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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희 시 [호랑이는 풀을 안 좋아해] 서평
말이 돼 고양이보고 / 한 발 들고 / 전봇대에 쉬하라고 / 한다면? // 병아리보고 / 오리 따라 / 연못에서 헤엄치라고 / 한다면? // 방과 후 / 시소, 그네, 미끄럼틀 / 못 본 척하고 / 학원 버스 타야 한다면? // 흐릿한 저녁별 보며 / 집으로 돌아오는 내가 /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떠오르는 시다. 엄마들 모인 학예회에서 아이가 이 시를 낭송하는 상상을 해 본다. 말 안 되는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현실을 고발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 자녀양육 세미나에 따로 가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답은 이미 이 시 속에, 그리고 우리 마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유월 잠 깨자마자 / 들깨 모종 붓고 / 건너 밭에 메주콩 심고 // 뻐꾹뻐꾹뻐꾹뻐꾹 // 밥 한 그릇 비우고 / 늦모도 심어야 한다고 // 뻐꾹뻐꾹뻐꾹 // 많이 울면 / 가문다는 말 / 귓등으로도 안 듣고 / 내일은 / 마늘 캐야 한다고 // 뻐꾹뻐꾹뻐꾹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고 있는 시골 농가의 풍경이 생생하다. 새벽부터 들깨 모종 심고, 콩 심고, 쉴 틈도 없이 뚝딱 점심밥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모를 심어야하고 저물녘이면 고단한 몸과 마음 쉴 새 없이 내일은 또 마늘 캘 일을 가슴에 담고 잠드는 농부의 분주한 일상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의 가슴엔 뻐꾸기 소리마저도 농촌 일상의 분주함을 일깨우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참으로 오묘하게도 바쁜 농가의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유월의 뻐꾸기 소리가 시의 행간에 불어넣어 주는 것은 일상의 분주함을 완화시켜 주는 촉촉한 서정이다. 뻐꾸기는 시골농부의 내면이며 촌부를 따라다니며 그와 함께 일하는 또 하나의 일꾼, 시의 행간에 숨어서 화자를 응원하는 독자로서 시골 농가의 분주함이나 고단함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서정을 일깨워준다. 농촌의 일상을 몸소 겪어내며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런 내밀한 정서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시대라서 아이들에게 더욱 읽히고 싶은 시이다.
분수 손에 손잡고 위로 위로 // 숨 한번 참고 다시 위로 위로// 엉덩방아 찧어도 어깨 부딪혀도 //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꽃 피운 // 한 그루 // 물나무!
하늘로 하늘로 물줄기를 세워 올린 분수! 한 그루 멋진 나무 형상을 보면서도 그것을 미처 ‘물나무’로 표현할 줄은 몰랐다. 분수는 멋진 닉네임을 지어준 시인을 위해 더 높이 하늘 향해 솟구치고, 나는 공원 분수대를 지날 때마다 박덕희 시인의 절창을 생각하며 발걸음 멈추게 될 것이다.
도라지꽃 텃밭에 피어난 도라지꽃 // 대낮에도 / 빛나는 별 // 넘어갈 듯 깔깔거리는 / 하얀별 보라별 초록별 무리 지어 피어난 // 은하수 // 할머니가 가꾸는 / 도라지별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텃밭에 심는 꽃은 대개 도라지꽃이다. 보랏빛, 흰빛 꽃도 예쁘지만 약재로 쓰이는 꽃이어서 더욱 귀히 여긴다. 그래서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꽃으로써 도라지꽃과 할머니와의 연결은 참으로 자연스럽다. 도라지꽃은 청초하고 단아하다. 할머니가 가꾸는 도라지꽃은 할머니의 내면이거나 도라지별이 된 할머니의 영혼이다. 즉, 먼저 가신 할머니가 별이 되어 은하수 강가에서 도라지꽃밭을 지켜보시거나 혹은 이생에서 은하수 꽃밭같은 도라지꽃밭을 가꾸거나, 그 어느 쪽으로든 이미지의 확산이 가능하다. 내겐 할머니가 가셨기에 이 시가 더욱 애틋하게 읽힌다.
수선화 마당 한쪽에 / 꽃이 피었습니다 / 엄마가 심어둔 노란 꽃이/ 봄이라고 돌아왔습니다 / 꽃 앞에 앉았습니다 / 바람에 흔들리는 꽃 속에서 /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 엄마를 만납니다 / 너무 멀리 있어 올 수 없는 / 엄마가 / 새봄이라고 / 피었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엄마와의 사별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시이다. 사별이 아니어도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많은 시대. 함께 이 시를 읽으며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에서 위로 받기를 소망해본다.
아빠 자전거 흰둥이 앞세우고 / 둑길 걸으면 / 저 멀리 왕버들 이파리에 묻은 / 저녁이 푸르스름해져 와요 // 차르르르 차르르르 // 아빠가 귀뚜라미를 몰고 와요 / 가만가만 가을을 몰고 와요 // 흰둥이가 뛰어가 / 컹컹 가을을 맞이해요 // 귀뚜라미들이 / 아빠를 무동 태우고 / 둑길을 달려와요
푸르스름한 저물녘,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정서를 노래한 시이다. 흰둥이 앞세우고 아빠를 마중나간 둑길에서 아이는 왕버들 이파리에 묻은 저녁 이미지와 가을을 만난다. 인간에겐 우연과 필연의 겹침 속에 문득 번뜩이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고 그 깨달음의 순간 속에서 또 한 줄 성장의 나이테가 자란다. 이 시에서 화자의 깨달음은, 아빠가 귀뚜라미를 몰고 오는 사람이며, 가을을 몰고 오는 존재 즉, 절대자와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화자의 깨달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빠를 무등 태워주는 대상이 있으니 바로 자연이다. 귀뚜라미, 라는 자연물이 아빠를 무동 태우고 옴으로서 아빠의 위상은 더 빛나고 한 인간의 성장의 순간을 함께 엿보는 독자의 가슴은 더욱 설렌다. <아빠의 자전거>는 아빠가 몰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가을이 몰고 오는 것만 같다. 그만큼 이 시 속에 표현된 가을 저녁의 이미지는 독자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귀뚜라미가 고단한 아빠를 무동 태우고 오는 가을! 일상을 뛰어넘는 이 비범한 가을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처럼 시를 읽어야하는 이유이리라. *2020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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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앞세우고 둑길 걸으면 저 멀리 왕버들 이파리에 묻은 저녁이 푸르스름해져 와요
차르르르 차르르르
아빠가 귀뚜라미를 몰고 와요 가만가만 가을을 몰고 와요
흰둥이가 뛰어가 컹컹 가을을 맞이해요
귀뚜라미들이 아빠를 무동 태우고 둑길을 달려와요 ................................. 시인의 기억을 통해 시인의 지성을 통해 나오는 의미체계가 잘 엮어진 동시집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잠든 동심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며 또는 가벼운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부드러운 호흡으로 또는 바쁜 발걸음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시편들은 아련하면서도 낯선 풍경들로 상상 속을 날아가 머물게 한다. 시의 시점은 늘 현재에 있어야 한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들이 아프면서도 교훈적으로 그려진 시편들은 어른이 읽어야 마땅한 동시들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지금 자리해 있는지 되새겨 보는 일을 시편들은 보여주고 있다.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