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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지 않을 권리』를 읽었을 때 어떤 학생이 역사 동아리 활동을 하며 위안부 문제를 접했고 그 이후 틈만 나면 ‘수요집회’에 참석한다는 글을 만난 적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을 나이로 잡아선 안되지만 그 아이보다 두 배 더 살았다는 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후원금 한번 낸 적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마음이 있다면 실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자라고 다짐해놓고 정작 현실에 안주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저렇게 수요일만 되면 피켓을 들고 일본대사관에서 사죄하라고 외치는 할머니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가 얼마나 정신적 위안이 될지. 벌써 1100회가 다되어가는데 물리적 거리를 헤치고 시위 참가는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이 책은 포토에세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읽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지만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는 책장 하나 넘기기도 버거울 정도다. 저분들이, 꽃도 피우기 전에 광폭한 힘에 눌려 찢겨버린 삶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것을 지나 통한의 설움이 올라온다. 같은 여자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강자의 입장보단 약자의 입장에 더 많이 서 본 사람으로서 그녀들의 인생은, 삶은, 존엄성은 말조차 꺼내기 민망한 세월이었다. 안세홍 사진작가에게 고맙다. 그녀들을 찾아주고 조국을 그리는 향수에 좋은 기억 하나 얹어주어서.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타국에서 말도 잊고 고향도 잊고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의 세월을 잊어버리고 싶은 그녀들을 찾아가주어서. 어린 시절 고국의 고향, 가족, 소소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분홍빛 기억들이 깨어나게 도와주어서. 그 엄청난 고통과 설움을 아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순간의 시간을 선사해주어서. 역사는 이래서 올바르게 세워야 하나보다. 나라팔고 역사를 판 사람들이 반성하지 않고 정당화하며 온갖 꼼수로 자기들만 살아남는 것을 보며, 그들의 후손이 훨씬 앞에 있는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을 볼 때 분노를 넘어 또 하나의 상처가 곪는다. 저리 살아도 되는구나, 저리 사는 게 차라리 몸은 편하겠구나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는 체득한다. 그걸 보고 자란 우리 세대, 그리고 우리 밑의 세대들은 당장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한 이 사회의 비정상을 저도 모르게 용인하고 묵인하고 살아간다. 이번 한국사 교과서 문제를 보면 딱 그 연장선상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지 덕분에 우리는 문명화될 수 있었다부터 시작해서 쿠데타도 혁명이 되고, 독재자도 시대적 필요에 의해 나타난 선지자로 변모해버리는 궤변을 접하며 이제까지 바로잡지 못한 역사의 후폭풍이 더 크게 불겠구나, 몰아치겠구나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잘,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참여하는 게 시작이다라고. 현재 GO발 뉴스를 후원하고 있다. 우리 언론이 망가진 모습을 보며 외면만 하다가 혼자서 저렇게 발버둥치며 공정한 언론이 되겠노라 고군분투하는 GO발 뉴스만큼은 가장 낮은 단계의 지지라도 보내자 싶어 그의 책을 사고 정기후원을 하고 있다. GO발 뉴스를 이끌어가는 이상호 기자의 아이디어로 현재 정대협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인 ‘나비T셔츠’ 판매도 한다. 이 수익금으로 위안소 자리가 있던 곳에 ‘소녀상’을 세우는 운동이다. 비록 수요집회 참가는 못하더라도 이런 나비티셔츠를 사서 주위에 선물하는 것도 가장 작은 운동의 참여방식이라고 본다. 더 작은 운동은 이런 책을 주변에 권하고 위안부 문제 더 나아가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하는 것부터라고 생각한다. 나비효과, 작은 변화가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나비처럼 훨훨 날 수 있길. 우리 역사의 정의가 훨훨 날아 숨 쉴 수 있길 간절히 빈다. (쓰다 보니 리뷰가 아닌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arthurjung.tistory.com/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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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8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정기적으로 수요 집회를 열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성 노예로 짓밟힌 여성들의 한을 표명하고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현안을 해결하려는 실천적 노력은 회를 거듭할수록 달구어졌다. 2011년 2월 14일 1000회를 맞아 일본 대사관 앞에 한복을 차려 입은 단발머리 소녀상이 세우고 그 뜻을 이어평화를 기리는 의미를 담아 평화비 소녀상을 건립했다. 굳게 다문 입에서는 단호함이 서려 있고, 어깨에 앉은 새 한 마리는 세상을 뜬 할머니들과 현재의 우리를 이어줄 매개체로 자유로움을 담았다고 하니 힘없이 스러져 간 할머니들의 한스러운 삶에 짓눌려 마음이 무거워진다.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지 6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과 가해국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 문제 등은 현안으로 남아 있다. 흑백 사진 속 할머니들의 얼굴에 겹겹이 패인 주름살은 인고의 나날을 감내하며 살아 온 일상의 궤적으로 아픔을 더한다. 가슴이 탈 때마다 잎담배를 피우며 가슴 속 응어리를 달래 보지만 그 길은 쉽사리 치유하기 힘든 아픔으로 남아 독자들 마음까지 후벼 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의 여성들로 침략 전쟁을 치르는 일본군들에게 존엄성을 짓밟혀 회생 불능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극한적 인권 유린의 상황을 초래한 일본은 과오를 뉘우치기는커녕 이를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정부차원에서도 미온적으로 대응하여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할머니들의 한만 쌓아 왔다. 켜켜이 쌓인 한을 속히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할머니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가 이들의 아픔을 나누려는 저자의 노력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물질적 결핍으로 생계를 잇기조차 힘든 이들을 선금 300원~450원에 넘겨받아 성노예로 삼은 전횡은 한 사람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앗아 가버려 제대로 된 삶을 살기도 힘든 현실로 몰고 갔다. 미답의 공간으로 끌려간 여성들은 열악한 군위안소에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였고, 여성들은 일본 점령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군표를 받았지만 한정된 지역에서만 사용가능했다니 무용지물처럼 여겨진다.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리면서도 불가항력적으로 성노예로 지내야 했던 이수단 할머니는 조선말을 잃어버린 게 부끄럽다며 고향 생각이 간절할 때면 경로원 뒤 강가를 찾아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상실의 아픔을 달랜다니 안타까움이 더한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책임을 묻기보다는 여생을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할머니들의 심정은 핍박과 학대를 견디어 내느라 후유증으로 남은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 투영되어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달아 잃고 의지가지없던 열세 살 소녀는 만주로 가서 돈을 벌어 올 결심으로 군속을 따라 나섰지만 그 길은 유곽으로 팔려가 꽃처럼 피어나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되는 길로 떨어지고 말았다. 피를 토하고 과다 출혈로 병을 얻은 배삼엽 할머니는 더 많은 약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영면하였다. 스무 살 나이에 중국행 기차를 탔다가 정차할 때마다 들이닥친 일본 군인들을 상대한 일을 시작으로 7년 동안 위안부로 지냈다니 김의경 할머니의 퀭한 모습은 고통스런 시간이 강마른 몸집에 담겨 있다. 낮에는 피 묻은 군복을 빨아야 했고, 밤에는 일본 군인을 상대해야 했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늘어나는 폭력 아래 굴종하며 육신을 무너뜨려갔던 할머니의 아픔은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감내하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위안소 시절 받은 고문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현병숙 할머니는 혼이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며 꿈속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루에 수십 명씩 일본군을 상대하는 성노예로 내몰린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의 패망 후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타국 땅에서 질병의 고통 속에 지난한 삶을 이어야 했다. 갈 수만 있다면 고향에 가고 싶다던 박우득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과 굽은 등이 스산한 바람을 몰고 온다.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만 위안소 앞을 지날 때면 천불이 난다는 박서운 할머니의 분노는 지금도 뭇다 푼 문제처럼 남아 있는 현대사의 질곡 아래 스러져 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한을 세계 도처에 알려 진상 규명을 통해 할머니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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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겹겹>이다.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겹겹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이마에, 가슴에 깊숙이 새겨진 주름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이마에, 가슴에 또 겹겹의 주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안세홍 작가는 오랜 시간 수차례에 걸쳐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계신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분들이 낯선 이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었을 리 없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할머니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고 교감을 이끌어냈을지 짐작이 되는 부분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것은 이 책에 나온 여덟 분의 할머니들 가운데 지금 생존해 계신 분은 단 두 분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들의 사진을 보며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작가는 아마도 일부러 감정의 과잉을 경계했던 것 같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그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을 울린다. 한국말을 잊지 않기 위해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신다는 배삼엽 할머니.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의 느리고 투박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해 다시 한 번 마음이 울렁인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연도가 정확하지 않은 박대임 할머니.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지도를 보셨다고 한다. 백내장으로 눈이 침침해졌는데도 지도에서 정확하게 고향인 진천을 짚어내셨다고 하는 부분에서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마음이 울렁인다. 개인적으로 123쪽의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중국의 할머니들은 입식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국 할머니들처럼 등이 굽은 분들이 거의 없는데, 박대임 할머니의 등은 조금 굽어 있다. 어두운 부엌을 등지고 환한 마당으로 나가시려고 하는 모습인데, 왠지 지나온 세월을 모두 초월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뒷모습에 배어 있는 진한 한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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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한겨례 북섹션에서 읽을 책은 고른다. 한겨례 북섹션은 토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꼈다, 주말 구매가 줄어든다. 겹겹도 한겨례 북섹션의 소개로 골랐다, 그 날 마음이 이상했다, 정말 이상해서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공녀로 끌려갔다 다시 온 '환황녀'들도 여기 정신대 할머니들도 지키지 못했다, 대신 그녀들이 지켰다, 비참한 과거도 지금의 우리도. 겹겹은 그 기록이다. 할머니들의 사진과 지은이가 나눈 대화. 이제 그만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였던 게 맞다, 부끄럽지만 맞다. 할머니들은 모두 담배를 배어 물고 있다. 글자로만 읽어도 그 세월이 어땠을지 감히 짐작된다. 피상적이기만 했던 지난 시간이 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불려진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노인이 되어 눈감을 때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궁금해진다. 제가 더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지켜온 세월이고 시대인데 하는 일이 없어 더욱 죄송스럽게 느껴진다. 사진책이자 할머니들의 기록이지만 조금 더 깊이있게 할머니들의 삶을 추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구성에서 별 하나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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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파서, 한 장 한 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빛바랜 세월을 담아놓은 듯한 흑백 사진들이 담담한 어조로 평생에 걸친 좌절과 절망, 분노와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 그 속에 '위안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짓밟힌 수십만의 어린 꽃봉오리들이 이제는 마지막 생명력에 의지해 시들어가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죽어가고 있다.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은 어떤 사죄로도 용서되기 힘든 것이지만, 진지한 사죄조차 없이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며 큰소리치는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를 넘어 슬퍼진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잔혹한 단면과 마주하는 것 같아 두렵고 가슴 아프다.
일본군과 한국인 여성 피해자들
위안부. 그것은 일본의 만행이자 힘있는 강자들의 만행이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일본군의 만행을 욕하는 수많은 한국의 남성들이 만약 같은 시기 일본에서 일본인 국적으로 태어나 전쟁에 동원되었다면, 그들과 다른 행동을 했을까? 가끔 그것이 궁금해진다. 침략과 약탈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과 같은 전체주의 교육을 받고, 전쟁이라는 광기의 현장에 놓여 졌을 때, 강자의 편에 선 당신은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대부분의 전쟁 동료들과 다르게 그 집단강간과 약탈을 거부하고, 아군에 맞서 적군의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했을까?
전쟁은 극대화된 집단 광기의 집약적인 표출이다. 강자들에 의해 촉발되는 전쟁이지만, 집단 최면 상태와 같이 다함께 미쳐버리는 그 참혹한 상황 속에서 언제나 가장 큰 희생양은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모든 전쟁은 남성에 의해 발생했지만, 가장 참혹한 피해는 여성들과 아이들에게로 향했고, 역사상 모든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의 어떤 편을 가릴 것도 없이 여성에 대한 강간과 약탈, 살육이 자행되어 왔다.
죽은 여성의 나체를 보며 웃고있는 군인들
베트남전 당시 발생했던 학살사건 중 외국언론에 의해 확인되고 정부와 당사자들이 인정한 것은 총 5건이지만, 베트남 민간단체가 발표한 것은 한국군 총 23건, 미군 17건이라고 한다. 미군의 밀라이 학살사건(민간인 400명), 한국 해병대의 빈호아사 커우 마을 학살사건(131명), 한국 맹호부대 타이빈 양민학살 사건 (120명), 맹호부대 고자이 양민학살 사건(380명), 한국 해병대 퐁니.퐁넛 양민학살사건(70여명) 등의 실상을 보면, 우리 곁의 인자한 아버지들이, 할아버지들이, 정말로 그런 일을 했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내용들이 많다.
임신한 베트남 여성의 배를 군화발로 짓밟아 터뜨리고, 핏덩어리 아기를 꺼내 그 어린 목을 잘라 죽어가는 여성에게 던지고, 구덩이를 파서 한 마을의 모든 민간인을 총칼로 짓밟아 넣고 산채로 불태웠다는 현지인의 목격담과 한국군 증오비의 내용을 보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라는 의문이 아닌, '인간의 잔혹성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회의마저 든다.
수많은 전쟁 중에 국적을 불문하고 숱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겁탈하고 죽였다고 해서 남성 모두가 그런 잔혹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문제의 논점은 전쟁이라는 광기 속에서 인간의 폭력성이 어떻게 왜곡적으로 표출되어 왔는지, 또한 오랜 역사 속에서 '강자'들이 '약자'들을 어떻게 괴롭히고 고통 주었는지에 있을 것이다.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 <겹겹>을 읽는 동안, 무자비한 강자들에 의해 힘없는 약자들이, 여성들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고통받았는지를 보았다. 여전히 자신들의 만행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 우익세력들을 보면, 그것이 일본 국적자로서의 주장인지, 강자의 입장에 섰던 가해자로서의 주장인지, 여성의 인권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초적 남성으로서의 주장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남성 경찰과 검사가 강간당한 여성에게 혹시 행실을 잘못한 것 아니냐고 따져묻는 일이 빈번하고, 여전히 강간당한 여성이 그 사실을 부끄럽게 숨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위로, 일본우익들이 위안부를 창녀라고 망언하는 상황이 겹쳐져 보이는 것은 왜일까?
마음이 아픈 책이다.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고,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다. 책 속에 게재된 수많은 흑백사진 속 그녀들의 모습은, 담담하면서 슬프고, 고요하면서 고통스럽다. 그녀들의 꽃봉오리는 오랜 세월 단 한 번도 피어 보지 못하고, 여전히 한겨울의 찬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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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 수요집회에 500명의 인파가 몰렸다. 1095회를 맞은 이번 집회에는 휴일을 맞은 학생들은 물론 일본동경자치노조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도 참여했다.(경향신문)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주한일본대사관에는 아흔이 다 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 눈물을 뿌리며 하소연하고 있다. 그들, 젊은 날엔 누구보다 예뻤던.. 옆집 순이 처럼 평범하게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싶었던 할머니들은 어느 날 일본군에게 속아서, 혹은 강제로 끌려갔다. 할머니들이 가서 닿은 곳은 시뻘건 포화가 하늘을 뒤덮는 전장. 그 속에서 인간이기를 거부한 사악한 짐승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 악마같은 그들은 패전 후에도 그녀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조국은 그들에게 무관심하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할머니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어. 잊지 않으려고 날마다 지도를 봐.”(p114_박대임 할머니 인터뷰) 중국 곳곳을 누비며 할머니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아픈 일상과 억울함을 사진에 담은 사진작가 안세홍.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몇 장 넘기다가 눈가가 뜨거워지고 가슴은 답답해져왔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이 분들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닐까
우한에 사는 할머니 대부분은 국적이 북조선이다. 북조선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할머니들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혜택도 주지 않고 있다. 내가 중국에 할머니를 찾아다닐 때만 해도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북조선이든 아무도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 또다시 할머니들은 버림받고 있었다.(p.96) 할머니들의 깊이 패인 주름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할머니들은 살아생전 조국의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나라는 그들을 버렸지만 그래도 한국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일 뿐이다. 이제는 서운함도, 분노도, 안타까움도 버렸다. 카메라 하나 짊어지고 저자는 중국 곳곳을 누볐다. 갈 때마다 쇠약해진 할머니들의 모습을 본다. 이제는 그 중 많은 수가 고인이 되었다.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기억 속의 조선, 고향땅에서 오래전 헤어진 부모, 형제와 만나 행복한 시간을 누렸으면 좋겠다. 아흔 전후의 할머니들이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조선인 할머니들뿐만 아니다.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태평양 연안의 나라들과 심지어는 많은 일본여성들이 전쟁을 치르는 일본군에게 인권을 유린당했고, 아직도 성폭력이라는 기억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할머니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 가슴속 깊이 맺힌 한이 풀릴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란다.(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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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기계는 태생에 하자가 있음에 틀림없다. 참 눈물이 없다. 왠만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이지만 정말 미친듯이 펑펑 울어본 적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부록이 되서부터는 요즘은 칠칠맞게 병아리 눈물만큼 눈물이 고일때가 있기도 하는 걸 보면 아예 불량품은 아닌것 같다. 마침 카트에 담아두고도 먼저 읽을 것들을 사게되고, 쌓아 놓은 것부터 해결하자면서 미루어왔던 녀석을 선물받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불과 한챕터를 읽자 마자 이놈의 불량품이 지랄맞다. 지난번 서해문집에서 나온 "역사가에게 역사를 묻다"를 보면서도 몇몇 구절이 참 가슴속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일깨웠던적이 있다. '조선말을 잊어버린 게 가슴 아파'라는 한줄이 마음속에 또다시 한줄기 작은 울림을 만들어 놓는다. 옆에서 산수문제 푸는 어린이와 마나님을 보면 '저기 미칬나?'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조용히 방에 들어와서 한참 덮었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저 한마디에 소박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피폐해진 삶 속에서의 한가닥 희망, 애절함 아니 한 사람으로써의 근본적인 갈망을 모두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의 불편한 현실속에서 잊혀질사람, 잊혀져야할 사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역사교과서와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일본을 비난하고, 독도문제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수요시위에 대한 나의 자세와 태도만으로도 돌아볼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국에 계신분들을 위해서 자동차를 샀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지만, 정작 중국에 계신 이 가련한 분들은 그렇게 잊혀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기억해지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삶을 유린당하고도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과 또 그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름의 이랑만큼 깊은 상처와 주름의 숫자만큼의 고난을 어루만져주지도 못한 그들이, 오히려 작가에게 보여주는 따뜻함은 더욱 감동과 슬픔, 죄의식을 더 깊이 느끼게 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제국주의의 문제이전에 인간존중과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제도화한 것은, 인간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이다. 현실에서 성폭력범죄가 가볍게 처리되는 것도 사실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살인은 더 깨끗할지 모른다. 평생의 상처와 공포, 죄의식, 자책, 포기와 같은 어둠속에서 피폐된 정신과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돈 300원에 일하러 간다고 속인것 이전에 이런 생각자체의 문제와 행위로 발생된 피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류문명속에서 이런 반문명적 행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런 그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들의 반인륜적 태도와 생각은 2차적 살인이란 생각이다. 거기에 다시 그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조국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따뜻한 손을 보듬어 줄 수 는 없어도, 그들을 기억해야하는 이유와 그 당위성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한다. 역사문제를 피아의 구분으로 남의 잘못만 탓하고 나의 잘못을 가리는 행위도 문제이고, 근거없는 우월함을 바탕으로 남의 잘못만 비난하는 것도 맞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다. 인간이라는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겐 그러한 권리가 충분하다. 경제10대 강국이란 구호의 공허함과 의식수준의 개탄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은 조국도 그들이 잊혀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는 조선인 여성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라고만 하기엔 그 죄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다. 수요집회에 어르신들의 외침은 어떤 역사논쟁보다 살아있는 역사다. 고국이 아닌 중국, 동남아시아등으로 흩어져 생존을 알 수 없고, 또 이름없이 사라져가는 가련린 그들의 존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역사를 떠나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 많이 앞서간 분들이 좋은 곳에서 새롭게 행복한 곳으로 떠나길 바랄수밖에 없다. 소중한 그대들이 더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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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상처가 있다. 결국 죽음만이 해결책인 모양이다. 참으로 잔인한 인생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역사가 그런 인생을 여럿 양산했다. 누구의 죄일까. 무기력했던 위정자들을 탓해본다. 나라를 잃어 행복했던 이도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대다수는 불행했다. 남의 나라를 위해 몸 바쳐야 했던 이들의 운명은 더욱 가혹했으니,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고국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겹겹’은 중국에 남겨진 여인들의 이야기다.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전락해야만 했던 꽃다운 나이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나이 들고 병 든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분명 젊음은 있었다. 젊음을 누려야 할 시기에 안타깝게도 불행은 시작됐다. 돈이 궁했다. 당장 살 걱정을 하는 입장에서 그들은 가족을 생각하며 스스로 떠나기도 했고, 때로는 가족의 권유에 의해 길을 나서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들은 현장에 당도해서야 속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제 이름을 잃고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해방마저도 그들에겐 축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게 아니었음에도 그들을 손가락질 했다. 도저히 가족을 찾아 돌아갈 수가 없었으니,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 못지않게 제 안에 자리 잡은 치욕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뿔뿔히 흩어져 살던 그들에게서 우리말을 듣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제 고향의 지명은 잊지 않고 우리말을 힘줘 말했으니 제 뿌리와 혈육을 향한 마음은 강렬한 모양이다. 음지에 있던 서글픈 이야기를 양지로 이끌어내는데 저자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야기를 접하고 이를 기록해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저자는 중국으로 떠났다.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땀 흘려 그들을 조국으로 데려온 경우도 있었지만 가족과 말이 통하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우리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등의 문제로 인해 결국 중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결국 고향은 그리움 속에서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이 디아스포라의 삶이 이런 것이지 싶었다. 서글픔은 어렵사리 털어놓은 이야기에 의해 흑백사진의 묵직함에 의해 더욱 짙어졌다. 언제쯤 그들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한 때는 북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도 했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돌보고 있지 않단다. 국적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서? 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표면적인 국적과는 별개로 ‘우리’여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단 한 번도 우리로부터 벗어난 적 없는... 책을 덮으려는 순간 다시 한 번 울고픈 마음에 빠져들었다. 결국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분들도 그리 편치는 못한 삶이 지속되고 있었다. 한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이수단 할머니는 2011년 정신분열증이 발병했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편이 차라리 속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운명이었다. 지금껏 버티신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리라. 김순옥 할머니는 2005년 나눔의 집으로 왔지만 알츠하이머로 고생 중이신 모양이다. 1922년생,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도 힘들 시점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까. 이들의 생이 멎으면 왠지 우리의 이야기도 멎을 거 같아 조바심이 난다. 틈틈이 부지런을 떨어가며 이야기 하나하나를 세상에 끄집어 내고 있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벗겨도 벗겨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양파 껍질 같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기 위한 노력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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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참 답답하다. 분명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없단다.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들... 바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벌써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어떤 보상은 커녕 사과도 받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치욕스러운 과거의 아픔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지금 삶은 어떨까? 당시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태평양 연안의 나라에 일본군의 유희를 위해 끌려다니던 여인들이 이제는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 책 [겹겹]은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재 이야기를 전한다.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그녀들은 거짓말에 속거나 강제로 끌려서 중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배고픔과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버텨냈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들은 다시 버려졋다. 일본군이 철수하며 중국 현지에 남겨졌지만 그녀들은 자신이 중국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당시로서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것은 그저 위안소가 있었던 인근 마을에 남겨지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은 그녀들에게는 돌아가야 고향은 그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린것 같다.
간혹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되어 만남의 기회라도 가진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리움만 가슴에 품고 모진 세월을 견디며 살고 있다. 위안부 시절의 흔적으로 아이도 낳지 못한체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 책에 담겨진 흑백사진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안스럽고, 미안하고, 화도 났지만 지금 일본의 반응이나 관계국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외딴 중국땅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버림받고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녀들에게 그 어떤 위로가 필요할까.....
지금은 조선말도 중국말도 잘 못한다며 '부끄러워, 조선말을 잊어버린 게 가슴 아파'라고 말하는 이수단 할머니 죽기전에 한복 입고 사진 박히는게 소원이라던 김순옥 할머니 경남 하동군 화개면이 고향이라던 배상엽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도 보고싶고 동생도 보고싶지만 아무도 없어 돌아갈 꿈을 오래전에 버렸다는 김의경 할머니 하루라도 고향을 잊은 적 없다는 박대임 할머니 꿈을 꿔도 조선꿈을 꾼다는 헌병숙 할머니 갈수만 있다면 고향에 가고싶다던 박우득 할머니 몸이 쇠약해져 거동조차 힘들던 박서운 할머니
그녀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녀들에게 과거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야 할 그들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죽어서라도 그녀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숙이는 누군가가 있을까?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은 남겨졌다. 낮선 곳, 중국에 뿌리를 내린 지 80여년 고통과 압박의 무게는 삶과의 고투로 겹겹이 싸여 긴 한숨이 된다. 힘들고 지친 여정의 세월 짐을 내리고 아픔을 여물고 단장을 한다. _겹겹 사진전(류가현갤러리, 2012.8) 중에서...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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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라는 책의 제목이 이렇게 가슴을 묵직하게 만들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먹먹하게 할 줄도 몰랐다.
안타까움과..죄스러움도 함께 느꼈다. 기억하지 못해서 죄스럽고...그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고...
누군가는 자꾸 지우려는 것을 누군가는 자꾸 상기시키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이책에 나오는 그분들이 아닌가 싶다.
가해자인 일본은 극구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 발뺌하고... 피해자인 그녀들은 너무 힘이 없어 그들에게 제대로된 항거조차 할 수 없는...
처음 책에 대한 간략적인 이야기를 접했을땐.. 그런 분들이 계시구나..하는 막연한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책을 받아 읽으면서는 '왜..왜??'라는 물음이 자꾸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그들에게...우리 민족은 단지 물건이었다??' 그들이 이제라도 그들의 잘못을 인정해주길...
책 속의 그분들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까... 100%...다 이해할 순 없지만...조금은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마음이 더욱 먹먹하게 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가있어도 힘든 것이 외국생활이라고 하던데...
타의에 의해...아무것도 모른채...그곳에 남겨져야 했을 그녀들의 속타는 심정을... 이책을 통해서나마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책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잊지 않기 위해 다시한번 상기 시킬테니까...
같은 형식으로..그리고 같은 행동으로 사람들을 핍박했던 일본과 독일... 그런데 그들의 자손들이 보이는 행동은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다.
한곳은 그들의 잘못을 잊지 않기 위해 기념관을 건립하고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더욱 많은 교육을 하는 반면... 한곳은 그들의 잘못은 절대 없다 외치며 그것은 불가피한 사건들이었다고 주장하는...그리고 더불어 어떠한 행동적인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그래서 억울한 그녀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책속에 소개된 할머니들은 모두 8분이시다. 그분들 중 이제 살아계신 분은 두분밖에 안계신다고 한다.. 이제 그때를 기억하는 그녀들이 존재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역사안에 존재했던 그녀들은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역사 자체는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들이 그 사실을 자꾸 잊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그들이 그 사실을 잊지 않기를..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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