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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은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어쩌면 여행이라는 말보다 ‘순례’의 정의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생의 간절함을 뒤늦게 발견하고 후회와 회한을 달고 사는 나이가 되면 생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다. 마치 바쁜 일상에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마음의 허기를 발견하는 일과도 같이 순례란,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마음의 여행인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해럴드 프라이는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무하였다. 은퇴한 뒤 집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해럴드에게 날아온 옛 동료 퀴니의 편지 한 통으로 홀린 듯 길을 나서게 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된 그의 여행길.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실제로는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기도 한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소녀와 첫 만남을 시작으로 하여 해럴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해럴드는 살면서 포기해버린 모든 것을 생각했다. 작은 미소, 맥주 한잔하자는 권유, 양조 회사 주차장에서, 또는 거리에서, 그가 고개 한번 들어 바라보지도 않고 계속 지나쳐 버린 사람들. 이사 간 곳의 주소를 챙겨 둔 적이 없는 이웃들. (중략)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가 뭔가 하려는 순간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인가? 삶의 모든 조각들을 결국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자신이 무력하다는 깨달음에 짓눌리는 바람에 그는 기운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집을 나섰다. 단순히 옛 직장 동료 퀴니를 만나기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 내면으로의 진정한 여행길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용기를 낸 해럴드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걸어야 하는 길은 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북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1000킬로미터나 되는 대장정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 위에는 그동안 잊고 지나쳤던 해럴드의 아픈 기억과 상처들이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자신을 외면한 아버지, 사랑해주지 못했던 아들과 어긋나기만 하였던 모린과의 일상들이 때로는 해럴드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아프게도 하며 자신의 상처를 짐짝처럼 등에 둘처매고 걸어야 했다. 걷는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 고독과도 같다. 그의 여정에는 온갖 슬픔과 고통이 들러붙어 해럴드를 울게 하였다. 그렇게 괴로운 순례길에서 만난 이웃들은 해럴드의 짓무른 발을 치료해주고 깨끗한 침대에 재워주기도 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우연히 사진에 찍혀 유명인사가 되면서 순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해럴드는 퀴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되새기며 포기하지 않는다. 해럴드의 첫 시작은 엉성한 노숙자의 모습이었으나, 걸으면 걸을수록 해럴드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찾아 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변모해 가게 된다.
그의 발바닥은 땅을 딛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처를 딛는다. 때로는 상처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지 못해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그렇게 움직이는 마음의 역정이 실제로 땅을 걷는 길고 힘든 역정에 조응한다.
삶의 다채로운 모습이 해럴드의 순례길에 아롱진다. 삶은 희로애락의 무늬가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짜여져 가며 하나의 무늬를 완성해간다. 해럴드의 순례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삶의 조각을 가지고 해럴드의 삶의 무늬를 짜주고 있음을 볼 때 , 그리고 해럴드가 마주한 진실의 한 조각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하였다. 게다가 아들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삶의 틈새를 메꾸어준 유일한 동료 퀴니의 마지막을 지켜주기 위한 해럴드의 순례길은 어쩌면 성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 숭고함이 배여 있는 듯 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다른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하였다. 해럴드의 순례길은 자신의 마음을 떠난 여정이기도 하지만, 삶에서 다른 눈을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례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발자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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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녹색이 주는 편안함은 눈길을 자연 모으는데, 더구나 뒷모습인 지팡이를 짚은 남자는 외로워 보인다. '순례'라니...제목은 참 평범하면서 일단 들으면 외워지질 않는다. 제목이 왜캐 어려워, 모임 엄마가 그러더라 ㅋㅋㅋ. 속표지는 따스한 느낌의 연한 코랄핑크라 해야나... <이책은> 발표도 늦게 났고, 20명 모집에 15명인가 응모해 전원당첨된 책이다. 서평이 많이 늦었다.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전체관람가라 할지라도 의견이 연령대별로 확연히 갈리는게 있고, 대체로 비슷하거나 큰 맥락에서는 공감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영화중에서 단연 꼽는 건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2007)'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 이야기로 백인과 흑인 나아가 아주 경제력 있는 남자와 중산층 남자다. 백인은 다 갖춘 듯 보이나 가족과 따로이 혼자 살고, 흑인은 가족관계가 좋다. 이 영화가 아직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머나 먼 이야기일뿐. 조금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모나 혹은 조부모의 경우를 대입해 보겠지만 그건 좀 무리고, 30대도 자신들 살기 급급해, 적어도 40대였던 내가 보기론 가장 깊이 들어오는 연령대이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이 책을 대하고는 '순례'라는 말에서 왠지 성지 순례 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종교적인 그 어떤 것 아닐까 싶은 선입견도 자리했다. 글고, 표지의 남자가 젊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적어도 늙은 여정일진대 뭔가 풀어내는 사연보따리를 펼쳐봐야겠지 그런 생각으로 임했지만, 내 나이가 주는 이제는 젊다고 하기엔 좀 뻘쭘해지는 연령대에서 앞의 영화를 보는 느낌과 매우 유사했음을 밝힌다. 신중년이란 단어가 등장할만치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경제력면에서 소외감과 고독감을 많이 느끼는 장수라면 얼마나 그 시간들이 길다 여겨질까...나에게 다가오는 앞날이면서 뒤돌아 살펴보는 현명함도 가끔은 가져야 하리.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요즘은 책을 읽다보면 유년시절의 성장배경과 그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이 3대를 간다는 생각에서 좀체로 비켜가지질 않는다. 우연히 접했던 교육을 통해 알게 된 이 사실. 그후로 나는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형제자매를 살펴보고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러고 있구나...나도 그러는구나...내 아이는...앞전에 읽은 '제이컵을 위하여'는 아주 무섭고 겁나는 정신3대를 보았는데, 여기서는 유년시절의 성장배경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를 새삼 알게 된다. 자신이 무심결에 각인되어 아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표방하고 따라하게 되는 행위들이 부모에게서 대개는 받은대로 본대로 행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차단당하고 모르고 자란 사람이 꾸리는 가정이란 어떤지, 자신이 부모가 되어 줘야할 애정은 어떤식으로 표현되는 지가 적나라하다. 안쓰럽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서 그 답을 쓴 편지를 들고 우체통으로 향하던 중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즉흥적인 인간이라고만 생각하기 쉽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60대가 은퇴를 한 지 육개월 여된 싯점서 돌연 선택한 순례. 편지는 암으로 죽어가는 퀴니라는 여인이 마지막으로 보낸 글. 그 글을 읽고서 프라이는 우체통으로 향하는데 다다르자, 다시 조금 더 먼 길로 부치러 가고, 또 조금 더 먼 길로 그러다가 아예 가보지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네 식으로 하면 해남 땅끝 마을서 강원도 고성까지의 길이라 할 수 있는 1000킬로미터를 걷은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핸드폰도 두고 나오고 여행에 필요한 차림새도 아닌 채 그는 걷기 시작했다.
아내 모린과는 첫 눈에 꽂혀 결혼했는데 아들 데이비드가 있다. 해럴드는 자신을 전혀 원하지 않았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전쟁전에는 괜찮을 사람였지만 전후에 술중독자가 되어 어머니는 열세 살 생일 직전에 집을 나갔다. 원하지 않았다해도 모성이나 부성이 있을터인데 이들 부모네는 철저히 아이를 귀찮아하고 그림자 취급하듯 했다. 얼마나 어린 해럴드는 부모 맘에 들기를 원했을까...어머니의 가출 이후 고모들이 그애를 건사하기도 했지만 고모들과 아버지는 수시로 잤다. 엥, 고모들은 통념상의 호칭이었을뿐이었기에 해럴드는 말없이 숨어 있어야 했다. 열 여섯살 생일에 새것도 아닌 외투를 선물로 받으면서 아버지는 너는 독립할 때가 되었다며 해럴드를 내보냈다.
원하지 않아서 태어난 해럴드는 부모 눈에 가급적이면 띄지 않아야함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러자니 학교에서건 늘 구석에 있거나 노출이 되는걸 참으로 힘겨워했다. 자연 자신감 결여인 소년으로 자랐을터이고 자존감도 낮았겠지 싶다. 어떤 행사에서 춤을 열정적으로 추던 그를 발견한 모린. 모린은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여자로 첫눈에 해럴드를 보고는 둘이 동시에 반했는데, 그녀의 부모는 해럴드를 보고선 반대했다. 어른들의 어떤 느낌이 작용한 것 같은데 젊은 청춘에게는 들리지 않았고, 그녀는 해럴드를 참으로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해럴드도 모린이외의 삶은 꿈꾸지 않았고 얼마나 소극적인지 승급할 기회가 생겨도 타지를 가야하면 그냥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어떻든 둘은 행복했는데, 그건 풍부한 사랑을 가진 모린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그러던 그들이 이십여 년전부터 각방을 쓰던 상태서 해럴드는 편지 한 장을 받고, 답장을 부치려 간다고 나가면서...
중략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이다. 가족 구성원간의 원활한 소통과 협동이 배려를 낳기도 하고 양보도 만들어낸다. 과거 우리주의가 활발할 때는 적어도 가족내 갈등이 지금처럼 많았다는 생각은 덜든다. 경제적으로 궁핍해 결핍이 많았던 시절이라 해도 인간간의 인간적인 심성은 지켜졌다고 본다. 결핍을 이겨낸 세대가 자라 가정을 꾸리고 가족은 핵가족화되면서부터 최고의 왕자나 공주만 양산하다보니 인간적인 면의 인간성은 돌볼 새도 없고, 내 가족만 안락하면 되는 경지가 되었다. 외동이들이 많다보니 일부러 가르쳐도 행하기 어려운 협동이나 양보를 숙지하지 못해 배려는 개나 물어갈 단어가 되고 있다. 말로는 배려를 외치고 소통을 원하고 공감한다 말하나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것들을 못한다. 모르는 것이다. 해볼 기회가 없었다.
부모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공감해주는 자식이 있어서 힘든게 반감되었던 시절은 물 건너 갔다. 부모는 오로지 자식이 필요할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왜 낳았어요 라는 말을 참으로 싸가지 없게 내뱉는 시절이 되었다. 그건 부모책임이 크다. 그런 싹수없는 녀석을 만드는데 일조했을테니까. 자식은 부모의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다. 싫어서 절대 닮지 않는 자식이 있지만, 그건 가뭄에 콩나물 나는 격이고, 대개는 그대로 투영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내 자식이 그렇다면 아프지만 부모의 잘못을 조금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부모가(혹은 선생님이)바른 길을 인도했어도 간혹 어긋나는 자식(=제자(학생))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부모자체가 그런 됨됨이를 가지지 않은 젊은 부모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자식이 잘못을 했어도 따끔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가 문제라는 것. 해럴드 부모처럼 방치도 학대라는 말이다.
많이도 무모해 보이는 순례라는 여정에 들어선 해럴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과의 사이에 간극이 큰 것이 문제라면 큰 문제. 그만큼 해럴드는 자신의 삶을 참으로 좁게만 살았다. 살고 싶어 그렇게 살았다기보다는 어린시절의 다양한 경험도 없거니와 부모와의 소통도 없었고 진정한 사랑을 받지도 못했다. 그나마 복이라면 아내 모린을 만나 사람다운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던 중 아버지가 된다. 자신이 사랑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알지 못하는 해럴드는 아버지가 마음없이 자신을 방치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데이비드에게 어떻게 해줘야할 지를 모른다. 아들의 방황이 부르는 것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괴로워하며 다독이는 심정으로 모른체하는게 최선일 거라 생각한다. 그러한 행동들이 야기한 결과는 참으로 컸고, 내내 쌓여 있다가 터진 결과가 모린과의 각방쓰기가 이십여 년을 흐른 것이다.
해럴드는 걷는 행위를 통해 거지가 되다시피하는 일상에서 알지 못했던 자연의 모든 현상에 귀기울이게 된다. 몸이 고될수록 정신은 맑아지는 경지가 되면서 아내 모린이 새삼 그리워진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하고 싶어져 수진자부담 공중전화를 들지만 차마 전하지 못한다. 표현능력의 한계이자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세월의 힘이다. 모린 역시 해럴드의 부재가 주는 일상에서 정신과 처방을 받고, 옆집 남자 렉스에게는 털어놓는 속내를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한다. 이십여 년의 멈춰진 남편이자 아내인 그들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이었기에 그 시간들을 회복하기는 불가능해 뵈기만 한다. 님과 남이라는 점 하나 차이는 그렇게 가깝고 먼 사이.
누구나 평탄한 삶을 원하지만, 삶은 또 예기치 않는 고난과 시련을 주면서 견디고 이겨내는 힘도 주고, 전혀 회복불능으로 만들기도 한다. 거기서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관건. 그렇기에 우리는 알 수 없는 앞날을 위해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들고...알 수 없는게 인생이고 삶. 주어진 삶을 운전해가는 건 자신의 몫. 그게 가정을 이룬 사람이라면 협력을 해야할터고, 운전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안전한 길로 가야할 막중함이 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젊은 부부들중에는 자식 안낳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받는 사랑만 있고 주는 사랑은 안하고 싶은 이기주의라 몰아부치기는 뭣하고...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맘을 아는 것인데...가족의 소중함과 부부애가 뭘까 싶은 책을 만났다. 우리네 인생은 먼 의미에서보면 순례자의 길과도 상통한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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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차를 타기보다 그리고 숨차게 달리기보다 천천히 걷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 걸어본 적은 없습니다. 오래 걷는다 해도 겨우 한두 시간 남짓입니다. 더 오래 걸었던 적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였고 어디를 걸었는지 모르겠군요. 그냥 걸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어딘가에 갔다 오는 그런 걷기였지요. 가끔은 볼 일이 없더라도 걸으면 좋을 텐데 게을러서 그러지 않는군요. 그런데 제가 걷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네요. 일부러 걷지 않을 때가 많다 해도 늘 걸으니까 좋아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걸어서 아주 멀리까지 가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아마 어려울 테지요. 해럴드 프라이는 이십 년 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 퀴니 헤네시한테서 편지를 받습니다. 퀴니는 암에 걸려서 이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해럴드는 퀴니한테 답장을 쓰고는 우체통에 넣으러 밖으로 나갑니다. 우체통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해럴드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해럴드는 좀 더 먼 곳에 있는 우체통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우체통을 몇 번이나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해럴드는 퀴니가 있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걸어가기로 합니다. 편지만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해럴드 자신이 퀴니가 있는 곳까지 가면 퀴니가 나아질거다고 믿었습니다. 퀴니한테 해럴드는 자신이 걸어가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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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회사와 집을 오가며 열심히 일하다 정년 퇴직한 해럴드 프라이는 어느날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 편지를 한 장 받는다. 무려 20년이나 전에 함께 회사에 다니던 그녀가 작년에 종양 수술을 하고 현재 요양원에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는 그녀의 편지가 반가워 바로 답장을 하려고 부랴부랴 우체통으로 향하지만, 어쩐지 짧은 답장을 보내기엔 석연치가 않아 동네를 빙글빙글 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갑자기, 아무런 대책 없이 그녀를 찾아가서 직접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하지도 않고, 휴대폰이며 옷가지며 짐을 챙기지도 않고, 그냥 잠깐 동네에 나온 차림 그대로, 무작정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북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1000킬로미터를 걷게 된다. 내가 갈테니,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무사히 살아 있으라고 말이다.
![]() 60대 노인이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이 무슨 무모한 행동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살면서 한 번쯤은 아무 생각 없이 무모한 행동을 할 때가 있지 않나 싶다. 눈 딱 감고 그래 이번 한번만. 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 그래 미친 척 하고 한번 해보자.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마음 가는 대로 한 번쯤은 해봐야 후회가 남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해럴드의 이 엉뚱한 여행이 순조롭게 끝까지 진행될지 시작할 때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평소에 운동은커녕 걷기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던, 언제나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했던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 걷는 여행을 무리 없게 하리란 것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종종 호흡이 가빠오고, 다리에 물집이 생기고, 체력이 떨어져서 지치면서 이 순례를 계속한다. 그가 이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길 곳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용기와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어서 가자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누가 큰 칼로 나누어 놓은 듯 땅이 체크무늬의 밭을 이루어 아래위로 굽이치고, 밭 가장자리를 따라 산울타리와 나무들이 이랑을 이루고 있는 광경이 둑의 틈으로 보였다. 발을 멈추고 구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에도 수많은 색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해럴드는 겸손해졌다. 어떤 녹색은 짙어 거의 벨벳 같은 검은색이었으며, 어떤 녹색은 아주 옅어 노랑에 가까웠다. 멀리서 지나가는 차가 햇빛을 반사했다. 어쩌면 창문이 반사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빛이 떨어지는 별처럼 떨리며 산들을 가로질렀다. 어떻게 전에는 이런 것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바로 자연 풍경 말이다. 이것은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여러 곳을 다니지 않고 집에 앉아만 있을 때는 절대 체감할 수 없는 그런 냄새와 느낌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다. 모두들 사는 것이 바빠서, 가족에게 충실하고, 회사에 열심히 목매기 위해서 이런 부분들쯤은 잊고 살아간다.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고 이렇게 주변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면, 평생 내 옆에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빛의 특징, 공기의 무게, 하늘의 색깔, 얼굴, 구름 등... 언제나 내 옆에 있지만, 한 번도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꽃을 바라보고, 나뭇잎을 관찰하는 것은 성인이 된 우리가 자주 하지 않은 행동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렸을 때는 나도, 당신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충만한 호기심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사랑과 관심을 가졌던 시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 말을 걸고, 미소를 건네고,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해럴드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런 소소한 일들 속에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가족 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해럴드는 이미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에 놀라고 감동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미 세상에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나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나는 군중 속에서 두드러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아요. 내가 뭘 하는지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다들 이해하는 것 같아요. 자기 삶을 돌아보고, 내가 거기까지 가기를 바라요. 퀴니가 살기를 바라죠. 나만큼이나 말이에요."
그렇게 편지를 부치러 나온 지 87일 만에 해럴드 프라이는 세인트 버나딘 요양원 정문에 도착한다. 그의 여행 거리는 실수와 일탈을 포함하여 무려 1000킬로미터가 넘었다. 이 정도면 뭐 서울에서 어느 지방까지 '걸어서' 가는 것만큼의 엄청나고 무모한 거리일 것이다. 그것도 젊은 사람도 아닌, 노인이 말이다. 운동의 기본도 몰랐던,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계획도 없고, 준비물도 없었던 60대 중반의 해럴드였기 때문에 그의 이 순례는 더욱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나 나는 그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겁 많고 소심하고 순했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무모한 여행을 더욱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떠올랐는데, 아마도 내용보다는 서사 드라마로서의 스타일이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유명한 대사,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것 또한 결국, 장애에 굴하지 않고 모든 일에 부딪쳐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말이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모두 삶의 경험이 되는 것이니까, 삶에는 운명도 있겠지만 그저 바람 같은 우연도 함께 있으니 말이다. 마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듯한 동화같은 작품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길을 걷다 보이는 하늘과 구름의 풍경에도 눈길을 주고, 짜증나는 일이 생길 경우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해럴드처럼 삶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면, 나도 내 삶의 모자이크 조각들을 모아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예쁜 그림을 펼쳐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길모퉁이마다 내가 잃어버린 추억들이 숨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찌 되었든 모두가 내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니까. |
『세인트 버나딘 요양원. 해럴드에게,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 로 시작하는 의문의 편지 한 통이 해럴드 프라이에게 온 날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편지를 보낸 이는 20년 전 양조 회사에서 경리로 일했던 퀴니 헤네시라는 여자인데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작별 인사의 편지이다. 놀라면서도 어찌 보면 담담하게 쓴 답장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려던 순간 도저히 편지를 놓아 버릴 수 없는 해럴드. 다음 우체통까지 좀 더 걷기로 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다 계속 북쪽을 향해 걷게 된다. 그러다 한 주유소 소녀의 말..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해요.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하지만 있잖아요, 믿음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 소박한 확신이 어린 소녀에게서 아주 당연한 것처럼 나오다니.. 해럴드는 그 자리에서 곧장 북쪽을 향해 계속 걷게 된다.
『 "해럴드 프라이가 가는 길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내가 구해줄 거니까. 나는 계속 걸을 테니, 퀴니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 (...) "지금 당장 출반한다고요. 내가 걷는 동안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고. 이번에는 내가 실망 시키지 않을 거라고 전해 주세요."』
예순 살이 훨씬 넘은 은퇴자 해럴드 프라이. 무기력하다는 깨달음에 짓눌리는 삶을 살아온 그는 우체통을 몇 개씩이나 그대로 지나칠 정도로 사념에 빠져 북쪽을 향했다. 세인트 버나딘 요양원은 그가 사는 곳에서 무려 1,000km나 떨어진 끝과 끝에 자리 잡은 곳이다. 해럴드는 예상치 못한 일은 한 적이 없이 살아왔다. 편지를 부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이 자리잡혀 등산화나 나침반도 없고 갈아입을 옷은 물론 휴대전화도 없이 그렇게 계획이란 것이 없이 그냥 북쪽을 향해 걸을 생각이었다. 도대체 퀴니라는 여자는 해럴드에게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순간적인 결정. 자신이 한없이 약하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이 붙기 시작한다. 자유의 느낌, 미지의 장소를 밀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유쾌해진다. 차로 지나다니던 같은 길을 걸어서 가자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다. 어떻게 전에는 이런 것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는지. 퀴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신념으로. 그저 한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그 단순성이 즐거웠다.
『 이제 자신이 느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이 걸어온 거리에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 p61
가는 길에 아내 모린과 요양원의 퀴니 그리고 길을 나서게 용기를 준 주유소 소녀에게 각각 엽서를 써 가며 계속 걷는다. 아내 모린의 입장에선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 노여움, 고통스러운 모욕감이 휘감기는 그 상황이 이해가 되어 안쓰러웠다. 데면데면한 아들 데이비드와 평생 대립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며 살아왔던 과거를 기억하고 아파하며 길을 걷는 해럴드. 걷다 보면 기억 하나가 갑자기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고. 그만의 고통이 있는 사연들을 끄집어내며 속죄하듯 걷고 또 걷기만 한다. 해럴드는 걸으면서 이십 년 동안 피하려고 했던 과거를 묶은 끈을 풀어가고 있었다.
해럴드의 과거와 걷기를 생각하며 그제야 그의 관점에서 상황을 보게 되는 아내 모린. 그들이 이십 년 동안 키워 온 침묵과 거리는 심각하여 평범한 말조차 공허하게 들리고 상처를 줄 지경에 이르러 있었지만, 해럴드가 처음으로 모든 역경에 맞서서 자신이 믿는 일을 한다는 점, 그런 생각에 미치자 그녀가 떠나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해럴드와 있을 때 아무리 외롭다 해도, 그가 없는 세상은 훨씬 더 황량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 과거는 과거였다. 자신의 출발점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 p176
차를 타고 가면 될 것을 왜 굳이 걸어야만 했던 것일까에 관해 처음엔 어찌나 답답하던지. 한편으론 마음 가득 경이감과 더불어 안타까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며 어느 순간 해럴드의 걷기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거의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87일 만에 요양원에 도착한 해럴드. 그제야 비로소 그의 앞에 놓인 진실을 깨닫게 된 해럴드의 반전과도 같은 상황에 나 역시 매우 놀라며..... 걷기가 과거의 고통을 풀어내게 된 점에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나 자신만의 순례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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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제목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그런 책이다.
자. 이 책의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요약하면 아주 간단하다.
해럴드. 그의 아내 모린, 그리고 그들의 아들 데이비드.
또, 그의 직장동료였던 퀴니, 옆집 남자 렉스.
자.. 일단은 이렇게 5명이 가장 큰 기둥이 되는 인물이다.
해럴드와 모린은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사이는 데면데면하다.
한 집에서 같이 살기는 하지만, 서로 대화도 뜸하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들 데이비드가 모린에게는 친화적이면서 해럴드에게는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중졸의 해럴드. 그렇지만,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 데이비드.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를 무시하며 투명인간 취급한다.
어느 날, 해럴드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퀴니.
해럴드와 한 직장에 다녔던 퀴니.
그녀가 떠났지만, 그녀를 잡지 못했던 해럴드.
그녀에게 빚진 것이 있는 해럴드는 퀴니가 암에 걸려서 투병 중이라는 편지를 읽고는 혼란스러워진다.
모린의 반대에도 그녀에게 답장을 쓴 해럴드는 편지를 부치러 우체통을 찾아 나선다.
하나의 우체통을 벗어나고, 또 다른 우체통을 또 다른 우체통을...
해럴드는 주유소 여직원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퀴니를 회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퀴니가 있는 병원까지 해럴드는 걷기로 결심하고, 퀴니에게 전화를 하지만, 병원 간호사가 받는다.
그래서 간호사로부터 퀴니가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해럴드는 더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우유부단한 해럴드는 자신이 걷는 동안 유명해지고, 따르는 무리들이 생기고, 그 따르는 무리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아가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걷고 또 걷고 걸으면서 해럴드와 모린의 사이에 많은 과거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그 이야기들이 살아서 두 사람을 다시 휘감아 돌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큰 고난과 아픔을 겪을수록 남은 사람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게 된다.
어쩌면 그 것은 혼자 남은 나에게도 동일한 일일 것이다.
엄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후에 밀려오는 모든 것들에 대한 후회.
난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난 정말 엄마를 돌보는데 최선을 다했나? 난 그 상황에서 이렇게하면 좋았을텐데.... 등등.
수많은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그 후회들은 나 자신을 생채기 낸다.
그러면서 수없이 밀려오는 죽어벌리까하는 생각.
내 아들과 신랑이 있어 내 아들이 엄마없는 자식으로 크면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서러움을 겪지 않게 해야하는데...라는 그 하나의 신념만으로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해럴드와 퀴니는 드디어 만난다.
해럴드는 그 먼길을 걸어내고, 모린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데이비드의 상처를 씻어낸다.
아니,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작아지겠지.
어떤 사람은 왜 암환자에게 가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얘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암환자가 곁에 있거나 암환자의 곁에 있어 본 사람은 아마도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줘야 그 사람은 견뎌낸다는 것.
엄마가 떠나고 난 후 난 정말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 후에도 이렇게 읽고 있고.
얼마 전 읽은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도 암환자에 관련된 이야기인 걸 보면...
휴~ 암이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은가보다.
조심 또 조심해야지. 아들을 위해서.
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해럴드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모린과 렉스에게는 고마움을 느꼈고.
아무리 아프고 말 못하는 환자라고 해도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보다는 옆에 있을 때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건지 아마 알게 될 것이다.
딱 한 번만, 정말 잠깐이라도 좋으니 딱 한 번만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나고 안아보고 얘기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잘 계시겠지?
해럴드의 말 그대로 "순례"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재미나고 감동적이어서 퇴근하는 버스에서 읽다가 결국 밤 늦게까지 다 읽고, 혼자 엉엉 울었다.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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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상의 여러 성지나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순례’라 하면 우선 기독교의 이스라엘, 이슬람의 메카와 메디나, 불교의 룸비니 등지가 있겠습니다만, 최근 불고 있는 걷기 열풍과 관련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먼저 생각납니다. 언젠가는 저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드라마작가 레이철 조이스의 첫 번째 소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정말 놀라운 순례의 길을 걸어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산티아고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순례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남서쪽 끝에 있는 사우스햄스 킹스브리지에서 영국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스코틀랜드와 만나는 북동쪽 끝에 있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대략 800킬로미터의 거리를 실수와 일탈 때문에 우회하는 경우도 있어 1,000킬로도 넘게 걸어서 87일 만에 도착하는 동안, 해럴드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해럴드가 걷기 시작한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해럴드와 아내, 아들 데이비드 그리고 해럴드가 만나러 가는 퀴니 사이에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해럴드의 순례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닙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해럴드의 놀라운 순례여행을 시작하게 만든 퀴니의 편지는 4월 중순경에 받게 됩니다. 해럴드가 집을 나선지 한참 뒤에야 내용이 알려지기는 합니다만, 몇 가지 의문점 때문에 미리 인용을 합니다. “해럴드에게,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지난날을 쭉 생각해 왔어요. 작년에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이미 퍼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나는 차분해요. 또 편안해요. 어쨌든 오래 전에 해럴드가 나에게 보여준 우정에 감사하고 싶었어요.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 줘요.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데이비드를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171쪽)” 해럴드가 은퇴하기 전에 다니던 양조회사에서 경리를 보던 퀴니는 이십년 전에 쫓겨나 떠난 다음에 연락이 끊겼던 것인데 그야말로 느닷없이 연락을 보내온 것입니다.
퀴니 헤네시의 소식을 들은 모린은 위층에 있는 아들 데이비드의 방으로 올라갑니다. 사실 여기서 작가가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을 읽다보면 이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린은 위층 데이비드의 방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고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아이를 들이마셨다. (…) 그녀는 데이비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방을 늘 깨끗이 청소해 두었지만, 그날이 언제일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한 부분은 늘 기다리고 있었다.(17쪽)” 모린이 아들과 함께 있는 동안 해럴드는 퀴니에게 답장을 씁니다. “퀴니에게, 편지 고마워요. 정말 안타깝네요.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해럴드(프라이)” 이보다 더 무미건조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한 줄로 된 답장, 그리고 퀴니의 편지를 보면 퀴니와 해럴드 부부 사이는 특별한 관계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편지를 부치러 나간 해럴드가 집근처 우체통에서 편지를 밀어 넣지 못하고 다음 우체통 그리고 우체국까지 지나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간식을 사러 들른 주유소의 아가씨와 편지를 받을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건넨 것도 영국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일까요? 고모가 암이었다는 소녀가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이니 뭐니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돼요.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하지만 있잖아요. 믿음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28쪽)”라고 전한 말이 해럴드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퀴니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해럴드 프라이가 가는 길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내가 구해 줄 거니까. 나는 계속 걸을 테니. 퀴니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전해주겠어요? (…) 걸어갈 거예요. 사우스데번에서 버윅어폰트위드까지 쭉. 내가 걷고 있는 동안은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고. 이번에는 내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33쪽)”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불가입니다. 해럴드는 자신이 퀴니에게 걸어가는 것만으로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믿었던 것일까요?
이렇게 시작한 걷기입니다. 시내에 나갈 때나 신으면 좋을 보트슈즈에 갈아입을 옷도 없이 편지를 부치러 나가는 간편한 복장으로 말입니다. 휴대폰도 없고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8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이렇게 나서는 해럴드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혹시 집에 돌아가 아내와 상의를 했다가는 아예 출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정작 모린은 전화를 건 해럴드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걸어갈 것이라는 말을 하자 “뭐, 버윅에 가도록 해, 해럴드.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어디 당신이 다트무어를 넘어갈 수나 있는지 알고 싶어―(40쪽)”라고 쿨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해럴드가 걷기를 이어가면서 비용이 문제가 되면서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계산은 다 해 본 거겠죠”라고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퇴직금을 쓰겠다는 해럴드의 말에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지는 않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걷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해럴드의 계획에 동감하고 응원하는 모습입니다. 정작 해럴드는 자신의 여행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어떤 부인은 <순례자가 되려면>이라는 찬송가를 불러주기도 합니다. 첫날 묵은 호텔에서 만난 웨이트리스나 손님들 모두 해럴드가 떠날 때 그가 여행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걷는 길에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망설임 없이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면 영국 시골의 인심도 참 푸근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유럽 몇 나라를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지인의 여행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는 외지인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행기나 기차로 질 알려진 장소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여행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걷는 일이 별거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매일 10km 정도 꾸준하게 걸어서 휴가기간 중에 모두 100km를 걸었습니다. 걸은 다음 샤워를 하고나면 나른한 느낌에 더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해럴드 처럼 먼 길을 가는 경우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뒤꿈치가 따끔거리고 등이 아팠다. 게다가 발바닥에는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주 조그만 돌만 들어가도 아팠다.”는 해럴드의 호소는 애교로 볼 정도일 것입니다. 해럴드가 걷기 시작하면서 만난 여자의 말은 걷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걷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군요. (…) 그냥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으면 되는 거라고요. 하지만 본능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놀라곤 해요.(71쪽)” 먹는 것도 중요하고 잠을 자는 장소도 중요한 일이지요. 결국 해럴드는 노숙을 하고 길에서 먹을 것을 해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순례자의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까요?
헤럴드는 걷는 동안 꾸준히 모린과 퀴니 심지어는 그를 걷게 만든 주유소의 소녀에게까지 편지를 쓰고, 모린과 퀴니에게 줄 선물도 사곤 합니다. 그리고 해럴드의 걷기에 대한 모린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씩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린은 해럴드가 퀴니에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과 곧이어 찾아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노여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120쪽)”는 표현이 어쩌면 정상적인 아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내가 데이비드를 위해서 이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121쪽)”라는 해럴드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린의 모습에서 이들 부부 사이에 놓인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모린은 걷고 있는 해럴드를 찾아가고, “보고 싶었어, 해럴드. 당신이 집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305쪽)”라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던집니다. 해럴드 역시 “나도 보고 싶었어. 하지만 모린, 나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평생을 보냈어. 그러다 이제 마침내 뭔가 하고 있어. 나는 걷기를 마쳐야 해. 퀴니가 기다리고 있어. 퀴니는 나를 믿고 있어.”라고 화답을 합니다.
사실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해럴드가 걷기 시작한지 한 달도 넘어서 만난 믹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정말로 버윅까지 갈 수 있다고 믿느냐”는 믹의 질문에 “밀어붙이지도 않지만 미적거리지도 않아. 계속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거기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고 대답하는 해럴드는 이제 걷기에 달관한 모습입니다. 그런 믹이 헤어지면서 “그냥 아저씨를 기억하려고” 해럴드의 사진을 찍었는데, 믹이 해럴드의 이야기를 ‘코번트 텔레그라프’에 기고하면서 해럴드는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리고 보면 무엇이든지 꾸준하게 오래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해럴드를 따라 버윅까지 걷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세인트버나딘 요양원에 누워있는 퀴니의 회복을 위한 성지순례단이 꾸려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례단의 일정을 해럴드가 아닌 사람들이 결정하고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면 자연히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해럴드는 순례단에서 빠지게 되고, 순례단은 결국 해럴드 없이 요양원에 도착하여 버윅 지역의 유력자들과 매스컴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요양원에서 순례단에게 따로 관심을 두지는 않는 이유는 나중에 밝혀집니다.
어떻든 순례단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와서 하루, 또는 이틀을 걷다 돌아갔다. 날이 맑으면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운동가, 산책자, 가족, 낙오자, 관광객, 음악가, 깃발, 모닥불, 토론, 준비운동, 음악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암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일을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후회가 되는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수가 늘수록 속도는 느려졌다. (…) 속도는 느렸지만 이 집단은 해럴드에게는 낮선, 묘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이제 잡다한 몸통과 발과 머리와 심장이 아니라, 퀴니 헤네시로 묶은 하나의 단일한 에너지라고 말했다.(287-8쪽) 일종의 집단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데서 모이는 힘이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걷기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신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헥섬으로 우회하는 문제로 순례단과 결별한 해럴드는 홀가분해졌지만, 정작 버윅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생긴 오한을 견디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동행한 개가 사라지면서 공황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확신이 사라집니다. 모린과 통화하면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결국 모린의 격려의 도움으로 편지를 부치기 위하여 집을 나선 87일 만에 1000킬로미터도 넘는 길을 걸어서 세인트버나딘 요양원에 도착한 해럴드는 이어 도착한 모린과 함께 퀴니의 죽음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해럴드와 모린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든 문제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눈빛만으로 뜻을 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부부도 대화를 통하여 진심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 담긴 비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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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드라마 시사회 때, 한 배우가 4회까지만 시청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던 말처럼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 200페이지 정도는 읽어봐야 참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가 '오호라' 싶었던 구간이 200페이지 즈음이라서 정확하게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인내심은 가지고 접근해야 할 해럴드의 순례기다.
초반에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해럴드 프라이라는 일흔이 넘은 노인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한편의 그럴듯한 성장 소설을 만들기 위해 주인공을 너무 초라하게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걸 감당할 능력에 관한 의문부호만 잔뜩 안겨준 채.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도착한 편지에 얽힌 정확한 설명도 없이 시작하자마자 냅다 저질러버려서 당황스러웠다.
2. 또 다른 이유는 이 소설은 '걷는 행위'가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걷는 발자국을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자기반성을 통한 내면의 성장과 갈등 국면에 서 있었던 관계의 회복이 점층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속도가 2배 빨라지면 2배 행복해질 것이라고 광고하는 통신회사 카피라이터는 과연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든 '느림의 미학'이 돋보인다.
3. 소설 외적인 부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의 제목에 순례가 들어간다는 것과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연상된다. 분명히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안타깝게도 문제의 그 소설을 읽어보질 않아서 뭐라고 덧붙일 말은 없다.
4. 다만 내가 읽어본 소설 가운데서 이 책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주인공 해럴드 프라이의 시선이 아닌 타자가 바라보는 해럴드 프라이의 모습은 왠지 돈키호테 같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르반테스가 애초에 의도하려 했던 기사도의 풍자가 아닌 낭만처럼 그의 순례 또한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 해럴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점은 돈키호테가 봤으면 아마도 많이 부러워했을 듯하다. 하지만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그 믿음이 볼테르의 <캉디드, 낙관주의>에서 봤었던 비판적인 관점에서의 그릇된 낙관주의로 옮겨간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5. 결론적으로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엎지른 물을 다시 채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보통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록 물을 주워담지는 못할지언정 다시 채울 수는 있다. 따라서 물을 다시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물이 엎질러졌다고 후회만 하고 있으면 아마도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늦은 나이였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해럴드 프라이의 순례는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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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야곱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은 종교적인 순레길로 유명합니다. 누군가는 비우기 위해, 누군가는 삶을 돌아볼 때, 누군가는 소중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이 곳을 걷고 있습니다. 이 길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 곳을 다녀 온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여정과 치유의 경험을 책으로 출판하였으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올레길이나 둘레길 코스가 우후죽순 계발 되었고 웰빙과 힐링으로 이어진 걷기 열풍은 스포츠 웨어나 신발 등 관련 상품의 매출로 이어졌답니다. 워킹화 한 켤레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말입니다. 발 빠른 기업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순례길마저 상업화되는 것이 왠지 씁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 책은 엇비슷한 순례기라 생각했지만 다른 책들과는 다른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평생 회사와 집을 오가며 살다 은퇴한 소심한 60대 가장인 ‘해럴드’가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순례의 시작은 좀 엉뚱합니다. 어느날 옛 직장 동료 퀴니에게 그녀가 현재 영국 북부 버윅어폰트위드의 한 요양원에 있으며 암에 걸려 아프다는 소식을 전하는 한 장의 편지를 받습니다. 이 편지가 그를 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북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1000킬로미터 남짓 거리를 걷게 하였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퀴니에게 보내는 답장을 부치기 위해 우체통을 찾아가던 그 길이 헤럴드의 걷기의 출발이 되었으며, 걸으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잊고 지냈던 수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여태껏 살면서 좋았던 일만 있을리 없겠지요. 지나 온 삶은 행복했던 순간도, 자신을 괴롭혀 온 어린시절 기억들과 돌이 킬 수 없는 순간들도 있었지요. 그의 삶은 후회와 회안으로 가득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뒤엉킨 실타래처럼 어긋나 버린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의 순간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던 헤럴드의 순례는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게 되었고 그와 함께걷길 원하는 순례단 때문에 일정에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못해 얇팍한 상술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유명세를 치르기도 하지만 그는 이 여행을 멈출 수 없었답니다. 비록 그의 갑자기 내린 결정이 부인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마침내 그의 부인도 그의 여행을 격려하고 마지막까지 응원하게 됩니다.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게지요. 그들은 용서와 치유의 힘을 얻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걷기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한두 번 규칙을 파악했다고 믿은 적도 있었으나, 결국 그런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순례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쩌면 이들이 여행의 다음 단계 아닐까?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진실이고, 알지 못하는 것과 계속 함께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289)
작가는 헤럴드와 부인의 갈등,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지요. 주인공의 내면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책을 읽다보면 헤럴드의 여행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때론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누르며 때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미소 짓는 그의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그렇게 그와 함께 발걸음을 떼어 놓습니다. 거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땐 멈추지 않는 눈물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씻어 줍니다. 퀴니가 암에 걸렸다고 말했을 때 "암은 낫기 힘들어."라고 냉정하고 현실적인 답변을 하던 부인도 그의 첫 걸음부터가 무모하다고 여겼던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어느덧 그의 걸음 걸음마다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기적이 이루어지길 바랬습니다.
“사랑해, 해럴드 프라이.” 그녀가 소곤거렸다. “그게 당신이 해낸 거야.” ( p383) 기적은 늘 우리곁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삶은 기적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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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첼 조이스. 2019.12.29-
때때로 삶에는 예기치 않은 순간, 인생을 바꿀 순간이 찾아온다.
평생 회사와 집을 오가며 쌀쌀맞은 가족의 시선을 감내하며 살다가 양조공장에서 은퇴한 외로운 60대 노인 '해럴드'에게도 언젠가부터 꼬여 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세계 여행이나 우연히 만나 황혼의 사랑을 나누게 된 사람이 가져다준 순간이 아니다. 이 평범한 사람의 뒤늦은 오디세이는 사소한 편지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가 원하지 않던 아이, 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다가 13살 생일 직전에 가족을 버리고 뉴질랜드로 떠나버린 어머니, 참전 후 알콜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 고모라 불리던, 자주 바뀌는 아버지의 여자들, 16살에 아버지로부터 쫒겨나
그의 아버지는 그의 열여섯 살 생일에 외투를 선물하며 문을 가리켰다. 외투는 새것이 아니었다. 방충제 냄새가 났다. 안주머니에는 버스표가 있었다. 175)
외로운 삶을 살던 해럴드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같던 사랑. 그러나 캠브리지를 졸업하지만 취직도 않고 술과 마약에 절어살며 아버지를 경멸하며 욕하고 무시하던 자신을 사랑하지 않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이 떠난 후 식어버린 부부간의 사랑.
그녀가 지금까지 해럴드를 떠나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데이비드가 아니었다. 심지어 남편이 안쓰러워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떠나지 않은 것은, 해럴드와 있을 때 아무리 외롭다해도, 그가 없는 세상은 훨씬 더 황량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147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던 그에게 옛 직장 동료 퀴니로부터 편지가 온다. 퀴니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직장에서 따돌림 당하지만 해럴드와 단짝 이었는데, 사장이 아끼던 유리 인형을 깨버린 해럴드를 대신해 책임을 지고 해고당한 후 홀연히 떠났지만 해럴드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제 퀴니는 버윅어폰트위드의 요양원에서 암에 걸려 해럴드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해럴드에게.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지난날을 쭉 생각해 왔어요. 작년에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이미 퍼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나는 차분해요. 또 편안해요. 어쨌든 오래 전에 해럴드가 나에게 보여 준 우정에 감사하고 싶었어요.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줘요.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데이비드를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
과거 그녀에게 큰 빚을 졌으나 작별 인사조차 없이 그녀를 떠나보냈던 그녀에게 답장을 쓰지만 어쩌다보니 우체통을 지나치게 되고 조금 더 가다가 주유소 소녀와의 대화를 통해 영감을 받은 후 직접 그녀를 만나러 간다. 휴대폰도, 제대로 된 장비도, 아내에게 떠난다는 말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길이야. 사실 걸어가고 있지, 전에 알던 사람한테 편지를 부치러 가는 거야. 안타깝게도 암에 걸렸다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고모도 암에 걸렸어요. 그러니까, 그건 어디에나 있는 거예요.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돼요."
"긍정적?"
"믿어야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이니 뭐니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돼요.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하지만, 있잖아요. 믿음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해럴드는 경외감에 사로 잡혀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몰라도, 소녀는 빛의 웅덩이 안에 서있는 것 같았다. 그새 해가 움직인 것 같았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반짝거리며 선명하게 빛났다. 그가 너무 뚫어져라 바라보았기 때문인지 소녀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랫입술을 섞었다.
"제가 허접스러운 소리를 하고 있나요?"
'이런,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아주 흥미로웠어. 미안하게도 내게 종교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제 말은 그러니까. 종교 같은 거 얘기가 아니에요. 제 말은, 몰라도 믿고 달려들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달라진다고 믿고요/"
해럴드는 이제까지 이렇게 소박한 확신을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이렇게 어린 사람에게서. 소녀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래서 좋아지셨니. 응? 너희 고모 말이다. 나올 수 있다고 네가 믿어서."
"다른 게 다 사라졌을 때 그게 희망을 줬다고 하시더라고요. "29
그 때부터 퀴니를 만나기 위해 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북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1000킬로미터를 걷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잊고 있었던 인생의 수많은 추억을 되찾는 동시에 자신을 괴롭혔던 힘든 과거, -그와 말을 하지 않는 아들과 그가 배신했던 아내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럴드는 자기 계획에 섬세하게 조율되지 않은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인정했을 것이다. 그는 지도나 같아입을 옷은 물론이고 등산화나 나침반도 없었다. 그러나 이 여행에서 가장 계획이 엉성한 부분은 바로 여행 자체였다. 그는 걷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걸을 것임을 알았다. 섬세하게 조율된 요소 같은 것들은 둘째 문제였다. 계획 자체가 없었으니까. 43
그는 출발했다. 출발을 하니 이미 끝이 보였다. 57
결국 퀴니를 만나지만 너무도 달라진 그녀에게 충격을 받고 해럴드를 기다렸던 퀴니는 편안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 뒤에 밝혀지는 진실들 (스포일 주의).
소녀의 고모는 소녀의 믿음과 상관없이 일찍 암으로 죽었고, 데이비드 역시 대학 졸업 후 알콜과 약물에 절어 살다가 자살을 한다. 아들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해럴드. 이 후 모린은 해럴드가 아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원망하지만 해럴드는 나름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던 것. 지금도 여전히 아들이 보고 싶고.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과 대화하며 기다리던 모린.
해럴드의 순례를 통해 모린과 해럴드는 다시 사랑을 되찾고 데이베드를 보내주게된다.
[등장 인물]
해럴드-양조공장에서 은퇴한 60대 노인. 부모가 원하지 않던 아이, 늘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어미니의 가출, 알콜 중독에 자주 바뀌는 고모들, 16살에 아버지로부터 쫒겨나 외로운 삶을 살았고 모린과 사랑했으나 데이비드가 떠난 후 남처럼 되어비린 부부
모린- 아내.
그녀가 지금까지 해럴드를 떠나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데이비드가 아니었다. 심지어 남편이 안쓰러워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떠나지 않은 것은, 해럴드와 있을 때 아무리 외롭다해도, 그가 없는 세상은 훨씬 더 황량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147
데이비드 - 아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경멸하며 욕하고 무시한다.
캠브리지를 졸업하나 취직도 않고 술과 마약에 절어살다가 급기야 스무살에 자살
'용서해줘, 용서해줘, 너를 실망시킨 걸 용서해줘'
"할 만큼 하지를 못한 거지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퀴니 헤네시 -
버윅어폰트위드의 요양원에서 암에 걸려 해럴드에게 편지를 보낸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직장에서 따돌림 당하지만 해럴드와 단짝을 이룬다.
아들을 잃고 사장이 아끼던 유리 인형을 깨버린 해럴드를 대신해 책임을 지고 해고당한 후 홀연히 떠난다.
아버지 - 참전 후 알콜 중독, 우울증. 고모들이라 불리는 잦은 다른 여자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열여섯 살 생일에 외투를 선물하며 문을 가리켰다. 외투는 새것이 아니었다. 방충제 냄새가 났다. 안주머니에는 버스표가 있었다. 175
조엔 - 어머니.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뉴질랜드로 떠난다. 13살 생일 직전에.
네이피어 - 사장. 폭력적.
뇌만 있고 자지는 없는 놈이구먼. 150
마르티나 - 슬로바키아에서 온 여의사.
걷다가 만난 의사. 헤럴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걸을 용기를 준다
그녀의 손님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약간 이해한 뒤에 다시 떠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185
해럴드는 그들이 분명히 사무직 노동자라고 생각 했다. 기쁨을 다 짜내 버린 듯 굳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30
해럴드 당신은 예순다섯이예요. 당신은 차 있는 데까지만 걷는 사람이잖아. 39
"가끔 한 번씩 미치지 않으면 희망도 없죠." 50
그는 출발했다. 출발을 하니 이미 끝이 보였다. 57
혜럴드는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역 플랫폼에 서있는 신사의 모습, 다른 어떤 사람과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그려 보았다. 영국 전체가 마찬가지일 것이 틀림없있다. 사람들은 우유를 사고 있거나, 차에 기름을 넣고 있거나, 심지어 편지를 부치고 있다. 그리나 그들이 내부에서 감당하고있는 무시무시한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는데도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쉽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한 부분을 이루고있다. 그런 노력의 외로움.118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걷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질적인 면을 받아들이는 여행이기도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땅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열려있는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속을 터 놓고 싶어했고, 그는 자유롭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자유롭게 그들의 한 부분을 가지고 갔다. 그 동안 너무 많은 것을 태만히했기 때문에 이 정도 작은 관용은 퀴니와 과거에 빗지고있는 셈이었다.118
그는 걸으면서 이십 년동안 피하려고 했던 과거를 묶은 끈을 풀었고, 이제 과거가 특유의 거친 에너지를 뿜으며 머릿속에서 재잘거리고 장찬을 치고 있었다. 125
걷는다는 생각은 미친 사람이나 할 법한 것이고 전혀 그답지도 않았지만.... 심지어 걷는 것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있었다. 해럴드가 처음으로 모든 역경에 맞서서 자신이 믿는 일을 한다는 점만으로도. 147
과거는 과거였다. 자신의 출발점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176
해럴드는 자신이 털어 놓은 것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퀴니와도 마찬가지였다. 차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해도, 그녀가 그것을 자신의 생각들 사이 어딘가에 안전하게 챙겨 둘 것이라고, 그것으로 자신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들이대며 자신에게 맞서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우정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우정없이 살아온 그 모든 세월을 후회했다.180
시작은 꼭 한 번이 아닐 수 있었다.198
"좀 특별한 치료법이네요.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내셨는지 모르겠어요. 어찌면 이런 게 세상에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생각은 좀 줄고 믿음은 좀 늘었으면, " 246
거리가 살아나고 빛이 자신감을 가지면서 새들이 한꺼번에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잿빛, 크림빛, 복숭앗빛, 쪽빛을 거쳐 파란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250
그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들로부터 멀어져 한낱 행인이 될 때 낯선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52
받는 것도 주는 것만큼이나 선물이었다 . 둘 다 용기와 겸손을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52
걷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왜 발이 달려 있겠어요? 258
리치가 단어를 탄약으로 쓰지 말고 그 진정한 의미를 존중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291
믿음을 잃었을때
혹시 세상만사에 의미를 잃고, 당신이 선한지 아닌지 그런 문제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면 훨씬 더 부드러운 치료책도 준비되어있다. 중늙은이 해럴드 프라이는 은퇴자로 늘 의기소침해서 지낸다. 아내와 관계는 냉랭하고 장성한 아들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친구인 퀴니로부터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는 당장 답장을 쓴 뒤 부치러 나간다. 그런데 그 길에 우연히 주유소 여직원과 나눈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는 편지를 부치려던 우체통을 지나쳐 계속 걷는다. 데븐에서 퀴니가 살고 있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말이다. 그는 자신이 걷는 동안에는 퀴니가 절대 죽지 않으리라 굳게 믿으며 발길을 재촉한다.
길 위에서 해럴드의 신념은 몇 번이나 시험에 든다. 하지만 그는 신의 섭리를 굳게 믿은 채 필요한 것 이상은 받지 않고, 사람들의 집에서 묵지 않고 노숙을 하며 여행한다. 그 옛날의 순례자처럼 말이다. 마침내 언론에서 해럴드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그는 모두가 만나고 싶어 하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 순례자가 된다. 믿음은 전염되는지도 모르겠다. 먼 곳에 있던 아내 모린은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 퀴니는………. 음, 그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삶이나 신, 사랑, 타인이나 자신에게 믿음을 잃어서 눈앞이 캄캄하고 사는 게 삭막할 때, 이 소설들을 읽어라. 그러면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주유소 아가씨의 말이 옳으니까 말이다. “믿음만 있다면 뭐든 하실 수 있어요.”
<소설이 필요할 때 (The Novel Cure)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Ella Berthoud) & 수잔 엘더킨(Susan Elderkin)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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