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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서모임 추천도서로 읽었다. 올 여름 도서관에서 진행한 인문독서아카데미 시간에 <글쓰기 동서대전>의 저자 강연으로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맛보기한 적 있는 것을 포함하면 연암과의 두 번째 인연이다. 그때는 <열하일기>가 어떤 책인지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이번에 고전평론가인 저자의 명쾌한 해설과 현대철학까지 아우르는 예리한 분석을 통해 비로소 <열하일기>의 진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암의 글을 비롯해 그의 성품과 친구들, 18세기 당시 정조시대의 당파로 인한 갈등과 문체반정, 북벌론으로 나타나는 조선의 소중화주의 등을 저자가 말하는 건 한 시대를 살다 간 천재가 <열하일기>를 통해 뿜어내는 자유로운 사유과 유머, 역설과 통찰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연암의 글과 저자의 해설을 오롯이 소개하기엔 내 역량의 한계를 느끼기에 연암의 글쓰기의 특징과 사유를 중심으로 이 책을 소개해본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열하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이라는 장을 전혀 다른 배치로 바꾸고, 그 안에서 삶과 자유, 말과 행동이 종횡무진 흘러다니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흐름 속에서 글쓰기의 모든 경계들, 여행자와 이국 풍경의 경계, 말과 사물의 경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연암은 실학자 중에서도 '이용후생파'라고 알려져 있다. [도강록]에 실린 다음 글은 연암의 실학사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용利用'이 있은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206쪽) 이러한 연암의 이용후생 사상은 연경에서 본 벽돌과 수레, 가마에 대해 쓴 글과 조선의 온돌제도가 결함투성이임을 여섯 가지 문제로 지적한 글에 잘 나타나있다. 저자의 말대로 벽돌을 직접 찍어내고 집을 지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다지도 세밀하게 알 수 있었는지 놀랍다. 그러고 보니 연암의 글쓰기도 이용후생과 밀접함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연암을 '호기심의 제왕'이라 한다. 그의 시선에 걸리면 무사히 넘어가지 못하는 탓이다. 그는 "특별한 의미가 있건 없건 신기하고 새로운 건 무조건 기록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였다. 연암에게 장터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고 [관제묘기]는 장터에서 광대패를 만난 경험을 적은 것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요술이 펼쳐지는 [환희기]는 한마디로 '판타지아'라 한다.
연암은 일찍이 과거시험 준비를 앞두고 우울증을 심하게 겪은 후 유머를 좇아다니며 치료했다. 그래서인지 유머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열하일기>다. 그의 유머는 특히 <호질>에서 돋보인다 한다. 저자는 "유머는 <열하일기>라는 '고원'을 관류하는 '기저음'이라고 표현하며 유머의 힘을 다음처럼 설명한다. 다른 한편, 유머는 익숙한 사유의 장을 비틀어버리거나 아니면 슬쩍 배치를 변환하는 담론적 전략이기도 하다. 연암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와 역설, 긴장과 돌출은 모두 '유머러스한' 멜로디 속에서 산포된다. 사람들은 이 유머에 현혹되어 혹은 분노하고, 혹은 깔깔거리느라고 자신들이 이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필드'에 들어갔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238~239쪽)
시점의 변환이야랄로 연암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다. 말하자면, 타자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봄으로써 익숙한 것들을 돌연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285쪽) '예의에 살고 예의에 죽는다' 할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 조선 선비들의 복장이 사실은 중국의 중옷에서 유래했다는 역설'을 연암은 옥전의 어느 상점에 들어가 유학자들인 자신들을 가리켜 중이라고 하는 중국인들을 접하는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그는 <막북행정록>에서 조선 사대부의 옷이 신라의 옛제도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불교를 숭상해 중국의 중옷을 본떠 입은 데서 유래했음을 언급하며 입으로는 공자, 맹자, 주자를 읊조리며 정작 '패션'은 천 년 전 불교 스타일을 고수하는 조선 사람들의 표리부동을 꼬집고 있다.
초월적인 중심을 전복하고 현실의 변화무쌍한 표면을 주시할 때 진리 혹은 선악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 변화하는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때에 맞게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시켜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편이 바로 '사이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318쪽) 길을 묻고 답하는 <도강록>의 글을 통해 연암이 말하는 '사이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자네, 길을 아는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며 곧 물이란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 (325-326쪽)
삶의 무상성, 이름의 허망함에 대해 연암만큼 깊이 체득한 인물도 드물다. 권력의 포획장치를 계속 무력화시키는 한편, 끊임없이 새로운 경계를 펼치는 삶과 사유의 궤적들,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과 소통하는 강렬도는 '무상한 연기緣起의 장' 속에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열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361쪽) 일생 동안 하나의 고정점을 갖지 않은 채 유목처럼 살았던 연암은 이름을 무상한 것이라 하며 이름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 했다 한다. '명심冥心'은 그의 탈주체화의 극한이라 한다. <일야구도하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글을 통해 구도자로서의 연암의 마음 세계를 들여다본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거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361-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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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를 만난 건 순전히 고미숙 선생 때문이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여건이 되면 남산에 있는 인문 의역한 연구소 감이당에서 고미숙 선생이 직접 강의하는 강좌를 주로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고미숙 선생이 작가이겠지만,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나에게는 고미숙 작가라는 호칭보다는 선생이란 호칭이 예의에 맞는 듯하다.- 고미숙 선생의 강의 중에 예제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연암의 『열하일기』였다. 열하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미숙 선생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열하일기 말고도 주로 언급된 고전이 ‘그리스인 조르바’, ‘돈키호테’, ‘서유기’ 등이다. 이 고전들이 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안주하지 않는 삶. 그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이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고, 새로운 것과의 마주침이 아니던가. 고정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것. 길 위의 여정이야말로 최고의 인문학 공부가 아니던가. 위에 열거된 고전들을 만나고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삶을 바꾼 책을 든다면 난 〈서유기〉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어린 시절 만화영화의 소재로만 생각했던 손오공의 이야기인 〈서유기〉가 나의 사유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꿔 놓았으니까. 우리가 전해들은 이야기로만 고전을 판단하는 건 마치 코끼리의 다리만을 만져보고, 코끼리를 기둥이라고 생각하는 봉사와 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전을 원전을 통해 만나보면 그 속에 펼쳐진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길 위의 사유에 해당하는 고전 중 가장 늦게 만난 책이 열하일기다. 우린 서양의 고전은 쉽게 접하면서 동양의 고전, 그중에서도 우리의 고전은 멀리한다. 왜일까? 뚜렷한 이유는 모른다. 막연히 한자문화권의 고전에 대한 두려움, 즉 문자에 의한 두려움도 아니다. 사서삼경은 쉽게 접하면서도 우리네 고전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 이 책도 아직 완역본은 만나보지 못했다-를 멀리하는 걸 보면 말이다. 추측하건데 아직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의식속에 자리한 식민사관의 영향 때문일까? 우리 것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중히 여기고, 우리 것은 하찮게 여기는. 고전을 만날 때면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전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고민해결을 위해 먼저 해당 고전에 대한 해설서를 참고한다. 헌데 이 또한 단점을 가진다. 물론 고전에 대한 사전지식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해설서를 쓴 작가의 시선에 갇혀 편협된 시각으로 고전을 대하는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고민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되는 고전을 만날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서 헤맨다. 원전(원전이나 완역본을 통칭함)을 먼저 만날까? 아니면 난해한 고전에 대한 해설서를 먼저 만날까? 원전을 먼저 만나면 그 난해함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렵고, 해설서를 먼저 만나면 그 해설서가 가진 사고의 영역에 갇혀서 고전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까 두렵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고전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해설서를 읽고, 다시 고전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이 또한 쉬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단 완역본을 읽기 시작했다. 완역본은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잘나갔다. 일기식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대한 기록은 흥미를 돋웠다. 헌데 2권의 초반부를 넘어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심도있게 논의한 대목에 이르면 조금씩 난관에 부딪친다. 특히나 음악에 대해 태학관에서 만난 왕민호와 윤가전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인 망양록(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이야기)에 이르면 난해함이 극애 달한다. 고전음악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으니 악률과 그 원리에 대한 글과 음악의 문화적 의의는 어렵기만 하다. 헌데 더 나아가 음악을 통해 고금의 사회문제와 왕조의 흥망성쇠를 논하는 부분을 만나면, 눈은 활자를 따라가고 있지만 정신은 이미 길 잃은 어린아이가 되어 헛된 곳을 정처없이 헤맨다. 이 정도에 이르면 연암의 다방면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대한 경외감은 극에 달하고, 연암은 우리와 같은 땅을 살아간 선조가 아니라, 먼먼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사는 외계인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난해함과 해박함에 일단 질리고 나면 열하일기에 대한 심오함을 깨닫겠다는 처음의 의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어떻게 해서든 완주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때부터는 정작 의미를 되새겨야 할 심오한 부분은 지레 겁에 질려 설렁설렁 그저 책장을 넘기는 데만 주력하게 된다. 헌데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만나보니 정작 흥미있고, 재미있는 부분은 열하일기 후반부에 다 있지 않은가. 넘겨버린 책장과 텍스트 속에 수없이 많은 보물들이 감춰져 있었지만 난 지나치고 말았다. 보고도 찾지 못했으니 이 또한 눈뜬 봉사이다. 이건 책을 본 것도, 읽은 것도 아니다. 그저 구경했을 뿐이다. 이 책『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열하일기』에 대한 고미숙 선생의 끝없는 찬양가이며 보물 발굴기이다. 좋아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고미숙의 글은 연암의 글과 닮았다. 고미숙의 글과 어휘 속에 차고 넘치는 유쾌함과 끝 모를 끼와 해학이 어디서 왔는가 했더니 그 원천은 바로 『열하일기』였다. 하기야 우리네 고전 어디를 들쳐 봐도 그 속에는 삶의 유쾌함과 역설이 차고 넘친다. 그러니 고전문학을 전공한 작가에게 고전이 가진 특유의 해학이 전이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미숙은 “열하일기는 그동안 내가 학습한 표상체계로는 도저히 해독 불가능한, 일종의 ‘책기계’였다. 거기에 담긴 것은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유들이 충돌하는 장쾌한 편력이자 대장정이었다. 파노라마적 관광도 아니고,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도 아닌, 마주치는 것마다 강력한 악센트를 부여 할 수 있는 시공간적 편력, 그래서 그것은 더 이상 여행이라는 이름으로도, 편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릴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오직 ‘유목’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릴 수 있는 것이었다.(23쪽)”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니 열하일기를 만나고 고미숙 선생이 푹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연암의 여정을 답습하기 위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고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열하일기는 얽매임이 없다. 얽매임이 없으니 모든 것이 자유롭다. 자유로우니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한순간의 머무름은 떠남을 위한 전초전이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엮어나간다. 그걸 여행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몰아붙이기에는 뭔가 어색하다. 움직이면서 머무르고, 떠돌아다니면서 둘러붙는 것, 그것이 『열하일기』다. 고미숙 선생의 말에 의하면 “지금 여기와 온몸으로 교감하지만 결코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연암의 『열하일기』이다. 난 열하일기를 읽었으나 열하일기를 보지 못했다. 아직도 분량에 대한 유혹과 속도의 미학에 빠져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텍스트를 그저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그걸 어찌 읽었다고,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열하일기』를 다시 만나봐야겠다. 고미숙은 말한다. 열하일기는 읽을 때마다 계속 다른 장을 펼쳐 보인다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정표가 그려진다고. 삶과 지식의 경계가 사라져,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노마드의 경지에 이른다고. 갈 길이 너무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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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대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만나면 "오랜만에 뵙습니다" 라며 초면이 아닌 것처럼 인사를 잘할 수 있을까. 연암 박지원의 생의 한 부분과 압록강을 건너고 요동을 거쳐 연경에서 열하 그리고 열하에서 연경까지 그가 남긴 [열하일기]를 통해 그와 그의 작품을 조금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니 분명 다음에 만난다면 초면이 아닌 게다.
저자 고미숙은 여행기에도 유머가 있어야 한다며 '유머의 천재'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의 웃음을 사방에 전염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아직 읽지 않았냐고 호통을 치는 듯 했다. 나도 왜 이제서야 이 재미있는 책을 알게 되었는지(학창시절 무수히 많이 들어보고 시험의 답으로 대면했었지만) 안타까울 정도. [열하일기]가 얼마만큼의 유머를 담고 있든 그 어려운 말들에 유머 코드를 적절히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모두가 웃는 가운데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설명이라도 해주면 뒤늦게야 "아!하!" 하며 무릎을 치겠지. 한 번이면 괜찮으련만 이것이 매번 이리 된다면야 나에게 [열하일기]는 유머나 해학적이나 도통 알아차릴 수가 없어 분명 지루한 책이 될 것이다. 저자 고미숙이 [열하일기]의 내용을 써 내려가며 연암 박지원이 왜 이렇게 글을 썼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언급하는 말들에 연암 박지원의 유쾌함을 오롯이 담기 위해 노력하여 더불어 독자인 내가 연암 박지원의 전하는 뜻을 다 이해할 수 있어 웃어야 할 곳에서 적절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무엇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글인지 어디가 저자 고미숙의 글인지, 다만 현대에 맞게 자세히 설명하니 그 구별이 갈 뿐이다.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강을 건너기 전 이번 길에 아무일 없기를 바라며 하인 장복, 창대를 위해 그리고 말을 위해 빌었다. 여행의 설렘보다 우선은 무사히 다녀올 수 있기를 빌었다. 그 때에는 여행을 떠남에 있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물을 건넌 후 서로 살아 있음에 축하하고 이보다 더 깊은 물을 건너야 함에 놀라는 장면, 대부분의 글들이 이렇게 살아있는 문장으로 시각적으로 눈 앞에 그려진다. [열하일기]는 연경에 도착후 열하로 여행지가 이어지고 바뀌며 계획에 없던 여행이 시작되며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이 만들어진다. 가는 곳곳마다 연암 박지원은 지식을 나누는데 벗을 가리지 않고 몰래 빠져나가기를 밥 먹듯이 하니(빠져나가다가 잡혀서 나가지 못하는 일은 없으니 대단할 밖에) "특별한 의미가 있건 없건 신기하고 새로운 건 무조건 기록"했다는 저자 고미숙의 말대로 무엇이든 알고자 했던 호기심은 그 어떤 이유로도 그를 막지 못했다. 연암 박지원은 여행을 연경에서 끝냈을 수도 있으나 열하에 가는 것을 결정하며 그의 삶도 전혀 새로운 여정으로 들어선다. [열하일기]가 정조의 문체반정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서게 된다.
연암 박지원과 동시대를 살다간 다산 정약용은 연암 박지원을 이야기 할 때 꼭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벗으로 마음을 나누거나 지식을 나누지 않은 두 사람, 저자 고미숙은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 침묵했다"고 말했다. 만나지 않기야 했겠냐만은 서로에 대해 무심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아니 무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문체는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그 마음까지 달라 서로가 가는 길이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자신의 글에 짧게 언급(저자 고미숙에 의하면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열하일기]에 관한 간단한 멘트를 남겼다고 한다)이야 했지만은 그렇게 둘은 안타깝게도 비껴갔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깊이 있게 알 수가 없어 안타까운데 둘은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느라 서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에게 우정이란 '지금, 여기'에서의 생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나'의 경계를 넘어 끊임 없이 다른 것으로 변이되는 능력의 다른 이름으로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이라 하였다.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정철조, 백동수 등 수많은 친우들과 지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던 박지원에게 대화를 나눌 친구, 글을 쓸 수 있는 종이와 먹, 벼루, 붓 거기에 술 한 잔만 있으면 행복했던 그에게도 우울증은 이따금 찾아들고 말년에 친우들이 세상을 많이 떠나며 그의 곁이 쓸쓸했으나 그는 이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유한다. 그는 장터에서 굴러다니는 돌 하나, 시끌벅적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지나다니는 개, 고양이의 모습도 눈여겨 보고 관심을 가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행랑채 하인이 밥 투정하는 자식을 혼내는 것을 보며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는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신분이 낮은 이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누이의 죽음에 이르러, 어린 시절 누이가 시집가던 날을 떠올리며 누이를 추억하고 슬퍼하며 글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치유해 나간다. 이렇듯 그의 많은 문장들은 시각적으로 상상이 더해지는데 이는 다시 선명한 색채를 가지고 타인의 삶까지 선명하게 만든다. 이것이 [열하일기]까지 이어진다.
벽돌, 집, 수레, 의학, 코끼리 등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았다.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앞에 느닷없이 굴러올 땐 뱀을 만난 듯이 조심하라"고 까지 쓴 글을 보건대 삶의 지혜까지 적힌 그의 글들은 도대체 이 여행기에 담기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대체 담지 않은 것이 있기나 할까. 정조의 "문체반정"의 중심에 있었던 연암 박지원의 연암체, 그것이 어떤 문체인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저자 고미숙은 연암체에 대해 "경직된 코드를 거부하고 우주와 생의 약동하는 리듬을 포착한다"고 했는데 이 글을 읽어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현재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문장으로 세상에 통렬한 가르침을 줄 것인가 나처럼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내어 보자면 그가 그랬다.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태어난다면 새글로 문장을 만들 것이다. 그들의 문장은 이미 지난시대의 문장이다"라고 했으니 자신의 문장 또한 이미 지난시대의 문장으로 현대에 맞게 새로운 연암체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읽을면 읽을 수록 연암 박지원을 알 수가 없다. 어떻게 깊이 알면 "나는 너고, 너는 나다"가 될 수 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자신과 닮아진다고 쓴 글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먼 훗날 꿈 속에서나 오롯이 알 수나 있을까. 허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현재 사람들이 담아내는 여행기와 그 세월의 간극만 느낄 수 있을 뿐 별반 다름을 느끼지 못하니 어려운 그의 문체에만 적응된다면 참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힘들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다음에 [열하일기]를 만난다면 나처럼 초면이 아니어서 좀 더 그를 잘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나는 분명 [열하일기] 중 "초란공"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는데 재밌는 이야기라고 "초란공"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니 이야기를 하는 나도 재미가 느껴지지 않고 듣는 이도 웃지를 않으니 뭐가 문제일까. 말하는 것에도 어떤 힘이 필요한가 보다. 이렇듯 연암체 이것은 말하는데도 너무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 쉬운 게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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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 , 뭔지도 모른채 학창시절 구구단처럼 외워버렸던 저자와 책제목... 어쩌면 평생 못 읽고 넘어갈수도 있었을 책을 고미숙작가의 글을 통해서 접했다. 이 책은 인문학자 고미숙작가가 그녀 나름대로의 열하일기를 재해석한 책이다. 사실 열하일기를 언젠간 읽어야지 했었지만,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어려울것만 같던 열하일기를 고미숙작가는 통통튀는 문장들로 읽는 이를 코웃음을 치게 하고, 또 한편으론 연암의 삶에 대해 숙연해지게도 했다. 다 읽고나니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박지원도...그리고 박지원의 팬이 되어 열하일기를 이렇게 멋지게 해석해 낸 고미숙작가도... 박지원...그는 어떤 인물인가? 넘치는 활력과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인물인 연암 박지원은 사상의학으로는 '태양인'에 속하는 체질이다. 화통하고 위선이 없으며 명리를 따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영조13년에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그시대의 누구나 그랬듯이 과거를 통해서 입신양명의 길을 가야했지만, 우울증이 발목을 잡았다. 그의 우울증은 꽤나 심각했고 거식증까지 보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우울증은 어쩌면 사춘기 학생들이 겪어야 했던 평범한 코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반항이었을까? 그런데...그의 우울증 퇴치법이 아주 특이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명의를 찾지 않고 저잣거리의 떠도는 이야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글로 옮긴다. 주로 시정의 풍문,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야담들인 이야기들을 모아서 그 유명한 <방경각외전>을 만들어낸것이다. 이 사실만 봐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는 과거엔 관심이 없었다. 시험을 억지로라도 볼때면 시험지를 제출도 하지 않고 나왔고 제출할때는 고송이나 괴석을 그리고 나왔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당파로 끌어들이고자 했지만, 정국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느낀 연암은 정계로 나아가지 않고 재야의 선비로 스스로 물러난다.
연암그룹 주로 '소수자' '외부자'였던 연암패밀리는 홍대용, 정철조,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가 핵심멤버로 서얼이나 서자출신이었다. 연암의 우정론은 꽤나 깊다. '벗이란, '제2의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하며,(..)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수 있지만 친구는 한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수 없는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P65 그들은 매일밤 모여 한곳에서 풍류,명상을 하고 세상의 이치를 논하면서 모임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취답운종교기>로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
열하일기의 탄생배경 열하로의 여행은 그에겐 행운이었다. 1780년 어디론가 마구마구 떠나고 싶던 그때...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70세 생일축하사절로 중국을 가게 되었는데 그를 동반하게 된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공식적인 수행원이 아닌, 한마디로 그 행렬엔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으므로 좀 더 자유롭게 여행을 할수 있었고, 몸 속에 가득 품고 있던 모험심이 십분 발휘된 여행기를 쓸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황제가 연경에 머물지 않고 열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열하까지 이어진 보너스같은 열하로의 여행기가 추가될수 있었다.
열하일기 속으로 그의 여행은 명승고적을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하고 보이는 것에서 숨겨져 있는 것을 보려했다. 그래서 그는 역관의 눈을 피하고 문지기의 눈을 피해서 혼자 나다니는 잠행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현지의 장사꾼들을 만나고, 중국인 친구를 몰래 만나 술을 마시고 필담을 나누고, '유리창'이라는 도시의 서점과 골동품이 가득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등, 자신이 오롯이 짠 여행기였고, 그 여행기들은 그의 유일한 소지품이었던 붓과 벼루과 종이로 인해서 기록된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가 2300리. 그 긴 여정을 기록한 그의 글은 무척이나 힘들었을텐데도 재기넘치는 유머가 한가득이다. 특히나 불어난 물로 인해서 힘겹게 물을 건너면서 쓴 상황들은 분명 아슬아슬한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그의 글을 통하니 개그가 된다. 제 날짜에 연경에 도착하기 위해서 더위에 쓰러지고 토하고 싸면서 도착한 연경. 하지만 연경엔 황제가 없었다. 황제가 없으니 대충 전할것만 전하고 오려던 일행에게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전갈을 받는다. 다시 열하로.... 그 길은 연경까지의 길보다 더 험난했다. 험준한 산과 물을 수도 없이 지나야 하는 코스였다. 연암은 그 자리에서 갈등한다. 갈까 말까... 그는 공식수행원이 아니었기에 안 가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거기에 열하를 가볼수 있는 기회까지 생긴 것인데 마다할 연암이 아니다. 가는길도 험난했고 일정도 빡빡했다. 나흘밤낮을 쉬지 않고 달리는 난코스였다. 그때 얼마나 졸렸으면 연암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 장차 우리 연암 산중에 돌아가면, 1천하고도 하루를 더 자서 옛 희이선생(한번 잠들면 천일씩 잤다는 도사)보다 하루를 이길것이고, 코고는 소리는 우레같아 천하의 영웅으로 하여금 젓가락을 잃고, 미인으로 하여금 놀라게 할 것이다.그러지 못하면 이 돌과 같으리라' P187 그렇게나 피곤했음에도 연암은 다시 열하에서 눈, 귀, 마음을 모두 다 열어놓고 새로운 세계에 탐닉하고 모두 다 기록한다. 특히나 이 동물의 묘사는 재미있다. ' 몸뚱이는 소같고 꼬리는 나귀같으며, (...) 눈은 초생달같고, 두 어금니는 크기가 두아름은 되고, 길이는 한 발 넘어 되겠으며,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이 자벌레 같고, 코의 부리는 굼벵이 같으며, 코끝은 누에등 같은데 , 물건을 끼우는 것이 족집게 같아서 두루루 말아 입에 집어 넣는다.' P193 그렇다. 난생 처음 본 코끼리를 묘사한 글이다. 연암은 열하에서 처음 마주친 종족이나 티베트인과의 만남으로 인한 충격적인 장면들을 모두 기록한다. 그렇게 그의 여행은 종횡무진 거칠것이 없었다. 인용문에서 알수 있듯이 그의 여행기는 생생하다. 그리고 그 안엔 엄청난 유머와 재치가 숨겨져있다. 진지한 글쓰기와 유쾌한 콩트가 어우러져 있는 연암만의 여행기가 탄생한 것이다.
연암의 유머속으로 고미숙작가는 열하일기를 최고로 여기는 이유를 '유머'에 두었다. 그 시절... 그 만이 쓸수 있었고 표현할수 있었던 '유머'말이다. 폼 잡고 무게잡는 지식인층은 전혀 쓸 생각도 없던 유머넘치는 그의 글은 그 당시엔 정말 획기적이라고 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남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자신도 웃음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 내 성미가 본디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사흘동안 허리가 시었다' P251 '그의 유머는 팽팽한 긴장을 이완시키는 한편, 검열의 장벽을 넘도록 추동한다.' P254 곳곳에 등장하는 시종이었던 장복이와 창대의 이야기도 그렇고 열하일기에서 보여지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유쾌한 한판의 개그다. 얼떨결에 들어간 상가집 해프닝, 몽고와 회자 패거리들을 만나서 터프가이연기를 해야했던 이야기, 아는척하다가 한방 먹은 기상새설 사건등 시트콤 못지 않은 재미들을 그는 여행기에 모두 다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여행기가 특별할수 밖에... 고미숙작가는 말한다. 그의 이런 '유영'이 가능했던건 그 자신이 스스로 너무나 당당했기 때문이라고.. 위선도 편협함도 자의식도 모두 없는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이다. ' 그는 비어있음으로 해서 어떤 이질적인 것과도 접속할 수 있었고, 그 접속을 통해 '홈패인 공간'을 '매끄러운 공간'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종횡무진 뛰어 놀았던 것이다.마치 <모던타임즈>의 채플린처럼' P283
정조의 문체반정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정조가 르네상스를 이룩했던 시절이었다.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킨다. 그당시 명과 청의 문집들이 유행했는데, 이들 문집들을 비롯해서 패관잡기(시중에 떠도는 까끄라기 같은 글로, 소설, 잡다한 에세이류)들을 모두 금지시킨다. 한마디로 사사로운 책은 모두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파장은 패관잡기속에 속할수 밖에 없는 연암의 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연암이 열하를 다녀온후 얼마 안 되어서 열하일기는 벌써 시중에 나돌기 시작했고,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그는 곤란을 겪게 된다. 패관잡기같은 그의 글이 정조의 귀에 어김없이 들어갔고 그는 요주의인물이 되고 그의 글인 연암체는 감시대상이 된다. 그가 그런 글을 쑬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인은 이렇게 전한다. '연암처럼 매서운 기상과 준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만일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세상에 위태로움을 면하기 어려웠을 게야' P249 그에게 있어서 그런 유머가 넘치고 가벼운 글들은 그 자신을 숨기기 위한 정치적인 전술이었고, 그 전술로 인해 탄생한 열하일기는 또 다시 그를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한다. 이레저레 그는 찍힌 몸인것이다. 그는 살아있을때 뿐 아니라 죽은 후 수십년이 지난 19세기 후반까지도 그의 글들은 금기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후에 연암의 글은 탈중세, 민족주의, 근대주의로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말이다. 그가 그렇게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해학이 넘치는 글들을 썼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그가 보여주는 웃음과 재치와 해학은 단지 정치적전술을 위해 가면을 쓴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건 숨길수 없는 그 자신이 가진 내면이고 본성이었다. 그 자신이 그렇게 넓고 호탕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그저 평범하고 재미없는 여행기가 아닌, 때론 미소지으며 때론 포복절도까지 하게 하는 멋진 여행기를 만날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고미숙작가의 눈으로 본 열하일기다. 고미숙작가는 열하일기를 사랑해서 연암이 밟았던 그 길을 다시 밟아 열하로의 여행을 다녀왔고 이 책의 후면에 간단한 여행기를 싣고 있다. 열하일기는 그 번역서가 10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대단한 분량이다.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자신이 없던 내게 이 책은 열하일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벗게 해 주었다. 고미숙님의 쾌활하고 통통튀는 문장은 연암체와 나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둘이 꽤나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그래서 읽는 내내 연암과 즐겁고 유쾌하게 만날수 있었다. 학창시절 딸딸 외웠던 박지원의 열하일기.. 늦었지만 그 내용을 이제라도 알게되고 박지원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만나게 된 즐거운 시간이었다. 박지원, 정말 고미숙작가가 빠질 만한 인물이다. 박지원...그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박지원에 대한 책을 몇권 더 읽어봐야할거 같다. 그리고 고미숙작가를 통한 열하일기가 아닌 박지원의 글 그대로 날것의 느낌으로 다시금 열하일기를 접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경계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연암의 '사이의 은유'를 옮겨본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아니한 구들목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깊지도 얕지도 않은 술잔을 받으면서 , 장주도 호접도 아닌 꿈나라로 노니는 그 재미와는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 P327 어떤 대상이든 다층적으로 사유하려고 노력했고, 무엇이든 이면에 숨겨진 성격을 보려했고, 그것을 인접한 것들과의 관계속에서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연암의 글을 보며 그의 삶을 지탱했던 묵직한 가치관을 느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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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역설로 읽는 열하일기 조선 후기를 온 몸으로 살았던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은 실학자로 문장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는 ‘열하일기’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그 열하일기는 유명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는 않은 현실이다. 열하일기가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부분적인 작품만 번역된 상태로 오랫동안 있었기에 완역된 열하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못했던 점도 있다. 나에게도 열하일기는 그렇게 더디 다가왔다. 보리출판사에서 발간한 열하일기 상, 중, 하 세 권을 손에 넣고 낮과 밤을 벗 삼아 한동안 꾸준히 읽었다. 이미 유명해서 익숙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읽기에 편했지만 그 외, 다른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열하일기를 쉽게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이유에 한 몫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열하일기를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는 ‘웃음과 역설’이다. 실학자, 문장가로 익숙한 박지원에 대한 시각이 의외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웃음과 역설이 박지원을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는 문명이 전환되는 시기였다. 사회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대두되는 사상과 과학문명에 의해 점차 변화를 겪는 시기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 것인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고미숙은 박지원의 삶이 녹아 있는 열하일기를 통해 시대를 맞서왔던 박지원의 중심 키워드를 ‘웃음과 역설’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찾아 분석하고 있다.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적 시각이 아니라 열하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열하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집필을 기획했다는 말이 공감가는 대목이다.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서는 연암, 지배적 코드로부터 스스로 탈주하는 연암, 신분과 나이 고하를 따지지 않고 뜻이 맞으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암, 똥거름과 기왓장에서 ‘문명’을 꿰뚫는 연암과 그러한 연암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열하일기’” 고미숙은 박지원을 “당대의 천재이자 대문호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던 연암 박지원을 웃음과 우정, 노마드의 달인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열하일기 속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 내 고미숙 만의 독특한 언어로 해설해간다. 깊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그의 시각은 묻혀 있는 보석이 보석임을 온 천하에 다시금 드러내 놓는 일이다. 하여. 그의 열하일기에 대한 애정이 박지원이라는 한사람에 멈추는 것이 아닌 조선 후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열하일기를 통해 조선 후기와 우리가 사는 ‘지금-오늘’을 이어주는 가교로도 적극 활용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발간된 것은 2003년이다. 발간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개정증보판을 발간하며 그 사이에 변화된 현실을 보충했다. 특히, 저자 고미숙의 관심은 연암 박지원에서 더욱 확장되어 다산 정약용과 비교 분석으로 이어진고 있다. 이 책에서 보론으로 다루고 있는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저서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에서 상세히 언급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를 핵심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 연암이 걸어간 열하와 저자 고민숙이 걸었던 그 길이 같을 수 없다. 길은 걸어가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누구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길이 보여주는 모습은 달라진다. 박지원이‘열하일기’로 보여주었던 길이 우리가 걸어갈 길에 대한 이정표로 작용할 수 있다면 새롭게 주목받는 박지원과 열하일기는 그 길에 웃음과 해학으로 벗하여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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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은 열하일기를 일컬어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라고 찬양한다. 나는 '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란 책을 통해 고미숙을 만났고 그녀의 마니아가 되었다. 그녀가 쓴 언어 하나하나가 빛나는 유리알처럼 뇌리속을 파고들었고 그녀의 패러독스는 그대로 내게 전염이 되었다.
열하일기를 읽고는 싶었지만 그 방대한 양에 지레 겁을 먹고 있던 차에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게 되었고 이 책은 바로 방대한 열하일기를 읽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열하일기를 읽기 전 워밍업 정도로 읽어도 좋다. 나는 고미숙의 문체를 좋아했고 그녀를 믿었으므로 그녀가 쓴 책이라면 주저없이 드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고전을 어쩌면 그렇게 쉽게 풀어 가는지,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는 책을 덮을수 없는 마약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자신은 천재를 좋아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천재들의 원초적인 '싸늘함'이 체질에 맞지 않다고 감히 공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연암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인간적인 따뜻함과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다. 벼슬을 거부했던 연암은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원초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고 따뜻한 인간이므로 천재임에도 좋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책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단어가 '노마드'라는 것이다. 그녀는 글에서 자신이 감히 학문의 노마드족임을 말한다. 제도권내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녀가 제도권을 이탈하여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자신을 노마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일정부분 자신도 엘리트 대열에 합류하면서 엘리트를 거부하는 속성, 제도권내의 각종 연구공간을 거부하고 '수유+너머'에서 자신의 학문적인 업적을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노마드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방격각외전'을 마이너리그 삶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민옹전의 민옹이 우울증에 걸려 음식을 거부하고 잠을 못자는 연암을 위한 진단은 이렇다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음식을 싫어하니 그렇다면 살림살이가 여유있지 않겠수. 그리고 졸음이 없으시다니 낮밤을 겸해서 나이를 곱절 사시는게 아니우.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나이를 곱절 사신다면 그야말로 수와 부를 함께 누리는게 아니시우' 여기서 고미숙은 연암의 뛰어난 역설과 아이러니에 감탄한다. 병을 삶의 고통이 아니라 삶의 능력 혹은 행운으로 전환시키는. 또한 김신선전의 김신선을 무협지풍으로 말하면 '바람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매 장마다의 제목 또한 고정관념의 허를 찌른다. 제1장, 나는 너고 너는 나다에서는 마이너리그 인생이 총 출동하는 방격각외전과 열하행이 나온다. 제2장 1792년, 대체 무슨일이?-열하일기와 문체반정에서는 문체반정을 야기한 연암체와 고원 혹은 리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제3장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에서는 요동에서 연경을 거쳐 티벳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는 여정이 나오고 제4장 범람하는 유며, 열정의 패러독스에서는 열하일기의 빛나는 부분인 예덕선생전과 패션, 술문화, 기생문화등 각종 인생살이의 기저를 관통하는 잡기에 대해 유감없이 그녀만의 독특한 단어들을 통해 재해석해낸다. 그녀는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개그의 향연'이라는 컨셉으로 잡을 것이라며 연암이 중국에서 펼치는 각종 무용담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다.
5장에서는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편인데 그곳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사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이 도래하기 이전의 문화를 옥시덴탈리즘(occidentlism, 서양에 대한 일련의 표상)이라고 규정하며 담배 등 각종 예를 들어 열하일기를 재해석해 낸다.
이 책은 고미숙이라는 한 여자의 잡다한 철학적인 지식과 자유분방한 사고가 연암이라는 한 시대의 걸출한 노마드족과 조우하여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그녀의 열하일기를 찾아가는 여행기가 나온다. 들뢰즈/가타리를 좋아하고 인용하기를 즐겨하는 그녀는 그 여행을 들뢰즈/가타리식으로 자신과 열하일기의 '기계적 접속'이라고 말한다.
그녀만의 톡톡 튀는 문체는 다산과 연암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문체반정이 이 시대에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디에나 사람들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므로 그녀의 문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의 문체를 통해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고여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썩게 마련이다. 고여 있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탐색하는 그녀는 열하일기를 통해 학위를 받았으며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고전평론가'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고전평론가가 뭐냐고? 내가 새로 만든 직업이다 '라고 고미숙은 세상을 향해 외친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쓴 내용 그대로이지만, 이 책은 열하일기와 고미숙의 유쾌한 고정관념 깨기식 해석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하지 않는 짓이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책만은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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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허생전과 양반전이라는 소설로 더 친숙한 18세기 조선 최고의 지식인 연암 박지원.
그가 청나라 최전성기의 마지막을 이끌었던 건륭제의 70세 생일의 축하 사절단으로 중국 대륙을 밟으며 둘러 본 것을 기행문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열하일기다.
북경에 거주한 청나라 황제들은 날씨가 무더운 여름이면, 북경 근교의 열하라는 곳에 피서산장이라는 별장으로 떠나는데, 때마침 박지원 일행이 북경에 당도했을 무렵 청황제가 열하로 피서를 떠나, 그 곳까지 찾아가게 되는 여정이라 이 기행문의 제목이 열하일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대부분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대놓고 무시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인식인지를 200여년전 조선 최고의 지식인의 글을 통해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연암은 국경을 넘어 중국 동북 지방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차 길의 통일이라던지, 동북지방 중국 농민들의 거름 더미에서 그들의 풍요로움과 발전된 문명에 대한 통찰과 낙후된 조선문명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하고 있다.
오늘날 산업화에서 조금 앞섰다고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위험한 인식인지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