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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대사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원작소설을 쓴 이응준 작가님의 신작소설을 만났다. '밤의 첼로'는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받은 느낌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의 책이다.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하며 침울한 분위기의 단편들이 담겨져 있다. 단편들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면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제목인 밤의 첼로에서는 수목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수목원 친구가 아끼는 늑대의 이야기보다 찾아온 남자의 옛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한 남자를 통해 남자는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남자는 학창시절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자 친구를 두었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해서 멋진 삶을 살거란 생각에 크게 미안함 없이 남자친구를 버리고 떠난 여자의 어머니로부터 온 전화를 받는다. 불의의 사고로 커다란 휴우증을 안고 있으며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딸을 위한 만남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듣게 된다. 마음과는 달리 여전히 그녀에 대해 잊지 못하고 산 남자는 외면하고 싶었지만 결국 옛연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단편소설 속의 분위기가 하나같이 다 어둡고 침울해 보이는 것은 등장인물들 모두 하나같이 누군가에 의해 아파하고 고통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이야기라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을 갔게 한 '물고기 그림자'는 '버드나무 군락지'에 나오는 두 남자 중 한명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거짓 이야기를 끊임없이 털어 놓았던 고재만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사랑하는 여인이 곁을 떠나 둥지를 튼 남자가 다름 아닌 배불뜨기 수학교사, 수학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여자와 남자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고재만, 이런 고재만을 보면서 사람과 삶에 대한 허망함으로 중대한 결심을 하는 남자 안중각... 그들이 살고자 매달렸던 사이비 기도원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버드나무 군락지'가 이 책의 단편들을 연결해주는 부분이다. 자화상을 그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낯선 감정의 연습'에서 그가 종양 때문에 눈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찾게 된 곳이 사이비 기도원이다. '거미를 밤에 죽이지마라'는 지나간 사랑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산로의 펜션을 찾은 여자... 여자는 지나간 사랑을 만나고 그가 벌인 일을 알게 된다. 그녀가 우연히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런 그녀를 도와주는 또 다른 여자는 사랑 때문에 끔직한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두 여자가 묵은 펜션에서 일하던 혼혈소녀와 국가정보부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일을 하는 남자가 의뢰인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되는 '유서를 쓰는 즐거움'... 서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인물이나 장소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살다보면 자신이 원하던 인생이나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패, 아픔을 통해 성숙하고 다시 일어 설 힘을 얻기도 한다. 허나 상처받고 아픔을 가진 단편소설 속 인물들은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아니 혼혈아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예외로 두고.....
등장인물들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몽골, 인도의 사연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밤의 첼로'... 내가 알고 있는 이응준 작가님은 밝은 느낌의 책을 쓰는 분이신줄 알았다. 이미 책으로 읽었던 얼마 전에 드라마로 만들어져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내 연애의 모든 것'을 통해 저자의 작품을 처음 만났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완벽한 소설이라 다음 작품은 어떤 분위기의 스토리를 갖고 우리에게 찾아올지 기대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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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소설이 사람을 이렇게 물들일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주말을 온통 차지해버린 소설 속 깊이 있는 문장하나하나는 읽힘과 동시에 너무도 선명하게 내 안에 박혀 들어왔다. 이응준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항상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생을 지배하게 된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범상치 않은 까닭에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깊고 아리다.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은 연작답게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관련성을 갖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 인하여 죽음까지 경험한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밤의 첼로>의 윤명식과 <유서를 쓰는 즐거움>의 수한, <버드나무 군락지>의 안중각과 고재만이 그러하다. 그 죽음의 칼 끝이 가리키는 방향이 자신이냐 연인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랑으로 인한 고통의 극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새삼 왠 신파스러운 소재냐 싶을 수 있겠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사랑과 미움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때, 가장 본질적이고 깊이 있는 소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은 찬찬히 되짚어 올라가보면 애정 혹은 그것의 갈구에서 비롯되었고, 파괴한 것들 역시 미움과 증오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로 인해 사랑과 증오의 극단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제정신이길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린 누구나 한 순간 미쳐간다. 작품 속 수한은 “인간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러워지고 계속 더러워지는 중에 죽는다” 127p고 하였지만 나는 인간이 미쳐가다 죽는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불행을 감내하다가 제 각각의 소용돌이가 심장에 새겨지면서 누군가는 그릇된 방식으로 미쳐가고 누군가는 조금 착한 방식으로 미쳐갈 뿐이다. 일정 나이가 지난 누구에게나 세상과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측면이 그런 식으로 머무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숨기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소설 속에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처한 인간이 그러하듯 죽음과 신이 자주 거론된다. 조만간 읽을 책처럼 책상 한켠으로 치워둔 죽음이 아니라 나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액자 속 사진처럼 죽음을 바투 끌어당겨 정식으로 맞대하고 있는 듯하다. 벼랑 끝에 이른 이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소설은 흡인력있게 독자를 빨아들이는 법이다.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에서는 "인간은 극심한 고통의 벽 앞에 홀로 서면 자기의 분신을 마주하게 된다"91p 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분신이란 상처입은 나와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상처를 초월한 나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고통의 벽, 극점에 다다른 인간이 강을 건너기 직전의 상태라 할 수 있다. 나 자신의 내부에 머물 것이냐 떠날 것이냐는 상황과 결단에 따를 일이지만 그 선택은 한 사람의 생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자신의 증오와 상처가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은 한나. 졸지에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된 은석에게 인간적 연민을 품음으로써 오랜 세월동안의 응어리가 맥없이 풀어짐을 경험한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오하다가도 자신과 닮은 짐승의 눈물을 본 순간 분해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참으로 얄궂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 무수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한나를 얘기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피해자라는 점에서 일단 짐을 짊어진 한 쪽 어깨가 가볍고, 죽여도 시원치 않은 은석을 구해줌으로 그에게 받은 상처에서 스스로 벗어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녀를 기다리는 영우라는 남자가 있다. 하얗게 남아있는 백지같은 앞날이 을씨년스러운 안개가 아닌 뽀얀 빛으로 다가올 것을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가장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이다. 만만한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이 스스로를 견뎌낸다는 것은 다만 시간이 정리해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 자신과는 죽기 전까지 이별할 수 없기에 죽기로 결심하지 않는 이상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화해를 해야 하는 것이다. “병운은 제 깊고 긴 은둔이 결국은 삶에 대한 가장 큰 오만이었음을 나무들에게 고해했다.”40p 는 소설 속 문장이 머릿속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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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조롱하다.
성경에 보면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사랑의 시샘)는 지옥처럼 잔혹하며, 사랑은 아무도 끌 수 없는 타오르는 불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아가서 8:6). 그리고 그 기세가 신의 불과 같다고 말한다. 사랑은 분명 매혹적이고 행복한 감정이지만, 동시에 지옥불처럼 잔혹한 고통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을 느끼는 것은 신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체험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한 철학자(신학자)는 인간이 신을 경험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누미노제'라는 철학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소름이 끼쳐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과 같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신비"이며 동시에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신비"라는 두 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압도적 절대 타자(신)와 마주했을 때 경외감(공포)에 전율하지만, 동시에 매우 매혹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두렵지만 끌리는 마음. 그런 맥락에서 신은 사랑이 맞는 것 같다. 사랑 또한 두렵지만 끌리는 마음이니까.
<밤의 첼로>는 "멀쩡하던 한 인간의 삶이 치정으로 인해 얼마나 끝없이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섯 편의 이야기이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밤의 첼로>라는 제목을 힌트로 주관적인 감상을 적어보자면, 첫 번째 이야기 '밤의 첼로'는 주제부에 해당하고, 이어지는 4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닮은 4개의 변주곡이며, 마지막 여섯 번째 이야기는 그 4개 변주부가 하나로 합쳐져 다시 주제부를 형성하듯 읽힌다.
<밤의 첼로>는 사랑을 조롱한다. 오래된 농담처럼 새로울 것 없지만, 그 건조함 속에 광적이고 격렬한 불꽃이 튄다. <밤의 첼로>에서 연주되는 사랑은 혼돈이며, 환각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상처의 집이며, 모순이다. 사랑은 변덕스럽다. 명식과 인경은 사랑했지만, 인경은 명식을 버렸고, 전신 근육의 대부분이 마비된 인경은 죽기 전에 명식을 한 번 보고 싶어 한다. 사랑은 혼란이다. 명식은 자신을 버렸던 옛 애인의 죽음 앞에 혼란스러워한다. 사랑은 상처의 집이다. 명식의 상처의 집은 인경의 죽음으로 다시 들쑤셔졌다. "이제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명식을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한가운데"로 몰아넣었고, 명식은 "인간의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첼로를 연주한다"는 신의 첼로 소리를 듣는다(밤의 첼로).
'밤의 첼로'에 이어지는 나머지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다면 죽이지 않았을", 그러니까 사랑하기에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상대를 죽여버렸기 때문에 그 사랑을 끝낼 수가 없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들 속에 서로 연결되어 등장한다. 치정 살인. "그 치정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랑의 이중주가 죽음의 광시곡으로 변질되는가. <밤의 첼로>가 찾아낸 원인은 '변심'이다. "멀어지는 사랑을 분노 안에 가두려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들. '물고기 그림자'의 은희는 사람이 정말 절망스러우면 미쳐 버린다고 말한다. 변심한 사랑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미쳐버리면, 사랑은 폭력이 된다. "몽골에서 늑대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사냥의 대상이기도 하다. 가죽도 가죽이려니와 가축들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이는 신에게 인간이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징벌의 대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죄도 죄려니와 세계를 망치니 이런 치정 같은 모순에 매우 적합한 것이다"(버드나무군락지, 217).
<밤의 첼로>에서 연주되는 변주곡이 '버드나무군락지'라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 연결될 때, 그 연결의 접점에 서 있는 두 인물이 있다. "이예훈"과 "권진규". 이예훈은 애인이 그의 둘도 없는 친구와 바람이 나 버림 당했지만, 체념했다. "나는 사랑을 잃고 고통 때문에 고지식해졌다. 깊은 병을 앓았고 값진 체념을 배웠으며 누가 뭐라든지 홀로 화가가 되었다"(버드나무군락지, 246). 체념을 배운 이 남자는 한쪽 눈을 도려내고 살아 남았다. 이런 맥락에서 권진규는 이예훈과 대칭점에 존재하는 듯한 인물이다. 우스운 농담처럼 던진 악마같은 한마디에 장해인이 스스로 목을 매 숨진 뒤, 그는 몸에 달라붙어 도망갈 수도 없는 진짜 지옥 불 속에서 산다. 휘청거리는 영혼, 그의 통곡소리마저 삼켜버리는 지옥불 속에서.
작가는 왜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지었을까. "문득 그는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어떤 이들과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연결돼 있는 것만 같았다"(버드나무군락지, 250). 태연하게 지나는 사람들 속에 감추어진 사랑의 상처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누구가의 옛 사랑이 누군가에는 현재의 사랑이고, 누군가에게 버려진 사람이 누군가에는 짝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사랑에 상처 입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하고 상처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작가는 끝까지 사랑을 조롱한다. 잃어버린 사랑에 집착하는 고재만은 그의 옛 연인과 그녀의 새로운 연인을 찾아간다. 그녀의 새로운 연인인 목남은 시각장애인이지만, 은희에게 집착하는 재만의 고통을 본다.
"은희를 사랑하지 마세요.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하지 마세요." (목남의 충고에 재만은 반격을 시도한다.)
".......네가 사랑을 알아?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알아?" "당신의 두 눈을 내게 주십시오. 그럼 내가 당신 대신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그 여자를 증오해 드리겠소." "......." 고재만은 완벽히 패배했다(버드나무군락지, 230-231).
<밤의 첼로>에서 나는 환멸을 보았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고, 신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다. "병운은 어떠한 법칙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어떠한 진심으로도 설득할 수 없는, 어떠한 겸손으로도 평화로울 수 없는 이 세상이 끔찍했다"(40).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환멸이라는 감정도 존재할 수가 없으니, 작가가 사랑을 조롱하는 것은 신 존재 증명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원일 선생님은 "이 책은 시적인 문체와 모더니즘으로 불교의 연기론과 기독교의신학적 해석 안에서 슬픈 사랑을 이응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신과 씨름하듯 사랑의 환멸과 씨름한다. 그것은 오래된 주제이고, 더 이상 웃기지 않는 농담이지만, 내가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은 신이 아니기에,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주는 절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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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밤의첼로'를 통해서 이응준작가의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아름다운 노래 한 소절이 어떤 거대한 진리보다 강하다고 믿고 있고 있으며 법과 도덕을 따르기 한참 전에 미학의 원리를 먼저 체득해버렸으며 슬픔이 아름다움의 근본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충격을 받았었다는 작가 후기속의 고백을 보게 되었다. 영원한 상실과 그만큼 사무치는 그리움을 같이 안고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쓴 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슬픈 사랑을 작가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시적 표현과 무리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에서는 작가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슬픔에 대해 무기력하기까지한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작가의 감정이 과도하게 표출되는 듯 싶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투의 관조적인 자세로 끝을 맺는다. 세상이 어둠이라면 "아무것도 욕망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가 없”는, “그래서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세계가 된다. 아름다운 건 다 슬프기 마련이라는 작가의 주장처럼 그도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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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그가 안겨준 깊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댔다......
하나하나 단편 같은 이야기 6개가 모이고 모여 결국엔 서로 인연이 맞닿아 큰 틀을 이루고 있는 연작소설 <밤의 첼로>. 이 책의 제목이자 첫 번째 이야기인 <밤의 첼로>는 20년 전 학창시절 연애했던 여자에게 버림받은 후 그 여자를 미치도록 미워하는 남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늘 은밀한 불안에 시달리는 어린애 같은 느낌이면서 자살한 문인 전혜린을 연상시키던 그 여자는 남자에게 여류시인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나 헨리케의 밤의 첼로를 읊조린다.
누구에게나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이 꼭 한 번은 찾아오고 그러면 그는 홀로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무쇠 난로를 끌어안듯이 신의 이름을 부른다. 신은 기쁨이 아니다. 신은 슬픔도 아니다. 그저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르는 조용한 노래일 뿐.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 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저 첼로 소리를. - <밤의 첼로> p20
7년간의 연애가 어이없게 끝나버린 이후 그의 가슴속에는 미움만이 남아있을 뿐.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그렇게도 미워했던 그 여자가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곧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해후하게 되는데...
사람에게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율배반의 양가감정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중략) 사랑도 사랑만이 아니고 미움조차 미움만이 아니라면 대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중략) 내게 누군가를 위로할 자격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 <밤의 첼로> p37
그토록 미워했던 감정은 앞으로는 그 어떤 기쁨이나 슬픔도 온전치 못할 것 같은 절망으로 뒤덮이는 내면의 세계는 첼로의 묵직하고 낮은 선율에 밤이라는 어둠의 기운이 더해져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느낌을 준다.
절망이란 소란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뼛속 깊은 조용한 피로와도 같은 게 아닐까 - <물고기 그림자> p.48
용서라는 것은 그가 저지른 죄를 용서하는 게 아니었구나. 용서라는 것은 그가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이미지를 용서하는 것이로구나. -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 p.104
이응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드라마 원작 작가이기도 해서 사실 내용이 가볍게 진행될 거라 예상했던 것이 처참히 빗나가버렸다. 그의 이야기들에는 죽음, 절망, 배신, 사랑, 집착, 신이 많이 등장했는데 특히 신에 관해서는 신을 경멸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가 말하는 신은 인간 밖의 신이 아니라 인간 속의 신이다. 그러한 신은 인간이라는 상처에 시달리는 진짜 신이므로 상처를 타인에게로 내다 버리는 것이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는 것보다 결코 나을 리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 나중에는 그 구분조차 모호해지지만. 사랑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인지,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변주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망라하고 있다.
한국소설 자체를 정말 오랜만에 읽는 거였는데 문체 자체는 갑작스러운 독서수준 상승으로 갑자기 논어 원문을 읽는듯한 어질함이 찾아오긴 했지만, 인간 내면의 이야기들이었기에 너무나도 쉽게 그의 마음에 동화되어 스토리에 빠져버렸다... 지금도 사실 묘한 기분만이 감돈다. 한편한편이었던 이야기가 모여 한몸이 된 상태로 봤을 때 아.. 그런 거였구나.. 하며 곱씹게 한다.
저자의 말에서 이 부분이 탁! 하고 와 닿았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였으며 그렇기에 푹 빠져들게 했던 이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 입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위로를 받으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위로를 갈망하는 인간에 대해 숙고해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Gloomy Sunday처럼 책을 읽고 나서 한참을 그 감정에 허우적대고 있어서... 이러다가는 헤어나오질 못할듯하단 생각에 마음이 아직 채 가라앉기도 전에 글을 쓰고 털어내려고 하고 있다. 광대 소설이 아닌 제대로 된 문학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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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보던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쓴 이응준작가의 신작소설 <밤의 첼로>를 읽었습니다. 표제가 되는 ‘밤의 첼로’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 편의 소설을 묶은 연작소설이라는 특이한 형식입니다. 여섯 편의 소설은 그대로 읽어도 무방하겠습니다만,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 인물이 다른 소설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하고, 한 소설에서는 중요한 에피소드가 다른 소설에서는 뉴스 한 꼭지로 간단하게 처리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집단을 구성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도식이 떠오릅니다.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몇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작은 집단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들 작은 집단을 연결하는 사람이 있어 전체 집단이 끊어짐 없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서로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어 독립적인 스토리이면서도 서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를 연작소설이라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분위기는 하나같이 어둡고, 등장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어두운 분위기에 관계의 갈등을 수월하게 풀어가지 못하고 갈등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적 결말을 쉽게 예견할 수 있기도 합니다.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독일의 여류시인 안나 헨리케의 <밤의 첼로>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이 꼭 한 번은 찾아오고 그러면 그는 홀로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무쇠 난로를 끌어안듯이 신의 이름을 부른다. (…)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더 첼로소리를.(20쪽)” 마치 그 첼로소리를 듣게 되면 지난한 삶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읽히는 시입니다만, 다른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공연히 시빗거리를 찾으려는 속셈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절망의 극한에서 듣게 된다는 첼로소리에 이어서 바다에서 올라온 인간이 잃어버린 바다에 대한 기억 대신에 남겨진 ‘물고기 그림자’가 역시 주인이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되면 견디다 못해 떠나가 버린다는 설명 또한 인간이란 절망에 아주 취약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같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주어진 고난을 쉽게 이겨내는 입지전적인 인물보다는 고난에 쉽게 무너지는 안타까운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더 가지고 있어 그런 인물들을 주로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희망이란 애시 당초 존재하는 않은 특별한 무엇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작가가 던지는 한 마디에서 손에 잡힐 듯한 무엇이 느껴집니다. 바로 “사막 밑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어요. 녀석을 낚으려면 모래를 깊이깊이 파 내려가야 해요. 사막에도 100년에 몇 번은 폭우가 있거든요. 그때 빗물을 타고 지하 수맥으로 빠져 들어가 번식하게 된 거예요. 사막 아래 물리 출렁인다고 하면 안 믿기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막 한가운데 홀연히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거거든요.(72쪽)”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사막 아래에 지나는 수맥이 지표 가까이 지나기 때문인 점을 고려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 작가가 무력함에 좌절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기에 더하여 한강변 버드나무 군락지가 불타사라지면서 누구에게는 죽음이 예고되지만 누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이한 엇갈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숙제로 남는 것 같습니다.
짧은 소설들이면서도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고 할까요? 국내에서도 다양한 지역이 무대가 될 뿐 아니라 몽골, 인도까지 무대와 등장인물을 확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극늑대까지 등장시켜 신비로운 분위기로 이끌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고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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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의 이야기는 대부분 다 어두운 이야기들이다. 어둠의 마성, 그 다크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릴법한 정신나간 세상의 정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연작소설에 걸맞게 각 단편들끼리는 인물이나 사건 설정등을 통해 이어지는데, 바로 이 점이 재밌게도 다가오고, 또 앞서 이야기들을 생각해보게 되면서 이야기의 큰 전체 흐름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약간은 기괴하기까지 한 설정 때문에 영화로 치자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사실 짧은 단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고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다보면, 작가인 이응준은 당연히 글을 잘 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반적인 상식이 굉장히 풍부한 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을 줄 알고, 바탕이 되는 배경지식 하에서 인물들간의 갈등을 창조하며 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는 기법은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는 느껴진다.
이야기의 인물들이 극렬한 고통속에 휩싸이며,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런 글들을 읽다 보면 정말 이런 상황이 되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식의 마음이 생긴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질곡이 있기에, 아무리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각자 서로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고통 혹은 고민의 양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응준의 이러한 소설은 모두에게 자신이 감춰온, 혹은 꺼내기 껄끄러운 류의 감정을 끄집어 내면서 사실 그 속에 있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 혹은 본심을 생각하며, 깊게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재밌고, 스릴있고, 위트있고, 계속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책장을 넘기는 류의 소설은 분명 아니다. 킬링타임을 위해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는 스타일의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책이다. 단편들이지만 그 안에 깊은 통찰이 있고, 문장을 천천히 곱씹으며 인물의 심정을 헤아리는, 조금은 느리게 읽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어둡고 우울하고 괴로운 마음일때, 밝은 소설을 읽는 것도 좋지만, 어쩌면 이열치열이라고 이런 어두운 소설을 읽는 것도 자신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좋은 방안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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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책은 다소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책 소개에 대한 글을 읽었기에 어느정도 예감을 했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이었기에 읽는 동안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더불어,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 문장들과 문체들 그리고 사랑에 대한 배신, 집착, 절망, 그리고 죽음 등 인간의 내면을 다소 혼란스러운듯 표현하고 있어 책을 잡고 있는 내내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총 6 단편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로가 연결은 되어져 있는것이 타인이지만 결국 타인이 아닌 것처럼 보여진다. 어느 부분에서 끊어야 할지 한 단편이 끝나면 그 다음 새로운 이야기로 적응하기가 시간이 걸렸는데 그만큼 그 소설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내면이 복잡하고 안타깝고 마치 죽음의 울타리 안에 있는 듯하여 쉽게 잊혀지지가 않았다.
키우더 늑대가 죽었다. 구멍 난 곳이 없는 울타리 어떻게 이 우리를 나가게 된 것일까. 그레고르 수목원에서 죽은 늑대 그리고 새끼 때부터 키웠던 '병운'이라는 남자. 그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흘러가면서 '명식'은 7년전 자신을 버렸던 여인이 이제는 회생불가능한 몸으로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녀와의 마지막 재회. 사랑은 무엇일까. 그 여인을 마치 오래전 세상을 떠난 '전혜린'에 비교 하고 있다. 독일 유학을 떠났으면 30살 나이로 교수가 되었다는 여인. 하지만, 무엇이 그토록 그 여인을 이 세상에서 떠나가게 했을까. 모든 문인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삶은 때론 나는 이해를 못하지만 세상은 이해하거나 이해하려고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처럼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린 '전혜린'과 같은 사람들의 모습일까. 자신의 고독과 삶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삼켜버리는 인생..이 느낌을 <밤의 첼로>에서는 쉽사리 느껴지기도 한다.
인도 형수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죽인 '수한'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어깨위에 있던 앵무새에 관한 전설은 그의 마지막 죽음에 대한 행로를 알려주는 존재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 지독하고 참 가혹하면서도 아름답다. 자신의 애인이 친한 친구의 아이를 임신해버린 '예훈' 그리고 이단 종교에 빠져버린 두 남자의 이야기. 마지막, 이 두 사람의 애기와 함께 '진규'라는 남자가 드디어 죽음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말들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들 인가 싶다.
연이어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연이어 보게 되니 기분이 허하다. 가벼운 연애부터 이리로 깊고도 어두운 심연에 있는 사랑까지 만나게 되니 참 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마음이다. <밤의 첼로>는 어렵게 읽혀지지 않는 대신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생각하고 또 해도 결론은 답이 안나는 것이 되는데 그럼에도 참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속엔 여러 인물과 소설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권의 책속에 또 다른 책을 만나는 즐거움도 더러 있는데 비록 두권이지만 저자의 작품을 읽을 때면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는 것 같아 흥미롭기만 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읽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면 잠시 그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밤의 첼로>로 받아들여보자. 남녀간의 사랑을 넘은 또 다른 사랑에 대한 아픔과 벗어남 그리고 신의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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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이 꼭 한 번은 찾아오고 그러면 그는 홀로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뜨거운 무쇠 난로를 끌어안듯이 신의 이름을 부른다. 신은 기쁨이 아니다. 신은 슬픔도 아니다. 그저 아직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르는 조용한 노래일 뿐. 가장 절망스러운 밤의 밑바닥에서 신의 얼굴을 보고자 기도하는 인간은 신이 연주하는 첼로 소리를 듣게 된다. 단 한 번은, 꼭 한 번은, 듣게 된다. 신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저 첼로 소리를. (이응준 지음 < 밤의 첼로 > 중에서 ) 밤은 쉼이고 영원한 쉼인 죽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밤이 되면 보금자리인 집으로 모두 귀가하여 하루를 마무리한다. 밤은 우리에게 쉼을 준다. 때론 영원한 쉼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낮이 지금의 생명 있는 삶이라면 밤은 그 생명을 다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직업인 나는 하루가 낮고 밤으로 이루어지듯 삶과 죽음도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하루하루 출동을 통하여 실감한다. “구조구급 출동” “00동 00아파트 00동 안방 화장실내 사람이 있는데 문이 잠긴 상태 즉시출동” 출동벨을 듣고 현장에 출동했다. 아들이 119에 신고했다. 집에 귀가하니 엄마가 안방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데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안방 화장실 문을 강제 개방하니, 엄마는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했다. 이미 호흡과 맥박이 없고 사후강직이 1시간정도 경과한 상태였다. 아들(30~40대추정)은 엄마(60대 추정)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애통해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현장에서 소방서로 돌아오면서 나는 삶과 죽음은 백짓장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였다. 허망한 것이 삶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죽으면 한줌의 재로 남을 것을 무엇을 얻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살아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우리는 밤(어둠)이라는 죽음을 언젠가는 한번 맞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낮(빛)의 영광만을 찾아 발버둥치는 헛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낮은 지고 밤은 금방 온다는 진리를 우리는 망각하면 사는 게 우리의 삶이라 생각된다. 첼로의 중저음이 마음을 울린다. 첼로는 모양이나 구조는 기본적으로는 바이올린과 같으나 길이는 약 2배 가량 된다. 음질은 힘차고 영상적이며 음량도 풍부하다. 합주에서 저역(底域)을 담당하며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첼로의 대표적인 연주곡으로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가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5곡을 썼다. 그 중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제3번은 1808년 가을 38세 때의 작품이이다. 유명한 「전원 교향곡」을 쓴 그는, 하일리겐시타트의 자연에 파묻혀 귀의 고뇌를 참으며 첼로와 피아노가 그리는 세계의 표현에 정진했다. 첼로의 심혼에 투철하고 남성적인 용기를 가장 잘 나타낸 명곡으로, 제2기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의 걸작이다. 첼로를 위한 연주곡 중에서도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제3번 A장조 op.69의 제1악장은 첼로라는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중저음의 음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격정적인 열정을 피아노와 첼로가 주고받으며 표현하고 있는데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는 마치 신이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눈물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밤과 첼로가 만나 ‘밤의 첼로’가 되었다. 죽음과 어두움의 밤과 신의 눈물과 같은 첼로가 만나 밤의 첼로가 되었다. 소설가 이응준님의 연작소설 [밤의 첼로]는 한줌의 재로 변하는 인생의 허망함을 위로하는 신이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첼로 연주임을 6편의 연작소설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깨닫게 해준다. 소설가 이응준은 “인생과 인생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뒤돌아서면 일제히 한 줌 재 일 것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해서 그토록 미워했던 일들도 다 어리석은 과거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고 소위 잘나가는 사람은 없는 어쩌면 비주류의 삶이고 다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6편 모두 죽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죽음이라는 밤을 맞이하고 있다. 점점 책의 마지막장이 가까워지면서 등장인물들은 바로 나와 우리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패하고 쓰러지고 다치고 중상을 입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옆에 같이 있던 동료들은 하나 둘씩 허망하게 쓰러져가고 몇 남지 않은 전우들의 모습도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쟁은 적을 죽이고 내가 살아야 하는 죽음의 전쟁이었다. 그러한 삶을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들에게 신은 밤의 첼로를 연주하면서 위로를 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왜 바보 같이 서로 죽여야 사는 (Win-Die)사는 삶을 살려고 하는지 서로 서로 다 같이 사는(Win-Win)이 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 이제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첼로소리가 신의 위로인지 신의 심판인지 그 물음에 답을 찾아야 한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 정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119힐링실천 :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제3번 A장조 op.69 들어보기!! ( 첼로의 선율에 자신을 맡겨보자. 힘겹게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자. 그런 내 자신을 위로하자. 그리고 내일은 또 태양이 떠오른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 ) 바라돌이사랑 블로그 http://blog.naver.com/varado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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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첼로라는 이 책은 밤의 첼로, 물고기 그림자, 낯선 감정의 연습,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 유서를 쓰는 즐거움, 버드나무 군락지라는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된 연작집이다. 처음 밤의 첼로를 읽기 시작했을 때엔 첼로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시작했는데, 사실은 첼로보다 밤이 그의 문학적인 모티브가 됨을 책을 읽어나가면서 알게 된다. 그의 서체는 한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 몰입도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끝없이 방황하면서 밤과 그 밤을 비추는 몇몇의 별빛들로 헤매는 듯한 기분을 남겨준다. 방황과 밤, 그리고 어둠과 어긋남, 실패 같은 것들이 그의 소설의 내용이고 형식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오는 죽음을 앞에 둔 인간과 신이 연주하는 첼로소리.. 그가 보여주는 소설 속 세계는 혼돈에 빠진 듯 하지만 한 가지 밝은 부분은 바로 사랑에 대한 부분이다. 이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가장 어두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자신을 구원해줄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여섯편의 단편은 각각 나누어진 것 같은 소설이지만, 실제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물고기 그림자에 등장하는 배우인 은희와 그녀의 애인인 수학교사는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주인공이 꼭 만나고 싶어하는 여자 주인공이다. 또, 밤의 첼로에서 병운이 수목원에서 기르던 늑대가 홀연히 사라진 곳이 바로 버드나무 군락지이고,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에서 나온 살인사건이 다른 단편 속의 인물이 읽는 신문 기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누가 누구이고, 결국 어떻게 되었다라는 전통적인 방식도, 또한 각 사건의 인물들이 만나 결국 어떤 결과에 이르렀다 라는 형식도 아닌, 어디선가 등장하는 사건들에 각 연작들의 인물들과 사건이 관련이 되어 있다. 이런 부분을 잘 캐치하면서 읽을 수록 이 책이 더욱 재밌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센스를 지닌 독자일수록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많이 때문에 독자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평범하지 않다. 물 흐르듯 잔잔히 흐르는 사건은 없다. 물이 흐르듯 흐르고 있는 것은 밤의 분위기이고, 그 밤의 분위기엔 로맨스는 없다.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등장 인물들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에 대한 무거움, 그리고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향하고 있는 본질적인 광기가 , 슬픔이, 욕망이 숨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기분 보다는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인간의 좋은 부분, 선한 부분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누구나의 본질을 조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끝도없이 나쁘게 이끌어 나감으로써 저자는 무질서한 소설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완성시키고 싶어 하는 무질서함 속의 질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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