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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쁨을 발산하는 사람은 깊고 따뜻한 사랑의 헌신을 실천하는 삶에 자기 자신을 내놓은 사람이다.
저자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산은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와 성취를 위해 오르는 산이다. 산을 오르거나 정상에서 어느 순간 실패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거나 시련에 빠지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로 삼고 낡은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나 통찰의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을 두 번째 산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산에서 우리가 더 명확히 해야하는 것은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를 깨우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개인주의의 삶이 아닌 공통의 삶을 의미있게 말해주는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전작 <인간의 품격>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며 그 후 자신에게 벌어진 시련의 시기를 거쳐 이 <두 번째 산>을 집필하며 우리에게 더불아 살아가야하는 소중한 삶의 이치를 전달해 준다.
어떤 사회가 오로자 이기적인 관심사로만 지탱이 될 때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분리되고 고립된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 지나치게 인지적으로 접근해 왔고, 도덕적인 관점이 필요할 때 지나치게 실용적인 관점을 채용해 왔으며, 더 높은 수준의 공동체 의식이 필요할 때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해 왔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회 차원에서 우리의 두 번째 산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첫 번째 산에서 우리가 성취한 것들(좋은 일자리, 훌륭한 가정, 안락한 삶의 온갖 즐거움)을 몽땅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삶 전반에서 일상적으로 자아를 드높일 필요가 있다. 헌신의 결단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어떤 정신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 수준 낮은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깊은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런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린다. 기쁨은 현실적인 실체이다.
‘좋은 인생’의 정의를 놓고 행복과 기쁨의 의미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더 많이 헌신하는 삶을 살수록 기쁨은 당신에게 더욱더 꾸준한 상태로 남을 것이고, 당신의 이런 감정의 틀 덕분에 그 기쁨은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햇살처럼 뿌려질 것이다. 기쁨의 여러 가지 종류 중에서 도덕적인 기쁨이 가장 높은 층의 기쁨이며 이 기쁨은 영원할 수 있다.
‘나는 자유다’라는 거대 서사는 대략 50년 동안 작동해 오면서 초개인주의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주적 문화는 여성을 옭아매교 사회적 소수자를 억압했던 많은 사슬들을 깨뜨렸다. 인종차별 주의, 성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동성애 공포증을 누그려 뜨렸다. 이상적인 사회는 사람들이 각자 남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은 채로 자기 일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다. 사람은 자시만의 개인적인 인생 여정을 수행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자아를 더 잘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부패한 사회의 여러 기준에 획일적으로 자기를 끼워 맞추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스스로 의미를 사유화한다.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 최고의 인생은 가장 자유로운 인생이다. 성과를 가장 중심적인 판단 기준으로 두는 것이 초개인주의 사회이다. 하지만 ‘나는 자유다’라는 문화 속에서 개인들은 외로우며 서로에게서 느끼는 애착은 느슨하다. 즉, 사랑과 연결을 바라는 깊은 인간적 갈망을 채우는 것을 한 층 어렵게 만든다. 개인주의 사회는 네 가지 서로 연관된 사회적 위기를 낳았다. 첫째, 외로움의 위기는 높은 자살률과 평균 수명 단축, 정신질환, 약물 과용 등의 상승을 초래했다. 둘째, 불신에 따른 소외의 위기이다. 인간관계의 질이 예전보다 더 나빠져 불신이 불신을 낳는다. 사람들은 불신을 느낄 때 자기가 의지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셋째, 사람들은 삶이 힘든 순간들에 자기 인생의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자기만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의미의 위기다. 넷째, 부족주의 위기이다. 부족주의 정신은 희소성을 토대로 하는 전사의 사고방식이다. 이 사고방식에서 인생은 희소한 자원을 놓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며,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여기에서 결과가 수단을 합리화 한다.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고통은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다. 이 계곡의 고뇌의 시간에 자기 인생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우리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계곡의 고뇌로부터 사막의 정화를 거쳐 산봉우리의 통찰에 이르는 것이다.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끈기를 가진다는 뜻이다. 계곡에 있을 때 운 좋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전인적인 인간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면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이들에게 봉사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여러 소망들이 거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개인주의 문화는 1950년대 획일성에 대한 반란이며, 두 번째 산의 정신은 이 반란에 대한 반란이다.
두 번째 산에 오르기 위해선 직업 선택에서도 심장을 깨우고 영혼을 자극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나?”라는 기능적인 선택이이 아닌 “나는 어떤 활동을 사랑하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고, 내 존재의 근원에서 나를 사로잡을 정도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자신의 심장과 영혼, 장기적인 동기부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삶보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삶을 더 안전하게 느낀다. 직업과 관련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욕구가 늘 생생하게 깨어 있도록 하는 나날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일자리는 생계수단이지만 일은 인생이 그 사람 앞에 놓여 있는 의무를 다하는 특정한 존재 방식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산에 올라가,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보이는 영원성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이다. 한 우물을 파서 그 일에 통달하는 것인데 통달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사물을 개별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전체 구조 속에서 본다.
결혼에서의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의 이론에 따르면, 헌신하는 인생에서 최고의 결혼 생활은 공동의 인간관계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는 영웅적인 탐구로 여겨진다. 결혼 생활이 어떻게 될지는 두 사람이 얼마나 기꺼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질 때 한층 더 안전한 것이고, 반쯤만 던질 때는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모든 것이 잘되었을 때 당신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깊고 꾸준한 사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교육에서의 두 번째 산에 오르기 위해선 최고의 교육이 최상의 욕구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학대학교의 목적은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도록 돕는 것이며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학교의 목적은 학생들의 영혼이 어떤 꼴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대상을 잘 보는 것은 실체를 선명하게 바라볼 줄 아는 다른 사람들(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지 엘리엇, 조지 오웰 등)에게서 배워야 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정서적 지식은 하나의 기술이며, 다른 기술들처럼 습득해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기쁨은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욕구를 바꾸어 최상의 욕구를 가지는 데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인생은 더욱더 높은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한 줄기 빛처럼 스며드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순간이란 늘 보던 눈에 익은 현실의 껍질이 깨지면서 알 수 없는 어딘가로부터 어떤 빛이 비추어진다고 느끼는 순간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서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우주는 살아 있으며 연결되어 있다고 그 순간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 있으며 스스로 의사소통을 한다. 세상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활력을 불어넣는 어떤 힘이 존재하며, 이 힘은 우리를 물이나 공기처럼 뒤덮고 있다.
작가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기독교의 믿음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신앙 또한 의미있는 믿음으로 생각한다. 신앙에 더 깊이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무언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거기 있던 것을 비로소 눈을 뜨고 바라보게 되는 느낌, 일상에 널려 있는 실체 속에서 성스러운 존재를 바라보게 되는 느낌이다. 신앙에 대한 헌신은 신앙의 온갖 시련 속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그 신앙이 사라지고 없는 순간들 속에서조차 신앙을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열정적인 반응이다. 그것은 참여, 신의 더 큰 의지에 자기의 의지를 보태는 복잡한 참여이다. 어떤 무한한 사랑의 존재가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무한한 헌신의 대상일지도 모를 가능성, 그리고 그 헌신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줄 가능성을 생각해보라. 바로 이것이 종교가 희망인 이유이다.
개인주의 사회가 낳은 고립상태의 문제들은 계속 더 증가하며 사람들은 다들 소속감을 갈망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 회복은 헌신에서 시작된다. 공동체를 재건하려면 우선 개인이 아니라 이웃을 사회 변화의 본질적인 단위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하나로 묶을 방법, 즉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지우고 그 자리에 친밀함과 연결성을 심는 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길이 타올라야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의 약점을 나누며 여러 감정들이 분출되고, 연소가 일어난다.
건강한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전망이 있다. 바로 관계주의를 통하는 길이다. 이 길은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나 아닌 타인을 돌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찾아내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쪽으로 자기 존재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 선언문에서 나는 현시점의 초개인주의를 반대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인 관계주의를 주장하고자 한다. (p.560)
누구에게나 고통의 시기는 찾아온다. 작가가 이 책의 핵심은 그 고통 가운데 깊은 골짜기에 빠져 헤매이며 멈추지 말고 그 시기가 우리가 깨어져 열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한다. 책 속에 소개된 헌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들은 누군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보장을 해주는 것이 아님에도 스스로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자청한다. 이들에게 헌신은 기쁨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나 스스로도 정화됨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가 온라인으로 도덕 수업을 들으며 "남이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내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신기해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렇게 남을 위하는 마음은 전염병처럼 바이러스처럼 소리없이 퍼져나가 누구에게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에게도 원치 않았던 예상도 못했던 일로 계곡으로 떨어진 시기가 있었다. 그 고뇌의 시기엔 사실 내가 무언가를 배워가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망과 좌절이 더 컸었다. 그런 시련이 없어도 인생은 잘 살아지고 오히려 그런 아픔이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더 크케 자리 잡았었다. 그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내 주변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돌아보니 그 때의 시련이 나에게는 더 많은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게 해줬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소소한 봉사활동으로 많은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만심을 가졌던 것에 대해 반성하며 아직 남을 위해 오롯이 헌신을 하지 못하지만 다른 이에게 더 많이 베풀어야 함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고난의 시기에 느꼈던 나름의 소명은 언젠가 꼭 실천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은 이 생각이 실천이 되고 내 삶에 뿌리를 완전히 내리기 위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지금 고뇌의 상황에서 원하지 않던 시련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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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궁금했다. 두번째 산.. 인생을 힘든 여정에 비유해서 산을 넘는다고 많이들 표현하니까 그런걸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그냥 단순한 생각일 뿐이었다. 정말 의미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성공을 논할 때, 개인의 행복, 성공, 부, 명예 등을 주로 꼽는다. 물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직장에서 성공해서 많은 부를 갖게 되고, 독립적으로 일을 하며, 자율적으로 뭔가 할 수 있게 되는 삶을 목표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번째 산은 이런 생각을 과감히 날려버린다. 개인의 성공, 자율, 독립 등의 가치를 넘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호 의존하고, 관계성을 회복할 때 진정한 인생의 두번째 산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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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인생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성취하는 산. 그 다음은 나누는 산. 혹은 깨닫고 내려놓는 산.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산다. 직업, 돈, 학업, 연애, 무엇이던 어떤 목적이 있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고, 끝없이 올라간다. 그것이 첫 번째 산이다. 그런데 그 산을 오르고 나면 이상하게도 공허함이 찾아온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것인가? 하는 그런 물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계속 찾고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고난을 겪게 된다. 육체적, 경제적, 심리적 고난. 사람마다 그 크기는 다르지만, 그 고통의 강도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겪는다. 그걸 계기로 성장한다. 못 보건 것을 보고, 못 느끼던 것을 느끼고,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음 산을 넘게 된다. 두 번째 산. 첫 번째 산이 '나'를 위함이었다면, 두 번째 산은 '우리'를 위함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첫 번째 산 이후에, 더 이상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방향이 조금 바뀐..다고 해야 할까? '나'를 내려 놓고, '우리'를 위한 방향으로 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이 무척 길다. 정말 길다. 그리고 뭐랄까..번역이 조금 어색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뒤로 갈수록, 요점만 짚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은 너무 좋다. 삶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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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에서 관계주의로
『성장의 톱니바퀴→성장을 방해하는 도끼→성장의 톱니바퀴를 다시 돌게 하는 새 중심축→새로운 성장의 톱니바퀴→……』 지리학자 루스 디프리스는 이 같은 패턴 속에서 도덕적 진보가 일어난다고 한다.(p64) 정반합에 의해 역사가 발전한다는 헤겔의 변증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지금 우리 역사가 첫 번째 산에서 두 번째 산으로 옮겨가는 전환의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성장의 톱니바퀴가 두 번째 산이다.
첫 번째 산은 ‘개인주의’이다.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시한다. 자유를 구속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고, 개인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개인적 성취를 목표로 삼고 자아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 개인의 성취를 주로 돈이나 권력, 명예로 보상받는다. 사생활을 보호하고 개인적 관심사를 존중하며 자아실현에 인생의 행복이 있다. 개인은 선택의 자유를 지니며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완결적인 단위의 개인 각자가 모여 계약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된다.
두 번째 산은 ‘관계주의’이다.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중요시한다.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심장과 영혼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 개인은 인격 완성의 성취를 도덕적 기쁨으로 보답 받는다. 개인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공동체 안에서만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개인은 소명에 응답하며 개인의 성장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공동체가 진다. 개인은 사회 관계망의 연결점으로 상호 의존적이며, 우리가 나보다 선행한다.
‘개인주의’와 ‘관계주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로 대체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개인과 역사가 공동체를 향해 가야 한다고 같은 주장을 한다. 개인주의는 1960년대에 획일적 집단주의에 대항해 나타나서 지금의 초개인주의 문화로 진화하였다. 그 동안 개인주의 문화는 인종 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동성애 공포증을 누그러뜨리고 정보화 시대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극단으로 치달을 때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무관심, 외로움, 소외, 사회적인 고립, 불신, 양극화, 가족 해체, 공동체 소멸, 부족주의, 우울증, 치솟는 자살률, 연대감과 대의의 소멸 등의 문제점들이 첫 번째 산에서 두 번째 산으로의 등정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서 부족주의를 관계주의의 하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관계주의는 상호 애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부족주의는 상호불신을 기반으로 한다. 부족주의는 ‘우리 대 그들’, ‘친구 대 적’, ‘파괴자 대 파괴되는 자’라는 대립을 전제로 한다. IS 테러조직과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당파가 부족주의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첫 번째 산에서 두 번째 산으로 넘어가는 과정과 방식을 여러 사례와 예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두 번째 산에서 어떻게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 생활을 꾸려가며, 인생철학을 세우고 신앙을 경험하며, 공동체에 기여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직장, 가정, 교회는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일 것이다. 직장, 가정, 교회에서의 헌신과 봉사를 통해 공동체 삶에서 필요한 친밀감 쌓기, 애착 갖기, 자기 내려놓기, 약속 이행하기 등을 배워야 한다. ‘어른으로 사는 최고의 인생은 직업에, 가족에, 철학이나 신앙에, 공동체에 헌신하고 또 그 헌신을 계속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p566)
이 책에서 말하는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모든 사람의 모든 인생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공식은 없다. 첫 번째 산을 오르다가 실패해서 계곡에 떨어진 후 고통을 통해 두 번째 산을 바라볼 수도 있고, 처음부터 두 번째 산에 오를 수도 있다. 첫 번째 산 등정에 성공한 사람도 두 번째 산에 오를 수 있다. 고통에 처한 사람은 자시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으므로 두 번째 산을 바라보기가 더 쉬울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번째 산이 등정해야 할 높은 산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산이 아닌 이웃과 나란히 걷는 평지일 수도 있다. 사실 산보다는 함께 손을 잡고 걷는 평지가 더 좋은 비유이지만. 저자가 산으로 비유한 것은 공동체 삶이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관계주의는 얼핏 이상주의처럼 느껴진다. 심장, 영혼 같은 말들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는 사람이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소명에 응답하는 직업관도 신비스럽다. 좋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 전에 자신에게 5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일 경우 심리적, 정서적, 도덕적 세 가지 잣대를 또 들이대야 한다. 심리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변수가 또 10가지, 도덕적 관점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 또 8개나 있다. 과연 누가 좋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영혼의 갈망을 충족하여 전인적인 인간이 되게 한다는 관계주의의 목표는 두 번째 산의 봉우리가 매우 높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리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이전 농촌사회가 저자가 말하는 ‘관계주의’의 이상적 사회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동체 사회’가 얼마나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요즘의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 사회를 저자의 이상과는 반대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개인주의도 관계주의도 개인의 존엄성과 영혼의 존엄성을 말한다. 그리고 존중과 사랑이야말로 자유, 권리, 봉사, 헌신 모든 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관계주의는 초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중간 방식이라고 결론짓는다. 관계주의는 어떤 사상 체계가 아니라 인생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도 말한다.
저자는 다소 현학적이며 장황하게 전개하던 내용을 마지막 장에 선언문 형식으로 결론짓고 있다. 책의 분량(p588)이 부담스러우면 서점에 가서 이 뒷부분만 읽어도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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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이 시대에 위기를 4가지로 정리한다.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진정한 교제와 관계가 없는 외로움, 그 외로움으로부터 파생한 불신, 그리고 아무도 믿지 못하기에 진리가 없고, 자신의 삶에 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수 없기에 의미를 잃은 삶이 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의미를 잃은 사람은 그 의미를 힘들게 찾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 자신의 만족을 채워 줄만한 것을 찾아 팬이 되기를 선택한다.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만 찾는 팬덤의 시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 어렵기에 대중에게 보여지는,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들만 찾는 팬덤의 시대, 자신의 부족함을 투영하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그런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의 위기라고 이야기 한다. 팬덤에 의미는 없다. 팬덤에서 가치는 없다. 혹 있다고 하면 내 자신의 좋고 싫음.. 내가 좋은 것에 팬이 되지 바른 것에 팬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팬이 되지 해야 할일에 팬이 되지 않는다. 요즘 팬덤.. 참 무섭다. 거짓보도를 하는 기자도 그 기자의 의미를 찾기 보다는 연예인처럼 사랑한다,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가 했던 보도는 중요하지 않다. 비싸고 바가지 쓰고 그리고 .AS도 잘 안되지만 팬덤.. 곧 애플빠가 되어서 그 제품을 쓰고 있는 것이 문명인이라고 생각한다. 전광훈씨라는 이단이 성경과는 상관 없는 말을 하고, 복음을 훼손하고, 심지어 신성 모독을 해도 많은 이들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말씀을 복음 처럼 생각한다. 참 걱정이다. 사람들이 의미를 찾는 두번째 산에 올랐으면 좋겠다. 혼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첫번째 산, 그 산에서 내려와서 함께 끝까지 갈수 있는 두번째 산을 올랐으면 좋겠다. 힘들지만 어렵지만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부르심에 따라서 다시 그 길을 가는, 그 두번째 산을 오르기를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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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제가 20대 일 때 나왔다면 읽고 인생의 방향성을 찾는 데 좋은 지침이 되었을 것 이지만, 이제 인생 중후반부를 가고 있는 나이에 읽으니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날을 뒤돌아고 주위의 사람들과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생의 길을 산에 비유하여 서술한 작가의 필력과 마음깊이 끌어당기는 문체가 훌륭한 번역과 어우러져 깊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20대에는 이 책을 못 읽었지만 저에게는 아들이 있으니 이 좋은 책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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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과 함께 정말로 내 인생에 두번째 산이 찾아왔다. 이 책을 읽은 후 맞이했다면 좀 더 의연하게 좀 덜 방황했을텐데 왜 이제야 읽었을까 아쉽지만 그 시간을 차분히 다시 돌아보게하고 이제라도 내 자신을 위로해본다 의연하게 내 인생의 두 번째 산을 오르겠다. |
|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고 필사까지 하게 만든 책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의 시기는 찾아온다 첫번째 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실패를 경험하고 나가떨어지거나 성공을 거두지만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산다 그래서 두번째 산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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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산 주변 지인 추천을 해달라고해서 한번 구매를 해봤다.이책을 추천을 아는 지인이 추천을해서 구매를 하게됬습니다.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어떤 열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열망에 맞닥뜨릴 때 이 사람들은 전인적인 인간(whole person)이 될 준비가 완료된 상태이다. 이들은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을구매를 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생각을 잠기게 된다. 고민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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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하게하는 고마운책 사람을 살리는책 구체적인 삶의 경험과 이야기를 날카로운 글솜씨로 풀어낸 부드럽고 날렵한 책 자신의 지난삶에 대해 너무나 솔직하고 진솔하게 풀어내는진정성이 느껴져 더 공감이 된 책이다 나자신만을 위한 첫번째 산이 아닌 함께 오르는 두번째산이 기대된다 자아를 위한 첫번째산에서 느낀 갈증과 채워지지 않는공허함이 무엇으로 메꾸어질 수 있는지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