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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노마드 미술무크지 <데뷰 3> 출간 캔버스 앞에서 작가들은 무엇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그 '회화적'인 것에 대하여
데뷰 1,2권 그리고 3권 크라프트지에 새겨진 제목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늘 기분좋은 새책 향기를 끙끙 맡으며, 그림을 잘 모르는 나는 '회화적'인 것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한다.
나에게 회화는 '기본기'라는 단어와 치환된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이 그렇듯이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이 그렇듯이 회화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 그 순간, 우리는 회화가 갖가지 물감으로 이루어진 평면 그이상의 무엇임을 깨닫게 된다. 호크니의 말을 빌리자면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회화란 결국 세상을 보는 안목이다.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다. <데뷰3 중에서>
그림을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내가, 북노마드 디자인서를 접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림'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눈을 즐겁게 하고, 무한의 상상 세계로 이끄는 미술을 참으로 아름답고 치열하고 특별하다.
앞으로의 <데뷰>가 기대된다.
캔버스 앞에 선 수많은 작가들은 무엇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그들은 왜 그리는 것일까? 회화는 지금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무엇이 회화를 현재에 존재하게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보았던 드라마에서 단원 김홍도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늘 보던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자가 가져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늘 보던 것' 이라는 '이미'의 시간에 속한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라는 '아직'의 시간에 속한 것으로 드러낼 수 있다면, 그래서 지금 보고 있는, 그래서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것, 보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다면, 회화가 오늘 여전히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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