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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신문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이 엄선한 좋은 시詩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매일 아침 바쁜 시간에 신문을 훑어 보는데, 나는 바빠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를 꼭 읽고 넘어간다.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은 내가 모르는 시인의 시가 많이 있다.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이 생소하다는건, 내가 그만큼 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아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을 읽으며 나는 시를 읽고, 시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한다. 금새 잊을지라도, 다음에 보았을때는 그래도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은 『꽃사과 꽃이 피었다』라는 시선집을 낸 황인숙 시인이다. 황인숙 시인은 1978년부터 2007년 사이에 쓰고, 시집으로 묶여 나온 시들에서 시들을 골랐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의 글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황인숙 시인의 시를 읽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선집에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보니, 처음이었다. 시인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봄에 분홍색으로 꽃망울 졌다가 하얀색으로 활짝 피는 꽃사과 꽃을 좋아한다. 사과가 익을 가을이면 큰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꽃사과는 상당히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매실 만큼의 크기로 빨갛게 익어가면, 시큼한 단맛도 느낄수 있는게 꽃사과다. 이렇듯 좋아하는 꽃사과 꽃을 제목으로 하는 시선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시인의 30년간의 시작 활동을 갈무리 한 시선집이다.
시선집의 제목으로 쓴 시를 먼저 만나보면,
꽃사과 꽃이 피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눈을 치켜들자 떨어지던 꽃사과 꽃 도로 튀어오른다. 바람도 미미한데 불같이 일어난다. 희디흰 불꽃이다. 꽃사과 꽃, 꽃사과 꽃. (「꽃사과 꽃이 피었다 」중에서)
금방이라도 꽃사과 꽃이 튀어오를 것만 같다.
시인은 길고양이들의 엄마라고 했다.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시인은 고양이들을 아껴서인지 고양이에 관한 시도 많이 썼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고 시작하는 시「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는 시를 읽어보면, 자유로운 고양이, 벌판을 뛰어노는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죽어서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 시인은 시에서 고양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고양이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나는 요즘 아파트 내에서 고양이를 보면 '야옹' 하고 한 마디 해주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나는 시인의 시를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어느 한 시를 읽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언젠가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 비명을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순간 삶을 달리할 지도 모르는데, 이처럼 시인은 비명을 시로 써 놓았다.
그 여자를 반듯하게 편히 뉘어도 좋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 가슴 위에 공책 한 권. 그리고 오른손에 펜을 쥐어 포개어 놓으라.
비바람이 뚫고 햇살이 비워낸 두개골 속을 맑은 벼락이 울 릴 때, 그녀 오른팔 뼈다귀는 늑골 위를 더듬으리. 행복하게 뻐거덕거리며. (비명碑銘)
오랜만에 읽는 시는 무척 좋았다. 시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효과가 있다. 느리게 읽는 시, 맨 뒷 장을 다 읽고, 다시 앞 장으로 와 다시 읽는 시, 시의 의미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 본다. 현재의 삶을 생각한다.
제목이 너무 좋아 다시 읽고 싶은 시를 소개하겠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인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제목도 좋고, 시 내용도 마음속에 들어온다.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지 이 시는 더욱더 마음에 들어온다. 나도 말하고 싶다. '비가 온다구!' 하고 소중한 이에게 말하고 싶다.
가을하면 생각나는게 시인데, 황인숙 시인의 시는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우리의 인생을 알게 해주는 시인의 「가을밤 1」이란 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십 대의 나이, 몇 년 있으면 오십이 되는 나이. 그 나이를 알리는 듯한 시가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시詩,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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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이 햇빛 속에 이제 그는 없다. 햇빛보다 훨씬 강한 것이 그를 데려갔다.
이제 더 이상 더 그를 저버리지 않아도 된다. 내가(우리가) 너무 저버려서 그는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저를 용서하세요. 당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당신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것들, 무례하고 매정한 것들을.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가 무엇을 좋아했을까? 그에게 쥐어드려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나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었다. 마음조차도.그에겐 마음이 있었는데,
그가 빈손을 맥없이 뻗어 죽음은 그의 손을 꼭 쥘 수 있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은 텅 빈 손으로 당신은 그 손을 꼬옥 쥐었다.
안녕히,안녕히,안녕히, 가세요
2009년 세상은 시끄러웠다.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찾아 들었던 '나의침울한 소중한 이여'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가? 나도 모르게 싯속 '그녀'를'그'로 바꿔 버릴 정도였으니.그렇게 읽기를 얼마나 했을까? 왠지 그분에 대한 죄를 용서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후 황인숙 시인은 내게 언제나 벗이 되어 함께 놀았고,함께 슬펐고,함께 고독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해서 이제나 저제나 신간이 나오길 또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더니... '꽃사과꽃이 피었다'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시집은 시선집이란 부제처럼,새로운 시가 아닌,이미 출간된 여러 시집 속에서 발췌된 시들이었다.가수들의 베스트음반 같다고나 할까.. 오롯이 하나의 음반이 나와 찬찬히 읽고 음미하며,감동의 순서를 매김하는 것도 기쁘겠지만,베스트음반은 또 그나름의 매력으로 읽을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안녕히,'가 수록된 시집 『나의침울한 소중한 이여』를 제일 먼저 찾아 본 것 역시,'안녕히,'가 혹 수록되어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당당히(?)실려 있는 '안녕히,'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먼졌다. 여기서 잠깐,어째서 시인은 새로운 음반이 아닌,베스트음반을 세상에 내놓게 된 걸까? 시인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베스트음반도 좋지만,역시 새로운 음반이 더 기다려지게 되는 것은 어쩔수가 없나 보다. 다시 출발선에 선다는 결기를 가지기 위한 마음이란 시인의 말이 또 시처럼 콕 가슴에 와 자리한다. 어느 소설가는 글이 써지지 않을때면 두서없이 시집을 읽는다 했는데,시인은 자신의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이런 자신의 돌아보기 과정을 갖는구나 하는 마음... 시인의 이런 사무치는 고독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탄생된 시들이기에,읽는 독자에게는 감동과 위로와 웃음이 고스란히 전해질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시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종종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한다.그러나 시란 것이 다른 문학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지만 어디 쉬운가? 그런데 '꽃사과꽃이 피었다'는 당당히 추천해줄 수 있겠다.각각의 음반으로도 흡족한 시들이었는데,그 중에 베스트음반이라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니,사람들에게 조금은 쉽게 다가갈수 있을 것 같다.시인은 비장한 결의의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시모음집을 독자들은 얌채처럼 그렇게 낼름 받아 먹는다. 그렇지만 얌채같은 마음 한켠에는 고마움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도 알아주지 않을까?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내게는 시들이 그렇다.아무 페이지나 마음가는 대로 펼쳐 볼 수 있다는 가장 큰 매력 탓도 있지만,누군가에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들이 있을때마다 나는 시집을 꺼내어 본다. 거짓말처럼 그 속에서 위안과 격려를 얻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때 느낌은,두 번째 찾아 읽을 때와는 또 다른...그래서 내게 시는 이상한 나라 폴의 딱부리 같은 그런 존재로 자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임...사실 시집의 가장 큰 장점은..수시로 찾게 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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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이 자신의 시집들 가운데에서 시를 골라 새롭게 묶어낸 시집이다.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너스와 같은 선물이 될 테다.(실제로도 내게는 선물이었기도 하고.)
취향이라는 게 있다. 이 취향은 사람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전에는 마음에 들었는데 다시 보니 마음에 안 들게 되고,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도 되고. 시는 다른 글에 비해 짧으므로 거듭 보게 되는 일이 잦다. 그래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시는, 더 큰 기쁨이 된다. 내가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던가, 지나가서 놓쳐버린 기쁨을 아쉬워하며.
무겁지 않은 눈, 무겁게 여기지 않는 삶. 살아 있는 순간에 충실하게, 그러나 더없이 가볍게. 소홀하거나 무책임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무심한 것도 아니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부담 느끼지 않는 시선, 매달리지 않고 이끌어가는 생. 그래서 이 시집은 가볍게 읽힌다.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 때문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신기하다. 이전에 나는 이 시인의 시에서 꽤 듬직한 무게를 느꼈는데. 그게 또 좋았는데.
날씨가 추워진다. 몸은 무거워지더라도 마음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얇디얇은 털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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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50
(최종규 . 2013 -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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