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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꽃사과 꽃이 피었다』길고양이들의 엄마, 그녀의 시선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길고양이들의 엄마, 그녀의 시선집" 내용보기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신문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이 엄선한 좋은 시詩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매일 아침 바쁜 시간에 신문을 훑어 보는데, 나는 바빠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를 꼭 읽고 넘어간다.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은 내가 모르는 시인의 시가 많이 있다.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이 생소하다는건, 내가 그만큼 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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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신문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이 엄선한 좋은 시詩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매일 아침 바쁜 시간에 신문을 훑어 보는데, 나는 바빠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를 꼭 읽고 넘어간다.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은 내가 모르는 시인의 시가 많이 있다. 시의 제목과 시인의 이름이 생소하다는건, 내가 그만큼 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아도, 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을 읽으며 나는 시를 읽고, 시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한다. 금새 잊을지라도, 다음에 보았을때는 그래도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시인은 『꽃사과 꽃이 피었다』라는 시선집을 낸 황인숙 시인이다. 황인숙 시인은 1978년부터 2007년 사이에 쓰고, 시집으로 묶여 나온 시들에서 시들을 골랐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시인의 글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황인숙 시인의 시를 읽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선집에서 시인의 시들을 만나보니, 처음이었다. 시인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봄에 분홍색으로 꽃망울 졌다가 하얀색으로 활짝 피는 꽃사과 꽃을 좋아한다.

사과가 익을 가을이면 큰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꽃사과는 상당히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매실 만큼의 크기로 빨갛게 익어가면, 시큼한 단맛도 느낄수 있는게 꽃사과다. 이렇듯 좋아하는 꽃사과 꽃을 제목으로 하는 시선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시인의 30년간의 시작 활동을 갈무리 한 시선집이다.

 

시선집의 제목으로 쓴 시를 먼저 만나보면,

 

꽃사과 꽃이 피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눈을 치켜들자

떨어지던 꽃사과 꽃

도로 튀어오른다.

바람도 미미한데

불같이 일어난다.

희디흰 불꽃이다.

꽃사과 꽃, 꽃사과 꽃.   (「꽃사과 꽃이 피었다 」중에서)

 

금방이라도 꽃사과 꽃이 튀어오를 것만 같다.

 

시인은 길고양이들의 엄마라고 했다.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시인은 고양이들을 아껴서인지 고양이에 관한 시도 많이 썼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고 시작하는 시「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는 시를 읽어보면, 자유로운 고양이, 벌판을 뛰어노는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죽어서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 시인은 시에서 고양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고양이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나는 요즘 아파트 내에서 고양이를 보면 '야옹' 하고 한 마디 해주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나는 시인의 시를 두 번 정도 읽었는데, 어느 한 시를 읽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언젠가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 비명을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순간 삶을 달리할 지도 모르는데, 이처럼 시인은 비명을 시로 써 놓았다. 

 

그 여자를 반듯하게

편히 뉘어도 좋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 가슴 위에 공책 한 권.

그리고 오른손에 펜을 쥐어

포개어 놓으라.

 

비바람이 뚫고 햇살이 비워낸

두개골 속을

맑은 벼락이 울 릴 때,

그녀 오른팔 뼈다귀는

늑골 위를 더듬으리.

행복하게 뻐거덕거리며.   (비명碑銘) 

 

오랜만에 읽는 시는 무척 좋았다. 

시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효과가 있다. 느리게 읽는 시, 맨 뒷 장을 다 읽고, 다시 앞 장으로 와 다시 읽는 시, 시의 의미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 본다. 현재의 삶을 생각한다. 

 

제목이 너무 좋아 다시 읽고 싶은 시를 소개하겠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인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제목도 좋고, 시 내용도 마음속에 들어온다.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지 이 시는 더욱더 마음에 들어온다. 나도 말하고 싶다. '비가 온다구!' 하고 소중한 이에게 말하고 싶다.  

 

 

가을하면 생각나는게 시인데, 황인숙 시인의 시는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우리의 인생을 알게 해주는 시인의 「가을밤 1」이란 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십 대의 나이, 몇 년 있으면 오십이 되는 나이. 그 나이를 알리는 듯한 시가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시詩, 정말 좋구나!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8.16. 신고 공감 8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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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과꽃이 피었다
"꽃사과꽃이 피었다" 내용보기
안녕히,   이 햇빛 속에 이제 그는 없다. 햇빛보다 훨씬 강한 것이 그를 데려갔다.   이제 더 이상 더 그를 저버리지 않아도 된다. 내가(우리가) 너무 저버려서 그는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저를 용서하세요. 당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당신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것들, 무례하고 매정한 것들을.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가 무엇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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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이 햇빛 속에 이제

그는 없다.

햇빛보다 훨씬 강한 것이

그를 데려갔다.

 

이제 더 이상 더 그를 저버리지 않아도 된다.

내가(우리가) 너무 저버려서

그는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저를 용서하세요.

당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당신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것들,

무례하고 매정한 것들을.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가 무엇을 좋아했을까?

그에게 쥐어드려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나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었다.

마음조차도.그에겐 마음이 있었는데,

 

그가 빈손을 맥없이 뻗어

죽음은 그의 손을 꼭 쥘 수 있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은 텅 빈 손으로

당신은 그 손을 꼬옥 쥐었다.

 

안녕히,안녕히,안녕히,

가세요

 

2009년 세상은 시끄러웠다.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찾아 들었던 '나의침울한 소중한 이여'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가? 나도 모르게 싯속 '그녀'를'그'로 바꿔 버릴 정도였으니.그렇게 읽기를 얼마나 했을까? 왠지 그분에 대한 죄를 용서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후 황인숙 시인은 내게 언제나 벗이 되어 함께 놀았고,함께 슬펐고,함께 고독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해서 이제나 저제나 신간이 나오길  또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더니...

'꽃사과꽃이 피었다'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시집은 시선집이란 부제처럼,새로운 시가 아닌,이미 출간된 여러 시집 속에서 발췌된 시들이었다.가수들의 베스트음반 같다고나 할까..

오롯이 하나의 음반이 나와 찬찬히 읽고 음미하며,감동의 순서를 매김하는 것도 기쁘겠지만,베스트음반은 또 그나름의 매력으로 읽을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안녕히,'가 수록된 시집 『나의침울한 소중한 이여』를 제일 먼저 찾아 본 것 역시,'안녕히,'가 혹 수록되어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당당히(?)실려 있는 '안녕히,'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먼졌다.

여기서 잠깐,어째서 시인은 새로운 음반이 아닌,베스트음반을 세상에 내놓게 된 걸까? 시인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베스트음반도 좋지만,역시 새로운 음반이 더 기다려지게 되는 것은 어쩔수가 없나 보다.

다시 출발선에 선다는 결기를 가지기 위한 마음이란 시인의 말이 또 시처럼 콕 가슴에 와 자리한다.

어느 소설가는 글이 써지지 않을때면 두서없이 시집을 읽는다 했는데,시인은 자신의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이런 자신의 돌아보기 과정을 갖는구나 하는 마음...

시인의 이런 사무치는 고독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탄생된 시들이기에,읽는 독자에게는 감동과 위로와 웃음이 고스란히 전해질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시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종종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한다.그러나 시란 것이 다른 문학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지만 어디 쉬운가? 그런데 '꽃사과꽃이 피었다'는 당당히 추천해줄 수 있겠다.각각의 음반으로도 흡족한 시들이었는데,그 중에 베스트음반이라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니,사람들에게 조금은 쉽게 다가갈수 있을 것 같다.시인은 비장한 결의의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시모음집을 독자들은 얌채처럼 그렇게 낼름 받아 먹는다. 그렇지만 얌채같은 마음 한켠에는 고마움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도 알아주지 않을까?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내게는 시들이 그렇다.아무 페이지나 마음가는 대로 펼쳐 볼 수 있다는 가장 큰 매력 탓도 있지만,누군가에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들이 있을때마다 나는 시집을 꺼내어 본다.

거짓말처럼 그 속에서 위안과 격려를 얻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때 느낌은,두 번째 찾아 읽을 때와는 또 다른...그래서 내게 시는 이상한 나라 폴의 딱부리 같은 그런 존재로 자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임...사실 시집의 가장 큰 장점은..수시로 찾게 된다는 것~^^

w*******i 2013.10.18.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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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거나 가볍거나--- [시집-꽃사과 꽃이 피었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시집-꽃사과 꽃이 피었다]" 내용보기
황인숙 시인이 자신의 시집들 가운데에서 시를 골라 새롭게 묶어낸 시집이다.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너스와 같은 선물이 될 테다.(실제로도 내게는 선물이었기도 하고.)      취향이라는 게 있다. 이 취향은 사람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전에는 마음에 들었는데 다시 보니 마음에 안 들게 되고, 전에는 안 보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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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이 자신의 시집들 가운데에서 시를 골라 새롭게 묶어낸 시집이다. 이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보너스와 같은 선물이 될 테다.(실제로도 내게는 선물이었기도 하고.)   

 

취향이라는 게 있다. 이 취향은 사람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전에는 마음에 들었는데 다시 보니 마음에 안 들게 되고,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도 되고. 시는 다른 글에 비해 짧으므로 거듭 보게 되는 일이 잦다. 그래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시는, 더 큰 기쁨이 된다. 내가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던가, 지나가서 놓쳐버린 기쁨을 아쉬워하며.  

 

무겁지 않은 눈, 무겁게 여기지 않는 삶. 살아 있는 순간에 충실하게, 그러나 더없이 가볍게. 소홀하거나 무책임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무심한 것도 아니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부담 느끼지 않는 시선, 매달리지 않고 이끌어가는 생. 그래서 이 시집은 가볍게 읽힌다.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 때문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신기하다. 이전에 나는 이 시인의 시에서 꽤 듬직한 무게를 느꼈는데. 그게 또 좋았는데.

 

날씨가 추워진다. 몸은 무거워지더라도 마음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양이의 얇디얇은 털과 같이.

 

15

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

정의를 내려야 하고

밤을 맞아야 하고

새벽을 기다려야 하고.

 

21

햇살이 바람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을 따라

바다 끝을 바라보았다.

 

41

시절은 한꺼번에 가버리지 않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물, 한 사물

어떤 부분은 조금 일찍

어떤 부분은 조금 늦게

 

51

내 청춘, 늘 움츠려

아무것도 피우지 못했다, 아무것도.

 

86

우리 다시 만날 때

너는 나를 기억할까?

내가 너를 기억할까?

 

113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124

소슬바람에 가팔라진 가슴

베어 물 듯 귀뚜라미 울고

홀로, 슬며시, 어둡게

온 생이 어질어질 기울어지는

벼랑 같은

밤.

꽃사과 꽃이 피었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3.11.1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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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빗소리를 (꽃사과 꽃이 피었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꽃사과 꽃이 피었다)" 내용보기
시를 노래하는 시 50   비가 오면 빗소리를― 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글 문학세계사 펴냄 2013.7.29./1만 원     아침에 평상에 엎드려 편지 보낼 봉투에 주소를 한창 적는데, 큰아이가 마당 한켠 커다란 고무통 물을 갈아 달라 말합니다. 날이 더워 물놀이를 하고 싶답니다. 한창 바삐 봉투에 주소를 적다가, 주소 적기를 그만둡니다. 밀솔로 고무통 바닥을 닦고, 물을 새로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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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50

 


비가 오면 빗소리를
― 꽃사과 꽃이 피었다
 황인숙 글
 문학세계사 펴냄
 2013.7.29./1만 원

 


  아침에 평상에 엎드려 편지 보낼 봉투에 주소를 한창 적는데, 큰아이가 마당 한켠 커다란 고무통 물을 갈아 달라 말합니다. 날이 더워 물놀이를 하고 싶답니다. 한창 바삐 봉투에 주소를 적다가, 주소 적기를 그만둡니다. 밀솔로 고무통 바닥을 닦고, 물을 새로 받아 작은 솔을 오른손에 쥐고는 바닥을 샅샅이 밀고 닦습니다.


  작은아이는 고무통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큰아이만 혼자 고무통 물놀이를 좋아합니다. 큰아이가 물놀이를 하는 동안 큰아이가 벗은 땀에 젖은 치마를 빨래합니다.


  한참 물놀이를 즐긴 큰아이는 고무통 물놀이를 하며 적신 옷을 조금 짜서 아버지한테 내밉니다. 땀과 물이 어우러진 다른 치마와 속옷을 새롭게 빨래합니다. 이동안 작은아이는 바지에 똥을 질펀하게 눕니다. 작은아이 밑을 씻기고 똥을 치운 뒤 새 바지를 입힙니다.


.. 매일매일 내 창엔 고운 햇님이 / 하나씩 뜨고 지죠 ..  (잠자는 숲)


  한낮에 비가 한 줄기 듣습니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마당과 지붕과 들을 적시더니, 이윽고 한쪽은 해가 나고 한쪽은 비가 내립니다. 머잖아 비는 말끔히 갭니다. 마당과 지붕과 들을 후끈후끈 내리쬡니다. 비오는 동안 살짝 시원해지는가 싶던 날은 비가 멎으면서 한결 후끈후끈 달아오릅니다. 그래도 풀과 나무는 한 차례 싱그러운 빗물 마셨을 테지요.


.. 그 모르게 살짝 외출을 다녀올 때 / 빈 방안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 그의 등을 보는 것이 / 즐겁다 ..  (로망스)


  비가 그친 뒤, 마을 큰길에서 공사판 벌어집니다. 마을사람 모두들 멧골짝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집집마다 한 줄기씩 이어 오래도록 잘 쓰는데, 생뚱맞다 싶은 상수도 공사를 벌입니다. 군 행정과 도 행정은 이 깊은 시골마을 집집마다 수도물 이어야 문화요 복지인 듯 내세웁니다. 마을마다 일흔 훌쩍 넘은 늙은 할매와 할배뿐인데, 이 마을에 새로 깃들려 하는 젊은 사람이나 식구 없는데, 온 마을에 상수도 공사를 해서 수도물 잇는들 누가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설마, 논이나 밭에 대는 물을 수도물로 쓰라는 뜻은 아닐 테지요. 시골물 마시며 시골사람 몸과 마음 오래오래 시원하며 튼튼히 이었는데, 저기 전라도 어디메쯤 주암댐 세우며 사라진 시골마을 둥둥 뜨는 댐물을 예까지 이어서 마시라고 다그치려는 셈인지요.


  아이들 낮잠을 재워야 하는데 시끄럽게 길바닥 깨는 쿵쿵 소리 집 안팎을 울립니다. 저 상수도 공사는 오늘 하루 하는 공사가 아니라 지난해부터 하는 공사입니다. 길바닥 조금 파는가 싶으면서 이도저도 못 가게 길을 막으며 이레쯤 공사하다가 한 달쯤 조용하고, 그러다가 이레쯤 또 시끄럽게 공사하며 온 길 다 막으며 수선스럽다가 다시 두 달쯤 조용하고, 이러더니 또 공사를 하다가 쉬고, 또 공사를 하다가 쉬고.


..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 벌판을 뒤흔드는 /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 가슴 위까지 치솟아오르네 / 스커트자락의 상쾌! ..  (바람 부는 날이면)


  마을 이웃들은 논이며 밭이며 농약을 듬뿍듬뿍 뿌립니다. 시골이지만 논이나 밭에 잠자리가 얼마 없습니다. 잠자리가 얼마 없으니 파리와 모기가 들끓고, 파리와 모기를 잡는다며 마을 이웃들은 무척 고약한 모기약을 잔뜩잔뜩 뿌립니다.


  우리 집은 농약도 모기약도 뿌리지 않습니다. 우리 집 둘레로 파리나 모기가 모이기도 하면서, 거미와 잠자리도 모입니다. 모기가 제법 나오는 풀밭 언저리에 마을 잠자리 스물 서른 남짓 날아다닙니다. 그래, 너희 먹이가 우리 집에 많은갑다. 우리 집에서 모기 실컷 잡아먹으렴. 우리 집 풀밭에는 풀개구리도 여럿 있어 모기를 신나게 잡아먹지만, 풀개구리가 다 잡아먹지 못할 만큼 많으니, 너희가 우리 집에서 살면 아주 즐거우면서 근심 하나도 없으리라.


.. 자정 지나 남산, / 숲의 냄새, 냄새의 숲에 / 깊이 빠졌다 ..  (자정 지나 남산)


  잠자리는 모기를 마음껏 잡아먹다가 가끔 거미줄에 걸립니다. 거미는 통통하게 살이 오릅니다. 처음에는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더니, 이제 첫째손가락 마디보다 굵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마루문과 빨래줄 사이로 커다랗게 거미줄을 칩니다.


  얘들아, 너희도 집을 지으며 살아야 할 테지만, 여기에 치면 우리 식구 못 드나들잖니. 너희는 너희대로 살 만한 데에 집을 짓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 만한 자리는 내어주렴.


  마당이나 뒷밭이나 옆땅 어디에도 농약을 안 치는 우리 집이라, 고작 백예순 평 즈음 되는 조그마한 집과 집터이지만,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메뚜기도 방울벌레도 골고루 깃듭니다. 저녁에 아이들 재울 즈음 풀벌레 노래 가짓수를 헤아리면 열 몇 가지쯤 되는 듯싶습니다.


.. 아버지, 그 집에 / 문이 두 개 있었다면 / 얼마나 좋았을까요? / 당신의 문은 여닫힐 때 / 너무도 완강한 소리를 냈어요. / 섣불리 바스락거릴 수 있는 건 / 나무들뿐인 것 같았어요. / 방안에 누워 나는 / 참 많은 문을 냈었지요 ..  (두 개의 문)


  큰아이 태어난 도시에서는 살뜰한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작은아이 낳은 멧골자락에서야 비로소 알뜰한 도랑물 노랫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옆지기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도시를 떠날 생각 안 했을는지 모릅니다. 옆지기도 나도 몸이 그리 안 아픈 사람이었으면, 서로서로 시골에서 새 삶자리 찾아 새 하루 일구는 즐거움 찾아나서는 길로 안 접어들었을는지 모릅니다.


  도시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냥저냥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빛 찾으려는 사람도 많으며, 슬기롭거나 빼어난 생각으로 훌륭한 일 이끄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기자기한 가게 많고, 재미나며 반가운 이웃 많다 할 도시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거의 사라지는 두레모임이 있는 곳 있고, 도시 곳곳에는 생협 모임이 또아리를 틉니다.


  시골에는 이제 두레가 없다 할 테고, 시골에서 생협 모임 꾸리려는 사람도 드뭅니다. 워낙 사람 숫자가 적으니 두레도 생협도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얻는다 하지만, 시골사람 흙일은 농약과 비닐과 항생제와 쓰레기를 해마다 엄청나게 쏟아내는 돈벌기로 기울어집니다. 흙을 북돋우면서 밥을 얻으려는 흐름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합니다. 아직도 시골마을에는 독재정권 새마을운동 깃발이 펄럭입니다.


.. 땅바닥이 뛴다, 나무가 뛴다, / 햇빛이 뛴다, 버스가 뛴다, 바람이 뛴다. / 창문이 뛴다, 비둘기가 뛴다. / 머리가 뛴다. // 잎 진 나뭇가지 사이 / 하늘의 환한 / 맨몸이 뛴다. / 허파가 뛴다 ..  (조깅)


  자동차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는 자동차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 북적거리는 데에서는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집안으로 울립니다. 가게가 많은 데에서는 가게마다 틀어 놓는 기계 소리가 퍼지고, 공장 둘레에서는 공장 움직이는 소리가 우렁차지요.


  나무로 숲을 이룬 둘레에 보금자리 있으면, 숲에서 숲노래와 숲내음과 숲빛을 가만히 나누어 줍니다. 숲에 깃드는 여러 새들과 짐승들과 벌레들이 얼크러지며 이루는 무늬와 소리가 나란히 흘러나옵니다.


  나무가 자라고 풀밭이 있어야 나비가 깨어납니다. 나뭇잎이 푸르고 풀잎이 싱그러울 때에 애벌레 즐겁게 먹을 풀잎 있을 테며, 나비로 깨어날 때에 먹을 꽃가루와 꿀이 나오겠지요.


  사람들이 새롭게 맛보려고 먹는 꿀이 아니에요. 곰도 먹고 벌과 나비와 개미도 함께 먹는 꿀을 사람도 조금 나누어 먹을 뿐입니다. 사람들만 베어서 쓰는 나무가 아니에요. 집을 짓거나 옷장이나 책꽂이를 짜거나 책을 만들거나 종이를 얻거나 연필이나 붓을 만들거나 이것저것 하느라 베어서 사람들만 쓸 나무가 아니라, 새도 보금자리를 얻고 짐승들도 쉴 터를 누리며, 온갖 목숨들이 서로서로 어우러질 숲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 요번 추위만 끝나면 / 창문을 떼어놓고 살 테다 ..  (추운 봄날)


  황인숙 님 시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문학세계사,2013)를 읽습니다. ‘사과꽃’이나 ‘능금꽃’ 아닌 ‘꽃사과 꽃’이로군요. 꽃을 피우는 꽃사과는 어떤 씨앗에서 비롯한 나무일까요. 스스로 씨앗을 떨구어 숲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나무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따로 뭔가를 건드려 꽃만 소담스레 누리려 하는 나무일까요.


  꽃사과는 이 나라에 어느 만큼 자랄까요. 이 나라 도시나 시골에는 꽃사과가 얼마나 싱그러이 뿌리를 내리면서 자랄까요. 꽃사과에서 꽃이 필 무렵 마음 깊이 하얀 웃음을 터뜨리면서 맑은 목청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웃은 얼마나 있을까요.


.. 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 나무는 울창해진다 ..  (소풍)


  비가 오니 빗소리를 듣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비와 나는 한몸이 됩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니 개구리노래를 듣습니다. 개구리노래를 들으며 개구리와 나는 한몸이 됩니다. 멧새가 지저귈 때에는 멧새 이야기를 들으면서 멧새와 내가 한몸이 됩니다. 낫을 들어 풀을 베든, 어른 키만큼 자란 풀숲을 헤치며 거닐든, 풀과 마주하노라면 풀과 나는 한몸이 돼요.


  자전거를 몰면 자전거와 한몸이 됩니다. 자가용을 몰면 자가용과 한몸이 됩니다. 버스를 탈 적에는 버스와 한몸이 될 테지요. 도시에서는 도시와 내가 한몸이 되고, 시골에서는 시골과 내가 한몸이 됩니다.


  바다에 서 보셔요. 바다와 내가 한몸이 돼요. 숲에 들어가 보셔요. 숲과 내가 한몸 되지요. 농약을 치려 하면 농약과 내가 한몸이 되고, 밥을 지으려 하면 밥과 내가 한몸이 돼요.


..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 비! ..  (말의 힘)


  스스로 되고 싶은 대로 되는 삶입니다. 즐거움을 이끌어 내는 낱말을 떠올려 보셔요. 참말 즐겁습니다. 걱정을 끌어당기는 낱말을 떠올려 보셔요. 참말 걱정스럽지요. 노래가 태어나는 낱말을 떠올려 보셔요. 저절로 노래가 샘솟아요. 사랑이 피어나는 낱말을 떠올리면, 나는 스스로 사랑이 돼요. 꿈이 자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나는 스스로 꿈이 돼요.


  시인 황인숙 님은 틀림없이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황인숙 님은 스스로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겠노라 하고 읊은데다가 싯말로 똑똑히 아로새겼거든요.


.. 비가 온다. /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 비가 온다구! // 나는 비가 되었어요. /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도시에서 살아야 어떤 일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아야 어떤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스스로 바라는 꿈과 사랑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나아가려는 길을 찾고 돌아보면서 가꿀 노릇입니다.


  도시에서도 무지개와 미리내를 바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시골에서 출판사를 차리거나 찻집을 열면 됩니다. 도시에서라고 별을 못 본다고 여기면 참말 별을 못 봐요. 시골에서라도 카페를 열겠다고 다짐하면 시골카페 알뜰살뜰 꾸릴 수 있습니다.


  생각대로 삶이 흐르고, 삶대로 사랑이 태어납니다. 생각대로 이야기가 감돌며, 이야기대로 꿈이 자라납니다.


  나는 오늘 빗소리를 생각했고, 풀벌레 노랫소리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웃음과 옆지기 사랑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그리고 내가 씩씩하게 걸어갈 길에 어떤 숨결 푸르게 넘실거릴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조용히 곱씹습니다. 4346.8.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집 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3.08.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