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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잠 못자겠네... ㅡ,.ㅡ - 책에도 19금 필요한거 아녀????
"오늘 밤에도 잠 못자겠네... ㅡ,.ㅡ - 책에도 19금 필요한거 아녀????" 내용보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솔직히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대체 이 책 제목이 왜 이런지 몰랐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피가 낭자한, 무서운 내용이데, 대체 노인은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게다가 곰이는 영화를 보면 외국 사람 얼굴을, 책을 읽으면 외국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상당히 힘들어진다. ㅡ,.ㅡ 이 책도 간만에 읽는 소설인데 외국
"오늘 밤에도 잠 못자겠네... ㅡ,.ㅡ - 책에도 19금 필요한거 아녀????" 내용보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솔직히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대체 이 책 제목이 왜 이런지 몰랐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피가 낭자한, 무서운 내용이데, 대체 노인은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게다가 곰이는 영화를 보면 외국 사람 얼굴을, 책을 읽으면 외국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상당히 힘들어진다. ㅡ,.ㅡ 이 책도 간만에 읽는 소설인데 외국 소설이라 남들보다 읽기가 조금 더 힘들었지 않나 한다.. ^^;;;)
 
처음에 책을 들면 정말 어렵다. 특히 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더더욱 "여자"로 태어나서 총에는 젬병이다. 으아~~ 그런데 처음에는 정말 여러가지 묘사나 설명이 없는 정말정말 사막처럼 건조한 문체에 질려버린다. (솔직히 중간에 살짝 포기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읽었더니 손에서 책을 놓기가 싫어진다. 그렇다. 그 건조함에 빨려 들어간다. 너무나 간결해서 "대체 이게 누구 대사야?"라는 생각에 앞으로 다시 되돌아 가서 읽기도 몇 번. 그런데 여기서 코캑 매카시의 대단함이 나타난다. 이렇게 간결하게 앞뒤 설명이 없으면 당연히 그 장면이 상상되지 않으리라 생각되는 것이 당연지사. 그렇지만... 이렇게 짧은 문장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너무나 생생히 내 머릿속에 펼쳐진다. 내가 무서워하던 <<추격자>>. 그 영상에 새빨간 이 책의 표지와 피가 낭자한 장면장면들이 겹쳐진다. 그래.. 나 오늘 밤에도 또 잠 못잔다. ㅡ,.ㅡ  눈 밑 다크써클.. 어쩔껴.. ㅠㅠ
 
어떤 일에도 댓가는 반드시 치뤄진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240만 달러 앞에 자신의 운명을 던져버린 모스. 그래야만 했을까? 문득 자신도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느낀다. 그래서 아내에게 피하라고 하면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한다. 그 돈을 쓰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자신마저도 눈을 감아야한다면 과연 그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왜 다시 범죄현장으로 되돌아 간 것일까? 전혀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냥 행동만이 있을뿐이다. 모스는 처음 등장시 아무렇지 않게 영양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래... 자신이 영양의 처지에 놓이게 될 줄은 미처 몰랐겠지... 그리고 자신이 도망하면서 우연히 쏜 총에 맞아 아무 영문도 모르고 죽은 한 노인.
 
절대 악으로 표현되는 시거. 그는 정말 말 그대로 "까칠함"의 지존이다. 그에게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저 자신만의 논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한 번 더 읽을 떄는 꼭 시거가 쏘아 죽인 사람 수를 세어보고 싶다. 나쁜 놈... ㅡ,.ㅡ) 죽이고 죽이고 죽인다.. 때로는 이유없이 살인을 결심하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동전을 던지기로 살인 목록에서 지워주기도 한다. 시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돈을 찾아주는 이유 또한 너무나 말도 안된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 참 말도 안된다. 정말 죽이고 죽이고 죽이지만 자신은 죽지 않는 시거. 정말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가끔은 총을 이렇게 쉽게 소지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벨... 글쎄.... 벨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인간적이고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유일한 사람. 벨은 과연 행복했을까? 그것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겠다.
 
작가가 이유없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아니겠지만, 곰이표 해석으로 들어가자면~
모스 : 살기 위해 계속 세상에 SOS 신호를 보내는 모스부호
시거 : 뭐 꼭 그런건 아니지만~ "시가"라는 담배 이름에서 "백해 무익한 정말 나쁘고 악질적인 존재"
벨 : 누군가가 생존하고 싶어 계속 그에게 벨을 울린다~
그냥 살짝쿵 이런 생각을 해봤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정말 피가 낭자한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나니 더더욱 궁금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 장면은 영화에서 이렇게 표현해야지~하는 생각도 많이 하면서 참 재미나게 읽은 책이다. 아무래도.. 또 영화를 봐 버릴 것 같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불면의 밤들.. (어쩔거야~ 매카시씨 책임지셩~)
 
내용도 참 좋았지만, 편집자의 센스는 더더욱 빛을 발한다. 쪽 표시를 오른쪽에 몰아서 해주는 센스와 각주를 핏자국으로 해주는 기막힌 센스, 가끔 바탕에 등장하는 튀어있는 피들. 편집도 정말 센스있게도 하셔서 보는 재미가 더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 추천을 해주고 싶은 책이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조금 힘드니 참고 견디면 좋은 시간이 오리라 믿으니 처음에 좀 어렵다고 책을 던져버리는 우매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길~)
p*****r 2008.03.04. 신고 공감 3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이 궁금해할 모든 것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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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기에 앞서이 글에는 엄청난 양의 스포일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오직 읽은자들을 위한 글이다. 그러니 읽지 않은 사람은 이 글을 보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을 선택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이곳에 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세상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당신이 궁금해할 모든 것을 적었다" 내용보기

이야기 하기에 앞서


이 글에는 엄청난 양의 스포일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오직 읽은자들을 위한 글이다. 그러니 읽지 않은 사람은 이 글을 보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을 선택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이곳에 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세상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는 일이 그렇다. 


이 책을 다섯 번이나 읽고 나서야 이 글을 쓴다.



루엘린 모스


베트남 참전 군인 루엘린 모스는 저격용 라이플의 조준경을 통해 황량한 대지를 바라본다. 그 위엔 영양떼가 있다. 모스는 다시 한 번 조준경의 거리를 맞추고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린 뒤 숨을 가다 듬는다. 피융! 총알이 영양의 대퇴부에 꽂히고 소리가 뒤따라 날아온다. 영양들이 달리기 시작하고 대지는 엷은 먼지 구름에 휩싸여 뿌옇게 흐려진다. 모스는 핏자국을 따라 영양을 추적한다. 그의 목에는 멧돼지 이빨 목걸이가 걸려 있다. 그는 사냥꾼이다. 그러나 핏자국의 끝에서 25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발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처지가 피를 흘리는 영양의 처지와 뒤바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모스는 욕망의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의 이름 Moss가 나방을 뜻하는 단어 Moth와 흡사하다는 사실은 놀랄 것도 아니다. 그는 가방을 들고 황량한 대지를 가로질러 트럭에 도착해 뒷좌석에 가방을 놓고 점화 플러그에 키를 꼽는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을 때 덜덜거리는 엔진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육중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톱니바퀴는 모스를 집어삼켜 산산조각을 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으스러지는 뼈소리를 들으며 그는 한 남자와 마주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안톤 시거다. 사상 최악의 사냥꾼이다.



안톤 시거


안톤 시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 안톤 시거는 '죽음'을 상징한다. 시거는 국경지대에서 남자 하나를 죽이고 보안관에게 잡힌다. 보안관의 사무실에서 시거는 손에 찬 수갑을 보안관의 목에 걸어 목졸라 죽인다. 시거는 임박한 위기나 죽음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의연하다. 언제나 무표정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거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죽지 않을 뿐더러 가둘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을. 시거는 사실 의도적으로 잡혔다. 의도적으로 잡히기 위해 그는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까 국경지대에서 저지른 두 건의 살인은 시거가 자기 자신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에 불과한 것이다. 자기 존재의 확인이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면 그 존재의 실체는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거의 동전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거와 마주친 자들은 거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간혹 기회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시거는 동전을 던져 그들로 하여금 앞, 뒤를 맞추게 한다. 맞힌 자는 죽지 않는다. 이것은 그저 변덕스런 절대자의 놀이인가? 그렇지 않다. 시거의 동전은 한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감당하기에 동전 던지기는 너무 사소한 선택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사소한 선택이란 없다. 살면서 내린 선택들은 돌고 돌아 언젠가 눈덩이처럼 커져 돌아온다. 그 눈덩이를 마주하는 날이 우리 삶의 청산일이다. 그 날이 바로 죽음이 우리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날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단지 동전의 앞뒤를 맞추지 못해 죽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저 마지막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 선택의 뒤로 무수한 선택이 사슬처럼 얽혀 우리가 태어난 날에까지 가 닿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안톤 시거의 정체로 돌아와, 그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시거가 '죽음'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시거를 쫓는 보안관 벨은 시거를 목격한 아이들을 찾아가 그의 인상착의를 묻는다. 아이들은 시거가 그저 보통 사람 같았다고 말한다. 아주 평범한,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죽음이 아주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두운 망토를 두른채 큰 낫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는 생명이 태어나는 그 순간 바로 나의 죽음도 탄생한다. 나와 죽음은 쌍둥이인 것이다. 죽음은 나와 너무 닮아 있어서 혹은 너무 평범하기에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비로소 내 손목을 잡은 그 죽음이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주 오랫동안 내 옆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죽음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당신이 아무런 눈치도 못챈 게 전혀 놀라울 것 없다는 듯이.


하지만 시거를 죽음으로 해석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그가 가진 숙명성이다. 시거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죽음의 융단이 깔린다. 그 누구도 시거를 피할 수 없다. 시거는 돈가방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웰스(범죄 조직은 돈가방을 찾기 위해 시거를 보내지만 통제할 수 없는 그를 막기 위해 다시 웰스라는 청부업자를 파견한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거: 가방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웰스: 그래.

시거: 나는 더 좋은 걸 알고 있지.

웰스: 뭔가.

시거: 가방이 어디로 갈지.

웰스: 어디인가.

시거: 나한테 와서 내 발밑에 놓일 거야.

(p.195)


그리고는 산탄총으로 웰스의 얼굴을 쏴 그의 머리를 끈적이는 고깃덩이로 만든다. 시거에게 이 모든 소동의 해결은 그저 시간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이 어디로 가든 어디에 숨든 그는 결국 시거(=죽음)를 만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의 앞에 선 모든 생명은 무로 돌아가고 돈가방은 시거의 차지가 된다. 사람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숨막히는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시거는 단 한 번도 그들을 쫓은 적이 없다. 시거는 그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 기다릴 뿐이다. 죽음을 피해 열심히 도망쳤다고 생각한 그들은 사실 필사의 힘을 다해 죽음의 품으로 달려든 것이다.





텍사스에서 온 악마


이 부분은 나의 해석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참고 자료를 찾았는데 거의가 쓰레기 같은 글이었다. 그 쓰레기 중에는 꽤 많은 조회수와 추천이 있는 글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하루 방문자가 4명 밖에 안되는 블로그에서 이 글을 발견했다. 나는 이 글을 소개해야만 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gulchance&logNo=60126538922


이 글의 요지는 '잘 살아 보자'는 달콤한 거짓말이 어떻게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 또 그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열풍과 미국의 패권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알려주는 영화가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것이다


레이건이 시작한 재앙은 텍사스 출신의 두 대통령(이 소설의 배경은 텍사스다) 죠지 부시 부자에 의해 완성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버지는 걸프전을 아들은 아프간, 이라크 전쟁을 벌여 전세계에 죽음의 융단을 깐다. 코엔 형제는 2007년에 이 영화를 개봉한다. 그것은 미국 대선이 있기 1년 전이었다. 코엔 형제는 돈에 혹한 루엘린 모스의 선택이(잘 살아 보세에 속은 당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살인마를 데리고 왔는지(텍사스 출신의 두 살인자 죠지 부시 부자)를 보여줌으로써 곧 있을 선택이(대선)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려 한 것이다. 미국은 2008년 11월 4일 오바마를 선택해 회복의 여지를 만든다. 그러나 한국은 당시 이명박을 선택한다.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한다. 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큼 내용과 제목의 연관성이 깊은 소설이 없다고 생각한다.


늙은 보안관 벨(이 소설은 도망자 모스와 추격자 시거 그리고 그 둘을 쫓는 보안관 벨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은 틈날 때 마다 세태를 한탄한다. 이 나라 어딘가에는 노인의 사회보장기금을 가로채기 위해 그들을 납치한 뒤 앞마당에 묻은 젊은이들이 산다. 자기의 관할 구역에선 몇일 사이에 수 많은 사람이 그것도 소를 잡을 때 쓰는 스턴건에 이마가 뚫린채 살해 당한다. 범죄자들은 보안관을 향해 샷건을 쏘고 그들을 목졸라 죽이고 차트렁크에 넣어 불태운다. 곳곳에 마약이 있다. 학생들이 그것을 산다. 뉴스에는 끔찍한 사건 사고가 줄을 잇지만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소식들이다.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뉴스를 흘려넘긴다. 이곳은 분명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노인이 살아가기엔 이 세상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강팍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제목의 타당성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이 소설은 모스와 시거의 추격전 사이사이에 그 둘을 쫓는 보안관 벨의 독백이 실린다. 그러나 이 독백은 이야기의 전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숨막히는 추격전의 흐름을 툭툭 끊어버리기까지 한다. 이것은 의도적이다. 작가는 우리가 현명한 노인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기 원하지만 벨의 독백은 그저 걱정 많은 노인네의 잔소리처럼 느껴진다. 시간의 세례를 받은 노인은 그 누구보다 삶의 비밀에 더 가깝게 다가간 사람이며 그 누구보다도 사는 법을 잘 아는 사람임에도 세계는 언제나 젊은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누구도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역사 모든 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노인의 아이러니다.


안톤 시거의 살인 행각이 결국 미해결로 정리됐을 때 벨은 보안관을 관두기로 결심한다. 마지막 근무날 그는 군청을 나와 자신의 트럭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는다. 벨은 자신을 짓누르는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패배였다. 영락 없는 패배였다. 죽음보다 더 비통한 패배(p.336).


그러나 이것은 벨의 착각이다. 그는 시거와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죽음이 싸움을 받아주지 조차 않았기 때문이다.


모스가 죽고 난 직후 벨은 알 수 없는 예감에 사건 현장인 모텔을 다시 찾는다. 그때 먼저 와서 돈가방을 찾은 시거가 주차장에 앉아 벨을 바라본다. 벨은 그곳에 시거가 왔다 갔음을(모스는 시거와 멕시코 범죄 조직, 두 일당에게 쫓기는데 그를 죽이는 건 멕시코 범죄 조직이다. 시거는 나중에 사건현장을 찾아와 숨겨둔 돈가방을 찾아간다) 알아채고 주차장을 유심히 바라본다. 벨은 주차장에 시거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는 총을 들고 주차장으로 나가 순찰차에 탄 뒤 모텔을 빠져 나온다. 모텔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온 벨은 무전기를 들고 두 대의 순찰차를 부른다. 그들은 모텔 주차장으로 쳐들어가지만 시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벨은 지원을 나온 보안관을 향해 아무래도 우리가 놓친 것 같다고 말한다. 벨은 여기서 첫번째 착각을 한다벨이 시거를 놓친 게 아니다. 


시거가 벨을 놓아준 것이다


노인은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핵심에 뛰어들기 원하지만 그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죽음은(시거) 그저 가만히 앉아 자기를 기다리기나 하라는 듯 노인을 무시한 채 유유히 사라진다.


노인에게 죽음보다 비통한 것은 패배감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용함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한 세계. 과감히 죽음과 대항하려하지만 죽음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 세계. 그 세계야말로 'No country for old men'이다.





꿈의 해석


이 소설에는 두 개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둘다 보안관 벨의 꿈이다. 첫 번째 꿈은 벨이 아버지가 준 돈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 돈 같은 건 잊고 그것을 찾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돈에 대한 코맥 매카시의 부정적 태도는 이 소설 전반에 이를 뿐만 아니라 최근작인 <카운슬러>에 까지 이어진다. 코맥 매카시는 이 나라의(미국) 모든 문제가 돈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 번째 꿈은 조금 복잡하다. 나는 여기에 그 전문을 옮기겠다.


두 번째 꿈에서 우리 둘 다 꽤 옛날로 돌아갔고 내가 밤중에 말을 타고 산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산 속의 협곡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날이 춥고 땅에 눈이 쌓여 있었고 아버지는 말을 타고 나를 지나쳐서 계속 나아갔다.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는 단지 나를 지나쳤을 뿐이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가 나를 지나칠 때 나는 아버지가 옛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을 머금은 뿔피리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안에 담긴 불빛으로 뿔피리를 볼 수 있었다. 달빛 색깔과 비슷했다. 꿈에서 나는 아버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그토록 춥고 어두운 세상의 어딘가에서 불을 피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언제든 닿으면 아버지가 거기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p.339).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정직하고 올바르게 산다. 그들은 눈보라를 뚫고 어둠을 넘어 얼음 위에 불을 피우는 사람들이다. 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리고 벨의 전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다. 벨은 언젠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 그 불을 다시 뿔피리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때는 벨의 차례다. 그 불을 가슴에 품고 말을 달리는 것 말이다.


불을 옮기는 자에 대한 의미는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에서 더 명확하다.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아마 위의 해석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해보려 한다. 


달빛 색깔과 비슷한 그 뿔피리는 죽음이다. 달은 때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지나쳐 죽음을 피워 놓고 나를 기다린다. 그곳이 죽음의 세계라면 나는 결국 그곳에 닿을 것이고 그곳에 아버지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불을 피워 놓고 기다렸기에 죽음의 세계는 더이상 어둡고 추운 곳이 아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도 결국엔 끝이 있다. 끝 이후엔 다행히 그 어떤 소동도 없다. 이 잔인한 세계에선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인 것이다.

s*******r 2014.02.2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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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같은 삶을 향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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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들도 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알아차린다. 어쩌면 당신은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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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 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그가 한 일을 보았다. 한때 나는 그 자의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내 운명을 걸고 그 자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 .........  

당신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들도 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알아차린다. 어쩌면 당신은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영혼을 내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러지 않을테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p.12,13)


장담컨데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고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무슨 따분한 제목이란 말인가. 실제로 나도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이는 경로효친 사상 혹은 사회복지를 새삼 강조하고자 하는 코맥매카시의 메시지가 아닐까 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더 로드'를 먼저본 터라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는 책을 썼으니 이번엔 아마도 아들이 아버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일거라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성격 급하게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책의 제목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사실 노인을 위한 암시라기보단, 노인을 향한 경고에 가깝다. 

[사진은 영화의 스틸컷을 첨부했습니다]


'노인'이 갖는 상징성


노인을 향한 경고라는 것은 나이든 사람이 아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장밋빛 뺨, 양두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의 싯귀를 읽고 나서 다시 맨 위의 보안관 벨의 독백을 보자. 그는 보안관이지만 안톤 시거 같은 살인마와 다시 마주치고 싶어하지도 않고 영혼을 걸지도 않겠다고 한다. 그는 노련하기 때문에 모든 사태를 쉽게 파악하고, 넘치는 지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자신의 영혼을 내건 모험을 하지도 않으며, 적극적으로 시거를 잡으려 하지도 않고 다만 가만히 서서 상황이 호전되기만을 기다린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그저 많이 알고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행동하지 않는 이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 같은 말이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고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겁만 먹고 두려워하는 우리 대부분의 모습을 표현한 단어이다.


꿈에서 나는 아버지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그토록 춥고 어두운 세상의 어딘가에서 불을 피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언제든 닿으면 아버지가 거기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p.339)



벨 VS (쉬거 혹은 모스)


소설의 전체 대결구도는 물론 시거와 모스이다. 모스는 쫓기는 사람이고 시거는 쫓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 둘은 또 벨 보안관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이 한 편에 서서 벨과 대조를 이루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스는 우연한 기회에 거액의 돈을 손에 넣는다. 이 돈은 마약상들의 거래 과정에서 우연히 모스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모스는 돈에 대한 열정으로 인생을 내던진다. 시거 또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 또한 돈에 대한 열정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 열정은 돈보다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둘의 열정을 돈을 가지기 위한 젊은이의 무모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소설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단순치가 않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무엇이든 자신의 인생을 쏟아 부을 무엇인가가 있었다면 삶을 내던졌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열정이 빗나간 것이거나, 사회가 만든 기준에 맞지 않는 저급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라며, 사회가 만들어 놓은 good과 evil 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good 과 bad를 행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안된다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내 열정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면 하는 것! 그것이 시거와 모스가 가진 치열함이다. 



동전의 양면, 원칙(?)있는 살인




매우 전형적인 살인마의 행태를 보여주면서도 또 이전의 인물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은 단연 시거이다. 그의 살인행태가 이전 다른 소설이나 영화의 그것과 비슷한 이유는 무감각 하기 때문이다. 그저 본인에게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죽이고도 일말의 감정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 그에게는 그가 갈 길만 남아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에게는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지만, 동전이 뒤집어져서 펼쳐지면 그냥 죽이지 않기도 한다. 그건 그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피해자가 운이 좋은 것이다. 그는 '운'의 존재를 인정한다. 


22년이나 굴러다니던 동전이 상점 주인의 목숨을 구해주듯이, 우연히 선택한 길에서 살아난 사람은 그저 운이 좋은 것이다. 그는 그런 운명의 시계까지 억지로 되돌려 놓지는 않는다. 그는 나름 원칙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잔인해서 차가 필요하면 그냥 운전자를 죽일 뿐이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가진 자를 죽이려 할 뿐이다. 단, 그가 운을 인정하는 범위는 자신의 라인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만이다.


1958년, 22년을 떠돈 끝에 여기에 온거요. 그리고 지금 여기 있소....

앞면이거나 뒷면이겠지. 당신이 말해 보시오. 어서.

내가 이기면 무엇을 얻는 겁니까?

전부를 얻소. 시거가 말했다. 전부.

(p.68)



욕망의 시험양 모스


모스는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캐릭터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가 겪게될 난관에 비하면 너무 노멀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평범하게 살면서도 그런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갖지못하지만 갖고 싶은 것들을 탐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노멀한 욕망이지만, 그 대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의 수준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모스는 우연히 넣은 200만 달러의 돈으로 인해 인생 자체가 큰 시험에 빠진다. 운명에 대항해 보려고도 했고 그것을 피해보려고 발버둥도 친다. 하지만, 시거라는 큰 장애물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결국, 부인도 잃고 자신도 잃고 돈도 잃고, 모든 것을 읽고 그에게는 이루지 못한 욕망만이 신기루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꿈꾸는 대부분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거기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벨처럼 멀리서 관망하며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던지, 아니면, 모스처럼 '난 내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2.09.26.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코앤형제<코맥 매카시<하비에르 바르뎀
"코앤형제&lt;코맥 매카시&lt;하비에르 바르뎀" 내용보기
대부분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더 유명하다.'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다빈치 코드' 를 비롯하여 셜록에 이어 최근 오리엔탈 특급살인까지.그런데 가끔 책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경우가 있다.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파이트 클럽'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그리고 코앤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제목에서 밝혔듯이 단언컨데 이 소설은 영화보다 뛰어나다.오해는
"코앤형제&lt;코맥 매카시&lt;하비에르 바르뎀" 내용보기

대부분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더 유명하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다빈치 코드' 를 비롯하여 셜록에 이어 최근 오리엔탈 특급살인까지.

그런데 가끔 책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경우가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파이트 클럽'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그리고 코앤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에서 밝혔듯이 단언컨데 이 소설은 영화보다 뛰어나다.

오해는 말자. 코앤 형제가 연출을 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니.

오히려 코앤형제의 연출은 아주 칭찬받아 마땅하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소설에서는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소설에서 빠진 인물도 등장.

내가 작가를 한 수 위로 치는 까닭은 이 작품이 던지는 메세지에 있다.

영화는 소설을 아주 적절히 가지치기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쓸데없이 곁가지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큰 줄기와 흐름을 따라오도록 구성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처음 작가가 의도한 메세지가 아닌

감독이 던지고 싶은 메세지를 보여준다.(당연하겠지만)

이 두 메세지의 차이.

그것이 내가 소설을 한 수 위로 치는 결정적 이유이다.


모든 게임에 최종 보스가 있듯

이 소설에도 끝판왕이 있다.

그런데 그 끝판왕을 창세기의 창조주마냥 스크린에 부활시킨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하비에르 바르뎀이다.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다.

전성기 시절 외계인이라 불린 호나우지뉴, 그가 레알 팬들로 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엘클라시코 경기.

그 시합에서 호나우지뉴는 인간계를 넘어 외계로 진출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엘클라시코이고,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 영역을 외계까지 넓힌다.

영화를 본 뒤 소설을 읽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셰익스피어라 하더라도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닌 다른 안톤시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영화와 소설 둘 다 안 봤다면

아무 순서로 봐도 좋다. 단, 아마도 3번 보게 될 것이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고 다시 한 번 영화를 보기.

혹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뒤 다시 한 번 소설을 읽기.



l********r 2017.12.04.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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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얼마 남지않은 보안관 벨의 관활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찌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 그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것을 직감한다. 거기에 현장에 남은 트럭으로 신원을 알아 낸 남자가 모스라는 평범한. 이제는 그렇지 않은 남자라는 것도 알게된다. 그가 사건 현장에 있던 돈 가방을 가져갔고, 그는 위험에 처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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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얼마 남지않은 보안관 벨의 관활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찌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 그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것을 직감한다. 거기에 현장에 남은 트럭으로 신원을 알아 낸 남자가 모스라는 평범한. 이제는 그렇지 않은 남자라는 것도 알게된다. 그가 사건 현장에 있던 돈 가방을 가져갔고, 그는 위험에 처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그의 아내에게 남편의 위험을 알리고 법의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아내를 만난 그는 최선을 다해 남편을 도울 테니 혹시 연락이 오면 자신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리를 뜬다. 그후 보복이 분명한 사건현장에 도착해 자신이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자신의 일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꽤 오래 전에 영화로 봤었는데, 책으로 읽으니 장면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때는 그저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고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책으로 읽어보니 확실히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n********r 2016.06.2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총 가진 놈이 장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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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가진 놈이 장땡인가?     퓰리쳐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코맥 매카시의 작품이다.. 게다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코엔 형제가 영화화하여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주요 4개부문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아주 오래전에 숨겨진 명작이란 그런 종류의 영화관련 기사에서 알게 된 영화중에서.. 바로 코엔 형제의 데뷔작이기도 한 1984년작인 'Blood Simple'이란 영화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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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가진 놈이 장땡인가?

 

 


퓰리쳐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코맥 매카시의 작품이다..

게다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코엔 형제가 영화화하여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주요 4개부문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아주 오래전에 숨겨진 명작이란 그런 종류의 영화관련 기사에서 알게 된 영화중에서..

바로 코엔 형제의 데뷔작이기도 한 1984년작인 'Blood Simple'이란 영화를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국내에선 거의 안 알려진 B급영화라 그 영화를 구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었고..

운좋게도 그 영화를 비디오로 대여해서 볼 수 있게 되었었다..

다소 촌스런 제목인 '분노의 저격자'란 이름으로 출시가 되었었는데..

코엔 형제의 매니아라고 밝힌 어느 블로그의 말처럼..

그 당시엔 거금 3만5천원을 주고 비디오 테이프를 사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던것이..

지금은 3천9백원이란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DVD 타이틀을 구할 수 있다고 하니..

세상은 참 많이도 변한것 같다..

 

 

뜬금없이 코엔 형제의 데뷔작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사실이..

역시나 이 이야기는 코엔 형제가 영화로 만들면 제일 잘 만들겠다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Blood Simple'이란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스피디하고도 독특했던 장면전환 때문인데..

예를들면 침대 시트에 물든 핏자국을 누르면 화면이 디졸브 되면서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으로 바뀌는식의..

독특하고 쉴새없이 장면이 바뀌던 그런것들..

그게 바로 그 영화가 돈 얼마 안쓴 티는 팍팍내고 촌스럽긴 하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반전.. 그리고 당시에는 발군의 속도감으로..

비슷한 시기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그 후의 '딕 트레이시', '굿 펠라스' 등의 제대로 된 기관총으로 무장한 갱 영화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던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이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모스와 시거의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예고편을 봐서 그런지 그런 장면장면들이 쉽게 눈에 그려지는..

선혈이 낭자하는 총격전..

미국과 맥시코 국경지대 그 황량한 사막에서 자신의 몸을 숨기며..

어느 허름한 모텔에서 총에 맞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료해나가는 디테일한 그 모습들..

그런 장면 하나하나들은 마치 진짜 한 편의 영화를 보는것 처럼..

무척이나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하지만 책장을 다 덮고 난 뒤의 느낌은 여러모로 상당히 찝찝하다..

그럴 기분이 들 정도로 많은 의문을 남기고 끝이난다..

스포일러가 될 까 약간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몇 가지를 얘기해 보자면..

 

 

과연 이 소설이 전해주는 주제라던지 메세지를 도통 모르겠다..

필자의 이해력이 허접한 수준이라 그렇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쉬운말로 '총 가진 놈이 장땡이다' 이 말인가??

결국엔 아무런 얻는것도 없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게 되는 모스..

그의 도망장면에서 순간순간 발휘되는 기지에 감탄하고 내가 얼마나 그토록 응원했었는데 말이다..

생사 조차도 불분명하게 그리고 또 그 동기도 애매모호하게 결국엔 신비스런 존재로 남게되는 시거..

상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선에서의 케릭터상 보안관 벨은 그래도 한 건 해줘야 하지 않았을까??

 

 

일단 따옴표도 없고해서 읽기에 상당히 불편했다고들 말은 하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박진감 넘치고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긴 했는데..

차라리 그 분위기를 쭉 이어나가서 뭔가 명확하게 결말을 짓고 어떤 뚜렷한 메세지를 던져 주었으면 참 좋았을법 하다..

말미에 벨을 통해서 그러한 시도를 하긴 하는것 같아 보이는데..

해석하기는 상당히 난해하고 생뚱맞다는 느낌은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코엔 형제의 데뷔작 'Blood Simple' 처럼 글을 통해서도 그런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훌륭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명성에 비해 별점은 후하게 못주겠다..

별 다섯개의 영광은 책 뒷표지에 나온것처럼..

저명하신 미국 언론들에게 양보하는 바이다..

 

 

 

 

 

 

 

 


 

t******4 2008.03.0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오래가는 여운, 정말 끔찍한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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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쯤에 왕창 구입한 책들 중에서 가장 아껴서 마지막까지 안 읽고 있던 책이었다. 가장 아꼈다는 말은 가장 기대가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고 나서 생각보다 오래가는 그 여운을 잊지못하던 참이었다.   '로드'와 비교하자면 분위기는 대략 비슷하지만(어둡고 황량하다는) 로드의 문체가 훨씬 간결하고 압축적이었다. (그게 더 낫다는 뜻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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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쯤에 왕창 구입한 책들 중에서

가장 아껴서 마지막까지 안 읽고 있던 책이었다.

가장 아꼈다는 말은 가장 기대가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고 나서

생각보다 오래가는 그 여운을 잊지못하던 참이었다.

 

'로드'와 비교하자면

분위기는 대략 비슷하지만(어둡고 황량하다는)

로드의 문체가 훨씬 간결하고 압축적이었다.

(그게 더 낫다는 뜻은 아니고, 단지 비교일 뿐이다.)

그리고 '로드'가 훨씬 더, 독자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암시하는 바를 추적해가야 한다.

 

'숨막히게 진행'하기 위해서인지

이 책에서는 간결하긴 하나 갑자기 내용이 건너뛰기를 한다.

물론, 드라마 한 편을 빼먹고

다음 편을 보는 정도의 타격은 아니지만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다음 장면(마치 영화처럼)으로

넘어가서 '아.. 얘가 죽었었구나.'라는 걸 독자 스스로

유추하게끔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조금 어렵기도 했다.

특히 눈앞에 선혈이 낭자한 것 같은 묘사들 때문에

상상력을 스스로 통제해가며 보는 것도 좀 힘들긴 했다.

 

이 책의 압권은 줄거리보다는

보안관 벨의 독백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짙게 느껴지는 건

흘러가는 세월과 바뀌어가는 세대와 세태에 관한

한숨, 염려, 어쩔 수 없음에서 오는 무기력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보안관으로 근무해오면서 느꼈던 건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그걸 벨 입장에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봐도

답이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인 거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끔찍한 외부세계를 관찰하고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p.217

 

'흔히들 베트남이 이 나라를 굴복시켯다고 합니다.

나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전부터 이미 글러먹은 나라였소. 베트남은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셈이오..... 그런 식으로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하느님 없이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다음 전쟁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모르겠어요. 짐작도 못하겠소.' p.323

 

그 절망감, 그리고 결국 벨은 보안관을 그만둔다.

벨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그 독백들이(약간 연한 글씨체)

그 끔찍한 살해현장과 추격전 속에서

잠시잠시 하나의 시점으로 돌아와 사건을 관조하게 만든다.

 

이 사람의 책은 이런 여운이다.

'로드'도 그랬다. 막상 읽을 때는

왜 이 책이 그렇게 찬사를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운이 진해져간다.

생각할 거리들을 군데군데 흘려놨기 때문일까.

 

혹시, 저 벨의 시선은 작가의 시선과 일치하는 걸까..

작가를 만나게 되면(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 점을 가장 묻고 싶다.

정말 무서운 건

갈수록 끔찍해져가는 범죄와 마약, 어린 범죄자들이 아니라

그렇게 변해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하는 건지도 모른다.

w***r 2009.11.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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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코맥 맥카시의 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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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책 앞에 실린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도 나오듯이, 원래 제목은 이게 맞다. 영화와 책, 모두가 제목을 살짝(아마도 알면서도) 바꾸었다. 더 멋있어 보여서?^^   우리나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지는 오래되었다. 소설에서 맹목적인 폭력으로 비유할 만한 생존경쟁, 빠르게 변화하는 가치관, 새로운 패션이 창조하는 새로운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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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책 앞에 실린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도 나오듯이, 원래 제목은 이게 맞다. 영화와 책, 모두가 제목을 살짝(아마도 알면서도) 바꾸었다. 더 멋있어 보여서?^^

 

우리나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지는 오래되었다. 소설에서 맹목적인 폭력으로 비유할 만한 생존경쟁, 빠르게 변화하는 가치관, 새로운 패션이 창조하는 새로운 인종, 낡고 오래된 것에의 냉담함, 그리고 노약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무능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들. 노인은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 지혜를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경쟁력 없고 소비력 없이 투덜대기만 하는 '뒷방 늙은이들'일 뿐이다.

 

서부극을 표방하는 이 소설에서 제목이 말하는 것도 이와 뭐가 다르랴. 보안관 벨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 지역민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보안관이 된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고 아직도 그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참전 용사'는 우익이니 뭐니 하는 말로써 소외당한다. 우익이니 보수니 하는 말들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벨이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을 비롯한 그들이 '먼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아내와 자식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모습을 보면 사람은 격하게 흥분하는 게 맞다는 사실이다.

 

중간중간 이러한 벨의 나레이션이 삽입되면서, 거대 조직의 돈가방을 갖고 튀는 모스와 모스의 뒤를 쫓는 악의 화신 시거, 그리고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로 간간이 등장하여 총질을 해대는 '조직맨들'의 유혈낭자한 추격전이 전개된다. 책 뒤의 옮긴이의 말에 있듯이, '벨의 진심어린 독백'은 이 서부극의 '짜릿하고 신나는 구경거리를 방해하는, 노인의 촌스럽고 고집스러운 잔소리처럼 들린다',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괴한 시거를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늙은 보안관 벨로서는 능력에 미치지 않는 일이다. 그는 무력감을 진하게 느끼고 결국 은퇴한다.

 

뛰어난 극작 솜씨와 문장력을 가지고 있는 노작가가 노인들이 느끼는 그 무엇을 대변해보고 싶었을까. 빠르게 저물어가는 인생 황혼의 서러움을 문명의 차원으로 승화하여 얘기하고 싶었을까. 찬탄을 금치 못했던 명작 <로드>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과 절망에 대한 비전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일까.
어쨌든, 스릴러 액션 범죄 소설로도 전혀 빠지지 않는 이 소설이 훌륭한 것은, 노인을 주체로 내세워 발언하고 있음에도 성급하게 꼬리표가 붙는 '노인문학'의 범주에 얼마든지 끼지 않아도 될 만큼 보편적인 독자층을 얻었다는 것이다.

 

<로드>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지만, 따옴표가 전혀 없는 대사,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장면임이 분명한데도 변치 않는 담담한 어조, 사건의 긴박성과 한 발 떨어진 관조적인 자세(이것은 <로드>보다는 <노인~>에서 더 두드러진 듯)는 나를 코맥 맥카시의 팬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j******s 2008.06.1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볼 건 보고 넘어가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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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다림의 열매는 달았다  코엔 형제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영화보다 코맥 매카시의 책을 훨씬 더 기다렸다. 일전에 코맥 매카시가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의 매력에 단숨에 빨려들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접했던 적은 없었지만,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에 더 익숙한 그의 모습이 내게는 퍽 친근하게 다가왔고 진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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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다림의 열매는 달았다


 코엔 형제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영화보다 코맥 매카시의 책을 훨씬 더 기다렸다. 일전에 코맥 매카시가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의 매력에 단숨에 빨려들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접했던 적은 없었지만,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에 더 익숙한 그의 모습이 내게는 퍽 친근하게 다가왔고 진정으로 살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진 때문이기도 하다.


 워낙 흥미가 동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라 바로 검색을 통해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나왔던 ‘국경 삼부작’ 중 하나인, <그 곳엔 천국이 있을까 1, 2(All The Pretty Horses)>(고려원, 1996)까지 바로 빌려다 봤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겁날 정도로 유난히 바빴던 지난 한 해. 바쁜 와중에 기특한 코엔 형제들이 마침 매카시의 작품을 영화화하고 있다는 소식에 어찌나 기뻐했던지.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던지.



2. 영화보다는 책이 먼저다

 

 ‘책만한 영화 없다’라는 말을 적용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어느 것이 더하다, 덜하다를 논하는 것보다는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볼까를 생각해보는 편이 현명하다. 개인적으로 책과 영화 둘 다 푹 빠져 접했으므로 둘 다 접하기를 권하지만,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 영화보다 책을 먼저 보는 것이 좋겠다. 코엔 형제도 각색한다기보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살려 편집에 치중했다는 느낌이 크니 말이다.


 책을 읽고 두 번 세 번 골똘히 생각해 상징적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니 작가의 구성력이 감탄스러웠고, 코엔 형제가 이를 영화로 어떻게 표현했을까가 상당히 궁금했다. 매카시의 문체나 구성을 코엔 형제가 제대로 살렸지만, 아무래도 생략된 부분이 있기에, 책으로 오래 곱씹어볼만한 대사가 많기 때문에, 영화보다 책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책을 통해 그렸던 다소 막연했던 캐릭터들은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강렬하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특히 안톤 쉬거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노인 벨 역의 토미 리 존스는 정말 최고의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 하나. 최근 트렌드를 따라 머리를 단발로 잘랐는데, 영화를 같이 본 친구가 머리를 보더니 안톤 쉬거 스타일이라고 명명하였다. 눈물 나도록 감격스러운(?) 일이다.



3. 제목의 의미를 음미하라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데, 원제는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이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로 직역했을 때, ‘노인’의 상징적 의미를 좀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다. 매카시는 윌리엄 버틀러 예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을 소설의 제목으로 따 왔으며 시는 책의 처음 부분에 실려 있다. 참, 벨이 꾼 꿈 이야기 역시 해몽해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니 주의하며 보면 좋겠다.


 참고로 이 작품은 스릴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부극도 아니다. 스릴러나 서부극이라는 단어들은 작가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차용한 수단일 뿐이다.



4. 상징적 의미를 주목하라


 매카시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역시 매우 좋아하는- 토머스 핀천과 맞먹을 정도로 탄탄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작가이다. 서부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이고, 브래드 피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매카시는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보여주는 작가가 아니다. 권위에 기대는 것은 아니나 퓰리처 상 수상 작가답게 소설이 지닌 무게는 육중하다. 그는 작품에 문장의 날렵함과 허를 찌르는 전개방식, 특유의 쩡하고 깨지는 듯한 울림이 있는 메시지, 그리고 텁텁한 서부의 분위기를 놀라울 정도로 모두 담아낸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는 육중함은 상징하는 바를 올바르게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므로, 세상 돌아가는 바를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읽기를 권한다. 그저 표면만 핥았을 때는 오히려 재미도 없고 피비린내만 진동하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라고 폄훼하게 될 수도 있다. 단번에 전해지는 메시지가 아니니 골똘히 생각해야 얻을 수 있다.



5. 볼 건 보고 넘어가자


 좋은 작품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갑자기 즐거운 수다쟁이가 되어버렸기에 하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지만, 자칫 스포일러가 될까, 상징적 의미를 찾는 과정을 방해하게 될까 두려워 입을 다물 참이다.


 기막히게 맛있는 음식은 먹고 넘어가야 하고, 획기적인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면 꼭 경험해봐야 한다.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반드시 읽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 바빠도 볼 건 보고 넘어가자.

 

w*******r 2008.03.0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엘리 매컬로, 그 치열한 삶의 여정
"엘리 매컬로, 그 치열한 삶의 여정" 내용보기
하워드 진의「오만한 제국」을 읽지 않았다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보지 않았다면,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책과 영화를 통해 미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막연히 미국이라 하면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 우리나라를 도와 준 착한 나라로 인식해 왔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할 수
"엘리 매컬로, 그 치열한 삶의 여정" 내용보기

하워드 진의「오만한 제국」을 읽지 않았다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보지 않았다면,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책과 영화를 통해 미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막연히 미국이라 하면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 우리나라를 도와 준 착한 나라로 인식해 왔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미국이라는 나라는 착한 나라만은 아니었다. 깡패 같고, 무자비하고, 부도덕하고, 비상식적이고, 위험천만한 나라인 것만 같았다. 어린 내게 그 누구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쪽과 저쪽의 평가에 대해 가르쳤다면 허구한 날 영어공부 하느라 밤을 새고 이해도 되지 않는 문법을 붙들고 씨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 요즘도 자식 영어 공부 시키느라 별의별 방법을 다 쓰는 한국의 엄마들을 생각하면 오늘 내일 해서 사라질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작년에 읽은 업튼 싱클레어의「정글」은 현재 미국을 만든 힘의 추악한 단면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는(특히 한국인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살이 정육점에 배가 갈린 채 걸려 있는 한 마리 돼지의 적나라함처럼 펼쳐진다.

그렇다고 내가 반미주의자거나 미국을 증오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류현진과 추신수가 미국프로야구리그(MLB)에 진출하기 훨씬 전부터 MLB의 팬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2에서 가동되는 <MLB10 THE SHOW>라는 게임을 가장 좋아했다. 30개 팀의 선수들을 모조리 외울 정도다. NBA도 좋아 한다. 영어학원에서 일한 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마치 내 나라에서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 된 것 처럼 기뻐했었다.

하지만 무작정 미국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미국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왜 자국 군에서는 폐물 취급을 받는 전투기를 굳이 우방국인 한국군에 비싸게 팔려고 하는 지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FTA로 그만큼 퍼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긁어가려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다.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돈만 챙기고 튀어버린 월가의 금융기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셀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미국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오래전부터 DNA에 각인되어 흐르고 있는 숭미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이 내게도 동일하게 흐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흐흐...

 

 

 

“내가 터에퍼러였을 때, 아마 여섯 살쯤 됐을 땐데, 텍사스인 들이 우리 무리를 공격했어. 다음 날 동생과 나는 야영지로 돌아갔는데, 1백 명의 죽은 여자와 죽은 노인과 죽은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했어.” (p.422)

 

매컬로 가(家)의 가계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엘리’가 인디언에게 붙잡힌 후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함께 살게 되는데, 그를 좋아하는 인디언 여자와 잠자리에서 나눈 대화이다. 그 인디언 아가씨는 ‘초원의 꽃’으로 불리는 아리따운 여성인데, 내용 상 충격적인 가족사를 듣게 된다. 백인놈들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과 어린 동생만이 살아남은 이야기다. 그런데 엘리는 전혀 동요하거나 미안해하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자신도 꼭 그렇게 인디언놈들에게 당했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지주로 살던 엘리 가족에게 어느 날 밤 갑자기 인디언들이 침입했다. 무자비하게 가족을 죽이고 엘리와 형만이 사로잡혔다.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자신들을 취급하며 마구잡이로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인디언들 틈에서 탈출을 감행해 보기도 하고 반란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엘리는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로 버티다. 형은 의지도 약하고 고난과 마주할 용기도 부족해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엘리는 푸른 눈과 흰 피부를 가진 분명한 백인이지만 인디언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말을 익히고 그들처럼 행동하고 그들처럼 생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공격과 지배’라는 큰 틀로 보는 내게 이 장면은 꽤 흥미로웠다.

‘골드러시’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동부 항구에 몰려 있던 백인들의 러시가 이어졌다. 서부로, 서부로 가기만 하면 원하는 옥토를 얻을 수 있고 삽만 갖다 대면 펑펑 쏟아지는 황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멀기도 멀었다. 가다가다 지쳐 정착한 백인들도 많았고 기어코 서부에 닿은 백인들은 더 많았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개척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개간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그곳에서 수천, 수만 년을 살아 온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의 골드러시는 한 밤 중의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평화롭게 땅에 발을 딛고 바람이 가져오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 온 그들에게 백인의 등장은 악몽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원래 백인이 평화롭게 정주하고 있던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쫓아냈으니 백인들이 무조건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복수라는 논리로 똑같이 백인들을 공격하고 죽인 인디언들의 행위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책 「더 선」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한 가정의 100년 역사를 통해 미국 근대를 톺아보는 전개가 좋다. 매컬로 가(家)의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전개 방식도 전개의 긴장감을 더하는 구성이라 본다. 만약 무조건 ‘백인이 나쁘다.’라는 것으로 읽혔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무조건 ‘인디언이 피해자다.’라는 것으로 읽혔더라도 마찬가지다.

 

 

“씨발, 나는 좆같이 더러운 인디언이 되지 않을 거야, 엘리. 난 차라리 죽는 게 나아.” (p.83)

 

함께 인디언 부족에서 붙잡힌 형이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해 엘리에게 털어놓은 속마음이다. 하지만 엘리는 생각이 달랐다. 의지도 달랐다. 어차피 죽어버릴 바에야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 엘리에게는 ‘좆같이 더러운’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의미 없이 죽어버리는 것이 ‘좆같이 더러운’ 것이었다. 결국 엘리에 의해 매컬로 가(家)의 역사는 이어지게 된 것이니 어쨌든 엘리의 그 선택은 옳았다.

 

 

“우리 가족의 많은 이들을 앗아갔고 어쩌면 몇 명을 더 앗아갈지 모르는 이 땅을 대령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p.107)

 

후에 엘리의 막내아들이 되는 피터 매컬로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닿은 곳은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새로운 경제를 일으키고 새로운 가족들을 탄생시켰다.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최초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자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미국을 바라볼 때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것처럼 비록 그것이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아닐지라도 하나의 사안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양가성 또한 존재한다. 매컬로 가(家)라는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것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버지가 아무리 사랑한 땅일지라도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쓸모없는 불모지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자식들이 아무리 소중히 여기는 가치일지라도 아버지에게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객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두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물론, 내가 그 가족의 일원이라면 그 정도의 객관화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지만...

 

 

“어디 틀어박혀 숨어 있고 싶지 않는 한, 나는 별이 지기도 전에 일어나서는 젖은 풀밭을 걸어가 차가운 시냇물로 물 항아리를 채우고 화톳불이 꺼지지 않게 손을 봤어. 하루 중 남은 시간은 여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아 했지.” (p.159)

 

이럴 때는 엘리의 삶에 대한 자세가 가장 좋다고 본다.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하는 것이다. 엘리는 인디언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티에테티’로 불렸다. 그들의 가족이 된 것이다. 「더 선」이 몇 권이 더 출간될지 알 수는 없지만 2권, 3권으로 이어지면서 엘리가 어떻게 다시 가문을 일으키는 지 궁금했다. 당장 닥친 현실과 구조를 엎을 수 없다면 현재에 최대한 충실하고 요구되는 것들에 자신을 맞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버지처럼 의식이나 양심 따위에 시달리지 않는 막무가내 짐승이 될 것. 인간이란 쇠고기 같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품고 숙면을 취할 것.” (p.252)

 

엘리의 아들 피터 매컬로가 아버지를 평가하는 내용이다. 이 한 문장을 통해 엘리의 생애 후반부가 어떻게 펼쳐질 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되기도 한다.

다만 그 열심과 삶에 대한 의지가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삶을 지켜온 엘리인데, 인생의 후반부 아들에게서 ‘막무가내 짐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이 행복한 인생은 아닐 것 같다.

 

다음 시리즈에서 펼쳐질 엘리의 그 치열한 삶의 여정이 기대된다.

 


 

 


 

l****h 2013.08.19.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