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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에 죄를 물을 수 있는가? - 안나 카레니나 1
"우리는 사랑에 죄를 물을 수 있는가? - 안나 카레니나 1" 내용보기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더클래식 판본)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9, 첫 문장)한줄평 : 사랑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우리는 사랑에 죄를 물을 수 있는가?(3권까지 있는 책이기에, 1권 리뷰만 우선 올려봅니다~~)서두에 이런 글을 쓰기가 좀 그렇지만, 최근 지인의 슬픈 소식을 들었다. 배우자의 불륜
"우리는 사랑에 죄를 물을 수 있는가? - 안나 카레니나 1" 내용보기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더클래식 판본)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9, 첫 문장)

한줄평 : 사랑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우리는 사랑에 죄를 물을 수 있는가?

(3권까지 있는 책이기에, 1권 리뷰만 우선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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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이런 글을 쓰기가 좀 그렇지만, 최근 지인의 슬픈 소식을 들었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가정도, 사랑도, 일상도, 정신도, 영적인 상태도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는 소식이었다. 딱 그 때 안나 카레니나의 첫 부분을 읽게 되었다. 묘한 겹침이었다. 그래서 더 몰입이 되었고, 각 등장인물의 행동과 말 그리고 심리 묘사에 눈과 귀를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눈으로도 읽지만 귀로도 읽고 마음으로도 읽는다. 그것이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이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양심은 아내에게 가지 말라고, 그것은 위선이라고, 이제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녀가 다시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자신이 사랑을 포기한 늙은이가 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모든 노력은 거짓과 가식일 뿐이었다. (23)

"당신이 아이들을 생각하는 건 놀아 줄 때뿐이죠. 나는 항상 아이들을 생각해요.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끝났어요."
이 말은 아마 지난 사흘 동안 그녀가 속으로 수없이 반복했던 것 중 하나였다. (27)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 온 불륜의 이야기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은 울고 화를 내고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소설에서는 그 감정을 꼭꼭 감춘다. 최근에 읽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 1>에서 구천이와 별당아씨의 묘한 잠적에도 모두 쉬쉬하며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것과 같다. 너무 감당할 수 없는 사실과 마주하면 감정은 끝없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마는 것일까.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드라마와 달리 실제 배우자의 불륜은 모든 것을 파탄낸다는 것이다. 예상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모든 영역이 완전히 부서지고 소멸되고 산다. 당장 이혼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혼을 하지 않고 날마다 얼굴을 보며 같이 지낸다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것은 현실 속에 놓인, 현재라는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지옥에서 보내는 것과 같다.

"한번 말해 봐요. 그런 일을 겪고도 우리가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 수 있겠어요? 말해 봐요! 할 수 있겠어요?" (27)

돌리가 말했다.
"더 비참한 것은, 아마도 당신도 이해하리라 생각해요. 그를 버릴 수 없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있으니 나는 그에게 묶인 셈이지요. 그렇다고 이대로 함께 살 수도 없어요.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129)

하지만 이어지는 이 파렴치한 비유의 서곡을 들어보라. 누가 죄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 질문하지만, 스스로 죄인임을 거부하는, 아니 죄를 지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는 이런 온도의 차이 속에서 사회는 기우뚱거린다. 누군가에게 지옥이고,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천국 같은 세상이다.

"말하자면 이런 걸세. 그러니까 자네가 결혼을 했고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데 다른 여자에게 끌린다면....."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군. 마치 배부른 사내가 빵집 앞을 지나다 빵을 훔친다는 것과 같아."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면 안 되는가? 빵이 마침 참을 수 없이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면 풍긴다면 말이야."

사실 책 제목이 <안나 카레니나>이고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도 안나의 삶을 궤적처럼 따라가기 때문에 '안나'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각자의 방법과 생각으로 책을 읽으면서 누가 주인공인지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다. 작가의 의도도 있겠지만, 책이 출판되는 순간, 책의 주도권은 작가가 아닌 독자가 쥐게 된다. 다만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고, 자신의 독서에 참고를 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반주처럼 슬쩍 나타나는 레빈이라는 사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안나가 사랑에 눈이 멀고 만 불행의 주인공처럼 시작한다면, 레빈은 로마 귀족 사회 문화와 풍속에 지나치게 미치지 못하는, 그래서 여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순수한 사내로 나온다. 혹자는 '레빈'이 바로 작가 '톨스토이'를 투영해 놓은 사내라고 말을 한다.

"자네는 순수해. 그게 자네의 미덕이지만 반대로 결점이 되기도 해. 자네는 순수하고 또 인생이 순수의 결정체가 되길 원하지?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어. ... 인생의 변화와 매력, 아름다움, 그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이야."
레빈은 탄식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자기의 일을 생각하느라 오블론스키의 말을 놓치고 있었다. (81)

하지만 1권에서는 아직 레빈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제 막 시골에 정착하여 자신이 고용한 농부들과 함께 풀을 베는 실천형 귀족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키티에게 청혼을 하지만 거절을 당하는 아픔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연으로 보기는 어렵고 레빈은 오히려 농촌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밥도 일꾼들과 함께 먹는다. 마치 <토지 1>에서 '게멩한 양반' 김준구가 농민들과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농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비슷하다. 신분제도가 존재하지만, 신분은 어찌 보면 겉에 걸친 옷과 같은 것이다. 한 겹 벗어버리면 끝난다.

<안나 카레니나> 책의 문학적 중요성 중의 하나는, 러시아 귀족 문화, 사교 문화, 파티 문화를 매우 사실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다양한 파티 문화가 실제로 어떻게 그들 사이에서 작용하는지 근접해서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귀족들은 농사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교계 파티 참석은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녀들의 배우자를 찾는다. 서로 사랑을 하고 결혼하는 연애주의는 들어갈 틈이 없다. 그것은 오히려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우리나라의 '중매결혼'과는 또다른 결이다. 그들은 파티를 하면서 춤을 추고 상대를 파악한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상대를 고르고 점찍고 청혼한다. 찬성? 아니면 거절. 결혼은 매우 정략적이다. 신분을 더 고귀하게 만들 수 있으며,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또 하나의 인생 사다리가 된다.

"난 그 부모들에게서 놀랐어요. 사람들 이야기로는 열애 끝에 하는 결혼이라고 하던데요."
"열애요? 아직도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있나요? 정말 구시대적인 발언이군요." (253)

하지만 그 사람들은 딸이 없으니 그렇게들 말하는 것이다. 공작 부인은 처녀가 남자들과 가깝게 어울리다가는 사랑에 빠진다는 사실을, 게다가 결혼할 뜻이 없거나 남편감이 못 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 부인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결혼 상대를 정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 봤어도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건 마치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장전된 총을 맡기는 것처럼 여겨졌다. 공작 부인은 위의 두 딸을 결혼시킬 때보다 키티의 혼사에 훨씬 더 신경이 많이 쓰였다. (86)

그리고 또 하나 놀라웠던 사실은, 자녀와 부모의 관계였다. 지금 현대사회처럼 부모와 자녀가 매우 끈끈하고 밀접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안나는 자녀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엄마로 묘사되지만, 성인이 되어가는 아들들은 결코 부모를 그런 시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경하고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부모님과 함께 하지만 서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공손한 예의만 서로의 거리와 공간 속에 놓여 있다.

그(브론스키)는 차장의 말에 겨우 현실감을 되찾고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어머니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집단이나 학교에서 가르친 대로 어머니에게 공손하고 정중하게 예의를 지키고자 했고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사라질수록 더욱 어머니에게 공손하고 깍듯하게 대했다. (115)

그리고 더 놀라웠던 사실 하나는, 자녀의 불륜을 또 하나의 사교계의 풍속처럼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하나쯤 있어야 인기 있는 사교계의 인물이 된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결코 허물이 아니다. 이력서에 경력을 층층이 쌓아 올리듯, 자소서에 독서 이력을 올리듯,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능력으로 자리매김한다.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불륜을 알고 처음에는 기뻐했다. 그녀의 생각에 매력적인 청년으로 전성기를 맞는 일은 사교계에 불륜을 낳는 것밖에 없었다. (320)

이제 키티가 순수한 농촌 귀족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바람둥이처럼 보이는그 남자를 마음에 두었던 바로 그 청년, 브론스키(미혼 청년)의 안나(기혼 여성)의 사랑으로 들어가보자.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점차 빠져드는 두 사람은 끝내 넘지 못할 언덕으로 올라가고 만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긴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짧고 간단하게, 주변의 표정들을 슬쩍 흘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바뀌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그리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서두처럼 두툼한 번개를 갑자기 두드린다. 장엄한 미사곡처럼, 그러나 슬프고 아련하고 감당할 수 없는 안개 속 미로처럼 독자에게 훅 얼굴을 들이민다.


안나가 처음부터 브론스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안나는 그 자신의 마음이 여전히 그럴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돌아와 처음 참석했던 무도회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온몬에 사무치는 슬픔을 느끼며 자신의 마음을 알았다.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자신을 쫓아다니는 것이 불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삶의 유일한 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36)

"나 임신했어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들고 있던 낙엽이 더욱 파르르 떨렸다. (344)

이 선언은 갑작스러웠으면서도 돌발적으로 불어오는 돌풍처럼 이야기의 전체를 뒤흔든다. 사방에서 폭풍과 번개가 치고 방안에 숨어 있는 고양이는 안절부절 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곧 들이닥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며, 미래를 알 수 없는 안개였다. 사실 안개는 현재 속의 가까운 미래조차 불투명하게 인식하게 하면서도 현재를 몽롱하게 바라보게 하는 매우 위험하면서도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악마와 같다. 노벨문학상 작가의 희곡,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약물에 취한 메리와 질병에 고통을 당하는 아들 애드먼드가 안개를 좋아하고 미화했던 것처럼, 이제 브론스키와 안나는 사교계의 그저 그런 불륜 스캔들의 한 장면이 아니라, 진정 '사랑'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하는 준엄한 사전 앞에 서 있는, 그러나 바들바들 떨고 있는, 마지막 잎새 같은 존재로 서로에게 결속된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 안나는 사랑을 이제서야 느끼고 깨닫고 체험하고 그속에서 헤엄친다. 그것이 러시아 귀족 사회의 파티 문화를 통한 결혼 폐단의 결과 중 하나인 것이다.

안나는 벗어 놓은 장갑을 만지면서 말했다.
"내 생각에는.... 만약 사람의 수만큼이나 생각도 다양하다면, 그런 마음의 수만큼이나 사랑도 다양할 거라고 생각해요." (254)

안나의 사랑은 레빈의 농촌 사랑만큼 그 안에서 충만하고 아름답고 순수했다. 그것은 브론스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까지의 스캔들과는 다른, 전혀 다른, 색다르고 순수하고 깊은 사랑의 정체를 느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에게서 새로 느낀 정신적인 아름다움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256)

그렇다면 이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계산 또는 서로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결혼이 종교적으로 매우 엄중하고 고결하고, 단단한 결합의 결정체라면,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치부된, 스캔들 같은 불륜의 '진짜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사랑은 과연 유죄인가, 무죄인가.

남편 알렉세이는 <토지>에서 별당아씨의 남편 최치수와 같다. 그는 구천이와 함께 사라져버린 별당아씨, 서희의 엄마에 대해 갈망하지 않는다. 대신 김준구에게 총을 구해오라고 요청할 뿐이다. 오직 그 행위에 대한 유죄, 무죄의 판결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에게 충만한 사랑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말했다.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종종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만나게 되지. 당신의 감정? 그건 당신의 양심에 속한 문제야.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리고 내게, 또 하느님 앞에서 당신의 의무를 깨닫게 해 줄 의무가 있어. 우리의 삶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고, 바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묶여 있지. 이 결합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죄악일 뿐이야. 이런 죄악은 아주 무서운 벌로 귀결되지." (271)

"그렇구려. 하지만 당분간은 체면이라는 외적 조건을 지켜 주길 바라겠소." (389)


'체면'이라는 번역 앞에서 우리는 조선의 체면 문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 안으로는 속아 곪아 터져도 신분이 속한 그 사회 속에서는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부와 가정으로 존재하는 척 타인을 기만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어쩌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 1>은 브론스키가 경주마 대회에서 떨어지고 그 장면을 지켜보는 안나의 숨기지 못하는 사랑의 격정으로, 이를 지켜본 남편에게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여전히 손을 잡고, 웃고, 예의를 차리는 일. 그것이 불륜 상대자에게든, 속마음을 감추고 만나야 하는 타인에게든, 아니, 모든 것을 알면서 그런 표정으로 웃으며 다녀야 하는 자기 자신에게든, 모든 것은 불행이고 슬픔이고 폭력이다.

이제, 사랑은 유죄로 갈까, 무죄로 갈까.
아니, 그것을 판단하는 법원은 자기 자신일까, 타인의 시선일까. 아니면 준엄하면서도 사랑이 많은 신일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했던 예수의 선언이 생각난다. 그들, 너 말고 바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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