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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산의 『시시포스의 저녁 산책』은 일상의 틈새에서 길어 올린 숨결 같은 산문집이다. 저자는 자신을 “일상의 사슬에 매였다가 잠시 풀려나는 시시포스”에 비유한다. 고대 신화 속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형벌은 그의 글에서 새로운 의미로 변용된다. 그것은 삶을 억압하는 운명이 아니라, 굴레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듬으로 일상을 견디고 새롭게 바라보는 인간의 용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저녁 산책은 그 바위에서 잠시 손을 떼고 세상과 자신을 다시 쓰다듬는 시간이다. 책은 크게 ‘일상의 편린’, ‘길 위의 시시포스’, ‘향수와 객수’의 세 갈래로 구성되며, 각각 다양한 장소와 기억, 감정을 다채롭게 풀어낸다. 문장은 잔잔하고 서정적이지만, 그 속에는 삶을 성찰하는 깊이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순간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 일상과 감각의 회복 — 사소한 풍경이 빛이 될 때 첫 장 ‘책머리에’에서 저자는 묻는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달동네 좁은 골목을 걸어본 적 있는가.” 이 질문은 독자를 단숨에 일상의 감각으로 끌어당기며, 책 전체의 정조를 결정짓는다. 본문 곳곳에서도 저자는 사소한 일상에서 포착되는 감각적 순간들을 정교한 문장으로 붙들어 둔다. 담배 냄새의 잔상, 시래기와 미석의 기억, 롱패딩의 흐름 같은 평범한 사물과 풍경 속에서도 그는 단단한 삶의 이면을 찾아낸다. 특히 ‘고량주의 미덕’이나 ‘사막 여우가 한국에 온 까닭은?’ 같은 글에서는 일상의 작은 장면이 세계사적 시각과 문화적 맥락과 연결되며, 단순한 에세이 이상의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저자는 사물과 경험을 단지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결을 조용히 더듬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사소함 속에서 보편성을 회복한다. ■ 걸음이 곧 사유가 되는 순간 — 길 위에서 발견한 삶의 형상들 책의 중심부라 할 ‘길 위의 시시포스’는 저자가 실제로 걷고 보고 체험한 부산과 여러 도시의 산책기다. ‘이바구길’, ‘온천천 카페거리’, ‘동래 온천장’, ‘송월동 동화마을’, ‘도봉산’, ‘모란 오일장’, ‘섬 속의 섬’ 등 다양한 장소가 저자의 발걸음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시포스의 저녁 산책’은 이 책의 정수다. 일과 후 짧은 산책을 하며 그는 도시의 빛과 어둠, 골목의 호흡,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본다. 고된 하루 뒤 짧은 걸음이지만, 그 안에서 도시의 리듬과 자신의 내면 풍경이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들이 포착된다. 예컨대 초량동 이바구길의 누렇게 빛나는 가로등 아래에서 그는 사람들의 삶이 층층이 쌓여온 시간성을 느끼고, 오랜 정취가 남은 신포시장의 벽면 장미에서 삶의 반복성과 지속성에 대해 사유한다. 그에게 산책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다. ■ 향수와 객수 — 잃어버린 것들과 다시 마주 서는 법 마지막 장 ‘향수와 객수’는 시간의 결을 한층 더 짙게 드러낸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의 ‘춘래불사춘’, 일광 포구와 송정역에 담긴 오래된 기억, 봄날 화단의 들꽃을 바라보는 순간 등이 조용히 재현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잃어버린 봄날과 들꽃’이다. 저자는 사무실 옆 화단의 매화 한 송이에서 시작된 사유로, 팬데믹이 앗아간 시간에 대해 말한다. 들꽃 하나, 매화 한 송이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잃어버린 계절과 사라진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운다. 또한 ‘흰여울 마을’이나 ‘일광 포구’ 같은 글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시간의 상처와 회복이 장면처럼 펼쳐진다. 특히 동해의 고래와 독도 강치에 대한 언급에서는 생태적 감수성과 현대사의 상흔이 동시에 교차하며, 에세이가 지닌 서정 너머의 윤리가 드러난다. ■ 감상 — 꾸밈 없는 문장이 주는 힘 장인산의 글은 감정에 과도하게 호소하지 않는다. 담담함과 절제, 그러나 깊이가 있다. 장소를 묘사할 때는 섬세한 감각이 살아나고, 생각을 풀어낼 때는 과장 없이 진솔하다. 그의 글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화려함이 아니라 정직함, 꾸밈없음, 조용한 성찰 때문이다. 또한 책 전반에는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자유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감’이 흐른다. 그는 책의 헌사에서 이 글을 “일상의 가파른 비탈과 쇠사슬에 굴하지 않고 꿈과 자유를 찾아 고단한 발걸음을 옮기는 용감한 시시포스들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이는 곧 이 시대의 평범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응원이다. 독자로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살아온 일상이 새롭게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걸었던 길이 곧 내가 걷는 길처럼 느껴지고, 그의 산책이 나의 마음 속 정원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오늘 저녁엔 나도 잠시 걸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 총평 『시시포스의 저녁 산책』은 거대하지 않다. 그러나 깊고 따뜻하며 오래 남는다. 그것은 ‘작은 산문이 큰 울림을 낳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삶의 반복과 피로 속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 도시의 풍경과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 혹은 잠시 고단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끌고 올라가는 ‘바위’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다만, 그 바위를 잠시 내려놓고 걸어가는 저녁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그 목소리가 은은해서 더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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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산의 에세이집 『시시포스의 저녁 산책』은 제목처럼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신화적 형벌을 견디는 시시포스’라는 존재를 우리 일상 속 인간의 모습에 겹쳐 놓은 책이다. 저자는 바쁜 직장 생활과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 속에서, 저녁 산책이라는 짧은 틈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는 사유의 시간을 만들어 왔다. 이 책은 그 사유의 결과물이자, 일상의 모든 순간을 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일상의 편린’, ‘길 위의 시시포스’, ‘향수와 객수’라는 세 단락은 저자의 글쓰기 태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일상의 사소함을 가볍지 않게 바라보고, 여행지의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을 생각하며,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감정을 잔잔히 풀어낸다. 저자의 글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사람처럼 깊고 느긋하다. 산책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임을 일깨운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기차 안에서 만난 어느 젊은 연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슬픔과 우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삶의 일면을 포착한다. “블루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반려견의 죽음을 전하는 전화 통화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은 순수하고 솔직하다. 저자는 그 모습을 가볍게 비웃지 않으면서, 그 경험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담담하게 적는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감정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다른 글들—담배에 관한 개인적 기억, 롱패딩과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 중국 고량주의 이름에서 발견한 위트, 사막여우 밀수 사건 등—은 모두 가벼운 듯하지만 결코 얕지 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사회 현상이나 국제 이슈를 다룰 때에도 저자의 시선은 과장되지 않고 현실의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독자는 저자가 보는 풍경을 그의 속도로, 그의 호흡으로 따라가게 된다. 중반부의 여행기적 글들은 이 책의 미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부산의 몰운대, 반구대 암각화, 도봉산, 함월산 등 저자의 사유가 머물렀던 공간들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장소’로 변모한다. 저자는 풍경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장소에서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만의 기억과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여행이란 결국 장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임을 책은 은근하게 증명한다. 후반부 ‘향수와 객수’에서는 고향, 가족, 시간, 나이듦, 그리움 같은 보다 깊은 주제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노부모에 대한 애틋함, 젊은 시절 파독 광부를 만났던 경험 등은 모두 따뜻한 회상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들은 어느새 독자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크고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아주 작은 사건, 작은 기억, 작은 장면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조용히 길어 올린다. 저자의 문장은 유려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늘 정확한 거리감과 온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히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시시포스의 저녁 산책』은 요란하지 않은 산책의 기록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진실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저자의 태도는, 바쁘게 살며 지쳐가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휴식을 선물한다. 책을 덮고 나면 어느 순간 문밖으로 나가 천천히 걸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시시포스의 바위는 무겁지만, 그 발걸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삶의 의지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