려준 일에 대한 감사의 글까지 올렸으며, 6년 후인 1540년에도 이백록은 살아있는 모습으로 「중종실록」에 등장한다. 이어서 6년 뒤인 1546년에도 다시 공식 기록에 나타나니, 이백록이 기묘사화 당시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허루라고 봐야 한다. 두번째, 가장 유명하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일본이 도고 헤이하치로 해군 제독이 이순신을 존경했다는 내용이다. 뭐, 근거없는 소문은 이렇다. '세계 최강 러시아 해군을 격파한 일본의 도고 제독조차 이순신을 존경했다. 그만큼 이순신도 대단하고 도고 제독도 대단하다'는 통설로까지 이어졌고 이렇한 내용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자면, 러시아 해군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둔 일본인 제독이 당시 자국보다 힘도 없고 이제 곧 식민지가 될 운명에 처한 나라의 장군 이름을 입에 담을 리 있겠는가. 그것도 장장 300년 역사 속의 사람을 말이다. 그것도 승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언급을 했을까. 더군다나 도고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제 강점을 도운 인물이다. 우리나라 식민 지배의 막을 연 원흉이나 다름없는데 이순신을 존경했다는 이미지를 굳이 갖다 붙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사실에 근거한 문서나 저서를 받아들이자.
난중일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어머니 변 씨인데, 전라좌수영에 근무하는 와중에도 이순신은 연락선이나 부리던 종을 집으로 보내 자주 병에 시달리던 어머니의 소식을 알아보게 했고 틈만 나면 어머니를 뵈러 고향집에 가기도 했다. 자식들과 처, 가족 구성원 모두를 걱정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와 남편이었지만 이순신은 실제 자신의 업무를 한 번도 소홀히 한 적이 없으며 개인사가 있더라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순신은 말단 관리였을 때부터 철저한 원칙을 내세워 직속상관의 요구를 거절할만큼 고된 길을 자청해 걷는다. 조정의 실세였던 율곡 이이가 만나자고 했으나 승진을 청탁하려 한다는 세간의 오해를 살까 하여 거절도 하고 대쪽같은 원칙주의로 인해 10년 넘게 하급 관직를 벗어나지 못했다. 승진한 이후에도 원칙주의는 계속 되었는데 탈영하거나 업무를 소홀히 한 부하들은 엄벌에 처했는데 난중일기 전체를 통틀어 처벌을 가한 횟수는 백 회를 넘는다. 하지만 이순신은 처벌만이 아닌 포상에도 신경을 써 신상필벌을 통한 투명한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원균이다. 옥포해전, 합포해전, 당포해전, 율포해전 등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고 이순신의 파직 후에는 수군통제사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내내 원균은 이순신과 얽히면서 불화를 빚었다. 들춰 보니, 원균이 본영을 빼앗기면서 후퇴를 거듭했고 아군의 위기를 보고도 구해주지 않았으며 수급을 얻기 위해 어부들의 목을 가져다 공적을 세우는 등 비겁한 행동들을 많이 저질렀다. 이에 이순신은 그에 대한 실망과 경멸, 혐오를 더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 수군의 무기와 장비는 일본 수군보다 훨씬 뛰어났다. 조선 수군의 주력함인 판옥선은 구조가 2층으로 이뤄진 대형 선박으로 우리나라에서 자란 소나무로 제조되었다. 외벽은 두께가 12cm나 되어 매우 탄탄했고 막강한 원거리 화력은 최대 장점이었다. 하지만 무게 때문에 움직임이 둔한 판옥선을 엄호하기 위해 빠른 기동성을 지닌 돌격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실전에 투입했고 총 80명의 인원이 함께 움직였다. 명량해전의 승리는 철저히 이순신이 기획한 작품이었다. 전투에만 몰입한 용장이 아닌 일본군을 상대로 한 첩보전과 정보 탐색에도 공을 기울였고 정보가 정확하고 믿을만하다는 판단이 선 다음에야 함대를 이끌고 적을 공격해 승리로 이끌었다. 이토록 차별성 있는 무기와 장비,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있었기에 이순신을 향한 온 국민의 추앙은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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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맞이하여 이 책을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없는 국민 영웅은 드물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긴 승리와 전략에만 주목한다. 그 점도 물론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분명한 일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한 『난중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 가족 환경, 생전과 사후에 그가 받은 평가 등을 전(全)방위적으로 분석하여 이왕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 바에 좀 더 정확히 알고 이해하자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순신 장군의 어떤 점이 특히 훌륭한지, 우리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본받아야 하는지 이 작은 책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먼저 이순신 장군의 모친인 ‘변’ 씨에 관한 여러 기록들을 통해 아들로서의 이순신 장군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아들 ‘면’이 일본군의 습격으로 살해당하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토로한 장면에서는 (장군으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사적인 측면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군인으로서 지닌 철저한 원칙주의 - 공정한 신상필벌(信賞必罰), 말단 관리였을 때도, 고관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변함없는 책임감과 청렴의 자세 등 - 역시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예의 엄격함은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고, 이 위대한 장군이 왜 승진이 늦었는지, 전공을 세우고도 모함으로 인해 백의종군 처분을 당했는지 알려준다. 나아가 이런 리더십이 임진왜란 당시 어떻게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는지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 결코 평가절하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상화 · 신성화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드라마틱하게 왜곡시킨 사례도 있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잘못된 오해도 친절하게 교정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서도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 말은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 공과 사를 구분하는 엄격한 원칙과 어떤 경우에도 정도(正道)를 따라야 한다는 불변의 가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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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은 누구나 아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을까요? 이 책은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업적 뿐만 아니라 인간 이순신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어 좋았습니다. 용맹함의 표상이며 뛰어난 전략가, 거북선을 만들어 왜구를 물리친 조선의 명장 이순신에 대해 쉽고도 잘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