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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 부합하게, 이 책은 장일순 선생의 글모음이 아니라 이야기모음이다. 즉 강연 또는 인터뷰를 글로 옮긴것이란다.
글이던 이야기이던 이분의 이야기를 직접 접한 것은 처음이다. 이미 예전에 작고하셨을때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느꼈던 바는 있지만, 처음은 아무래도 김지하 시인의 글들을 통해서 접한 것이었을거다. 김시인의 책을 90년대 초반 꽤 읽었던 편이고, 그렇기에 장일순 선생이란 분의 존재감은 꽤나 깊이 인식되어있긴 했다.
김시인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모순된 감정 및 판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그의 스승이라는 사람의 글이나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지 않았던게 사실일꺼다. 한살림에 대해서도 20년 가까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때문일 수도 있다.
하여간,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개인사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원주교구의 저항운동, 생명운동, 민중신학, 동학이야기 등등에 대해 익숙해져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분위기는 시인의 그것과는 달랐다.
뭐랄까... 부드러우면서도 옹골차다는 느낌? 군더더기 없는 짱짱한 느낌... 웬지 모를 막강한 포스를 느꼈다. 뭐 사기를 당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할말은 없다. 많은 실력자들이 인정하는 사람, 평생을 몸으로 실천해온 사람, 누군가의 평처럼 '아무것도 안하면서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의 내공이랄까...
그러면서 현재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이전부터 늘 다짐하는 바 이지만, 일단 부모님 생존시까지는 당신들 보시기에 편하게 살아보자는거... 하지만, 그 이후에는 딱히 계획이나 자신도 없으면서 자연에 가까운 탈주의 삶의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속이고 내 안에 숨는 것은 아니었는지, 오랜만에 진지한 성찰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작지 않은 욕심을 지니고 사는구나... 하는 자인도 하게되고.
스승을 그 제자의 필터를 통해 접해왔지만, 뭐 어떤가? 지금에라도 그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는게 다행인거지. 그가 김시인에게 했다는 말...
"바른 것에 대한 글은 많은 사람 중에 단 몇 사람만 봐도 된다는 신념으로 써야 해"
허~ 이 자신감? 깡다구? 어쩜 해탈하는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내 욕심을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예수께서 '깨어있어라'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저 같은 경우 24시간 중에 깨어 있는 시간은 한 시간도 못돼요."
그저 반성을 하게 만들 뿐이다. |
| 혹, 장일순 선생이 역사적 인물이라는데 토를 달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라..... 부쩍 최근 어린이들을 접하며.역사의 단절같은것을 느꼈다. 뭔가 맥이 끊어져나가고있다는 느낌...해방후 60여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제식민은 저리가라할 정도의 치열한 스토리가 스며있는 그 60여년을 구전해 주고싶다. 언젠가..장일순선생을 보고, 누가 토착사상가라 한 표현에 한없이 쾌소한 적이 있다. 토착사상가라...토착이든 뭐든...하여튼 그 궤보를 잇는 여러사람이 있지만, 장일순 선생은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아직도 젊고 어리석은 나의 짧은 소견엔, 역시 장일순 선생은 재능을 낭비한 분 같다. 이룩한 업적이 적은것때문에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부분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알고있기에 그러하다. 흔히 식자들이 말하길 현대의 한국문화는 천박하다고한다. 정신적 가치의 부재와 고급문화를 상실한 시대라고들 한다.틀린말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할수 없어 안타깝다.내 눈에 보이는 것도 비슷하니까. 한국의 20세기 후반은 천박하고 비루한 상업문화와 생존문화를 빨아먹으며 비대하게 몸을 불려왔다. 이가벼움과 천박함의 근원은, 마지막 왕조의 몰락과 더불어 한국의 심장을 장중히 돌려대던 혈맥인 유불선의 가치관이 색을 잃고 흑백으로 자리매김지워질때, 그사이를 메울 정신적 성숙이나 보고자랄 어른이 부재했던 것이 첫번째 이유라 말할수 있지않을까한다. 이것만으로도 부모잃은 어린아이처럼 갈팡질팡할터인데, 그것은 마지막 왕조의 몰락이후로 한국민들이 겪게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군들 시대와 세계가 주목할 그 파란을 예상이나 했을까? 지우고싶은 일제식민생활과, 지리적으로 사상적으로 남북좌우익의 골수조차 빨아내는듯한 팽팽한 대립, 이념의 이분법으로 세계를 갈라버린 강대국의 잇권틈바구니에서 강간처럼 치른 전쟁, 이데올로기로 가족끼리 살을 뜯으려했던 (북한을 뺀 나머지) 한국의 집단적 메카시즘.......이런것들을 두번째 이유로 꼽을수있다고본다. 이사이에서 위대한 정신이나 선인들의 고급문화, 수려한 전통따위는 돌아보거나 지켜내기 혹은 기억해내기 한없이 지리한 것이었을테다.흔히 살아남은 자의 아픔이라고하는데....저런 파란의 틈바구니에게 살아남은 자는 당연히 아파야한다. 아파하지 않는자는 미친자이거나 " 나쁜자" 일것이다. 아픈자와 , 미쳐버린자와, 나쁜자 (이 나쁜자속에는 관찰자가 포함된다. 그저 관찰했던 자는 방관자이고, 방관자는 또다른 '가해자'라는 이름표를 달게된다) 장일순 선생을 사람들이 별로 알지 못하고, 또 대충 아는 사람은 그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평가받고 저울질할 조명받을 업적이 없기에 그런것 같다. 눈에 보이는 어떤 거창하고 화려한것들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분은 예를들어 김규식,김구,여운형,장덕수,함석헌,김재준,문익환, 장준하.고은...김지하 기타등등..기타등등....기타등등...입닳게 ...궤를 잇고있는 수많은 사상가들이나 재야선생들보다 덜알려진 인물이다. 나는 이러한 것이 위에 말한 천박한 물질주의적 잣대와 이시대가 타인에 의해 강제로 혀가 뽑혀야했던 어린시절을 겪었던 것에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있는 가치관이 ....업둥이처럼 어디서 부지불식간 들어온 것이 아니라....시대가 낳은 것이고 아픔이 낳은 것들이라 마구 천박하다고만 욕할순 없겠다. 장일순 선생님이라....흠....이분의 사유...물론 뛰어나긴 하지만... 그리 깜짝놀래킬만한 사유들은 아니다. 영리한 사람은 어디고 널렸고, 천재들 또한 찾아보려면 힘든일도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는 장일순선생님을 기억해야한다. 장일순선생님은 강대국의 도움없이 우리끼리 평화통일을 이루어야한다며 "중립화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 해방정권하에 삼년간 옥살이 한다. 해방을 본지 얼마되지 않아, 감옥생활을하다니...... 일제식민하의 우리나라의 산하는 장일순 선생에겐 마치 '감옥'과도 같았으리. 보이지않는 그 감옥에서 출옥하니,이번엔 다른 감옥이 선생을 기다리고있을줄 ,선생자신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옥살이 그후 "민중은 삶을 원하지 이론을 원하지 않는다, 정치나 정당따위로는 아무것도 할수없다" 하며 방향을 바꿔 , '생명운동'이나 '공동체운동'을 펼쳐간다. 중립은 예나지금이나 공격의 만만한 대상이다. 여운형선생께서도 같은민족이 좌우로 생살을 찢어대는것을 근심하며 , 좌도 우도 아닌 평화를 주장하다..어찌되었는가...좌익과 우익 모두에게 공격당하여 무려 십여차례가 넘는 테러끝에 운명하지않았는가.... - -;; . 대중들은 어째서 흑백논리에 자신을 거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군중들은 모이면 마녀사냥을 하곤한다. 군중의 우매함때문인지, 뒤에서 군중을 조작하는 "선동가"때문인지... 하여간 많이 모이면 공포스럽다. ^^;;;;;;; 통, 옥고를 치르신 재야인사의경우, 두가지로 나뉜다. 감옥갔다와서 더 치열하게 자기의 주장을 나타내는분, 더럽다희망없다하며 은자생활을 하시는분 당시 사회분위기로 볼때 '노블리스오블리제'라는 단어는 그당시의 지인들에게 '정치적운동'을 강권하였을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장선생께선 뒤로 물러나 은자의 길을 택하셨다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은자라.....장일순선생님의 팬들. 지금 엄청난 공격자료를 준비하고있겠군.^^; 하여간 이상케도 선생께선..은자생활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의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감시원들이 수족을묶었을테니..) 많은 재야인사를 움직이게하는 모티브를 주었다. 그분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재능을 적극 활용하지 않으셨다는것이 어린 내게 조금 답답하고, 아깝게 느껴졌다. 한참..지나서야 그분의 인생을 조금 납득할수있었다. 그리고 저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 납득하기 싫은 행로들을 곡해하지 않고, 저울질하지 않고 그냥 순순히 들어주고 바라볼만큼 품도 조금 넓어졌다. 그것은 내가 흑백논리에서 벗어날수있는 한 계기가 되었다.To be or not to be 식의 이분론적 서구색의 사고방식에 갖혀있던 내가, 틀을 깨고나올 기회를 덕분에 얻었다. 이밤에 망자를 기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