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8%
  • 리뷰 총점8 12%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 내용보기
<노자가 옳았다>는 <노자와 21세기>보다는 더 훌륭하고 더 포괄적이고 더 핵심적으로 더 대중에 다가선 책이다. 문장의 뜻을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해석해서 노자라는 큰 줄기를 놓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노자에 비추어 현실을 보는 눈도 날카롭다.    하지만 바로 <道經>주해로 들어가면서, 노자와 제자백가 사이의 제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서문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동아시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 내용보기

 <노자가 옳았다노자와 21세기보다는 더 훌륭하고 더 포괄적이고 더 핵심적으로 더 대중에 다가선 책이다. 문장의 뜻을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해석해서 노자라는 큰 줄기를 놓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노자에 비추어 현실을 보는 눈도 날카롭다.

 

 하지만 바로 道經주해로 들어가면서, 노자와 제자백가 사이의 제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서문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동아시아의 노자 수용과 더불어 한국의 다석 류영모-함석헌으로 이어지는 민중적 노자해석의 전통에 대한 도올 선생의 정리된 관점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적잖이 아쉬운 점도 많이 남는 책이었다. 특히 마왕퇴 백서 판본과 곽점 죽간본이 출간되고, 왕필 노자주뿐만 아니라 노자 하상공주>, 중국과 한국, 일본, 서양에서 현대에 다양한 노자해석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 나는 도올 선생님이 여러 주를 종합하여 보다 더 치밀하게 왕필 노자주를 초탈하여 노자 목소리의 원의를 복원하는 일에 힘쓰실 줄 알았다. 왜냐하면 도올 선생 스스로 황로학의 전통이나 도교의 내단, 외단 등의 기수련법, 양생술 등에 노자 사상이 원용되어 왜곡된 전통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왕필 노자주는 그것대로 전승의 과정이므로 백서본 노자와 곽점 노자를 보다 종합하여 판본 교감을 하시길 권했는데, 이번의 주해는 여전히 왕필 통행본 노자의 번역(1989년 출간된 도올의 초기 번역 길과 얻음의 판본이 되었다)에 기대어 오늘날 현대 언어 감각을 더해 번역된 것이다.

 

 특히 도올 선생이 노장사상에 갇히기보다 기독교와 유교, 불교철학, 역사철학, 한국 고대사, 중국 근현대사를 오가며 외유가 잦았던 데 반해, 도올보다 더 정밀하게 고고학적 발굴 성과(마왕퇴, 곽점)를 반영하여 노자철학의 원의에 다가서려고 했던 동시대 학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이가 서강대학교 교수를 지낸 최진석 교수이며 2001년 도올의 노자와 21세기에 대한 비평과 기존의 주석가들의 오역 수정을 가미하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소나무)>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최 교수는 세밀한 판본 원문 교감에 따라 왕필 판본의 글자를 수정해서(곽점본이나 백서본을 따라) 번역하기도 하고, 김형효와 김용옥 같은 동시대 노자주석가들의 해석을 비롯하여 왕필 주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논의를 치열하게 비판하면서 노자의 원래 목소리에 다가서려고 한다. 또한 지금 뉴욕스토니브룩 교수로 재직중인 김홍경 교수는 덕도경순서로 노자를 주해하여 정밀한 번역을 해서 내놓았고(도경 1장 번역이 아쉬운 점만 제외하고는 탁월한 번역서다. 상지대 김시천 교수가 교수신문에서 노자번역의 최고봉으로 최진석과 김홍경의 번역서를 꼽았다), <백서 노자하상공본 노자>, <회남자를 완역하며 굵직굵직한 학술성과를 남긴 이석명 교수가 최근에 도올처럼 자신의 기출간된 노자주해를 다시 종합하여 노자(창비)>라는 책을 내놓았다. 영남대 최재목 교수는 곽점 노자를 판본으로 2010년 을유문화사 고전 시리즈의 하나로 노자를 출간했다. 이밖에도 주목해야 할 노자번역은 연세대 교수로서 후학을 많이 양성하며 도가철학 전공자 중 유일하게 장자/외/잡편을 모두 완역한 이강수 교수의 번역(<노자>(도서출판 길)), 신영복 교수와 함께 중국경전을 번역하며 묵자를 최초로 완역한 한학자 기세춘의 노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도서로 선정된, 김경수 박사의 노자역주>, 강남대 임헌규 교수의 노자 도덕경 해설(왕필-곽점-백서판본을 모두 비교한 책이다)>, 마지막으로는 도올과는 반대로 박사학위를 서양철학으로 전공했으면서도 연구활동 과정에서 동양철학으로 점차 전공을 옮겨 한국불교나 도가사상에 굵직굵직한 연구성과를 남긴 故 김형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사유하는 도덕경이 있다(데리다의 해체이론에 비추어 노자를 해석한 독창적인 연구성과(<노장의 해체적 독법>)를 저술로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한국학계가 후학의 연구성과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를 개탄하는 서문을 김학목 교수의 초원 이충익의 담노 역주에다 붙인 바 있다. 그렇다면 도올과 거의 동시대에 나온 선후배 학자들이 여러 관점에서 번역하고 해설하고 비평한 노자 도덕경주해서를 조금이라도 참조하면서, 도올의 원래 번역에 가해진 비판에 대해 자초지종을 달아주었으면 했던 것이 그동안의 나의 바람이었다. 일례로 최 교수는 도올의 번역에 대해 몇 가지 지적을 하기도 하고, 왕필주 자체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며 판본 교감까지 하는데, 도올은 유감스럽게도 최진석 같은 한국의 노장철학 대가의 비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도올 선생이 현존 한학자 중 최고 거장 성백효 선생의 논어오역을 지적하는 해설을 2008년 완역한 논어한글역주에 덧붙인 것에 비하면, 기실 의아한 일이다. 물론 도올이 구구한 비판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않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일례로 이경숙 같은 사람의 비판은 수준 이하였다는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입증되었다. 노자의 전승과정과 주석사 전통에 대해 전혀 무지한 이들이, 원본에 구두점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구두점을 어떻게 찍어가며 읽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옥편 하나만 찾아서 노자를 완벽하게 해설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뻥구라에 많은 언론인들이 단지 도올 비판이라는 이름만으로 주목했던 것은 우리나라 언론의 오욕의 역사의 한 장면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동시대에 도올과 같은 과정을 거쳐 치열하게 학문의 수련을 마친 동학들의 비판과 번역을 외면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중국과 일본의 노자해석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해왔으면서, 어떻게 동료 한국학자들의 연구 성과는 그다지도 도외시하는지. 단지 이석명 교수의 백서 노자번역(청계, 2003)이나 김윤경 인천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담노 역주(2014)>에 대해 참조했다는 것만 노자가 옳았다초반 번역에 나와 있을 뿐이다.

 

 도올 김용옥은 명실상부한 한국적 노자 해석의 전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김시천 교수는 최근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노자를 강의하며, 노자 철학 해석의 한국적 전승과정에 주목하였는데, 다석 류영모와 함석헌의 노장수용의 계보를 도올이 잇고 있다 평한 바 있다. 하지만 도올이 도올tv에서 다석 류영모의 늙은이라는 주해를 몇 강에 걸쳐 주목한 것과 상반되게, 이 책에서는 현대 한국의 노자 해석의 과정과 전통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박세당과 홍석주, 이충익과 같은 조선조 노자 해석에 주로 주목할 뿐이다(이번 책에서 담노에 관련된 논의, 태일생수의 번역은 아주 훌륭했고 나도 도올 선생으로부터 많이 배웠다). 심지어 1970년인 김충렬 교수에게 노자를 최초로 사사했다는 것을 앞 책날개에서 강조하면서, 김충렬 교수가 2004년 유작으로 남긴 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역시도 레퍼런스에 들어가 있지 않다. 김 교수의 이 책 역시, 초간본 노자와 통행본 노자(왕필주)를 종합한 번역서이자 연구 성과이며 후학들이 제자백가나 노자에 관련된 논문을 쓸 때 무조건 참고문헌에 기재하는 중요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김충렬 선생의 이 책은 젊어서 그가 왕필주를 저본으로 노자를 강의할 때부터 백서/곽점본 출간 이후 노자를 다시 읽게 된 원로학자가 될 때까지, 노자에 관련한 사유의 과정을 집대성했다.

 

 사실 나는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도올 선생이 이렇게 실존하는 연구 성과를 전혀 모르고 이 책을 썼다기보다, 자신이 평생 노자를 연구하며 느낀 감정과 단상과 연구성과를 보다 압축적으로 대중적인 필치로 쓴 것으로 이해한다. 도올 선생은 노장 문헌 세계제일 챔피언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계시니까 말이다. 하지만 도올 선생은 초기저작 노자철학 이것이다에서부터, 노장철학에 관련된 모든 자신의 총체적 사유를 종합해서 끝판왕 책을 남길 거라고 호언장담해오셨다. 초반 번역 <길과 얻음에 원문 번역만 있을 뿐 주해가 전혀 붙어있지 않은 것이나 노자와 21세기에서 시도된 주해 역시, <도경에서 멈추어 있는 것도(<德經의 제대로된 번역은 이번에 최초로 시도됐다) "도올의 종합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나중에 완벽한 문헌비평 성과를 거쳐 완성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2012맹자완역을 마치고 도올선생이 <노자> 주해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그의 기철학 사유 체계의 원형인 노자번역이 드디어 완료된다고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논어효경이 가진 엄밀한 주해의 성격보다 이 책은 훨씬 라이트하게 느껴진다. 라이트하기에 그만큼 많은 이들이 많이 읽겠지만, 나처럼 도올의 책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통독한 사람은 분명 적잖게 실망할 것이다.

 

 도올 선생은 왕필을 신뢰하면서 노자 해석 역시도 왕필에 많이 기대고 있다. 그리고 왕필 해석을 높게 평가하고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왕필을 기반으로 백서와 초간본 노자, 조선조와 중국의 노자 해석을 아우르는 포지셔닝은 나 개인으로서는 너무 왕필을 높게 평가하고 왕필주에 집중하시는 듯하여 다소 아쉽지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걸 도올 선생을 사숙해온 제자로서 문제를 삼을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왕필을 띄워주면서 학문적으로 받는 엄밀한 비판적 평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필을 비판한 최진석이나 김홍경의 연구성과는 최소한 참조했어야 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더불어, 학계에 파문을 던진 연구서로 굉장히 중요한 견해가 2000년대 들어 제출됐는데, 그것이 바로 강신주 박사의 노자 해석이다. 전통적인 노자 철학의 결은 이러하다: 노자가 반문명, 반문화, 반언어적 철학이며 유위적 문명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며 지도자의 폭정을 막는 민중사상으로서의 구실을 했다! 어떤 학자건 대체로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도올 선생 역시 노자를 민중지향적이고 반국가적인 아나키스트로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강신주는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2014, 오월의 봄)에서 노장사상을 도가라는 범주로 묶는 것에 반대하며, 노자는 "무위"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통치자에게 국가주의적 위세를 부릴 이론적 밑바탕이 되어 왔음을 비판하며 노자사상은 기실 "제국의 형이상학"이라는 충격적인 사자후를 던진다. 반면 그는 <장자>에서 나타나는 개인과 자유에 주목하며, 제자백가 중 가장 정신적 자유의 경지에 도달한 경전이라 보며 "타자와의 소통"에 방점을 맞추어 <장자>를 해석한다. 노자와 장자의 대립적 구도에 관련한 논의는 단지 강 박사의 것만이 아니고, 김시천 교수나 이석명 교수 등 신진 학자들이 꾸준히 비판적으로 제기해온 것이다. 김시천 교수 역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2013, 책세상)에서 강신주 박사와 결이 비슷하게, 노자-장자의 이질성에 주목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이석명 교수의 경우, <노자와 황로학(2010, 소와당)이라는 책을 통해(이 책 역시 우수 학술 도서로 선정됐다. 왜 이석명 선생이 게으른 철학 교수들보다 뛰어난 연구성과를 훨씬 많이 내놓으면서도, 철학과 전임교수가 못 되셨는지 애석한 일이다.) 노자가 하나의 군주의 통치술로 군림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황로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저술한 책은 별로 없다. <노자와 황로학>과 더불어 <중국 황로학>이라는 책 두 권만 뜬.

 

 김용옥 선생은 황로지학으로부터 내려오는 노자해석을 다 알고 있고, 1980년대에 황로학에 대한 논문도 선구적으로 발표하셨으니 이미 이걸 다 파악하고 계신다. 동양철학 공부하는 사람들도 "황로학"이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은 매우 희소한데, 내가 황로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이 도올 선생의 "기철학과 황로지학"의 관계를 다룬 1980년대 논문이었다(이 논문은 1990년 출간된 도올 논문집에 실려있다. 강요배 화백의 형인 강거배 서강대 불문과 교수가 이 글을 번역해 해외 잡지에 실었다.). 헌데 도올은 한대 이래의 노자 해석의 "왜곡된" 전통을 다 배격하고, 노자의 "원의"에 주목하려고 한다. 놀랍게도 도올과 노자에 대해 다소 시각이 다른 최진석이나 김홍경과 대단히 비슷한 시도를 하고 계신 것이다. 하지만 노자란 책이 어떻게 읽혀 왔는가도 노자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이다. 예를 들면, 니체사상은 분명히 나치의 등장과 나치의 이론화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하이데거가 아무리 실존주의의 거장이라 해도 나치에 부역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노자에 얽힌 '불순한' 시각, 노자가 말하는 반문명론이 사실상 통치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는 사실, "무위"가 일종의 동양적 마키아밸리즘으로 원용되어왔다는 점, 이걸 외면하고 어떻게 노자를 읽을 수 있을까? 노자를 제국주의적으로 활용해왔던 통치술로서의 노자의 전통은 노자가 애매모호하게 표현해 오해를 남긴 문제일 수도 있다. 이를 명확하게 지적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히 생각하건대 정치현실과 유리된, 고고한 얘기만 하는 순수한 노자란 없다. 노자를 "이상"하게 읽어온 전통이 면면히 내려왔다면, 역시 노자의 일부이다. 도올 선생이 노자에 관련해 포괄적인 연구성과를 내시려면, <노자주해와 더불어 노자와 황로학의 관계, 도교와의 관계, 각종 민간신앙/주술/사주명리/한의학/풍수지리과의 관계, 장자와 노자 양자의 관계, 한의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학사상사를 포괄적으로 섭렵한 논의를 펼치셔야 하는데,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상세한 언급을 소략하거나 결여하고 있다. 한때 나는 도올 선생이 조셉 니이담을 능가하는 중국과학사상사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도올 선생은 한의사로서 한의철학에 관련된 저술 역시도 <너와 나의 한의학> 이외로 남겨 두지 않으셨다. 도가, 도교, 한의철학에 관련된 연구는 경희대학교 철학과의 정우진 교수가 독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여튼 강신주의 논문도 현대의 신선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져 2004년 이후 나온 국내 제자백가, 노장사상 관련 박사학위 논문 중 강 박사의 저술을 레퍼런스에 달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이 정도로 영향력 있는 국내의 연구 성과를 도올 선생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역시 그가 몰랐다기보다는 단지 강신주의 논의에 동의하지 않아서였을 확률이 높지만, 영향력 있는 디스꾸르에 동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학자로서 언급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철학적 논의가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현장을 보다 더 세세하게 노자가 옳았다에서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도올은 노자와 장자의 사유가 어떻게 다른지 무위의 치술과 자유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한 마디 언급은 부기해두고 있다(입세간-출세간적 차이). 노자-장자의 본격적인 비교와 차이점은 크게 강조하고 있지 않으시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도올 선생이 8년 간 시대정신과 노자를 종합한 기나긴 서문을 오래도록 써왔는데, 그것이 힘에 부치고 복잡하여 노자 근본의에 어긋난다는 판단에서 이렇게 트레이드마크인 서문을 아예 생략한 노자신역을 내놓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것은 노자가 옳았다> 1장 주해에서 200자 원고지 4000매 이상 분량으로 작성한 노자 서문을 미간 원고로 남겨 두었다고 언급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로서 노자를 평생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오는 데 누구보다 헌신한 도올 선생이, 자신이 평생 애착을 둔 전공 분야에 대해 이 책 하나만 남겨 놓고 떠나면 그야말로 민중이 우짖는다! 기독교에 그다지도 비판적이면서도, 기독교의 근본의를 민중에게 올바르게 전파하기 위하여 요한복음, 로마서, 마가복음 주해와 예수전기까지 엄청난 양의 저술을 최근 3년 내내 출간한 열정에 비견해본다면 노자번역서 한 권으로 50년을 정리한다는 것은 너무나 소략하다. 심지어 로마서 강해마가복음 강해보다도 책이 짧고, 글자 수도 적다. 게다가 덕경주해는 이번에 최초로 시도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도경주해보다 너무나 해설이 빈약하다. 1~3장까지는 노자의 가치론과 우주론이 핵심적으로 포섭되었기에 예전 노자와 21세기처럼 해석에 공을 들인 반면, <덕경에서는 주로 해당 의 근본 취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한다든가, 번역상의 문제라든가, 도올 선생의 감상의 초점이 어떠하다든가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 <덕경에 대한 밀도 있는 주해가 없었던 것이 늘 아쉬웠던 나로서는 김용옥 선생이 이번 책에서 쉽게 읽히기 위해, 너무도 힘을 빼고 주해를 한다는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힘을 뺄 것은 차라리 <마가복음 강해>였다고 생각한다. <마가복음 강해> 역시 집대성의 성격이 강한 책인데, 언어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 허나 본인 전공인 노자에 대해서 이정도의 밀도라면, <마가복음 강해>보다 대중을 더 많이 <노자>의 사유체계로 포섭하려는 작가로서의 전략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동양사상을 전공할 후학의 입장에서는 적잖이 실망스럽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YES24에 최초로 쓴 노자가 옳았다에 대한 장문의 이 서평이, 통나무 출판사에게로 이어져 도올 선생이 노자에 대해 쓴 미간 원고를 보충하여 또 다른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도올 선생은 그간 연구서를 쓰지 않았다. 주로 번역과 주해의 전통적인 양식 속에 서문을 붙이고, 프라그먼트 사이사이에 자신의 생각과 연구 성과를 녹여내는 고전적인 방식의 저술에 노력해왔다. 하지만 기독교 분야에서 도올선생은 이미 기독교 성서의 이해라는 개론서 성격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또한 유교 역시 논어한글역주> 1권은 거의 유학사상과 인류문명을 총괄하는 거대한 장문의 논문 성격의 서문이 8할을 차지한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이나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라는 책도 경전 주해 이전에 초기불교 이론과 선불교-통불교의 전통이 아주 잘 요해(了解)되어 있다. 그런데 왜 도올선생은 노장사상에 대해서만큼은 그리 말씀을 아끼시는가? <노자가 옳았다본문에서 유교집안에서 자랐으나 노장계열 사상가들에게 더 훈도를 많이 받으셨다고 언급하셨지만, 도올 선생이 주도한 <노자>, <장자>, <열자>, <여씨춘추> 등의 도가계열 문헌의 번역은 다른 경전에 비해 훨씬 미진했고 노자를 제외한 다른 도가계열 문헌은 제대로 완역한 것이 아예 없다(<장자>나 <열자>는 이번 책에서도 그렇지만 초기 저작에서 참고문헌으로 자주 언급되고, <열자>에 관련된 논문을 도올 선생은 초기 논문을 남겨놓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씨춘추> 중 일부는 <효경한글역주>에 번역돼 실려있긴 하다)

 내가 보기에는 <장자야 말로 노자보다 더 번역과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더 민중에게 많이 알려져야 하는 책이 <장자>이다. <장자>가 민중 속으로 퍼진다면, 개개인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는 어설픈 도사들이 안 설치고 진정으로 "양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장자>의 경우, <내편을 제외하고 외편잡편에 대해서는 완역은 많으나(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안병주/전호근 공역의 책과 이강수/이권의 공역으로 나온 <장자(길)>등이 좋은 번역으로 읽힌다), 제대로 된 “주해가 거의 없다. 나는 국학분야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하신 도올 선생이 동경대전부터 용담유사>, <해월신사법설에 이르는 동학경전 주해도 면밀하게 착수해 나가시길 응원한다. 개인적으로는 후기 천도교 이론가인 소춘 김기전 전집과 야뢰 이돈화의 <신인철학>까지 도올 선생의 손이 닿으면 더없이 좋겠다. 왜냐하면 이 경전들 역시 번역은 존재하지만, 상세한 주해가 부재하여 조선이 가장 자랑할 만한 사상이면서도 가장 민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학계열 경전의 경우 신비주의 비슷하게 인식되어 있고, 동학을 리스펙트하면 사짜로 몰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더불어 도가사상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연구하고 대중적으로 전파해온 장본인이신 만큼, 후학들에게 그간의 사유를 더 총체적이고 더 입체적이게, 그간의 연구성과를 모두 종합해주시길 요청하는 바이다.

 이러한 장문의 비평을 게재했으나, 노자를 처음 접한 분에게는 이 책만큼 노자의 전모를 깔끔하게 알려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최진석이나 김홍경의 책은 그 연구서들의 훌륭함을 차치하고, 노자에 학문적 뜻을 둔 사람이 아니고서는 초심자가 단번에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노자에 관해 가장 쉽게 씌어진 책은 이 책임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도올 선생이 차기작으로 동학을 집필하면서도 도가계열 사상을 더 다루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중요한 코로나 19시대에, 유가와 도가 같은 대표적인 중국 사상 뿐만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묵자에 관한 주해서를 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올 선생이 노자가 중국에서 천시 받고 이단, 비주류로 치지도외당하기 때문에 우리가 노자사상의 적통을 이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노자는 고조선 사상가다!), 묵자의 경우는 더하다. 나를 포함해서 연구자들은 노자보다 묵자가 훨씬 노동자와 약자에 친화적이었고, 당대의 민중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사상가라고 본다. 기실 반전, 평화를 실질적으로 말하고 실천한 것은 노자가 아니라 묵가학파였고, 실제로 묵가가 민중의 곁에 있으며 전쟁을 막는 데 힘썼기에 당대 위아설을 주창한 양주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학파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묵가가 진나라의 건국에 참여하면서 몰락한 이래, 지금까지도 묵자는 판본손실이 심하고 가장 배제당한, 가장 외면 받은 경전으로 남아있다. 중국도 묵자를 하나의 완정한 사상체계로서 제대로 연구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쉬운 대로 우리나라에서 묵자 번역과 해설은 이미 많이 나왔지만, 철학자의 번역은 이운구 선생과 그의 제자 윤무학 선생의 책이 거의 유일하니, 역시 옮김은 있으되 주해가 빈곤한 세태이다. 도올 선생의 유려한 번역과 해설이 더해지면, “묵자가 우리 사상가라 될 것이라 확신한다. 도올 선생께 묵자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주시기를 후학으로서 조심스럽게 제안드린다. 통나무 출판사 담당자 누군가 이렇게 버릇없어 보일 수도 있는 비평을 읽고, 도올 선생께 전달해주셔서 손에 들어가게 만든다면 더없이 감사드리겠다. 그리고 난 이것이 도올 선생의 책 80여권을 모두 다 본(그것도 거의 다 직접 사서 봤다.) 독자이자 젊은 학도로서 자격있는 비평이라 생각한다.

l*******4 2020.10.11. 신고 공감 17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에 대한 의견 - 노바당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에 대한 의견 - 노바당" 내용보기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에 대한 의견 - 노바당"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을 세심히 읽어 보니 국내의 <노자> 연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의 글이군요.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혹 제가 아는 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글쓰신 분처럼 도올 선생의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에 대한 의견 - 노바당" 내용보기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에 대한 의견 - 노바당



"과연 노자는 옳았는가?-도올선생의 노자주를 모두 검토한 사람의 입장에서 논구함"을 세심히 읽어 보니 국내의 <노자> 연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의 글이군요.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혹 제가 아는 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글쓰신 분처럼 도올 선생의 모든 책을 읽었고, <노자>에 대한 모든 강의(1989년부터 미도파, 동국대, 도올서원, EBS, 후즈, 도올TV, 기타 도올 선생 책에 인용된 <노자> 해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노자 제대로 읽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글쓴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노자>, 특히 도올 선생의 <노자>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는 않다는 말씀일 겁니다. 그렇지만 저의 <노자> 이해는 도올 선생과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릅니다.


그리고 글에 인용된  <노자> 연구자들의 책을 거의 다 읽어 보았습니다. 이런 책에 대한 제 평가는 글쓴 이보다 상당히 낮습니다.  


<노자>에 대한 해설 책은 대체로 두가지 방향이 있읍니다. 첫 째는 <노자>에 대한 주석을 위주로 한 문헌적 연구, 두번 째는 그 내용에 대한 사상적 연구일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겸하는 것이 좋겠지만 일반인인 독서 대상을 생각한다면 방대함과 세세함이 꼭 좋은 방향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문헌 연구와 사상 연구를 겸한 책인 중국 학자 유소감(劉笑敢)의 <노자고금>(<老子古今/ 五種對勘與析評引論>)은 상, 하 1500페이지로 우리 말로 번역하면 2000페이지가 넘어 일반인의 <노자> 이해로는 부적합할 것입니다.


<노자가 옳았다>는 이 중 노자 사상의 전달을 위주로 한 책입니다. 글쓴 분은 국내학자들의 문헌 연구(곽점, 마왕퇴 <노자> 등)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중국이나 구미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한 정도입니다. 이 점은 국내에서 <노자> 자료에 대한 1차적 정보 취득이 어렵고 또한 도가에 대한 대학에서의 연구 여건이 미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노자> 연구자의 수도 극히 적고, 그 수준도 높지 않습니다.


도올 선생이 왕필본을 기본으로 한 점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마왕퇴 <노자> 갑, 을본(BCE 200년 경)은 왕필본의 <노자> 원문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점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도올 선생이 강의에서 언급하신 <북대 한간<노자>(BCE 100년 경)에 의해서도 증명이 됩니다. 왕필본은 지난 1500년 이상 가장 많이 읽혔고, 원문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전세계적으로 학자들이 합의하여 판본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임시적 판본으로 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현행 왕필본 원문의 오류는 대부분 왕필 이후 필사나 인쇄 시의 착오로서 왕필의 잘못이 아닙니다.


글쓴 분이 호의적으로 언급한 최진석이나 강신주, 기세춘의 경우는 독창성(?)과 기발함이 있으나 자기 주장일 뿐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의 책은 주장의 근거는 없거나, 부실하고 강력한 확신 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독자들이 이 분들 주장에 경도되는 것은 이들 주장의 근거를 판단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터무니없는 자기 확신에 찬 어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네이버 블로그에 제가 쓴 이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 글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고 말이 된다면, 아니 말이 안된다고 여기신다면 의견주십시오.  글을 이어 가겠습니다.



노바당의 취미 생활 

https://blog.naver.com/jaseng54 


노자의 에 대한 최진석 교수의 관점을 비판함

https://blog.naver.com/jaseng54/220301708029



강신주의 <노자> 해석에 대한 비판/ 노바당

https://blog.naver.com/jaseng54/90136059434


강신주의 장자는 <장자>가 아니다.

https://blog.naver.com/jaseng54/90089114559


‘강신주의 장자 해석’에 대한 비판: 인신공격? , 주석 편

https://blog.naver.com/jaseng54/90115414230



노바당의 <<기세춘 <노자 강의> 비판>> / 주석 포함

https://blog.naver.com/jaseng54/90078089916



‘『완역 이경숙 도덕경』 비판’ 본문 및 주석

https://blog.naver.com/jaseng54/90083287197




YES마니아 : 로얄 j******4 2020.10.12.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북경대학장서한죽서 노자(北京大學藏西漢竹書老子)는 왕필본 노자의 정확성을 증명한다 – 노바당
"북경대학장서한죽서 노자(北京大學藏西漢竹書老子)는 왕필본 노자의 정확성을 증명한다 – 노바당" 내용보기
<북경대학장서한죽서 노자(北京大學藏西漢竹書老子)>는 <왕필본 노자>의 정확성을 증명한다 - 노바당   https://blog.naver.com/jaseng54/90169460338     <북경대학장서한죽서(北京大學藏西漢竹書)>는 중국에서 도굴 후 해외에 유출된 것을 익명의 북경대학 출신자가 구입하여 2009년 초에 북경대학에 기증한 것입니다. 총 죽간 매수는 약 3300여매, 필사 연대는 대략 서한
"북경대학장서한죽서 노자(北京大學藏西漢竹書老子)는 왕필본 노자의 정확성을 증명한다 – 노바당" 내용보기

북경대학장서한죽서 노자(北京大學藏西漢竹書老子)>왕필본 노자의 정확성을 증명한다 - 노바당

 

https://blog.naver.com/jaseng54/90169460338

 

 

북경대학장서한죽서(北京大學藏西漢竹書)>는 중국에서 도굴 후 해외에 유출된 것을 익명의 북경대학 출신자가 구입하여 2009년 초에 북경대학에 기증한 것입니다. 총 죽간 매수는 약 3300여매, 필사 연대는 대략 서한 중기(BCE 100년 경)입니다. 모두 고대 서적이며 20여 종에 달합니다. 이 책들은 한서 예문지의 분류에 따르면 육예>, <제자>, <시부>, <병서>, <수술>, <방기등 여섯 부분에 속합니다.

 

 

* <북대한간노자에 대한 개략적 설명

 

북경대학장서한죽서중에서 북대한간노자는 죽간 221매입니다. 원래는 없어진 죽간 2매를 합하여 223매입니다. 5300여자인데 확인 불가능한 글자는 60여자 이므로 1% 정도 만 결자여서 거의 완전한 고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호 간의 뒷면에 '노자상경(老子上經)', 124호 간의 뒷면에 '노자하경(老子下經)'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이로서 제목과 당시에 노자'()'이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굴된 죽간은 연결한 편선(죽간을 차례로 엮은 끈)이 삭아 없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북대한간노자의 경우에도 3줄의 편선은 없어졌고, 장을 표시하는 기호(동그란 묵점)는 있지만 순서 표시는 없습니다. 그런데 죽간의 뒷면 상단에 칼로 빗금으로 새겨 놓아서, 그 자국을 맞추어 보면 원 순서를 결정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포산초간이나 상박초간의 경우도 같습니다. <곽점초간노자의 경우 이런 획흔(劃痕)이 없기 때문에 갑조, 을조, 병조의 구별은 가능하지만 각 조의 문단의 순서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북대한간노자의 필사 시기는 죽간(<數術>) 내용 중에 '효경원년(孝景元年)'이라는 글자가 있고, 예서의 발전 정도를 고려하면 한무제 후기, 즉 서한 중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노자의 필사 시기도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 필사 시기가 훨씬 더 이른 때일 수는 있습니다. <북대한간노자의 필사 시기가 서한 중기라면 마왕퇴백서노자갑본의 경우 이보다 길게는 100년 정도 차이가 있는 판본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북대한간노자는 한고조인 유방의 이름인 '나라 방()' 자 만 피하여 '나라 국()' 자로 바꾸었고, 한혜제인 유영의 영() , 한문제인 유항의 항() . 한경제 유계의 계() , 한무제인 유철의 철() 자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대한간노자의 필사 시기가 한고조 시기라고 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에 피휘 제도가 얼마나 엄격했는지, 그리고 필사자가 피휘를 얼마나 잘 지켰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필사 시기가 한고조 때라면 북대한간노자마왕퇴백서노자을본과 거의 같은 시기에 필사된 것인 데, 같은 예서체라도 그 서체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필사 시기는 가차자 등 한자 사용례와 어법 비교 등 여러 가지 근거로 확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사시기의 문제는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참고일 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북대한간노자의 예서체는 그 성숙도로 보아 은작산한간과 팔각랑한간의 중간 시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죽간은 한무제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북대한간노자가 예외일 수는 있습니다.

 

은작산한묘에서는 손자병법>, <손빈병법등 병가서와 묵자등 제자서가 출토되었습니다.

 

서한시대에는 피휘를 엄격히 지키지 않아 은작산한묘죽간의 경우, 한고조 유방(재위, BCE 206-195)의 방() 자를 피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혜제 유영(재위, 195-188))의 영() , 한무제 유철(재위, BCE 141-87)의 철() 자도 자주 쓰였습니다. 한대 출토문헌 상으로 보면 한대의 피휘제도는 경우에 따라 엄격하거나 느슨했습니다


정주팔각랑한묘(定州八角廊漢墓)의 묘주는 한선제(宣帝시대에 죽은(BCE 55) 중산회왕(中山懷王유수(劉修)입니다여기서는 논어>, <문자> 등이 출토되었는데한고조 유방의 방(자 만을 피하고 있습니다정주한간논어의 경우바로 윗대인 한소제(재위, BCE 87-74)의 이름인 불릉(弗陵)의 불(자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고조의 이름인 방() 자에 대해서는 피휘가 엄격했고, 다른 황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느슨했습니다. 그리고 현행 문서나 처음 쓰는 서적의 경우에는 피휘가 엄격했고, 고래로 전해 내려오는 문헌이나 경전에 대해서는 비교적 느슨했습니다그래서 피휘로는 초사 연대의 상한은 증명할 수 있지만 하한은 증명할 수 없습니다


 

* <북대한간노자에 대한 노바당의 평가

 

마왕퇴백서노자북대한간노자의 가치는 통행본 노자>(주로 왕필본)의 원문의 정확성을 증명해 준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가 보는 화정 장씨본 왕필주 노자마왕퇴백서노자>나 북대한간노자의 필사 시기보다 2000년 이상 지난 19세기에 인쇄된 것을 생각한다면 그 연속성과 일관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언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행본 왕필주 노자의 원문은 삼국 시대 위나라의 왕필(226-249)이 주를 달면서 보던 당시의 노자와는 다른 부분이 수십 군데가 될 정도로 많습니다. 현행 원문을 왕필주 노자의 주 부분에 인용된 원문에 따라 고친다면 마왕퇴백서노자>, 특히 북대한간노자와는 시대 변화에 따른 개별적인 한자의 변이, 허사의 가감, 구식의 정제화 등을 감안하면 대체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곽점초간노자마왕퇴백서노자를 검토하여 번역, 해설한 책들은 초심자나 일반적 독자들이 읽기에는 전문적 내용이 많고, 지나치게 방대하여 쉽게 질려 읽기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노자연구자들은 이런 출토 자료들을 참고해야 하지만, <곽점죽간노자>, <마왕퇴백서노자북대한간노자가 출토, 공포되기 이전에 발간된 노자해설 책도 잘 선택한다면 노자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 독자가 노자를 읽는 목적은 부분적 자구의 세세한 분석이 아니라, 노자 사상의 전체적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자> 번역책은 대체로 <노자> 원문(한문)을 수록하고 있지만, 수백 종의 서양 <노자> 번역 책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이 한문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노자를 이해할 수 없다거나, 이해의 수준이 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문이나 한자를 조금 안다고 해서 자기 멋대로 <노자>의 원문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노자 사상을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은 그 번역을 읽는 독자가 번역 대상 언어를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저는 제대로 번역되고 해설되었다면, 한문을 대조하지 않고 <노자>를 읽거나, 한문 없는 <노자> 번역서로도 충분히 노자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번역과 해설의 질입니다

/ 끝





YES마니아 : 로얄 j******4 2020.10.15.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평생 읽어야 할 고전
"평생 읽어야 할 고전" 내용보기
아. 배고 자면 딱 좋겠다. 책을 받았을 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500페이지. 그것도 보통 책보다 더 큰 양장본. 이 책은 벽돌 책으로서 무시무시한 위엄을 뽐냈다. 후훗. 나 정도는 돼야 철학 책이라 말할 수 있지. 얇은 책으로 어찌 <도덕경>을 다 담을 수 있겠어! 왠지 도올이 내 앞에서 손가락질하며 훈계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읽어 볼테냐. 평생을 <도덕경>을 읽고 살아
"평생 읽어야 할 고전" 내용보기

아. 배고 자면 딱 좋겠다. 책을 받았을 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500페이지. 그것도 보통 책보다 더 큰 양장본. 이 책은 벽돌 책으로서 무시무시한 위엄을 뽐냈다. 후훗. 나 정도는 돼야 철학 책이라 말할 수 있지. 얇은 책으로 어찌 <도덕경>을 다 담을 수 있겠어! 왠지 도올이 내 앞에서 손가락질하며 훈계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읽어 볼테냐.


평생을 <도덕경>을 읽고 살아온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저자인 김용옥씨는 20대 때 처음 <도덕경>을 만난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동양철학의 길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사실 <도덕경>을 읽고 나서 새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다.


의식 심리학의 대가인 켄 윌버도 <도덕경>을 읽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아 의학과 생화학의 길을 버렸다고 하고,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도 1년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 <도덕경> 한 구절씩을 읽으며 공부했다고 하는데. 대체 이 책은 어떤 매력이 숨어 있길래 수많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걸까?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다







<도덕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어렵다. 말장난 같다.


'도'라는 게 있는데,

'도'라고 말해버리면 '도'가 아니라니.





이 말의 의미를 저자는 이렇게 해설한다.


우리에겐 '말'이라는 장벽이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말'라는 장벽을 통과하는 순간, 그 말속에 갇혀 버린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가 머릿속에 생각해왔던 수많은 감정들을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로 표현해버리는 상황을.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내 감정과 생각을 한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할 때. 혹은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해 쩔쩔맸던 순간. 우리의 생각은 '언어'보다 더 넓고 깊다. 그래서 말로 담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감정은 '사랑'이란 말로 정박되어 버린다. 고정불변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과연 감정이란 그런 걸까? 가령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자. 어제 느꼈던 '사랑'의 감정과 오늘 느꼈던 '사랑'의 감정은 정말 같은가? 미묘하게 색깔이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이런 다른 생각과 감정을 "사랑해"라는 말로 퉁쳐 버린다.


흠. 아냐아냐. 이건 좀 곤란한데?

바로 노자는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 철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은 고정불변의 진리를 원했다. 그래서 그 진리의 기반을 언어에 두었다. 그들은 아주 질서정연한 모범생,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절대자, 즉 영원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양철학, 특히 노자의 사상은 이와 다르다. 그는 세상은 혼란스러우며, 계속 변한다고 보았다. 존재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당위론에 관심이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불변은 없다.




도란 무엇인가



그래서 도란 무엇인가. 노자는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생각한다. 하지만 서양철학에서는 있음과 없음은 다른 것이다. 당연하지. 우리 생각도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있는 게 없는 거랑 동시에 존재하지? 하지만 노자는 이들을 동시에 직관하며, 그에게 '없다'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무형일 뿐이며, 무형이기 때문에 무명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없다'는 '있다'보다 먼저 생겼다.





혼돈되이 이루어진 것이 있었으니

하늘과 땅보다도 앞서 생겼다.

...

나는 그 이름 알 길 없어,

그것을 글자로 나타내어 도라 하고

억지로 그것을 이름 지어

크다라고 말하지.


노자는 고민한다. 이 혼란스러운 것의 이름을 불러야 말로 설명할 텐데, 뭐라고 부르지? 아. '도'라고 해버려야겠다. 어차피 움직이니까. '길'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겠나! 그래서 언어라는 옷을 입은 '도'가 등장한다. 이 '도'는 굳이 억지로 말하자면 '크다'. 하지만 이 크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그 크다가 아니다. 너무너무 커서 '밖'이 없는 '전체'를 의미한다. 이 도는 매우 '역동적'이다. 움직인다. 나로부터 멀어졌다가 가까워진다. 그렇게 '순환' 한다.





저자는 단적으로 말하면 노자의 우주는 카오스의 물에서 시작하여 도의 개방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창조도 없고 종말도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순환한다.


하지만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창조의 리듬이다.


나의 매일매일 생활은 출근하고 일하고 먹고 쉬고 자고.. 항상 일정한 리듬을 타고 순환하는 것이지만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매일매일이 창조된다. 새롭게 태어나고 사라진다.





사실 나도 도덕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책을 어찌 읽어야 하나 무척 당황스러웠다. 도덕경은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고전이 아니다. 그리고 한순간 읽어서 깨우칠 것도 아니다. 평생에 걸쳐 읽어내려가야 할 텍스트이며, 어쩌면 우리의 '언어'로 된 생각으로는 영영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란 말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내년에 또 새로운 도덕경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저자도 50년간 읽었다고 하니, 그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YES마니아 : 로얄 m*******a 2020.12.13.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고조선시대에 썼지만 오늘에 맞는 노장사상^^
"고조선시대에 썼지만 오늘에 맞는 노장사상^^" 내용보기
노자의 사상을 배워야 코로나시대 및 잔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 오늘과 미래에서 김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과 행복한 대한민국 국민이 될 것 같네요^^인류학을 보면 만년전 호모 사피엔스와 지금 우리 인간의두뇌 수준이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고조선시대에 쓰신 글이 2020년 지금에 오히려 맞는다는게 신기하고 빨리 터득하신 노자 선생님께 존
"고조선시대에 썼지만 오늘에 맞는 노장사상^^" 내용보기
노자의 사상을 배워야 코로나시대 및 잔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 오늘과 미래에서 김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과 행복한 대한민국 국민이 될 것 같네요^^

인류학을 보면 만년전 호모 사피엔스와 지금 우리 인간의두뇌 수준이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고조선시대에 쓰신 글이 2020년 지금에 오히려 맞는다는게 신기하고 빨리 터득하신 노자 선생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책 얼른 받기 기대해 봅니다^^

도올 선생님이 계셔서 행복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말씀 잘 부탁드립니다.
e*****o 2020.10.2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리뷰 달아주신 것에 대해 더 첨언합니다
"리뷰 달아주신 것에 대해 더 첨언합니다" 내용보기
1. 노바당 선생님께 비평의 대상이 된 리뷰를 달았던 사람입니다. 너무 깊이 있는 평가와 비판을 해주셔서 더 첨언을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생님보다 연배도 한참 어리고 도올 선생의 연구에 대한 이해 정도도 게임이 안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우선 노바당 선생님에 비해 저는 노자에 대해 그리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한학에도 그리 밝지 못한 90년대
"리뷰 달아주신 것에 대해 더 첨언합니다" 내용보기

1. 노바당 선생님께

비평의 대상이 된 리뷰를 달았던 사람입니다. 너무 깊이 있는 평가와 비판을 해주셔서 더 첨언을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생님보다 연배도 한참 어리고 도올 선생의 연구에 대한 이해 정도도 게임이 안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우선 노바당 선생님에 비해 저는 노자에 대해 그리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한학에도 그리 밝지 못한 90년대생 20대 대학생입니다. 30대 이후로 동양사상 공부를 깊이있게 이어 가고자, 개인적인 관심 확장 수준에서 노장사상 연구서의 출간 경향을 대강 훑어보는 정도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바당 선생님처럼 노자를 독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각은 없습니다(도올서원도 다니고 도올선생 현장강의까지 모두 들어가면서 공부하셨다니, 한학 수준도 대단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외국어에도 밝지 못해서 중국이나 일본 학계의 연구와 한국의 연구를 비교한 후 한국 연구가 수준이 뒤떨어지고, 노자의 근본의를 캐치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전독법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대만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간에, 한국보다 노장문헌에 더 깊게 접근해서 공부할 수 있다 손 치더라도 그것은 한국어로 된 연구 성과가 아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비교대상으로 삼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문헌학과 관련해서는 도움을 얻을 수 있겠으나, 철학적으로 고전을 독해하는 입장에서 어디까지나 고전 해석학은 시대정신(Zeitgeist)”에 의한 요청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진리의 보편성역시도 시대적 배경이나 지역, 언어, 문화 등의 특수한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물론 그 시대 상황에서 도가계열 사상가들이 어떤 테제를 제시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고, 문헌에서 제시하는 개념술어의 시대적 맥락을 인류학과 서지학, 음운학, 역사학, 고고학 등을 동원하여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노장사상이 오늘날 이 땅에서 사상으로서, 철학으로서, 하나의 사유체계로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려면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연구 성과를 통해서 그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학계가 외국 학계보다 노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은 문헌학이나 고증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손치더라도, 철학적 시대정신 규명의 차원에서는 우열을 가리는 것이 무의미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올이 코로나19 시대에 노자 읽기를 들고 나온 것도 노자정신의 원류를 파악하면서도, 노자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빗대어 다시 해석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최진석이나 강신주의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진석 선생의 연구에 대해 논평하신 것은 전문적이라 제가 더 코멘트를 달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강신주의 연구를 평하시면서 노자나 장자를 원문에 즉하여 읽기보다 서양 철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덧입혀서 노장이 말하고자 하는 근본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저는 말씀드린 시대정신의 차원에서 강신주의 재해석 작업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동서양 철학의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담론이 보편적으로 공유되어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마당에,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서양철학의 개념을 끌어다가 장자를 읽을 수도 있고, 장자를 끌어다가 서양철학의 문제를 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강신주는 국가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민중들을 괴롭히고, 인권을 파괴했던 한반도의 현실에서 노자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측면에서 우선 높게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위라는 말이 황제의 통치술로 쓰였다는 점을 부각한 학자는 제가 알기론, 한국에선 거의 없었기 때문이지요.

애초부터 노장사상은 그 언설 자체가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엄밀한 트레이닝을 거쳐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고 해도 전공자마다 노장읽기의 결이 다 다릅니다. 저는 세대에 따라서도 다르고, 학풍에 따라서도 다르고, 국내파인지 외국 유학파인지에 따라서도 결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다 다른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해석학의 측면에서 논의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된 철학적 논쟁의 수준을 올리는 일이라 평가합니다. 그래서 도올 선생님이 과거에 대만과 일본, 미국을 거치며 주요한 동양철학 해석의 방법론과 노장해석의 트레이닝 과정을 모두 마스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서 철학하기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면 학문 방법론의 방향성 역시 외국학계의 연구 성과만 참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저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해외의 연구 성과를 비판해가면서 주석을 내는 것은 도올 선생이 물리주의의 창시자 김재권 선생(저는 김재권 선생이 미국에서 학문 생활을 계속하면서, 母語를 거의 잊어버리고 영어로만 분석/심리/과학철학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표했기 때문에 한국철학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대신 서양철학사를 현대철학 부분을 보강하여 다시 쓴다면 심리철학 파트에서 중요한 철학자로 기록되겠지요)처럼 미국에 남아서 한국 태생의 재미 철학자로 살았더라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도올 선생의 도올 논문집(1991, 최영애 교수와 공저)>에는 인하대에서 발표한 철학의 사회성이라는 논문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앞대가리에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해주지 않고, 발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기성 학계의 태도에 대해 격한 논조의 글도 함께 실었습니다. “벼라별 지저분한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하시면서요. 저도 개방성과 다원성을 존중해야 하는 인문학계가 정해진 형식에 갇히고, 엄숙주의에 갇히고, 담론의 파격성을 경시하면 폭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올 선생의 파격적인 한문 해석학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당대의 기존 학계 구성원들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때 국내 학계 구성원들과 지나치게 마찰을 많이 빚었던 것이 도올 선생으로 하여금 국내 학계의 연구를 때로 경시하는 원인이 되었다고도 봅니다. 도올 선생은 본인의 전공분야에서 약간 벗어난 불교나 기독교 연구서에서는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꼼꼼하게 언급하고, 어디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꼭 읽어보라고 권고합니다. 예컨대 서양 중세철학의 박승찬 교수나 서양 고대철학의 박종현 교수, 불교학의 대가 고익진 교수, 원효 전공자 고명섭 교수, 한국철학의 김현(임성주)/손병욱(최한기) 교수, 유교철학의 이승환(유교철학의 공공성, 제도사적 연구) 교수 등이 언급되곤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챔피언이라고 생각한 노자 연구에서는 과연 그 정도로 국내 학계의 레퍼런스를 중시 여겼는지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수준 미달이라면 수준 미달이라고 평가하고 그것에 대한 근거를 적시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논어주석에서는 어떤 주석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라는 말씀도 쓰시면서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봤는데, 노자에 관해서 이렇게 본격적 종합이 부재하다는 것은 도올 선생이 스스로 유지해온 저술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술의 라이트함이라는 것도 저술의 성격을 봐 가면서 추구해야 할 것이지요. <논술과 철학강의>, <사랑하지 말자통일, 청춘을 말하다같은 책은 애초부터 대중서로 기획된 것이니 라이트하게 집필해야 하는 것이었고, 철학자로서 전문적인 주석서는 말 그대로 전문적으로 풀이를 달고서 다만 현학성을 배제하는 성격의 저술을 집필해야 하는 것이지요. 기존 <논어주석에 비교해보아도, 참조 문헌과 색인조차 노자가 옳았다책의 끝부분에 달려있지 않은 걸 보면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쓸 때보다도 공을 덜 들였다는 것이 보입니다.

도올 선생이 자신의 본령을 묵혀두지 말고 일찍이 집대성한 완역본을 내고, 후에 차차 계속 보강하면서 재개정해서 출간하는 방향을 탓했다면 고령과 일필휘지형 저술에서 비롯된 여러 아쉬움을 덜 수 있었겠지요. 노바당님 글 위에 ㅇ님이 다시 달아주신 비평의 말씀처럼, 밀도 있는 강의를 하고 제자들이 녹취를 해서 보강을 하는 방향으로 시리즈를 다시 내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림지식총서나 책세상 문고처럼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면서 미간 원고 살풀이 작업을 진행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다시 제언해봅니다.

 

2. 님께

 

누구 못지않게 노자 공부를 많이 해 오신 분이라는 게 글을 읽으면서 느껴졌습니다. 저도 십분 공감하고, 생성론적인 입장에서 노자를 해석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단순한 자구 해석이나 감상적 수준에서 벗어나서 철학적으로 완숙한 입장에서 경전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연구자가 드문 탓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과문해서 김홍경과 최진석의 번역의 수준에 대해서는 더 재반론을 드리긴 어렵겠지만, 저는 김용옥 선생이 백서본과 곽점본의 발견에 의해 노자 이해자체가 뒤집어지게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하도 강조하셔서, 전통적인 왕필본에 의한 노자이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곽점본과 백서본과 왕필본이 어떻게 다른지 도올 선생만의 견해가 궁금했었습니다. 최진석 교수 같은 경우, <노자의 목소리로 읽는 도덕경에서 3판본을 비교해가면서 해설합니다. 저도 교감의 경우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섣부르게 하는 것은 주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글자를 마구 고치자는 게 아니라 비교해가면서 어느 판본이나 관점에서의 해석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언급해주길 원했던 겁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도올의 면목이 이번 노자가 옳았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연구자로서 글을 쓰면 필연적으로 대중과는 멀어집니다. 과거 노자와 21세기라는 책에서 도올은 강의용 대중교재와 맞지 않게, 지나치게 판본의 문제를 많이 거론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대중 교재는 번역과 간단한 주해 정도로 이루어지면 좋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미 대중 교재로 노자와 21세기를 썼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완숙된 노자 주석이 나오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논어한글역주의 경우 도올논어원고에다가 미완된 번역을 덧붙여서 완간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도올 선생이 노자와 21세기원고를 대폭 손질하고 보강해서(서문+철학적 주해 보강) 덕경 완역본까지 내길 원했는데, 이번 저술은 노자와 21세기를 소장하지 않고 노자가 옳았다를 소장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물론 조선조 노자해석, 태일생수 번역이라는 신규 테마가 들어와 있어서 소장 가치는 있습니다만- 형국인 것입니다. 저는 도올 선생이 미간행한 노자주해 서문을 어떻게든 완성하셔서, 아예 기독교 성서의 이해처럼 노자 이해를 위한 서언으로 독립 단행본으로 재구성해서 내 주길 원합니다. 그리고 노자 해석에서 학술적으로 논쟁이 된 부분을 논문으로 써서 또 다른 단행본으로 내 주길 원합니다. 이렇게 후속 저술이 보강된다면 도올 선생의 노자 이해가 독창적인 주석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P.S. 1) <장자 강의(내편)>이라는 훌륭한 책을 내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호근 교수가 페이스북에서 전공자에 의한 유일 완역본이라며 최근 이강수/이권 공역의 길 출판사 번역본 완간을 축하하는 글을 올리셔서 그런 줄로 알았습니다. 실제로 <잡편까지 동양철학 전공자가 제대로 완역한 경우는 안병주/전호근 공역의 전통문화연구회 역주본이 있습니다만 안병주 선생이나 전호근 선생은 유학자이시고, 도가철학으로 학위를 받으신 분이 아닙니다. 현재 찾아보니 김갑수 선생이 글항아리에서 낸 장자번역과 조현숙 선생이 책세상에서 낸 장자번역이 전공자 주도로 이루어진 잡편까지의 완역인 것 같습니다. 조현숙 선생의 장자완역은 저도 가지고 있는데 착각한 셈이네요. 이것은 저의 오차임에 분명하지만, 전호근 선생이 나오기까지 산통이 길었던 이강수/이권 공역의 장자를 높게 평가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P.S. 2) 김경수 박사가 노장의 생성론을 바탕으로 동서비교철학의 시선에서 서양철학의 한계지점을 비판하며 노장의 생성론: 동양의 빛으로 본 서양의 그림자(문사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가 통독을 2년 전 쯤 할 기회가 있었는데, 도올 선생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천명한 존재를 완벽히 거부하는 생성중심의 철학을 다양한 철학 사조를 보강하여 논리적으로 보충한 확장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좋은 철학서인데, 해외에 번역되어서 출간된다면 좋겠습니다.

l*******4 2020.10.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노자가 옳았다_ 김용옥 지음
"노자가 옳았다_ 김용옥 지음" 내용보기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수천년동안 내려온 노자의 <도덕경>을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우리말로 번역하고, 그 깊은 뜻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다. 지난 2000년 초반 EBS에서 진행된 노자강의의 인기는 당시 깊이 있는 노자사상을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주었다. 노자와 21세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집에도 책이 있다.  당시는 방송을 통한 지적 담론을 형성하는 거의 첫 시
"노자가 옳았다_ 김용옥 지음" 내용보기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수천년동안 내려온 노자의 <도덕경>을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우리말로 번역하고, 그 깊은 뜻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다.
지난 2000년 초반 EBS에서 진행된 노자강의의 인기는 당시 깊이 있는 노자사상을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주었다. 노자와 21세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집에도 책이 있다. 


당시는 방송을 통한 지적 담론을 형성하는 거의 첫 시초와 같았다.
오늘날 차이나는 클라스나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강의 교양 프로그램들은 도올에게 빚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자가 옳았다>의 도올이 전하는 노자 메시지는 인류에게 문명의 전환을 다급하게 요청하는 거장의 메시지다.

 

 

노자, AI와 컴퓨터, 자율주행이 판을 치는 이 혁신적인 시대에 노자가 가당키나 하는가?라고 질문하고 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노자는 하나의 중국 사상체계가 아니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우리 삶에 이미 수천 년 동안 배어있는 지혜요, 생활 태도이며,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처럼 노자는 그 어려운 한자 문장으로 비교적 짧은 텍스트를 가지고 이야기 했다는 것은 또 2천년 넘게 살아 움직이는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다.

한중일 한자 문명권의 역사와 더불어 긴 여정을 가지고 있는 도더경.

소박한 삶의 지혜로부터 출발하여, 인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를 말하고, 우주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사실 AI고 스마트폰이고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우주도 그대로다. 

 

노자철학은 기존 문명의 가치를 역전시키자고 주장한다.
노자에는 경쟁이 아닌 부쟁을, 욕망을 억제하는 무욕을, 소비를 줄이는 검약을, 천지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유지시키는 환경론적 책임 등의 역문명사적 경고가 주를 이루고있다.
노자철학은 무위의 철학이고 비움인 허를 존중한다.


노자는 무엇을 채우려는 방향에서의 인간의 작위를 “유위”라고 부르고, 허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의 인간의 노력이나 지혜를 “무위”라고 부른다.

 

 

도로써 사람의 주인을 잘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무력의 댓가는 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군대가 처한 곳에는 가시덤불이 생겨나고, 

대군이 일어난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른다.

부득이해서 병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뿐이지

무력으로 패권을 과시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좋은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아니하며

좋은 성과가 있어도 으시대지 아니하며

좋은 성과가 있어도 교만치 아니한다.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단지 부득이해서 그리된 것일 뿐이니,

좋은 성과를 올렸다해서

강함을 과시하려 하지마라.

모든 사물은 강장하면 할수록 일찍 늙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도답지 아니하다고 한다.

도답지 아니하면 일찍 끝나버릴 뿐이다. 

 

 

2021년 전 지구적인 위기상황이다. 먼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동으로 우리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빌 게이츠의 기후변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책을 읽고 있지만 정말 절실한데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다음으로 미증유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맞이해서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잃었다.

이로 인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혐오나 차별적인 행태가 만연하는 등 현재 인류문명은 위기상황으로 도올 선생은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난관을 돌파하는 사상으로서 노자철학을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2천년의 사상을 AI와 스마트폰, 자율주행이 판치는 세상에서 언뜻보면 전혀 아닌말 같이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노자 원문을 유려한 우리말로 번역했다. 도올 선생의 50년 노자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d*****2 2021.09.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유튜브 강의와 함께 보는 책
"유튜브 강의와 함께 보는 책" 내용보기
199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하였다. 과학을 전공하였지만, 도서관에 가면 철학 서적 코너로 종종 갔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접한 책이 아마 도올 선생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읽어 보니 재미있었다. 다른 철학서들은 내용 정리와 요약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누가 옆에서 친절
"유튜브 강의와 함께 보는 책" 내용보기

199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하였다. 과학을 전공하였지만, 도서관에 가면 철학 서적 코너로 종종 갔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접한 책이 아마 도올 선생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읽어 보니 재미있었다. 다른 철학서들은 내용 정리와 요약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누가 옆에서 친절히 말하듯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도올 선생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노자철학 이것이다(상)"를 읽었는데, 선생님의 일상적 모습부터 노자 철학의 깊은 내용까지 다루고 있어서, 그 책에 푹 빠져서 읽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려는 순간, 하권에서 다루겠다면서 책은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책의 하권은 나오지 않았다.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도올 선생님은 EBS에서 노자 강의를 하였고, 그때 나온 책이 "노자와 21세기"라는 책 3권이었다. 이 책도 도경만 다루지 덕경을 다루지 않았다. 늘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노자 도덕경 전체를 해석한 도올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 게다가 누구나 유튜브로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이번 도덕경 책은 담백해졌다. 많은 설명이 사라지는 대신에 원문에 충실한 한글 번역을 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어느 누구의 저작을 그대로 읽지 않고 주석과 함께 읽는다는 것도 우습다. 원문 그대로 읽고 느끼면 되는 것을. 다만 한문 실력이 부족하고 그 시대의 표현들을 모르니 해석된 고전을 읽게 되는 것 같다. 한문으로 된 도덕경은 노자의 것이고, 한글로 된 된 도덕경은 고조선 우리의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d*******a 2021.06.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노자가 옳았다
"노자가 옳았다" 내용보기
김용옥 님의 노자가 옳았다 리뷰입니다. 이게 티비 방송에 한번 나온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가 흥미를 느끼시고 사달라고 하셔서 구입했어요. 사실 노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로 읽었는데 최대한 번역하고 해설했다고 해도 어렵긴 합니다. 이런 부분에 접해보지 못해서 더 그럴 수 있구요. 그럼에도 이해되는 부분은 인생의 진리같은 것들을 콕콕 집어 말해주기 때문에 노자가 옳았다
"노자가 옳았다" 내용보기

김용옥 님의 노자가 옳았다 리뷰입니다. 이게 티비 방송에 한번 나온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가 흥미를 느끼시고 사달라고 하셔서 구입했어요. 사실 노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로 읽었는데 최대한 번역하고 해설했다고 해도 어렵긴 합니다. 이런 부분에 접해보지 못해서 더 그럴 수 있구요. 그럼에도 이해되는 부분은 인생의 진리같은 것들을 콕콕 집어 말해주기 때문에 노자가 옳았다 라고 하는구나 싶었어요. 잘봤습니다.

x******7 2022.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최근 저서는 아쉽다.
"최근 저서는 아쉽다." 내용보기
도올 선생님 책은 다 있다. 쭉쭉 즐겁게 읽어 나가면서 비교적 최근 나왔던 불교, 기독교 얘기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거친 듯도 한 자신만의 해석을 재밌게 봤다. 그런 그의 신간이 나왔기에 바로 구매를 했다. 내가 달라져서일까 그가 달라져서일까 그 이전과의 저서보다는 뭔가.. 빠진 느낌이다. 뭔가 허전하고 갇힌 듯한 기분이 조금은 든다. 나는 작가들이 나이 먹을수록
"최근 저서는 아쉽다." 내용보기

도올 선생님 책은 다 있다.

쭉쭉 즐겁게 읽어 나가면서 비교적 최근 나왔던

불교, 기독교 얘기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거친 듯도 한 자신만의 해석을 재밌게 봤다.

그런 그의 신간이 나왔기에 바로 구매를 했다.

내가 달라져서일까 그가 달라져서일까

그 이전과의 저서보다는 뭔가.. 빠진 느낌이다.

뭔가 허전하고 갇힌 듯한 기분이 조금은 든다.

나는 작가들이 나이 먹을수록 무궁무진하게 계속

발전해나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곧 동학관련 저서가 나온다는데 그 때 다시한번 봐야겠다.

 

그런데 본인도 자랑하는 극한으로 신경쓴 책의 편집과 구성은

여전히 발군이다. 거의 예술 작품.

b**********y 2021.02.23. 신고 공감 0 댓글 0