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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부서져야 일어서는 인생이다 (원제 : Broken Open) 부 제 : 절망의 벼랑 끝에서 찾은 인생의 새로운 출구 저 자 : 엘리자베스 레서 (Elizabeth Lesser) 역 자 : 노진선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2013년 7월) 대한민국은 힐링(Healing) 중!? 그만큼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일게다. 주변의 어느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 하나같이 힘들고 먹고 살기 어렵다고만 한다. 실직, 실연, 이혼, 질병, 사별 등 외견상의 이유야 여러 가지로 복잡하겠지만, 그 이면의 공통점이라면 ‘완벽한 불변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는 레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사랑, 돈, 종교, 자녀 등 여러 요소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날 경우 불행해진다는 걸 표현한 말이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도 결국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30대 중반이던 약 15년 전에 갑자기 심장에 큰 문제가 생겨 죽을 고비에서 천만다행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나도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처음에는 육신의 건강에서 시작하여 정신과 영적인 건강에 대한 분야로까지 자연스럽게 관심분야가 확장되었다. 명상, 단전호흡, 요가, 알렉산더 테크닉, 아우토겐 트레이닝, 기도, 상담 등으로 관심분야가 계속 넓어지면서 심리학 등 보편적인 인간 존재와 나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재작년 이맘때부터 갑자기 지금의 고1 딸과 고3 아들 역시 심장에 심각한 질환이 생긴 걸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아이들의 증상과 병명이 나하고는 달라 유전병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 가족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당장 몸과 마음이 아픈 어린 아이들이 가장 힘들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나 친척, 이웃들 역시 무척 힘들고 안타깝고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다. 나름대로 양.한방 치료와 심리상담 등 다양한 치료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모든 식구들과 주변의 지인들이 관심과 도움을 위안 삼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 알에치코리아에서 나온 새 책 <부서져야 일어서는 인생이다(원제: Broken Open, 부제: 절망의 벼랑 끝에서 찾은 인생의 새로운 출구)>는 [완벽해지고자 함을 포기할 때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슬픔의 텅 빈 공허함을 내버려둘 때 삶을 만끽할 수 있다. 잔뜩 오므렸던 망울에서 꽃이 피어나듯 잿더미 속에서 진짜 인생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실직, 실연, 이혼, 질병, 사랑하는 이의 죽음... 산산이 부서진 삶의 자리를 딛고 새로운 목적과 열정을 되찾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가슴 벅찬 희망가!로 소개된 글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무언가에 강력하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레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치유 전문가이자 교육가로, 건강, 심리학, 예술, 영성에 관한 대중성 높은 워크숍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 최대의 성인교육센터 ‘오메가협회’의 공동 설립자이자 고문이다. 그녀 역시 인생에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위기와 시련을 겪고 난 이후 자신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성장해 온 장본인으로서, 그녀가 수십 년 동안 주관하고 있는 인생의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한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이 인생의 가장 힘든 변화를 겪으며 두려움이 아닌 성장을 선택하는 모습에 감화되어서 이들의 사연을 모아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무릇 글(또는 책)이란 저자의 경험과 통찰에서 진솔하게 우러나온 것이라야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연배인 나 역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동안 자기 계발서에 심취하기도 했었고, 건강을 잃고 죽을 뻔한 고비에서 다시 살아난 후 명상이나 상담, 코칭, 영성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등 저자의 경험과 유사한 면이 있어서인지 마치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여행하는 동반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함께 아파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다 읽고 나면 응어리 같은 게 풀리면서 내 마음도 어느새 따뜻하고 평온해지며 다시 힘차게 삶을 살아내야 할 용기를 얻었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밑줄치고 낙서처럼 메모하는 것이 버릇이지만, 이 책만큼은 그러지 못하였다. 오히려 각 꼭지별로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 사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메모하는 것으로 하여 일종의 나만의 요약본을 만들기로 했다. 각각의 다양한 삶의 장면에 따라 여러 번 읽어보며 생각해 볼 가치가 있기도 하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밑줄 치고 메모를 해 두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틱낫한이나 에크하르트 톨레 같은 오늘날의 영적 지도자들처럼 “oo 해라”, 또는 “oo 하지 마라”는 식으로 지시하거나 금지하는 명령조의 책과는 달리, 마치 저자가 진행하는 일주일 간의 워크숍에 직접 참가해서 각 세션별로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고 맛깔나게 번역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가벼운 힐링類의 책들이나, 만사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긍정심리학자들의 주문하고는 그 깊이와 범위가 사뭇 다르다. 또한 영매, 신비주의의 루미, 수피즘, 불교의 붓다, 기독교의 사도 바울, 카톨릭 사제, 아인슈타인, 단테는 물론 프리드리히 니체 등의 철학자, 칼 융이나 윌리엄 제임스 같은 심리학자, 조셉 캠벨 같은 신화학자 등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독자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삶의 지혜에 이르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자신의 삶에서 진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책은 ‘역경을 통한 변화와 성장’이라는 큰 주제 아래 서곡, 6부, 부록(실전 매뉴얼)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곡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전체적인 책의 구성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숲에서 길을 잃는 것이다. A에서 B까지 가는 법을 정확히 알고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길을 찾는 과정에서 혼돈이나 재앙, 잘못된 선택의 숲으로 굴러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 숲이 어둡고 위험할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암에 걸렸거나, 이혼했거나, 파산한 사람들이 그 사건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하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은 건강, 사랑하는 사람, 돈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둠으로 추락하기 전까지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고, 매사에 무덤덤하고, 두려움이나 원망 또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그들은 무릎을 꿇었고 겸손해졌다. 껍질을 깨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깨진 조각들을 다시 맞춰보면서 그들은 비로소 삶의 목표와 새로운 열정을 분명히 깨달았다. (pp. 24~25) 1부 <영혼의 외침을 애써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에너지의 강인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영혼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갑자기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분노가 치민다거나, 몸이 아프고 지친다거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막힌 강물이 방향을 바꿔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영혼은 언제나 말을 한다. 특히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막혀 있을 때, 반쪽짜리 인생을 살 때, 의식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을 때 가장 큰 소리로 외친다. (p. 38) □ 아인슈타인이 알았던 사실 “문제를 일으켰을 때와 똑같은 정신 상태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알베르 아인슈타인) □ 단테가 알았던 사실 “인생길 반 고비에 나는 바른길이 사라진 캄캄한 숲을 헤매고 있었다.” (단테 알리기에리)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한 번 태어나는 사람과 두 번 태어나는 사람. 한 번 태어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익숙한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운명에 의해 단테가 말한 바른길이 사라진 캄캄한 숲 가장자리로 떠밀리면 그들은 그냥 돌아서 숲을 나간다. 인생의 어두운 교훈을 통해 새로운 가르침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전지대에 머물며, 가족과 사회가 용인하는 것만 받아들인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것에 매달린다. 이처럼 한 번 태어난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숲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결코 모른다. 또는 숲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중략) 반면 두 번 태어나는 사람은 영혼이 반쪽짜리 인생의 구름을 뚫고 머리를 내밀 때 그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든 재앙에 의해서든 바른길이 사라진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실수를 저지르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더욱 참되고 빛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변화시켜야 할 것들에 정면으로 맞선다. (중략) 두 번 태어난 사람은 살면서 부딪치는 힘겨운 장애물을 자기 내면을 더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발판으로 삼는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이 인생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회피하거나 부정하거나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반면, 두 번 태어난 사람은 불행을 미망에서 깨어나는 기회로 삼는다. 배신, 질병, 이혼, 산산조각 난 꿈, 실직, 사랑하는 이의죽음, 이 모든 것이 더욱 심오한 삶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번 태어난 삶에서 두 번 태어난 삶으로 영행을 떠나다 보면 언젠가 기로에 서게 된다. 예전의 방식은 더 이상 효과가 없고, 숲의 먼 가장자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더 나은 방식을 찾아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숲으로 들어가자니 두렵고,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두렵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이고, 숲으로 들어가는 것 역시 또 다른 죽음이다. 첫 번째 죽음은 잿더미로 끝나고, 두 번째 죽음은 부활로 이어진다. (pp. 55~57) 두 번 태어나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세계의 안전함 대신 모르는 세계의 힘을 선택한다. 무엇인가가 그를 숲으로 끌어당기고, 그곳에서는 돌아갈 수도 없고,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어둠을 마주하는 가장 힘든 여행일 수도 있지만,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의 감춰진 부분을 되찾고, 교훈을 배우고,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 따른다.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우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은 변화와 상실의 역경을 통해 껍질을 깨고 나온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의 변화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자기 안에서 변화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다. □ 우리를 단련시키는 손길 “모든 고난에는 친절한 기운, 우리를 단련시키는 손길이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인생의 풍파를 겪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였다. 친절한 기운이 우리를 찾아올 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 삶을 크게 변화시키기보다 다시 잠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 한 번 태어난 자의 무지에서 두 번 태어난 자의 지혜로움으로 떠나는 여행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 (p. 63) □ 공공연한 비밀 “진정한 인간이 알고 있는 연금술을 배워라.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받아들이는 순간, 문이 열리리라.” (루미) 고통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물어오면 짐짓 아무 문제없는 척, 괜찮은 척한다. 이렇듯 분명 각자 고민으로 끙끙대며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양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저자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고민이나 약점을 공공연한 비밀에 부치지 말고, 이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가 완벽하지 않은 결점투성이의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수 있다. □ 버스에 탄 머저리들 “우리 모두는 버스에 탄 머저리들이다. 그러니 느긋하게 앉아 여행을 즐기는 편이 낫다.” (웨이비 그레이비) 명성, 재산, 나이, 두뇌, 미모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보편적인 약점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기운이 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와 다른 버스에 탔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처럼 자신감에 넘친다. 늘 그렇듯이 한참을 헤매며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계곡을 빠져나오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우리는 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p. 72) □ 심장 절제술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브루클린에 사는 그 여자가 세상을 향해 가슴을 활짝 연 채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여자의 영혼이 육신과 다른 세상 사이를 배회하는 게 느껴진다. 친구가 낯선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버스에 탄 모든 바보들에게 한없는 애정이 솟구친다. 아울러 우주의 소리에 맞춰 고동치는 영혼을 가졌으되 심장과 폐의 끈기에 의존해야만 하는 육신을 지닌 인간의 이중적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심장, 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뼈와 근육, 기관과 피부 안에 갇혀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육신이라는 선물을 잘 돌보고 싶다. 잘 먹이고, 우아하게 움직이고, 푹 쉬게 하고 싶다. 심장이 멈춰도 영혼의 생명력은 계속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심장과 폐가 있는 동안에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대하고 싶다. 아울러 나와 똑같은 모습의 인간들과 함께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싶다. 한없이 연약한 동시에 한없이 위대한 존재로. (pp. 79~80) □ 마음의 전사 영적인 책과 자기 계발서를 누구보다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저자는 티베트 승려 초감 트룽파의 저서 <샴발라: 전사의 신성한 길>을 카리브 해의 휴양지 바닷가에서 읽고 앞으로 그의 가르침을 따라 여행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초감 트룽파를 자신의 영적 스승으로 삼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저 여린 소녀를 따라가거라. 저 소녀가 길을 알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전사들은 슬프고 여린 마음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두려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두려움 없는 상태란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거나, 누가 나를 쳤을 때 나도 맞받아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두려움 없는 상태란 길거리 싸움꾼의 수준이 아니다. 진정으로 두려움 없는 상태는 부드러움의 산물이다.” (p. 86) □ 칵테일파티에서 혁명이 일어날 때 "우리는 실수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잘못을 저지르도록 암호화되어 있다.“ (루이스 토머스) “영혼이 뭔가요?” “조금 전 ‘당신은 왜 이곳에 왔나요?’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현명하면서도 완전하고 용감한 우리 자신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영혼은 과학자를 실험실로 향하게 하고 구도자를 영적 길로 내모는, 진실을 향한 영원한 갈망입니다.” (pp. 95~96) □ 잠자는 거인과 이상한 천사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저 소리는 무엇이냐? 우리를 해치려는 자다. 아니, 아니, 세 명의 이상한 천사들이다. 저들을 받아들여라, 저들을 받아들여라.“ (D. H. 로렌스) 추녀, 잠자는 거인, 이상한 천사는 동화에나 나오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동화야말로 우리 삶의 이야기다. ... 아이들은 매일 배우고 변화하고 발전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와 신화를 어른의 시각으로 다시 읽어보라. ... 우리가 삶에 끌어들이는 위기는 대부분 우리의 관심을 받으려는 천사들이다. 또한 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의 성장을 도우려는 추녀, 잠자는 거인, 이상한 천사인 경우가 많다. (p. 100) □ 살아 있다는 황홀한 기쁨 사람들은 인간이 추구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내 생각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살아 있다는 황홀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죠. (조셉 캠벨) 절대 고독. 그것은 애벌레가 실크 수의로 자기 몸을 감싸고, 번데기에서 나비로의 기나긴 변태 과정을 시작할 때 견뎌야 하는 외로움과 같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삶이 끝났을 때, 애벌레로 사는 것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무엇으로 변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인간 역시 그런 시간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더 큰 무언가가 우리에게 변화하라고 외친다는 것뿐이다. 비록 그것이 홀로 떠나야 하는 여행이고, 고통만이 우리의 유일한 벗이라 할지라도 이내 우리는 나비가 될 것이다. 이내 살아 있는 황홀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pp. 103~104) 2부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다>는 저자가 불사조 부활 과정이라고 명명하여 진행하고 있는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고된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불사조처럼 새롭게 태어난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빌 모이어스가 영웅의 여정에 대해 묻자 캠벨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설 속의 영웅은 주로 무엇인가의 창시자죠. 새로운 시대의 창시자,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 새로운 도시의 창시자,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시자.” 그러자 모이어스는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평범한 인간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늘 거북해지는데, 지금까지 평범한 남자나 여자, 아이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 삶을 창시하는 것(남의 삶을 흉내내지 않는 나만의 삶) 또한 탐색의 여행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죠.” 나는 그런 탐색 여행에 나만의 이름을 붙였다. 불사조 부활 과정. (중략) 잃을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온전한 자아, 부족함 없는 자아, 타인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달라는 것뿐 더 이상 남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거나 완성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와 희망이 넘치는 삶,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방법인 불사조 부활 과정이다. (pp. 108~109) □ 치미둔칙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빅토르 프란클) 삶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해줄 가능성으로 가득 찬 무거운 짐을 이르는 말로 ‘치미둔칙chimidunchik’만큼 안성맞춤인 단어는 없었다. 절망하기 쉬운 사람들은 우리 모두를 가리킨다. 빅토르 프란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은 절망을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심지어 아프거나, 골치 아픈 상황에 처했거나, 두려움에 떠는 힘든 순간일지라도, 악몽 같은 일을 겪으며 프란클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보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그만두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매일, 매 시간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갖는 구체적 의미가 무엇이냐이다.” (p. 118) □ 여기서 공포가 시작된다, 여기서 기적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대의 몰락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 성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공포가 시작된다. 여기서 기적이 시작된다.” (성배 전설) 조셉 캠벨은 성배 전설의 핵심적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성배 전설은 설령 아주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지라도 마르지 않는 샘, 삶의 원천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사실 성배가 가르쳐주듯이 우리는 고통을 통해 비로소 기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p. 123) 그 시련을 겪으며 우리는 몇몇 교훈을 배웠고 남은 삶이 더욱 소중해졌어. 첫 번째 교훈은 아주 오래된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가고, 변하고,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무언가로 뒤바뀌지. 우리가 놓아주기만 한다면 말이야. 나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의문을 가질수록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게 두 번째 교훈이야.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내가 남은 평생 병에 시달려야 하고, 우리 딸 역시 평생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예전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어. 그래야 현재의 삶에 자리를 내줄 수 있겠더라고. 나는 그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라고 말해. 그런 선택을 하고 또 하는 과정(현재를 받아들이고 과거를 놓아주는 일)이 내 영적 작업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 됐어. 내 영적 수행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지.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이 거기에 달려 있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영적’이란 것은 절대 일상과 동떨어진 게 아니야. 감정과 지성, 육신 모두가 현실 속에서 인정사정없이 겪는 것이지. 그 과정은 죽음에 맞서는 위험과 모험으로 가득해. 매일 아침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한 몸으로 눈을 뜰 때나 딸애가 자기 병에 대처하도록 도와줄 때 인내심을 발휘하고, 마음을 비우고,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야. 이 행성에서의 내 여정보다 훨씬 더 위대한 우주의 힘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pp. 125~126) □ 열렬한 은총 이제는 은총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뇌졸중을 겪으며 생긴 변화는 에고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뇌졸중은 에고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나를 영혼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딜 때’ 우리 안의 무언가가 죽기 때문이다. 내 정체성은 완전히 뒤집혔고, 나는 “이게 바로 나야. 나는 영혼이야!”라고 말했다. 이제는 매일, 늘 영혼의 차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곧 은총이다. (p. 138) □ 이전과 이후 “잠이 들면 잊을 수 없는 고통이 한 방울씩 마음에 떨어진다. 신의 경이로운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절망 속에서 지혜가 찾아올 때까지.” (아이스킬로스) 오늘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지혜를 찾아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서점과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이 상실감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죠. 책을 파고들다 보니 고통에 빠진 사람이 우리뿐만이 아니더군요. 많은 이들이 우리보다 앞서 그 끔찍한 길을 걸어갔고, 그 과정에서 지혜롭고 냉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제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죠. 이제는 다른 사람들, 예전의 우리처럼 살던 사람들을 보며 그들 역시 때가 되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금 우리가 배우는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배우려 했고, 실제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음악이나 의학, 예술, 양육, 결혼생활과 마찬가지로 슬픔의 교훈 또한 체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신의 축복’ 안에서 여행을 시작했죠. (중략) 우리는 비록 삶을 통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이든 성령이든 조물주든 어떤 이름의 위대한 존재든 그들은 우리가 어둠 속으로 추락하기를 원하는 동시에 또한 빛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신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났고, 그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어둠, 두려움, 중독, 절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빛과 희망, 의미, 기쁨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pp. 146~147) □ 상심이 곧 열린 마음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왔을지라도, 연민과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말라.” (요하난과 엘르아질) “때로는 단 하나의 불씨를 찾기 위해서라도 잿더미를 뒤져야 한다.”(메즈리치의 레브 도브 베르) “괴로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우리가 느끼는 통증은 더욱 예리하고 강렬해질 것이다.” (체스본 하네페쉬) “상심은 슬픔과 다르다. 슬픔은 가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고, 생기를 잃은 상태다. 반대로 상심에 빠지면 가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활기를 띤다.” (스크누에르 잘만) 위기에 닥쳤을 때 극복해야 할 주요 장애물은 세 가지다. 통증에 대처하기(자신의 삶과 대면하는 일을 미루면 미룰수록 결국에는 더 큰 곤란에 빠질 것이다), 올바른 마음가짐 갖기(마음가짐이 곧 우리 자신이다. 위기의 순간에는 무너질 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잠에서 깨어나 청소하기(삶의 가장 심오한 경험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 9월 11일 “오늘 밤 여러분이 해야 할 이야기는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살아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서를 사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행운아들인지 말이에요.” (중략)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랑했느냐이다. 자식을, 동반자를, 가족을, 친구를, 지인을, 이 사랑스러운 지구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함께 여행한 모든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상대에게서 받은 친절이 아니라 우리가 베푼 친절이 중요하다. (중략) 우리 각자가 마음에 선을 품고 세상의 악에 맞서야 한다. 케케묵은 습관과 닳아빠진 충성심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우리 편을 가르는 울타리를 더 크게 넓혀야 한다. ...... 그렇게 울타리를 넓히면서도 내 소신을 지킬 수 있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분노와 비난이고, 취해야 할 것은 비전과 겸손이다. (pp. 166~168) □ 비뚤어진 마음 가끔씩 내가 잃은 모든 것, 아들의 죽음, 잃어버린 내 청춘, 잃어버린 기회를 생각하면 진한 슬픔이 밀려와. 하지만 이젠 이것이 내 길이고, 내게 주어진 문제가 내 스승이라는 걸 알아. 그러니까 결론은 ‘영적’으로 죽은 후에야 내가 삶의 덧없음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거야. 난 현재에 충실해. W. H. 오든의 시 <어느 저녁 산책을 나갔을 때> 오, 서라. 창가에 서라. 눈물 끓어 솟구칠 때 비뚤어진 마음으로 비뚤어진 이웃을 사랑하라. (p. 172) 3부 <잔뜩 움츠린 마음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은 열정적 이단아이자 모든 관계를 통제하던 마치 군대 지휘관 같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순종적인 어머니와 세 명의 여자 형제들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양육되어 이성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저자가 10여년의 결혼생활 끝에 여성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분투하며 마침내 잔뜩 움츠렸던 꽃봉오리를 스스로를 활짝 피워냈던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 아버지의 집을 떠나다 “세상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고 싶은 키스가 있다.” (루미) □ 결혼 방정식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은 곧 운명이 된다.” (카를 융) □ 주술사 연인 “인생의 황금기는 자신의 악한 면을 가장 좋은 면이라고 고쳐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찾아온다.” (프리드리히 니체) 현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둠의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에너지에 암흑의 신과 여신, 악마, 자연력이라는 이름과 특성을 부여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숱한 이야기가 우리의 꿈을 가로막거나 우리를 찾아오는 사악한 힘으로부터 달아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달아나면, 추방되었던 불명예스러운 어둠의 자아가 승리를 거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모습대로 되는 경향이 있다고 융은 말했다. 그리하여 환자들에게 악을 거부하기보다 그 악을 더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도록, 그의 책에 쓴 대로 표현하자면, “우월한 기능의 빛을 어둠이 이용하도록” 이끌었다. (중략) 단테가 쓴 <신곡>의 번역자이자 해설가인 마크무사는 이렇게 썼다. “어두운 숲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햇살이 환히 비추는 산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은 아래로 내가가는 것이다. 인간은 신을 향해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굴욕 속으로 떨어져야 한다. 구원의 산을 오르기 전에 먼저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지옥으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죄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서인데, 신에게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필수적이다.” (pp. 192~194) □ 입회식 융은 이렇게 썼다. “에로스는 음흉한 친구로서 절대 그 성격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성향에 속하는데, 인간이 동물의 몸을 갖는 한 이 성향은 계속될 것이다. 반면 에로스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영혼과도 관련이 있다. 에로스는 영혼과 본능이 조화를 이룰 때에만 번성한다.” (p. 201) □ 교차로 융 학파의 위대한 정신 분석가이자 작가인 메리언 우드먼은 “살면서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순간, 영원과 무상함이 교차하는 순간, 숭고한 의지가 에고의 항복을 필요로 하는 순간”, 신화 속에 등장하는 갈림길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했다. (p. 202) “사람은 언제나 순수함을 잃은 대가로 자신에 대한 미스터리를 배운다.” (로버트슨 데이비스) 불사조 부활 과정이 우리에게 상처와 자유 모두를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상처는 치유되는 반면, 자유는 끝이 없다. 지하 세계의 여행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편했다. 내 마음이 열린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단단히 오므린 작은 꽃봉오리가 아니었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활짝 피어났다. (p. 207) □ 괴테의 행운의 편지 괴테의 시 <거룩한 갈망> 현자에게가 아니면 말하지 마라. 대중들은 당장 조롱할지니. 나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 불에 타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칭송한다. 그대를 낳고, 그대가 낳았던 사랑을 나눈 밤들의 서늘한 물결 속에서 말없이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노라면 이상한 감정이 그대를 엄습한다.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어둠에 집착하지 않고, 더 고귀한 사랑의 갈망이 그대를 끌어올린다. 먼 길도 그대의 마음을 약하게 하지 못하리니 이제 마술처럼 날개를 달고 날아가 마침내 빛에 넋이 나가 나비가 되어 사라진다. 그러므로 죽어서 성장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저 어두운 지상에 머무르는 고달픈 나그네에 불과할 뿐. (pp. 209~210) □ 틀리는 즐거움 “시간만큼 오래된 이야기, 노래만큼 오래된 선율, 달곰쌉쌀하면서도 이상한 사랑. 그대가 변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그대가 틀렸음을 배우는 사랑. (<미녀와 야수> 중에서 하워드 애쉬먼과 앤런 멘킨) 4부 <아이와 함께 다시 성장하는 어른>은 자녀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자녀 양육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좀 더 나은 어른이자 부모로 변화하고 성장한 저자의 진솔한 경험과 함께, 자녀 양육의 의미와 올바른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레서는 아이의 매 성장 단계에 맞춰 부모 또한 자신을 비춰볼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신의 모습 중 변화시키고 싶은 무언가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그것을 과감하게 깨뜨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들이 스승이 되어주기도 하는데, 이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숱한 고민들이 어쩌면 이리도 비슷할까 싶으면서도 그런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과 방식에 있어서는 문화, 경험, 가치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사실 어느 방식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고, 결국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가서야 보편적인 깨달음과 성장으로 귀착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 단계마다 신화에서처럼 구부러진 길과 모퉁이가 존재하는 영적 여정이다. 만약 매 순간 삶을 포용하고 삶의 환희와 고통 모두를 받아들이는 걸 영적 목표로 삼은 사람이라면,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그 기회를 얻을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경전에는 정반대로 보이는 것 사이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자신의 의지와 더 위대한 의지 사이에서, 한계와 자유 사이에서, 타인을 돌보라는 부름과 자신을 돌봐야 하는 필요 사이에서. 부모 자식 관계만큼 이러한 개념이 현실적으로 와 닿는 관계도 없다. 게다가 작은 몸집의 영적 각성자인 아이들로부터 끊임없이 훌륭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아무리 피곤하고 두렵고 혼란스럽고 화가 나도 계속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 (중략) 당신의 영혼 안에서 변화하고 싶은 게 무엇이든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것이 드러날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면, 자식 키우는 일은 끊임없는 변화와 환골탈태의 과정이 된다. 사랑으로 인해 껍질이 깨지고 마음이 열리는 역동적인 경험이 된다. (pp. 224~225) □ 맏이 “페르시아에는 이 세상의 첫 번째 부모에 관한 신화가 있다.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식을 먹어버렸다. 신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부모의 사랑을 99.9퍼센트 정도로 줄였다. 그리하여 부모는 더 이상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았다.” (p. 228) □ 달아나, 버니! 부모는 양육이라는 모험이 끝날 때까지 통제와 관용, 두려움과 신뢰, 집착하기와 놓아주기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좋은 소식이자 나쁜 소식은 이 줄타기에는 결코 끝이 없다는 것이다. (p. 237) □ 소파의 위대한 부흥 정상인이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이다. (작자 미상) □ 선물 그 때 나는 가족을 정의하는 것은 핏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이클과 내가 서로에게 적응하고 서로에 대해 배우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그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나는 글린다가 되었고, 마이클은 내 아들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힘들게 얻은 선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인 사랑. 필요한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다. 비틀스도 그렇게 말했고,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현자들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내게 그 사실을 직접 가르쳐주었다. 물론 살다 보면 지식, 권력, 영적 이해 같은 것들도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신약에 썼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pp. 255~256) □ 부릉부릉 유전자 다니엘은 겨우 네 살인데도 일부 어른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잊어버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내면과 세상에는 부인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아이들의 결정에 참견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점차 아이들이 그런 놀이를 통해 내면의 갈등, 공격성 그리고 경쟁하고 창조하고 타인과 함께하고 싶은 본능을 해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아이는 이런 본능을 표출할 필요가 있다. 힘에 대한 미숙한 충동은 억눌러서 사악한 형태로 변질시키는 것보다 분출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서 아이들이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나는 ‘얌전히 놀아!’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다. 대신 책을 읽어준다든가, 함께 그림을 그린다든가,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든가, 부릉부릉 외에 다른 유전자를 키워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균형 있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중략) 나는 오랫동안 남자들 속에 살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이성과 잘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바론 행실과 그른 행실이라는 관념 너머에 언덕이 있네. 나는 그곳에서 그대를 만나리. (pp. 259~260) □ 놓아주기 나는 현대판 성인식을 마련해준 이 학교가 더없이 고마웠다. 덕분에 평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법이 없던 람은 자신의 영혼을 세상과 나누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 람이 걱정되고 의심스러울 때마다 나는 그 애가 이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람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삶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자신감 넘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p. 268) 15세기 일본의 부난(無難) 선사의 시 살아 있는 동안에 죽어라. 완전히 죽어라.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다 좋다. “광기는 유전이다. 아이들에게서 물려받는다.” 맞는 말이다. 은총과 축복으로 아이를 놓아줄 수 있다면 우리도 아이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하는 대상이 자라고 변하고 돛을 올려 떠날 때에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물려줄 수 있다. (pp. 272~273) □ 무쇠 한스 이야기 남자가 진정한 남성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정력적이고 강인해야 한다는 블라이의 말이 옳다고 믿었다. 이런 남자는 결코 존 웨인 같은 마초도 아니고, 감수성 풍부한 초식남도 아니다.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제삼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블라이는 남자들이 그 제삼의 남자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억압된 슬픔을 되찾아 느끼고, 긍정적인 남성 멘토를 통해 배우고, 힘과 따뜻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되찾는 과정이 포함된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치면 남자들은 직장과 세상에서 더 강하고 건강한 남성성을 갖게 될 것이다. 더 책임감 있고 헌신적인 아버지가 될 것이면, 여성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지고 중독이나 이혼 같은 위기에 한층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쇠 한스 이야기(Iron John)>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는 동화에도 나와 있듯이, 소년은 남자가 되기 위해 “엄마 베개 밑에서 열쇠를 훔쳐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딸이든 아들이든 아이들은 성장한 후에도 엄마라는 무거운 날개 밑에 갇혀 있다. <무쇠 한스 이야기>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가 개별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엄마의 베개 밑”에 들어 있다. (pp. 277~278) □ 울타리 넓히기 “이 세상의 문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너무 좁게 만든다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 모든 이들에게는 좁은 울타리와 그 울타리 밖으로 추방한 사람들이 있다. ...... 과거에는 복수나 자기 방어, 냉담이 내 목적에 부합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용서가 더 나은 치료제가 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울타리를 넓혀보자. 울타리를 바깥쪽으로 부드럽게 밀고, 추방된 사람들이 들어올 공간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러면 연못에 떨어진 돌멩이가 잔물결을 일으키듯이 여러분의 울타리가 넓어지며 잔물결을 일으키고,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더 큰 패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p. 284~285) □ 절망과 덜시머 "여느 날처럼 오늘도 공허하고 놀란 가슴으로 깨어나네. 곧장 서재 문을 열고 책을 읽지 마라. 덜시머를 꺼내들자. 우리가 하는 일이 곧 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되게 하라. 대지와 키스하는 데는 수배 가지 방법이 있다. (루미) 사람마다 덜시머(dulcimer)를 꺼내드는 방법은 또 다를 것이다. ...... 우리의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단순한 자아와 접촉해 절망에 맞서는 데는 수백 가지 방법이 있다. (중략)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축복을 주고받고, 밤새 밤 한숨 못 이루었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데는 수백 가지 방법이 있다. (pp. 289~290) 5부 <나는 매일 죽음을 연습한다>는 어릴 때부터 두려운 마음에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저자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등을 다룬다. 레서는 죽음과 친밀해지게 되면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완전하게 해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삶이 끝날 때 한 번만 겪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애통함이며, 육신의 죽음은 영혼의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죽음을 공부하는 것이 곧 지혜롭고 자유롭고 즐거운 삶으로 가는 열쇠임을 알려준다. 조셉 캠벨은 “ 모든 괴로움의 은밀한 원인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 그 자체에 있다. 그것은 ‘삶의 첫째 조건’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 조건을 거부할 수 없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정복해야 곧 삶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p. 294) 죽음에 대한 거부감의 단단한 껍질이 깨지면, 놀랍게도 전에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낙천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을 공부하면, 이승밖에 볼 수 없던 제한된 능력이 확장된다. 새로운 이해가 두려움의 경계 너머를 열어준다. (p. 296) □ 영광의 구름을 끌며 “영광의 구름을 끌며 우리는 왔다. 우리의 고향인 신으로부터. (윌리엄 워즈워드) 젊었을 때 나는 산파로 일했다. 최근 들어서는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 곁을 지켜주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도착하는 영혼과 떠나는 영혼의 산파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나는 옆으로 물러설 수 있었고 내 생각, 두려움, 착각보다 훨씬 위대한 무엇인가에 압도당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봐야한다.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 곁에도 있어봐야 한다. 도로 주행 시험을 보지 않고서는 운전을 할 수 없듯이 생과 사의 기적을 목도하지 않고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pp. 297~298) 우리 삶을 둘러싼 두 개의 북엔드인 탄생과 죽음에 대한 토론은 일상생활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과학이나 종교의 상위 분야로 넘어갔다. 탄생의 지저분함과 황홀감은 말끔히 청소되었다. 죽음의 고결함과 힘은 마취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대인들은 탄생과 죽음의 의식이 인간의 삶과 영생을 구분 짓는 베일을 젖힐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태어나는 아기를 돕거나 죽어가는 노인을 돕는 사람은 주술사나 성직자처럼 추앙받았다. (p. 299) 비록 지금은 산파 일을 하지 않지만, 나는 자궁과 사랑에 빠지는 비유를 입에 달고 산다.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고 고통에 마음을 열고 변화를 받아들이면, 일상 생활 속에서의 출산이 훨씬 신속해지면서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외과 의사 버니 시걸Bernie Siegel의 말대로 “인생은 산통이고, 우리는 스스로를 출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p. 301) □ 백 번째 이름 코란에서는 알라에게 아흔아홉 개의 이름이 있다고 말한다. 알라의 마지막 이름, 신의 백 번째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수피교에서도 신의 진짜 이름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염주에 알 하나가 빠져 있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이름이며, 우리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알게 되는 이름이라고 한다. (pp. 308~309) □ 탄생도 죽음도 없다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다.”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이 부처의 가르침은 모든 가르침 가운데 으뜸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배우고, 그리하여 고통의 일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 수련회에 왔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만, 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더 깊이 들어가고 배우고 수련해서 단단하고 차분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 되세요. 우리 사회에는 그런 자질을 가진 여러분 같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이들, 우리의 아이들이 단단하고 차분하고 두려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도 여러분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p. 318) □ 죽은 자들의 방문 레이처럼 나 역시 한밤중에 찾아오는 죽은 이들의 방문을 통해 위안과 확신을 얻는다. 가끔씩 일부러 그런 꿈을 꾸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늘 실패했다. 죽은 이들이 찾아오는 꿈은 분명 룸서비스나 텔레비전의 유료 영화처럼 내 마음대로 주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기반을 마련할 수는 있다. 내가 아는 최상의 방법은 슬퍼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이 떠난 것을 제대로 오랫동안 슬퍼하는 것. 설령 매듭짓지 못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기억이 계속 살아 있을지라도, 마음속에 그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다. (p. 327) □ 좋은 슬픔 눈물의 어린 비가 내리도록 하라. 슬픔의 차분한 손길이 다가오도록 하라. 이는 그대 생각만큼 사악하지 않을지니. (롤프 야콥센) 슬퍼하는 데도 기술이 있다.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부모, 사랑, 자식, 지나간 세월, 가정, 직장)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일은 창조적 행위다. 관심과 인내,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법을 모른다.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서 제대로 슬퍼하는 예를 본 적도 없다. 우리 문화는 슬픔을 빨리 털고 일어나 일에 복귀하는 쪽 또는 ‘종결’ 딱지를 붙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쪽을 선호한다. (중략) 슬픔은 사랑의 증거,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열고 타인을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슬픔을 우울이나 자기 연민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슬퍼하는 과정에서 비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슬픔은 우울과 다르다. 오히려 슬픔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때 우울해질 수 있다.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않거나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삶은 무뎌진다. 슬픔을 회피할 때마다 우리는 삶의 생기를 한 줌씩 땅에 묻는 셈이다. 결국 매사에 무덤덤해지거나 병이 들거나 분노하게 된다. (pp. 328~329)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루터교 신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친구와 가족, 친지를 잃었으며, 결국 나치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무엇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를 채워줄 수 없다. 그들을 대신할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도 잘못이다. 그저 꿋꿋이 버티며 관통해서 바라봐야한다. 처음에는 너무 어렵게 들리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대단한 위안이 된다. 그 구멍이 채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사랑했던 사람과의 유대감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신이 그 구멍을 메워준다는 말은 헛소리다. 신은 구멍을 메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멍이 계속 텅 비어 있게 해 예전에 서로 오갔던 교감을 생생히 간직하도록 도와준다. 설령 그 대가로 인해 고통스러울지라도. (p. 332) 저자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몇 달 동안 슬퍼하며 마음속의 구멍을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많은 귀중한 에너지를 비축하게 되었고 슬픔이 지나간 것을 기리기 위해 이로쿼이족의 추도식을 흉내 내어 의식을 치른다. 다시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암사슴 가죽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로 슬픔의 눈물을 닦아내고, 휴식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침묵 속에서 다시 제대로 듣기 위해 비둘기 깃털로 귀에서 메아리치는 슬픔의 절규를 닦아내었으며, 다시 또박또박, 제대로 말하기 위해 진흙으로 만든 그릇에 담긴 순수한 물로 목구멍에 걸린 슬픔의 덩어리를 씻어냄으로써 고통이 줄어들고 다시 손을 맞잡고, 가슴을 활짝 열고, 창조주에게 오늘을 감사할 수 있었다. □ 가라오케 장터에 서서 인생에 대해 노래하던 피터의 모습은 우리의 존재가 비극적인 동시에 재미있고, 슬픈 동시에 즐거울 수 있는 마법의 장소로 가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시 <여름날>은 이렇게 끝난다. 모든 것이 결국에는 죽지 않나요? 그것도 너무 빨리 그러니 말해 봐요. 한 번뿐인 이 거칠고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 작정인가요? (중략) 그러니 말해 달라. 한 번뿐인 이 거칠고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최대한 삶을 만끽하는 과정에서만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 342~343) □ 죽음 연습하기 화가인 내 친구 알렉스 그레이는 뉴욕 대학교 학생들을 시체 보관소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해부학 수업의 연장선에서 미대생들을 시체 보관소로 데려갔지. 그곳에서 시체를 연구했어. 그런데 그 수업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과 대면하는 수업이 되어버린 거야. 죽은 사람을 보는 일은 충격이야.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죽음이 감춰져 있으니까. 장례식장의 시신마저도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지.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이유는 우리가 시신을 보며 자신의 유한성을 투사하기 때문이야. 나는 학생들에게 붓다에 대해 말해주곤 해. 그가 시신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는 걸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죽음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매 순간을 더 잘 인식하게 하지. 그리고 이렇게 물어. ‘넌 곧 죽을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살 거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일이 뭐지?’ 죽음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뼈아픈 일침이야. 그 자체로 대단한 시비인 셈이지. 학생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끔 하는 데 큰 도움이 돼.” (pp. 347~348)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죽음을 연습하라”고 충고했다. “죽음이 우리에게 휘두르는 가장 큰 힘을 빼앗기 위해서는 죽음의 낯설음을 빼앗아야 한다. 죽음을 자주 접하고, 죽음에 익숙해지자. 마음속으로 늘 죽음을 생각하자. ......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니 사방에서 기다리게 하자.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자유를 연습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pp. 348~349) □ 거북과 나무 오라, 오라. 그대가 누구든, 방랑자, 숭배자, 툭하면 떠나는 자도 상관없다. 우리는 절망의 무리가 아니다. 오라, 설령 맹세를 천 번이나 깨뜨린 자라 해도 오라, 그래도 한 번 더 오라, 오라. (루미 묘비의 비문) 이렇듯 나는 아름다움과 상실, 코요테와 아기 사슴, 삶과 죽음을 통해 신이 역사하는 신비로운 방식에 절망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또다시 깨뜨렸다. 그 맹세를 천 번이나 깨뜨렸지만 그래도 천 번이나 다시 맹세함으로써 그 믿음을 가진 무리에 합류할 수 있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처럼 나도 내 걱정을 믿음으로, 죽어가는 나무와 죽은 거북에 대한 절망을 영원한 부활의 밝은 비전으로 바꿀 수 있다. (p. 357) □ 죽음을 연습하는 명상 “죽음을 연습할 때 우리는 에고보다 영혼에 동화되는 법을 배운다.” (람 다스)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매 순간 현실에 가장 가깝게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궁극의 용기다. 영적 전사는 무방비 상태로 진실 앞에 선다. 여기서 진실이란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진실이 아니다. 배우자와 말다툼을 하거나, 아프거나, 업무 회의에 참석하거나, 부모 혹은 친구 혹은 자식과의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수백 번째 직면했을 때와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낱낱이 파헤쳐진 진실을 말한다. 매일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 우리 삶 그리고 주위 사람에 대한 거부감을 버릴 기회가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주어진다. 그러니 시도해보라. 직장에서 무례하거나 부당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발생해 화가 치밀면, 스스로에게 “그 마음을 버려”라고 말해보자.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속 좁은 에고를 치워버려라. 자신이 가진 작은 조각만 보지 말고, 이야기 전체를 보라. 당신이 바라는 현실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맑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라. 필요하다면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앉아 죽음을 연습하라. (p. 360) 이렇듯 죽음을 제외하고서는 인생의 고통과 제대로 맞닥뜨리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레서는 ‘불사조 부활 과정’을 겪으면 죽음이 가르쳐주는 것과 유사한 교훈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갈구하는 모든 것은 덧없으며 우리가 삶에서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 또한 결국엔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죽음을 연습한다는 것은 매 순간 현실에 가장 가깝게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6부 <강을 따라 흐를 것인가, 강을 거슬러 헤엄칠 것인가>는 어느 순간부터 급습하는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거스르기보다는 강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그 물살에 영혼을 맡기고 흘러가는 삶을 평온하게 즐기며 강처럼 영혼이 깊어지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의학 박사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는 이렇게 썼다. “우리 모두는 시공간 속에 정체된 물체라기보다 강에 훨씬 더 가깝다.” 또 랭스턴 휴즈Langston Huges는 이렇게 썼다. “나는 강을 안다.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되고, 인간의 혈관을 흐르는 혈액보다도 오래된 강을 안다. 내 영혼은 그 강처럼 깊어진다.” (p. 366) □ 시간의 흐름 즐기기 “인생의 비밀은 시간의 흐름을 즐기는 것이라네.” (리치 헤이븐스) “나는 시간이 흐는 것에 대한 거부감,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마음속의 강렬한 ‘노!’를 이 불 속에 던집니다. 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솟아나기를 기도합니다. 좋건 나쁘건 흉하건 세상 모든 것에 ‘예스!’를 외치고 싶습니다. 우주의 은밀한 법칙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p. 370) □ 워크숍 천사 노부인은 원 반대편에 앉아 있는, 분노에 사로잡힌 여자를 가리키며 따뜻하게 말했다. “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잃은 것도 많아요. 두 남편과 아들도 먼저 보냈죠. 하지만 아흔둘이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행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네요!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고난과 역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 깨달았어요.” (p. 374) □ 포도가 와인으로 변할 때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포도가 와인으로 변할 때 포도는 변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갈구하네. 별이 북극성 주변을 돌 때 별은 성장하는 인간의 의식을 갈구하네. 와인은 우리와 함께 취할 뿐, 그 반대가 아니다. □ 체-체-체인지 나는 시동을 걸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숲에서 빠져나와 길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탄생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 후, 나는 갓 태어난 핑크빛 카일리를 엄마에게 넘겨주었다. 로리의 젖꼭지를 물고 생애 첫 모유를 맛보는 카일리를 지켜보며, 반드시 생존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다는 것은 우리 안에 흐르는 영원한 생명력을 믿는 것이다. 그 생명력의 인도를 받으며, 우리가 이 지구에 머무르는 동안 겪어야하는 불가피한 변화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병원을 떠나기 전, 나는 카일리를 안아들고 그 애의 조그만 귀에 속삭였다. “난 숲에서 나오게 해줘서 고맙다, 아가. 변화를 믿고, 신의 뜻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렴.” 집을 향햐 차를 모는데, 라디오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가 나왔다. 나는 자신있게 따라 불렀다. 내가 이 세상에서 그 가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가운데 한 명이라서가 아니었다. “체-체-체-체인지, 돌아서서 압박감을 마주하라”를 따라 부른 이유는 내가 지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삶의 흐름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니 록큰롤 추종자들이여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이여, 조심하라. 금방 나이를 먹게 될 테니. (p. 391) □ 불확실성에 편안해지기 내가 좋아하는 영성 작가 중 티베트의 비구니 페마 초드론Pema Chödrön이 있다. 그녀가 쓴 책들은 제목이너무도 좋아 굳이 내용을 읽지 않고도 삶의 신비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 중 불안과 거부감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바로 <불확실성에 편안해지기Comfortable with Uncertainty>이다. 이 제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거부감이 줄어든다. (중략) 현실과 싸우지 마라. 현실의 공격을 막아내지도 마라. 차라리 신문을 읽듯이 현실을 읽어라. 나와 타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으로 사는 것의 현실, 나로 사는 것의 현실을 보도하는 뉴스로 받아들여라. 이 세상의 삶은 뉴스로 가득하다. ...... 사실 이 세상에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 공짜로 정보를 제공해주는 놀라운 피드백 시스템이 늘 작동 중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때마다 현실이 그 행동의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에 관한 메시지를 남긴다. 초감 트룽파는 그 메시지 시스템을 이렇게 묘사했다. 즉, 만약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행동을 취한다면, 그 행동은 실패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때 어떤 goded에 대한 메시지가 있음을 아는 게 곧 믿음이다. 그 메시지를 믿는다면, 현상적인 세계의 반영을 믿는다면 이세상이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은행이나 저수지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풍요로운 세상, 결코 메시지가 바닥나는 법인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메시지는 형벌도 아니고, 축하도 아니다. 성공을 믿지 말고, 현실을 믿어라. 나는 특히 직장에서 순조롭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을 때 트룽파의 지혜를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회의는 과격해지고,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비서는 계속 변덕을 부린다. 모든 상황이 의미의 저수지이며, 풍부한 정보의 은행이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이미 문제 속에 들어 있다. 나는 그저 저항을 멈추고, 현실에 마음을 활짝 열고, 메시지를 해독하면 된다. (pp. 392~393) □ 휴고를 위하여 엄하고 죄를 심판하는 신이 아니라 아이들이 생각하는 신, 수피교의 위대한시인 하피즈Hafiz가 묘사한 그런 신이었다. 거창한 이름을 가진 신도 아니요, 이것저것 금하는 신도 아니요, 이상한 짓을 하는 신도 아닌, 그저 네 단어만 알고, 그 단어만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신. “이리 와서 나와 춤추자.” 이제 휴고에게 새로운 댄스 파트너가 생겼다. 휴고는 병마와 씨름하면서 어려운 스텝을 배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휴고가 해니리라는 것을 안다. 휴고는 숙련된 춤꾼이다. 상대를 리드해야 할 때와 따라가야 할 때, 내면의 리듬을 듣는 법, 장기간 훈련하는 법을 알고 있다. 휴고는 앞으로 몇 달간 부지런히 연습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pp. 397~398) 트라피스트Trappist 수도승이자 사회 운동가인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은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특히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단순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점차 사상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관계의 현실이다.” (p. 403) □ 평온한 머무름 끊임없는 변화가 삶의 바퀴를 돌아가게 하고, 그로 인해 현실이 온갖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변화가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해방하고 그들에게 지복을 가져다주는 동안 평화롭게 머물라. (p. 406) 잠시 눈을 감고,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무엇이 변하든, 무엇이 내 계획대로 진행되든 안 되든 그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위대한 평화 그리고 내가 가진 붓다의 성정이 활짝 피어나는 경이로움을 절실히 느낀다. (p. 411) □ 진실 역경은 인생사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일이 잘못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덕률이나 영적 수행을 일종의 부적으로 처방하는 것이야말로 오만의 극치다. 일은 잘못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섭리다. 불가피한 변화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 할 때 우리는 영혼에 등을 돌리고 생사에 대한 두려움, 미약한 신념, 어떻게든 이기려는 옹졸한 에고의 의지에 귀를 기울인다. 영혼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삶과 싸우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일이 잘못될 때, 남들이 내 뜻대로 하지 않을 때, 아플 때, 배신당하거나 홀대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싸우지 않아야 한다. 영혼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속 깊은 감정을 느끼고, 우리 자신을 똑바로 보고, 불편함과 불확실함에 항복하고, 기다려야 한다. 고난이 닥쳤을 때 영혼은 가장 현명하고 영원한 노래를 부른다. 내가 그 선율을 흥얼거리거나 가사를 말해줄 수는 없다. 영혼마다 부르는 노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그 노래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 노래를 듣노라면 영혼이 깨어나고 차분해지며, 갑자기 통제라는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당신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또한 팔짱 낀 팔을 풀고, 등을 뒤로 기대고, 영혼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냥 네 노래를 해. 내게 가사를 알려줘. 네가 아는 것을 말해줘.” (p. 414) □ 사당 하지만 우리를 앞서 간 용감한 순례자들이 있다. 그들은 믿음과 비전을 간직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다음은 루미가 그 순례자들을 대변해 쓴 시다. 허공에 드높이 울려 퍼지는 북소리. 그 소리 따라 내 심장도 고동치네. 그 안에서 들리는 한 목소리. 네가 고단한 줄 알고 있다. 그래도 오너라. 이것이 네 길이다. 그대가 녹초가 되었을지라도 북소리에 묻힌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자신이 부서진다고 느낄 때마다 마음 대신 가슴이 부서져 열리기를. 삶의 모든 경험이 그대의 마음을 열어주고, 이해를 넓혀주고, 자유를 향한 문이 되기를. 지쳤다면, 열정과 목표를 통해 자극받기를. 잘못을 저지르고 씁쓸해한다면, 희망과 유머로 달콤해지기를. 겁을 먹었다면, 두려움보다 훨씬 현명한 확장된 의식으로 대담해지기를. 외롭다면 사랑을 발견하기를, 우정을 발견하기를. 길을 잃었다면, 우리 모두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하지만 길을 잃었어도 이상한 천사와 잠든 거인, 우리의 더 훌륭하고 친절한 본성, 북소리에 묻힌 떨리는 목소리가 여전히 우리를 인도해 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그 목소리를 따라가기를. 왜냐하면 이것이 그대가 가야 할 길이자 영웅의 여정이며, 가치 있는 삶이고,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pp. 418~419) 마지막으로 부록 <실전 매뉴얼>은 이 책의 숨겨진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추락하고 부활하는 힘든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상처 받은 마음에서 열린 마음을 향해 변화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준 믿음직한 가이드와 유용한 도구상자로 명상, 상담(심리 치료), 기도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실전 매뉴얼을 통해 저자가 실제 활용하는 명상법을 직접 시도해 볼 수 있다. 또한 상담에 대한 대중의 오해와 편견도 버리고 좀 더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를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가 아무리 명상과 상담 등을 통해 심신의 평온을 유지한다 해도 원초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할 수는 없으니, 결국 모험 가득한 삶의 여행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세 가지 도구에 대한 실천적 지침을 잘 따른다면 좀 덜 불안하고 덜 고통스럽고 희망찬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신화가 다루는 것은 의식의 변화다. 이제는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식은 시련을 겪거나 빛나는 계시를 통해 변할 수 있다. 시련이야말로 신화의 전부다.” (조셉 캠벨) □ 명상 명상과 상담을 접목한 심리학자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은 “지난 2000년간 명상은 전통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설명하기 힘든 까닭은 단지 명상의 경험적 본딜 때문만은 아니다. 명상이 우리를 언어, 심지어는 생각마저도 힘을 잃는 영역 속으로 깊이 이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몇 작가와 영적 지도자는 말로 명상을 설명하기 위해 애써왔다. 가톨릭 신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에서 명상하는 이들에게 참을성을 고양하라고 충고한다. 인내는 힘든 훈련이다. 인내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거나, 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거나, 갈등이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단순히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인내는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할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인내는 온전히 순간에 살며, 완벽하게 순간에 존재하고, 지금 여기를 맛보고, 지금 있는 곳에 존재하라고 요구한다. 인내심이 없을 때에, 우리는 지금 여기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 마치 진짜 사건은 내일, 나중에, 다른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인내심을 발휘하자. 그리고 우리가 찾는 보물은 지금 우리가 딛고 선 땅 아래 묻혀 있다는 것을 믿자. 이것이 명상이다. (pp. 428~429) 명상을 연습하는 것은 다른 것을 배울 때와 똑같다. ...... 연습에는 극기가 필요하다. 지겹더라도 절대 빼먹어서는 안 된다. 충분히 연습하면, 그것을 수행하는 데 좀 더 능숙해진다. ...... 늘 깨어 있고 살아 있기 위해, 삶의 기술에 능숙해지기 위해 명상하는 것이다. (p. 431) 마음 챙김 명상은 종교와 관련이 없는 수행법이다. 매 순간 깨어 있으라고 가르치는 수행법이다. 발가벗은 현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책과 테이프를 통해 마음 챙김 명상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선생님에게 배우거나 단체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p. 432) 명상 자세를 취할 때는 항상 초감 트룽파가 말한 여섯 가지(자리, 다리, 상체, 손, 눈, 입)를 체크한다. “분노, 슬픔 혹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것을 억누르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심정으로 마음을 집중해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다. 명상이라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그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감정에 휘둘려 경솔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낫다.” (틱낫한) 진실을 구하지 마라. 그냥 그대의 의견을 놓아주라. (중국의 현자 승찬(僧璨) 대사)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자아,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향해 거듭거듭 돌아감으로써 자기비판의 짐을 벗어버리자. 그러면 이내 타인과 이 세상 자체를 용서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명상의 10단계> 1. 장소와 시간 :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비교적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10분부터 시작해서 점차 늘려나간다. (타이머나 시계를 둔다) 2. 자리와 자세 : 방석에 가부좌 또는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3. 시작 : 눈을 감고, 심호흡하고 명상에만 집중할 것임을 상기 4. 호흡 : 숨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의식하면서 매번 호흡(숨의 들고 나가는 것)에 집중한다. 5. 생각 : 다른 생각이 나서 호흡에 집중할 수 없을 때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고 그 생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6. 감정 : 감정이 일어날 때는 거부하지 말고 감정을 느끼되,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7. 통증 : 통증이 느껴지면 그 통증에 집중하며 통증 부위를 호흡으로 감싼다. 통증이 지속되면 부드럽게 움직여 긴장을 푼 뒤 다시 자세와 호흡으로 돌아간다. 8. 조바심과 졸음 : 자꾸 딴 생각이 들면 몇 번이고 다시 호흡과 자세로 돌아간다. 잠을 잘 때처럼 이완하되, 동시에 명료하게 깨어 있는 것이 명상이다. 9. 호흡 세기 : 정신 집중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숨을 세는 것이다. 열까지 센 다음 다시 처음부터 세고, 세다가 잊어버리면 다시 하나부터 센다. 10. 훈련 : 무조건 일주일 동안은 5분씩이라도 규칙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명상을 해본다. 감정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한 주 더 해본다. 그 후 명상 그룹이나 수련회 등에 참가해 더 심도 있는 가르침과 도움을 받는다. □ 심리 치료 상담을 통해 타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삶이 아무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노먼 브라운Norman Brown이 상담의 목표라고 말한 과정, 즉 “우리의 영혼을 우리의 몸에게로,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게로, 그리하여 자기 소외라는 인간의 상태를 극복하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pp. 443~444)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치료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느끼는 감정이 너무 많아서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고, 느끼는 감정이 너무 없어서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약한 자아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치료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에고가 너무 강한 나머지 사랑이 충만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서 치료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이 이른바 ‘감정적 지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찾아온다. (p. 446)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당신은 늘 자신이 가장 배워야 할 것을 남들에게 가르친다. 당신의 가장 형편없는 학생은 당신 자신이다.” (애설런 협회) 현명한 리더와 치료사는 권력의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를 상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데 흥미가 없다. 대신 남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세상은 이런 리더들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는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심지어 그런 영웅들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pp. 449~450) 심리치료는 강력한 과정이다. 잘되면 몸과 마음, 영혼, 정신의 측면에서 더욱 강해진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좀 더 대담하게 삶의 불길을 헤쳐 나가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재능, 노력, 인간관계 그리고 추구하는 바를 지지해줄 단단한 기반을 닦을 수 있다. 명상 같은 영적 수행을 동반한 치료는 행복과 인간미를 길러주며, 삶에 통달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평온하고 심리적으로 건강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불안을 잠재우거나, 모든 신경과민을 길들일 수는 없다. 우리는 버스에 탄 머저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 (p. 452) □ 기도 "기도는 희망을 갖기 위해 하는 겁니다. 신에게로 통하는 직통 전화가 아니에요. 자신이 원하는 대답 근처를 서성이며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특히 자신이 받게 될 대답이 ‘노!’일 경우에요.” ...... “기도할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할 거라면 번거롭게 기도할 필요 없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어요.” (중략) 기도는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고, 내 시각보다 더 포괄적인 시각을 가진 존재에게 삶의 통제권을 넘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맹신이 필요하다. 설령 이 세상에 존재하는 큰 힘에 대한 믿음이 아주 희박할지라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얄팍한 믿음을 ‘신’이라 부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신에게 혹은 자신의 더 큰 시각, 삶의 의미를 믿는 자신의 일부에게 기도할 수도 있다. (p. 453) "아름다운 꽃이 핀 정원에 앉아 있다고 해서 저절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병과 통증, 상실감에 시달릴 때 우리는 성장한다. 단, 머리를 모래에 파묻지 않고 고통을 아주아주 특별한 목적을 지닌 선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기도는 어떤 일이 잘되리라는 믿음이 아니에요. 결과가 어떻든 이치에 맞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확신이죠.”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기도의 결실은 삶이 영원한 모험이고, 우리는 언제나 변화하며, 계속 배우고, 명료함과 평화의 새로운 지평에 늘 마음을 열어야 하는 탐험가임을 깨닫는 것이다. (pp. 456~457) <부서져야 일어서는 인생이다>는 고된 일상의 삶을 다독이며 연고를 발라주는 여느 힐링 도서와는 달리 삶의 고비마다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에 정면으로 맞서라고 요구한다. 인생 여정에서의 시련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은총으로 여기라고 설득한다.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의 고독하고도 기나긴 변태 과정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런 시간을 겪어내야만 한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그리하여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삶이 갑자기 끝나버렸을 때, 그렇다고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는 알 수 없을 때,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하고도 혹독한 시련의 순간이다. 살아가면서 직장을 잃고, 연인과 헤어지고, 의도하고 바라던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무서운 병에 걸리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등 고난이 들이닥치면 좌절하여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변화가 필요한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며 그런 게 바로 인생임을 깨닫고 새로운 목적과 의미를 찾아 강의 거대한 흐름에 맡긴다면, 설사 급류를 향한 곤두박질이 되더라도, 영혼은 강처럼 깊어질 것이다. 현재 엄청난 고통에 처해 있거나 과거에 절망적인 슬픔과 고난을 겪었으나 그 상처가 아직 온전히 아물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 가운데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것을 골라 읽으며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하다보면 이 넓은 세상에서 나 혼자만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게 아님을 알게 되리라.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은 아파하지 않아도 되리라. 삶이라는 기나긴 여행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 직면하여 싸우지 않고 그것을 ‘은총’이자 ‘축복’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리니.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다시 힘차게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어 캄캄한 숲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내면의 자아가 성장하고 의식이 한층 확장되는 극적인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진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영웅이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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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떄 웰빙의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요즘 우리나라에 힐링 열풍이 불고 있다. 경기 탓일까? 웰빙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더 좋은 건강식품,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서 사람들의 욕망이 폭팔을 했었다. 당시 불경기라고들 아우성이었지만 우리나라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진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떄가 호황기였다. 지금 우리는 힘든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 터널에 끝이라는 것이 있을지, 아니면 일본처럼 끝없이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을 향해가는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 알수가 없다.
그런 불확실성. 그런 불안감. 오랫동안 지속되는 중압감에 대한 피로감.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힐링을 바라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느닷없이 불고 있는 힐링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힐링이란 무엇으로 부터의 벗어남. 어떤 좋지 않은 상태로 부터의 재생... 아마도 이런 것에 대한 바램이 만들어 내는 문화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는 영성세미나라는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뉴에이지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적인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발간되는 책들을 보다 보면 언듯 그런 내용들이 비치는 것을 자주 접할수 있다.
'부셔져야 일어서는 인생이다' 는 언듯 스쳐지나가는 글들을 통해 '그런게 있는가 보구나..' 라고 막역하게 느껴오던 그런 유형의 책을 내가 직접 읽어본 첫번째 책이다. 책의 내용중에는 우리와 차이가 나는 문화적 맥락 때문에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문화적 간극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공감할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이 책에는 심리상담사 같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개신교의 종교 부흥회 같기도 하고, 또는 인생을 많이 살아본 사람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삶의 지혜 같기도 한 내용을 강의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관조하는 과정에서 깨닳은 듯한 깨닮음의 메시지. 자신이 강연과 세미나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들에서 얻어지는 풍부한 사례. 그런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들 인간이라는 존재가 삶을 통해서 부딪히게 되는 아픔과 시련.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잘 소화하고 인내라고 또 삶이라는 것을 지속시켜갈 동인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가슴 아리는. 하지만 또 용기를 얻을수 있는 지혜에 관한 내용들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아내는 글들속에 잘 담겨 있는 책이다. 삶의 모퉁이에서 무언가 지혜가 필요할때 찬찬히 읽으면서 큰 치유의 힘을 얻을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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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 힐링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경쟁과 빠른 사회 변화 속에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위로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힐링이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다시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이며 활력이다. 과거보다 냉혹한 생존 게임에 내몰린 지금 세대는 좀 더 따뜻하고 희망적인 인간관계를 원한다. 인간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면 고통에 빠진다. 지금 유행하는 힐링 열풍도 공감을 찾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공감은 인간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공감이 없으면 이 세상은 삭막하고 냉정하며 무자비하다. 이 책은 미국을 대표하는 치유 전문가이자 교육가. 건강, 심리학, 예술, 영성에 관한 대중성 높은 워크숍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최대의 성인 교육 센터 ‘오메가협회’의 공동 설립자인 저자 엘리자베스 레서가 ‘오메가협회’에서 인생의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한 워크숍을 수십 년에 걸쳐 진행해 오면서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이 인생의 가장 힘든 변화를 겪으며 두려움이 아닌 성장을 선택하는 모습에 감화되어서 이들의 사연을 모아 펴낸 것이다. 이 책은 고된 삶을 다독이는 여느 힐링 도서와는 달리 고된 삶을 마주하라고 말한다. 인생의 시련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이를 은혜롭게 여기라고 설득한다.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의 고독하고도 기나긴 변태 과정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역시 그런 시간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삶이 갑자기 끝나버렸을 때, 애벌레로 사는 것이 더 이상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엇으로 변해야 할지는 알 수 없을 때,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한 시련의 순간이다. 저자는 이 책의 ‘버스에 탄 머저리들’이라는 제목에서 말하기를 “명성, 재산, 나이, 두뇌, 미모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보편적인 약점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기운이 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와 다른 버스에 탔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처럼 자신감에 넘친다. 늘 그렇듯이 한참을 헤매며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계곡을 빠져나오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우리는 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p.72)고 했다. 저자는 죽음을 연습하기 위해 삶에서 변하거나 끝나가거나 죽어가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한다.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매 순간 현실에 가장 가깝게 산다는 뜻이다. 그것은 궁극의 용기다. 영적 전사는 무방비 상태로 진실 앞에 선다.”고 하면서 “직장에서 무례하거나 부당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발생해 화가 치밀면, 스스로에게 “그 마음을 버려”라고 말해보자.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속 좁은 에고를 치워버려라. 자신이 가진 작은 조각만 보지 말고, 이야기 전체를 보라. 당신이 바라는 현실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맑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라. 필요하다면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앉아 죽음을 연습하라.”(p.360)고 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심리 치유서와는 달리 삶의 모퉁이에서 닥치는 시련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시련 속에서 패배감을 느끼거나 저항하는 대신 시련을 성장하고 배우는 삶의 기회로 기꺼이 맞이할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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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마지막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만드는 일과 마주할때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불행을 떠안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하지만 생각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힘들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힘든일을 만나면서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인생의 풍파를 겪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였다. 친절한 기운이 우리를 찾을 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삶을 크게 변화시키기보다 다시 잠들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 한 번 태어난 자의 무지에서 두 번 태어난 자의 지혜로움을 떠나는 여행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 - 본문 63쪽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나만 힘들게 살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고민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들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고난이나 고민없이 살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리 부정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하루하루 늘 고민을 하고 걱정을 안고 삽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무시하며 지나칠수 없는 일들도 찾아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들이 다가오는 것일까요?
고난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견뎌낼수 있는 무게만큼이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견뎌낼수 없을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견뎌내지 못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틀린것일까요? 도저히 힘들어 다시 일어날수 있는 힘조차 주어지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쉽게 비난할수만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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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져야 일어서는 인생이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입니다. 부서지지 않는 삶이 없고 한번이라도 그런 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며 그것을 계기로 더욱 단단해 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일로 다시 일어설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마음이 단단해질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어 지루해할수도 있으나 책에서는 굳이 처음부터 읽으라 말하지 않습니다. 훑어가며 자신에게 맞는 이야기들을 찾아 읽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저도 한번 대강 훑어본후 제가 읽고 싶은 부분들을 먼저 읽었습니다.처음부터 읽어야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책에서 말한대로 제가 읽고 싶은 부분을 읽었는데 그건 4부 아이와 함께 다시 성장하는 어른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본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껍질을 깨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이를 키워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 말에 공감하는 것은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곁에 있으면 늘 행복하고 귀여운 아이로 있을것만 같지만 함께 지내며 크고작은 충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내 자식이 맞는걸까라는 생각을 들게하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통해 엄마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아무리 피곤하고 두렵고 혼란스럽고 화가 나도 계속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 - 본문 225쪽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 찾은 인생의 새로운 출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절망감을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새로운 출발로 만들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절망이나 고난이 찾아오지 않을수 있다면 얼만나 좋을까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절망은 또다른 희망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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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삶에 힘든 시기를 겪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그 힘든 과정을 애써 외면하려 하거나 모른 채 하며 지나치지 아니하고 그것을 직시하며 그 과정을 단단히 거치는 과정의 세세한 면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저자는 이 힘든 과정을 통과 하는 그 자체를 ‘불사조 부활 과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107쪽에서 저자는 ‘불사조 부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변화의 여정,즉, 오디세이, 성배 원정, 위대한 입문, 죽음과 부활의 과정, 긍극의 전투, 영혼의 어두운 밤, 영웅의 여정 등등. 이 모든 이름은 힘든 시기를 겪다가 부서질 것처럼 고통을 겪은 끝에 마음이 열려 더 강하고, 현명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이를 ‘불사조 부활 과정’이라고 명명해 놓았다.>>>
책은 총 6부로 구성이 되었으며, 말미에 ‘불사조 부활 과정’을 겪는 동안 거기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저자가 자주 이용한 방법인 [명상, 상당,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또한, 매 장을 시작하면서 짧은 시나 현자들의 인용구를 마치 이정표마냥 세워 놓았다.
1부에서는 영혼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며 이에 응답하기 위하여 워크셥, 수련회 및 여러 세미나를 통하여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아인슈타인이 알았던 사실> 이라는 장의 길 앞에는 아래와 같은 인용구를 푯말로 세워 전개되는 이야기의 이해를 돕고 있다. ***** 문제를 일으켰을 때와 똑같은 정신 상태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 - 알베르 아인슈타인 -
2부에서는 ‘불사조 부활 과정’에 관한 설명과 함께 심각한 병에 걸렸다든가, 전쟁의 비극에 휘말리는 등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용기를 갖고 헤쳐나간 사람들의 얘기를 펼쳐 놓았다.
3부는 저자 자신이 겪은 ‘불사조 부활 과정’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남들과 같으면 꼭꼭 감추었을 치부를 드러낸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일찍 결혼하여 애를 낳고 기르는 이야기, 에로스 사랑을 좇아 어두운 짚시의 뒷골목을 헤매며 여자로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관능을 좇던 이야기, 그러나 그것에서 유유히 벗어나 새로운 빛을 발하며 재혼하여 용기있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펼친다.
4부, 5부 및 6부는 일상적으로 좀 더 자주 겪게 되는 자잘한 문제들 - 육아, 연인 관계, 누구나 달려가는 길목의 죽음과 친해지는 방법, 등등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쉽게 이끈다.
각 장의 첫머리에 놓인 이정표와 같은 인용구 중에 마음에 와 닿은 것들을 몇 개 나열한다.
- 모든 고난에는 친절한 기운, 우리를 단련시키는 손길이 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우리는 실수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잘못을 저지르도록 암호화되어 있다. - 루이스 토머스 - 사람들은 인간이 추구하는 게 삶의 의미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내 생각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살아 있다는 황홀한 기쁨을 느끼는 것이죠. -조셉 캠벨 -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다. - 빅토르 프란클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유명한 책을 저술) - 고통과 위기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겸손하게 만들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져다 준다. -예후다 파인 (랍비, 가족 상담사) - 인생의 황금기는 자신의 악한 면을 가장 좋은 면이라고 고쳐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찾아온다. -프리드리히 니체 - 에로스는 음흉한 친구로서 절대 그 성격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성향에 속하는데, 인간이 동물의 몸을 갖는 한 이 성향은 계속될 것이다. 반면 에로스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영혼과도 관련이 있다. 에로스는 영혼과 본능이 조화를 이룰 때에만 번성한다. - 융 - 이 세상의 문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너무 좁게 만든다는 것이다 - 테레사 수녀 - 어디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른다. 그러니 사방에서 기다리게 하자.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자유를 연습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미셸 드 몽테뉴
며칠전 이안류를 벗어나는 법을 TV에서 봤다. 이안류에 휩쓸리면 본능적으로 육지를 향하여 헤엄을 치게 되는데, 이는 체력만 소모할 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류를 따라 바다 쪽으로 몸을 맡기면 점점 멀어지니 돌아올 길이 막막해질 따름일 때 이를 벗어 나는 방법은 해안과 평행하게 헤엄치는 것이라고 헬기에서 찍은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안류가 작용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아 쉽게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커져만 가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많은 방법을 찾아 헤맨다. 이안류를 벗어나는 단순한 방법처럼 각자의 생에 알맞은 ‘불사조 부활 과정’을 찾는데 활용해 본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불확실성에 편안해지기> 묘사를 오버랩해 본다.
<<<<모든 상황이 의미의 저수지이며, 풍부한 정보의 은행이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이미 (그) 문제 속에 들어 있다. 나는 그저 저항을 멈추고, 현실에 마음을 활짝 열고 (그) 메시지를 해독(하기만) 하면 된다.>>>>(394쪽)
끝으로, 책 말미의 [실전 매뉴얼]에서는 불사조 부활 과정을 겪는 동안 명상과 상담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이를 극복했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명상의 10단계를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 국민의 ‘빨리빨리’ 특성은 IT 강국으로 우뚝 서는 기질이 되었다. 반면, 이는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기도 하였다. 즉, 철학자 샘 킨이 말한 것처럼....<<<<우리를 불안과 괴로움에서 너무 빨리 빠져나오게 하는 바람에 새로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새로운 깨달음을 놓치게 만든다.>>>>(447쪽)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빠른 치료법과 고통 없는 해결책을 찾는 경향의 맹점을 지적한 말이다.
어제 오후 늦게 개성공단의 7차 회담이 좋은 성과를 내며 끝나는 속보를 보았다. 근본적인 논의 없이 성과에 급급한 앞선 정부의 불도저식 정책으로 이루어진 개성공단의 막혔던 길을 뚫는 과정이 마치 ‘불사조의 부활 과정’을 지나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부서지지 않고도 탄탄히 일어설 수 있는 인생이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도처에 불확실성이 깔려있는 지뢰밭 길과 같은 느낌이다. 이 길을 걸어가는 인생일진데, 이를 벗어나는 한 방편으로 이 책에서 말한 ‘불사조 부활 과정’과 같은 나름의 자기 루틴 과정을 만들어 그 긴 터널을 벗어난다면 새로운 빛이 앞에서 비추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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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벼랑 끝에서 찾은 인생의 새로운 출구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으며, 어려운 일도 있고, 쉬운 일도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다양성을 쉽게 잊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신경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해서만 보게되고 그렇게 되면,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가진 속성이나 특징들은 모두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고된 인생의 모습만이 우리 각자의 삶에 남게 됩니다. 사실, 고된 삶의 모습들을 겪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바로 포기, 혹은 도망입니다. 고난에서 도망가거나, 고난이 닥친 상황을 심리적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아니면, 삶에 대한 다양한 것들을 포기하는등 아파하기만 하고, 그 어떤 것도 하려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우리가 선택하기 쉬운 것이기도 합니다.
다르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 부터, 이 책이 끝나는 곳까지 다른 관점과 다른 자세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다른 관점은 고난을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원래 변화무쌍하고, 혼란스러워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것이 당연하며, 우리가 집중해야할 것은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어떻게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만들것인가라는 점 입니다.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인정하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부정하거나, '왜 나에게만 이런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어쩔줄 몰라하기 쉽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며, 현재 우리가 가진 시련과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우리 삶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어떻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인가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시련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고난이나 시련으로 부터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연습을 하다보면, 좀 더 나은 인생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독이기만 하는 힐링관련 책들에 비해서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련, 그 다음을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시련을 넘어서서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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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벼랑 끝에서 찾을 수 있는 인생의 새로운 출구를 불사조의 부활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엘리자베스 레서. 미국을 대표하는 치유전문가이자 영성지도자라는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의아하기도 하고, '정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련과 절망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겉으로 너무나 완벽하고 행복해보이는 사람들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들 나름의 고민과 고통이 존재하기 나름이다. 심지어 이 책에서는 그런 걸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한다. "잘지내"로 시작되는 일상적인 대화들.. 그 속에는 수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고, 사람들은 그 비밀속에서 의문과 의심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부터 그러하다. "잘 지내?" 라는 질문에, "난 요즘 이런게 진짜 고민이야." 라며 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고민과 절망을 피하려고만 하고, 마음의 벽을 쌓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주 무덤덤해지거나, 아니면 너무나 절망하기 쉬운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절망속에서 단단해지는 방법... 내가 이 책에서 찾은 방법은 바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수용하는 것이다. 내게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오만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좌절에 순응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거의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수용할때에만 바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지 않은가? 나의 새로운 삶에 빛과 의망, 의미와 기쁨같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와의 이별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아빠의 일을 돕기로 한 후에도 끊임없이 후회하고 짜증스러워하고 때로는 내가 왜 이런 고난을 자처했는가 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정말로 말 그대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였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와의 이별을 해내지 못하는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상실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쩔수 없지 않은가? 계속 연옥에 머물러 있을수는 없다. '살아있다는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 나는 선택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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