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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라는 제목 부터 눈길을 끌었다. 말의 힘이란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느끼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정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와닿는다는걸 느끼고 부터는 말조심을 하게 되게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감언이란 말을 경계하라. 얼마전 까지도 깨닫지 못했던 거 같은데, 이책에서 사자성어와 결합하여 말의 무게를 설명하는데 나 또한 속담과 많이 결부하여 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것 같다. 정말 대단하게만 보였던 사람들이 지나고 보니 실상은 정말 전국민 상대로 사기를 일삼고 다녔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교언영색 :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 정말 사탕발린듯 한 말이나, 말이 앞서는 사람들을 많이 조심해야된다고 느낀다. 딱히 닥쳐진 일이 아니라 그렇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회생활이 쌓이면서 이제는 사람을 조금 선을두고 많이 조심하게 된다. 늘 보이는게 다가 아닌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일땐 너무 순진무궁하게 사람들이 하는말을 그대로 다 믿고 와 부럽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언제 그렇게 되지? 라는 물음표를 가지고 살았었는데 , 이제는 누군가가 자랑을 하면 반은 듣고 흘려버린다. 정말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게 보이는건 다가 절대 절대 아니라는 것 이었다. 자꾸만 이런 일이 생겨 사람을 더 조심하자는 교훈을 얻으면서도 이제는 의심 먼저 들어 경계심이 앞서 자꾸 선을 긋게 되는일이 자주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저자의 듣기좋은 말은 경계해야된다는 것과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교언영색 이라는 사자성어 크게 공감이 되면서 더 집중적으로 읽혀진 것 같다.
늘 말이 많았던 내가 말을 줄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어떤 책을 읽던중, 말이 많아지면 결국 실수를 부르고 자꾸 반복된 말을 횡설수설 하게 된다는 걸 읽고 내 대화법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된 듯 하다. 나는 요점만 간단히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또한 했던말 반복, 또 반복 하다보니까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때도 많았던거 같다. 말을 줄이는게 아닌 , 어떻게 요점만 간단히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말하는법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
감언 이라는 다음으로 망언 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이 된다. 학창시절에 독설을 너무 많이 해서 주변친구들을 여럿 울렸던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고 후회가 많이 든다. 하지만 그 상황 상황에 지금도 가끔 망언이 자주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의 문제점을 너무 잘 알고있지만 고치기 힘들었는데, 이책을 통해서 나의 말의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같다. 책 제목 부터가 흥미로웠는데,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너무 재밌게 와닿는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게 말 인것 같다. 나는 별 뜻,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어떤이들이 상처를 받으니 말이다. 어떤 말하기가 좋을지 아직도 많이 다듬어야할 숙제 인 듯 하다. 나의 말솜씨라든가, 성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돌이켜 본 시간이 되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읽혀진 책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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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터 주눅이 든다. 나의 말의 무게는 얼마일까. 가벼울래야 그보다 가볍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요즘 육아휴직 중인데다 코로나19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그나마도 말의 무게가 예전보다 더 가벼워지는 참사는 이래저래 피하고 있는 참이다. 그렇다고 가족에 대한 말에 失言이 없다고도 하기는 어렵고, 주희의 <중용장구> 중 '계구신독 戒懼愼獨'이라 하여 혼자 있는 시간에 삼가야 하는 것 역시 말의 근원인 마음이라고 할 것이니, 결국 어려운 처지인 것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말의 무게>는 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先人들이 남겨놓은 말에 대한 경계와 말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고전이 전하는 말의 무게> 운 좋게도(?) 학창시절 '한문' 과목이 교과목에서 제외되었고, 때문에 교과서에 실릴 법한 기본적인 고사도 제대로 익혀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청소년 시기를 지났다. 그러다 대학에서 필수과목 외 선택과목은 거의 다 철학과목을 수강하면서 난데없이 古事와의 어색한 同行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읽은 오래전 선인들의 지혜가 얼마나 꿀맛이던지, 얼마 뒤 사둔 고전전집은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컴퓨터 옆에 나란히 꽂혀있다.
<말의 무게>에 실린 여러 고사에 얽힌 선인들의 지혜는 절반 이상이 禁言 혹은 謹言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학시절 함께 한 동양철학서에도, <말의 무게>에도, 함부로 입을 놀려 처하게 되는 상황들에 대한 경고가 가득하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나니 그런즉 네 말 수를 적게 할지니라.'는 전도서의 기록(5장 2절)이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글, 결국 '말에 대한 경계'는 동서고금의 진리인가 보다. 그러나 위정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참된 '말'이지 침묵이 아니다. 자신의 안위와 지위만을 전전긍긍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조차 내지 못하는 부하들 또는 백성들만 있는 곳이라면, 참담한 결말만 낳게 될 것이다. 천하를 호령한 칭기즈칸이,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말' 덕분아니겠는가.
결국 '말의 존부'보다는 '말의 내용'에 무게를 두는 것이 옳다. 나랏일처럼 거한 경우뿐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말을 너무 조심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함께 말할 만 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라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너무 조심스러운 나머지 대화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흠을 조금 드러내보이더라도 함께 웃고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훨씬 선호한다. 사회생활 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上司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일 말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워, 모두들 어려워하는 자리임에도 나 아닌 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내주기만을 기다리며 입을 닫고 있는 동료는 당연히 좋아보일리 없다. 어려운 자리임에도 용기를 내어 어수룩한 말이라도 먼저 꺼내 모두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빛난다. 말의 자리는 그처럼 어렵다. 쓸만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에 한번쯤 되새겨보라고 권하는 작가의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내 말의 무게는 얼마일까?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었을까? 나는 떠도는 말에 휩쓸리지는 않았나? 나는 내가 한 말을 실천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말을 했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말, 특히 온라인에서 떠도는 말에 대한 고찰은 한번쯤 깊이 다루어질만하다. 작가도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다루고는 있다. 상대가 눈 앞에 있지 않기에,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가볍고, 흥청망청 쏟아지며, 무수한 오해의 소지를 담고도 진실은 끄나풀조차 분별해내기 어려운,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말'들이 날선 공격의 수단이 되어 여전히 힘을 받고 있는 시대. '말'로 인해 죽고 살았다던 오래 전 이야기를 쉽게 넘기기에는 상처가 가득한 시대. '말'에 대한 오래 전 선인들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이 시대를 살고 있기에, 작가의 고찰이 적지않은 울림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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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한다. 그저 입이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입을 통해 말이 나가지만, 생각이 입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말이 되어 나갔을 때는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혼잣말이 아니라 누군가 말을 들었다면 그때부터 그 말은 무게가 실리게 된다. <<말의 무게>> 12쪽 첫 문장부터 내 마음이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후 22개월 아기 육아를 하며 실로 엄청난 말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 내가 뱉은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습관대로 말을 내뱉어 왔다.
처음에 말에 관한 책을 찾기 시작한 것은, 유시민 작가님처럼 말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단순히 화술의 역량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말이 나오기 까지의 사고과정이 좀 더 논리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박경남 님의 <<말의 무게>>는 논어, 서경, 채근담 등 고전에서 한 장면 장면을 끌어와 '말'의 중요성, 적시성, 적절성 등에 관해 쉽고 부드럽게 안내해 준다.
낯선 사자성어로 된 제목 한 챕터 챕터를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의미없는 말만 하지 않았는가? 남들 험담이나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는가? 그런 말을 타인에게서 많이 듣지 않았는가? 좋은 에너지를 가진 말들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가? 나 스스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가진 말들을 해주고 있는가? 나는 내 마음을 담은 진정성 있는 말들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도 남들에게만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 따뜻하고 힘되는 말을 오늘도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내가 되길 희망해 본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귀담아들을 좋은 말들이 많이 있었다. 육아의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 수행길이구나. 허허허. 말 뒤에는 무의식이 작용한다고 적어두신 부분도 눈에 띈다. 나도 모르게 내뱉는 말에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영역이 작용한다니, 무섭지 않은가! . 증자는 아이에게 실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무지해서 부모에게 배우는 것인데 어린아이를 속인다면, 아이에게 사기를 가르치는 것이 된다고 했다. 어미가 아이를 속이고, 그래서 자식이 어미를 믿지 않게 된다면 앞으로 어찌 교육을 시키겠냐며 돼지를 삶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에게 실없는 말, 즉 식언을 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부모의 식언은 아이가 부모로부터 거짓을 배우는 것과 다름없다.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키우지 않으려면 아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일이라도 말이 나간 이상 반드시 지켜야 아이도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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